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아시아방문기

우즈베키스탄 - 타슈겐트

carmina 2016. 11. 20. 17:10

우즈베키스탄 타슈겐트


 

금방 멀리 보이는 산 아래로 폭 파묻힐 것 같던 저녁의 붉은 태양이 어느 순간 다시 공중에 떠오른다

이제 노을을 땅에서 보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본다.

그리고 비행기가 상승할수록 점점 해는 지면과 멀어진다.

 

그렇게 지는 해를 따라가다가 기내 의자 화면에 보이는 현 위치는

중국의 베이징을 가리킬때 쯤  수평으로 선을 그어 놓은 듯 검은 대륙과,

빨간 노을과 어두운 파란하늘이 삼색띠를 이루며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 낸 끝없는 미술작품이다.

 

올해부터 부서가 옮겨 출장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타고난 역마살이 끼어 있는지

원하지도 않았는데 다시 비행기 탈 기회가 생겼다. 그것도 전혀 기회가 없을 줄 알았던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겐트

 

스탄은 땅이라는 뜻이다.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마치 우리나라, 미국, 영국, 태국 등 국을 나타내는 단어.

 

많은 스탄 국가들이 전 세계 사회주의 국가 붕괴의 도화선이 된 서울 88올림픽 이후

1990년 이후 러시아에서 독립되어 나왔다.

 

타슈겐트는 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라는 은퇴한 노인 기자가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성까지 걸어가는 거대한 기행문인

'나는 걷는다'라는 작품에서 많이 들어 보았다.  

 

이 기행문은 사진도 없이 글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두터운 책으로 3권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에 한 번 빠져들고는 거의 밤을 새워서 읽을 정도로 몰두한 적이 있다.

이 여행기는 내가 늘 쓰는 기행문의 형식과 거의 비슷하다. 세밀하게 보고 느낀대로 ..

 

약 7시간 반의 비행으로 수도 타슈겐트에 도착.

기내에서 작성하라고 주는 세관신고서에 소지한 외화금액을 적으라 하기에

늘 지갑에 가지고 다니는 달러, 유로, 호주달러, 싱가폴달러, 중국위안 등 각종 외환금액을

다 적어야 하는지 궁금하여 기내승무원에게 물어보니 전체 미화로 환산해서 금액을 적으라 한다.

그리 알고 대충 미화금액으로만 적었는데 나중에 큰 봉변을 당할 뻔 했다.

 

입국수속을 하는 곳에 달랑 3군데서 입국체크를 하는데 2곳은 현지인 나머지 하나는 외국인창구.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도 입국도장을 찍는 이는 전화도 받고 수속이 무척 느리다. 한심한 관료들.

짐을 찾고도 다시 짐 검사를 또 한다.

 

첫 발을 딛는 한 밤중의 이국땅 타슈겐트에 눈이 펑펑 내린다.

 

눈이 온지 얼마 안된 듯 땅에 쌓이지는 않았다.

우리 회사 이름이 적힌 현지인이 기다리고 있다. 어? 그런데 이 사람 한국말이 능숙하네.

이름을 물으니 아키바리 한다. 아키바리?  너 지금 농담하는거지?

그랬더니 웃으며 아키바 알리라 한다.

 

공항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호텔이 있다. 차로 15분 정도?  그랜드 미르호텔

호텔비가 무척 싸다. 75불. 해외출장 다니면서 이렇게 싼 곳에 묵은 적이 거의 없는데

이곳은 한인타운이라 한국인들은 이 곳에 많이 묵는다 한다.

아닌게 아니라 주위에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얼굴들이 자주 보인다.

 

호텔방에 들어서는 순간, 새삼 우즈베키스탄에 왔구나 하는 걸 침대포의 전통 무늬에서 느낀다

 

 

 

 

아침식사를 위한 호텔의 카페는 무슬림 국가가 그런가 아니면 저렴한 호텔이라 그런지

다른 국가의 호텔 메뉴에 비해 상당히 부실했다. 그런데 메뉴 중 벌꿀과 이상한 편육이 관심을

끈다.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아침에 먹는 것이 말고기라는 것을 알았다.

 

회의를 위해 호텔을 나서는 순간부터 내 눈은 경이로움에 놀라움이 가득하다.

 

세상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차들의 대부분이 한국의 브랜드를 그대로 쓴 대우 차들이다

제일 많은 소형자동차인 마티스와 티코, 그리고 조금 큰 넥서스, 다마스 등등..

심지어 경찰차도 대우차를 사용하고 있다. 아주 가끔 최근에 수입된 현대차들이 보인다.

 

중앙아시아국가들 중 유일하게 전철이 운영되는데 모든 전철입구에는 LG 브랜드가 선명하고

우리 호텔앞의 로타리에도 삼성의 커다란 브랜드 기둥이 세워져 있다.

 

 

 

자랑스런 한국의 기업인들, 특히 이미 이름만 겨우 남고 몰락의 길로 들어선 대우의 우중씨에 대한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도로는 이 도시가 1960년대 대규모 지진이 나서 모두 파괴된 뒤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서인지

거의 모든 중심지 도로가 폭이 아주 넓고, 덕분에 차가 막히는 적이 별로 없었다.

또한 거의 모든 도로에 신호가 별로 없어 거침없이 달린다.

 

단지 횡단보도가 거의 없으니 가끔 차도를 횡단하는 사람들의 안전이 우려되고, 사거리에도 좌회전 신호가 없으니 보통 외국회사에 이용하는 비보호 좌회전스타일이라 가끔 차가 그런 곳에서 엉켜 버리기도 한다.

 

방문하는 현지회사의 빌딩은 오랜 세월을 사용한 듯한 흔적이 계단 계단 그리고 방을 연결하는 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계단에는 우즈베키스탄 전통카펫트로 깔아놓았고, 문고리도 오랜 세월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반질 반질하며 비서실과 관료들의 방을 연결하는 문도 왜 그리 작은지..

 

어젯 밤 눈이 온 뒤 유난히 회색빛의 하늘 아래 무채색의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어깨를 축 늘어진 것 처럼 보이는 것은 이들보다 조금 더 잘산다는 나의 교만한 시선일 것이다. 거의 모두 두툼한 모스크바 전통 모자를 쓰고 다닌다. 옷도 거의 검은색 일색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얼마나 미인들이 많은지 동료의 표현을 빌면 수많은 김태희들이 다닌다 한다.

정말 김태희처럼 이쁜 여자들이 길거리에 지천으로 보인다.

 

반면에 정부청사나 큰 사무실에 일하는 여자들은 거의 전부 나이가 많고, 뚱뚱하며, 무표정이다. 아마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사람을 쉽게 해고하지 못하니 한 업종으로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출장에 제일 편했던 것은 통역이 따라 붙었다. 서방세계와 거의 교류가 없는 나라인지라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현지 한국회사에서 주선한 통역을 이용했다.

 

고려인이라는 아가씨, 모습은 한국인이지만 아버지가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러시아에서 대학을 나오고 한국어를 전공했다 한다.  매번 회의때마다 어려운 공학용어까지 한국말로 통역해 주는 이쁜 아가씨 때문에 대화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 외엔 아주 쉬웠다.

 

이 곳 사람들의 평균 월급이 약 100달러라 한다. 100달러. 돈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점점 재미있어진다.

 

공항에서 환전하는 공식환율은 달러당 약 1650숨 정도, 그런데 암시장에선 약 2400숨정도로 거래된다. 그런데 화폐가 제일 큰게 1000숨이니, 100달러를 암시장에서 바꾸면 무려 240장의 천숨짜리를 들고 다녀야 한다.

 

 

 

 

호텔 같은 곳에서도 카드사용을 하게 되면 20프로 이상의 추가 요금이 붙기에 만약 일주일 정도 체류 후 호텔비를 현금으로 지불할려면 거의 쇼핑백 하나 정도의 돈을 들고 다녀야 한다.

 

은행에 넣어도 이자가 없으니 거의 누구나 돈을 집에 보관하고 필요한 만큼 들고 다닌다.

 

한달에 100불가지고 살 수 있을까? 전철을 타는 비용을 물으니 약 300숨정도, 그러니까 우리네 교통비만으로만 기준하자면 생활이 3분의 1정도 비용이랄까? 그럼 약 최저 생활비는 약 300불 정도로 본다. 하긴 우리네 최저 생활비도 그 정도로 본다.

 

그러니까 이 들은 최저 생활비 수준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티 같은 차량 가격을 물으니 약 만불 정도라 한다. 그래서 한국과 비교해서 비싸지 않다고 했더니 우리 기사가 펄쩍 뛴다. 10년을 벌어 한 푼도 안쓴다 하더라도 차를 사지 못한다고..

아..그렇다 내가 착각했다.

 

몇 건의 미팅 후 저녁식사를 위해 현지 한국사람들과 찾아 간 카라반이라는 이름의 현지 식당.

 

 

 

 

내부의 모습이 오래 전 실크로드를 다니던 대상들이 들렀을 것 같은 내부 인테리어. 곳 곳에 당시에 쓰던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실내 탁자도 마치 오래 된 듯한 나무들.

 

전통음식이 뭐냐고 물으니 말고기란다. 아직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말고기. 그리고 양고기를 주문했다. 마실 거리는 이 곳 맥주와 러시아음식을 먹으면 만드시 마셔야 하는 보드카 한잔.

 

 

 

 

말고기가 나왔는데, 아 이거 아침에 호텔에서 먹은거네.  혹시나 질길까 걱정했는데 육질이 부드럽다. 양갈비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나와 맛이 좋았고 매운 소스가 같이 나왔는데 너무 매워 고기맛만 즐겼다. 다음에 공갈빵 같은 것이 나왔는데 상당히 크다. 그 안을 보니 팥과 야채 같은 것들로 속을 채웠다. 달콤하고 맛있다.  

 

 

 

 

포식하고 기분이 좋을 때쯤 실내에도 사람이 가득차고 밖에서 사람들이 서성거린다. 밖에 나와 보니 실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작은 골을 만들어 물을 채워 넣고 물 위에 꽃잎을 띄워 놓았다.

험한 길을 걸어 온 대상들이 다니던 실크로드의 낭만이랄까?

 

 

 

 

식당까지 데려다 준 기사를 돌려보내고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기에 식당을 나와 어두운 길을 터벅 터벅 걸어오다 보니 오늘 종일 돌아다녀도 택시를 본 기억이 없어 택시가 있느냐 했더니 아무나 택시를 한단다.

 

큰 길로 나와 앞에 서 있으니 차가 한 대 선다. 티코.

한국에서 타 본적이 없는 티코.

좁은 뒷 자리에 3명이 타니 차가 움직일까 걱정된다. 난 앞에 탔는데 전방 차 유리가 거의 만신창이다. 곳곳에 금이 가고 조그만 충격이라도 있으면  금방 산산조각 날 것 같아 위험해 보인다. 계기판은 거의 보이지도 않고, 실내도 지저분하다. 이걸 누가 택시라고 할까..

 

이번 출장 기간에 한식당을 세 번이나 찾았다. 이 곳에 교민이 약 2000명 정도 있고, 한국의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어 한식당이 많다. 외국가면 참 가기 싫은 곳이 한식당인데 안내해 주는 한인기업직원들이 한식당을 주로 찾으니 어쩔 수가 없다.

 

타슈겐트의 거리는 어둠침침해 보인다. 건물도 밝은 색이 없어 음울해 보였으나 내가 있는 곳을 벗어나 신도시로 가니 대형 건물들이 즐비하고 건물에 색이 있었다. 유럽풍의 건물과 이슬람 풍의 건물들이 공존한다.

 

도심의 모든 곳들이 훤해 보인다. 그러나 뒷골목으로 가면 보수되지 않은 도로들과 겨울이라 그런지 모두 시든 나무들, 두터운 옷을 입고 조그만 좌판을 벌인 사람들, 건물을 지키는 사람들도 모두 나이든 뚱뚱한 할머니들.

 

대학가 근처를 지나 칠 때 많은 대학생 무리를 보았다. 주로 남학생들, 검은 옷을 주로 입고, 가끔 손에 만두 같은 들고 먹는 이들이 보인다. 대학가라고 하지만 복사하는 곳 외에는 전혀 대학가라고 짐작하기 어렵다. 운동장도 없는 것 같고..

 

다음 날 저녁식사를 위해 찾아 간 몽고식당.

몽고식당답게 건물을 모두 몽고의 전통가옥인 파오를 본따서 천막으로 만들었다.

 

 

 

 

이 곳도 실내 장식이 특이하다. 유목민들의 생활이 식당안에 보이는 듯 하다.

 

커다란 실내화덕에 불을 때는지 벽돌이 커멓게 따버렸다. 천정도 다큐먼타리 프로그램에서 많이 본 형태이다. 메뉴판이 나왔는데 표지가 인상적이다. 가만히 보니 말의 가죽으로 만들고 털을 만지는 감촉이 부드럽다. 마치 살아 있는 말을 만지는 듯한 촉감.

 

옆에 테이블에선 나이든 아주머니들이 와인병을 놓고 식사를 하고 있다.

 

비록 무슬림 국가이지만 술 파는게 혀용되는지 메뉴판에 와인, 위스키 맥주 등의 메뉴가 즐비하다. 나도 와인을 마시고 싶어 종류를 보니 단 두가지. 하나는 Dolce 라고 시작되는 이름을 보니 스위트할 것 같아 패스. 다른 한가지는 비노 이탈리아라고 써 있어 이태리 와인인줄 아는데 우즈베키스탄 와인이라 한다.

 

 

 

 

우즈베키스탄 와인은 없을것이라 말했지만 이곳에서 만든 것이라 한다.

 

와인을 주문했더니 병에는 우즈베키스탄이라고 써 있는데 와인 종류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코르크 마개도 미리 따 놓은 상태이고 마개를 살짝 얹어만 놓았다.

 

맛을 보니 정통 이태리 와인 혹은 칠레의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이다. 아마 외국산 벌크와인을 사서 이렇게 병에 채워 파는 것 같다.

 

메뉴를 알아서 주문하라 했더니, 나보고 소혀를 먹을 줄 아느냐며 묻는다. 하모 하모.

특별한 음식이라면 맛의 호불호를 불구하고 시도해 보는 내 취향이라, 여러가지 고기를 시킨다. 말고기,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등등 아마 낙타고기라도 있으면 먹었을걸?

 

 

 

 

그리고 이 지방 특유의 음식을 주문했는데 고기 수제비 정도랄까? 우리나라 소래기 뚜껑에다 내오는데 맛이 달콤하고 수제비도 얇게 썰어 입에서 부드럽다. 고기도 소고기인 듯 부드럽다.

맛있지만 다른 고기들을 포식하느라 남길 수 밖에 없었다.

 

고기 수제비 1인분이 너무 많다하니 그게 1인분을 시켜서 둘로 나눈 것이라 한다.

다른 것 안 먹고 이거 1인분만 먹어도 배부를 것 같다.

 

음식값이 약 140만숨. 돈을 다발로 꺼내서 한참을 세어 계산했다.

 

먹고 음식이 남아 기사와 통역사에게 싸가지고 가라 했더니 싫단다. 왜 그럴까?

우리네 같으면 가지고 가서 먹을텐데..  그런 문화가 아닐까?

 

나보고 싸 가라기에 그럼 싸달라 했더니 이런 그냥 검은 비닐에 음식쓰레기 버리듯 한꺼번에 담아 준다. 거기서 그만 두라 할 수 없어 가지고 와 호텔방에서 버렸다.

 

식사후 호텔에 돌아오니 로비에서 흰 머리칼의 남자와 소리가 별로 안 좋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두 남자가 무표정하게 연주하고 있다. 사진을 찍을려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출장 마지막 날.

 

저녁 비행기이지만 오늘도 종일 3건의 미팅이 예정되어 있어 관광은 꿈도 못꾼다.

 

정부기관이라고 찾아 간 곳. 나이 든 임원이 우리를 맞는다. 마치 남대문 시장통에서 장사하는 듯한 옷차림에 미팅하면서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 묻는다. 이런 걸 어찌 해석해야 하나.

 

이게 러시아로부터 물려받은 사회주의의 모습인가?

 

반면에 다음으로 찾아 간 타슈겐트 주재의 러시아 업체 모습은 전혀 딴 판이다.

최고급 멋진 빌딩에 보안시스템도 제대로 되어 있고, 우리를 안내하는 아가씨도 얼마나 이쁜지 눈을 떼기 힘들 정도이다.

 

미팅에 참석한 사람은 갤럭시탭을 이용해 즉시 즉시 미팅 메모를 하고, 프레젠테이션도 아주 좋은 장비를 이용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도 러시아처럼 천연자원의 개발이 본격화되면 이런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까?

 

잠시 짬을 내서 점심을 호텔 옆 커다란 푸드코트에서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이제까지 보아오던 모습하고는 전혀 딴판이다. 젊은이들이 무리지어 몰려 있고,

피자와 햄버거등 서양음식들과 아랍 전통의 물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 그리고 게임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정에는 와이파이가 가능하다는 커다란 표시가 있으니 이 곳도 스마트폰 바람이 불고 있다.

 

햄버거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고, 햄버거 빵도 맥도날드와는 다르게 빵을 구워서 내 놓았다.

 

오후까지 미팅을 모두 마치니 약간의 시간이 남기에 어느 곳을 가고 싶냐고 묻는다.

 

당근 시장통. 바자를 가고 싶다 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우리나라 동대문 운동장같이 생긴 곳에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 각종 음식재료와 과일을 파는 장삿군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넓은 공간에 비해서는 별로 복잡하지는 않았다.

 

질서정연하게 놓인 각종 과일들, 곡물들, 고기들이 별로 청결한 보관상태는 아니지만 그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으며 중간 중간에 공동 수도가 있어 물을 받아가는 사람도 있다.

 

 

 

 

통역하는 아가씨가 고려인들도 여기서 장사하고 있다며 데리고 간 곳에 각종 반찬거리들이 즐비하다. 김치, 나물, 각종 생선절임 등등.  김치가 우리 나라 김치랑 사뭇 다르다. 거의 백김치 수준이다. 그리고 김치를 마치 커다란 소시지 팔듯이 긴 비닐 봉투에 썰지 않은 김치를 담아 팔고 있었다.

 

 

 

 

반찬을 파는 아줌마들의 얼굴은 영락없이 한국인인데, 한국말을 전혀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각종 쌀을 파는 곡물점에 한국쌀은 서툰 한글로 맛있는 쌀 밥쌀등으로 표시해 놓았다. 아마 한국인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그리고 내 시선을 끄는 좌판. 커다란 빵을 판다. 아마 이게 주식일 것이다. 이름을 물어 보니 리뾰시카. 방금 구워 낸 듯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가격을 물으니 한 개 600숨정도. 저거 하나 가지고 몇 명이 먹느냐 물어보니 4가족이 한끼 정도 먹을 양이라 한다. 그러니까 계산하면 서민들은 한국돈으로 약 250원 정도로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더 있어 찾아간 아무르 티무르 박물관.

거대한 이슬람식의 돔이 인상적이다. 우즈베키스탄 건국을 상징하는 왕이라 한다.

입장료가 3000숨으러 있기에 4명용 12000숨을 내 밀었더니 7000숨만 받는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입장료가 다르다. 대신 사진찍는 비용으로 카메라 한대당 2500숨정도 받는다.

 

벽화와 실내의 유물들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건국의 왕을 소개하기 위한 의미로 중요한 박물관이라 한다.

 

이렇게 우즈베키스탄의 여정을 마친다.

 

이제 출국해야 하는데 현지 한국인이 겁부터 준다. 입국시 신고한 외화보다 가지고 나가는 외화가 더 많으면 안된단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외화를 모두 자세하게 신고하지 않고 대충 달러금액으로만 했다 했더니 잘 못 걸리면 돈도 뺏기고 벌금도 지불해야 하고 때론 그 조사 때문에 비행기도 못타게 된단다.

 

몇 번의 보안 검사 후 출국 짐 신고. 나보다 먼저 신고한 우리 직원이 그만 그 대상이 되어 버렸다. 작은 방으로 불려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내 세관 수속 후에는 잠시 업무공백. 그 틈에 슬그머니 출국 법무 심사대로 통과해 버렸다.

 

직원 얘기가 작은 방으로 들어가더니 주머니까지 다 검사한단다. 애고..내가 걸렸으면 문제 될 뻔 했다.

 

행운 또 하나.

 

귀국편 대한항공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라 관광객들로 가득 차서 편하게 가긴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탑승전에 내 이름과 우리 직원 이름을 부르기에 갔더니, 비즈니스 석으로 바꾸어 준다. 탱큐 대한항공.

 

시간이 없어 정말 가고싶은 사마르칸트나 여기 저기 다니지 못해 아쉽지만 이런 정도만 해도 충분히 만족한다.

이런 것도 내가 영원히 간직할 인생의 행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