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깅화나들길 석모도 바람길

carmina 2013. 4. 21. 20:14

 

 

2013년 4월 20일 토요일

 

강화로 가는 내 차 안에서 초기 녹음의 클래식 음악들이 흘러나오는데

노래나 바이올린 소리 만큼이나 잡음이 크게 들린다.

옛날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성악가의 멜랑꼬리한 음악들,

1903년에 사라사테가 자기가 작곡한 곡을 직접 녹음한 음악.

하긴 1906년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하기 전에 녹음된 음악들이니

상태가 가히 잠직되지만 워낙 잡음이 빗소리같이 크게 들려

혹시 비가 많이 내리는게 아닌가 하고 소리를 줄여보니 조용하다.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들.

난 그래서 강화로 간다. 강화를 가면 난 어머니의 자궁속으로 들어가는 편안함을 느낀다.

 

강화 나들길 매니아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한 코스가 몇 개 있다.

석모도, 볼음도, 주문도 등 모두 섬에 있는 코스들을 아직 밟아 보지 못했다.

볼음도와 주문도는 1박 2일로 가야 하는 곳이기에 아직 엄두도 못내고 있고

석모도는 그렇지 않은데도 이상하게 늦어졌기에

오늘은 예정되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기회가 생겨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외포리 선착장 옆 공간에 주차하고, 왕복 요금이 2000원 밖에 안하는 페리호에 올랐다.

비가 와서 그런지 여행객이 별로 없고 승용차나 버스에 오른 채 객실로 들어오지 않았다.

외포리에서 석모도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은 짧은 거리다.

석모도의 바람길 코스를 보니 거의 바닷가를 걷기에 혹시나 점심을 먹을 곳이 없을 것 같아

컵라면과 조금 추울 것 같아 뜨거운 캔 커피 하나를 하나 챙겨 넣었다.

 

객실안에 배낭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는지 나들길가는 입구에는 아무도 없다.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코스라 무인스탬프 박스의 도장도 손잡이가 떨어져 있고

잉크패드에도 물에 푹 젖어 있다.  그래도 깨끗하게 마련해 준 화장실이 있어 좋다.

 

부슬 부슬 내리는 봄비에 우비를 걸치는 대신 사진을 찍고 싶어 우산을 들었다.

다행이 지난 며칠간 강하게 불던 바람은  오늘은 잠잠한 편이다.

 

멀리 보이는 낮은 산의 정상 부분에 비구름이 아이스크림처럼 올려져 있고

바다에는 조용히 내리는 비로 작은 파장이 그려진다.

오늘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만날 것 같지 않다.

혼자 걷는 기분. 이 기분을 남들은 알까?

 

아직은 갯벌 식물들도 제철이 아닌 듯 제 색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산의 나무들이 제 빛깔을 표현 할 때 쯤  갯벌도 화사한 옷을 입을 것이다.

바람길은 콘크리트 방죽으로 시작해서 방죽으로 끝난다.

 

콘크리트 둑가에 짙은 갈색의 나들길 이정표가 우뚝 서 있다.

이정표에 제주 올레길처럼 일련 번호를 붙이면 비상상황시 금새 위치를 알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둑방길.  둑 옆에 흙길이 있기도 하지만 오늘은 비가 와

흙을 밟으니 신발이 푸욱 들어가 버린다.

아무래도 오늘은 오래 걸으면 피로가 쉽게 오는 세멘트 길로만 걸어야 할 팔자인가 보다.

 

석모도의 갯벌 색깔이 강화도 주변의 갯벌색깔보다 조금 옅어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인가?

아니면 다른 곳보다 갯벌오염이 덜 되어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 곳도 갯벌 주위에 각종 폐 어구들이 방치되어 있는 것은 여전하다.

대형 스티로폼과 그물들 부유들과 외계에서 떨어진 듯한 대형 볼도 보인다.

 

바다야 이렇게 더러워지지만 산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하다.

때가 때인지라 진달래가 산 언덕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특히 강화도의 고려산 일대의 진달래군락지는 유명하여

다음 주에 시작되는 고려산 진달래 축제에는 수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강화도를 찾는다.

 

비가 오고 주위의 사물들이 죽은 색갈들이지만 진달래가 그 모든 것을 덮어 주고 있다.

그러나 진달래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왜 슬픔이 생각나는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주는 진한 각인이 두고 두고 사라지지 않는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가곡으로 부르는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걷는다.

인근의 펜션도 모두 인적이 없고  

앞 마당에 묶여 있는 개들만 이 곳에 사람사는 동네라며 알려준다.

끝이 없는 둑방길. 난 자유로운 영혼이다.

 

가끔 밋밋한 둑방길에도 갈대 숲길을 다듬어 놓아 한 여름에 걸을 때는

시원함을 줄 것도 같다.

그러나 이런 길도 흙길이 많아 비가 와서 질퍽거리기만 한다.

아무래도 오늘은 석모도 바람길을 제대로 즐기기는 힘들다.

그러나 바람이 만약 강하게 불면 이렇게 편하게 걷지는 못할텐데 그나마 다행이다.

 

우산을 든 손이 조금 추워도 혼자 걸으니 빨리 걷게 되어  등에는 땀이 난다.

얼마나 걸었나. 시간을 보니 1시간 걸었다.

인적없는 매음리 선착장이 보인다.

아마 사람을 실어 나르는 페리호가 오가는 석포선착장과는 별도로

화물용 선착장으로 사용하는 듯 하다.

 

선착장 사무실의 추녀 밑에서 피자 한 조각으로 아침을 때운 허기를 달래느라

초코렛을 몇 개 입에 털어 넣었다.

잠시 쉬는 동안에  이 곳에 뭐라도 구경할 것이 있는지 스쳐 지나가는 차들이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진다.

 

조금 추워지는 듯해 옷을 하나 더 걸치고 길을 나서는데 한참 도로 확장공사중인 듯

땅이 질퍽하다. 마른 듯한 땅도 밟아 보면 질퍽하고 이정표는 어디로 갔을까?

 

둘레 둘레 찾아 보니 이정표는 둑길로 가라는 듯 한데

그 앞에 흙더미를 잔뜩 쌓아 놓아 그 길로 갈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공사중인 도로를 따라가다가 둑길로 올라섰다.

마치 조각작품같이 보이는 바닷가 바위 위에 뿌리를 박고 길게 늘어진 소나무가

고풍스러워 보여 여러 각도에서 연신 셔터를 눌러 댔다.

 

잘 다듬어진 풀길을 따라 가다가 멀리 보니 화장실 같은 집 한 채 가 있어

이런 막막한 길에 화장실이 있어 길 걷는 이들이 무척 반갑겠다 하고 다가갔는데

그만 입이 떡 벌어져 버렸다.

겉모습만 세운지 얼마 안되는 화장실이지 내부는 남녀 화장실 모두 그야말로 쓰레기 천지고

문도 모두 떨어져 나가 버렸다. 떨어진 문짝도 보이지 않고...

아마 문을 열어 둔 채로 두었는데 비닷가 거친 바람 때문에 모두 파손된 것 같다.

안타까와라. 전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은 화장실을 보며 길 벗들이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거친 바람은 화장실 뿐만이 아니라 길가의 작은 창고도 모두 갈갈이 찢어 놓았다.

바람 동네에 있는 집들은 모두 저래야만 하는구나.

제주도는 그렇게 바람이 세도  이런 집들을 보지 못했는데 여긴 조금 너무했다.

 

갯벌로 내려갈 수 있도록 긴 계단이 둑에서 바다로 드리워져 있고 계단에 이어진 줄 끝이

바닷물 속까지 들어가 있다. 저게 무얼까?

밀물 때인지 갯골에 물이 서서히 차고 있다. 커다란 S자의 모습으로 이어진 갯골이

요즘 우리 회사에서 시행하는 S-Walking 의 상징과 같다.

 

가끔 내가 얼마나 걸어왔는지 뒤를 돌아 보니 끝이 안 보일 정도다.

어느 순간, 갈매기 두 마리가 나를 향해 곧장 날아오기에 얼른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그먄 앞에서 찍는 것은 놓치고 뒷 모습만 활영할 수 있었다.

갈매기의 눈은 제대로 찍으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눈이 매섭다.

 

시간은 아직 12시도 안되었지만 아침을 부실하게 먹고 빠르게 걸어서인지 배가 출출하다

눈에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멀리 어류정항 선착장에

식당이 있는 것 같다. 길 끝에 펜션에 식당을 겸하고 있다고 써 있지만 바닷가에 나가 먹고 싶어

나들길을 벗어나 선착장에 나가 몇 개의 식당에 들어가 혹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칼국수나 회 덮밥이 가능한지 물어 보니 어느 집도 몇 명이 같이 먹는 식사 밖에 안된단다.

친절한 할머니 한 분이 내가 지나 온 펜션에서 칼국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해서

다시 길을 돌아 펜션으로 가보았는데 인기척은 있는데 식당의 문이 닫혀 있고

내부는 마치 노략질 당한 집같이 탁자가 쓰러지고 물건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어 엉망진창이다.

 

다시 마을 속으로 들어가 몇 군데 식당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모두 문이 닫혀 있거나 영업을 하지 않는단다.

어쩔 수 없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들어가 준비해 간 컵라면으로 요기를 대신했다.

 

머리가 눈처럼 하얀 할머니 한 분이 비를 맞으며 

작은 텃밭에 앉아 호미로 흙을 다듬고 계시기에 인사를 드리니

상추를 심는다며 싹이 이제 막 나오고 있는 상추를 보여 주신다.  

 

그 근처에 어느 곳에서 갈매기들이 떼로 모여 있어 무언가 열심히 먹고 있다.

갯벌도 아닌 곳에서 왜 저렇게 모여 있을까?

아마 작은 생선들을 누군가 그 곳에 버린 것 같다.

수 십마리의 갈매기들이 연신 비닐 하우스 주위를 맴돌고 있다.

 

어느 펜션으로 가는 경사진 길을 따라 가다가 마을길로 접어 들어간다.

진달래꽃 마을, 인적 없는 마을 주위가 모두 마른 대나무잎과 진달래로 둘러 쌓여 있다.

마을 끝에 작은 백사장. 남자 2명이 백사장의 숲 속에서 무언가를 캐고 있기에

가서 바라보니 흰 뿌리가 선명한 달래를 모래밭에서 훑어내고 있다.

달래도 무리지어 있는지 작은 공간에서 많은 달래를 주워 담는다.

 

바다의 중간 쯤에 부산의 오륙도처럼 작은 바위들이 솟아 있고

언덕끝에 여러 모양의 바위들이 뾰족하게 솟아 있어 가보고 싶었지만

밀물때인지라 물이 바위 밑을 쳐 들어 오고 있어 그냥 통과한다.

 

완전히 진달래로 덮힌 낮은 언덕을 올라가며 진달래에 취해 넘어 가니

공사하느라 어지럽혀지고 질퍽하여 발 딛기도 쉽지 않은 넓은 공간에

제법 큰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이곳이 민머루해변이다.

간 밤에 텐트치고 즐긴 가족들이 정리를 하고 있고,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뛰어 놀고 있다.

그런데 그만 갈 방향을 잃어 버렸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이정표나 노란 리본이 보이지 않는다.

이 곳에 어느 누구에게도 나들길을 물어 보면 아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할 수 없이 전화로 잘아는 나들길지기에게 물어 보니 자세히 가르쳐 주어

언덕을 올라가니 보이지 않는 곳에 리본 하나 걸려 있다.

아무래도 석모도 바람길은 정비가 필요할 것 같다.

 

가파른 언덕 위에 펜션과 식당.

펜션 앞에 비록 뿌연 날씨이지만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어 기분이 좋다.

펜션 앞에서부터 내려가는 길은 잘 포장된 도로.

질퍽한 흙길을 오래 걸어서 인지 이젠 여유만만하게 걷는다.

그러나 보이는 곳마다 펜션을 새로 짓느라 산이 여기 저기 훼손되어 있다.

길 곳곳에 버려진 양심들로 쓰레기 들이 보이고

그래도 어느 곳에서는 버려진 냉장고를 이용하여 겨울철에 언덕길에 사용할

모래를 담아 놓았다.

 

홀로 길을 걷다 보니 친구들이 여기 저기 몰려 온다.

참새무리가 나보다 몇 걸음씩 계속 앞질러가는 하면

갈매기들이 내 주위를 둘러 쌓고,

작은 박새들이 숲 속에서 나를 외면하는 척 지켜 보고 있으며

논가에는 우아하게 날아가는 해오라기와, 지금은 내 앞에서

까마귀 두 마리가 이리 저리 나무를 옮겨가며 내게 말을 건다.

 

한참 많이 걸어온 것 같다. 지도를 보니 석모도의 반대편 길에 도달한 것 같다.

수로가 시작되는 곳에서 누군가 검은 사냥개 한 마리를 모형으로 세워 놓았는데

조각품이지만 눈이 상당히 매섭다. 제발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길...

그러나 여기서 부터 길이 않좋아 흙길인데도 갯벌길을 걷는 것같이 푹푹 빠지고

미끄럽다. 이러다가 한 번 미끄러지면 완전히 낭패다.

 

잠시 쉬며 지도를 보니 이젠 끝없이 반듯한 먼 길을 가야 한다.

둑길에 올라서니 아주 멀리 까마득하게 도로가 보이고  

옆에는 낚싯군들이 두명 세명 모여서 비오는 오후를 즐기고 있다.

잘 다듬어진 둑방길. 잡풀도 잘 제거해 놓았고 걷기도 편하다.

오리들도 평화롭게 쌍을 지어 물살을 가르며 데이트를 즐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발바닥이 아프다. 세멘트 길을 피하고 가능한 흙길을 걷지만

흙길조차 잔디가 없는 곳은 질퍽하여 어쩔 수 없이 다시 세멘트길.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긴 긴 길을 홀로 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일부러 우산을 접고 비를 맞기도 하고

때론 멍하니 먼 하늘을 바라보며 명상에 젖어 보기도 한다.

 

무아지경으로 긴 둑길을 걷고 멀리 보문사의 음각 부처가 보인다.

얼마나 걸어야 저 앞까지 갈 수 있을까?

아직도 길은 먼데 멀리 밭에 아주머니 두 분이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캐고 있다.

둑길로 계속 걸을 것 같았는데 길이 오른 쪽으로 꺽이며 쑥을 캐고 있는 아주머니들 있는 곳으로

가는 것 같더니 바로 그 앞이 보문사 입구네.

거기 쯤에서 오늘 길이 끝난다.

 

보문사 입구에 사람들이 무척 많다.

좌판벌려 나물과 농작물을 파는 할머니들 앞에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 몰려 있고

보문사 주차장엔 대형 버스들이 빼곡하게 줄지어 있다.

 

허기진 배를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하다가

주차장 앞 식당에 들어가니 아까 오전에 배를 같이 타고 온 아주머니가

식당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반갑게 인사하고 내가 선착장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왔다 했더니

힘들었을거며 놀란다.

 

내가 내게 주는 선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장, 튀김등을 한 꺼번에 먹을 수 있는

시골밥상 정식으로 주문하니 식탁에 반찬이 그득해 진다.

배가 고팠는지 모든 반찬이 입에 착착 감긴다.

미나리로 무친 묵과 벤댕이, 그리 짜지 않은 조개젓과 달콤한 된장국,

먹음직한 게장과 조기 한 마리. 각종 나물과 마른 반찬들.

음식이 거의 초토화가 될 만큼 다 먹고 길거리에서 나물들을

검은 비닐에 담아 돌아오며 오늘의 흐뭇한 여정을 끝낸다.

 

이제 나들길 15코스 중 서도코스인 볼음도와 주문도만 남았다.

가 본 사람들 얘기로는 바닷길과 일출 일몰이 무척 멋있다는데

언제 이 길을 가볼려나. 혼자 가기는 쉽지 않은 길인데..

 

언젠가는 가겠지..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