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1)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carmina 2013. 8. 12. 21:55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다리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생전 위하여 땀 흘려가며 그 누른 곡식을 거둬들였네
내 어릴 때 놀던 고향보다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다리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생전 위하여 땀 흘러가며 그 누른 곡식을 거둬들였네
내 어릴 때 놀던 고향보다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다리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강화도 나들길을 걸으면서 늘 혼자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른다.

5코스 고비고갯길을 걷던 어느 날.

머리칼이 풍성하고 고운 은발로 가득한 나이드신 여자분이

내가 흥얼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며

본인의 가방에서 비닐로 꽁꽁 싼 종이 무더기를 내 보이시는데

모두 직접 펜으로 적은 노래 가사이다.

요즘 누가 이렇게 노래 가사를 펜으로 쓸까? 신기해라.

 

가사를 펼쳐보니, 내가 좋아하는 동요들과 포크송의 가사들이 가득하다.

이런 노래들만 있으면 난 밤을 새워 노래할 수 있다.

노래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불행하게도 새 노래에 대한 배움의 열정은

직장을 들어가면서 멈추어 버렸다.

그래서 난 아직도 내가 대학생시절까지 배운 노래들만 주로 부른다.

 

5코스 덕산삼림욕장에서 잠시 쉬며 길벗들이 내게 노래를 청한다.

마침 가사 사본을 받은 것이 있어 뒤적거리다 이 노래를 불렀다.

그 이후 내 배낭 속엔 늘 이 노래가사집의 복사본이 뒷주머니 포켓에 넣어져 있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흑인이 농장에서 일하며 고향 버지니아주로 보내달라며 부르는 노래다.

고향에 대한 아련한 기억.

고향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고향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

내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더 정다운 곳이 있을까?

이 노래를 들으며 고향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나들길을 걸으면 늘 고향길을 걷는 기분이 난다.

비록 도심에 살았던 사람들도 아마 내게 고향이 있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거야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숲길, 나무가 무성한 언덕, 길가의 꽃들, 낮은 집들..

앞에는 바다가 있고 갈매기가 끼욱거리고

진달래가 만발하고 때론 흐린 날 멀리 산에서 피는 구름 안개들...

잘 다듬지 않은 자연의 미가 가득한 곳이 강화 나들길이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교과서나 학생애창곡집에 늘 수록되는 귀에 익은 곡이고

늘 내가 기타를 잡으면  G코드를 한 번 훑고

바로 모인 사람들에게 노래한다 라고 시작할 때 부르는 노래다.

모두 익히 아는 노래이기에 일부러 따라 부르라고 의도적으로 시작하는 노래다.

 

기타를 배울 때 기교를 위해서 배우지 않았기에

학원같은 곳을 다니지 못하고 어깨넘어로 배우고 독학해야만 했다.

나는 주로 모두와 같이 부르기 위한 반주용도로 기타를 쳤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손가락의 앞부분으로 기타를 조심스럽게 칠 때

나는 손톱으로 치기 때문에 유난히 터치가 강해서 소리가 크고 

피아노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늘 내 기타는 다 같이 노래 부를 때

모두에게 유일한 악기가 되어 있었다.

 

대부분 주요 3화음인 으뜸화음과 버금딸림화음 그리고 딸림화음의

기본 화음으로 이루어지던 우리 시대의 노래들은

굳이 코드를 외우지 않아도 기본 화음의 진행만으로도

충분히 노래를 끊이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고,

내가 아는 노래들은 대개 다른 이들도 음악시간이 필수 교과목에

포함되어 있던 시절에 늘 흥얼거리며 부르던 노래였기에

자연스럽게 나는 모두의 즐거움의 중심에 서 있었다.

 

내가 이 노래를 부르고 나니 내게 가사집을 주신 은발의 여인은

노천명의 시 들국화를 조용히 암송하셨다.

그 날은 나들길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들국화 - 노천명 
 
들녘 경사진 언덕에
네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쓸쓸 했으랴
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
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
이름도 모를 풀 틈에 섞여
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빈들의 색시여

갈꽃보다 부드러운 네 마음 사랑스러워
거친 들녘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았다
한 아름 고이 안고 돌아와 화병에 너를 옮겨 놓고
거기서 맘대로 자라라 빌었더니
들에 보던 그 생기 나날이 잃어지고
웃음 거둔 네 얼굴은 수그러져
빛나던 모양은 한 잎 두 잎 병들어 갔다

아침마다 병이 넘는 맑은 물도
들녘에 한 방울 이슬만 못하더냐
너는 끝내 거치른 들녘 정든 흙 냄새 속에
맘대로 퍼지고 멋대로 자랐어야 할 것을

뉘우침에 떨리는 미련한 손은
이제 시들고 마른 너를 다시 안고
푸른 하늘 시원한 언덕 아래 묻어 주러 나왔다
들국화야 저기 네 푸른 천장이 있다
여기 네 포근한 갈꽃 방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