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뜨거운 석모도 바람길

carmina 2013. 5. 25. 23:19

 

2013년 5월 25일.

 

올해는 봄이라는 계절이 없어진 것 같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겨울 앙복을 입어도 괜찮았는데

오늘은 거의 불볕더위 수준이다.

 

한 낮의 기온이 거의 30도.

그 폭염속에 가장 걷기 힘든 나들길 11코스 석모도 바람길을 걷는단다.

그래도 그리 덥지 않을 줄 알았다.

 

한달 전에 그 길을 비를 맞고 길도 질퍽 질퍽한 바람길을 혼자 걸었기에

그 썰렁함이 싫었고 제대로 된 나들길을 걷고 싶어 정기 걷기에 신청하고

처제의 큰 아들이 이런 곳을 별로 다니지 못할 형편에 있는 아이인데

이런 곳에 내가 데리고 가겠다고 전부터 애기해 놓았더니

내 제안에 즉시 아들을 보내주었다.

 

지난 번 강화 나들길에 차가 너무 막혀서 일찍 떠났더니

오늘은 한결 여유롭다. 장날도 아니고 특별히 큰 행사도 없으니

김포를 거쳐 가는 길이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옆에 탄 조카가 김포를 지나갈 때 쯤 확 트인 김포 평야를 보더니

정말 좋다라는 말을 연발한다. 답답한 아파트에만 살다가

이런 넓은 자연을 보니 좋은 감정을 순간적으로 토해낸다.

 

석모도로 가는 페리호를 타고 아이를 위해  새우깡을 준비했다.

처음엔 새우깡을 자기가 먹으라고 하는 줄 알고 먹어도 되느냐기에

갈매기에게 주자 했더니 그 때부터 갈매기 사육자가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먹고 무슨 똥을 싸느냐고 묻는다.

아이의 생각으로는 어른이 궁금하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갖는다.

 

석모도에 내려 나들길 스탬프를 찍는 곳 옆에 썩어가는 커다란 젓갈통이 몇 개 있어

아이가 불쾌한 냄새라고 무척 역겨워 한다. 왜 이걸 여기다 놓았지?

 

길을 나서자 마자 얇은 겉옷이 더워 금방 벗어 버렸다.

늦은 봄이지만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봄나물들을 아낙네들아 그냥 두지 않는다.

갯밭에 내려간 아주머니도 빨간 함초밭에 내려가 허리를 굽히고 무언가를 따고 있고

우리 일행 중에 아줌마들도 비닐 봉투를 들고,

눈에 보일 때 마다 쑥을 캐고 개똥쑥을 따서 봉투 안에 담기 바쁘다.

갯벌의 색깔이 변하고 있다.

지난 달만 해도 누런 옅은 갈색이었는데

지금은 작은 크기지만 빨간 빛이 선명하고 아마 조금 더 지나면

부쩍 키도 자랄 것이다.

어떤 이는 넓은 갯벌 한 가운데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함초를 캐고 있다.

 

둑 위의 갈대들이 푸른 빛을 잃고 누렇게 변해 손가락으로 꺽으면 꺽여지지만

아마 곧 이 녀석들도 비만 몇 번 오면 단단하게 푸른 줄기로 바뀔 것이다.

덥다. 그다지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거의 40명 가까이 같이 출발했는데 길이 외줄기 둑길이다 보니

어느 덧 앞과 뒤의 끝이 안 보이고 모두 높게 자란 풀 잎에 숨어 버렸다.

둑 옆의 양어장에 물이 가득하고 금방이라도 한가운데서 무언가 툭 튀어 오르며

불결 칠 것 같다. 멀리 수면의 한가운데 갈매기들이 모여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뙤약볕 속에 걷다가 겨우 바위 옆으로 들어가 잠시 쉬며 간식과 즐거움을 같이 나눈다.

처음에는 모두를 위해 충분한 양 만큼의 간식을 준비하다가

어느 때 부터인가 반 정도의 인원만을 위해 간식을 준비한다.

우리의 길에 자주 동참하는 이들은 모두들 간식을 싸오니 간식이 차고 넘친다.

 

 땅이 파 헤쳐지고 들판이 길로 변하고 있다.

풀 숲이 콘크리트로 변하고 초록의 언덕이 누런 흙더미로 변하더니

그 곳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거나 혹은 바위들이 털려 나가고 있다.

둑으로 걸어야 할 길이 공사 대문에 둑이 좁아지고 어쩔 수 없이 공사 중인 도로로 걷는다.

 

석모도 바람길은 다른 코스의 나들길에 비하면 길벗들에겐 조금 지루한 편이다.

직선을 걷는 단조로움. 많은 길을 세멘트위로 걸어야 하고 나무도 없지만

그 곳엔 탁 트인 공간에 시원한 바람이 있다. 그래서 석도모 나들길을 바람길이라 부른다.

 

팔을 벌리면 옆에서 지지귀는 새처럼 날아가고 싶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풀 숲에 있던 고라니 한 마리가 푸드득거리며 우리가 지나온 둑 밑으로 날아간다.

 

같이 걷는 조카는 혼자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끔 "여기 진짜 좋아요."하고 솔직한 감정을 외치고 있다.

그 누구도 이렇게 솔직하게 외치는 이가 없었는데...

 

여기 저기 작은 섬들이 스쳐 지나가듯 우리 옆을 지난다.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을 무인도도 있고, 희미하지만 커다란 섬도 보인다.

야생의 꽃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고

온 우주를 표현한 듯한 민들레 홀씨도 이젠 하늘로 훨훨 날아가 준비가 되어 있다.

민들레를 발로 툭 치니 우수수 공중으로 흩어진다.

내가 억지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바람이 그들을 데려가리라.

 

배가 고프다.

지난 번에 혼자 가느라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어류정의 연성호 식당에서

맛있는 간장 게장과  꽃게탕으로 점심을 즐긴다.

병어무침을 먹고 싶었는데 주위의 사람들이 동참하지 못해 포기.

그러나 꽃게탕으로만도 충분히 맛있었고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주위의 길벗들이 지난 번 걷기 때 먹은 맛없는 꽃게탕을 추억하며 웃었다.

꽃게탕을 그렇게 먹고 일인당 11000원이면 실로 저렴한 가격이다.

 

바닷가 백사장으로 향하는 길을 지나 숲속으로 지나가게 되어 있는데

리딩하는 사람이 다른 멋진 곳으로 가자고 하는데

바닷물이 더 들어오면 갈 수 없다며 빨리 가자고 부추기는 저편에

바위들이 모두 기기묘묘하게 생겼다.

닭이 뒤를 바라보는 형상의 바위가 신기하고

태생이 완전히 다른 바위가 다른 색깔로 서로 엉키어 있고

커다란 바위에 물결치듯이 무늬가 있는데

마치 제주도 올레길에서 보던 용암들이 이 곳으로 잠시 이사온 것 같다.

커다란 바위에는 갯벌에 있던 작은 고동들이 바위를 타고 올라가

여기 저기 붙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기어 올라가다 말라 죽은 고동들은 건드리기만 해도 툭 떨어진다.

 

해수욕장에 즐거운 행락길들.

군데 군데 모여 고기를 구워 먹으며 주말의 오후를 가족고 즐기고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기 위한 호미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다닌다.  

바닷가 평상에는 연인들이 이불을 폭 뒤집어 쓰고 한낮은 오수를 즐기고 있다

저 낮잠은 얼마나 달콤할까?

 

가파른 언덕위에 올라가 넓은 바다를 보며 크게 호흡을 내 쉬어 본다.

우리 나라 바닷가들이 이렇게 한가하게 유지되면 여가가 쾌적할텐데...

그러나 더 많은 행락객들을 맞아들이기 위해 끝없이 땅을 파헤치고 펜션을 짓는다.

 

언덕에서 한참 아스팔트 길로 내려가 다시 바다로 가는 길.

바닷가에 생경스런 건물이 지어졌지만 인적은 없다.

이 곳에서 온천용 사우나를 지을려고 했단다.

그러나 사업을 접고 빈 건물이 되었는데 온천이 나오는지 지붕에서

흘러내린 물이 벽을 녹슬게 하고 있다. 아마 염기가  스며들었나 보다.

 

멀리 보문사의 눈섭바위가 아득하게 보인다.

이제부터는 끝없는 직선길을 걸어아야 한다.

그러나 이 길은 길 벗들이 걷기 편하도록 잘 다듬어 놓았다.

야생화도 이쁘게 피었고, 약간 흐린 날씨나 눈길이라면 무척 운치가 있을 것 같다.

못 먹을 것 같은 야생산딸기들이 손을 유혹한다.

건너편에 무수히 많은 낚시 차량들이 움직임이 없고

낚싯군과 거리가 먼 우리 쪽 수면에서 고기들이 수면을 박차고 뛰어 오르다가

다시 큰 물결을 그리며 들어가 버린다.

 

길은 먼데 쉴 곳이 없다.

뜨거운 태양 빛에 살이 익고 있다.

세멘트 길을 많이 걸어서인지 발바닥도 익는 것 같이 아프다.

 

그런 불평을 누군가 들었던가?

길 끝 쯤에 막 제작한 것같은 벤치가 있어 배낭 속에 있는

마지막 간식들을 털어 놓았다.  

 

이렇게 오늘의 폭염 속 바람길 걷기를 끝낸다.

조카가 너무 기분이 좋다며 집으로 오는 차에서 혼자 노래부르며 실실 웃고 있다.

집에 가까이 올 즈음 이 녀석 나를 빵 터지게 만드는 한마디를 하고 지하철을 타러 나간다.

평소 부르던 이모부 호칭이 아닌 내 이름을 부르며 "XXX씨 고맙습니다"

 

오늘 얼마나 길 걷기가 좋았으면 그렇게 얘기했을까?

20살 청년이 초등학생도 안되는 지능을 가지고 무엇엔가 감동을 받았는지

자기도 강화에서 살고 싶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