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도령 첫사랑길 가이드

carmina 2013. 4. 28. 15:51

 

2013년 4월 27일

 

평소 나들길을 다니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이

한국의 진정한 시골길을 알길 없는 외국인들에게 이 길을 알리고 싶다 하는

혼자만의 바램이 있었다.

 

마침 회사에 외국인이 1000명이 넘을 정도로 무척 많으나 

쉽게 기회가 안 나던 중 안면이 있는 젊은 멕시코인에게 의향을 떠 보았더니

좋아라 하며 다른 친구도 같이 가도 되느냐기에 Why not? 했다.

 

당초는 우리 토요 걷기 그룹의 사람들과 같이 걸을려 했었는데

정기 모임 코스가 강화 고려산 진달래 축제 참가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기에

이 축제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사람구경 때문에 불평이 많다기에

우리끼리 따로 걷기로 하고, 여러 코스 중 스토리가 있는 강화도령 첫사랑길을 택했다.

 

멕시코와 폴랜드 직원 2 사람이 각각 부인이랑 같이 온다하니

그 들에게 강화도를 설명해 줄 여러 역사들을 미리 공부해 두었다.

 

날씨는 맑았다.

고촌에서 강화로 가는 광역버스에 오르니 앉을 자리가 없다.

이제껏 강화를 다녔어도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은 적이 없었는데

오늘 아무래도 일정이 녹록치 않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도로 보수까지 하느라 교통체증이 심해 지더니

시간이 지날 수록 차량이 많아 지더니 나도 약속시간보다 10분 늦었다.

당초 평촌에서 강화까지 승용차로 오면 1시간 반이면 충분히 올 수 있는데

10시까지 온다던 직원은 11시 반이나 되어야 도착했다.

 

등산복이 아닌 시원한 여름 옷으로 편하게 입은 젊은 부부.

오늘의 트레킹 준비 복장은 등산화가 전부.

아마 이 정도 준비면 어느 코스던 갈 수 있을텐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누구 표현을 빌면 히말라야 트레킹 복장으로

동네 뒷산을 오른다며 빈정대기도 한다.

 

강화 터미널에서 나들길 전체 15코스와 오늘 걸을 코스를 설명하고

오늘이 강화 장날이라 일부러 강화 풍물 시장 앞으로 가니

시장 앞에 강아지, 오리, 토끼, 염소, 닭 등 각종 가축들이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보며 즐거워 한다.

시장 내는 온갖 장삿군들이 좌판을 펼치고 있지만

이따 걷기 끝내고 이 곳으로 다시 오겠다고 하며 길을 재축했다.

 

강화도령인 이조 시대 철종이 어릴 때 살았다는 용흥궁에 도착해

강화도령의 사랑이야기와 갑자기 평민에서  

임금이 된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려 주니 신기해 한다.

나들길 여권을 하나씩 주고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절 같이 생긴 건물 양식과 강화 성당의 역사를 설명해 주고 들어가려 했더니

오늘은 아깝게도 문이 닫혀있다. 내부를 보면 더 신기했을텐데...

 

시끄러운 도심을 지나 숲길로 접어 드니 갑자기 사라진 도심의 소음 대신

풀냄새와 새들의 지저귐이 들리니 얼굴 표정들이 바뀌며 신기해 한다로

진달래 잎을 따서 먹어 보기도 하고, 떡이나 술 빚을 때 사용한다 하니

자기 나라에서도 야생 버섯을 먹는다며 한 참 얘기해 준다.

 

청학동 약수터에서 잠시 쉬며 내가 준비해 간 방울 토마토를 주니

한 두개 집어 먹고는 그다지 땡기지 않는지

자기들이 가지고 온 초코렛을 나에게 나누어 준다. 

 

뒤를 따라만 오던 부인이 앞장을 서서 올라가는데 이정표의 방향을 놓치더니

나보고 앞장 서라며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하며 웃는다.

 

거북바위 아래 양초를 놓고 소원을 비는 한국인들의 무속신앙을 얘기해 주니

그 앞에 놓인 빗자루로 거북 바위 아래 지저분해진 발판을 깨끗이 청소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남장대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바위 터널을 통과하는 곳에서는

어제 전철에서 키 큰 사람이 전철탈 때 고개를 숙이며  들어가더라며 낄 낄 웃는다.

자연 속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즐겁기만 하다.

 

남장대로 가는 길에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둘러 앉아 점심을 먹다가

외국인들이 옆을 지나가니 짧은 인사를 건넨다.

남장대에서 지도를 펼쳐 보여 주며 바다 저 건너편이 북한이라고 알려 주었더니

시력이 좋은 부인이 건너편에 보이는 북한 지역의 건축물들을 알려 준다.

그들에게 북한의 산과 한국의 산의 색깔이

북한의 민둥산과 한국의 수풀때문에 다르고 

한국전쟁 후 박 전 대통령이 푸른 산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알려 주었다.

 

남장대를 내려 오면서 우린 끝없이 얘기를 나누었다.

회사에서 보며 주제가 업무 이야기밖에 없을텐데 자연 속에서 만나니

서로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가족에 대해 말하고, 친구에 대해 말하고, 집에 대해서 서슴없이 말한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을 보며 즐거워 하고,

한글을 떠듬 떠듬 읽을 줄 알기에 보는 것마다 무슨 뜻이냐며 묻는다.

마치 어린 아이들과 같이 걷는 기분이랄까?

 

김소월의 시 진달래의 뜻과 우리나라의 대표 민요 아리랑의 뜻을

영어로 알려주니 무척 재미있어 한다.

아리랑 노래는 흥얼거릴 줄 알지만 무슨 뜻인 줄 몰랐는데

그게 저주하는 노래라며 깔깔 웃는다.

 

길가의 밭에서 농부가 봄맞이 모종을 하는 모습과 고구마 밭을 가꾸고

인삼밭의 검은 덮개을 보면서 한국을 여기 저기 여행하며 많이 본 적이 있다고

조금씩 한국을 알아가고 있다고 한다.

 

숲 길을 내려와 한적한 마을의 집들을 보녀

독채로 이쁘게 세워져 있는 집들을 보며

이런 집하나 가지고 싶다는 마음은 우리 모두 같은가 보다.

 

나들길에도 여기 저기 공사를 하기에 

가끔 반드시 길이 갈라진 곳에서는 이정표가 있어야 하는데

공사하느라 잠시 치웠는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숲 속을 지나가며 저 숲 너머에 식당이 있다 하니 좋아라 한다.

 

늦게 출발하였기에 식당이 있는 찬우물 삼거리까지 가는데

이미 2시가 훨씬 넘어 버렸다. 말은 안하지만 배도 고플 것이다.

 

찬우물 삼거리 못미처 약수터에 아주머니들이 좌판을 벌려 놓고

우리에게 아는 체를 하기에 가까이 가서 검은 콩을 보더니

블루 벨리인 줄 알았다 한다.

 

지난 번  이 길에서 맛있게 먹었던 순대집을 찾아 가

자리를 잡으니 모두 힘들어 한다.

보리비빔밥과 알밥을 시키고 나는 순대국을 시키며

순대를 따로 주문했다.

 

비빔밥을 먹으며 처음엔 순대 먹는 것을 조금 꺼리더니

하나를 먹어 보더니 서로 익숙하지 젓가락질로 쟁탈하듯이

금방 한 접시를 비워버리고는 한 접시 더 시켜 달란다.

하긴 속에 당면대신 고기를 넣은 이 집 순대가 조금 특이하다. 나도 지난 번 반했으니까..

순대 자체의 재료도 일반 순대와 재질이 다르다.

 

식사 후 계단을 올라가 숲 길을 계속 이야기를 하며 진달래가 가득 피어 있는 

곧은 길로 가다 보니 길이 갈라진다. 그런데 이정표가 없다.

생각해 보니 계속 나들길 리본을 보지 못한 것 같다.

분명 지난 번에 가파른 계단을 올라 왔고 철봉대가 있는 곳에서 쉬기도 했었는데

어디서 지나쳤을까?  직원들을 그대로 두고 나 혼자 뒤로 한 참을 돌아가다가

길을 찾고는 전화로 직원들을 불렀다.

얘기에 집중하다 보니 오른 쪽으로 가라고 이정표가 몇 개씩 붙어 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리딩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

운전할 때도 가끔 옆에 사람과 얘기하다가 그만 네비게이터가 지시하는 것을

못 들을 때도 있듯이 길 안내도 역시 집중할 필요가 있다.

 

철종외가로 가는 길에 조금 특이한 나무가 있다.

쓰러져 가는 나무를 옆에 있는 나무가 팔을 벌려 받쳐 주고 있는 것을 보며

내가 이 나무가 무슨 그림과 비슷한지 생각해 보라 했더니

'피에타'라고 말한다. 맞아 그게 내가 바라던 대답이야.

로마의 바티칸 성당에 들어 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

성모 마리아가 옆구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예수를 팔로 받쳐 주고 있는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이 나무를 피에타라고 이름짓자.

 

넓은 벌판을 지나는데 바람이 분다.

벗었던 자켓을 입을까 하다 봄바람이 좋아 그대로 흘러 내리는 땀을 바람에 식혔다.

원래 여기 어디 쯤에선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길이 무척 생소한 새로 잘 닦아 놓은 아스팔트 도로이다.

이렇게 가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내가 혹시 착각하는게 아닌가 하고 그대로 지나치다가

길가의 농부에게 철종 외가 가는 길을 물어 보니 바로 옆에 있단다.

 

생각해 보니 원래의 길이 농삿군들이 밭을 일구어 놓아 길이 사라져 버렸다.

쨋든 목적지에 도달했다.

 

조용한 철종 외가. 데이트 하는 연인이 집을 구경하고 있다.

직원들이 집 여기 저기를 들여다 보며 갑자기 달려 오더니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보여 주며

뱀을 봤다고 한다.

뒷 마당에 우물 안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어 나무 가지로 건져서 밖으로 내 보내 주었더니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며 즐거워 한다.

 

한옥집의 특성을 내가 설명해 주니 직원 부인이 사진을 찍다가 문득 나에게 부탁하고 싶다며

내가 한옥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을 자기가 가르치는 외국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으니

손가락으로 큐 사인을 주며 내게 카메라의 촛점을 맞추며 동영상을 촬영한다.

한옥집의 특징을 설명하고 흥부 놀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주었더니 무척 고마와 한다.

어디선가 두 형제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고 하며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자료가 되겠다고 좋아하더니

나를 집 뒤로 부르더니 굴뚝과 온돌에 대하여 설명하기에 그것도 아는 한도 내에서 설명해 주었다.

 

언제 다시 또 나들길 올지 모르지만 모두에게 완주 스탬프를 찍으라 했더니 좋아라 한다.

터미널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며 오늘 한껏 즐거웠는지 부부끼로 서로 진한 장난을 한다.

 

즐거워 하는 것을 보니 나도 즐겁다.

늘 잘 다듬어진 한국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농민들이 사는 모습과 그 들의 생활을 리얼하게 보여 주는 것도

좋은 관광 상품의 하나일 것이다.

 

해외 출장기간 중에 외국인들과 업무적인 이야기를 종일 영어로 대화하면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오늘은 나도 맘껏 즐거웠다.

 

다음에도 혹시 다른 코스에 오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초대하겠다고 했더니 좋아라 한다.

나들길을 처음 걸으면서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를 작게나마 실천한 날이라

오늘은 뿌듯했다.

 

다음에 또 기회되면 바다와 산을 동시에 보여 줄 수 있는 코스를 선택해야겠다.

 

오늘은 날씨도 좋았고, 기분도 좋았던 4월의 마지막 토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