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지리산둘레길

지리산둘레길 (운봉 - 매동간)

carmina 2009. 9. 5. 11:25

2일차 (운봉 매동간)

 

지난 밤에 혹시 모기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내 몸을 보니 모기에 물린 흔적은 없다.

 

어제 조금 부실한 반찬과 많이 먹지도 않는 아침을 돈 주고 먹는 것은

낭비일 것 같아, 아침을 안 먹겠다고 했더니 어제 남은 밥과 국으로 무료서비스할 테니 먹고 가란다. 그거야 마다할 이유가 없지.

 

비가 부슬 부슬 내린다. 부천에는 아직도 비가 많이 온다 하는데..

 

이런 부슬비정도야 맞지 하고 길을 떠난다.

가끔 큰 길로 차가 지나가고 등교하는 여학생 하나가 큰 길에서 Thumb Picking을 기다리고 있다.

 

행정마을에서 운봉마을까지 약 2.2키로. 뭐 이 정도야 가뿐하겠지.

 

논뚝 제방길을 따라 걷는다. 오는 코스는 비교적 편할 것이라는 민박집 아저씨의 말에 마음은 무척 여유롭다.

 

강한 바람에 모든 풀잎들이 자세를 낮춘다. 비켜갈 것은 비켜가야지.

어제 깨끗하게 보이던 지리산의 모습도 오늘은 멀리 있는 산은 희미한 구름에 신선들이 사는 곳의 모습을 그린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아무도 없다. 내 앞에는 어제도 나랑 같이 놀던 메뚜기들, 잠자리들, 벌레들..

길은 곧고 나그네의 발길도 곧다. 아무도 지나가는 이가 없으니 이렇게 걷고 있는 내 모습을 사진찍어 주는 이도 없어 손을 뻗어 내 모습을 찍어 보려 하나 영 마음에 안든다.

 

논뚝 길 옆 조그만 연못에 오리들이 아침 산책을 즐긴다. 세상은 혼자 있어도 절대 혼자가 아니다. 나에게 생명주신 이가 늘 나와 같이 있고, 그 분이 창조한 모든 만물들이 내 주위에 머물고 있다.

 

이런 곳에선 장미보다, 백합보다 아름다운 것이 호박꽃이고 구절초이고 흔히 자라는 맥문동과 닭의장풀, 벌개미취, 등등.  늘 길가의 꽃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지만 이름을 알고 보는 것과 이름모르고 보는 야생화의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내가 김 춘수의 이라는 시를 좋아한다.

 

총각시절 한번 외워 두었던 이 시를 나는 아직도 즐겨 암송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것처럼

나의 빛깔과 향기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정표는 나를 양묘사업장으로 안내한다.

 

많은 나무와 화초들이 가지런히 심어져 있다.

약용식물, 염료식물, 향료식물, 식용식물등으로 구분해 놓은 넓은 양묘원나무들도 여러가지를 줄지어 심어 놓아 갖가지 나무들을 쉽게 구분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가을 쯤에는 이 곳에 무성한 꽃의 잔치를 볼 수 있을려나. 아직은 제대로 된 꽃의 파티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며 가다보니 큰 마을이 앞에 보인다.

나그네를 위한 지리산둘레길은 늘 바닥에서 길을 안내하는데 내 눈 앞에 보이는 커다란 이정표는 차량을 위한 것.  남원과 함양 가는 24번 국도.

 

운봉마을은 내 어릴 적 우리 동네같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이용원간판, 다방 등..

이른 아침에 아직 문을 연 가게가 거의 없지만 벌써 장사를 시작한 곳이 있다.

방앗간. 어린 시절 유난히 형제가 많았던 우리 집에 어머니는 자녀들의 생일이면 어김없이 떡을 하셨다. 단 내 생일을 제외하곤..  내 생일은 구정 며칠 뒤에 있어 굳이 새로 떡을 할 필요가 없고 구정 때 먹고 남은 떡을 데워 먹으면 되었으니..

 

형제들이 많다 보면 그런 불이익도 있다. 모두 형님들 옷을 물려 입기에 내 옷을 사 입는 것은 극히 드물다.

 

방앗간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방앗간 내부를 들러 보았다.

밤새 물에 담가 놓았떤 하얀 쌀을 머리에 이고 방앗간에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 가면 그 쌀들은 하얀 눈가루가 되어 나오기도 하고 뜨거운 김과 함께 하얀 떡가래가 두 줄로 쏟아져 나오면 가위로 싹둑 잘라내는 그 민첩한 손놀림.  ..어머니가 보고 싶다.

 

그렇게 운봉마을에서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으며 지나다가 마을 끝에서 그만 나는 길을 잃었다.  분명 이렇게 여러갈래 길이 있으면 둘레길 이정표가 있을텐데 아무리 둘레 둘레 찾아보아도 낯익은 나무표시나 길바닥에 빨간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적막한 마을을 보다가 운봉 다음 목적지인 인월가는 길은 이미 차를 위한 이정표를 통해 알고 있으니 걷자 하고 대로를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둘레길 만든 이는 이렇게 길게 뻗은 차량을 위한 길로 나그네를 인도하지 않을거야

무엇인가 잘 못 되었다. 지도를 펼쳐들고 한 참을 서서 생각해 보았다. 도로를 따라 나란히 달리는 길이 저 편에 보인다. 아마 길을 걸어야 한다면 저 곳일거야.  아니나 다를까.

그 곳으로 가다 보니 저 편에 둘레길 이정표가 보인다. 얼마나 반가운지.

 

운봉마을 중간 쯤에 이 곳으로 오는 길이 이정표가 있었을텐데 내가 동네 풍경에 취해  이정표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그런 나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두 개의 마주보는 돌장승. 아마 겉으로는 저렇게 무표정하게 있을테지만 속으로는 나를 보고 웃고 있으리라.

 
다시 뚝방길을 간다. 앞으로 뒤로 쭉 뻗은 길인데 시야에는 멀리 마을만 보일 뿐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혼자 노래하며 나그네는 즐거워 한다.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피아노에서 바닷가 파도와 놀던 어린 여자아이처럼

 

길가의 호박잎 사이에 영근 잘 익은 호박하나

누구의 소유물일까? 아니면 자연의 것인가? 배 고픈 이들은 누구나 저걸 따다 먹어도 되는건가?

 

넓은 벌판에 벼가 익어간다. 도로와 넓은 논 사이에 있는 뚝방길. 길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은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 내가 갈 길은 아마 저 산 너머일 것이다.

 

그런데 뒤가 급하다. 이미 지나쳐온 마을도 한참 멀고, 다음 마을도 무척 멀다. 어찌 해야 하나

아무리 봐도 시야를 피할 수 없는 공간밖에 없다. 어쩔 수 없지. 뭐실례해야지. 사방 몇 백미터 안에 아무도 없으니 내가 일을 볼 동안 누구도 내 옆으로 올 만한 사정거리는 아니다.

 

뚝방 조금 아래로 내려가 숲 사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는데 아뿔싸, 뚝방길로 차가 한 대 휘익 지나간다. 에이 나 못봤겠지. 기분이 좋다. 배설의 기쁨이랄까?

 

작은 하천이 뚝방길을 따라 흐르는데 하천 사이에 크고 넓은 바위가 있다. 놀다 갈까?

그런 내 마음을 아는 듯 뚝방길에서 그 바위로 내려가는 작은 길의 흔적이 보인다.

배낭을 내려 놓고 지친 발걸음을 쉬게 한다.  작은 새가 와서 이야기를 걸고, 냇물이 우당탕거리며

눈길을 달라 한다. 그리고 이상한 흔적. 커다란 공룡의 발자국 같기도 하고 혹은 시멘트 작업한 후 누가 밟은 것인지 모를 흔적이 있다. 혹시?

 
뚝방길 끝에 이성계와 왜군의 장수 아지발도가 극렬한 전투를 벌인 황산대첩를 기념하는 비석이 있다. 오래 전에 비석을 만들었을텐데 일제시대에 일본사람들이 이 것을 그냥 둘리가 없지. 비석에 새겨진 글을 모두 파내어 읽을 수 없게 만들고 깨버렸다. 그걸 얼마 전에 새로 복원했단다
.

 
황산대첩비 앞에는 춘향전의 두 주인공을 새겨넣은 음료대가 이 곳 사람들의 춘향에 대한 사랑을 실감나게 한다. 어디가나 춘향. 춘향.

 
황산대첩비를 나와 오른 쪽에 있는 군화동. 이 곳에선 마을 이름이 모두 군사와 관련된 많다
.

전군, 중군 후군을 생각케 하는 중군(中軍)마을, 군인들이 마을을 지었다는 군화동(軍花), 황산대첩때 군량미 창고를 두었다는 사창(社倉)리 등 모두 한문으로 쓰면 군사용어라는 것을 안다.

 

황산대첩비를 나와 옆에 있는 정자에 앉았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판소리. 음악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가 이 소리의 근원을 놓칠소냐.

 

눈 앞에 있는 초가집. 저기서 나오는구나. 우리나라 판소리의 대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름.  박초월 기념관. 이곳 비전(碑前)마을은 박초월이 자란 곳이라 한다. 그리고 판소리의 대가 송홍록의 생가. 잘 꾸며진 생가를 둘러보며 이곳 사람들의 판소리사랑을 알게 한다.

 

내가 영화를 너무 좋아하지만 한국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심각한 소재든, 역사소재든 무조건 코미디 일색으로 진행되는 한국영화 그리고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설정과 맞지 않는 구성등.

그러나 단 하나 한국영화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가 서편제이다.

 

요즘같이 복합상영관으로 영화 한편으로 수없이 많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때가 아닌 1990년대에 서울에서 대한극장한 곳에서만 상영하며 무려 100만 인파를 동원한 영화. 서편제 동편제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동쪽에서 부르던 판소리가 동편제이고 그 반대편의 지역에서 불리던 것이 서편제라 한다

 

그럼 이 곳 남원은 서편제인가? 송홍록은 동편제의 창시자라 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이해하자.

 

생가 구석 구석, 내가 어릴 적 지내던 방과 부엌의 모습이 보인다. 툇마루 앞의 채송화까지.. 그리고 뒷마당에 심어진 대나무의 시원함.

고수와 가왕이 저 멀리 지리산을 바라보며 열심히 한소리 하고 있다.

내가 많이 들어 알고 있는 판소리 농부가의 멜로디가 생가에 가득하다.  아무도 없겠다.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들을 사람 없겠다. 신나게 따라 불렀다.

여보시요 농부님네 이내한말 들어보소. 어허 어허여야 상사뒤여.

 

다시 길을 간다.

 

길 오른편에선 여전히 차들이 빠르게 질주하고 있고, 나는 아주 느리게 길을 가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보살피지 않은 비석 3개가 숲속에서 무성히 자라는 풀들에 서서히 묻혀가고 있다

비석에 관이 씌워 있는 것으로 보아 한 벼슬하던 사람같은데..

 

저 앞에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콘도미니엄 대덕리조트 하나 자리잡고 있고 나그네길은 그 곳으로 향하고 있다

 

콘도에는 사람의 흔적도 없다. 주차된 차도 없고, 사람들의 이동도 없다. 

 

아침 7시 20분 출발한 뒤로 계속 평지만 걸어다녔는데 이젠 산길로 접어들고 처음으로 반대편에서 오는 둘레꾼을 만난다. 둘레꾼?  흠 이거 좋은 표현인네.  앞으로 나 같은 사람을 보고 둘레꾼이라 하자.

 

원래 이 길도 사유지같은데 둘레꾼들을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허가한 것 같다. 군데 군데 숲으로 향하는 길에 철문이 가로막고 있다.

 

계속되는 산길은 흥부골 자연휴양림으로 통한다. 이 곳도 거의 해발 600미터 수준이다. 멀리 작은 마을들이 가끔 보이고 길은 지루하다. 언덕을 넘다가 커브길에서 나를 찾는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커다란 볼록거울에 비친 나를 찍어 보자.  혼자서도 잘 놀아요.

 

언덕을 넘어가니 흥부골 휴양림. 아무도 없다. 매점은 문을 닫았고, 숙박을 위한 시설도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까지 감돈다. 왜 이렇게 문을 닫았을까?
 

그러나 반가운 것은 수도물과 다 찌그러진 세숫대야와 비누. 시원하게 세수하고 나니 조금 전 조금 열려 있던 관리소문이 닫혀져 있다. 누군가 나로 인해 방해받고 싶지 않았겠지.

 

하얗게 눈이 부신 아스팔트 길을 따라 내려간다. 이건 아니지. 아니나 다를까. 둘레꾼길은 옆으로 간다. 개울을 건너 접어드는 숲길. 습기가득한 숲속 길을 간다. 인월을 향해

 

숲속길을 한 참 걸어 언덕을 내려가다가 둘레꾼을 위한 듯, 작은 나무벤치 하나, 누군가 새로 샀는데 잠시 쉰 후 잊고 길을 떠난 듯 밀짚모자가 걸려 있고 또 나처럼 배낭 옆 끼워 놓은 물을 잃어버린 것 처럼 벤치 아래 물이 가득한 물병하나가 뒹굴고 있다. 벤치에 써 있는 글이 좋다.

심신을 편하게.  숲길.. 아름다운 길, 좋은 길 선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도 답한다.  Me Too.

 

마을을 내려와 달오름마을에 붙은 집집의 소개를 보니 재미있다. 술익는 집 민박도 있고.. 

 

한참 가다 보니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둘레꾼을 보지만, 나에게 눈도 안 마주치려 한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인월에는 그래도 제법 큰 마을이다 시외버스를 탈 수 있고 이곳에 지리산 둘레길 안내센타가 있다. 그러나 여기 저기 찾아보아도 안내센타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마주오는 젊은 연인둘레꾼. 옳다구나 하나 사진 찍어 달라 하고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그럴듯한 식당을 찾기 위해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 잘하는데가 없을 것 같아 순대국을 찾아 간 집. 손님도 없다. 가방을 내려 놓으며 묻는다

이 집 순대국 맛있어요?

뭐. 5000원짜리 순대국에서 얼마나 바라는지요? 그냥 맛있다고 생각하고 드세요.”

이런 답변이 있을 수도 있구나.  그냥 나가고 싶었지만 이미 주문했으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점심을 먹고 좀 쉴까? 마을 입구에 정자 하나. 누군가 마당에 짓이겨 놓은 봉숭아 꽃잎들. 손톱에 물들일려고 했다가 버린 듯.

정자는 거의 이용하는 사람이 없는 듯 먼지투성이, 쓰레기 투성이. 쉴 생각이 나지 않아 일어나 길을 간다.

 

옆에 하천에 어떤 이가 수경을 쓰고 열심히 물 속을 들락 날락한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그러나 하천에 기름띠가 보여 괜히 보는 내가 안타깝다.


비가 온다. 저기 마주 오는 둘레꾼들. 아가씨 3명. 매동마을에서 출발했단다. 내 다음 목적지가  매동마을이고 오늘 그 곳에서 하루 묵을까 하는데 민박집 상황을 물었더니 충분하단다.
 

배낭 옆에 끼워 놓은 우산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우비를 꺼내 입고 시원한 빗방울의 감촉을 느끼며 길을 걷는다. 

 

지리산을 걸으며 느끼는 것이지만 지금 한국의 온 산하가 외래종인 가시박이 풀에 신음하고 있다.

며칠 전 우리 부모님 산소에도 가시박이 풀이 뒤덮혀 있는 것을 보고 그걸 치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 가시박이 풀은 다른 식물들의 영양분은 물론 생장까지도 저해할 정도로 왕성하게 자라 거의 우리나라 자생초 식물의 킬러와 다름없다 또한 나무까지 뒤엎어 나무까지 죽여 버리는 엄청난 식욕으로 마치 인간을 사육하는 에얼리언 같은 공포감이 들 정도이다.

 

우비를 쓰고 중군마을을 지난다. 누군가 중군마을의 벽에 재미있는 그림과 글들을 그려 넣었다.

그려진 날짜를 보니 2009년 8월 24일. 바로 며칠 전이네. 바닥에 흩어진 물감들이 아직 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신작이다. 중군마을 특산품인 잣과 꿀을 자랑하고..

 

중군마을 언덕으로 올라가며 자주 보이는 벌통. 그러나 벌은 보이지 않는다.

한참 길을 가다가 두 갈래 길. 늘 한 곳만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이번엔 두 개의 길을 보여주며 선택하라 한다. 하나는 숲길로 가는 오른쪽언덕길, 또 하나는 임로로 가는 왼편하행길.

 

숲길은 많이 걸었으니 임로를 걸어볼까? 말을 그렇게 하지만 올라가는 것 보다는 내려가는게 편할 것 같아 임로를 선택.

 

조금씩 발이 아프다. 물집이 생길려나. 편한 세멘트 길을 조심스럽게 걷는다. 이 길은 백련사로  향한다. 임로를 따라 걷다가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 발견. 주저할 필요도 없이 계곡으로 내려가 얼른 무거운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시원한 물에 발을 푹 담그니 이런 낙원이 있으랴.

백련사 비구니가 맑은 시냇물같이 푸른 얼굴로 내 모습을 잠시 지켜 보고는 슬며시 길 아래로 내려간다.

 

벌통 옆에 커다란 개 한마리가 지키고 있다. 내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면 덤벼들 기세다. 길가에 커다란 호박. 널린게 양식이네. 하나님 고맙습니다.

 

지리산은 공기가 맑아 환경이 좋은 곳에서만 서식하는 고사리가 많다. 이번 여행 내내 제일 많이 본 식물이 고사리다. 그리고 그 고사리밭에 여행객들이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많다.

 

백련사 앞에 잘 다듬어놓은 돌탑과 천하대장군과 그 애인 지하여장군이 나란히 나그네를 지켜보고 있다. 자고로 돌탑은 오랜 세월을 두고 행인이 돌을 던져 만드는 법인데 이곳의 돌탑은 조각품처럼 만들어 놓아 신선함이 떨어진다.

 

백련사를 지나는데 둘레꾼이 쉬고 있다. 나보다 느리게 걷는 사람이 있나?

내 마음을 알았는지 자기는 다리가 짧아 걷는게 힘들단다. 조금 가다 쉬기를 반복한다고..

 

둘이 같이 걸었다. 진한 부산 사투리. 어느 날 건강검진 받으니 당이 있다하여 걷는 운동을 권하기에 틈만 나면 이렇게 걷는단다. 그러다보니 좋아졌다고..  하긴 걷는것만큼 좋은 운동이 어디 있으랴. 유산소운동이고, 돈 안들고, 언제던지 아무 장소에서든 할 수 있을 테니..

 

길을 가다가 문득 이상한 걸 발견. 이게 뭘까? 덩도 아니고, 가만히 보니 달팽이같지만 크기가 10센티가 훨씬 넘으니 이건 달팽이가 아닐거다.

이게 뭘까?  자연에 오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적다. 나무이름, 풀이름

하다못해 이런 곤충 이름까지 모르지 않는가?

 
그렇게 힘들다 하다가 둘이 걸으니 혼자 걸을 때 몇 번을 쉬어야 할 거리를 쉬지않고 걷는다며
나에게 고마워 한다. 같이 산을 내려가는데 얼마나 곧은 나무들이 가득한지, 나무만 봐도 포만감이 온다.

 

어렵지 않게 언덕을 넘으니 뱀사골가는 길이 보이고 장항마을에 눈에 확 트이는 일성콘도미니엄 지리산 별장. 푸른 산을 배경으로 유독 불거져 보이는 하얀 고층 빌딩. 마치 자연의 장애인 같은 모습이다.

 

큰 도로로 나서기 전 낮은 언덕에 우뚝 솟은 장항노루목 소나무. 어찌나 소나무가 우람하고 씩씩해 보이는지 오랜 세월 당산나무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 같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수령 400년.

이전에 노루목이란 말을 몰랐는데 그게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 해서 노루목이라 한다. 노루목을 한문으로 표현하면 장항(獐項)

 

갈증이 나 콜라 한 잔 먹고파 같이 가자 하니 자기는 음료수 못 마시니 그냥 혼자 가겠단다. 콜라 한 병 사들고, 바로 앞에 특별한 나무조각품을 파는 곳에 눈길을 돌린다.재미있어라. 통나무를 이용하여 남성의 심볼을 잘 조각해 놓았다.


하늘로 뻗은 놈, 옆으로 길게 뻗은 놈. 끝이 이상하게 조각되어 있는 놈.

사람들은 누구나 성적본능을 가진다. 어차피 인간도 동물이라 번식본능이 있기에

이런 우람한 남성의 성기는 세계 어느 곳을 가나 모든 인류의 희망사항이다.

 

바로 앞 차가 다니는 큰 도로로 걸어서 곧장 가면 분명 오늘의 목적지인 매동마을이 나올텐데 지리산지기는 나보고 산길로 오라고 유혹한다. 가야지. 가야지.

 

가파르고 세멘트 포장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간다. 밭에서 커다란 토란 줄기를 뽑아오는 할머니와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뻔히 아는 매동마을 가는 길을 물으니, 나보고 고생한다며 허리를 펴고 친절히 가르쳐 준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언덕길에서 산소풀을 베던 할아버지도 나에게 웃음으로 인사하고, 눈을 들어 언덕 아래를 보니 감나무에 감이 익고, 많지 않은 사과나무에 푸른 사과, 빨간 사과를 보호하기 위해 그물이 쳐 있고, 고사리 밭에 고사리가 가득하며, 그리고 보이는 푸른 하늘, 푸른 산, 정겨운 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매동마을로 내려가는 길, 동구재로 가는 길.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시간이 3시 반이니 더 갈 수도 있겠지만 등구재로 가는 5.3키로를 오늘 해 저물기 전에 걷는 것은 너무 무리이다. 내일도 날이니까..

 

매동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정겨운 팻말. 누군가 멋지게 디자인해 놓았다.

물론 마을 집들이야 전형적인 시골집이지만, 적어도 각 집을 표현하는데 주인장 이름이 적힌 문패대신 빨간 벽돌집, 대밭아랫집, 소년대할매 등 정감이 가득한 이름으로 대신한다.


낮이라 모두 논, 밭일 나가서 그런지 마을회관 앞이 조용하다. 모 종교의 복장을 한 여자분이 지나가기에 민박을 물으니 부녀회장님댁을 안내해 준다. 잘 지어놓은 이층집이다.

 

민박 가능하다며 이층으로 안내하는데 아주 깨끗하고 취사가 가능하도록 해 놓았다.

단체 활동이 가능할 정도의 공간이랄까? 넓은 마루도 있고

이 집에는 황토방이 있어 근처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일부러 여기와서 묵고간단다.


나 이외에 또 예약해 놓은 두 팀이 있지만 같이 잘 필요는 없다니 다행이다.

 

뜨거운 땀을 찬물로 씻어 내리고 저녁 식사시간이 아직 멀어 천천히 마을회관 앞 공터에  내려가니 그 공터에 아까 그냥 지나쳤던 커다란 두개의 장승이 있다. 우물도 있고.. 그리고 누군가 벽에 커다란 글씨와 그림들을 그려 놓았다. 거리미술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어리숙하지만 그래도 밋밋한 공간을 이용해 마을의 특징을 새로 만들어 놓았다.

 

앞니가 3개나 빠진 꼬마 아이 하나가 나에게 장난을 건다. 사진 좀 찍어 달라 하니 재미있는지 카메라를 잡고는 돌려 주지 않을려 한다. 누런 강아지를 안고 있는 도시아줌마풍의 아이 엄마가 제재를 하며 아이를 혼내지만 그냥 두라 했다.

 

이층집 뒤에 넓은 밭이 있는데 모두 감나무만 심어져 있고 사과나무는 겨우 몇 그루.

감나무는 그냥 두어도 잘 자라지만 사과나무는 손이 가야 하기에 많이 못 기른단다.

하긴 주인집 아저씨가 장애인이다. 그 집 마당에 뛰어 노는 애들은 손주같고..

아들, 딸들이 모두 도시에 나가 살고 애들은 여기서 키운다. 하긴 그것도 권장할 만하다.

 

어두워 지기전까지 책을 읽다가 산나물이 가득한 저녁을 같이 민박하는 사람과 겸상 후, 저녁에 3명의 남자가 모여 두런 두런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한다.

 

모두 피곤한지 각자 방으로 일찍 들어가고 나도 내 방으로 들어가 누웠는데 잠이 안온다. 어디선가 우르릉 소리가 들려 창문을 여니 번개가 치기 시작. 아직 비는 쏟아지지 않지만 금방이라고 쏟아질 것 같다. 일부러 회관 앞 공터로 나갔다.

 

이런 곳에서 보는 번개의 모습은 어떨까?  그러나 구름이 많아서인지 번개는 자주 치는데 섬광은 보이지 않는다. 번개를 기다리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 와 누웠는데 비가 쏟아진다. 그것도 아주 많이 창문을 거세게 두들긴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내일 산행이 어려울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다 깊은 꿈나라로 등산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