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는 프로다 (강화나들길 5코스 고비고개길 우중걷기)

carmina 2013. 7. 14. 00:10

 

 

2013년 7월 13일 토요일

강화 나들길 5코스 고비고개길

 

요즘 전국의 날씨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지난 주에는 남부가 장마 중부는 폭염이더니

이번주는 중부가 장마 남부가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작은 나라에서 이렇게 다르니 미국이나 칠레같은 나라들을 어떨까?

 

장마전선을 타고 쏟아진 폭우는 둑을 붕괴시키고, 큰개울이 넘쳐 주민대피령이 내리고,

고속도로 옆의 암벽이 무너져 내려 교통이 마비되고 있다.

 

중부지방에 호우주의보가 있던 날, 강화를 찾았다.

비가 많이 올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묘한 호기심이 돋는다.

비가 와? 그것도 많이?  길을 걷고 싶다.

문득 나는 적어도 걷기에는 프로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는 상황이 더 열악할 때 도전하고 싶다.

 

버스를 타고가는 내내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거세고

버스가  달리며 바퀴가 뿜어내는 물도 거의 물벼락수준이다.

 

오늘 같은 날이 비가 억수로 오는 날 나 같은 프로들이 모였다.

모두 다 우비를 갖추고, 비가 등산화에 스며 들지 말도록 스패치까지 갖춘 완전군장을 했다.

내가 왜 스패치를 생각 못 했을까? 겨울에만 쓰는 것인줄 알았는데 이런 때도 쓰는구나.

어쩔 수 없이 비닐봉투를 얻어 바지 속으로 양말과 등산화를 덮어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했다.

지난 해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우중에 걷느라 신발이 젖어 고생한 기억에

오늘은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샌들 등산화 구매를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다.

 

강화 터미널을 나와 도심을 걸어갈 때 빗방울이 거세어 머리를 덮은 우비에 닿는 후두득 소리가

상당히 리드미칼하다. 잘 알고 있는 길이기에 망정이지 처음 가는 길이면 이정표 찾느라 고생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가는 코스라  못 보던 빌딩들이 들어 서 있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은 우리 뿐, 그리고 차들만 자주 오간다.

강화학생체육관 옆으로 원래 코스였던 개울이 넘쳐 다른 길로 돌아가며 개울을 보니

흙탕물이 금방 높은 언덕에서 떨어져 내린 폭포수같이 거세게 흘러가고 있다.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 국화리 저수지 둑에 올라서니 멀리 낮은 산들의 윗 부분이 

옅은 회색의 운무에 휩싸여 수채화를 표현하고 있고

국화리 저수지에서 방류하는 콘크리트 수로에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너무 빨라

그 위에서 튜브하나 올려놓고 앉으면  곧  캐리비안베이의 슬라이드 루프가 될 것 같았다.

 

평소 잔잔하던 저수지의 물들이 떨어져 내리는 빗줄기에 넘실 넘실 춤추고

수면에서 고기도 자주 수면 위로 튀어 오르며 춤추고 있다.

 

비가 오는 틈을 타서 길가의 나무들에서 새로 나오는 줄기들이 연한 색깔로

마구 세력을 뻗치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고  

길가 풀숲의 잡풀들도 무성해 졌지만 비바람에 모두 땅에 납작 엎드렸다.

 

비탈길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빗물들을 조심스럽게 피하며 걷는데

길가의 소외양간에서 뿜어내는 냄새가 비가 와서인지 더 진하고 역하게 코로 들어온다.

 

이제 산길을 걸어야 한다.

앞서가는 사람이 미끌어지면 줄줄이 미끄러질 것 같다.

숲 속 오솔길로 빗물이 흘러 내린다. 조심스럽게 빗물을 피해가며 걷는데

커다란 두꺼비 한 마리가  내 앞을 껑충 껑충 가로 지르고 있다.

그 뒤 숲 속길을 걷는데 주위에 온통 두꺼비 개구리가 메뚜기처럼 튀고 있다.

그들에겐 비가 내려 맘껏 즐기려던  숲속에 외계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걷는다.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지기에

국화리 학생야영장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간식을 즐기고 있는 사이 조금  가늘어 졌다.

야영장의 커다란 천막들은 문을 굳게 닫은 채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다.

 

다시 숲길로 올라가는 길.

계곡의 물이 우당당탕 거리며 쏟아져 내려온다.

리더가 조심하라고 미리 경고했던 길에 걸을 때

혹시라도 흙더미가 무너져 언덕아래로 구를까봐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긴다.

 

언덕을 오를 때는 그래도 흘러 내리는 빗물들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걸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언덕에서 계곡으로 내려갈 때는 산길이 완전히 물 많이 흐르는 개울이 되어 버려

개울물에 발을 집어 넣지 않을려면

오솔길 양 옆으로 다리를 넓게 벌려 어기적거리고 때론 껑충 껑충 뛰어 걸어야만 했다.

 

그것도 마지막에는 한 걸음에 건너가기 힘들 정도로 빗물의 폭이 넓어

어쩔 수 없이 물위를 뛰어서 건넜는데 그 중 일행 중 용감한 군인 아저씨 하나가

친절하게도 물속에 발을 담그고 여자들을 번쩍 안아 건네주고 있다.  

역시 길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한다.

 

수도원으로 가는 길 편편한 세멘트 길. 모두 여유롭게 걷는다.

재잘거리며 여기 저기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일주일을 살면서 이렇게 웃음소리가 편하게 들리는 날이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고

집에 와도 가족들하고 모두 각 방에서 지내니 별로 대화도 없고

교회가서나 합창단 모임가서도 이렇게 즐거운 미소들을 보지 못한다.

 

길을 걸으며 같이 흥얼거리며 노래하고,

꽃들이 아름답다고 모두 고개 숙여 바라보고

하늘의 구름이 멋있다고 숲 속의 나무들이 시원해 보인다고

숲에서 뿜어나오는 냄새들이 너무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그 어느 즐거움도 여기에 비하지는 못하리라.

걷는 것이 물질적으로 생산적이지는 못해도 감성으로 충만한 하루를 보낸다.

 

길을 걷는데 논에서 흘러 내리는 빗물이 넘쳐 도로위로 흐르는데

그 빗물속에 생명체들이 보인다.

제법 자란 올챙이들이 떼굴 떼굴 물살에 구르고 있고

논 뻘속에 숨어있던 작은 미꾸라지들이 나와 물 속에서 트위스트를 즐긴다.

 

평소같으면 이 길에 널린 산딸기들을 따 먹느라 정신없을텐데

오늘은 비를 피하고 우산을 들고 있어 산딸기들을 볼 기회가 없다.

 

잔디를 깔끔하게 다듬은 오상리 고인돌에서 쉬고 있으니

젊은 남녀가 위에서 반대편에서 내려 오고 있다.

오늘 같은 날 우리 말고 매니아가 또 있네.

 

고인돌군 뒤의 숲속길은 참 호젓하지만 자연은 시끄럽다. 

비는  모든 자연들을 일깨운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영지버섯들, 표고 버섯들

숲길을 무수히 덮고 있는 이름모를 작은 버섯들

툭 툭 떨어진 잣나무 열매들,

두더지가 길을 파고 지나가고 있고

거미들이 나무들 사이에 커다란 집들을 지어 놓았다.

 

내가 저수지에도 물이 가득차 있다.

원래 내가 저수지 둑위로 걸어가야 하는데 오늘은 공사중이라

둑 밑으로 걸어가지만 그 곳도 완전히 공사판이라 논 사이로 새로 난 세멘트길을 택한다.

 

평소보다 오늘은 걷기 속도가 느려 시간이 무척 지체되었다.

배도 고프고, 그대로 버스 정류장 의자에 주저앉아 쉬고 싶지만 

삼계탕으로 점심을 에약한 내가면이 가까이 있기에

다리에 비상동력을 넣어 억지로라도 걷는다.

 

오늘은 초복.

매 번 이 코스를 걸을 때 들러 식사하는 맛있는 밥집에서

특별 서비스로 삼게탕을 준비하고 식사비도 1인당 5000원만 받았다.

이 맛에 몰려 다닌다니까..

 

덕산 산림욕장으로 가는 넓은 길.

두 명의 학생을 데리고 온 어느 교사가 바빠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다.

점심 먹을 곳이 없을 것 같아 도시락을 싸 왔단다.

산림욕장의 넓은 길에 이 곳에서 묵고 있는 사람인 듯한 분이

천천히 뒷짐을 지고 걸으며 숲길을 즐기고 있다.

 

쭉 쭉 뻗은 나무들. 보는 것만으로 시원하다.

빗물을 먹은 습한 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의 향기가 몸으로 느껴진다.

2년 전 커다란 호우에 무너져 내렸던 계곡도 이젠 튼튼하게 방벽을 쌓아

오늘같은 거센 비에 빗물이 폭포같이 쏟아져 내려도 전혀 이상이 없다.

 

산림욕장을 지나 다시 숲속으로....좋다..좋아..

걷기는 불편하지만 오늘같은 숲속을 걸어보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숲 속 오솔길이 빗 속에 가득 묻혀 버렸다.,

발이 푹푹 빠지는 비 젖은 낙엽들, 물 웅덩이를 밟아야 한다.

그래도 다행히 오늘은 비닐로 덮어 신발 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거센 비에 나무가 쓰러져 있어 위험하고

빗물이 골골이 흘러가는 언덕길도 넘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흙길들이 무너지지 않게 바위만 밟아가며 걷다 보니 어느 덧 숲길 끝에 훤한 하늘이 보인다.

 

그 위에 올라서니 시원한 외포리 앞바다가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다.

이젠 비가 그칠려나..

석모도에서 관광객을 싣고 돌아오는 페리호를  따라가는 갈매기들이 신이 났다.

 

5코스의 마지막 도착지인 망양 돈대의 잔디를 누군가가 말끔히 다듬어 놓았다.

갓 베어낸 풀잎의 향기를 맡으며, 빗물로 깨끗해진 돈대의 돌 하나 하나를 어루만져 본다.

푸른 담쟁이들이 천천히 축대의 돌들을 감싸 안으며 올라가고 있고

나무들도 담쟁이들과 얼크러 설크러 지며 지내고 있다.

 

자연속에서 모든 것이 어우러진다.

비는 더러운 것들을 씻겨 내고 새로운 것들을 잉태한다.

 

빗속을 걷는 즐거움.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신발 걱정만 한다.

온 몸으로 느껴지는 시원함.

비를 맞아 보지 않은 사람은 옷 젖을 생각만 한다.

비를 머금은 숲속에서 뿜어 나오는 나무들의 향기들

그 속에 있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길이 없다.

 

제주도 올레길을 비맞으며 걸을 때도 이런 기분은 느끼지 못했다.

지리산에 폭우로 인해 입산금지령이 내렸을 때 둘레길을 걸었을 때도

이렇게 기분이 상쾌함은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

 

숲속의 오솔길을 많이 걷는 나들길에선 그 어느 둘레길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들길을 찾는다.

 

돌아오는 길에 같이 걸은 길벗들에게 외포리에서 새로 생긴 카페에서 팥빙수를 대접했다.

내가 지난 해 저술한 걷기 에세이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발간 1주년을 기념하며...

 

올해 나들길에 새로운 코스가 더 생긴다는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