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 교동도 머르메길

carmina 2013. 3. 24. 00:06

 

2013년 3월 23일

 

하늘 맑은 날 ,

며칠 동안 미세먼지와 황사로 도심의 시야가 뿌연 나들을 보내야만 했다.

사무실에서 맑은 날이면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이던 백운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북한산의 큰 산맥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토요일 어렵게 찾은 강화 나들길.

월요일부터 이번 나들길 공지가 올라왔다.

나들길 10코스인 교동 머르메길은 민통선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기이

미리 참가를 신청해야 하고, 신상정보를 군에 사전에 통보해 주어야 한다고..

갈지 못갈지 모르지만 우선 신청해 두었다.

그러더니 목요일 쯤에 신청자가 몰려서 더 이상 신청받지 않는다고..

평소 주식은 하지 않지만 미리 참가 신청해 놓은 것이 내가 사놓은 주식 올라간 것처럼 좋았다.

 

강화터미널에서 평소 9시 반까지 모이지만 오늘은 선착장까지 가야하기에

9시 5분행 창후리행 32번 버스를 타야한다.

조금 서둘렀다.

어제 야근하고 집에 오니 밤 12시가 다 되어 늦게 잤지만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고

마침 강화가는 버스도 시간이 잘 맞았다.

 

평소 손님이 그리 많지 않게 다녔을 시내버스가 오늘은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고 버스에서 내려 좁은 창후리 터미널에 들어서니 여기도 설 자리가 없다. 

새우깡을 즐기는 갈매기들은 승객과 차를 가득 채운 페리호와 동거동락한다.

 

머르메길은 원래 교동의 중간쯤에서 시작하여 긴 벌판을 걸어가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강화군청에서 편의를 봐 주어 교동에 2대 밖에 없는 셔틀버스를 동시에 불러 길벗들을

오늘의 출발점인 난정저수지로 데려다 주었다.

 

지난 번에 왔을 때도 이맘 때 쯤이었던 것 같은데, 저수지 뚝의 마른 겨울 잔디가 모두 불에 타서

그슬려 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는 않아도 겨우내 자라지 않은 마른 잔디가 겨우 흙을 덮을 정도였다.

 

그런데 수 많은 길벗들이 동시에 뚝에 올라가 걷는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마치 바닷속의 크릴새우 무리같이 하루살이보다 조금 큰 벌레들이

우리 무리와 함께 날아다닌다. 마치 미세먼지같이 우리를 감싸고

우리는 그 날파리들의 거대한 움직임속에 저절로 쓸려가는 것 같았다.

 

앞서가는 어느 아줌마의 연두색 점퍼뒤에는 새까맣게 파리들이 앉아 있다.

긴 뚝을 걷는 동안 입을 벌리며 얘기하면 파리들이 입안으로 들어올까봐

가능한 얘기도 하지 않고 걷다 보니 앞서 가던 사람들이 우르르 뚝 밑 아스팔트로 내려간다.

아마 아스팔트길에는 날파리들이 없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무리는 뚝 위, 한 무리는 뚝 아래로 걷는데 갑자기 또 다른 장관이 펼쳐진다.

멀리 황량한 겨울 논에서 까마귀인지 오리인지 거대한 새의 무리가 하늘로 동시에 날아 올랐다.

금강 하구언이나 유명 철새 도래지에서서 볼 수 있는 철새의 군무가 이 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 반대편 저수지에는 멀리 북한 땅이 보이고

바람 한 점 없어 유리알같이 잔잔한 수면과 구름 한 점없는 하늘 사이에 있는 낮은 산이

수면에 투영되어 멋진 데깔꼬마니가 연출되었다.

집에 와서 그 사진을 보니 얼마나 좋던지..

 

뚝을 지나서야 겨우 날파리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또 다른 불편함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저수지가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소나무  옆을 지나 수정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공사 중인지 길이 질퍽거린다. 모두 조심 조심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오늘은 새로 온 사람들이 무척 많은데 나들길에 불편을 호소할 것 같았다.

 

이전에 아무 안내없이 뎅그마니 길 옆에 있었던 옛날한증막 주위에

안내판도 세워 놓고 주위에 의자도 준비해 놓았다.

이러느라고 이렇게 올라오는 길이 난리였구먼?

 

수정산으로 힘들게 올라가니 아침에 추워서 껴 입었던 옷이 답답해 지고

머리와 등에 땀이 흐르는 상쾌함을 느낀다.

 

수정산에 오르는 사면에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멀리 벌판이 보이고 다른 쪽에는 넓은 저수지

또 다른 면에 오솔길,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긴 능선길.

그 사이의 길벗들의 긴 행렬.

3D 영화로 보여 줄 수 있을까? 이 멋진 조화를?

 

수정산 정산에 항공기의 비행 북상 제한을 위해 표시해 놓은

노란 돌무더기위에는 잡초들이 무성한데 손 좀 봐야 할 것 같다.

 

겨울이라 앙상한 나무 숲 사이로 난 유난히 긴 능선길을 내려가는

긴 행렬사이에 봄기운의 아지랑이가 피어 오를 것만 같다.

그런데 오늘은 그 아지랑이들이 총천연색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길을 가다가 별로 대화 없이 앞만 보고 가던 이들이

이정표를 보지 않고 걷다가 다른 길로 가버려 리드하는 이가 걱정하고 있다.

 

마을을 지난다. 몇 십년 간 거의 변함이 없었을 것 같은 교동의 마을들.

어쩌다가 지붕개량한 집들은 보이지만 지붕 아래로는 이전 모습 그대로다

이제 이 곳에 강화도와 교동을 잇는 연육교가 생기고

도시의 자본들이 들어 오면 이 모습들도 사라지겠지?

길을 같이 걷는 길벗들에게 이런 내 생각을 들려 주니

'이 곳은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라고 아쉬워한다.

그러나 그건 단지 내 것이 아닌 것에게 기대하는

터무니없는 바램일 뿐 일 것이다.

 

오랜 세월 같이 지낸 듯한 세 아줌마 친구가 동요를 부르며 걷는다.

그 틈에 슬며시 끼어 들어 오랜만에 동요 부르기에 합세한다.

노래를 부르는 그 들의 모습은 마치

기분좋아 투스텝으로 종종걸음으로 뛰어 노는 어린아이같이 행복해 보인다.

이 들이 부르는 동요처럼 이 곳에 오면 모두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살아 나기를 바란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곳.

이 곳 머르메길에선 식당이 없기에 마을 사람들이 도와주기로 했다.

촌스러운 '마을회관'이라는 명칭 대신에 '농민건강관리실'이라고

붙인 간판에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왜일까?

 

이 곳에서 먹는 점심은 그야말로 이 곳에서 재배하고 자연에서

저절로 얻어진 재료로 자급자족하여 만든 반찬들이다.

동네 아줌마들이 직접 캔 냉이와 달래와 고구마로 만든 묵,

무 생채, 그리고 산나물과 비지찌게.

모두들 이런 음식 얼마만이냐 하고 좋아라하며 밥상에 빠져 든다.

 

맛있는 점심을 즐기고 긴 벌판을 지나 가는데

저 멀리서 논뚝에 불을 놓아 커다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봄이 오기 전에 불을 놓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점도 있다하지만

그 반대의 폐해도 있다하는데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길을 끝나기 전에 잠시 쉬는데 다른 일행들은 봄 나물을 캐기 바쁘다

이렇게 오늘의 일정을 끝낸다.

워낙 인원이 많아 앞서 간 일행들은 중간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그냥 지나쳐 버렸다.

누군가 앞 뒤에서 리드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나 조금 더 가면 어떠랴.

나도 오늘은 걷는게 조금 부족했다.

더 걷고 싶었는데... 남은 길은 모두 아스팔트길.

그냥 오늘의 일정을 접어야 했다.

 

걷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배를 기다리는 시간.

그러나 우리의 시간이 선착장에서 검문을 서는

해병대원들의 기다림의 시간에 비하면 찰라에 불과하고

한 시간 마다 한대씩 있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막연하게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역에서 노숙하는 이들의 기다림에 비해서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차라리 사치에 가깝다.  

바삐 움직여야 하는 시간보다 기다림의 시간도 내 삶의 큰 부분이다.

그런 짧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즐기는 자만이 인생을 멋지게 사는 사람임을 확신한다.

 

교동도에 가면 기다림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하염없이 멈추어 있는 마을들.

천천히 움직이는 마을 사람들. 

그 세월의 코마속에 나도 바쁜 생활을 멈추고

잠시 쉬고 싶은 것은 요즘 내가 힘들어일까?

 

논가의 도로에는 비료부대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이제 곧 잠을 깰 흙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교동으로 들어오는 페리호에서 비료를 가득 실은 대형 트럭들이

들어 오고 있고...

 

이제 대지가 잠을 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