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3) 산길

carmina 2013. 8. 21. 22:52

 

 

 

 

산길 (양주동 작사, 박태준 작곡)

 

1,산길을 간다, 말없이 홀로 산길을 간다.

  해는 져서 새소리 그치고

  짐승의 발자취 그윽이 들리는

  산길을 간다,말없이

  밤에 홀로 산길을 간다.

 

2,고요한 밤 어두운 수풀

  가도가도 험한 수풀

  별 안 보이는 어두운 수풀

  산길은 험하다. 산길은 멀다.

 

아마 이 노래는 내가 나들길을 걸으면서 제일 많이 흥얼거리는 노래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겐 생소한 노래지만

한국가곡집에는 이 노래가 꼭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자칭 대한민국 국보인 대학자 양주동씨가 작곡하고

동무생각, 고향생각 등 누구나 아는 노래를 작곡한 박태준씨 곡이다.

 

산길을 걸을 때마다 저절로 주크박스처럼 흘러나오는 노래

일행들 뒤를 따라 가면서 혹은 앞서 가면서

혼자 음악으로 길을 걷고 있음을 표현하는 적절한 노래다.

 

내 머리의 빵빵한 Music Data Base 에는 주변의 사물을 볼 때마다

그 사물에 관련된 노래가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다.

 

노래는 짐승의 발자취를 들린다고 표현했다.

발자취가 들린다? 그게 시일 것이다.

남이 듣지 못하는 것을 시인은 들을 수 있다.

 

양주동씨가 살아계실 때 주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셨는데

어찌나 달변이던지 당시 양주동이라는 이름은 지식사전의 대명사였다.

 

어쨋거나 산길을 홀로 간다는 것은 길벗들의 영원한 로망이다.

나들길을 이렇게 그룹으로 다니기 전에는 거의 혼자 길을 찾아 다녔다.

처음 다닐 때는 사람들은 그다지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걷기 시작했을 때 나보고 '참 열정적으로 산다'고 늘 평을 했다.

그러던 트레킹 문화가 이젠 아주 보편화되고 사람들은 누구나 걷기 위해 떠난다.

등산용품이란 단어 이외에 트레킹용품이란 말이 생겨나고

트레킹 용품만 전문적으로 파는 매장이 여기 저기 생겨난다.

 

산길은 바위가 있는 것보다는 평평한 흙길이 좋다.

그러한 흙길이 많은 나들길이 걷기엔 참으로 편한 트레킹코스다.

바로 지난 주도 지리산둘레길을 다녀왔지만 

지리산은 주로 차가 다닐 수 있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세멘트 길이고 

제주도 올레길도 세멘트길이 많다.

 

2절 가사에 길을 걷는 이는 참 암울하다.

고요한 밤에 어두운 숲길.

인적도 없고 길 걷는 이는 산길이 험하다고 불평한다.

무언가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리랑 고개를 넘는 사람같다.

 

아니면 장날 장터에 갔다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거나하게 막걸리에 취한 채 늦은 밤에 비척대며 집으로 돌아가면서

길이 어둡다고 그리고 할머니에게 잔소리 들을 것을 예상하며

일부러 길에다 투덜거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아닐까?

 

어린 시절 나를 처음 교회로 인도한 고등학생이 전도사님이 되어 

시골 목회를 하시는데 학생들 가르치는 것을 돕기 위해 대학생이 된 내가 주말마다 강화를 왔다.

아마 불은면이라고 기억되는데 강화터미널에서 버스를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어느길을 달리다가 내려 한 30분 걸어서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기타를 들고 한 밤중에 버스에서 내렸다.

눈이 쌓여 있고 도로도 아닌 눈밭길을 걸어야 한다.

그냥 대충 방향으로만 알고 있었기에 눈이 덮여도 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 날은 달빛도 없고 길도 어두웠다.

기타를 어깨에 메고 한 참을 눈길을 걸어가는데 문득 저 앞에 사람이 오고 있다.

내가 서서 그 사람을 보니 그 사람도 서서 나를 보고 있다

그러다가 내가 조금 움직이면 그 사람도 움직이고...

문득 무서워졌다.

어릴 때 아버님은 내게 산에서 사람 만나는게 제일 무서운 것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안되겠다 싶어서 나는 혼자 노래를 큰 목소리로 부르며 그 사람에게 다가섰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가까이 왔을 때 쯤에 보니 그건 사람이 아니라 '소.나.무' 였다.

그 뒤로 교회 불빛이 보이고 나는 불빛만을 보고 숨가쁘게 뛰어서 왔다.

 

산길을 걸으며 산길을 노래하는 내 즐거움을 다른 이들은 알까?

노래를 부르면 오래된 추억들이 솔솔 내 머리속에 흘러다니는 것을 남들은 알까?

길벗들이 대화를 나누다가 얼핏 들리는 단어에 연상되는 노래를

내가 즉시 생각해 내서 조용히 부르고 있는 것을 알까?

 

나는 산길이 좋다..

노래 가사 처럼 밤에 걷는 산길 말고...

홀로 혹은 여럿이 낮에 걷는 산길..

 

* 오늘도 나는 길을 걸으며 노래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