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강원도 바우길 5구간

carmina 2011. 8. 5. 22:16

 

2011년 7월29일 여름 휴가 중

 

아내와 강원도 미시령 근처의 콘도에 3박 4일의 여정으로 잡아놓았다. 할 수 있으면 2개의 바우길 코스를 걷기 위해..

 

그런데..

휴가 첫날. 중부지방에 폭우가 쏟아지고 춘천에서는 봉사활동을 하던 대학생들이 10명 넘게 죽고,

서울 우면산에서는 산사태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여기 저기 교통이 통제되고, 휴가를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전전긍긍.

 

인터넷으로 조회해보니 강원도로 가는 영동고속도로는 마침 막힘이 없다.

오전 내내 기다리다가 더 지체되면 오늘 떠나지 못할 것 같아 무리를 해서라도 떠났더니

비는 많이 왔지만 길도 막히지 않고  편하게 설악산에 도착했다.

 

비가 많이 와 바우길 중에 제일 좋다는 대관령 옛길은 포기.

금요일은 마침 비가 오지 않아 편한 해변가 도로인 5구간 약 17키로를 걷기로 했다.

 

사천해변까지 차를 가지고 가 주차하고 해변주차장 안내원에게 바우길을 물으니 방향을 가르쳐 준다.

 

그 말을 믿고 조금 더 가니 반가운 바우길 표시.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정표가 큰 힘이 된다.

그렇게 이정표를 따라 가니 작은 사당도 하나 있고 사진을 찍으며 걸어가는데 길이 갈라 지는 곳에서 이정표가 안 보인다.

 

이럴리가 없는데..하고 안내센타에 전화해 보니..

내가 가는 곳은 5구간이 아니고 12구간이란다.

아차 그렇구나..왜 바우길이 양쪽으로 이어지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원래 계획했던 길이 아니라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원점으로 백.

 

이제 제대로 방향 잡고 걸어간다.

어제 비오는 설악산을 걷느라 아내는 운동화가 젖었다고 굽이 낮은 구두를 신은 모습을 보니 심히 걱정된다.

 

사천백사장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바닷가엔 애들과 부모들이 시원한 옷차림과 슬리퍼차림으로 깔깔거리며 놀고 있다.

 

그 사이를 등산화를 신고 배낭을 메고 걷는 내 모습이 언밸런스하지만 이게 내 인생이다.

 

여느 바닷가나 다 그렇지만 이 곳도 끝도 없는 소나무밭이 바닷가와 평행하게 달리고 있다.

 

나는 소나무밭의 푹신한 흙길을 아내는 신발이 불편하다고 도로의 푹신한 길을 걸었다.

 

소나무밭을 지나 오니 이정표는 모래밭으로 향해 있어 나는 모래와 수풀의 경계를 걷지만

아내는 조금 떨어진 도로옆 인도로 갈 수 밖에 없어 서로 멀리 바라보고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솔밭과 모래밭을 한참 걸어가니 순포해변.

TV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 촬영지라는 프랭카드가 걸려 있으나 사람들은 한산하다.

 

촬영한건 좋은데 이런 걸 알리느라고 깨끗해야만 할 바닷가가 각종 프랭카드로 어지럽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방영되면 오랜 기간동안 선전하느라 푸르름이 자랑이어야 할  자연 공간이 먼지묻은 인쇄물들로 지저분해진다.

 

앉아 쉴 곳이 없어 남의 집 앞에 있는 평상에서 잠시 쉬고 또 일어서자.  나는 줄곧 해변으로 걷고 아내는 줄곤 세멘트길로 걸었다.

 

동해안 바닷가가 모두 그렇지만 가는 곳마다 해변의 이름이 다르기에 생전처음 보는 이름들도 있다.

 

사근진해수욕장. 도로 건너편에 작은 인공폭포가 보이고 해변가에 나무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벤치는 이미 젊은이들이 선점해 버려 바닥에 앉아 쉴 수 밖에 없었다.

 

자 또 가자..

 

해얀경비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철조망을 지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간이 철망 다리도 건너고, 

소나무가 잘 자라도록 일부러 듬성 듬성 소나무를 잘라 버린 소나무 밭에 솔잎이 떨어져

또 무수히 많은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생명의 신비가 가득한 숲을 지나고 나니 더 편히 걸으라고 소나무 밭을 지나니 그 유명한 경포해변.

 

소나무 건드리지 말라고 그랬는지 소나무들 사이로 끝없이 나무 발판을 잘 만들어 놓았다.

 

룰루 랄라 길을 걷는다.

 

도로변에는 차들이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고 그 유명한 경포대 호수가 저 앞에 있다.  자 이제 경포호수를 돌아 볼까?

 

오늘은 다른 길보다 이 길 걷는게 가장 의미가 있을거야.

 

그런데 갑자기 아내의 제안.

우리 자전거 타자.

둘이 같이 페달을 밟는 이인승 자전거.

내가 자전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여기까지 묵묵히 따라온 아내가 고마와 선선히 그러마 하고 자전거를 시간당 2만원에 대여.

 

경포 호수 한 바퀴 도는데 약 40분 걸린단다.

 

자 떠나보자.

힘차게 페달을 밟아 보지만 그렇게 속도가 붙지는 않는다.

어차피 한 시간 타는 거니 일부러 가다 길가 흔들의자에 앉아 쉬기도 하며 느긋하게 경포대 호수를 돌았다.

 

평소 그렇게 넓게 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바퀴 돌아보니 호수가 무척 넓다. 걷는것 보다 오히려 더 힘든 것 같다.

경포호수는 걸은 걸로 하자.

 

걷는 것 보다 더 지루한 자전거 일주 후 경포대 바닷가에서 간단히 점심 식사.

 

다시 바닷가 쪽으로 나가 현대호텔을 끼고 돌아가니 강문해변.

해변가의 횟집들 수족관에 있는 싱싱한 생선들이 구미를 당긴다.

이따 만약에 회를 먹게 되면 여기와서 먹어야지.

 

강문해변 횟집중에 여기가 바우길 5구간 중간지점이라고 써 있는 곳이 있어 물어보니 앞으로 한 30분만 가면 된단다.

 

에이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거리상으로는 앞으로 2시간은 더 가야 한다.

 

강문해변 끝에서부터 이어지는 끝없는 소나무밭.  가끔 바이크를 즐기는 사람들의 무리가 지나가고

병든 소나무 하나 없는 울창한 숲속에 가끔 높은 곳에 바우길 표시가 있고, 그 숲 속에 아주 색깔이 예쁜 버섯들이 군데 군데 자라고 있다.

 

색깔이 아름다우면 독버섯이라 했었던가?  녹색의 대지속에 스며들어 더 미워보이는건가?

 

그 가운데 군부대 송정초소로 들어가는 곳에 팻말에도 재미있는 말을 써 놓았다.

 

"무엇인지/확실히/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외 등등..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도로옆 소나무도 베지 않고 인도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 흐뭇해 보인다.

 

아내는 발이 아픈지 도무지 신발을 신지 못하겠다고 신발 벗고 양말만 신은 채로 걷는다. 힘들텐데.. 

군소리 하지 않고 따라온다.

남들은 이 나이에 여름휴가라면 시원한 펜션 찾아가서 편히 쉬다 올텐데

그런 편안함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고생하는 것을 좋아하는 극성떠는 남편만나 심히 고생하고 있다.

 

그 솔밭 끝에 있는 안목항. 이 곳의 거의 카페 촌이다.

바닷가에 상가촌에 한 집 건너 카페 한 집 건너 횟집이다.

조금 있어 보이는 젊은애들이 카페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도 고급이다.

 

이전에 바닷가 상가들은 모두 간이건물로 허름해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젠 고급풍의 쉼터도 필요하다는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원래 코스는 안목항을 지나 강릉항 옆에 있는 죽도봉이라는 낮은 봉우리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아내의 형편상 우회해서 가기로 했다.

 

우회해서 돌아가니 바로 잘 만들어진 솔바람다리. 다리 건너편이 5구간의 종착점인 남항진.

 

다리 밑에 낚시를 즐기는 사람 무리를 지나 디자인 감각이 있는 다리 위로 올라가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까지 걸어오느라 수고한 아내를 살짝 안아주고 남항진으로 내려와 버스타는 곳을 물으니 버스편은 없다 한다.

 

마침 편의점 배달용 승합버스 하나가 나가는 것이 있기에 버스타는 곳까지 태워 줄 수 있느냐 하니

뒷자리에 가득찬 물건을 잠시 옆으로 옮기고 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큰 길이 나왔을 때 쯤 기사가 가는 방향과 버스 정류장이 있는 방향이 반대편이라

기사가 신호를 기다리며 한 참 생각하다가 우리를 생각해서 자기가 돌아가겠다며

우리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준다. 고마운 사람.

 

길을 걸으면 왜 그리 고마운 사람들이 많은지..

 

버스를 타고 다시 사천해변까지 가려 했는데 택시비도 그리 비싸지 않아 순식간에 시작지점인 사천해변으로 돌아와 첫번 바우길 걷기 끝.

 

다음에 기회되면 꼭 대관령 옛길을 비롯한 산길들을 걸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