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도 볼음도

carmina 2013. 5. 19. 21:27

 

2013년 5월 18일

 

 

 

 

아침에 주문도를 떠나는 7시 배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나는 잠이 깊이 들어 듣지 못했는데 아내는 새벽에 교회 새벽예배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를 들었다 한다.

어제 평소 가지 않는 새벽기도를 왜 여기서 가려 하느냐며 한마디 하는 아내의 힐난에

이 곳에서 새벽기도를 가면 나중에 집에 가서도 출석하는 교회의 새벽기도에 가자고

조를까봐 새벽기도 가는 것을 포기했다.

 

아침에 6시 반에 식당에서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오기로 했는데

시간이 되도 오지 않기에 천천히 걸어가자 하고 걸으며 보니

어제 무슨 건물일까 궁금해 했던 폐교가 눈에 들어온다. 

운동장에는 잡풀이 가득하고 중장비들이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지나가는 트럭이 선착장까지 우리를 태워 주었다.

 

트럭 아저씨에게 이 곳에 도시 사람들이 와서 살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몇 사람 소일꺼리 가지고 살고 있는데 겨울에는 너무 쓸쓸하단다.

하긴 눈이 많이 오면 모든 길이 막힐테니 갈 곳도 없고

집안에서만 지내는 생활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또 고라니 한 마리가 차를 가로 질러 달려간다.

 

식당에 도착하니 아줌마는 이 곳 섬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식사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마 거의 우리를 데리러 오지 못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어제 우리 저녁 먹을 때 부엌에서 김치찌개를 무척 많이 만들고 있어 궁금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근처에 문을 연 식당이 없으니

이방인들은 모두 이 곳에 와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볼음도 걸을려면 점심 먹을 곳이 없어 아침 겸 점심을 먹을 도시락 좀 싸 줄 수 있느냐 부탁했더니

그럴 시간이 없다며 볼음도에도 먹을 곳이 많으니 가서 먹으란다.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일출을 볼 형편도 못되었다.

이 곳 서도의 일출 일몰이 참 좋은데 두 개를 다 놓치고 말았다.

 

아침배는 한산했다. 차 몇 대, 사람 몇 명.

바로 건너편에 아차도에서 약간의 손님을 태우고 다시 몇 분 거리의 볼음도에 도착하니

우리 외에는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

 

매표소에 들어가니 이제 배로 보낼 손님을 다 보낸 매표소 아저씨에게

아침 먹을 곳을 물어 보려 하다가 마침 매표소에서 컵라면을 팔고 있어

부둣가에서 바다를 보며 먹는 맛있는 컵라면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나들길 구간 중 식당은 없고 점심은 자기 집에서 민박을 하는데

점심도 사 먹을 수가 있으니 도착할 때 쯤 연락하라 하고 아저씨는 차를 타고 떠나 버렸다.

다시 신발끈을 동여 매고 나들길 13코스인 볼음도 코스를 출발.

 

이번에는 순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이따 점심 먹을 곳을 지나치기 위해서는

순방향으로 걸어야 점심 시간에 맞추어 그 곳에 도착할 수 있다.

 

아침 시간에 도시 사람으로 보이는 남녀가 둑 아래 갯벌에서 무언가를 잡고 있어 소리쳐 물어보니

작은 구멍게를 잡고 있다 한다. 호미로 돌을 들칠 때 마다 게가 있는 듯 부지런히 주워 담기 바쁘다.

   

첫 번 목적지인 조개골 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 바닷물이 밀려나가는 갯벌 옆의 둑을 천천히 걸었다.

원래 간조때면 조금 먼 길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정표가 표시되어 있는데

지금은 그럴 형편이 안되어 질러 가기로 했다.

바닷가에 버려진 커다란 스티로폼이 젖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잠시 앉았었는데

그만 내 엉덩이에 허옇게 무언가 잔뜩 묻었다.

아마 스티로폼 틈 사이에 더러운 먼지들이 가득 했었나 보다.

 

승용차로 구경나온 사람들이 갓 닦아 놓은 아스팔트 길을 가끔 휘 돌아 보고 갈 뿐이다.

인적 없는 썰렁한 조개골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의 커다란 바위 위에 나들길 이정표를 우뚝 세워 놓았다.

저걸 어떻게 세웠을까?

그런데 화살표 한 개가 하늘로 향해 있다.

이 곳에서 하늘로 날아 갈 수 있을까?

 

해수욕장 둑 위의 풀밭에는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바닷가 정자 밑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낸 듯  다같이 막 아침을 먹고 있다.

 

해수욕장 끝나는 곳에 논길로 올라와 이정표가 오른 쪽으로 가라 하기에

두 개의 길이 있는 것을 보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길이려니 하고 무심코

넓은 길을 택해서 걸었다.

 

주욱 뻗은 길 옆의 논에 커다란 두루미들이 많이 몰려 있다.

두루미들이 이렇게 많은 것은 나들길 걷기 중 처음 보는 것 같다.

우리가 지나 가면 논 옆 풀 숲에 있던 두루미들도 후다닥 하고 급히 날아 오르고 있다.

자세히 보니 그 중 검은 부리 저어새도 몇 마리 보인다.

멀리 마을이 보이기에 일부러 논 저편의 좁은 소로를 택해 길을 걷는데

옆에 풀 숲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놀라서 뛰더니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 20분 걷는 동안 두루미들과 저어새들의 모습에 반해 정신없이 걸어

마을에 도착하니 오래 된 정자가 있어 잠시 쉬다가

아내가 정자 옆에 있는 마을 이정표를 보더니 잘 못 온 것 같다 한다.

우리가 오늘 몇 시간을 걸어야 도착하는 볼음교회가 여기서 500미터 밖에 안되는 거리에 있다 한다.

그럴리 없다 하고 지도를 보다가 '아차 잘 못 들었구나' 했다.

경운기 뒤에 도시 아이들을 태우고 지나가는 마을 아저씨께 물어 보니

우린 그만 섬을 가로 질러 와 버렸다.

목적지야 빨리 갈 수 있지만 나들길 트레킹의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시 돌아가는 수 밖에 없어 부지런히 발길을 왔던 길로 가 보니

우리가 이정표를 본 지역의 수로통제소 옆에  리본 하나가 있지만 얼핏 그냥 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안 띄어 내 배낭에 매달고 다니던 리본을 풀어서 수로통제소의 하얀 세멘트벽 계기판에 리본을 달았다.

이러면 다른 사람들은 나 같은 실수 하지 않겠지.

 

이제야 제대로 방향을 잡았구나 하고 나무들이 울창한 숲길로 한참을 들어 서니

곧 다른 해안이 나온다. 영뜰 해수욕장.

강화도 본토에는 이런 모래사장 해수욕장이 거의 없는데 주문도와 이 곳은

해안가가 모두 고운 모래가 깔린 해수욕장이라 여름에 관광객이 상당히 많을 것 같다.

또한 해수욕장에 물이 가득 차도 그다지 수심이 깊지 않아

수영하기에는 조금 불편하겠지만

끝없이 넓고 평평한 갯벌이 있어 아이들의 조개잡이나 갯벌체험에도 좋고

밟아도 빠지지 않는 단단한 갯벌은 맨발로 걸어다녀도 좋을 정도로 안전한 환경이다.

 

어제 오늘 갯벌을 많이 걸었으니 여기서는 소나무 숲길로 걸어가자 하고 

거의 사람들이 걸어다니지 않은 소나무 숲길에 들어서니 솔방울들이 가을 밤송이 같이

무수하게 많이 떨어져 있지만 숲 속까지 스티로폼 조각들이 많이 뒹굴고 있어 보기에는 안 좋았다.

 

숲길을 지나 한참 걷다가 해수욕장 모래밭으로 다시 나오니 

갯벌로 경운기가 들어간 흔적이 있어 나도 갯벌로 들어가 걸으니

아내가 나보고 위험하다며 자기는 안들어오겠단다.

 

갯벌을 걷다가 멀리서 남녀가 모래사장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들 주위로 숲 속에서 나온 고라니 한 마리가 갯벌로 껑충 껑충 달려 들어 온다.

아마 길을 잘 못 찾은 듯 고라니는 갯벌을 크게 가로 질러 멀리 멀리 가더니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모두 영상에 담아 놓으니 볼 때 마다 행복하다.

 

마주 오고 있던 남녀가 물이 들어 오고 있어 더 갈 수 없으니 돌아 가란다.

그런데 내가 안내 지도를 보니 이 곳에선 만조 때문에 돌아가는 길은 표시가 안되어 있다.

그 것은 만조가 되어도 계속 갈 수 있다는 말이라 확신하고 길을 가는데

아내의 반대가 무척 심하다.

위험한데 물에 막혀 돌아오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그 길은 바닷가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도 급경사라 물을 피해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을 듯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물이 들어와도 언덕 밑에 큰 바위들이 있고

그 바위까지는 물이 절대 차지 않을테니 바위를 넘어가면 되겠다 확신하고 그대로 진행했다.

또한 바닷가의 모래사장을 볼 때 물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바위의 아래 부분에나 겨울 닿을 것 같아 나름대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나 다를까 물은 계속 들어 오고 있어도 바위까지는 도달하지 않으니

바닷길이 끝나는 죽바위까지 갈 동안 그다지 위험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죽바위를 벗어나니 바로 풀 한포기 없고 바위들만 덮여 있는 그다지 높지 않은 언덕길로 오른다.

이제 완전히 볼음도의 건너편으로 온 것 같다.

언덕길에서 다 내려와 멀리 벌판의 끝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인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골프공. 누가 이 곳에서 골프를 연습했을까?

아까 벌어진 상황때문에 말이 없는 아내 대신 골프공을 친구삼아 발로 차며 걸었더니

아내가 아까 위험하다고 가지 못하게 한 것이 미안한지 옆에서 빈정댄다.

"금 나를 골프공으로 생각하는거지?"

 

높이가 25미터가량, 둘레가 무려 10미터에 달하는 유명한 8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멀리서 보아도 웅장했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그 어마어마한 나무의 크기에 놀랐다.

수령 1100년이 넘는 용문산의 은행나무는 큰 주기둥이 올라가다가 갈라져 있는데

이 곳의 은행나무는 주기둥자체가 밑둥부터 여러갈래로 갈라져 있다.

800년전 수해에 밀려온 은행나무를 이 곳에 심었더니 이렇게 크게 자랐다 한다.

은행나무를 양팔로 벌려 안고 싶었는데 옆에 울타리를 쳐 놓아 만져 보지도 못했다.

단풍잎이 물드는 가을에 이 나무를 보면 아마 커다란 황금나무를 보는 것 같을 것이다.

주위에 은행알이 떨어져 있는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숫나무인 것 같은데

주위에 금방 암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 있겠지....

 

은행나무 저편의 방조제에서 등산배낭을 멘 걷기팀과 일반 복장을 한 무리들이 오고 있다.

그 중 몇 명 아는 길벗들의 얼굴이라 반갑게 인사하고 우린 각자의 길로 갔다.

무척이나 긴 볼음저수지의 둑을 지나니 그 끝에 낚싯군이 묵묵히 낚시찌를 저수지에 드리우고 있다.

위아래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어 낚싯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

 

저수지 넘어 다음 목적지는 봉화산.

가파른 산길로 올라가 그 곳에 봉화대가 있을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단지 높이 402미터를 표시하는 듯한 지표석만 있다.

 

사람들의 흔적이 겨우 보이는 산길로 내려와 이정표를 찾으니 또 안 보인다.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어 무조건 방향을 잡고 가다 보니 이정표가 있다.

그 이정표를 가리키는 곳으로 가다가 보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 저기 사방을 둘러봐도 이정표를 찾을 수 없기에 트랙터로 논일을 하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작업을 멈추게 하고 볼음교회 가는 길을 물어 찾았다.

그런데 그 길도 잘 못 된 것 같다.

나들길 매니아인 내가 길을 찾지 못할 정도로 오늘은 애를 먹고 있다.

 

이제 우리의 여정이 거의 끝나간다.

볼음교회가 보이고 그 근처에 민박집들이 모여 있다.

볼음도 선착장의 아저씨가 운영하는 나들길민박집이란 곳을 찾아 

소금으로 담근 게장이 있는 시골밥상으로 점심을 배불리 먹고

등산화를 느슨히 풀어 헤치고 남은 길을 천천히 걸었다.

마을입구에 어느 누군가 폐 TV모니터나 컴퓨터 모니터를 담장의 돌들 사이에 끼워 놓았다.

백남준의 아이디어를 도용했지만 그래도 마을의 또 하나의 볼거리네

 

걸으며 펜션에 부속된 매점에서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잘 닦여진 아스팔트 길로 해서 선착장에 도착하니

많은 차들이 일렬로 줄을 지어 승선을 기다리고 있다.

이 많은 차들을 한 번에 다 실을 수 있을까?

뱃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이 몰려들고, 외포리 오는 배안에서 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된다.

 

볼음도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아들을 면회 온 사람.

아들을 육지로 보내는 부모.

주일을 강화도에 있는 교회에서 보내기 위해 가는 식당 아줌마,

섬에서 하루를 즐겼던 사람들이 동시에 배에 오르니

이미 주문도와 아차도에서 배를 탄 사람들이 넓은 선실에 길게 누워 있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으니 미안했던지 슬며시 일어나 앉는다.

선실내의 인구밀집도가 극에 달해 발뻗을 공간이 없을 정도였다.

 

외포리에 내리니 나의 나들길 전코스 완주를 축하하는 듯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행복하다.

이 말보다 더 알맞는 표현이 어디 있으랴.

 

길을 통해 얻는 여유.

길을 통해 얻는 건강.

길을 통해 얻는 감성.

길을 통해 얻는 치유.

길을 통해 얻는 내 모습.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