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변산 마실길 셋째날

carmina 2012. 5. 1. 13:05

 

변산 마실길 3일째..

 

어제 밤처럼 일찍 자니 일찍 눈이 떠 진다.

어제 아침과는 다르게 오늘 아침이 다리가 뻐근하다.

발에 물집도 잡힌 것 같고...

 

가지고 온 과일도 다 먹었으니 가방이 조금 가뿐해져야 하는데

가방의 무게가 그대로 인것을 보니 기력이 어제와 조금 다름을 느낀다.

그러나...걷다보면 또 힘이 생기겠지.

 

아침은 일부러 다음 목적지인 곰소항을 찾아 먹기로 하고

인적없는 마을 길을 빠져 나오는데 갑자기 사나운 개의 짖어대는 소리.

끈으로 묶여있으면 그러려니 하는데 이 개는 풀어져 있다.

뒤를 따라오며 사정없이 짖는데 어느 순간 공격해 올까봐 등골이 오싹하다.

애써 태연한 채 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길을 벗어나니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아마 나를 마을에서 쫒아내기 위해 그렇게 짖어댔나 보다.

마을 주민들께서는 마실길 개방에 고맙지만 개를 끈으로 묶어 주시길...

 

보리밭이 양 옆으로 가득한 넓은 논길.

어떤 논에는 보리를 키우고 어떤 논은 봄 준비를 하는 듯 갈아 엎어져 있지만

어떤 논은 지난 해 벼수확 후 갈아 엎은 뒤로 손을 안대 피가 잔디처럼 무성하다.

어느 논에는 주민들이 모여 모판을 다듬고 있다.

이젠 농촌 어디를 가도 이전처럼 구불구불한 논의 모습은 보기 힘들다

모두가 사각형의 반듯한 논이라 기계농을 하기 편하다.

 

곰소항으로 가는 길은 외줄기.

어디서 술익는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

주위를 둘러 보니 이 넓은 벌판을 감싸고 있는 낮은 산들의 지세가

참으로 울퉁 불퉁 제각각이다.

 

거의 한시간 정도 걸었는데 이정표에 곰소항 0.5키로라고 표시되어 있어

곧 밥을 먹겠구나 하는 희망으로 걸었는데

500미터는 커녕 족히 몇 키로를 걸은 것같은에 아직도 곰소항에 도착하지 못했다.

 

이곳의 이정표에는 내소사 5키로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내소사는 다음에 새만금방조제 방문 때 가보아야겠다.

내소사를 가면 다시 이곳으로 걸어서 돌아 올려면 무려 10키로를 걸어야 하니

내 일정에 맞지 않는다.  

 

곰소항에는 온통 젓갈 시장이다.

어디를 가나 젓갈파는 곳.

사람들 많이 모인 그럴듯한 식당보다는

조금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메뉴를 보니

아침으로 먹기에는 젓갈 정식밖에 없다.

어부들이 이른 아침을 먹고 일어선 자리로 들어가

젓갈정식을 시켰는데 둥그런 칸막이형 접시에 젓갈이 무려 9가지나 들어 있다.

맛있게 아침을 먹고 나오며 젓갈 이름을 알려 달라하니

오징어젓, 토하젓, 어리굴젓, 창란젓, 바지락젓, 꼴뚜기젓, 아가미젓, 가리비젓, 갈치속젓이었다고

소개해 준다. 그 외에 갯가재 장이 맛있었고, 이 곳 부안에 있는 식당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말린 갈치 조림이 맛있다.

 

아침을 거하게 먹고, 어시장안에 들어가보니 어시장 뒷편에 생선들을 널어 말리고 있다.

참으로 많은 종류의 생선들이 비스듬히 뉘어진 그늘에서 강한 햇빛을 받으며 일광욕중.

조기, 박대기, 갈치, 아구,  바다장어, 우럭 등등...

내가 이런 생선을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아실까?

어릴 때는 박대기 껍질을 끓여 연실을 매겼는데 요즘은 무엇이 쓰는지 물어보니

우묵을 만든다고 한다.  아하..내가 좋아하는 우묵이 박대기 껍질로 만드는구나.. 

이것 저것 설명해 주던 아저씨가 고맙다고 인사하니

알려 주었으면 조금 사가지 그냥 간다고 섭섭해 한다.

먼길 가는 나그네라 그러지 못하다고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항구를 벗어난다.

 

어촌위로 제비가 쏜살같이 하늘을 나른다.

어촌에서 자란 나도 어릴 적의 추억들이 하늘을 날아 간다.

 

어촌을 빠져 나오니 이정표를 잃어 버렸다.

지난 번 지리산 둘레길 가서도 이런 도심지에서 이정표를 잃어버려 한참 헤맸었는데..

인근의 파출소에 들어가 마실길 가는 길을 물으니 잘 모르겠다며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다음 목적지인 곰소염전 가는 길을 물으니 방향을 가르쳐 주기에

다음부터는 마실길도 알려 달라고 당부하고 나왔다.

 

아직 어디에도 이정표가 없지만 방향을 잡고 가다 보면 나오겠지.

오른 편 아주 넓은 주차장에 유채꽃이 가득피어 있다

그런데 가는 길이 여러갈래.

안되겠다 싶어서 마실길 안내센타에 전화로 물어보니 방향을 잡아 준다.

 

다행히 금방 이정표를 잡았으나 공원으로 올라가란다.

작은 공원으로 갈 때 만 해도 이 곳의 장관을 몰랐는데

공원 옆으로 가다가 위로 올라가니 양옆의 곰소염전이 펼쳐져 있는데

이 또한 장관이다. 일부러 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언덕을 올라가라 했나보다.

 

공원에서 내려오니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어디로 가야 하나. 마실길 이정표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마침 커다란 도로 안내지도가 세워져 있어 보니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부안 자연생태공원 가는 30번 도로는

해안을 빙 돌아가지만 빨간 선으로 표시된 길은 해안을 통과해

가도록 되어 있어  바닷길 갯벌을 걷거나 혹은 뚝으로 가는구나 하고

마실길 안내센타에 물어보니 구진마을을 거쳐 가란다.

 

앞으로 갈 길을 생각해 구진 마을을 지나며 지나가는 마을사람에게

혹시 물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느냐 물어보니 없단다. 낭패다.

 

평화로운 마을길. 끝없는 논과 밭

마당이 넓은 집에는 인적이 없다.

가끔 낯선 나그네를 반기는 개들의 아우성이 있고..

 

천하대장군으로 만든 이정표 밑에 재미있는 글들이 써있다.

쏠찬히 거시기 하네..

잉.질게 살면 안되끄나..

까마귀가 성님 허것다.

 

마을길 중간 쯤 이정표가 논길로 가라 한다.

끝없는 논길을 따라 가다보니 제방이 가로 막는데 제방으로 올라가는 길이 없다.

그래도 억지로 제방위로 올라가 보니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왼쪽으로 가아햘지

끝없이 앞에 펼쳐진 갯벌위에서 방향 감각을 잃었다.

그래도 지도상으로 왼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아 가도 가도 마실길 이정표는 없다.

아무래도 잘 못 들어선 것 같지만 왔던 길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다.

 

마실길 안내센타에 전화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길을 잘 못들었다.

누군가 이정표를 돌려놓은 것 같다고 했더니 나중에 와서 보겠다 한다.

 

그렇게 힘들게 제방끝에 가니 마을이 보이고 작은 정자 하나.

논 뚝길, 제방길로 오지 않았으면 고즈넉한 마을길을 통과해 즐겁게 올 수 있었을텐데

너무 시간낭비를 해 버렸다. 그러면 어떠랴... 다 같은 길인걸..

 

아무래도 물이 모자를 것 같아 마을에 있는 집들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빈 집. 

그러다 어느 한 집에서 청년이 나와 마당 냉장창고에 있는 보리차를 덜어준다.

고마운 인정.

 

솟대의 기러기 주둥이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가다가

목적지인 생태공원을 가려면 다시 갯벌 맞은 편에 있는 긴 제방을 다시 걸어야 한다.

그러다가 이정표가 이상해 또 한 참을 고민하고..

이 곳은 마실길 관리센타에서 관리가 소홀한 듯 쓰러진 이정표가 몇 군데 보인다.

사람들 별로 안 다니는 길이라 걸어다닌 흔적도 없고

뚝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말라 죽어 있다.

 

그래도 그 사이로 작은 꽃들이 자라고 있으니

나 자신도 어느 순간에는 자연의 성장을 위한 거름이 되겠지..

 

낚싯군들이 보일 때 쯤 내 여정은 거의 끝나간다.

입술이 타고 있다. 발에 물집 잡힌게 조금 아프다.

아무래도 이 여행이 끝나면 몸살 좀 앓을 것 같다.

 

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사라져 버리고

폐기물 처리장이 나오고 그 곳을 지나니

다시 황량한 벌판이 펼쳐져 있다.

 

생태공원 500미터 전방.

멀리 생태공원에 커다란 바람개비가 돌고 있다.

이렇게 변산 마실길의 긴 여정을 마쳤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앞으로 내 버킷 리스트중의 하나인 산티아고 길을 갈려면

이런 고생은 수없이 겪어야 한다.

그래도 그 길을 가고 싶다.

이런 짧은 여정은 단지 맛배기일 뿐이다.

 

자...이 곳에서 버스를 타러 나갈려면 어찌 해야 하나..

어찌 어찌 작업차량을 얻어 타고 즐포터미날로 나가

오랜 시간 버스를 기다려 다시 부안터미날로 돌아와

시골 냄새 물씬나는 장터 구경을 한 후

식당에서 점심 한끼를 간단히 때우고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으나 몸이 피곤한데도 잠은 오지 않는다.

 

변산 마실길은 곰소까지만 가는 것으로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

곰소항에서는 시외버스도 있으니 교통편도 좋지만

부안생태공원까지 가는 길은 돌아가는 버스편도 없고 조금 지루하다.

 

올해도 영원히 남을 추억하나 만들었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