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 나들길 주문도

carmina 2013. 5. 18. 22:30

 

2013년 5월 17일

 

강화 나들길 매니아라고 자처하는 내가 전체 15코스 중 가보지 못한 코스가

바로 1박 2일을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12코스 주문도와 13코스 볼음도.

이태리 해외출장이 어찌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중, 다른 사람이 대신 가는 것으로 결정하고

급히 이 곳을 여러번 다녀온 길벗들에게 물어 일정을 잡고 먹을 곳 잘 곳을 전화로 예약해 놓았다.

그리고 연휴에 혼자 떠나기가 미안해 아내를 불렀고...

여럿이 가면 먹을 것도 풍성할 수 있어 급히 지인들을 유혹해 보았지만

워낙 급한 걷기 초대라 모두 선약이 있어 포기.

 

강화 외포리에서 출발하는 주문도행 첫 배는 아침 9시.

혹시라도 길이 막히면 배를 못 탈 수도 있다는 조바심에 일찍 출발하니

여유있게 선착장에 도착했으나 이미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페리호에 태울 승용차를 줄세워 있고

사람들도 매표소에 표를 사느라 길게 줄을 서 있다.

인천사람들은 타지방 사람들에 비해 반값에 표를 제공한다.

그리고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반의 반값이고..

할인 표를 팔 때는 꼭 주민등록번호를 컴퓨터로 확인하는 절차도 있다.

 

배에 올라 선실에 들어서니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넓은 선실에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리를 잡자마자 선실바닥에 가지고 온 음식을 밥통째 꺼내놓고 

소주와 막걸리와 함께 즐기고 있다

여기 저기 술판이 벌어지고 애들 장난하는 소리, 애기 우는 소리,

술에 취해 찜질방처럼 길게 누운 사람들..

도무지 머리가 어수선하여 선실 밖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나갔는데

여기도 난간에 기댈 자리가 없다.

사람들은 갈매기에게 끊임없이 새우깡을 던지고

계단 옆 조그만 공간도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하는 수 없이 선실로 돌아와 핸드폰에 저장된 미드를 이어폰을 끼고 나만의 세계를 즐기다 보니

약 1시간 정도 후에 볼음도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 나간다.

이제야 살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여기 저기 작은 섬과 등대들이 보이는 물길을 돌아

잠시 후에 아차도에 도착해 몇 사람 내려 놓고 바로 건너 편에 있는

주문도에 도착할 때는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들이 배에서 내렸다.

 

한적한 바닷가. 해병대 근무자들이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을

매서운 독수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곳은 시내버스조차 없기에 차 없이  온 사람들이 민박집에서 끌고나온 경운기의 뒤에

짐을 싣고 올라타 목적지로 향한다.

 

나는 선착장 바로 앞에 선양식당(032-934-0018)에 식사와 민박을 부탁했다.

다른 사람들이 선착장을 떠나는 것을 보고 선양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주인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잠시 후 주인 아주머니가 1톤 트럭을 타고 왔기에 인사하고

숙박정소를 물으니 이 곳이 아니고 마을에 있단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잘 수 있겠다 하는 꿈이 깨졌다.

 

이미 시간은 10시 반.  이대로 걷기 시작하면 점심을 먹을 수가 없기에

우선은 숙소부터 가기로 했다.

아줌마가 운전하는 트럭 뒤에 타고 숙소로 가는데 이렇게 트럭 뒤에 올라 타본 것이

실로 군대 제대한 이래 처음인 것 같다. 낯선 곳에서 낯선 체험을 한다.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11시 반에 데리러 온다기에

마을을 산책나왔다. 가까운 곳에 제일 먼저 보이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한옥풍의 서도중앙교회.

교회로 올라가는 가파른 세멘트 계단위로 보이는 종탑이 인상적이다.

교회 종탑도 이런 벽지에서나 볼 수 있다.

교회 뒤에는 큰 현대식 교회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곳이 본당일 것이다.

교회 앞에 일하고 있는 분에게 한옥교회에 들어가도 되느냐 물었더니

오른 쪽 문은 여자가 들어가고 왼쪽으로는 남자가 들어가야 하지만

내부는 모두 공통공간이라며 웃으며 허락한다.

 

예배실로 들어서니 눈이 휘둥그레 진다. 이렇게 멋질 수가.

어릴 때 우리 집 마루의 천정같이 전통 한옥 천정이고, 강단도 조그마하고 아담하여 좋았지만

더 시선을 끈 것은 바닥에 질서정연하게 놓여진 등받이가 있는 앉은뱅이 의자와 넓은 방석.

첫 눈에 보기에 넓은 방석은 앉아서 에배를 보다가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기도할 수 있도록

일부러 넓은 방석을 준비했다.

가만히 보니 방석마다 각각 다른 모포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자기 자리가 정해진 듯하다.

원래 남자는 왼쪽으로 들어와 왼쪽 줄에 앉고, 여자는 오른 쪽 문으로 해서 오른 쪽에 앉는 것이

이 교회의 전통인데 가끔 남녀가 구분없이 앉아 있으면 그 사람은 이방인으로 보면 된단다.

 

아내랑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들쳐 가다가 마침 평소 잘 부르던 찬양인

'순례자의 노래'로  화음을 맞추어 본다. 오늘 나는 나들길의 순례자이기도 하고

나 자신도 인천에서 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감리교회에서 자랐기에 같은 시대에 지어진

이 교회를 순례하는 순례자의 입장으로 이 곳에서 찬양하고 있다.

 

11시 반에 식사를 위해 트럭을 타고 가야 하는데

주인아저씨가 나보고 운전하고 가라며 키를 주기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 하는데 시동이 툭 꺼진다.

늘 오토매틱 기어차만 운전하다가 오랜만에 스틱기어를 운전하니

클러치의 발동작이 낯설어 출발이 힘들어 포기. 

 

말린 송어 찜과 조개젓과  백합조개국물이 유난히 맛있는 

어촌의 냄새가 물씬 나는 점심 식사 후 작은 배낭하나 메고 출발.

사람들과 페리호마저 모두 떠나버린 갯벌에 옆으로 쓰러진 채 쉬고 있는 어선도 조용하고

방조제 둑앞의 집들도 인적없이 모두 조용하다.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듯 하다.

이 곳에 살면 나이를 먹지 않을 것 같다.

 

주문도 나들길이 왼쪽으로 도는 길과 오른 쪽으로 돌아가는 길의 갈림길에서

이따 숙소에 갈 것을 생각해서 오른 쪽 대빈창 해수욕장쪽으로 돌기로 하여

왼쪽의 노란색과 오른 쪽의 녹색이정표 중 녹색을 선택했다.

갈림길에 있는 펜션에는 우리와 같이 아침 배로 온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며 마당에서 바비큐를 즐기고 있다.

 

길가의 집들마다 요즘 한창인 봄꽃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짙은 분홍색과 흰색의 영산홍, 조팝나무, 철쭉 등...

길 옆 논에는 모판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어  

언덕길로 향하는 넓은 길에 가끔 차들이 지나가며 먼지를 소독약처럼 뿜어내고 있다.

 

그런데 가도 가도 더 이상의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 걸어왔으니, 비록 길은 한 줄기라도

방향 이정표나 눈에 익숙한 리본하나 쯤이라도 있어야할텐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양 옆이 끝없는 벌판이라 리본을 달만한 곳도 없을 것 같다.

혹시 우리가 놓친 이정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언덕을 넘어도 멀리까지 이어져 있는 외길 옆에는 도무지 샛길은 없기에 무작정 가보긴 하지만

그래도 의심이 들어 지나가는 경찰차를 세우고 물어봤더니 그대로 가면 된단다.

 

바다로 가로막힌 길 끝에 쯤 대빈창해수욕장 쉼터근처에 드문 드문 사람이 보인고

눈 앞에는 넓은 백사장과 썰물로 밀려나간 바다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막다른 길에 보이는 반가운 이정표.

그런데 막상 이정표를 보고 놀라버렸다.

녹색이정표를 보고 왔는데 내가 온길로 되돌아가는게 녹색이고

왼쪽으로 가는 것은 노란색이다. 이럴 수가... 

그 밑에 조그마하게 써 있는 안내 글.

만조일 때는 바닷가로 내려가지 말고 썰물일 때만 바닷가로 가도 된단다.

그런데 오른쪽 녹색이정표쪽으로 가면 휘 돌아가도 내가 왔던 길로 다시 가야 하는데...

한참 고민하다가 속는 셈치고 오른쪽으로 가보았다.

한참 둑길을 걸어가다가 백사장으로 내려와 언덕을 오르는데 옆에 부대가 있고 길이 막혀 있다.

이 길은 아닐텐데 하고 갸웃거리다가 마침 바닷가로 아저씨 한 분이 경운기를 몰고 오시기에

나들길 지도를 보여드리며 길을 물었다.

 

대빈창해수욕장이 어딘가요? 

여기야.

그럼 뒷장술 해수욕장은요?

여기야.

(갸우뚱) 그럼 앞장술해수욕장은요?

응...그것도 여기야...

안되겠다... 그럼 살꾸지는 어디죠?

살꾸지는 저기야...

 

아저씨는 왜 그런 이름에 구분을 하느냐는 눈치시다.

하긴 줄 그어 놓은 곳도 담을 쌓아 놓은 곳도 없다.

이젠 길은 더 묻지 말자.

아저씨  무얼 잡으러 여기까지 경운기 몰고 오셨어요?

응. 농어잡으러 가...

농어요? 농어를 어디서 잡아요?

저기....하고 가르키시는데 바다에 그물이 길게 이어져 있다.

그러면서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 하나 어깨에 둘러메시고

천천히 양식장으로 농어를 주으러 갯벌로 들어가신다.

 

살꾸지로 가자. 그곳이 맞을거야

왔던 길을 되돌아가 노란 방향표시를 택한다. 이젠 노란나라로 가자.

고운 백사장에 조개껍데기가 길게 늘어져 있어 주워보니

모두 깨끗한 고동들. 어릴 때 옷핀으로 빼 먹고 껍데기로 쌈치기 하던 고동이다

끝이 안보이는 인적없는 대빈창 해수욕장.

갯벌위에 은빛 옷을 입은 하얀  송어의 시체가 눈도 내장도 모두 다른 물고기에 뺏겨버리고

앙상하게 말라가고 있다. 또한 둑에서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도

몰지각한 누구에겐가 피해를 입었는지 계단 아래부분이 모두 떨어져나가 버렸다.

평온해 보이는 바다지만 절대 평온한 곳이 아니다.

 

지도상의 뒷장술 해수욕장으로 향하다가 둑위의 소나무 숲에서 쉬면서 문득 숲속을 보니

커다란 바위로 연못을 만들어 놓은 흔적이 보이지만 물은 모두 말라 있다.

고운 모래사장을 걸어가는데 중간에 서 있던 어느 아저씨가 우리보고

이런 길을 신발 벗고 맨발로 걸어야 제맛이라며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 아이들은 멀리 갯벌로 조개잡으러 갔다하며 애들에게 소리소리 질러 본다.

 

멀리 갯벌로 조개 주으러 나간 아이들이 모습이 점점이 보인다.

걷기 목적이 아니라면 조개나 잡으러 갈껄...

 

어디까지 걸어야 하는거야. 멀리 백사장에서 검은 연기가 솟고 있다.

백사장이 끝나는 곳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파도에 밀려 온 쓰레기들을 태우고 있다.

주워도 주워도 끝없이 파도에 밀려드는 쓰레기들.

나무들이야 태워서 없앨수 있지만 어장의 부유로 쓰이는 대형 스티로폼들은

도무지 처리할 수가 없어 모래밭에 목 떨어진 눈사람처럼 여기 저기 굴러다닌다.

 

살꾸지로 가는 갯벌길. 아득하게 먼 길이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갈 수 밖에 없다.

바닥에 무시로 보이는 고동들과 굴 껍질들, 그리고 여기 저기 보이는 큰 고기들의 사체들과

날짐승들의 사체들. 자연은 살아 있다. 먹고 먹히고..

 

길은 선택의 여지를 준다.

길게 걷고 싶은 사람과 제 코스대로 걸을 사람들을 위한 안내표시.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정표가 잘 못되어 있다. 나중에 군청에 알려주어야겠다.

우리에겐 남는게 시간이니 일부러 길게 걷는 코스를 걸었다.

악어꼬리같이 길게 나온 살꾸지길을 걸어간다.

 

햇빛은 강한데 햇빛 피해서 쉴자리가 없어 둑길 안 쪽으로 들어가니 외딴 곳에 닭장이 있는데

워낙 사람이 없는 곳에서 키운  닭인지 사람이 옆에 와도 아는 척도 안한다.

저 멀리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이 보이는데 아마 그 공사판을 가로 질러서 가면

굳이 살꾸지의 긴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바로 건너편이 나올 것 같지만

그 유혹을 뿌리쳤다. 누가 시켜서도 하는 일도 아닌데, 요령필 일 있나?

 

민들레 홀씨들이 탐스럽게 피어 하늘로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스틱으로 툭 쳐보니 사방으로 휙 날라간다.

 

얼마나 더 가야되는 지 군청 나들길 안내센터에 전화해 보니

그냥 한없이 가야 하니 가면서 바위 틈의 소라도 잡고 이것 저것 구경하며 가란다.

그래. 언덕 올라가는 힘든 길도 아니니 그냥 즐기자.

조개들이 구멍 파는 것도 바라보고,

갈매기들이 하늘로 크게 원을 그리는 것에 카메라도 들이대고

 

드디어 살꾸지 끝에 도착.

저기 코너를 돌아가면 무슨 광경이 펼쳐질까?

그래봐야 모래사장과 바위뿐인 섬인데 무엇을 기대할까?

그러나 목적지에 조금 더 가깝게 간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계속 작은 바위들을 밟고 걸으니 발바닥도 무리가 간다.

거의 모든 바위에 작은 따개비들과 굴들이 깨알같이 붙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굴철이 아니어서 굴을 까보면 모두 빈 공간만 남아 있다.

 

바다를 향해 돌진하다가 아무렇게나 멈추어져 있는 바위지만

그 바위에 거인의 모습이 보이고 마귀할멈 혹은 귀신의 옆 얼굴이 보이는 듯 하다.

바위 구석 구석에는 흰 모래더미같이 굴껍질들이 잔뜩 쌓여 있는데

몇 년동안 겨우내 굴을 즉석에서 까고는 그대로 버리는 것 같다.

그리고 군데 군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작은 동굴속.

무엇인가 작업을 했던 흔적이 있다.

아마 이런 곳은 길을 가다가 용무가 급한 사람들이 애용할 것 같다.

그럼...냄새는?

 

멀지 않은 곳에 등대가 보이고, 시야가 뻗은 곳에는 해수욕장이 보인다.

문득 갯벌위에 이상한 돌들이 보인다.

사과박스정도의 커다란 돌 덩어리들이 갯벌에 가지런히 열을 맞추어 놓여 있다.

이게 무얼까? 굴 양식하는 것일까?

이상한 것은 돌 밑에 작은 돌 하나를 괴어 놓아 무언가 그 밑에서 자라게 해 준것 같다.

아무런 팻말도 없지만 누군가의 생업을 위한 어장같다.

 

한참을 걸어 드디어 백사장이 끝났다.

길 양 옆에 해당화나무를 심어 놓은 듯 보호철책을 세운 곳의 바닷가 둑 위에

벤치를 몇 개 만들어 놓았다.

대개 이런 곳에서는 벤치를 바다를 향해 만들어 놓는 법인데

이상하게 여긴 마을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발도 쉴 겸 해서 앉고 나서야 여기 벤치는 마을을 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 곳에서 바라보는 낮은 산의 계곡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

논밭이 펼쳐진 끝 멀리 흰 교회당이 보이고 낮은 지붕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워 보인다.

 

정미소를 지나 의용소방대 옆의 화장실을 이용하고자 했으나 겉모습은 깨끗한데 문이 닫혀있다.

길을 가다가  논일을 하는 분들이 있기에 인사하고 작업내용을 보니

봄에 벼를 심기전에 미리 트랙터를 이용해 논에 농약을 뿌려 놓고 있다.

이전에 밀짚모자를 쓴 농부가 옆에 바구니를 끼고 수작업으로 농약을 뿌리던 모습은 이제 그림에 불과하다.

하긴 요즘은 과거같이 사람들이 일렬로 늘어서 허리를 구부리고 모를 심지 않고

모두 이앙기로 모를 심는다. 추수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다보니 소유주때문에 구불구불했던 논의 경계선이 모두 직선으로 되어 버렸다.

 

마을로 들어서니 어느 집 앞에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미나리를 다듬고 있다.

아직 논에 농약을 뿌리기 전이라 지금 캐는 미나리는 친환경적이고 품질이 좋단다.

그래서 날로 먹어도 좋고 이대로 고기를 싸 먹어도 좋다한다. 

시장에 팔거냐고 물어보니 지방에 있는 며느리들 딸 들에게 보낼려고 한다기에

우리 오늘 저녁에 삼겹살로 저녁 먹을 건데 조금 팔라고 하니

두 손으로 가득 담을 정도로 한 웅큼을 쥐어 주시더니 그냥 가지라 하기에

아내가 자식들에게 보낼 때 택배비로 이용하라며 3000원을 손에 쥐어 드렸다.

내가 지난 번 석모도에서 3000원어치 미나리 샀을때의 분량이니까..

 

이제 다시 교회로 가보자.

목적지인 선착장까지 가야 하지만 어차피 거기는 저녁 밥먹으러 가야 하기에

미리 갈 필요가 없다.

 

교회에 양해를 받고 들어가 아내와 마음놓고 찬송가를 들쳐가며 피아노치며 

오랜 시간 신나게 둘이 화음맞추어 찬양하는 시간을 즐겼다.

집에서도 좀처럼 하지 않는 일인데 밖에 나오니 하게되네.

 

교회를 나와 선착장을 향해 가다가 문득 옆에 풀섶둑을 보고 이 곳에 저수지가 있을 것 같다며

얼른 뛰어 올라가니 과연 작은 저수지가 있는 것을 보고 아내가 깜짝 놀란다.

저수지가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며... 어떻게 알긴...아까 숙소에 오다가 얼핏 보았지.

저수지 가운데 쯤에 오리들이 한 무더기가 몰려 있다.

왜 저 곳에 저렇게 모여 있을까?

 

오늘 종일 걸으면서 아무도 길 걷는 이들을 보지 못했는데

저 앞에 쯤에 남녀 4명이 길을 걷고 있다.

지나치며 인사하니 우리와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예약해 놓은 것 같다.

 

출발점에 도착. 오늘의 여유로운 길걷기를 끝냈다.

이제 굳이 빨리 집에 갈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분 좋다.

6시에 식사준비를 해 놓기로 했는데 앞으로 1시간 정도가 남았다.

부둣가 벤치에 앉아서 쉬는데 차들과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부두로 오고 있다.

물어보니 배가 곧 들어 온다고..

외포리에서 4시에 떠난 배가 도착할 시간이 되어

사람들을 태워가기 위해 승용차, 승합차와 경운기가 선착장에 몰려 있다.

 

하릴없이 바다를 보고 있는데 선착장 건너편에 있는 어떤 이가 우리에게 아는 체를 한다.

교회 목사님이라 한다. 우리 노래를 잘 들었다고...

우리가 노래할 때 아무 인기척도 없었는데 아마 열려진 창문으로 들으신 것 같다.

한국은 2.3단계만 건너가면 모두다 아는 사람이라 했던가.

우린 금방 공통점을 찾고 말이 통했다.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떠난 뒤

우린 식당에서 미나리와 상치를 곁들인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 먹고  

숙소를 가기 위해 천천히 왔던 길로 되돌아 가는데

아내가 문득 옆에 풀 숲에서 개 같은 것을 보았다며 놀랜다.

얼른 옆을 보니 우리의 인기척에 놀라 다른 숲으로 뛰어가는 고라니.

 

불행하게도 우리가 있는 장소는 노을을 보기에 적당하지 않은 곳이라 노을 보는 것 포기하고

숙소에 들어와 TV 뉴스를 보다가 밤 별이 보고 싶어 밖으로 나갔다.

 

일부러 가로등이 없는 곳에 서서 하늘을 보니 북두칠성이 아주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북두칠성 주위로 있는 북극성 오리온 좌를 찾아 한참 별을 보고 있는데

문득 북두칠성 국자 가운데서 별이 하나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척 빠른 것으로 보아 분명 비행기는 아닐 것이다.

그 별이 천천히 북두칠성 옆으로 해서 끝없이  아주 멀리 흘러가고 있다.

그 별이 사라지는 것을 오랜동안 쳐다보고 다시 북두칠성을 보니

또 다른 별 하나가 국자 안에서 나와 아까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 별 역시 아주 멀리 멀리 갈동안 오랜동안 바라 보았다.

어릴 때 유성이 흐를 때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 해서

내 마음속의 소원을 하나 하나 새겨 보았다.

 

그렇게 첫날 밤을 지내고 피곤에 지쳐 금요일 저녁이면 늦게까지 보는

아마츄어 오디션프로도 보지 못하고 그냥 쓰러져 자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