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Lost Island (교동도)

carmina 2013. 8. 4. 22:54

 

2013년 8월 3일 (토요일)

 

땀이 흐른다.

이제껏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땀을 흘리며 걸었지만

오늘 교동도 걸음은 그야말로 땀으로 샤워를 했다고 할 정도로

내 온 몸은 화개산 정상에 오를 때까지 완전히 젖은 옷을 입고 걸어야만 했다.

요즘 저녁이면 에어컨도 꺼진 사무실에서 매일 야근하느라 내 체력이 떨어진건가?

 

강화도 창후리에서 교동으로 가는 페리에 올라 일행이 몰려드는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 보는데 대개 갈매기들은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새우깡을 나꿔 채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어쩌다가 갈매기들이 안하던 습성이 내 카메라에 잡혔다.

내 손가락의  순발력이 순간적으로 셔터를 누르고 그 장면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남았다.

그리고 또 다른 갈매기가 공중에 떠 있는 새우깡을 입으로 잡는 찰라의 사진까지..

  

창후리는 여름휴가지로 유명한 곳이 아니라  바닷가에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마을 사람들과 우리 같이 걷기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 군인들.. 등등..

마을로 향하는 아스팔트 길에 마치 뜨거운 물을 끓이는 무쇠솥처럼

열기가 아지랑이가 모락 모락 피어오른다

마을 길 입구에 무심한 표정의 구부정한 허리의 장승 두개가

우리 일행의 사진 모델이 되고 있다.

 

레고를 쌓아 만든 듯한 교동교회에 인적이 없고

마을에 있는 집들도 모두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거나

문이 열려 있어도 사람들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전에 쓰던 교동교회 폐건물이 무성한 수풀과 나무가지에 쌓여 괴괴한 기운이 흐르고

예쁜 능소화가 무감각의 세멘트 전봇대를 칭칭 감고 하늘로 하늘로 오르고 있다

 

그 앞을 지나는 우리 일행 30명 모두 묵묵히 행진할 뿐이다.

이렇게 길 걸으면 재미 없는데..

슬슬 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일부러 말을 걸고, 일부러 등산 모자를 눌러 쓴 얼굴에 웃는 모습을 보이게 해 본다.

 

길 옆의 익어가는 벼들이 바람에 크게 물결치고 있다. 바람이 분다.

숲으로 들어가면 더 시원하게 불까?

숲이 녹색으로 뜨겁게 타고있다.

장장 50일동안 내린 장마비로 잡초들이 무릎끝까지 올라와 았다.

리더가 오늘은 교동듸 숲이 정글과 같으니 반바지 등산복을 피하고

겨울 스패츠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고 미리 안내를 해 주어서인지

몇 명이 스패츠를 하고 어떤 반바지 입고 온 아저씨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맨 살에 스패츠를 착용했다.

자연은 결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

모든 만물은 생존본능이 있고 모두 본능적을 방어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조심해야 한다..말 없는 것들이라고 얕보면 다친다.

쉼터의 커다란 가지가 여러개 뭉쳐 있는 가족 나무 중  나이들어

옆으로 쓰러진 것도 있다. 무슨 사고로 일찍 이렇게 쓰러졌을까?

 

잠시 쉬는 숲속의 빈터에 앉았는데 벌써 윗도리의 반이 폭 젖어 있었다.

비나 오면 좋겠다고 모두가 이구동성이다.

자연적으로 자란 나무가 빼곡한 숲길을지나 한참을 지나 공자를 모시는 교동향교에 도착하니

문이 닫혀 있다. 관리실에 아저씨가 어슬렁 거리며 문을 열어주기에 들어가니

마당에 곰팡이가 슨 왕골돗자리들을 널어 놓고 말리고있다.

그간 오랜 비 때문에 이런 옛 건물은 피해를 많이 입었다.

오랜 세월동안 한번도 수리한 적 없는 것 같은 툇마루에

천년마다 선녀가 내려와 스치고 지나가 닳아버린 바위처럼

인간이 만들수 없는 곡선을 만들며 닳아가고 있다.

 

갈증을 향교 옆 샘터에서 시원한 물로 채우고 다시 길을 간다.

화개사로 향하는 길.

오늘 너무 더워 화개사로 올라가는 길이 힘들지 않을까?

그러나 돌아가는 길은 시간이 무려 3배가 걸린다.

이제까지 별 무리없이 올라갔었으니 문제 없겠다 하고 올라가는데

이런....오늘 내 컨디션이 엉망이다.

배가 나온 중년 여인들보다 내 걸음이 더 늦다. 숨이 차다.

겨우 겨우 높지 않은 화개산에 올라 멀리 교동마을을 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운무에쌓인 바다와 희릿한 산 봉우리들.

바람이 분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한 참을 그 곳에서 간식과 막걸리와 와인으로 즐거움의 시간을 갖고 내려 오는 길은

그야말로 정글이다. 오솔길들이 모두 잡풀들로 가득해 정글을 헤치고 간다.

간간히 넓은 시야가 펼쳐질 때 마다 시원한 바람이 사이를 비집고 불어 온다.

천화문 (天華門), 하늘로 가는 화려한 문이라는 걸까?

하긴 화개산 꼭대기로 가면 그 위로 보이는 것은 하늘 뿐이다.

하늘이 내게 다가온다.

 

오늘은 정코스가 아닌 다른 코스로 대룡마을로 향한다.

Lost Island. 이 곳에 오면 그런 말이 생각난다.

시간을 잃어 버린 섬. 

빠른 현대의 문명들이 이 곳의 섬까지는 넘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어릴 때 살던 모습들이 재현되고 있지만

아까 배를 타고 올 때 보이던 연육교가 완성되면 아마 이 모습도 사라지리라.

찌그러진 주전자, 부서진 선풍기같은 고물 잡동사니를 쌓아 놓고 혹시라도

필요한 사람 있으면 팔아 볼려고 하는 만물상의 물건들, 약국이라는 이름도 생소하고

TV 프로그램 1박 2일 출연자들이 여기 와서 머리를 깍았다는 이발소도 오늘은 조용하다. 

 

어느 집에서 창문으로 우릴 내다 보던 할머니께서 웃으면 모기장 너머로 웃어 보인다.

대룡마을골목에 할아버지 두 분이 한 낮의 뜨거움을 하릴없는 최소의 움직임으로 견디고 있다

 

점심으로 도가니탕을 먹었는데, 얼마나 도가니를 많이 주는지

양이 많아 밥을 못 먹을 정도였다. 오랜 전 미국에 아내와 뉴욕에 배낭여행 다닐 때

한인이 경영하는 조선옥이라는 식당에서 푸짐하게 나오던 도가니같이 양이 많다.

이걸 8000원에 판다니..과연 시골 인심은 푸짐하다. 맛있는 고구마 묵에 정갈한 반찬들...

 

점심을 먹고 몇 명은 더 걷기 힘들다고 선착장으로 먼저 떠나고

우린 이제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없는 논 사이의 평지를 걸어야 한다.

비오면 쓸려던 우산들은 양산으로 변했고

익어가는 벼들을 보호할려고 비료부대로 만든 군복을 입은 허수아비 군대가 길에 도열하고 있다.

 

죽도항으로 가는 길에 어느 집 앞에 탐스럽게 익은 빨간 고추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그 길에 다 허물어져가는 집들 몇 채.

난 이 곳에만 오면 여기 쓰러진 집들 중 하나 사서 수리해서 주말용으로 쓸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사람하나 없는 죽도항. 오래 전에 배가 너무 많아 돛대가 대나무 같이 보였다 하여 붙은 이름 죽도항.

그러나 이제 이 곳에는 빛 바랜 그물들과 폐선된 지 오래되어 통나무배 안에 잡초가 자라는

쓸쓸한 모습만 우리 같은 여행객에게 보여준다.

인적없고 스러져 가는 마을이지만 길가의 꽃들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고 있고

기르는 이 없지만 옥수수는 마당 뒷편에서 익어가고 또 어느 도랑 옆에는

누군가 요즘 인기있는 개똥쑥을 기르고 있어 손으로 조금 뜯어 진한 쑥냄새를 맡아 본다.

 

교동 읍성에 가니 이전에 읍으로 들어가는 아치형의 돌 문의 흔적만 아슬 아슬 하게 남아 있고

길 가의 집들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유적물로 보이는 돌은 마당의 장식물로 가져다 놓았다.

아니 어쩌면 그 바위들은 애초부터 읍성에 살던 마을 사람들 것인지도 모른다.

성만 문화재인가, 사람들 사는 곳도 문화재로 생각해야겠지.

 

조선 태종 때 황룡이 출현햇다고 황룡우물이라고 불린 돌 우물은 썩은 물로 가득하고

연산군의 집처에 있던 우물에는 커다란 나무가 우물을 뚫고 자라다가 죽은 채 박혀 있을 뿐이다

세상에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이 아슬 아슬하게 겨우 겨우 버티고 있다.

 

자...이제 교동도 나들길의 멋진 코스를 걸어 볼까?

바다를 끼고 걷는 둑길에 끝없이 이어진 숲길.

양 옆으로 안전목와줄을 설치하고 걷는 길을 가끔 정비해 놓아

걷기에 최고로 좋은 곳이다. 운이 좋으면 숨어 있던 고라니가 인적에 놀라

뛰어 달아나기도 하는 코스.

 

이 길을 거의 한 시간 동안 걷는다.

이젠 더위도 잊었고, 길벗들의 웃음소리와 파도소리가 어우러지는

행복한  코스를 걷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천천히 걷고 싶은 길.

 

그렇게 깊숙히 들어온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볕에 오늘 내 몸을 불살라 버렸다.

저녁에 딸이 내 얼굴을 보고 왜 그리 얼굴이 빨갛게 되었냐고 놀랜다.

 

나...오늘 한여름 복날 삼계탕처럼 푹 익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