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5코스 길 - 치유의 길

carmina 2016. 10. 21. 20:49

 

 

2016. 10. 19

 

평소 늘 나들길에 대해서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니

한 분이 내게 조심스레 친구들과 나들길을 가고 싶다기에

선듯 안내해 드리겠다 했다.

 

요즘 강화 나들길은 워낙 개발이 많다 보니 이정표가 사라져 

나들길 처음 오는 사람들이 늘상 게시판에

길을 못 찾겠다는 불평을 많이 한다.

그런 점을 생각할 때 내가 늘 나들길이 좋다고 해 놓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왔다가 헤매고 다닐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정한 시간에 오겠다 했을텐데

이 팀은 워낙 먼 곳에 사는 사람이 있다며 시간을 조금 늦추었다.

 

이 계절에 어느 코스를 처음 가야 적당할지 한참 생각하다가

이미 추수가 거의 끝나가니 들판보다는 숲속이 좋을 것 같아

점심도 먹기 쉬운 5코스 고비고개길로 정하고

조금 늦게 모이니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국화리 마을회관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다. 걷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5명.

 

전체적인 나들길 지도로 코스를 설명하고 출발하니

가을 냄새 물씬 풍기는 한적한 마을을 보면서 이들은 감탄한다.

한적한 언덕길.

마을은 조용하다.

벼 수확이 모두 끝나니 휑한 논에는 볏짚들만 새끼들을 키우느라

봄부터 비가 오지않아 힘들었고 여름에도 긴 폭염과 가뭄으로

고단했던 여정을 마치고 편히 누워 피로를 풀고 있다.

인생이 그런 것일 것이다.

내가 애써 키운 것들 다 떠나 보내고 나면 내게는

힘없는 몸둥아리만 남겠지..

 

숲으로 올라간다.

토실 토실 했던 밤송이들도 봄부터 키운 밤톨들을 모두

내보내고 강한 가시 돋은 푸른 껍데기마저 힘을 잃고

진한 갈색으로 변색되어 등산화에 쉽게 으스러지고 만다.

가끔 별로 눈길 받지 못한 작은 밤톨만 뎅그마니 누워 말라가고 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길은 편했다.

낮은 언덕길을 오르고 학생야영장 밑에 마련된 작은 쉼터에서

멍석을 피고 일찍부터 간식을 먹어 치웠다.

그 주위에 나무들이 진한 빨간색으로 변한 담쟁이 넝쿨로 휘감기고 있다.

 

이어지는 편한 숲길. 모두 이런 길을 걷고 싶었다며 걷는 발길이 가볍다.

잡초들이 빛을 잃었다. 그 와중에 아직도 유혹적인 보라빛의 열매를

가득 달고 있는 왜래종 자리공들이 튼튼하게 자라 버렸다.

봄에 거의 보이지 않던 이 외래종 식물이 순식간에 강화의 산속에

퍼져 버렸다. 이제는 거의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고려산과 혈구산으로 갈라지는 언덕에 도착하니

그간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지 나무계단에도

바람에 날려온 잡풀이 그대로 남아 있다.

참 쓸쓸한 가을이고나..

 

좁은 언덕을 내려오면 길 한 복판에 있던 서낭당 나무에

오래 전 부터 걸려있던 낡아빠진 색동 저고리와 치마는

그마저 바람에 날려 사라졌는지 이젠 겨우 흔적만 보일 뿐이다.

그렇게 날라간 저고리가 저 멀리 다른 나무에 걸려 있다.

 

봄이면 자주 보이던 두꺼비도, 여름에 불쑥 튀어나온 고라니도

가을에 날라다니던 메뚜기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을이 깊었다.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살찐 것은 길가의 축사에 보이는

몸집 커다란 소들 뿐이다. 물리학적으로 질량불변의 법칙인가?

사라지는 풀을 먹고 소들이 살찌고 있다.

 

숲길을 지나 마을길을 걸으니 자동차들이 자주 지나간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자연의 즐거움을 모를 것이다.

멀리 보이는 낮은 산들이 오늘은 공기가 어제보다 좋아 깨끗해 보인다.

덥지 않고 바람이 살살 불어 오니 걷는 기분이 좋다.

더구나 새로온 사람들은 이런 즐거움을 처음 느끼는지 연신 싱글벙글..

많은 인원이 같이 걸으면 가끔 대열을 정비하기 위해 쉬는 빈도가 많은데

적은 인원이 걸으니 자주 쉴 필요가 없다. 오늘 속도가 빠르다.

 

아직 활짝 꽃을 피우고 있는 코스모스가 아름답고

길가에 수확하여 말리고 있는 들깨와

수확할지 모르지만 매달려있는 완두콩

그리고 늦게 열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작은 것인지 모르는 작고 빨간 고추들.

허수아비 팔벌려 웃음짓고 초가지붕 둥근 박 꿈꾸고 있으며

수확한 뒤에도 아직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주홍빛 감들,

수수와 해바라기가 가을 하늘 무대에서 하늘 하늘 춤을 추고

졸린 어미 소옆에 작은 송아지 하나가 울타리를 뛰쳐 나와

우리를 맴돌고 있다.

 

금방 고인돌 유적지에 도착했다.

그 곳에 보이지 않던 안내판에 악보가 그려져 있고

고인돌 유적지의 안내문이 써 있다.

이미 작고한 줄로 알고 있는 윤극영 작곡이라기에

이 분이 고인돌에 관한 노래를 작곡했나 하고 악보를 대충

선율을 따라 노래해 보니 이런! 알고 있는 노래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나 냇물아 푸른 벌판을'

어린이날 노래에 다른 가사를 붙여 놓았다.

 

고인돌에서 잠시 쉬고  내가저수지로 향하는  숲길에

하얀 버섯들이 자주 보인다. 그러나 모두 먹지못할 버섯들이다.

그 숲길 끝에 나염을 하는 집이 하나 생겼다.

 

내가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 있다.

지난 봄에 가뭄으로 이 저수지가 거의 말라 붙은 적이 있었다.

바닥이 허옇게 보였었는데 자연이 치유을 해 주었다.

자연처럼 만병치료약이 없을 것 같다.

 

점심을 내가면에 있는 외내골가든에서 젓국갈비를 먹었다.

생전 처음 보는 요리라며 신기해 한다.

주인이 노래하기 좋아하는지 식당 홀에

기타와 음향시설까지 모두 갖추어 놓고

손님이 없으니 기타 튜닝을 하고는 노래를 부른다.

일행이 내게 노래를 청해 졸지에 기타를 치며 마이크로 노래를 불렀다.

 

식사 후 덕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새로 건설되고 있는

석모도 연육교 공사외 이어지는 도로를 닦느라 완전히 만신창이다.

오래된 세멘트길은 다 걷어 내려는 듯 수없이 많은 구멍을 뚫느라

중장비의 드릴 소리가 무척 시끄럽다.

긴 길을 얼른 벗어나야 했다.

아무래도 5코스의 이 길은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길 가에 세워두었던 나들길 이정표도 모두 뿌리째 뽑혀 뒹굴고 있다. 

 

덕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야자나무로 만든 멍석이 길게 깔려 있다.

옆에 언덕에 나무들 밑에 큰 평상을 만들어 앉아 쉴 곳은 있지만

이제까지 힘들게 올라왔는데 그 곳까지 올라가는 것이 싫어 그냥 바닥에 앉아 쉬었다.

 

덕산언덕을 지나 외포리로 능선을 따라 가는 숲길은 참 걷기 좋은 길이다.

조금만 비가 많이 온 뒤며 리본이 없으면 길을 찾지 못할 정도로

잡초가 무성해져 버리니 초보자가 오면 길을 잃기 쉽상이다.

이전의 길이 좀 불편했어도 이 길을 걸으며 모두 치유될 것만 같다.

 

긴 길 끝 언덕의 곶창굿당에서 넓은 바다를 보며 여행자의 땀이 모두 바람에 날려간다.

늘 그 언덕 바위 위에서 먼 바라를 보던 할머니는 어느 해 부터인가

텅빈 바위만 뎅그마니 남아 있다.

외포리 어시장에서 장을 보고 커피를 마시며 오늘의 여정을 끝냈다.

 

나는 안내만 했을 뿐이다. 이제 또 누군가 이 길을 찾는 이가 더 생기겠지.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