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포크 음악이 있어 행복했던 날

carmina 2017. 10. 7. 23:34

2017. 10. 7, 남이섬

우리 나라의 포크 1세대라 하면 한대수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 시대에 포크송을 직접 작사 작곡하여 부른 가수로 유명하다. 가수 양희은이 불러 유명한 '행복의 나라로' 그리고 직접 부른 '물좀 주소'라는 노래가 70년대 독재정권으로 서슬이 시퍼럴때 이 노래를 들고 나와 시멘트 같이 굳은 기성 세대의 한 복판에 돌팔매질을 했다.

곤봉과 영창으로 대변되던 그 시대에 그도 당연히 곤욕을 치루었지만 이 노래가 씨가 되어 마치 들풀에 불지피듯이 우리의 포크 음악들이 젊은이들에게 퍼져 나갔다.

74년 3월 대학 입학식을 마치자 마자 교문이 봉쇄되었다.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젊은이들. 그 들을 당시 정권은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서 교문을 막아 버려 꼼짝 못하게 막았다.

하지말라는 장발이 우리의 유일한 저항이었고 때마침 불어온 미니스커트도 기성세대에 대한 작은 몸부림이었다. 거기에 노래를 좀 한다하는 젊은이들이 뒤집어 해석하면 무언가 반항적인 가사내용의 포크송으로 최루탄의 연막을 뚫고 퍼트렸다.

나 또한 그랬다.
그 시대에 더벅머리 청바지를 입고 김민기의 노래들을 비롯한 금지곡들을 대학생들과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에게  싱어롱이란 주제로 기타를 들고 가르쳤다.

 

남이섬에는 포크 음악 박물관이 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통기타가 들어온지 50주년을 기념하여 행사를 했고 오늘은 싱어송라이터의 명예의 전당에 우리에게 주옥같은 노래를 만들어 노래하고 보급했던 '사월과 오월'의 백순진씨를 선정하는 기념 행사를 가졌다.

남이섬은 내게 참 의미가 있는 곳이다.
1979년 처음으로 공중파 방송에 출연한 장소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기성 가수와 호흡을 맞추어 노래한 곳이기도 하다. 오늘 그 때 그 가수가 무대를 선다해서 더욱 반가왔다.

경춘가도와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길은 늘 주차장이다. 그래서 오늘은 용산에서 출발하는 ITX를 예매해 편하게 갔다. 가평역에서 내려 버스나 택시를 탈려 했으나 이미 남이섬 입구까지 주차장이 되어버린 교통상황을 보고는 멀지 않은 길이니 걷기로 했다. 덕분에 누렇게 익은 곡식이 춤을 추는 벌판사이에 내 몸을 풍덩 빠트렸다.

 

 

조금 땀이 날 때 쯤 남이섬 매표소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관광객들의 무리를 뚫고 특별히 제공된 입장 티켓 밴드를 차고 들어가 같이 간 일행이 준비해 온 도시락을 들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가는 도중 잔디밭에 앉은 외국인들이 기타를 치며 CCM을 부르고 있어 내가 흥얼거리며 따라하니 나보고 앉아서 같이 부르자 권유했다. 도시락을 먹고 찾아간 행사장에는 이미 앉을 자리가 없었다.

행사는 전반에는 싱어송라이터단체의 각 지부에서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불렀다. 무대에 걸린 커다란 순서에 출연하는 가수이름들은 거의 알지 못하는 이름들이었다.

 

이전같지 않고 통기타가수들은 모두 앰프의 힘을 빌린다. 그래도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며 스피커가 찢어지는 소리를 듣지 않아 좋았다.

비록 이름이 세간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들은 모두 자신이 작곡한 곡들을 노래한다. 히트곡이라는 것이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히트가수라는 것이 실력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중에 누군가 하나 어느 순간 크게 뜰지도 모른다.

어느 여가수 한 명이 자기 노래를 부르는데 아마추어인 내가 듣기에도 심하게 음이 플랫되어 듣기 거북할 정도였으나 팝송을 부를 때는 자기 색깔이 나와 듣기 좋았다.



고 김광석이 불러 유명한 '이등병의 편지'의 작곡자가 부르는 노래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좋았고 그가 부른 '가을 우체국 앞에서'라는 노래는 멜로디가 너무 좋아 얼른 스마트폰으로 악보를 찾아 같이 따라 불렀다.

우리 시대에 '사랑의 의지'라는 노래로 한참 이름을 날린 이수미씨가 비록 나이들었지만 고운 모습으로 열창을 하고 내려갔다. 아직도 그녀의 몸엔 우리 시대의 몸짓이 살아 있었다.

최근에 작고한 고 조동진씨의 여동생인 조동희씨도 가수인걸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사월과 오월의 노래 중 '등불'을 멋지게 편곡해 부른 여가수 최고은씨의 노래가 아름다워 한참 넋을 읽고 바라보았다.

그녀와 사월과 오월의 백순진씨가 같이 부른 제주도 해녀들을 주제로 한 '숨비소리'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런 것이 포크의 사명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대중들에 같이 따라하라고 부르는 후렴의 멜로디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에서 노동요의 의미가 보였다.

솔개로 유명한 가수 이태원이 올라와 그가 불렀던 사월과 오월이 작곡한 노래 두 곡을 불렀다.
하나는 '욕심없는 마음'과 또 다른 곡 '어떤 말씀' 대학시절 이 노래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특히 '욕심없는 마음'은 바로 내 자신의 모습이었다. 나는 아직 이 가사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노력한다.

가수 이태원씨는 1979년 8월 이 곳 남이섬에서 나와 같이 그의 '솔개' 노래를 불렀었다. 물론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전역 후 복학하기 전에 시간이 나서 교회 행사를 돕기 위해 홀로 찾아 온 남이섬.



남이섬 강가에 군용 A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지내던 그날 저녁 에프엠  공개방송이 강가에서 열렸는데 그곳에 놀러온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포크송 경연대회를 가졌다. 나는 당시 이수만씨가 부른 '모든 것 끝난 뒤'를 불렀지만 아직 복학하기 전의 신분이라며 등외를 시켰다. 그러나 노래른 제일 잘했다고 상금은 제일 푸짐하게 받았고 이태원씨가 피날레 노래를 '솔개'로 부를 때 그는 아마추어 출연자 중에서 내게 화음을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래서 원래 이날 스테이지에 '솔개'노래를 부를 예정은 없었는데 나는 맨 앞에 앉아 큰소리로 '솔개'를 연호하며 앵콜을 외쳤다. 결국 무대에서 내려가려던 그는 즉흥 반주로 내가 원하던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사월의 오월의 사월과 오월이 무대에 올랐다. 백순진씨 그리고 김태풍씨 중 누가 사월이고 누가 오월인지 모르지만 머리가 벗겨진 김태풍씨도 기타를 들고 나와 2년만에 노래를 부른다며 마이크 앞에 선 그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우리는 모두 '화'를 부르고 앵콜로 다 같이 일어서서 '장미'를 불렀다.
그 노래들이 있어 우리의 젊음이 행복했다.
그런 곡을 작곡해 주어 우리의 젊음이 즐거웠다.
그런 포크송들이 있어 무언가 기성세대에 소극적이나마 아우성을 쳤다.

싱어송 라이터의 명예의 전당 1대는 한대수, 2대는 김정호, 3대는 김광석, 4대는 백순진씨다.
커다란 기둥같고 횃불같던 그들이 작곡하고 부른 노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노래들로 인해 내 여생이 행복하다.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