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7) 향수

carmina 2013. 9. 13. 17:26

 

향수 (정지용 작시, 김희갑 작곡)

 

 

(나들길 1코스 2012년 가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돗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잊힐리야

 

요즘 같은 가을이 되면 강화도 나들길을 일부러라도 찾아서 걸어야 한다.

끝없는 황금벌판속에서 군무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강화도는 원래 그리 논을 지을 수 있는 평평한 땅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고려시대 왕들이 강화도로 피신하면서 신하들과 그 식솔들에게

밥이라도 먹게끔 해 주어야 하기에 갯벌을 간척하여 지금의 넓은 평야가 이루어졌다.

제대로 된 중장비 하나 없던 시절에 그 많은 땅을 간척하였으니

강화도에 어느 정도의 인구가 살았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으리라.

 

교동도를 걷다 보면 죽도항이라고 있다.

지금은 거의 폐허수준이지만 이전에는 배가 많이 정박해 있을 때는

배의 돛대가 대나무밭같이 많아서 죽도항이라고 명명되었었다.

 

강화의 너른 벌판.

승용차로 한 바퀴 돌면 내륙으로 바닷가로 펼쳐지는 넓은 평원.

그 평원을 걸을 때마다 향수의 노래가 절로 흘러 나온다.

 

이 노래는 한국의 가요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팝과 클래식의 접목곡이다.

미국에서 존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가 "Perhaps Love"를 불러 히트치자

우리나라에서도 벤치마킹하여 가요가수인 이동원씨와 유명한 성악가인 박인수교수가

이 노래를 듀엣으로 불렀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성악가 그것도 대학교수가 대중음악를 부른다는 것이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프로연주자들의 눈에 가시가 박혀

박인수교수는 이 노래를 부른 후 소속해 있던 오페라단에서 제명되는 불이익을 겪어야만 했다.

지금은 열린 음악회같은 곳에서 대부분의 성악가들이 가요를 멋드러지게 불러야 체면이 서는

시대가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시인 정지용씨는 이 시의 무대가 충북 옥천이라 해서

지금도 옥천에 가면 이 노래의 시비가 있고 지용제라 해서 매년 축제를 연다.

언젠가 충북 옥천을 차로 지나가면서 벌판을 보고 느낀 점이

확실히 이런 곳에서 이런 시가 쓰여 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유럽 음악여행할 때 모짜르트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호수와 낮은 산 그리고 그림같은 마을 등 주변 경관이 참으로 아름다워

그런 곳에서 자라면 당연히 아름다운 음악이 작곡되었을 것 같은 생각했듯이...

 

가사를 보면 농촌풍경이 아스라히 떠 오르고

나들길을 걷다가 농촌에서 일하시는 농민들을 보면

그 들의 모습을 이렇게 노래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고마울 따름이다.

 

이 노래의 가사 한 줄 한 줄이

모두 어릴 적 부모님과 누님, 

동네 아저씨들과 아주머니 그리고 농촌풍경,

밤에 마당에 누워 본 하늘의 별까지 아름다운 시어로 표현되어 있다.

 

매일 반복되는 농촌의 하루,

그러나 나날이 익어가는 곡식들과

무럭 무럭 자라가는 송아지의 모습들.

농부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논으로 밭으로 나가 벼에 인사를 한다고 한다.

영화 '어느 멋진 날'에서는 포도밭에 나가 매일 익어가는 포도송이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농부의 모습이 얼핏 스쳐지나간다.

우리에게 이런 노래가 있음이 참 자랑스런 일이다.

 

이 노래는 상당히 어려운 노래다

가사도 눈에 익은 단어가 아니라 외우기가 쉽지 않고

멜로디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전곡을 제대로 음정을 맞추어 부르는 것도 아무나 하지 못하고

음도 높은 편이라 고음을 잘 내는 테너의 목소리와 제대로 가요를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불러야 어울리는 노래다.

 

이 노래를 많이 불러본 사람으로서 이 노래를 부를 때는

박인수 교수 같이 열창을 하는 것보다 가수 이동원같이

조용히 읊조리며 불러야 제 맛이다.

이 노래를 부를 때 누가 화음을 맞추어 주며 같이 노래하면 좋겠다 하는 기대도 있고...

 

이 가을에 나는 농부의 결실을 보기 위해 강화나들길로 달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