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Dixit Dominus 공연, 2022. 9. 4

carmina 2022. 9. 4. 21:19

2022. 9. 1

세라믹팔레스홀의 앞자리에 혼자 연주를 들으며

내 얼굴에는 계속 미소가 흐른다.

'그래 이게 내가 원하는 음악이야.'

내가 한국에서 가장 사랑하는 연주 단체가 콜레기움 보칼레서울과 콜레기움 무지쿰서울이다.

초기에는 대우합창단이 좋았고, 이후 모텟트합창단 그리고 이제는 내 딸이 연주자로 있는 이 연주 단체다.

주로 고음악을 연주하는 이 연주 단체는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레퍼터리들을 주로 연주한다.

아빠의 음악 취향 때문인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유학을 다녀온 딸도 이 연주 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이번 연주는 처음 가보는 세라믹팔레스홀이라 집에서 거리가 좀 멀었지만 

가까운 곳에 전철역이 있어 접근은 어렵지 않았다.

오늘 연주하는 곡은 모두 영국 작곡가들의 곡이고 

그중 헨델의 곡 중 Dixit Dominus (주께서 말씀하셨다)를 타이틀로 했다.

연주를 들으며 Dixit라는 라틴어에서 문득 이 단어가 말하다를 뜻하는 영어 Diction의 어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대는 보칼레의 스테이지, 악기 연주의 스테이지 그리고 합동 연주로 구분되었고 첫 스테이지는 합창단의 무대다. 

콜레기움 보칼레는 늘 부천시립합창단 지휘자인 김선아 씨가 지휘를 했는데 

이번엔 콜레기움 보칼레의 부지휘자인 지현정 씨가 포디움에 올랐다.

연세대 음대 교회음악과에서 합창지휘를 전공하고, 미국에서 합창지휘로 석사 박사까지 공부했고

현재 서울코랄소사이어티 지휘자다.

첫 곡 William Byrd 의 Sing Joyfully 는 합창단과 포지티브 올갠 연주자만 무대에 올랐다.

이 곡은 아카펠라 합창단들이 주로 연주하는 레퍼터리다. 

흥겨운 멜로디에 단원들의 볼륨을 양껏 키울 수 있어 큰 무대의 첫 곡으로는 아주 제격이다.

보통 모텟곡들을 연주할 때 앵콜곡에 포함 시키면 좋을 것 같다.

두 번째 곡 Ave Verum Corpus는 내가 이전에 다니던 합창단에서 공연을 했던 곡이다.

그래서인가? 참 오랜만에 들어 보는 노래인데 거의 완벽하게 가사와 내 파트인 테너의 선율까지 

머리에서 그대로 떠오르며 속으로 흥얼거리고 있다. 

이 노래는 내가 탈리스 스콜라스 합창단의 화음에 빠져 있을 때 무척 많이 듣던 곡이다.

직장 다니던 시절, 직장 상관이 대단한 클래식 매니아였다.

내가 이런 고음악을 좋아한다고 얘기하니 자신이 가지고 있던 탈리스 스콜라스 합창단 CD 전집을

모두 테이프로 녹음하여 라벨링과 곡의 제목을 모두 인쇄하여 카바까지 만들어 내게 주었던 그분의 정성을 잊지 못해

어느 날 가지고 있는 모든 음악 테이프를 모두 처분했어도 이건 테이프 레코더가 없어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이변이 생겼다.

대개 곡을 끝내면 지휘자가 잠시 쉬었다가 뒤돌아서서 박수를 받고 다시 다음 곡을 연주하는 편인데

다음 연주되는 곡은 다른 사람의 곡임에도 바로 인사도 받지 않고 연주를 시작했다.

Orlando Gibbons의 Drop, Drop, Slow Tears.

아마 곡의 흐름과 분위기가 앞에 연주한 곡과 너무 비슷하고 곡이 짧아, 

그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지휘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소프라노의 청아한 멜로디가 참 인상 깊었다. 

합창단의 무대가 끝난 후,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의 단원 중 단 4명만 나와 

헨리 퍼셀의 파반느 g단조와 샤콘느 g 단조를 올갠과 연주했다. 

악기들이 모두 정통 고악기들이다.

1st 바이올린, 2nd 바이올린, 비올 그리고 첼로. 

고악기라는 것은 바이올린의 활을 보고 알 수 있고, 첼로는 악기 밑에 엔드핀이 없는 걸로 안다.

고악기들은 유난히 튜닝이 힘들다. 가끔 그런 의심을 갖는다.

그렇게 튜닝이 어려운데 연주 중에 음이 내려가면 어쩌나 하는...

그런 우려가 맞았는지 인터미션후 마지막 스테이지 악장 중간에 바이올린 연주자 한 명이 무대뒤로 사라졌다가 다음 악장에 돌아와 앉았다.

막 연주를 시작하려는데 어디선가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혹시 이것도 설정인가 하고 멈칫했는데

알고 보니 누군가 대기실에서 바이올린으로 연습을 하는 소리였다.

악장이 얼른 뒤로 나가니 관객들이 웃었다.

조용히 시키고 나오며 미안한 기색을 보이니 관객들이 웃으며 다시 한번 박수를 터트렸다.

춤을 추는 경쾌한 리듬이 이상하게 슬프게 들린다. 

당시 영국의 찰스 국왕은 이런 현악기의 음악을 좋아했다.

영국의 과거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에서는 궁중에서 파티가 있을 때 늘 이런 음악이 흐른다.

그래서 파반느를 들으면 머리에 치장을 한 남녀들이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찬란한 무늬가 있는 궁전에서 원형 대형으로 서로 파트너를 바꿔가며 춤을 추는 영상이 생각난다.

다음은 헨델의 궁정악장 시절에 작곡한 

Ode for the Birthday of Queen Anne 중 Ethernal Source of Light Divine 

(앤 여왕의 탄신일을 위한 찬가)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의 모든 악기가 총출동했다. 

바이올린 5, 비올 1, 첼로 1, 트럼펫, 포지티브 올갠과 쳄발로까지...

문득 서서 연주하는 트럼펫 주자의 바지가 눈에 거슬렸다. 

검은 셔츠만 입고 양복을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바지에 주름이 서 있지도 않았고

구두도 광이 안 나는 편한 구두였다. 

그래서인가 연주 중 자꾸 트럼펫의 음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트럼펫도 물론 현대 악기 트럼펫이 아니고 고음악 악기였다.

따라서 현대 트럼펫 같은 아주 맑은 음색이 아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카운터 테너 정민호의 솔로도 있었다. 

첫 곡에의 그의 멜로디가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는데

두 번째 곡인 오페라 Serse 중 Se bramate d'amar chi vi sdegna에서는 그의 노랫소리에 폭 빠져 버렸다.

이 오페라에 삽입된 유명한 곡인 'Ombra mai fu' 는 널리 사랑받는 곡이다. 

슬픔을 노래하는 그의 표정은 정말 눈물이 뚝 뚝 떨어질 정도로 간절했다.

그는 관객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인터미션 후 헨리 퍼셀의 곡 Hear My Prayer 외 2곡 연주에 합창단 전체가 무대에 올랐다.

반주는 포지티브 올갠과 쳄발로뿐. 

두 악기의 음색이 크지 않기에 완전히 목소리로만 연주되는 합창이다.

소프라노 솔로의 참 아름다웠고, 지휘는 수려했으며, 커다란 키에 표정은 밝고 활기찼다. 

마지막 스테이지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모두 나와 오늘 연주의 타이틀곡인 

헨델의 Dixit Dominus 가 연주되었다.

전체 9곡으로 되어 있는데 첫 곡은 

내가 가지고 있는 바로크음악 모음곡 CD의 첫 곡이기에 수없이 많이 듣던 곡이다.

마치 파이프올갠의 음같이 끊김 없이 이어지는 합창에 폭 빠져 있는데 문득 테너 파트에서 약간 

색깔이 다른 소리가 나온다. 작곡가의 의도된 플랫음일까?

연주 중 갑자기 악장 옆에 있던 바이올린 연주자가 급히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한곡이 끝난 뒤 다시 나타났다.

내가 앉은 위치가 악장과 비스듬하게 있어 이유를 몰랐는데

딸에게 들으니, 연주 중 악장의 바이올린 현이 끊어져 얼른 옆에 있는 단원이 

자신의 악기를 악장에게 넘기고 악장의 바이올린을 들고 나가 현을 교체한 뒤

다시 나온 것이라 한다. 

악기를 다시 받아 든 악장에게 지휘자가 눈짓을 한다. 

계속 연주해도 되겠느냐며..... 고개를 끄덕이고 연주는 계속되었다. 

언젠가도 이런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고음악의 향연에 푹 빠져 버렸다. 

할 수만 있다면 류트 같은 다른 고음악 악기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희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