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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국제영화제 (BIFAN)자원봉사 후기

carmina 2022. 8. 6. 10:51

2022년 7월 초순부터 시작된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BIFAN)를 위한 자원봉사를 약 열흘 동안 근무하고 

대개 내 블로그의 성격상 후기를 바로 써야 하는데 혹시나 조심스러워서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 수그러들 즈음에 쓰기로 했다. 

부천에서 살기 시작한 지 30년. 

처음에 모집공고를 확인했을 때 이전부터 부천국제영화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는 것은 알았었다.

혹시 내가 봉사자로 참여할 부분이 있을까 하고 모집 부문을 보니 

외국에서 오는 영화 관계자들을 공항에서 안내하는 파트가 있어 

88서울 하계 올림픽과 평창동계올림픽의 자원봉사 경험을 살려 

이제는 시간이 많으니 이 행사에 봉사하고자 신청 양식에 맞추어 작성하여 이메일로 지원했다.

그러나 내가 지방 여행 중 제출한 양식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며 

계속 수정을 요청하기에 보내주었으나 여행 중 작성한 서류라 사인이 안되었다고

접수기한이 연장되었으니 집에 오면 다시 작성을 부탁하기에 재 송부했고 이후 면접일정도 잡혔다.

면접 보는 부천시청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청년들.

젊은 남녀 2명의 면접관이 신청자 3명을 동시에 면접을 한다. 

내 양옆에 젊은 두 명의 아가씨.

혹시라도 외국어 테스트를 해 볼까 봐 머리로는 내 경험에 대한 스토리를 구성해 놓았다.

그러나 그런 테스트는 요구하지 않았지만 내 옆에 아가씨는 적극적인 성격인지

준비한 외국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며, 독일어로 몇 분간 이야기했다.

최종적으로 합격 통보를 받고, 발대식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부천 시청의 2층 강당으로 찾아갔더니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2벌의 붉은 셔츠 유니폼을 받고 등록하기 위해 길게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그 무리를 둘러보아도 모두 젊은 남녀들뿐. 

30대~50대까지로 보이는 이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강당은 온통 붉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젊은이들이다.

발대식을 진행하는 이들은 조금 연상으로 보였고, 

이번 영화제의 모토가 'Stay Strange' 즉 '이상해도 괜찮아'라며

이번 영화제의 성격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여 주는데 

내가 이제까지 살면서 보았던 수많은 영화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영화 내용이 정말 '이상했다.'

그걸 보면서 내가 하는 일이 영화 내용과는 상관없는 봉사라고 생각했다.

영화제의 여러 개의 봉사팀 중 내가 맡은 팀은 초청팀으로 공항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스케쥴이 편성되었다.

내가 했던 일이라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 봉사가 시작되기 전날, 시간이 되는 초청팀은 작업을 할 것이 있다고 

시간이 가능한 사람은 하루 전에 시청에 모여달라고 해서 찾아갔더니

영화제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선물 꾸러미를 몇 천 개를 만드는 일이었다.

몇 개의 작은 물건들을 큰 쇼핑백에 담는 일.

모두 처음 보는 서먹한 관계였고, 일을 지시하는 사람도 어떻게 할지 생각을 못 하고 있기에

내가 일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작업 대형을 갖추고 일사불란하게 작업 시작.

낮부터 시작한 일이 마치 톱니바퀴같이 쉼 없이 돌아가야 하는 일이라 모두 지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일을 시키면 아무리 봉사시간을 계산해서 준다지만 

물이나 간식이라도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작업을 시키는 사람도 고용주나 직원이 아니라 생각을 못 하고 있고 

모두들 처음이라 눈치를 보며 아무도 잠깐 쉬고 하자는 이야기도 없기에 내가 나서야만 했다. 

휴식하자 하고 내가 얼른 밖으로 나가서 아이스크림콘을 사다 나누어 주니 무척 좋아하며

그때부터 서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앉아 시작한 작업은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다.

남자 청년들이 조금 적극적으로 힘을 쓰는 일에 보탬이 되었다.

그렇게 일을 끝내고 그 수많은 선물 꾸러미를 수고했다며 작업한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줄 법도 한데 그마저 생각하지 못한 채 그날 일을 끝냈다.

귀가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며 청년들이 슬쩍 불만을 보이기에 내가 치맥하자고 모두를 불러 세웠다.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만날 사람들이라 친숙해지는 과정에 역시 술이 있어야 했다.

나는 주로 듣고 그중 얘기하기 좋아하는 청년들이 대화를 주도하며 밤늦게까지 웃고 떠들었다.

다음날부터 이어진 공항 영접 봉사.

사전에 맡은 일에 대한 교육은 없었고, 업무 매뉴얼은 모두 카톡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하는 일을 안내하고 현장에서 지휘할 줄 알았는데

공항에 마련된 부스에는 달랑 봉사자들만 있었다.

또한 업무 매뉴얼조차 카톡으로 보냈으니 그걸 보고 각자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단, 공항으로 출퇴근하기 위한 교통카드는 미리 제공되었다. 

하는 일은 미리 손님의 항공 스케줄을 확인해 해당 게이트에서 

BIFAN이라고 크게 써 붙인 피켓을 들고 기다렸다가 만난 후, 

공항에 마련된 코로나 검사소에서 PCR 검사를 마치고

진행팀에서 준비한 택시를 태워 부천으로 보내는 일이다.

그런데 이 절차의 과정을 매번 카톡으로 부천에 있는 본부에 보고해야 했다.

손님 만났고, PCR 검사를 했고, 운전기사 XXX (폰번 포함)가 택시 번호 XXXX를 타고 떠났다고..

마지막 과정이 끝난 후에 한꺼번에 보고해도 될 일을 

왜 이 과정을 매 단계마다 보고하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손님이 이용하는 택시도 모두 부천에서 영업하는 차가 와서 기다리는 것이라

손님이 늦게 나오면 공항 주차요금을 내야 한다는 이유로 

인천대교 입구의 임시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연락하면 먼 공항으로 달려오는 절차라

손님들이 택시를 20분 이상 기다리는 불편이 자주 있었다. 

초기에 업무 매뉴얼과 손님들의 사진이 있는 스케쥴들을 카톡 사이버로만 주고 받다 보니

늘 폰에만 매달리고 카톡 내용이 많으니 오래전에 온 매뉴얼과 손님 정보를 찾으려면 

계속 카톡 내용을 거슬러 올라가 보느라 불편해

개인적으로라도 보려고 집에서 업무 매뉴얼을 출력해 공항 부스에 비치해 놓았고

당일 도착하는 손님들의 리스트를 공항 가기 전에 집에서 프린터로 출력해서 업무를 보니 무척 편했다. 

가장 큰 불만은 새벽에 도착하는 손님들이었다.

그들을 영접하기 위한 봉사자들은 내정되었지만

전철이나 버스 등의 대중교통도 없는 그 새벽에 어떻게 공항까지 가야 한다는 안내나

택시비 실비 정산을 해 준다는 조건이 없었기에

봉사자들의 불만이 처음부터 불거져 나왔다.

어느 날 내게 새벽 4시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 근무가 배정되었다. 

다행하게도 나는 그 시간 부천에서 출발하는 영접 차를 타고 공항을 갈 수 있었다.

공항에는 스탭들이 하나도 없으니 누구도 봉사자들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지 못하기에

가끔 내가 공항 마트에서 간식을 사다가 같이 근무하는 이들에게 주기도 했다. 

그런데 부천 시내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일 간식이 주어지는데

공항 근무자들은 아무것도 없다며 또 불만이 터졌다.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하루는 빨랐다.

늘 2~3명이 한조가 되는데, 때론 예정되었던 손님들이 동시에 몰려올 때가 있다.

그것도 게이트를 달리하니 마구 뛸 수밖에 없었고,

어떤 이들은 왜 이렇게 택시가 늦게 오느냐며 불평하기도 했다.

택시 기사들은 늘 친절했다. 

아마 평생 온갖 진상 손님들을 마주하는 분들이니 이 정도면 최고의 고객이다.

그것도 장거리이니... 비록 요금은 회사에서 한꺼번에 정산하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큰 봉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손님이 차에 오르면 드릴 차가운 물병도 물기 없이 깨끗이 씻고, 자리도 다시 한번 정리했다. 

공항에서 근무하는 기간 내내 일찍 출근해서 상황을 파악했고

혹시나 비행기가 지연되어 예정된 근무시간보다 늦게 끝나는 일정이 생기면

젊은이들은 시간 맞추어 보내고 나 혼자 남아서 다 임무를 수행하느라 

아주 늦은 시간에 집에 오는 날이 몇 번 있었다.

때로는 내 근무일이 아닌데 인원이 부족하다며 혹시 나올 수 있느냐 하기에 

예정에 없던 스케쥴을 소화하기도 했다. 

그런 내 노력을 청년들이 알고 있었던지 누군가 내게 

'선생님이 봉사자들 사이에 핫피플이에요'라며 카톡으로 알려 주었다. 

공항 영접은 입국 시에만 하고 출국 시에는 하지 않으니

영화제 후반에는 영접 팀들이 호텔 근무를 시작했다. 

호텔은 주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주위에 몰려 있었다.

이제껏 부천 살면서 그 앞을 지나치기만 했지,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골목에서

적어도 4성급 호텔들이 몇 개 있었고, 그 로비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손님들의 각종 애로사항들을 해결해 주고 있었다.

영화제 기간 동안 극장이나 행사장 등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야 하는데 

가야 할 장소를 묻는 손님들이 있었고, 

주최 측에서 주관하는 여러 프로그램의 행사장을 묻는 손님들이 있었지만

공항 팀에 있다가 호텔에 온 내게는 그런 장소조차 사전에 전해 들은 바가 없어서, 

기존 봉사자들 없이 혼자 근무했었더라면 결례를 범할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들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었다.

어느 날 저녁 근무를 마치고 평소 자주 같이 일하던 청년 두 명과 간단히 맥주를 하고 나오는데

먹자골목 광장에 국적이 다른 수없이 많은 외국인들이 한꺼번에 몇 개의 팀으로 무리 지어 

거대한 치맥 파티를 하는 것을 보고 영화제를 통해 이런 한류가 전해진다는 느낌에 소름이 살짝 돋았다. 

그렇게 내가 맡은 봉사 업무는 끝이 났지만 영화제는 이틀 뒤에 최종 마무리되었다.

이후 해단식은 어느 예식장의 뷔페 홀에서 열렸는데, 이제는 모두 얼굴을 잘 아는 사이들이라

거대한 축제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특별히 돋보이는 봉사자들을 시상하고, 각 팀별로 단체사진도 찍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는데 영화제의 총 책임을 맡은 분이 내게 오더니 명함을 건넨다.

아마 모두 검은 머리 중 유난히 머리가 흰 내 모습을 확인한 것 같다.

조금 지난 후 행사 내내 커다란 카메라로 시상식을 비롯한 여러 장면들을 찍던 사진사가

내게 와서는 나를 인터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내 사진이 필요하다고 조용한 곳에 가서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하더니 나를 밖으로 불러 내, 조용한 홀에서 앉아서 혹은 서서

내 사진을 여러 가지 포즈로 몇 장 찍었다. 그러고는 그뿐. 이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발대식에도 그랬지만 해단식에도 봉사자들 중 어른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공식행사 후 뷔페로 즐기는 저녁식사에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 역력했다.

서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떠들고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그들의 대화에 섞이지 못하는 나는 슬며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며

그중 성실하게 근무했던 믿음직한 젊은이 두 명에게 가끔 연락 달라고 당부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