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3코스 역걷기

carmina 2013. 7. 8. 13:26

 

2013. 7. 6 토요일

 

 

수요일부터 날씨 예보를 보니 일요일까지 비소식으로 가득차버렸다.

그리고 이번 토요걷기는 나들길 3코스.

2년전 나들길 단체 걷기를 처음 하던 날 비가 무척 많이 왔었다.

그 때처럼 비가 온다 하니 그 추억을 다시 만들어 볼 수 있을까?

 

목요일 퇴근때부터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퇴근하여 집에까지 가는데

구두부터 양복윗도리까지 모두 폭 젖어 버릴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그래. 이 정도의 비가 오면 걸을 맛이 나겠다 하고 좋아했는데

비구름은 모두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 큰 피해를 준 반면

중부지방은 주말에 다시 뜨거운 날씨를 예보했다.

 

비소식이 있어서인지 걷기 신청자가 부쩍 줄어 오늘은 아는 얼굴이 별로 없고

새로운 얼굴들이 더 많다.

 

고려 원종의 왕비 무덤인 가릉에서 시작한 3코스 역주행.

 가릉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 포도나무 밭에 자라고 있는 포도들이 재해를 입지 않도록

이쁜 포장지로 하나 하나 싸 놓았다. 대개 신문지를 잘라서 하거나

혹은 누런 종이로 싸 놓는데 여긴 디자인감각을 도입했다.

아울러 포도나무 밑의 여유공간에는 고추가 자라고...

여러가지 신경을 쓴 것으로 보아 이 집의 포도는 틀림없이 맛있을 것이다.

 

숲 가득히 남자의 진한 냄새를 풍기던 밤나무 하얀 꽃들이 풀이 죽어  며칠 전 강한 비바람에

떨어진 채 갈색으로 변해 우리 일행의 발에 밟히고 있다.

 

진녹색의 쭉쭉 뻗은 잣나무 숲으로 둘러쌓였고 푸른 잔디로 잘 다듬어진 가능에서

서로 인사하고 출발. 처음 걷는 사람들이 숲속에 들어가자 마자 금방 탄성을 지른다.

며칠 전 비가 와 촉촉히 물을 머금은 소나무숲에서 진한 피톤치드를 마구 뿜어나오고 있다.

 

3코스는 몇 번을 지나다닌 길인데 길이 낯설다.

갸웃거리며 걷다보니 언덕에 정자가 하나 세워져 있다.

인근 진강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이 곳에 적당한 진강정이라는 

쉼터를 하나 만들어 놓았다.

가끔 마주쳐 오는 사람들이 모두 진강산에서 내려온다며 인사한다.

 

숲길을 가는데 문득 길 옆 언덕에 가건물같이 생긴 조그만 건물이 문을 꼭꼭 닫은 채로

숲속에 숨어 있다. 무슨 건물일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스님들이 동안거나 하안거 할 때 사용하는 집인가?

 

안 다녀본 길이라 모든 것이 새삼스럽다.

숲 길에 길게 활처럼 휜 나무, 물기를 가득 머금은 리기다 소나무 숲을 지나서야

겨우 눈에 익은 길이 보인다.

 

강한 비바람에 갈림길의 나무에 매달았던 이정표들이 어디로 떨어져 나가

군청에서 나온 분이랑 이정표 보수도 하고 천천히 걷는 숲길.

그 숲길에 오늘은 더욱 많은 나무의 잔가지들이 비바람때문에 길에 떨어져 있다.

덕분에 마치 우리가 걷는 길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아 카펫을 깔아 놓은 것 같아 더 기분이 좋다.

 

숲속에 앉아 먹는 간식들은 오늘따라 더 풍성하다.

까만 오디, 작은 찐 감자, 고구마, 방울토마토등의 과일에 이어 급기야는 오이지까지...

쉴 때마다 배낭속에 있는 것들을 나누어 먹는 재미가 항상 쏠쏠하다.

 

쭉 쭉 뻗어 올라간 나무들 사이로 자연을 사랑하고 길을 사랑하는 길 벗들이

나무처럼 서 있다. 멀리 진강산이 운무에 가득 덮히어 있고  산을 내려 오는

물길들을 제대로 잡기 위해 콘크리트와 돌로 수로를 만들어 놓았다.

산이 변하고 있다. 숲이 변하고 있다.

없던 울타리가 새로 생기고 걷기 불편했던 곳에 작은 다리가 놓여져 있다.

 

3코스의 숲길은 유난히 길다. 거의 2시간동안 숲길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 길이 좋다. 아마 나들길 16개 코스 중 가장 긴 숲길이지 않을까?

 

거의 아무도 찾지 않는 듯한 고려 강종의 부인의 무덤인 곤릉에는

오늘 장마철에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흰 비닐로 덮어 놓았다.

  

진한 이끼가 봉분을 둘러 쌓은 바위들에 가득하고

곤릉으로 올라가 콘크리트 도로도 이끼로 걸을 때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숲길을 걷다 마을로 내려 오니 길가에 개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구름비로 가득했던 하늘은 숲을 벗어나니 환하게 밝아 있고

여기 저기 보이는 이름모를 예쁜 꽃들이 오랜만에 햇빛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다.

 

이전에 3코스 순방향으로 걸을 때 점심을 먹거나 비를 피하던 길가의 교회 앞에

작은 발코니를 강화군청에서 기증했다 한다.

나들길을 걷다 보면 쉴 곳이 마땅치 않을 때 저런 시설이 꼭 필요했었는데

이제 고객들의 요구가 여기 저기 반영되고 있음이 보인다.

 

다시 또 인근의 석릉까지 돌아보고 내려 와 길정저수지로 항하는데

오늘 리더가 길정저수지 바닥으로 걷는다는 솔깃한 제안을 한다.

저수지 바닥이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저수지가 바닥을 보이는 경우가 드문데

최근에 길정 저수지의 물을 거의 배수해 버려 좀처럼 얻기 힘든 기회가 생겼다.

혹시나 저수지 바닥이라 질퍽거려 걷기 힘들 것 같았는데

막상 걸어보니 단단한 갯벌같이 되어 있어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발을 옮긴다.

물을 뺀 뒤로 그새 잔디가 자라 콩나물크기의 풀잎들이 저수지 바닥을 가득 덮었다.

평소 저수지 옆에 있는 펜션의 축대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오늘은 축대의 밑바닥까지

훤히 드러나 보인다.

 

가끔 저수지 바닥에 있었던 덩치 큰 쓰레기들이 보여 보기는 않좋지만 대체적으로

저수지 바닥은 깨끗했고 그 곳에서 낚시줄을 드리운 강태공도 기대에 찬듯

낮은 수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 많은 고기들은 어데로 갔을까?

그물로 수면을 거두어 내려가면 고기들이 가득 차 있을 것만 같다.

 

길정 저수지 둑으로 올라가니 탁 트인 시야가 보기 좋다.

푸른 잔디로 가득 덮힌 둑과 왼편으로 보이는 낮은 수면,

오른 쪽으로는 이제 30센티 대자만큼이나 크게 자란 벼들이 줄지어 있는 넓은 논 밭들..

멀리 보이는 구름 덮힌 낮은 산들,

평온한 농촌풍경에서 이 다음에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점심을 먹기 위해 저수지 툭 아래에 있는

야콘냉면집 (야콘나라 : 032-937-7771)으로  찾아 갔더니

이 냉면집이 한 눈에 보아도 잘 되는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깨끗한 입구. 잘 정리된 고객 신발,

화장실 표시도 화투장의 심볼 한 장을 크게 그려 재미있게 표시했고

화장실 가는 세멘트길도 녹색페인트로 마감을 해 놓아 어느 고급 빌딩의

복도를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야콘이 무엇인지 전시도 해 놓았고

손님들이 잠시 쉬다 갈 수 있도록 작은 공간 그리고

옆 마당엔 파란 잔디와 애들이 관심가질 수 있도록

작은 우리 안에 다람쥐, 닭 그리고 호랑이 무늬를 가진 희귀한 개 등을 기르고 있다.

 

주 메뉴는 냉면이지만 야콘으로 만든 여러가지 메뉴가 곁들였고

우리가 시킨 야콘만두, 야콘전 거기에 야콘 튀김과 정식까지

모두 감칠맛 나는 메뉴였고, 음식을 들고 오신 사장님의 모습도

나이들어보이지만 인상 좋으시기에

"사장님 인상이 좋으셔서 장사 잘 될 것 같다"고 추켜 주었다.

 

비빔냉면을 먹고 밖에 나와 보니 부속 건물이 여기말고 몇 개 더 있고

주차장 앞 작은 공간에는 머루를 길러 무성한 넝쿨에 익어가고 있는 머루가 주렁 주렁

달려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식사 후도 기분이 좋다.

이런 작은 관심과 정성들로 이곳에 가족 손님들이 계속 들어 오고 있다.

 

냉면하나로 포식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좋은 점심을 먹고 다시 둑으로 올라가

길을 걷는데 문득 둑 옆에 빨간 산딸기들이 눈을 활짝 뜨이게 한다.

그 때부터 모두들 산딸기 사냥에 몰두해 버렸다.

알이 굵은 산딸기를 입에 넣으니 달콤한 즙이 입안에서 터진다.

넓은 둑방길에 시원한 바람이 분다.

멀리 논 사이의 구불 구불한 길이 마음에 들고 잔잔한 수면이 좋다.

이런 곳에 멍석깔고 앉아 책이나 읽고 노래나 부르고 있으면 세상 사는 맛이 날 것 같다.

 

둑방길의 끝에 쯤에도 산딸기들이 주렁 주렁 열려 우리들을 유혹을 했지만

모두 더 이상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 길을 아주 천천히 걸어 둑을 넘어서니

길 옆에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공동센터라며 빌딩으로 가는 길을 막아 놓았다. 

 

멀리 집들이 보인다. 인적없는 마을을 지난다.

돌담이 아름다운 집. 지붕이 아름다운 집

기괴하게 생긴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동네.

돌담 넘어로 훼손되어가는 빈 집이 있어 문득 저 집을 사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도심으로 들어왔다.

강화 성공회 성당의 넓은 건물에 아이들이 모여 있고, 

우린 더 걸을 사람과 여기서 걷기를 마칠 사람을 나누었다.

리더가 내가 아직 가지 않은 길을 간다하기에 더 걷기를 자청했다.

 

대개 3코스는 전등사를 통해서 가기로 되어 있는데

전등사는 입장티켓을 사야 하고,

또 대개 평소에 전등사를 관람해 보았기에 일부러

이 부분은 건너뛰고 걷는다.

 

3코스 시작점 주변의 집들의 담장에 그려 있는 벽화들이

점점 숫자가 늘어난다. 지금은 깨끗해 보이지만 만약 오랜동안

보수를 안하면 보기 싫어 질 수 있을 것 같다.

 

온수교회앞을 지나 전등사 뒷산인 삼랑성 북문으로 오른다.

작은 언덕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니 산의 능선을 따라 길게 작은 오솔길이 이어져 있다.

지난 봄 올레길 10코스를 비를 맞으며 걸을 때 이와 비슷한 길이라 무척 기분좋았는데

오늘 여기서도 그런 멋진 코스를 가고 있다.

 

우거진 수풀사이의 구불 구불 작은 길하나.

시원함과 상쾌함이 밀려 온다.

이렇게 걸으며 산 하나를 다 돌아 버리고 싶다.

숲이 울창해서 햇빛이 안들어서인지 나무마다 이끼가 가득하고

나무외엔 흔한 야생화들이 자라날 공간도 없다.

이 멋진 길을 그냥 가고 싶었는데 갑자기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워낙 가파라서 나무들 사이로 굵고 흰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

잠시지만 그렇게 힘들게 올라가니 돌로 만든 축대 밑의 작은 통로로 들어가니

돌 틈에서도 습한 기운이 배어 나오는 것 같다.

 

돌문을 지나 잠시 쉬고 언덕을 내려가니 고즈넉한 절들의 뒷 모습들이

조용하게 다가온다.

이끼 낀 기와들, 많은 세월을 견뎌 낸 지붕들

사람 북접이는 앞마당보다 이렇게 뒷모습을 보는게 더 운치가 있다.

그 절의 앞에서 보니 절 모습보다는 부자집의 대문같이 보일 뿐이다.

현판도 없고 커다란 나무와 숲으로 둘러 쌓인 고택.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한 오래 된 대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다.

 

언덕을 내려가니 템플스테이를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과 외국 사람들이

승복과 밀짚보자를 쓰고 안내원의 지시를 따라 어느 유적지의 설명서를

한국말과 영어로 읽고 있다.

 

어느 날 직장에서 은퇴하면 아내의 반대가 심하겠지만 나도 이 곳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며 며칠을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우리나라 역사가 가장 깊은 사찰 중의 하나인 전등사 대웅전 앞에 관광객들이 많다.

내가 이 곳에 언제 와 봤던가?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강화로 수학여행와서

강화도 앞바다에 작은 배로 갈아타고 이 곳을 온 기억이 났다.

처음 이 곳 근처의 여관에서 하룻 밤을 자며 지낸 추억들.

대웅전 앞마당에 삐죽 튀어 나온 큰 바위에 내 이름을 작은 쇳조각으로

새겨 놓았는데 지금 보니 그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이 하나 들어 서 있다.

아직도 그 시절 전등사로 올라오던 좁은 길이 생각난다.

 

커다란 단풍나무 아래 사람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는 곳에 가보니

그 곳에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다.

아마 언덕 밑에서 올라 오는 바람이 이 곳을 통해 대웅전 마당으로 가는 것 같다.

편하게 입은 관광객들 틈에 섞여 한참을 그 곳 의자에 앉아 쉬고

전등사를 내려와 오늘의 여정을 끝낸다.

 

비록 무덥고 습한 날이었지만

2시간여의 긴 숲속길을 벗어 나니 맑은 하늘이 있고

둑에서 바라다보는 평온한 강화의 모습과 지천으로 널려 있는 산딸기들,

삼랑성북문으로 올라가는 멋진 트레킹 코스와

오랜만에 찾은 전등사의 모습 등등...

 

오늘도 역시 뜻 있는 도보여행을 가졌다.

 

내 생이 언제나 오늘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