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꽃길 속의 호국돈대길 (나들길 2코스)

carmina 2013. 6. 9. 16:58

 

2013년 6월 8일

 

6월은 호국선열들을 위한 달이다.

6일 현충일이 있고, 625가 있고...

그건 단지 현대의 역사속에 전쟁들이지만

강화 나들길 2코스에선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더 많은 전쟁과 그 전쟁에 스러진 꽃같은 호국 선열들의 흔적이 있다.

몽고가 침입하여 임금이 강화로 피신해야 했고

조선시대에는 병자호란으로 역시 임금이 강화로 또 피신해야만 했던 아픈 역사가 있는 곳

19세기에 일본의 강압에 못이겨 강화도 조약을 맺은 곳.

근세에는 북한이 지척에 있는 곳이라 해병대가 늘 상주하여 젊은이들이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는 곳.

우리 나라에 강화만큼 아픈 역사를 가진 곳도 드물다.

 

일기예보는 토요일도 폭염이 쏟아질 것이라고 예보했다.

야외활동에 조심하라는 경고에도

땀이 비 오듯 쏟아져도 걷는 열정은 멈출 수 없다.

 

요즘 살인진드기의 공포로 인해 나들길을 찾는 길벗들 숫자가 확실히 줄었다.

그러나 살인진드기로 인해 사망할 확률은 0.00003 프로.

그 낮은 확율에 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길 걷기를 멈추는 것은

마트에 물건사러 가다가 넘어져서 죽는 확률때문에 안방 침대에 누워 있는 꼴이다.

 

나들길 2코스 출발점인 갑곶돈대에는 예정에 없던 다른 걷기동호회와 학생들이 모였다.

그래서 조촐하리라고 예상했던 오늘의 도보가 갑자기 시끄러워 졌다.

갑곶돈대 옆 묘지에 잠들어 있는 호국영령들이 오늘 잠을 깨는 날인가? 

 

점심 먹어야 되는 인원을 파악하고 학생들과 다른 동호회가 떠난 자리에

박카스 빈병 박스가 그대로 놓여 있다.

분명 그 팀에서 떠나기 전에 박카스를 마시는 것을 보았는데 

빈병들과 빈 박스를 치우지 않고 그냥 떠나는 걷기 동호회라..

맨 마지막으로 길을 떠나면서 그 쓰레기들을 주워 휴지통에 넣고 떠나니

앞서 떠난 학생들이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길을 떠나자 마자 빨간 장미, 핑크빛 장미들이 내 시선을 사로 잡는다.

6월의 꽃의 계절이다. 오늘은 맘껏 꽃의 잔치속에 파묻힐 것이다.

큰 길로 나오니 시골아낙들이 순무를 비롯한 야채들을 길거리에 놓고 길가는

차들를 향해 유혹하고 있다.

 

큰 도로에 휙 휙 지나는 차량들에 탄 사람들이 이런 조붓한 길이 있는 것을 알까?

잘 다듬어진 가로수 숲길.

젊은 커플들이 풀꽃 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워 주는 고마리꽃들이 지천으로 덮여 있다.

푸른 숲길 사이로 알록 달록 등산복을 입은 길벗들도 꽃길에 고운 자태를 수놓고 있다.

엉겅퀴가 이제 막 자라고 있고 아마 조금 지나면 온 벌판이 엉겅퀴로 덮힐 것이다.

 

바닷가 둑길을 걷는데 거의 난파된 작은 목선위에 커다란 재두루미가 날개를 접고

휴식을 취하다가 카메라 촛점을 맞추는 것을 알았는지 커다란 검은 날개를 펴고

유유히 바다의 수면을 우아하게 날라가더니 다른 두 마리의 재두루미와 함께 비행을 한다.

 

바닷물이 들어 오고 있다.

이제 쉬고 있는 작은 목선들도 바다로 나가야 한다.

갯벌을 춤추게 하는 수없이 많은 칠게들도 분주히 물이 들어 올것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작은 돌을 하나 주워 갯벌로 던지니 눈에는 보이지 않던 수많은 게들이 순식간에

구멍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모습이 마치 핵폭탄 터지듯  퍼져간다.

 

한동안 차도로 평행하게 걷다가 용당 돈대로 가는 숲길로 들어서니

땅위의 열기와 하늘의 열기가 조금 식혀지는 것 같다.

 

숲속에는 야생의 먹는 채소가 무엇인지 아는 이들이 저마다 비닐 봉투를 준비한다.

쑥과, 개똥쑥, 계피나무의 연한 잎까지 부지런히 주워 담는다.

용당 돈대의 축대바위도 햇빛이 너무 강해서인가 오늘 따라 돌들이 하얗게 보인다.

그늘을 피할 곳이 돈대 한가운데 자리잡은 커다란 나무의 그늘 뿐이다.

그늘 속에 간식을 펼쳐 놓고 얼려온 물과 막걸리로 더위를 식히고 난 뒤

다시 길을 떠나는데 누군가가 간식을 싸가지고 와서 다 먹은 스티로폼 그릇을

그냥 놓고 길을 떠났다. 아무래도 오늘은 길에 대한 기본 예절이 없는 사람들이

무리 속에 끼어 있나 보다.  그 쓰레기도 집어 들고 길을 떠났다.

 

나들길을 지나는 사람들로부터 경작하는 밭을 보호하기 위해 쳐 놓은 그물 밑에

무슨 이유인지 방금 죽어서 날개에 윤기가 사라지지 않은 까치 한마리가

길 한가운데 있어 행여 건드릴새라 조심 조심 길을 걸었다.

여기 저기 이제 막 하얀 꽃을 핀 감자밭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화도 돈대로 향하는 길은 잘 다듬어진 둑길이다.

조금 지나면 청색 꽃을 피우는 푸른 풀잎들 무리의 사이를 지난다.

이 전에 이 사이로 잔디가 무성했고 그 안에 야생딸기가 가득했던 것으로 아는데

아마 길을 정리하고 바닥을 고르면서 모두 베어버린 것 같다.

 

화도 돈대 옆 편의점에서 일행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들고 입안에 넣으니

더위가 잠깐 가시는 것 같다.

한 여름에는 호국돈대길은 걷기에 조금 불편하다.

아마 이번 정기코스는 년초에 게획해 두었던 코스였지만

올해 더위가 유난히 빨리 찾아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오늘 따라 유난히 하얀 찔레꽃이 많이 보인다.

 

즐겨부르는 동요.

 

엄마 일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앞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그럼 이 하얀 찔레꽃을 먹어도 된다는 얘긴다.

먹업볼려 하는데 다른 일행이 꽃을 먹는 것이 아니고

여린 순을 먹는다고 한다.

그냥 지나쳤지만 이 글을 쓰면서 '먹어볼걸' 하는 후회가 든다.

 

옹기 종기 모여 둑길을 걷는 길벗들의 얼굴이 환한 미소로 가득하다.

누군가의 농담에 까르르 웃고,

길가의 예쁜 꽃만 보아도 눈들이 밝아지며 웃고 있다.

이 아름다운 모임. 모임이 아름답기보다는 길이 아름다운 것 같다.

 

오늘 유난히 길을 환하게 밝혀 주는 것은 노란 산국이다.

과꽃인줄 알았는데 집에 와 뒤져보니 산국임을 알았다.

길에 가득 핀 노란 산국들. 그 옆을 지나는 길벗들이 덩달아 아름답다.

그리고 지난달만 해도 하얗게 자태를 뽐내던 꽃들이 이제 연한 갈색으로 변해

또 다른 멋을 보여준다.

 

오두 돈대 앞에 커다란 하얀 꽃잎이 4개가 달린 꽃들이 가득 덮힌 산딸나무.

어쩜 저렇게 나무를 완전히 다 덮어 버릴 만큼 가득 피었을까?

길가에 때 지난 유채꽃을 뿌리채 뽑아 가지런히 뉘어 놓은 곳에

아직 유채꽃의 노란 빛이 은은히 감돌고 있다.

온 천지에 동화나라 같이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 덮혀 있다.

 

오두돈대를 지나 터진개의 갯벌 위에 전시되었던 작품들이 빛을 잃어가고

그 빛을 빨간 함초가 대신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날 것같은 작은 목선 작품 아래 달린 목어(木魚)

절 마당에 있어야 할 목어가 강화 갯벌로 나들이 나왔다.

 

광성보로 향하는 긴 둑길.

햇빛이 뜨겁다. 모두 묵묵히 걷는다.

이 곳은 가을에도 겨울에도 워낙 긴 길이라 그냥 우뚝 솟은 송전탑을 향해 걸을 뿐이다.

 

광성보 주차장에는 주말 교육나온 학생들을 싣고 온 많은 관광버스가 주차되어 있다.

점심을 시골된장국과 완전 산채비빔밥을 먹는 광성식당이란 곳에서 하는데

우리 뿐만이 아니라 주말교육나온 학생들까지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그러나 반찬은 종류도 적고 아주 조금씩 밖에 없어 서로 젓가락질 하기를 꺼린다.

늘 식사때마다 그렇듯이 막걸리를 시켰는데 병이 아닌 양은주전자로 가져다 준다.

이런 서비스가 있네 하고 맛이 조금 다른 막걸리와 익힌 산나물이 있는 비빔밥을 먹고

각자 나누어 계산하는데 막걸리 값이 12000원이라 한다.

세상에 무슨 막걸리가 이리 비싸냐고 했더니 30년 묵은 효소를 쓴다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인에게 막걸리가 와인보다 비싸냐고 따졌더니

어떻게 이게 와인보다 비싸냐고 내게 따지듯 되묻는다.

그렇게 좋은 막걸리면 담아 내오는 주전자도 고급으로 쓰고

손님들이 막걸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일반 막걸리와 특별 막걸리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했더니 자기네 집은 이 막걸리만 판단다.

우리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주인과 다른 일로 언쟁하고 있다.

식당이란 자고로 친절을 맛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이 곳은

아무래도 식당의 기본이 잘못되어 있다.

 

광성보에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가득하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역사를 공부하고 있고 선생님과 퍼즐게임을 즐기고 있다.

오늘은 광성보의 끝까지 걸어가 보았다.

이전에 임금을 배를 태우고 길 안내하다 죽은 손돌목의 역사가 있는 곳도 보고

오늘따라 맑고 깨끗한 바닷물도 보며 여유를 부렸다.

 

오늘은 아침부터 우리 걷는 모습을 특별 취재하려는 듯한 이가 계속 따라 다니며

우리를 쵤영하고 있다가 광성보에서 취재를 끝내고 돌아갔다.

 

광성보를 내려와 용두돈대로 향하는 길에 숲속에서 여름 더위가 느껴진다.

대개 숲속을 들어가면 시원한 법인데 이 곳은 걷는 길이 좁아서인지 답답하다.

그러나 곧 넓은 숲길로 이어져 푹신한 바닥을 지나니 땀이 나오다가 들어가 버린다.

 

덕진진으로 향하는 둑길로 가는 길목에 난데없이 철문이 세워져 있다.

철문지지대 옆이 터진 것으로 보아 차가 들어가지 못하게 설치해 놓은 문인 듯.

혹시 차를 가지고 밭의 경작물을 통째로 훔쳐가는 절도범들을 방지하기 위한 것일까?

 

작은 무인도가 있는 곳으로 가는데 길 옆에 커다란 공사를 하느라 이정표가 사라졌다.

평소 다니던 길로 가니 이전에 안 보이던 길의 모습이 나타난다.

비가 오면 불편했던 곳을 군청에서 커다란 돌을 놓아 편하게 길을 걷게 만들었는데

새로운 건물 짓는다고  비싸게 큰 돌을 사서 만들어 놓은 그 길을 흙으로 덮어 버렸다.

 

인적없는 덕진진에 대포들만이 뜨겁게 달구어져 더운 여름을 더 뜨겁게 만든다.

이 곳에서 얼마나 많은 포병들이 땀과 피를 흘리며 사라졌을까?

 

이제 길이 끝나간다.

초지진에 도착하여 완주스탬프를 찍고 시간을 보니 오늘 6시간을 걸었나 보다.

평소 4시간 반 정도면 걸을 길인데 오늘은 더워서 일부러 천천히 걷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그래도 수없이 많은 색깔의 야생화들과

웃음많은 길벗들로 긴 여정이 행복하고 짧게만 느껴졌다.

 

올 여름아..

내가 간다.

내가 흘리는 땀으로 더운 대지를 식히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