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강화나들길 7코스, 내 가는 길에 주단을 깔고

carmina 2013. 6. 15. 23:01

 

 

2013. 6. 15 (토)

 

나들길 다닌지 어언 3년.

처음엔 8코스밖에 없다가 3년 새 15개코스로 늘었다.

8개 코스를 다 걷고 완주 증명서를 받았는데 이젠 이 증명서도

유효기간이 지났기에 다시 받아야 한다.

완주 증명서로 혜택 받는 것도 없는데 단지 내 마음의 뿌듯함이 좋다.

 

1박 2일 코스로 가야만 하는 주문도, 볼음도 코스도 지난 달에 끝냈고

이제 별로 가지 않는 마지막 코스인 7코스를 돌면

또 한 번 15코스를 완주하는 셈이기에 오늘은 일부러 혼자 길을 나섰다.

지난 번 7코스를 걸을 때도 길벗들 잘가는 7-1코스로 가다가 나 혼자

7코스를 걸어 완주 했었었다.

 

6월인데 벌써 낮의 온도계는 30도를 넘어 선다.

그래서 순방향으로 가면 후반은 콘크리트 길로 되어 있는 7코스를 역으로 걷기 위해 길을 나섰다.

화도면 터미널의 출발도장찍어 주는 편의점에 들러 물과 커피 그리고 간식을 사며

오늘 떠나는 사람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아무도 없단다.

오늘은 아무래도 혼자 길을 즐길 것 같다.

 

화도농협앞에 주차를 하고 길을 떠나니 시간이 9시 20분.

햇빛이 아침인데도 강렬해서 길을 떠나는 세멘트 도로가 눈이 부시게 하얗게 빛나고 있다.

이제 막 활짝 잎들이 피어나는 고구마밭이 커다란 산 앞에 병열식을 하고

그늘막을 새로 설치한 인삼밭도 보기 좋게 정열되어 있다. 

개울 안에는 온갖 풀들이 가득하여 물이 흘러가는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여름이 무성히다.

길을 가다가 떡집에 있기에 혹시 떡 좀 살까 해서 내부를 기웃거렸는데 아무도 없이 썰렁하다.

 

이 길을 지나면 늘 집 앞에서 봄이면 나물을 다듬고 가을이면 김장을 하던 할머니들도

오늘은 더운 여름이라 집 안에만 계시나 보다.

 

7코스 중에 늘 사진기를 들이대는 곳이 바로 양 옆으로 숲이 있는 세멘트 길 언덕이다.

무언가 하늘이 열릴 것 같은 그 곳.

오늘은 승용차가 가끔 휙휙 지나고 있다.

 

언덕을 넘어서니 성공회 내리교회가 있다

내리교회라 하지만 이 곳은 성패트릭성당이라 부른다.

인천에 있는 내리교회도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 성당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종처럼 생긴 하얀 초롱꽃으로 둘러 쌓여 있는 곳에는 절에나 있음직한 종이 있다.

이 성당 앞 마당에는 커다란 종이 있어 누구나 한 번은 소리를 내보고 간다.

오늘은 나 혼자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종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종의 겉에는 교회의 역사가 조각되어 있고 꼭대기에는 닭모양으로 조각품이 있다.

종을 치는 통나무를 슬쩍 쳐 보니 맑은 소리가 은은하게 퍼진다.

소리가 퍼질 때 종의 밑 바닥을 보니 밥솥만한 항아리가 밑에 놓여 있다.

항아리에서 나는 소리인가? 종에서 나는 소리인가.

종 앞에 쪼그리고 앉아 들으니 작은 타격인데도 여운이 상당히 오래간다.

종 옆에 지금으로부터 110여년전 교회를 짓기 위해

특별히 재산을 바친 사람들의 공덕비가 오랜 세월 은혜의 비를 맞고 있다.

 

이제 7코스의 역순으로 가는 길에 올라간다.

이 길은 주로 펜션으로 가는 길이라 내 옆은 쏜살같이 지나가는 차들이 많다.

 

사람들 별로 안다니는 길에는 사람보다 꽃들과 야생열매들이 소리를 낸다.

흰색옷을 벗고 갈색옷을 입는 조팝나무, 장미와 산딸기와 복분자들..

길에는 도로로 뛰어나온 귀뚜라미들이 차량의 바퀴에 치어 죽은 자국이 즐비하고

거대한 바위들이 도로로 튀어 나오려는 나무뿌리들을 간신히 버티어 내고 있다.

 

길거리에 게속 이미 지어진 펜션들과 새로 지어지는 펜션들이

모두 제각각의 특이한 모습으로 자연과 어울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자연을 무척 훼손하고 지은 건물들이 있어 아쉽다.

 

그러나 언덕을 오를 때 보이기 시작한 쪽동백나무의 하얀 꽃들을 보면서

하늘재라 부르는 언덕을 오르느라 힘든 것도 잊어 버리게 한다.

오늘 길을 끝내기까지 내가 가는 길은 완전히 쪽동백나무잎들로 흰 주단을 깔았다.

 

한참 길을 가는데 아주머니 3분이 숲속에서 무언가를 따고 있기에

물어 보았더니 개복숭아를 딴다면서 가방을 열어 보여 주기에

매실 아니냐 했더니 웃으면서 이건 개복숭아란다.

매실같이 설탕과 같이 재어 놓으면 원액도 만들고 차를 만들기도 한다며

나보고 길가에 핀 빨간 복분자를 먹으라며 가리키는데 이제까지 내가 산딸기로 알았던

것이 산딸기가 아니고 복분자임을 새삼 알았다.

이미 몇 차례 먹어보았으나 아직 맛이 안들었기에 먹다 말았는데

그 아줌마들은 그 복분자도 많이 따서 백속에 담고 있다.

 

땀흘리며 펜션단지를 지나니 멀리 김천저수지가 보인다.

작은 저수지와 아득히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는 전망을 상품삼아

우후죽순 생기는 펜션들.

학생들을 위한 수련장도 있고 애견들을 위한 애견펜션도 있다.

 

이 곳이 여차동이였던가?

화남 고재형 선생의 시 한 편이 숲길옆에서 읽고 가라며 나를 잡아끈다.

숲 속의 습한 곳에 놀던 달팽이가 도로로 나와 햇볓을 쬐고 있다.

이제 멀리 바다가 보이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 언덕까지 올라와

땀흘리며 길을 가는 나를 시원하게 해 주고 있다.

 

멀리 7코스와 7-1코스가 만나는 지역의 군초소가 보이고

그 바다를 향해 십자가를 높이 세운 갈색 지붕의 교회 뒤에도

벽돌로 십자가를 그려 놓아 위에서 내려다 보는 사람에게

무언의 암시를 전하고 있다.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어떤 이들이 펜션 앞에 있는 소나무의 가지를 잘라 내고는

솔잎들을 바구니에 담고 있어 어디에 쓰느냐 물었더니

솔잎을 설탕과 함께 넣고 밀봉 후 1년이 지나면 엑기스가 나오는데 만병통치약이라 하며

인터넷으로 솔잎새순을 검색해 보라 한다.

 

참으로 자연에서 모든 약이 해결된다.

나도 가끔 체했을 때 매일 원액을 먹으면 낫기도 하고

오래 전 황달로 고생할 때 참외꼭지 가루로 황달기를 모두 뺀 기억도 있다.

 

어차피 우리 몸도 흙에서 만들어진 몸이니 자연에서 나는 것으로 치유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내게 한약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이제껏 보약을 먹어 본적이 없고, 한약보다는 양약을 선호한다.

 

갈가에 핀 예쁜 꽃들. 이게 이름이 다 무얼까?

이름을 알면 더 반가울 텐데 마치 영어단어만큼이나 많은 꽃들의 이름들이

막상 꽃을 보게 되면 전혀 이름과 꽃이 매치가 되지 않는다.

 

이제 햇빛을 직접 받는 둑길에 올랐다.

몇 시간을 걸었나. 시계를 보니 약 2시간 반?

둑 위에 앉아 바다를 보니 갯벌에 무수히 나와 있던 칠게들이

닞게 날아가는 갈매기 그림자에 놀라 후다닥 구멍으로 숨는다.

그 둑의 세멘트 바닥을 보니 무엇인가 움직인다.

달팽이들이 무리지어 둑 위로 기어 나왔다.

 

둑 위의 수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자칫 잘 못하면 둑 아래로 떨어질 것 같기만 하다.

둑이 끝나는 끝에 갯벌 체험을 위해 몰고 나가는 탱크체인를 가진 차들이

오늘은 손님이 없는지 쉬고 있다.

 

둑 끝에서 산위로 들어가 갯벌센터쪽으로 가는데 문득 숲 속에서 노란 색갈의 물체가

휘익 숲으로 사라진다. 혹시 동물이 아닐까 하고 잠시 걱정했지만 색깔을 보니

인간이 만든 진한 노란색이라 여기 사람이 있구나 하고 안심하며 걷다 보니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까이 들려 온다.

갯벌 센터 앞에는 노란 조끼를 입은 남녀 학생들이 인솔교사로 부터 갯벌 생명체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갯벌에는 수없이 많은 민챙이들이 바로 바위 앞에 몰려 있다.

아이들은 징그러워 하고 저게 무엇이냐고 궁금해 하면서도 건드려 보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칠게들의 움직임을 보여 주려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잠시만 가만히 있어 보라고

얘기하지만 아이들의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은 교사의 설명을 듣고  갯벌에 직접 들어가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니

다시 숲속에 고요함만 가득하고 가끔 멀리서 갈매기 우는 소리들만 숲을 울린다.

숲 속으로 들어가니 새소리가 나를 따라 오고 있기에 잠시 발을 멈추고 새소리에

몰입해 본다. 몇 마리일까? 우는 소리가 다른 것으로 보아 적어도 종류가 다른 대 여섯 마리의

새들이 내 주위에서 내 움직임을 살피고 다른 새들에게 경계의 소리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북일곶 돈대로 가는 길옆에 노란 금계국이 가득 피어 있다.

가까운 곳에 돔형식의 이동형 텐트 펜션이 있는 곳으로 보아 그 곳에서 심어 놓은 것 같다.

그 펜션에는 이동형 풀장이 있어 애들이 바다를 보며 풀에서 수영하는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여기 숲길에는 쪽동백나무에서 떨어진 흰 꽃잎들로

그야말로 하얀 주단을 내 가는 길에 깔아 놓았다.

이 호사를 혼자 누리고 있다니 내가 스스로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이런 곳을 혼자 걸으며 자연으로부터 대접받는 사람있으면 나와 보라 해.

 

그러나 불편한 것도 있다.

오늘 이 시간까지 아무도 길을 걷지 않아서인지

밤새 거미들이 오솔길의 이 나무에서 반대편 나무에 쳐 놓은 거미줄들의 끈끈함이

게속 나를 괴롭힌다. 스틱으로 앞을 헤쳐 가며 걸어도 자꾸 얼굴에 달라 붙는 거미줄들.

 

북일곶 돈대에 올라 지난 겨울에 이 곳에서 성악을 좋아했던 길벗과 듀엣으로 같이 불렀던

노래를 생각해 보며 다시 한 번 혼자서 불러 본다.

그렇게 긴 숲길을 지나 갯벌 조망대 쪽으로 가는 언덕길을 내려 가는데

문득 내 앞에 큰 개구리 한 마라가 폴짝 뛰어 숲으로 들어간다.

가만히 보니 개구리가 아니고 두꺼비네.  사진을 찍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타이어로 만든 계단을 내려 가는데 그만 철문이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다행이 빗장은 걸려 있지만 자물쇠로 잠겨 있지는 않았기에

전화로 강화군청의 담당에게 물어 보니 빗장을 열고 나가면 된단다.

군부대와 그렇게 빗장은 걸되 자물쇠는 채우지 않기로 했다고..

 

아까 갯벌센터에서 모여 있던 학생들이 여기서는 멀리 갯벌 한가운데 들어가 있다

그 들이 벗어 놓은 신발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고 아이들의 소리가 여기 먼 곳까지 들린다.

 

배가 고프다.

시간이 12시 반이 넘어 1 시가 되어 간다.

늘 가는 갯벌식당에 들어갔더니 에약 인원이 많아 한 명은 식사할 수 없단다.

이런 낭패가...

밖에서라도 먹게 해 달라 했더니 잠시 기다리면 골방에 차려 주겠단다.

혼자 오면 이런 푸대접을 받네..

 

밥 한그릇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 나오니

갯벌에 나갔던 아이들이 옷에 온통 개흙을 묻히고 즐거운 표정으로 걸어 올라 온다.

그들이 올라온 갯벌에는 또 다른 무리들이 갯벌로 들어간다.

 

그들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숲 속이라 비록 바람은 불지 않아도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숲이 울창하여

그늘 속을 걸으니 조금 더위가 가시는 것 같다.

 

숲 끝에서 차도로 나와 익히 아는 길로 다시 올라가는데

가다 보니 이정표가 안 보인다.

그리고 이제껏 이 길을 몇 번 다녔었는데 보이지 않던 사유지 표시도 보인다.

인적 없어 보이는 사유지에 차가 몇 대 주차되어 있다.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니 펜션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나들길의 일부였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다시 길을 잃는다.

내가 왜 이러지? 잘 아는 길인데...

가만히 보이 이정표의 화살표 방향이 조금 헷갈리게 되어 있다.

아마 처음 오는 사람이면 조금 투덜 댈 수 도 있겠다.

적어도 길을 잘 모르면 역으로 걷는 것은 조금 힘들 것 같다.

 

몇 개의 펜션앞을 지나 다시 숲으로 들어가는 길.

이 길은 녹색 주단을 깔았다.

한 번 잔디를 깍은 듯, 일정하게 자란 잔디들이

워낙 푹신하여 그대로 드러 눕고 싶을 정도이다.

 

끝없는 녹색과 갈색의 주단길.

좋다. 참 좋다.

정말 어느 가수의 노래 가사처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이 숲속을 걷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가는데 어떤 이들이 개복숭아를 따고 있다.

낫을 길게 이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열매까지 따서는 그득하게 가방을 채운다.

 

너무 더워 긴팔 옷을 걷어 부치고 슾길을 걷는데 문득 날카롭게 내 살을 할퀴는 가시가 있다.

순간 보니 팔에 잠시 피가 맺힌다.

 

그렇게 선계(仙界)속의 길을 걷다가 갑자기 넓어지는 시야 저편에 바다가 보이고

마을이 나타나니 이제야 내가 속세로 돌아 온 듯하다.

 

신선이 아닌 동네 노부부가 마당에 마늘을 말리고, 파를 다듬고 있기에 인사를 하고

조금 가다보니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떠나는 아저씨에게 오랜만에 동족을 만난 것 같아

반가움의 인사를 하지만 나처럼 나들길을 걷지는 않았다한다.

 

커다란 산딸나무의 꽃들이 마치 솜이불처럼 나무가지에 걸려 있고

그 옆에는 밤나무에 꽃이 피어 나무를 백발로 만들어 버렸다.

 

선계속에서 놀다가 속세로 나오면 갑자기 늙어 버린다 했던가?

혹시 내 모습도 그렇게 변하지 않았을까?

모자를 벗고 땀이 흐르는 내 머리칼은 다행이 변하지 않았네..

 

혼자 걷는 즐거움.

오늘은 그 많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초록의 아름다움 그리고 꽃이 향연들을 혼자서 맘껏 즐겼다.

나만 즐긴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개울 속의 개구리 한 마리도 푸른 이끼를 껴 안고

나처럼 여름을 즐기고 있네...알았다..알았다.. 너도 호사스런 세월을 즐기고 있구나..

 

밥 먹는 시간 30분을 포함해서 7코스 20,8 Km를 꼬박 5시간 반만에 걸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워 길 떠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 나들길 1코스부터 15코스까지 모두 완주했다.

새로 걸은 1코스와 8코스까지의 글들과 추가된 9코스부터 15코스까지의글들을 모아

나들길만으로 구성된 책을 하나 펴내고 싶다.

 

아무리 완주하였어도 나들길은 4계절의 색깔이 모두 달라

매번 걸을 때마다 다른 모습과 느낌을 보여 주기에 수시로 시간날 때 마다

찾아오는 것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내 사랑 강화 나들길...

내가 네 옆에 있을 때마다 늘 내게 자연의 선물을 듬뿍 쏟아 주렴.

나 또한 늘 네 곁에 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비록 도심의 숲속에서도 너를 그리워하고 생각하마..

 

네가 있어 지난 3년이 참 즐거웠다.

앞으로 30년 동안도 네 곁에 있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