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5세부터 75세까지 걸은 나들길 16코스

carmina 2013. 11. 2. 18:32

 

 

 

2013. 11. 2 (토요일)


며칠 전 부터 교회 목사님이 교인들 약 50명을 데리고

체험행사를 위해 나들길을 걸을려 하는데 내게 리딩을 부탁했다.

 인원구성을 물었더니 세상에..

 5세부터 75세까지..

 어디를 걸어야 할 것이며 점심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며칠을 고민끝에 내린 결론.

 우선 젊은 사람들은 빨리 걷고 아이나 장년들은 늦게 걸을테니

 분명 처음과 끝이 무척 길 것이다 이런 그룹을 혼자서 리딩해야 하니

 여느 나들길 코스처럼 길을 가다가 갈림길이 있어 비록 이정표가 있어도

 누가 가르쳐 주어야 제대로 가야만 하는 길은 무조건 포기해야 하고

 내 눈으로 행렬의 처음과 끝이 모두 보여야 한다.

 두번째로 조금이라도 긴 언덕이 있으면 안된다.

 세번째로 걷다가 중간에 빠져 나올 수 있는 짧은 코스여야 하고

 그 곳에 버스를 대기시킬 만한 장소여야 한다.

네번째로 가능한 흙을 밟을 수 있는 코스여야 한다.

 다섯번째로 풍광이 좋아야 한다.

 여섯번째로 천방지축 노는 아이들에게도 위험요소가 없어야 한다.

 끝으로 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구미를 맞출만한 식당이 중간에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만한 길이 어디 있을까?

 나들길 지도를 놓고 펼쳐 보기도 하고

 그간의 후기 올라 온 것을 보면서 여러 코스 중 점심을 어디서 먹었는지

하나 하나 체크해 보았다.

 

아마 10월 초순에 16코스를 걸어보지 않았다면 아마 못한다고 포기했을 것이다.

 창후리에서부터 걷기 시작하면 적어도 계룡돈대까지 평지를 모두 한길로 걸어야 한다.

시야가 탁 트인 곳이라 늦게 오는 사람도 알 수 있고

 둑으로 이루어진 흙길이고 바다와 강화의 너른 벌판을 동시에 볼 수 있고

 둑길을 내려 오면 바로 버스를 타고 점심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일행들이 더 걸을만한 여력이 있다면 덕산산림욕장에서

 외포리까지 가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물 때를 보니 걸을 때는 간조라 바다에 빠질 염려도 없다.

 

점심 식당을 위해 5코스 걸을 때 자주 가는 내가면에 있는 식당에 전화했더니

 그 많은 인원이 동시에 식사를 하면 다른 손님을 받을 수 없다니 못 받겠단다.

 또 다른 딜레마.

 

마침 지난 번 18코스 걸을 때 계룡돈대 지나서 용두레 마을에 있는 어느 큰 집에서

 많은 일행이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에 전화번호를 확인하여 물어보니

 30명이상만 된다기에 메뉴와 가격을 확인하고 무조건 점심을 부탁했다.

 

이제 모든 걷기 코스 선정과 점심은 해결되었다.

 남은 것은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

 3~4일 전만 해도 토요일의 날씨 예측은 맑은 것으로 나와 걱정안했는데

 금요일 뉴스가 토요일 중부 지방에 비가 아주 조금 온단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준비하는 분에게 일회용 우비를 준비해 달라 했다.

 떠나기 전날에는 인원이 60명까지 늘어났다.

 

대형 버스 한 대와 승합차 한대를 준비했단다.

 그러면 더 다행이다. 승합차가 둑길을 따라 서행하다가

못걸을 형편이 되는 사람은 승합차에 태워 식당으로 보내면 되겠다는

대안이 생겼다.

 

금요일 저녁에 잠을 설쳤다. 토요일 아침에 비록 흐리지만

 모임 장소에 갈 때까지 비가 쏟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모인 뒤 버스타러 밖에 나와보니 비가 주룩 주룩.

 금방 그칠 비가 아니다.

 

그러나 짐 싸들고 나왔는데 포기할 수 는 없다.

 강화에 도착하면 혹시라도 비가 그칠지도 모른다.

 강화로 오는 버스 안에서 강화의 역사와 나들길에 대한 설명을 하며

 김포를 지나는데 빗줄기가 더 거세어 진다.

 

안되겠다 싶어 실내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16코스 창후리 가는 길에 있는 강화도 역사 박물관이 좋겠다 하고

 버스기사에게 방향을 알려 주고 강화대교로 들어오니 비가 조금 잦아졌다.

 

 나들길 전문 리딩하는 이에게 전화해 보니 답안을 알려준다.

 창후리에서부터 걷지 말고 망월돈대부터 계룡돈대까지라도 걷는게 좋겠다고..

 

대형 버스가 망월 돈대쪽으로 가는에 벌판 마을에 이상한 집이 하나 보인다.

 마치 종이학처럼 생긴 빌딩. 무엇일까? 가까이 가서 보니 교회일세.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다. 종이학 두마리가 교회의 건물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버스가 마을길을 가는데

S자 커브길에서 대형버스가 회전이 안된다.

 겨우 겨우 커브길을 지나고 나니 더 이상 망월돈대까지 가기 힘들단다.

 모두 내려서 우비를 쓰고 돈대까지 걷기로 했다.

 

둑까지 올라가기까지 일행들은 논길를 걸으며 불평하는 듯 하다가

 둑에 올라가니 모두 탄성이 터진다.

 탁 트인 바다와 물 빠진 갯벌의 아름다움,

멀리 보이는 고려산과 바다 건너편의 석모두 상주산,

 희미하게 구름 머플러를 감은 산의 모습이 그림같다.

 

우비를 쓴 아이들이 떠들며 걷는다.

 어른들은 너무 좋다며 감정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땅은 비록 조금 질퍽했지만 모두 개의차 않고 걸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 아장 걷는 아이들

 최고연장자인 원로목사님 부부가 우산을 쓰고 서로 손을 꼭 잡고 걷는다.

 아이들은 온갖 것에 관심을 가지며 이것 저것 묻는다.

 

비가 와도 걷는 것이 좋다는 나의 의견에 혹시

 실제로 걸으며 심하게 반대에 부딪힐까봐 무척 걱정했는데

 이 걱정은 완전히 우려에 불과했다.

 

비록 망월돈대에서 계룡돈대까지 짧은 거리지만

 모두 즐겁게 걷다가 계룡돈대 들어서는 다시 한 번 탄성이 터진다.

 깨끗하게 다듬은 돈내 내 잔디밭과 걸어 온 길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돈대를 휘감은 단풍들은 담쟁이 덩굴들...

 

한참을 머물다가 점심을 위해 찾아간 용두레 마을체험샌타에는

사무장님이 멀리까지 마중나오셨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만족할만한 부페식 점심 메뉴.

 강화쌀로 만든 밥맛부터 달랐다.

 

나름대로 반찬들도 절대 국산 재료만 써서 만든 음식이란다.

 평소 밖에서 먹는 음식들에 입이 까다로운 아내가 밥과 반찬 맛에 폭 빠져 버렸다.

 오늘 점심은 백점짜리다. 가격도 저렴하고...

 

오후에 덕산의 숲길을 걷기는 취소했다.

 원래 오늘 체험행사 일정이 3시까지로 통보했단다.

 

대신 서울로 오는 길에 오늘 강화 장날이니 장터 구경을 나가자 했다.

 오늘 비도 오니 장터는 더 복잡하지만 비는 그쳤다.

 

우리 일행들 50명이 버스에서 내려 그 많은 장터 골목 골목에 있는

 사람들 사이로 퍼져 들어가니 어느 새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군중 틈에 눈에 익은 사람이 보인다. 요리연구가 빅마마 이혜정씨와 남편

 무엇을 고르는지 상인과 한참 이것 저것 물어보고 있다.

가끔가다 상인들 틈에서 만나는 우리 일행들엔 여지없이 손에 무언가 들고 먹고 있다.

 한참 뒤에 버스를 타기 위해 모여드는 우리 일행들의 손에 비닐봉투 꾸러미들이

 잔뜩 들려 있다. 나도 구이용 전어와 소라와 생강과 떡을 챙겨 들었다.

 

평소에는 나들길 오더라도 그냥 나들길 만들어준 이들에게 신세만 지고 갔는데

 오늘은 나들길 리딩을 하면서 강화도 경제에 제법 많은 도움을 주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의 사람들 모습을 보니 행복해 보인다.

단풍이 곱게 들은 깊은 가을 속의 강화를 빠져 나오면서

비록 빗 속에 걸었던 나들길이지만 이 들에겐 아주 멋진 추억이 되었으리라.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무심코 EBS TV를 보니 한국기행 강화편을 연속 방송하고 있다.

눈에 익은 사람들 길벗들 얼굴도 보이고..


오늘 강화 나들길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나들길을 알리기 위해 군청에서 미리 나들길 홍보지도를 받아 나누어주기도 하고..


뿌듯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