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지리산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1코스 (주천 ~ 운봉간)

carmina 2009. 8. 31. 20:33

 

1차 기행 (주천-운봉-인월-금계)

 

갑자기 찾아온 며칠의 휴가. 누구는 히말라야 트래킹을 권했지만 준비 안된 일정이라 평소 염두에 둔 국내의 지리산 둘레길 트래킹으로 결정했다. 제주도 올레길이 유명해 지면서 지리산 둘레길도 붐을 타서 지난 한 해 무려 10,000 명이 찾았다는 코스.

지리산, 너무 멀어 늘 생각하지 않았던 곳이고 이제 중년의 배도 나와 천황봉을 찾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 늘 아쉬웠는데 둘레길 코스에 관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너무 아름다워 이번에 안 가면 무척 후회할 것 같았다.

지리산의 북반구를 도는 코스로 전체 약 70키로. 남원으로 해서 들어가거나 혹은 반대편 산청으로 해서 들어간다. 전체 5개의 코스가 있는데 등산에 자신이 있고 걸음이 빠른 사람들은 2박3일 걷기도 하고 혹은 3박 4일 혹은 구간별로 분리해 걷기도 한다. 나름대로 2박 3일 완주를 계획하고 떠났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 이제부터 떠나볼까?

부천에서 남원에 도착, 우선 전라도 음식을 먹고 싶었다. 여기 저기 몇 군데 기웃거리다가 신발 많은 곳을 택해 들어가 수육보쌈을 시켰는데 흠~~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맛있고 푸짐한 반찬들, 역시 음식은 전라도야.. 근데 난 전라도 출신 아내랑 사는데 집에선 왜 이런 맛을 못 느낄까?

정보에 의하면 남원에서 둘레길 출발지점인 주천까지 버스는 자주 없지만 택시로 가면 6000원 정도 한단다.  뭐 이정도야. 택시를 탔다. 진한 전라도 사투리 기사아저씨. 둘레길 출발코스로 가자 하니 잘 모르겠다는 표정. 아직 홍보가 덜 되었네. 뭐 하러 혼자 그런 곳을 갈려 하느냐며, 하긴 요즘은 아가씨 혼자 밤에 지리산 혼자 등반하고 내려 오더라며 이해하는 말투.

택시비는 6,200원나왔는데 6,000원만 내란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꼭 시집간 딸 시댁에 돌려 보내는 마음 같아서 불안하다고..아이고 아저씨. 그 마음이 고맙기도 하지.. 택시에 내려 출발 지점을 찾는데 지나는 사람도 없어, 여기 저기 둘러보다가

동사무소에 들어가니 군복 입은 공익근무요원인지..둘레길 출발점을 물으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다. 파출소는 문이 잠겨 있고.. 인근 식당에 물으니 가르쳐 준다. 하긴 볼일만 보는 동사무소나 파출소보다 식당은 많은 사람이 와서 즐겁게 이야기하는 곳이라 정보가 많다.

인터넷에서 익히 보던 나무 팻말. 빨간색과 검은색 화살표. 한 색깔만 정해 가면 된다. 빨간색은 주천에서 수철까지..검은 색은 수철에서 주천까지를 나타낸다.

햇빛이 뜨겁다. 가다가 선크림을 덕지 덕지 바르고 다시 출발.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마을 길로 접어 들고 길이 갈라지는 곳엔 여지없이 둘레길 표식이 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아줌마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보아 왔는지 눈인사를 나눈다. 논과 논 사이의 작은 개울을 지나 햇빛이 너무 강해 온통 하얗고 작은 돌이 깔린 길을 터벅 터벅 자신 있게 걷는다.

마을을 지나 차가 다니는 큰 길에 차만 쌩쌩 달리고 사람은 흔적이 없다. 조금 가니 멀리서 나 같은 복장의 아저씨와 아들이 마주 오고 있다. 반갑게 지나치며 물으니 실상사에서 온단다. 실상사가 어디지? 어쨌든 격려의 말을 나누며 헤어지고 표식은 도로에서 내송마을로 가라고 한다.

밭일하는 할머니에게 인사도 하고 집 앞에서 담배 피는 할머니에게 인사하니 금방 돌아오는 답변이

"겁나게 높아 부러, 천천히 올라가."

"네. 땀 좀 흘리면 되죠."

그렇게 간단히 웃으며 답했는데 그게 얼마나 힘들었던 일인지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계속 걸어갔을까?

구비 구비 논과 고추 밭 사이를 지나고 내 앞을 벼룩처럼 튀어가는 메뚜기과. 내 눈앞에 얼쩡거리며 쌍으로 붙어 다니는 잠자리들과 친해질 무렵, 어느 순간 세멘트 도로가 끝이 난다. 흙 길이 시작되는 옆 큰 나무 밑에 작은 평상을 해 놓았다.

'쉬라고 해 놓았으니 힘들지는 않지만 쉬자' 하고 잠시 여유부리고 가파른 길을 올라간다. '왜 이렇게 힘들지?'하고 인터넷에서 복사해 온 약도의 등고선을 보니 아홉 마리의 용이 놀았다는 구룡치까지 거리는 2키로 밖에 안 되는데 고도는 무려 600미터. 이 정도 높이 쯤이야... 하고 올라가다가 목이 말라 배낭 옆에 끼워 둔 물병을 찾으니 '어 이런 물병이 어디 갔나?' 어디론가 사라진 물병. 당시만 해도 그게 생명수인줄 몰랐다.

뭐... 참고 올라가지 하며 올라가는데 햇빛은 뜨겁고 갈증이 심해진다. 그때부터 가슴이 조마 조마 해진다. 지나치는 사람도 없는데 이러다 갈증이 심해지면 어쩌나..  강박감이 밀려온다. 이때부터 입술이 바작 바작 마르고 힘이 든다. 쉬는 빈도도 많아지고, 거친 호흡이 입은 물론 귀로도 내 뱉어짐을 느낀다.

구세주 발견, 아가씨 둘이 내 뒤를 따라오기에 물 한 모금 적선. 같이 가자 하다가 내 다리의 힘이 풀릴 대로 풀어져서인지 아가씨들을 따라가지 못하겠다.  나 혼자 뒤에 처지고, 또 쉬기를 몇 번. 도무지 힘이 들어 쓰러졌다. 깜빡 잠이 들었나? 아니면 기절 했나? 사람이 너무 지치면 구역질까지 나오는걸 이번에 처음 경험했다.
 발 소리가 들린다. 얼른 눈을 뜨고 나를 스쳐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물 동냥. 그렇게 하기를 몇 번. 결국은 어떤 청년이 자긴 내려가는 길이라 물 필요 없다며 나에게 물통째 주고 간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그러나 그 작은 물병의 물도 몇 모금 마시니 또 방울만 떨어진다. 다행히 조금 가니 시냇물 발견. 설마 이런 곳의 물이 더럽진 않겠지. 그 시냇물이 얼마나 달콤한지..

구룡치 정상에 올라왔는지 평평한 길이 나오더니 다시 높아진다. 그러나 내 손에 물병이 있으니 안심이 된다. 조금만 더 가면 되겠지. 허위 허위 올라가다가 언덕위로 밝은 하늘이 보이면 저기가 정상이구나 하고 올라가다 보면 다시 그 길은 좌나 우로 꺾어져 또 다른 언덕이 보인다. 도무지 힘들어 포기할까 하다가 마지막 힘을 내어 몇 미터 앞을 오르니 드디어 구룡치 정상.

하나님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쩌다가 내가 이 곳에서 사경을 헤매게 두셨는지요? 내게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하도록 유도하신 건가요?

구룡치 정상에서부터는 거의 평탄한 길의 연속. 이렇게 행복할 수가.. 이게 트랙킹이라니까.. 둘레길이 처음부터 나를 너무 고생시켰어. 그러나 이런 비슷한 코스는 여행 내내 나를 실망시켰다. 얼마나 고개길이 많은지..

구룡치를 지나 '사무락다무락'이란 지명이 있는 이정표가 있다. 길을 가는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마음에 돌을 하나 둘 던져 쌓아놓은 곳. 말의 어감이 참 좋다.

둘레길 코스는 걷는 사람에게 가능한 포장도로를 걷게 하지 않는다. 일부러 조금 돌아서라도 흙 길을 밟게 하고, 숲길로 들어가게 한다. 논두렁을 지나고, 산소 옆을 지난다. 분명히 뻔히 보이는 직선 아스팔트도 여지없이 도로 표시 판은 옆의 자연으로 들어간 길로 나그네를 인도한다. 때로는 나무로 표식을 해 두었고 때로는 도로 바닥에 삼각형으로 표시해 두어 길을 잃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숲 길에 밤송이가 떨어져 있고, 두더지가 지나간 듯, 흙이 파헤쳐져 있으며 두더지가 드나드는 구멍인 듯 흙 길에 구멍이 나있다. 지천으로 도토리가 널려있고 논 둑의 콩 나무에 이제 콩들이 열리고 있고, 깻잎들이 싱싱하게 살아있다.

어느 정도나 더 걸었나 언덕을 넘으니 마을이 하나 보인다. 지도상으로 회덕마을. 마을을 들어서니 허물어져 가는 집의 벽 아래 예쁜 꽃이 너무 아름답다. 마을에서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수를 사먹고 싶어 가게를 찾으나 보이지 않는다. 길 옆의 주택을 들어갔다. 문간에 신발이 많고 마루에 사람이 많다.

"혹시 이 근처에 가게가 있는지요?"

"여긴 가게 없어요. 뭐가 필요하신데요?"

"시원한 쥬스나 콜라를 사먹고 싶은데..."

"여보 우리 냉장고에 콜라 있지? 그거 좀 가져와"

이렇게 감사 할데가.. 빈 물병을 내 보이며 물 좀 얻을까 요청했더니 마당에 냉장 장치가 되어 있는 콘테이너 박스의 큰 주전자에서 자기들이 마시는 오미자차인데 이걸 드시라며 내 마음에 정을 퍼부어 주신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이런 정이 있으니..

자. 이제 콜라도 한잔 마셨겠다. 물도 가득 채웠겠다. 시간을 보니 오늘 도착 예정지인 행정마을까지는 거리상으로도 그리 멀지 않고 등고선도 거의 평평한 상태다.

 

길가의 산소 옆에 큰 나무 하나가 긴 그늘을 만들어 놓았다. 바람도 시원하니 우선 쉬자. 나무그림자에 내 몸을 감추고 잠깐 누웠는데 잠이 솔솔..눈을 떠보니 10분 정도 잔 것 같다.

길을 가자. 람천이라는 이름의 작은 개울 뚝을 따라 걷는다. 왜 "람천"이라 했을까?  '람'이란 말을 첫말로 쓰기가 흔치 않은 일인데.. 길이 두 갈래로 보이면 여지없이 보이는 이정표. 난 오늘 빨강나라로 간다.

노치라는 마을을 지나는데 물이 떨어졌다. 도로변 마을 입구에 앉아 쉬다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꼬마에게 가게를 물으니 이곳엔 없고 운봉에나 가야 한단다. 걸어가면 한 시간 반이고 뛰어가면 한 시간이면 된단다?

"뛰어가? 거길 어떻게 뛰어가?"

"가끔 뛰어 갔다 오기도 해요" 황영조의 자손들인가?

 물을 얻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문 앞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집에 들어가 물 좀 얻자 했더니 허리가 다 꼬부라진 할머니께서 마당의 수도 꼭지를 틀고는 잠시 기다리라 한다. 지하수라 차가운 물을 마실려고 하면 물을 빼야 한단다. 나그네에게 시원한 물을 주고 싶은 마음. 우리네 선조들처럼 나그네에게 주는 물 바가지에 버들잎 하나 띄어 주는 마음인가? 그 마당에 옥수수도 말리고, 깨도 말리고, 빨간 고추도 말려지고 있다. 물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얻은 것 같다.

멀리 지리산의 서북능선이 보인다. 아마 저기쯤에 봄이면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바래봉이 있을 거야. 다시 논길로 가다 보니 오른쪽에 커다란 저수지가 보인다. 덕산 저수지. 그런데 물가로 내려가기에는 너무 언덕이 가파르다. 내려가는 것 포기하고 논의 파란 벼가 익어가는 논둑 길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한 쪽만 타고 가는 꼬마가 멀리 보이기에 손을 흔들었더니 마주 흔들어 준다. 가장마을로 가는 길에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다리 모퉁이에 누군가 호박을 잘라 말리고 있다. 이렇게 길바닥에 널어 놓아도 누구네 집에서 이렇게 하는지 다 아는 걸까? 혹은 내 것이 아니면 건드리지 않는 아름다운 인심일까?

 멀리 직선으로 보이는 길 앞에 큰 숲이 보인다. 아름드리 나무가 빼곡한 곳에 그토록 보이지 않던 둘레길 나그네 4명이 보인다. 그것도 모두 아가씨. 나무에 길게 드리워진 그네에서 아가씨들이 놀고 있다.

"여보소. 여기 한양에서 온 몽룡이 왔소. 그대가 춘향이오?"

"우리요? 경기도에서 왔어요."

"그건 그렇고 낭자. 내가 이제껏 혼자 길을 걷느라 무척 사진에 목말라 하고 있으니 나 사진 좀 찍어 주오."

춘향 아씨들은 내가 온 길로 배낭 메고 가고 나는 그들이 온 길로 가기 위해 배낭을 들쳐 멘다. 그 숲 속에 작은 화장실이 앙증맞게 들어서 있다.

눈 앞에 보이는 행정마을. 오늘 내가 묵어야 할 민박집이 있는 곳이다. 원래 운봉마을에 묵기 위해 예약전화 했더니 예약이 꽉 찾는지 행정마을을 안내 해 주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목공예 하는 집. 이층 집 앞에 체육 소공원이 있고 잘 다듬어진 잔디에 등나무 아래의 의자도 여유 있다. 얼굴이 검게 그을린 아저씨가 잘 찾아 왔다며 방을 안내한다. 이미 한 가족이 먼저 와 있단다. 가족들이 쓰는 방을 오늘 잠시 나에게 빌려 준다.

아저씨에게 혹시 막걸리 살 수 있느냐 했더니 친히 사 오신다. 아줌마께서 부엌에서 즉석 안주를 만들어 오신다. 오이와 양파를 썰고, 시골 된장에, 큰 토마토와 소금. 나보다 먼저 와 있는 가족을 불러 같이 막걸리를 즐겼다. 그리고 그 들이 준비한 소주도 같이 즐기며..저녁밥 나올 때까지 통성명도 없이 그 가족들과 이야기를 즐기고 저녁상을 받으니 시골 반찬들. 돼지제육볶음에 깻잎과 상치를 내 왔는데 깻잎과 상치가 금방 밭에서 따 온 듯 싱싱하다. 깻잎이파리의 선이 마치 건강한 남자의 핏줄처럼 툭툭 튀져 나와 있다.

식사를 하고 티브이를 보고 있기에 난 내 방에 와서 책을 읽다가 밖으로 나왔다. 서울에서는 비가 많이 온다는데 지리산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하늘에 보이는 무수한 별들.. 아...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보이고, 북극성과 카시오페아 그리고 오리온자리가 보인다. 이 별들을 본지가 언제던가. 고개가 아프도록 별을 쳐다 보았다. 은하수를 찾아보기도 하고, 그럴 듯한 이름의 별자리이름도 생각해 보았다. 별을 보느라 밤이 깊도록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성과라면 이렇게 무수한 별자리를 본 것이라 해야 하나?

이튿날 아침 지난 밤에 혹시 모기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내 몸을 보니 모기에 물린 흔적은 없다. 어제 조금 부실한 반찬과 많이 먹지도 않는 아침을 돈 주고 먹는 것은 낭비일 것 같아, 아침을 안 먹겠다고 했더니 어제 남은 밥과 국으로 무료 서비스할 테니 먹고 가란다. 그거야 마다할 이유가 없지.

비가 부슬 부슬 내린다. 부천에는 아직도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이런 부슬비 정도야 맞지 하고 길을 떠난다. 가끔 큰 길로 차가 지나가고 등교하는 여학생 하나가 큰 길에서 Thumb Picking하며 지나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다.

행정마을에서 운봉마을까지 약 2.2킬로. 뭐 이 정도야 가뿐하겠지. 논 뚝 제방 길을 따라 걷는다. 오는 코스는 비교적 편할 것이라는 민박집 아저씨의 말에 마음은 무척 여유롭다.

강한 바람에 모든 풀잎들이 자세를 낮춘다. 비켜갈 것은 비켜가야지. 어제 깨끗하게 보이던 지리산의 모습도 오늘은 멀리 있는 산은 희미한 구름에 신선들이 사는 곳의 모습을 그린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아무도 없다. 내 앞에는 어제도 나랑 같이 놀던 메뚜기들, 잠자리들, 벌레들.. 길은 곧고 나그네의 발길도 곧다. 아무도 지나가는 이가 없으니 이렇게 걷고 있는 내 모습을 사진 찍어 주는 이도 없어 손을 뻗어 내 모습을 찍어 보려 하나 영 마음에 안 든다.

논 뚝 길 옆 조그만 연못에 오리들이 아침 산책을 즐긴다. 세상은 혼자 있어도 절대 혼자가 아니다. 나에게 생명주신 이가 늘 나와 같이 있고, 그 분이 창조한 모든 만물들이 내 주위에 머물고 있다.

이런 곳에선 장미보다, 백합보다 아름다운 것이 호박꽃이고 구절초이고 흔히 자라는 맥문동과 닭의장풀, 벌개미취, 등등.  늘 길가의 꽃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지만 이름을 알고 보는 것과 이름을 모르고 보는 야생화의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내가 김춘수의 이라는 시를 좋아한다. 총각시절 한 번 외워 두었던 이 시를 나는 아직도 즐겨 암송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것처럼
나의 빛깔과 향기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정표는 나를 양모사업장으로 안내한다. 많은 나무와 화초들이 가지런히 심어져 있다. 약용식물, 염료식물, 향료식물, 식용식물 등으로 구분해 놓은 넓은 양묘원 나무들도 여러 가지를 줄지어 심어 놓아 갖가지 나무들을 쉽게 구분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가을쯤 에는 이 곳에 무성한 꽃의 잔치를 볼 수 있을려나. 직은 제대로 된 꽃의 파티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며 가다 보니 큰 마을이 앞에 보인다. 나그네를 위한 지리산 둘레길은 늘 바닥에서 길을 안내하는데 내 눈 앞에 보이는 커다란 이정표는 차량을 위한 것. 남원과 함양 가는 24번 국도.

운봉마을은 내 어릴 적 우리 동네 같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이용원간판, 다방 등.. 이른 아침에 아직 문을 연 가게가 거의 없지만 벌써 장사를 시작한 곳이 있다. 방앗간. 어린 시절 유난히 형제가 많았던 우리 집에 어머니는 자녀들의 생일이면 어김없이 떡을 하셨다. 단 내 생일을 제외하곤..  내 생일은 구정 며칠 뒤에 있어 굳이 새로 떡을 할 필요가 없고 구정 때 먹고 남은 떡을 데워 먹으면 되었으니 형제들이 많다 보면 그런 불이익도 있다. 모두 형님들 옷을 물려 입기에 내 옷을 사 입는 것은 극히 드물다.

방앗간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방앗간 내부를 들러 보았다. 밤새 물에 담가 놓았던 하얀 쌀을 머리에 이고 방앗간에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 가면 그 쌀들은 하얀 눈가루가 되어 나오기도 하고 뜨거운 김과 함께 하얀 떡가래가 두 줄로 쏟아져 나오면 가위로 싹둑 잘라내는 그 민첩한 손놀림.  ! 불현듯 어머니가 보고 싶다.

그렇게 운봉마을에서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으며 지나다가 마을 끝에서 그만 나는 길을 잃었다. 분명 이렇게 여러 갈래 길이 있으면 둘레길 이정표가 있을 텐데 아무리 둘레 둘레 찾아보아도 낯익은 나무표시나 길바닥에 빨간 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적막한 마을을 보다가 운봉 다음 목적지인 인월 가는 길은 이미 차를 위한 이정표를 통해 알고 있으니 걷자 하고 대로를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둘레길 만든 이는 이렇게 길게 뻗은 차량을 위한 길로 나그네를 인도하지 않을 거야. 무엇인가 잘 못 되었다. 지도를 펼쳐 들고 한 참을 서서 생각해 보았다. 도로를 따라 나란히 달리는 길이 저 편에 보인다. 아마 길을 걸어야 한다면 저 곳 일거야. 아니나 다를까. 그 곳으로 가다 보니 저 편에 둘레길 이정표가 보인다. 얼마나 반가운지.

운봉마을 중간쯤에 이 곳으로 오는 길이 이정표가 있었을 텐데 내가 동네 풍경에 취해 이정표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그런 나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두 개의 마주보는 돌장승. 아마 겉으로는 저렇게 무표정하게 있을 테지만 속으로는 나를 보고 웃고 있으리라.

다시 뚝방 길을 간다. 앞으로 뒤로 쭉 뻗은 길인데 시야에는 멀리 마을만 보일 뿐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혼자 노래하며 나그네는 즐거워한다.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피아노’에서 바닷가 파도와 놀던 어린 여자 아이 처럼

길가의 호박 잎 사이에 영근 잘 익은 호박 하나. 누구의 소유물일까? 아니면 자연의 것인가? 배 고픈 이들은 누구나 저걸 따다 먹어도 되는 건가?

넓은 벌판에 벼가 익어간다. 도로와 넓은 논 사이에 있는 뚝방 . 길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은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 내가 갈 길은 아마 저 산 너머일 것이다.

그런데 뒤가 급하다. 이미 지나쳐온 마을도 한참 멀고, 다음 마을도 무척 멀다. 어찌 해야 하나? 아무리 봐도 시야를 피할 수 없는 공간밖에 없다. 어쩔 수 없지. 뭐..실례해야지. 사방 몇 백 미터 안에 아무도 없으니 내가 일을 볼 동안 누구도 내 옆으로 올 만한 사정거리는 아니다. 뚝방 조금 아래로 내려가 숲 사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는데 아뿔싸, 뚝방 길로 차가 한 대 휘익 지나간다. 에이 나 못 봤겠지. 기분이 좋다. 배설의 기쁨이랄까?

작은 하천이 뚝방 길을 따라 흐르는데 하천 사이에 크고 넓은 바위가 있다. 놀다 갈까? 그런 내 마음을 아는 듯 뚝방 길에서 그 바위로 내려가는 작은 길의 흔적이 보인다. 배낭을 내려 놓고 지친 발걸음을 쉬게 한다.  작은 새가 와서 이야기를 걸고, 냇물이 우당탕거리며 내게 눈길을 달라 한다. 그리고 이상한 흔적. 커다란 공룡의 발자국 같기도 하고 혹은 시멘트 작업한 후 누가 밟은 것인지 모를 흔적이 있다. 혹시?

뚝방 길 끝에 이성계와 왜군의 장수 아지발도가 극렬한 전투를 벌인 황산대첩를 기념하는 비석이 있다. 오래 전에 비석을 만들었을 텐데 일제시대에 일본사람들이 이 것을 그냥 둘 리가 없지. 비석에 새겨진 글을 모두 파내어 읽을 수 없게 만들고 깨버렸다. 그걸 얼마 전에 새로 복원했단다.

황산대첩비 앞에는 춘향전의 두 주인공을 새겨 넣은 음료대가 이 곳 사람들의 춘향에 대한 사랑을 실감나게 한다. 어디 가나 춘향. 춘향.

황산대첩비를 나와 오른 쪽에 있는 군화동. 이 곳에선 마을 이름이 모두 군사와 관련된 많다. 전군, 중군 후군을 생각케 하는 중군(中軍)마을, 군인들이 마을을 지었다는 군화동(軍花), 황산대첩때 군량미 창고를 두었다는 사창(社倉)리 등 모두 한문으로 쓰면 군사용어라는 것을 안다. 황산대첩비를 나와 옆에 있는 정자에 앉았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판소리. 음악 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가 이 소리의 근원을 놓칠소냐. 눈 앞에 있는 초가집. 저기서 나오는구나. 우리나라 판소리의 대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름.  박초월 기념관. 이곳 비전(碑前) 마을은 박초월 선생이 자란 곳이라 한다. 그리고 판소리의 대가 송홍록의 생가. 잘 꾸며진 생가를 둘러보며 이곳 사람들의 판소리사랑을 알게 한다.

내가 영화를 너무 좋아하지만 한국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심각한 소재든, 역사소재든 무조건 코미디 일색으로 진행되는 한국영화 그리고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설정과 맞지 않는 구성등. 그러나 단 하나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가 ‘서편제’이다.

요즘같이 복합상영관으로 영화 한편으로 수없이 많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때가 아닌 1990년대에 서울에서 대한극장한 곳에서만 상영하며 무려 100만 인파를 동원한 영화. 서편제 동편제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동쪽에서 부르던 판소리가 동편제이고 그 반대편의 지역에서 불리던 것이 서편제라 한다

그럼 이 곳 남원은 서편제인가? 송홍록은 동편제의 창시자라 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대충 이해하자. 생가 구석 구석, 내가 어릴 적 지내던 방과 부엌의 모습이 보인다. 툇마루 앞의 채송화까지.. 그리고 뒷마당에 심어진 대나무의 시원함. 고수와 가왕이 저 멀리 지리산을 바라보며 열심히 한 소리 하고 있다.

내가 많이 들어 알고 있는 판소리 농부가의 멜로디가 생가에 가득하다.  아무도 없겠다.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들을 사람 없겠다. 신나게 따라 불렀다.

여보시요 농부님네 이내한말 들어보소.

어허 어허여야 상사뒤여.

내 노래 소리는 남겨 두고 나그네는 다시 길을 간다. 길 오른편에선 여전히 차들이 빠르게 질주하고 있고, 나는 아주 느리게 길을 가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보살피지 않은 비석 3개가 숲 속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풀들에 서서히 묻혀가고 있다 비석에 관이 씌워 있는 것으로 보아 한 벼슬하던 사람 같은데..

저 앞에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콘도미니엄 대덕 리조트가 자리잡고 있고 나그네길은 그 곳으로 향하고 있다. 콘도에는 사람의 흔적도 없다. 주차된 차도 없고, 사람들의 이동도 없다. 

아침 7시 20분 출발한 뒤로 계속 평지만 걸어 다녔는데 이젠 산길로 접어들고 처음으로 반대편에서 오는 둘레꾼을 만난다. 둘레꾼? 흠~ 이거 좋은 표현이네.  앞으로 나 같은 사람을 보고 둘레꾼이라 하자. 원래 이 길도 사유지 같은데 둘레꾼들을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허가한 것 같다. 군데 군데 숲으로 향하는 길에 철문이 가로막고 있다.

계속되는 산길은 흥부골 자연휴양림으로 통한다. 이 곳도 거의 해발 600미터 수준이다. 멀리 작은 마을들이 가끔 보이고 길은 지루하다. 언덕을 넘다가 커브 길에서 나를 찾는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커다란 볼록거울에 비친 나를 찍어 보자.  혼자서도 잘 놀아요.

언덕을 넘어가니 흥부골 휴양림. 아무도 없다. 매점은 문을 닫았고, 숙박을 위한 시설도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까지 감돈다. 왜 이렇게 문을 닫았을까? 그러나 반가운 것은 수도 물과 다 찌그러진 세숫대야와 비누. 시원하게 세수하고 나니 조금 전 조금 열려 있던 관리소문이 닫혀져 있다. 누군가 나로 인해 방해 받고 싶지 않았겠지.

하얗게 눈이 부신 아스팔트 길을 따라 내려간다. 이건 아니지. 아니나 다를까. 둘레꾼길은 옆으로 간다. 개울을 건너 접어드는 숲길. 습기 가득한 숲 속 길을 간다. 인월을 향해

숲 속 길을 한 참 걸어 언덕을 내려가다가 둘레꾼을 위한 듯, 작은 나무벤치 하나, 누군가 새로 샀는데 잠시 쉰 후 잊고 길을 떠난 듯 밀짚모자가 걸려 있고 또 나처럼 배낭 옆 끼워 놓은 물을 잃어버린 것 처럼 벤치 아래 물이 가득한 물병 하나가 뒹굴고 있다. 벤치에 써 있는 글이 좋다.

‘심신을 편하게.  숲길.. 아름다운 길, 좋은 길 선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도 답한다.  Me Too.

마을을 내려와 달오름 마을에 붙은 집집의 소개를 보니 재미있다. 술 익는 집 민박도 있고..  한참 가다 보니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둘레꾼을 보지만, 나에게 눈도 안 마주치려 한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인월에는 그래도 제법 큰 마을이다 시외버스를 탈 수 있고 이곳에 지리산 둘레길 안내센터가 있다. 그러나 여기 저기 찾아보아도 안내센터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마주 오는 젊은 연인 둘레꾼. 옳다구나 하나 사진 찍어 달라 하고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그럴듯한 식당을 찾기 위해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 잘하는 데가 없을 것 같아 순대국을 찾아 간 집. 손님도 없다. 가방을 내려 놓으며 묻는다

이 집 순대국 맛있어요?

뭐. 5000원짜리 순대국에서 얼마나 바라는지요? 그냥 맛있다고 생각하고 드세요.”

이런 답변이 있을 수도 있구나.  그냥 나가고 싶었지만 이미 주문했으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점심을 먹고 좀 쉴까? 마을 입구에 정자 하나. 누군가 마당에 짓이겨 놓은 봉숭아 꽃잎들. 손톱에 물 들일려고 했다가 버린 듯. 정자는 거의 이용하는 사람이 없는 듯 먼지투성이, 쓰레기투성이. 쉴 생각이 나지 않아 일어나 길을 간다.

옆에 하천에 어떤 이가 수경을 쓰고 열심히 물 속을 들락 날락 한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그러나 하천에 기름띠가 보여 보는 내가 괜히 안타깝다.

비가 온다. 저기 마주 오는 둘레꾼들. 아가씨 3명. 매동마을에서 출발했단다. 내 다음 목적지가 매동마을이고 오늘 그 곳에서 하루 묵을까 하는데 민박집 상황을 물었더니 충분하단다.

배낭 옆에 끼워 놓은 우산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우비를 꺼내 입고 시원한 빗방울의 감촉을 느끼며 길을 걷는다. 지리산을 걸으며 느끼는 것이지만 지금 한국의 온 산하가 외래종인 가시박이 풀에 신음하고 있다. 며칠 전 우리 부모님 산소에도 가시박이 풀이 뒤덮여 있는 것을 보고 그걸 치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 가시박이 풀은 다른 식물들의 영양분은 물론 생장까지도 저해할 정도로 왕성하게 자라 거의 우리나라 자생초 식물의 킬러와 다름없다 또한 나무까지 뒤엎어 나무까지 죽여 버리는 엄청난 식욕으로 마치 인간을 사육하는 에얼리언 같은 공포감이 들 정도이다.

우비를 쓰고 중군마을을 지난다. 누군가 중군마을의 벽에 재미있는 그림과 글들을 그려 넣었다. 그려진 날짜를 보니 2009년 8월 24일. 바로 며칠 전이네. 바닥에 흩어진 물감들이 아직 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신작이다. 중군마을 특산품인 잣과 꿀을 자랑하고..

중군마을 언덕으로 올라가며 자주 보이는 벌통. 그러나 벌은 보이지 않는다.

한참 길을 가다가 두 갈래 길. 늘 한 곳만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이번엔 두 개의 길을 보여주며 선택하라 한다. 하나는 숲길로 가는 오른쪽언덕길, 또 하나는 임도로 가는 왼편 하행길. 숲길은 많이 걸었으니 임도를 걸어볼까? 말을 그렇게 하지만 올라가는 것 보다는 내려 가는 것이 편할 것 같아 임도를 선택.

조금씩 발이 아프다. 물집이 생길려나? 편한 세멘트 길을 조심스럽게 걷는다. 이 길은 백련사로 향한다. 임도를 따라 걷다가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 발견. 주저할 필요도 없이 계곡으로 내려가 얼른 무거운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시원한 물에 발을 푹 담그니  이런 낙원이 어디 있으랴. 백련사 비구니가 맑은 시냇물 같이 푸른 얼굴로 내 모습을 잠시 지켜 보고는 슬며시 길 아래로 내려간다.

벌통 옆에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지키고 있다. 내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면 덤벼들 기세다. 길가에 커다란 호박. 널린 것이 양식이네. 하나님 고맙습니다.

지리산은 공기가 맑아 환경이 좋은 곳에서만 서식하는 고사리가 많다. 이번 여행 내내 제일 많이 본 식물이 고사리다. 그리고 그 고사리 밭에 여행객들이 들어 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많다.

백련사 앞에 잘 다듬어놓은 돌탑과 천하대장군과 그 애인 지하여장군이 나란히 나그네를 지켜보고 있다. 자고로 돌탑은 오랜 세월을 두고 행인이 돌을 던져 만드는 법인데 이곳의 돌탑은 조각품처럼 만들어 놓아 신선함이 떨어진다.

백련사를 지나는데 둘레꾼이 쉬고 있다. 나보다 느리게 걷는 사람이 있나? 내 마음을 알았는지 자기는 다리가 짧아 걷는 것이 힘들단다. 조금 가다 쉬기를 반복 한다고..

둘이 같이 걸었다. 진한 부산 사투리. 어느 날 건강 검진 받으니 당이 있다 하여 걷는 운동을 권하기에 틈만 나면 이렇게 걷는단다. 그러다 보니 좋아졌다고..  하긴 걷는 것만큼 좋은 운동이 어디 있으랴. 유산소운동이고, 돈 안 들고, 언제던지 아무 장소에서든 할 수 있을 테니..

길을 가다가 문득 이상한 걸 발견. 이게 뭘까? 사람의 배설물도 아니고, 가만히 보니 달팽이 같지만 크기가 10센티가 훨씬 넘으니 이건 달팽이가 아닐 것이다. 이게 뭘까?  자연에 오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적다.  나무 이름, 풀 이름 하다못해 이런 곤충 이름까지 모르지 않는가?

그렇게 힘들다 하다가 둘이 걸으니 혼자 걸을 때 몇 번을 쉬어야 할 거리를 쉬지 않고 걷는다며 나에게 고마워 한다. 같이 산을 내려가는데 얼마나 곧은 나무들이 가득한지, 나무만 봐도 포만감이 온다.

어렵지 않게 언덕을 넘으니 뱀사골로 가는 길이 보이고 장항마을에 눈에 확 트이는 일성콘도미니엄 지리산 별장. 푸른 산을 배경으로 유독 불거져 보이는 하얀 고층 빌딩. 마치 자연의 장애인 같은 모습이다.

큰 도로로 나서기 전 낮은 언덕에 우뚝 솟은 장항노루목 소나무. 어찌나 소나무가 우람하고 씩씩해 보이는지 오랜 세월 당산나무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 같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수령 400년. 이전에 노루목이란 말을 몰랐는데 그게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 해서 노루목이라 한다. 노루목을 한문으로 표현하면 장항(獐項)

갈증이 나 콜라 한 잔 먹고파 같이 가자 하니 자기는 음료수 못 마시니 그냥 혼자 가겠단다. 콜라 한 병 사 들고, 바로 앞에 특별한 나무조각품을 파는 곳에 눈길을 돌린다. 재미있어라. 통나무를 이용하여 남성의 심볼을 잘 조각해 놓았다. 하늘로 뻗은 놈, 옆으로 길게 뻗은 놈. 끝이 이상하게 조각되어 있는 놈. 사람들은 누구나 성적본능을 가진다. 어차피 인간도 동물이라 번식본능이 있기에 이런 우람한 남성의 성기는 세계 어느 곳을 가나 모든 인류의 희망사항이다.

바로 앞 차가 다니는 큰 도로로 걸어서 곧장 가면 분명 오늘의 목적지인 매동마을이 나올 텐데 지리산지기는 나보고 산길로 오라고 유혹한다. 가야지. 가야지.

가파르고 세멘트 포장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간다. 밭에서 커다란 토란 줄기를 뽑아오는 할머니와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뻔히 아는 매동마을 가는 길을 물으니, 나보고 고생한다며 허리를 펴고 친절히 가르쳐 준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언덕길에서 산소 풀을 베던 할아버지도 나에게 웃음으로 인사하고, 눈을 들어 언덕 아래를 보니 감나무에 감이 익고, 많지 않은 사과나무에 푸른 사과, 빨간 사과를 보호하기 위해 그물이 쳐 있고, 고사리 밭에 고사리가 가득하며, 그리고 보이는 푸른 하늘, 푸른 산, 정겨운 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매동마을로 내려가는 길, 동구재로 가는 길.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시간이 3시 반이니 더 갈 수도 있겠지만 등구재로 가는 5.3키로를 오늘 해 저물기 전에 가는 것은 너무 무리이다. 내일도 날이니까..

매동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정겨운 팻말. 누군가 멋지게 디자인해 놓았다.

물론 마을 집들이야 전형적인 시골집이지만, 적어도 각 집을 표현하는데 주인장 이름이 적힌 문패대신 빨간 벽돌집, 대밭아랫집, 소년대할매 등 정감이 가득한 이름으로 대신한다.

낮 시간이라 모두 논, 밭일 나가서 그런지 마을회관 앞이 조용하다. 모 종교의 복장을 한 여자분이 지나가기에 민박을 물으니 부녀회장님 댁을 안내해 준다. 잘 지어놓은 이층집이다.

 민박 가능하다며 이층으로 안내하는데 아주 깨끗하고 취사가 가능하도록 해 놓았다. 단체 활동이 가능할 정도의 공간이랄까? 넓은 마루도 있고, 이 집에는 황토방이 있어 근처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일부러 여기 와서 묵고 간단다.

나 이외에 또 예약해 놓은 두 팀이 있지만 같이 잘 필요는 없다니 다행이다. 뜨거운 땀을 찬물로 씻어 내리고 저녁 식사시간이 아직 멀어 천천히 마을회관 앞 공터에 내려가니 그 공터에 아까 그냥 지나쳤던 커다란 두 개의 장승이 있다. 우물도 있고..그리고 누군가 벽에 커다란 글씨와 그림들을 그려 놓았다. 거리미술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어리숙 하지만 그래도 밋밋한 공간을 이용해 마을의 특징을 새로 만들어 놓았다.

앞니가 3개나 빠진 꼬마 아이 하나가 나에게 장난을 건다. 사진 좀 찍어 달라 하니 재미있는지 카메라를 잡고는 돌려 주지 않으려 한다. 누런 강아지를 안고 있는 도시 아줌마 풍의 아이 엄마가 제재를 하며 아이를 혼내지만 그냥 두라 했다.

이층집 뒤에 넓은 밭이 있는데 모두 감나무만 심어져 있고 사과나무는 겨우 몇 그루. 감나무는 그냥 두어도 잘 자라지만 사과나무는 손이 가야 하기에 많이 못 기른단다. 하긴 주인집 아저씨가 장애인이다. 그 집 마당에 뛰어 노는 애들은 손주 같고..아들, 딸들이 모두 도시에 나가 살고 애들은 여기서 키운다. 하긴 그것도 권장할 만하다.

어두워 지기 전까지 책을 읽다가 산나물이 가득한 저녁을 같이 민박하는 사람과 겸상 후, 저녁에 3명의 남자가 모여 두런 두런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한다.

모두 피곤한지 각자 방으로 일찍 들어가고 나도 내 방으로 들어가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어디선가 우르릉 소리가 들려 창문을 여니 번개가 치기 시작. 아직 비는 쏟아지지 않지만 금방이라고 쏟아질 것 같다. 일부러 회관 앞 공터로 나갔다.

이런 곳에서 보는 번개의 모습은 어떨까?  그러나 구름이 많아서인지 번개는 자주 치는데 섬광은 보이지 않는다. 번개를 기다리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 와 누웠는데 비가 쏟아진다. 그것도 아주 많이.. 창문을 거세게 두들긴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내일 산행이 어려울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다 깊은 꿈나라로 등산을 갔다.

지난 밤 그렇게 비가 퍼부어 걱정을 했는데 새벽이 귀를 기울여 보니 비가 그친 것 같다. 눈뜨자 마다 창문을 열었다. 땅은 젖어 있지만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아 다행이다.

아침에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얼린 물 한 병과 주먹밥을 하나 싸 주셨다. 아무래도 오늘 산행이 힘들 것 같아 물 좀 받아가자 했더니 오미자차를 담아준다. 감사합니다.

지난 밤에 투숙한 손님도 금계로 간다 하니 같이 가란다. 둘이 길을 나섰다. 어제 내려왔던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간다. 그 언덕에 밤과 감과 호두가 열려 있다.

자, 이제부터 등구재 산행 시작. 5.3 키로. 만만치 않은 거리다. 어제 내린 비로 흙은 젖어 있지만 오히려 코를 통해 들어오는 물 냄새가 시원하고 좋다. 우선 한 고비 넘어 가지고 온 주먹밥을 앉아 먹는데 우리 민박집에서 묵은 뒤 바로 뒤를 이어 따라온 젊은이가 동행한다.

등구재 가는 길은 처음에는 주로 8부 능선을 따라 걷기에 이렇게 완만하게 산을 오르는 구나 하고 좋아했다. 숲길 언덕을 지나는데 갑자기 앞에서 무언가 폴짝 뛴다. 두꺼비 한 마리. 누런 마른 풀잎색깔에 잘 어울리는 보호색을 가졌다. 우리가 해치지 않을 것을 알았는지 도망가는 기색이 없다.

어느 정도 갔던가. 이 산중에 ‘길섶’ 갤러리가 있으니 와 보라고 유혹하는 이정표. 갈까 말까 망설임. 그 이정표로부터 15분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단다. 세 명이 망설이다 나는 갤러리로 향하고 나머지는 앞으로 진행했다.

지난 밤의 비로 인해 젖은 풀잎들을 헤치며 한참을 가니 조금 후 내리막길. 아이고 이 길을 다시 올라 올려면 힘 좀 들겠구만. 더 내려 가야 할지 망설일 즈음. 둥근 집 하나. 그런데 놀라움 하나. 이 곳까지 차가 올라와 있다.

  털보 아저씨가 마중한다. 지난 밤에 영화를 보았노라고 중얼거리며.. 알고 보니 이 곳은 민박도 한다. 지난 밤에 투숙객들과 늦게까지 영화를 보았다는 이야기고.

오로지 지리산만을 찍는 사진사, 강병규씨, 4년 전에 이 곳에 들어왔단다.  사진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사진에 들인 정성이 보인다. 수없이 많은 시간과 기회를 기다리지 않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작품들. 지리산의 4계를 찍어 놓은 사진만을 보아도 이미 지리산에 대해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멋진 풍경들을 찍어 전시하고 있다.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방에 들어와 차 한 잔 하자며 권한다. 대만에서 건너왔다는 찻잎을 전통 다례대로 찻잔을 데우고, 조금씩 잔에 부어 마신다.

내가 좋아하는 오지여행가 한비야 씨가 새로 쓴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돈을 벌기보다는 비록 돈벌이는 잘 안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강작가는 그렇게 사는 것 같다. 비록 이 곳에서 살며 작품을 만들고, 가끔 판매도 하고 이렇게 민박하며 사는 것이 생활을 넉넉하게 하지는 못해도 진정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오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사는 것이 부럽기만 하다.

모두들 나도 그렇게 살 사람이고 말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함은 아직도 세상의 부담이 너무 커서인가?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원래 그렇게 살지 못할 사람인가?

차를 마시며 한 참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제 매동마을에서 같이 투숙했던 이들이 갤러리로 몰려온다. 갤러리 관람 후 그들과 그리고 어제 이 곳에서 투숙한 젊은이들과 같이 왔던 길로 되돌아가서 반은 우리가 걸어 온 길로 가고 반은 나와 같은 길을 갔다.

이렇게 높은 곳인데도 물이 흐른다. 지난 밤 빗물도 있겠지만 지금부터 눈 앞에 펼쳐지는 다랑이 논은 흔히 볼 수 없는 우리네 특이한 농업문화가 있는 곳이다.

땅이 좁으니, 계속 산으로 올라가며, 땅을 개간하고 일구어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에서 우리네 민족의 성실함을 찾을 수 있다.

이젠 다행히도 다랭이 논이 있는 곳까지 세멘트 포장을 해 놓아 여러 가지로 편했겠지만 오래 전엔 어땠을까? 기록을 보니 2~30년전만 해도 내가 오늘 점심을 먹던 일원이 제일 큰 장이 서는 곳이라, 금계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중간에 있는 마을 사람들과, 매동마을 사람들까지 장이 서는 날 일원으로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지고 다녔다 한다. 그 때야 지금보다 길 사정이 안 좋아 다니기가 더 힘들었을 텐데 그 모든 고생을 통해 2세들을 가르치고 현재 우리의 모습을 만든 어른들의 강인함에 고개 숙여진다.

눈 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다랭이 논, 멀리 보이는 지리산 천황봉. 어제 그렇게 흐리던 날이 오늘은 햇빛으로 가득하다.

잠시 평탄하던 길이 어느 순간부터 급경사를 탄다. 산꼭대기에 돌담을 쌓고 그 위에 논을 만들었다. 이런 돌담을 쌓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논 옆에 지리산의 장대함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모습을 보면 모든 고생을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적당한 나무그늘 밑의 시원한 바람이 세상 시름을 잃어 버리게 한다.

잠시 휴식 후 또 한 번 거친 고갯길을 오르니 각종 음료수를 무인 판매하는 곳이 있다. 각종 음료, 라면, 토속 상품 등 모든 메뉴에 가격이 붙어 있고 손님이 알아서 대금을 투입할 수 있는 상자를 만들어 놓았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믿어도 된다 하는 자신감인가?

힘들게 힘들게 등구재를 올랐다. 여기 등구재 까지가 전라북도 산내면이고 등구재를 넘어서면 경남 함양시 마천면이다. 일부러 지역감정을 나타내기 싫었는지 그런 말은 써 있지 않다.

등구재 설명에는

거북등을 닮아 이름붙여진 등구재

서쪽 지리산 만복대에 노을이 깔릴 때

동쪽 범화산 마루엔 달이 떠올라

노을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고개다

경남 창원마을과 전북 상황마을의 경계가 되고

인월장 보러 가던 길

새색시가 꽃가마 타고 넘던 길이다.

지금은 이 곳을 찾는 이가 드물지만

되살아난 고갯길이  마을과 마을,

그리고 사람을 이어줄 것이다.

맞다. 이 곳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전혀 다른 곳에서 모인 이들이 같이 힘을 모아 손을 잡고 길을 넘고, 그 들이 발자국이 지역에 관계없이 이어진다.

등구재를 넘으니 급격한 하산길. 이 곳으로 올라오는 것도 쉽지 않은 등산 길이다.

아가씨 한 명, 그리고 엄마와 아들이 힘들여 올라오고 있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 남지 않았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나는 물집 잡혀 아픈 발을 조심스레 내 딛으며 하산한다.

어느덧 같이 떠났던 일행들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내려가니 창원마을이 나타나지만 인적은 없다. 빨리 금계까지 가야 집으로 가는 버스 편을 탈 수 있을 것 같아 발길을 재촉한다.

그러다가 이정표는 다시 산길로 가라 한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는데 또 산으로 가라고? 지도상의 고도로는 그냥 한없이 내려가면 금계가 될 터인데 이정표는 자꾸 나를 산으로 이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자꾸 올라갈까? 이게 아닌 것 같은데… 갈림길이 나와도 표식이 없다. 한 참을 올라가다가 도무지 아닌 것 같아 책자에 있는 창원마을에 전화를 해 내가 길을 잘 못 들었음을 확인했다.

다시 언덕을 내려가 갈림길에 보니 숲 속에 있는 검은 이정표. 내가 저걸 놓쳤구나. 이정표는 계속 산길로 이어진다. 힘들어 죽겠네. 누군가 수확해 놓았지만 가져가지 않아 푹 썩어버린 호박 3개처럼 내 몸도 푹 퍼져버려 길가에 누워버린다.

수수가 익어간다. 참새를 쫓기 위해 만든 허수아비가 새로운 유행의 옷을 해 입었다. 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릴 수 있고 햇빛을 받으면 반짝일 수 있는 셀룰로이즈를 이용해 만들어 놓았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참 기막힌 생각이다.

길을 가는데 무언가 화들짝 놀라며 내 앞의 고랑을 통해 쏜살같이 지나간다. 30센티 정도의 작은 녹색의 실뱀 하나. 내가 놀라게 했나? 카메라를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이 실뱀 한 마리 눈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느 계곡을 들어가는데 검은 바위가 가득하다. 이게 뭐지?  가만히 돌을 보니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 화산암이다. 얼마나 용암의 온도가 높으면 이렇게 바위를 완전히 까맣게 태워 버렸을까?  바위를 깨 부수면 그 안에까지 새까말까? 궁금하다.

내려가는 길은 쉽지만 이미 내 발은 한계치를 넘었다. 발 하나 디딜 때마다 발이 아프다. 뒷발바닥에 물집을 터트렸는데 또 물집이 잡혔는지 앞꿈치로 걸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도 새끼 발가락에 잡힌 물집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도 괜찮아. 내가 좋아하는 일이잖아. 기어서 가더라도 난 갈 수 있어.

멀리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금계마을이 보인다. 아까부터 보이던 이정표 하나. 나마스테 카페. 나마스테. 인도 여행을 하고 싶은 내가 얼마나 많은 인도여행기를 읽었는지 나마스테의 뜻을 안다. 내 안의 영혼이 당신의 영혼을 사랑합니다. 네팔 사람들에겐 ‘안녕하세요’ 라는 말로 통한다.

나마스테 카페를 들어서며 나마스테라고 인사했다. 내 안의 있는 영혼이 지리산의 영혼을 사랑한다고..지리산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카페에 앉으니 멀리 맑은 하늘에 오로지 천황봉 위에만 구름이 걸렸다.  저 곳에 내 생전 갈 수 있으려나..그런 날이 있을까?  꿈꾸면 이루어질까?

버스 시간표를 보니 금계까지 택시 타고 가야 할 것 같아 네팔인같이 생긴 나마스테 사장님이 금계마을까지 태워 주었다.

금계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를 즐기고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고 버스를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 책을 읽다가 맑은 하늘을 보니 벤치 위의 은행나무에 얼마나 은행이 많이 열렸던지..

주여, 내 생이 저렇게 가득 열린 은행같이 즐거움이 풍성하게 하소서..

이번에 끝내지 못한 지리산 둘레길 코스. 점점 지리산의 다른 지역에도 트레킹 코스를 만든다 하니 다음에는 이번에 가지 못한 길을 따라 가 봐야지. 비록 이번 둘레길은 혼자 여행이라 길동무가 없어 외로웠지만 어차피 여행자는 외로움과 친구되지 않으면 여행이 자유롭지 않으니 때로는 외로움과 떠나고 때로는 마음에 맞는 친구와 떠나고 때로는 길에서 만난 벗들과 만나 친구되어 나의 여행은 어제 오늘 길에서 만난 67살의 어느 남자분처럼 오래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