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미주방문기

멕시코

carmina 2013. 12. 5. 16:55

모든 단어가 영어랑 비슷한 스페니쉬가 무척이나 정겹게 보이는 나라.
정열의 나라라고 소문이 나 있는 나라
축구를 좋아하고 잘하는 나라.
커다란 모자가 생각나는 나라
알록달록 줄무늬 색갈의 모포같은 것을 어깨에 걸치고 쌍권총들고 서 있는 나라.
데낄라를 외치며 선술집에서 소리치는 나라

 

이상은 내가 알고 영화에서 무척이나 많이 보아오던 멕시코의 상상이다.

오래전부터 멕시코 업무를 보다가 드디어 출장기회가 생겼다.

비록 서류가 가득 들은 짐을 잔뜩 가지고 가긴 하지만 떠남으로서 좋은 곳이기에 수없이 많은 이민가방들을 가지고 공항으로 나섰다.

 

짐이 워낙 많아 부과금이 상당히 나올줄 알았는데 다행히 첵크인하는 사람이 업무상 가는 일이라 무척이나 많이 생각해 주어 단지 내 옷가방하나만 부과금을 물렸다. 만약 이것을 그대로 돈을 물렸다면 몇 백만원정도 들었을 텐데...

 

멕시코로 가는 편은 조금 불편하다. 주로 오후에 김포를 떠나는 대한항공 비행기로 약 11시간정도 날라가 LA로 가서 서너시간 기다리다가 다시 7시간정도 내려가야 하니 거의 하루를 꼬박 세우는 셈이 된다. 거기다가 그곳을 도착하면 오후라 밤이 올때까지는 자는 것도 힘들다.

 

미국 비자가 없으면 LA공항을 나가지도 못한다. 공안원의 안내를 받아 일정장소에 대기하고 있다가 시간되면 다시 안내를 받아 갈아 타는 비행기의 탑승구에서 기다려야 한다. 미국에 도착하면 모든 짐을 찾게 되어 있다. 그냥 직접 짐이 멕시코까지 가면 편하련만... 수많은 이민가방을 찾으려 하니 어느새 옆에 공항 일군들이 줄지어 있다.

 

사냥거리를 제대로 찾았다고 생각하는지 내짐의 모양을 물어보고는 즉시즉시 자기가 가지고온 커다란 카트에 실어 놓고 세관검사대 앞에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을 앞질러 내달으며 빨리 통과 시킨다. 그리고 델타로 가는 짐칸에 모든 짐을 놓고 팁을 청한다. 적당히 줄려고 하니 더 달란다. 짐하나에 적어도 일불을 달라하길래 그다지 많은 돈도 아니지만 그렇게 주기가 싫어 조금 적게 줄려고 했더니 그럼 차라리 안 받겠다다고 그냥 가버릴려 한다. 한국사람들에게 돋 받아내는 방법을 알았는지 조금 빼는 것이리라. 조금 더 집어주니 그라시아스 하고 인사한다. 아 너도 남미쪽 사람이구나..

 

대한항공이 도착하는 공항청사와 델타가 떠나는 청사는 다른 곳이라 천천히 걸어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안에서는 절대 금연이라 모두 재떨이가 있는 밖에서 담배를 즐기고 있다.

 

텔타청사로 오니 제일 먼저 피자헛이 눈에 들어온다. 배가 고프진 않지만 정통 미국 피자를 먹고 싶어 가장 조그마한 것을 시키니 혼자 먹기 적당하게 포장되어 있는 것이 있다. 5불. 피자맛은 역시 피자헛이야. 천천히 청사를 돌아보니 여기 저기 면세점 같지 않은 상점들이 있고 미국냄새가 물씬 나는 온갖 물건들이 가득하다. 미국이 자랑하는 디즈니 만화의 캐릭터 인형들,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만든 부피가 작은 소설들, 여행용품들... 이것 저것 구경하면서 콜라를 시키니 사이즈를 물어 본다. MEDIUM을 시켜 손에 받아 보니 이건 한국에서 완전히 LARGE SIZE다. 그래도 원래 먹성이 좋아 그 많은 것을 다 마시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이 금새 가 버렸다.

 

미국 항공사의 스튜어디스들은 대한항공의 스튜어디스들 처럼 억지 웃음이나 남들 안볼때는 조금 힘들어하는 표정들이 아니고 모두 아주 자연스럽게 일을 하고 있다. 얼굴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미소짓고, 식사를 나르는 모습도 정중하거나 아주 조심스럽게 나르는 모습이 아니고 마치 커다란 공장에서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일군들처럼 아주 몸에 익숙해 있다. 기내 면세품 판매시에도 대한항공의 승객들처럼 너도 나도 사는 것이 아니고 아주 적은 인원만이 조용하게 물건을 청한다.

 

멕시코에 도착, 나가는 곳이 불확실하다. 분명이 어디엔가 EXIT라고 써 있을텐데 하면서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그런 글을 찾을 수 가 없다. 다른 공항처럼 비행기에서 내려 다른 사람들이 나가는 곳으로 나가면 저절로 나가는 곳이 아닌가 보다. SALIDA라고 쓰여 있는 곳으로 나가다 보니 제대로 찾았다. 짐이 워낙 많아 카트를 찾으니 카트에 삼성을 선전하는 광고판이 붙어 있어 반가움부터 앞선다. 혼자 카트 세개를 끌고 하나에 가방 세개씩 올려 놓으니 이건 앞이 안보인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여기에는 짐꾼도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나 보다. 쩔쩔 매며 세관을 통과하려니 제복을 입은 사람이 날 불러세운다. 스페니쉬로 이게 다 무엇이냐고 묻는 것 같아 서류라고 했더니 뜯어 보잔다. 그 중 한두개를 풀어 보고 확인하더니 이 서류가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묻길래 국영석유회사에 제출할 입찰서류라 했더니 그럼 그곳에서 와서 가지고 가야 한단다. 이런 엉터리 같은 녀석. 내가 입찰서를 제 날자에 지정된 장소에 제출하는 거지 공항에서 가지고 가는 법이 어디있느냐고 어이 없는 표정을 지었더니 말이 안 통한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날 인계한다. 그 사람은 그래도 영어가 통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한다. 그러나 워낙 짐이 많으니 조금 세금을 내야 한단다. 무슨 세금이냐고 이미 떠날때 모두 지불했다고 우기면서 얼마냐고 물어보니 한 7000원정도라고 하길래 못 이기는 척 하면 내 주었다.

 

날 마중나온 사람도 내가 짐이 워낙 많으니 조금 귀찮아 하는 눈치다. 적당히 날 호텔에 내려 놓고 짐은 사무실로 가지고 가고 저녁을 같이 했다. 내일부터 일하기로 하고 식사후 호텔에 들어와 자리에 누우니 아직 초저녁이고 시간대 때문에 잠이 오질 않는다.

바로 호텔앞의 거리는 조용하기만 하다. 이곳이 ‘조나로사’라고 가장 번화가라고 하는데...

아직은 지역이 낯설어 호텔에 그대로 머물기로 한다. 로비에서 어느 한 청년이 기타를 치며 혼자 전통 멕시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기타 솜씨가 상당하다. 아주 독특한 주법으로 연주하는데 영화나 라디오에서 무척 귀에 익은 리듬이다. 저게 남미의 리듬이구나 느끼면서 로비의 소파에 앉으니 음악을 듣는 사람은 나 혼자다. 노래가 끝날때 마다 박수를 쳐 주니 ‘그라시아스’를 연발한다.

 

한참을 혼자 앉아 있다가 맥주가 마시고 싶어 지나가는 종업원에게 맥주를 달라면서 비어를 주문하니 도무지 영어를 모른다. 아니 이런 도심지에 외국이 많이 드나드는 호텔에 여종업원이 영어를 모르다니 ... 그것도 일상 마시는 음료의 한가지를...

 

휴지를 뽑아 펜으로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했더니 아이스크림이냐고 묻는다. 내가 아이스 크림을 그렸나 자세히 보니 그럴법도 하다. 거품생기는 모습을 그렸더니 아이스크림인줄 알았나 보다. 그게 아니라 다시 웃으며 설명을 하는데 옆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던 신사 가 ‘꼬로나’ 하고 말하니 여 종업원이 알겠다고 웃으며 맥주를 가지고 오는데 상표가 ‘코로나’ 이다. 아 이게 그 유명한 ‘코로나’ 맥주구나. 병만 가지고 오고 컵은 안 자기고 왔길래 컵 가지고 오라 했더니 나보고 이상하단다. 아 그렇지 이곳에서는 컵없이 그냥 마시더라. 영화에서 본 모습들이 생각나다. 병째 입에 대고 마시는 우아한 모습들을... 나도 그런 우아한 폼좀 잡으며 마시려 하는데 어떻게 잡고 마셔야 하는지 도무지 어색하기만 하다.

 

한참을 그렇게 홀로 맥주를 아주 천천히 들이키며 음악을 즐기다가 가수가 시간이 끝났는지 기타를 케이스안에 넣고 사라지길래 나도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하니 도무지 잠을 못이룬다. 부시럭 거리며 침대에서 자다가 바닥에서 자다가 하기를 몇번하다가 목이 마셔 마침 화장실에 음료수인 것 같은 물병이 있어 병째 몇 모금을 들이키고 그렇게 긴긴 밤을 보냈는데, 그것이 탈일 줄이야 그 다음날 아침부터 내 뱃속은 난리가 났다. 설사가 좍좍 나오고 일은 일대로 해야 하고...

 

다음날 지사에 나와 보니 현지 직원으로 근무하는 아가씨들이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날 반긴다. 이미 내가 왔음을 알았으리라. 첫 모습에 이국냄새가 눈에 가득하다. 깊은 눈과 큼직큼직한 코, 눈 그리고 동그란 얼굴 형태와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가 앞에서 자꾸 왔다 갔다 한다. 걸을때 마다 젖가슴이 출렁이고 더우기 앞가슴이 훤히 보이는 옷들을 입어서인지 무척 요염하기만 하다. 이런곳에서 종일 일하는 한국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처음으로 가지고 간 286 노트북 컴퓨터를 이리 저리 연결하여 서류를 작성하고 프린트하고 하다 보니 점심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점심을 멕시코음식을 먹고 싶어 현지직원에게 무엇이 있느냐고 했더니 타코가 제일 맛있단다. 그래 무언가 새로운 것을 먹어보는 것도 좋다. 길거리의 타고 파는 집으로 갔다. 타코가 무엇인가 했더니 그 옛날 중동에서 많이 먹어본 것의 이름이다. 커다란 쇠꼬챙이에 고기를 얇게 썰어 가득히 포개 놓고 불판앞에서 계속 돌려가면 겉에서 부터 익기 시작하는데 익은 부분을 잘라내서 넓은 빵에다 싸먹는 요리를 말한다. 물론 그 안에 각종 양념을 넣는데 이곳은 양념이 특이하다. 모두 각종 고추를 빻아서 물에 버무려 놓았다. 그중 어느 하나를 먹어보았는데 얼마나 매웁던지... 한국고추매웁기와는 비교가 안된다.

 

타코에 곁들여 먹는 것중에 구운 파마늘이 있다. 끝이 둥그런 파를 불에 그대로 구어 내 놓는데 그 위에 레몬을 뿌려 그대로 버석 하고 깨물어 먹으니 맛이 일품이다.

계속 설사가 나서 근처 약방에 가서 설사하는걸 한 참 그림으로 설명하고 나서야 약을 살수 있었다. 내일의 중요한 일을 생각해서 그날 밤은 조용히 자기로 한다.

 

혼자입찰 준비를 하다 보니 미숙한게 많아 여러 업체에서 가지고 온 다른 서류들과 내 서류를 보니 무척이나 초라하다. 가지고 간 서류를 포장한 물건과 바인더 등이 모두 망가져 엉망이다. 이렇게 품질이 나빠 경쟁력에서 이길수 있으려나.. 다른 업체들은 견고한 종이 박스에 가지런히 가지고 와서 입찰서를 제출하는데 내가 가지고 간 것은 무척 엉성하기만 하다. 그러나 겉모습보다는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우선이라 우리 회사가 그 공사를 따내고 말았다.

 

일을 마치고서야 멕시코의 모든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길거리의 풍경들. 건물 모습들, 돌아다니는 차의 형태들 한꺼번에 밀려오는 이국풍경들이 무척 관심거리들로 내 곁에 닥아왔다.

 

우선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들은 길거리의 물방게 폭스바겐들. 거의 70퍼센트이상의 택시들 및 승용차들이 독일에서는 이미 생산이 중지되었다는 폭스바겐들의 물결로 거리가 가득 차있다. 가끔 미국이나 유럽의 고급차들도 눈에 뜨이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소형차들이 많았고 미국차들도 너무 고물들이라 달릴때마다 내 뿜는 매연은 거리가 늘 매콤한 맛으로 만들었다. 이곳은 이러한 매연과 지역의 특성때문에 세계에서 손 꼽는 매연의 나라중 하나이다.

 

멕시코시티는 도시의 그 자체 위치로도 해발 2000미터 이상에 위치해 있고 도시의 사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매연이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늘 도시에 머물러 있어 공해가 심하다 한다. 워낙 고물차가 많고 매연이 심해 어느때는 차량운행을 전면 통제한다고 하며 늘 5부제 차량운행을 하며 텔레비젼 방송에서는 조깅금지 방송이 나온다고 한다.

 

저녁에 식사를 위해 차를 타고 나가다가 무척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다. 좁은 길에 우리 차가 가는길에 신호가 걸려 기다리고 있다가 신호가 바뀌어 가야 하는데 앞에 차가 가지 않고 있다. 보니 바로 그 앞에 차안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두 연인이 그새를 못참아 둘이 신나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뀐줄도 모르고... 그것조차 이상한데 더욱 이상한것은 그 뒤에 차가 경적한 번 울리지 않고 슬며시 비켜가주는 예의을 보여주지 않는가? 참으로 이상한 나라이다.

 

길거리의 연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주위의 눈은 전혀 거리낌도 없이 아무 곳에서서나 열렬한 키스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서로 눈만 마주치면 그대로 불똥이 튀긴다.

이것이 남미의 정열인가?

 

멕시코는 돌아다니다 보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아가씨들과 멋있는 청년들이 있는 반면 얼굴도 넙적하고, 못생기고 피부색갈도 거무튀튀한 아가씨들 젊은이들의 두 부류가 있다. 전자는 스페인계통과 원주민과의 잡종이고 후자는 원래 이 땅에서 살던 원주민 즉 메스티족속들이다. 잘생기고 이쁜 사람들은 잘 사는 편이고 못생긴 사람들은 주로 허드렛일들을 도맡아 한다. 그러니까 구르는 돌이 박힌돌을 뺀 셈이 된다.

 

이른 시각에 아침을 먹으러 근처의 데니스라는 밤새 영업하는 음식점에서 늘 아침식사를 하는데 식사를 하다보면 창밖에서 메스티족들이 콧수염 달린 멕시코 인형이나 선인장으로 짠 알록달록한 천들을 어깨에 걸고 팔고 있다.

 

그리고 길거리에는 온 식구가 거지가 되어 조그만 장난감 기타를 치면서 손님들에게 구걸을 하는 원주민들의 모습에서 정복당하는 자의 비애를 느낀다.

 

그 다음날은 하루 여정을 잡아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어제 저녁에 호텔근처의 유명 여행사에서 데이투어코스를 알아보았더니 하루 8시간짜리 코스가 있어 미리 예약해 놓았다. 아침에 대형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많은 사람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다가 버스에 오른다. 나이든 외국 부부들, 나 같이 혼자 여행다니는 사람들... 버스는 약 3분의 2정도 손님을 태우고 시내로 가다가 어느 호텔앞에선가 사람들을 또 태운다. 나이가 있는 중년의 신사가 자기 소개를 하면 예약자와 오늘 신청한 사람들의 명단을 일일이 대조하고 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소칼로라는 역사깊은 광장이다. 무척이나 넓은 광장에 구석에 전철이 있는지 사람들이 지하에서 출근을 위해서 올라오기도 하고 여기저기 관광객들이 한 무리씩 광장으로 모여든다. 이곳을 헌법광장이라고도 한다. 차에서 내려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곳이 광장 한 면을 완전히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성당이다. 한눈에도 한 쪽면이 조금 기울어진게 역력하다. 기울어지는쪽에 보수공사가 한창인듯이 공사용 막대들이 얼기설기 엮어져 있다.

 

멕시코에서 제일 크다는 이 성당은 세계에서도 크기라면 손안에 든다고 안내자가 얘기한다.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오른쪽 광장에는 국립궁전이라는 커다란 건물이 보인다. 안내자는 어느 창문을 가르키며 매년 독립 기념일에는 대통령이 그 창문에 나와 멕시코 만세를 외치면 광장의 모든 군중들이 같이 멕시코 만세라고 따라 한단다. 안내자는 일행을 어느 벽화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무엇인가를 한참 설명하고 있다. 아마 멕시코의 역사를 그려놓은 것 같다. 안내자 주위에 다른 사람이 많아 설명은 듣지 못하고 대 서서시같은 그림만을 열심히 구경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성당 주위로 데리고 가더니 어느 허물어진 장소를 보여준다. 설명이 이곳이 아즈테카 문명의 역사지라고 하는 것 같다. 그곳에 오리 한무리가 천천히 노닐고 있다. 입에 거품을 내며 한참을 설명하다가 일행을 버스에 태우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어느곳은 레포르마 거리 어느건물은 우체국이다 하고 열심히 설명한다.

 

거리를 한참을 헤매고 돌아다니다 점심시간이 되니 어느 음식점에 일행을 내려 놓고 먹고 싶은대로 먹으라 한다. 물론 자기 비용이지만, 안내가가 권하는 이상한 음식들을 맛보고 무척이나 매운 고추맛을 한 번 더 맛 보았다.

 

점심을 즐기고 차는 한적한 외곽도로로 빠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곳엔가 잠시 차를 세우더니 이곳에서 올림픽이 열린 곳이라 설명을 한다. 하얀 건물의 대형 스타디움이 눈앞에 가득 차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내 눈을 끄는 것은 그 앞에서 열렬히 입맞춤을 하고 있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었다.

 

오후에 일행을 데리고 간곳은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이다. 입구에서부터 지붕에서 물이 떨어지는 기둥이 없는 커다란 분수가 특이하게 보였고 여기저기 멕시코의 관습, 축제, 전쟁 회화, 생활규범등 장르별로 구분을 해 놓은 것 중 제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과연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아즈테카 문명을 설명해 놓은 그림들이었다.

 

선조들이 이 곳에 찬란한 문명을 이루어 놓고는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직도 그 신비의 행방이 밝혀 지지 않고 있지만 그 들이 옮겨다닌 흔적들을 설명해 놓은 그림들이 있고 어느 곳에서는 학생인듯한 꼬마가 무인칭 대중을 향하여 열심히 자기가 서 있는 곳의 기념물을 설명하고 있다. 장래의 안내자를 위해서 실습을 하고 있는 건지..

 

안내자은 어느 커다란 원형 돌을 가리키며 그 돌에 새겨진 무늬가 뜻하는 바를 설명하고 있다. 자세히 들어보니 우리의 달력 같은 것인데 월마다 그림이 표시되어 있고 그 달력을 기준으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일년은 12개월이 아닌 18개월로 표시하고 있고 이 달력을 기준으로 농사를 지었다는 안내자의 우리의 선조와 동질감을 느꼈다. 여러가지 돌들로 각종 동물들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것을 보며 멕시코 선조들의 돌 다루는 것을 유심히 보았다. 마치 밀가루 다루듯이 정교한 조각들에서 세계 4대 문명지의 발상지인 이들의 화려했던 문명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박물관은 여러 방으로 나뉘어 지구의 생성과 각종 펜들럼들 과거와 역사를 여러가지로 조명해 놓았고 어느 곳에서는 방 하나 전체가 다 악기인것처럼 밟는 곳에서 발자국마다 아름다운 소리가 들렸다. 박물관은 무척이나 넓었다. 그 곳을 하루 코스로 잡아도 될만큼 이것 저것 구경을 하자면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다.

 

다음 행선지는 소치민코 공원이라 한다. 버스가 내린곳은 어느 조그마한 선착장이다. 조그만 보트로 갈아타니 서서히 뱃길을 따라 내려 가는데 강둑에는 나무들이 뿌리채 들어낸채 서서히 깍여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무척이나 오래된 듯이 이끼가 가득 차 있고 오랜 세월동안 거쳐서 이렇게 강둑이 넓어지는것 같다. 천천히 강물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노래하고 기타로 연주하는 악단을 태운 배가 가까이 오며 우리 배를 따라가면 각종 민속 곡들을 연주해 준다. 그리고 또 다른 배들이 가까이 와서는 각종 토속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다. 우리 여행객들은 마치 왕처럼 즐거워 하고 있다.

 

하루의 여행은 우리를 어느 보석가게에 내려 놓는 것으로 행사가 끝났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아무것도 안사고 그냥 나오니 무척 섭섭한가 보다. 차는 이제 퇴근 차량에 가득 밀린 도시로 들어왔다. 늘 그렇듯이 저녁에는 비가 온단다. 워낙에 공해가 심해 밤에는 그 공해들이 비구름으로 변하는지 거의 10차선이나 되는 일방도로상에서 차는 꼼짝도 못하고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면서 호텔 가까이 오다가 비가 오는 거리에 날 내려 놓는다. 내리는 순간 아차하는 느낌이 들었다. 안내자에게 팁을 잊어먹었구나...

 

두번째 멕시코 여행은 일행이 있었다.

 

여러명이 한꺼번에 오랫동안 멕시코시티에 체류하게 되었다.

 

멕시코시티에는 한국정이라는 한국음식점이 시내 한군데 있는데 거의 모든 한국음식을 요리해 내고 있다. 우리 일행의 음식은 늘 이곳에서 해결했다. 나는 굳이 한국음식을 먹지 않아도 견딜만 한대 대 부분의 직원들이 잠시 출장을 나와도 한국음식을 즐겨한다. 저녁에 늘 곁들이는 데낄라. 좀 특이한 것은 이곳에서 데낄라를 시켜 먹다가 남으면 병에다 우리 회사 이름을 적어 놓았다가 다음에 와서 다시 먹다 남은 술을 먹을 수 있다. 데낄라는 원래 선인장으로 만든 술인데 향이 좋고 먹는 방법이 색다르다. 우리는 저녁에 고기 안주로 먹지만 원래 데낄라 안주는 소금이라 한다. 손 등에 레몬을 조금 뿌리고 소금을 그 위에 바른다음 데낄라 한잔 먹고 손등의 소금을 혀로 빨아 먹는다고 한다.

 

우리일행은 모두 데낄라를 좋아했다. 아니 소주가 없으니 즐겼는지도 모르지만, 흔한 차돌백이안주가 좋아 저녁마다 데낄라를 즐겼다. 술을 주문하면 조그만 풋복숭아같이 생긴 레몬을 반을 잘라 술과 같이 갔다 준다. 데낄라에 그 레몬을 짜서 마시면 향이 더욱 좋아져 그 독한 술이 취하는 줄을 모르고 우리의 얼을 빼았는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아주 여장부라 목소리도 크고 온 갖 것에 다 참견하고 서글서글하게 말을 건다. 자기가 이곳에서 장사를 한 뒤 우리들 처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을 처음 보았다고... 우리는 속칭 노가다들이라 그렇게 먹는다 했다.

 

일을 하는 주간에 일요일이 끼었다. 이곳에서도 한국교회를 가고 싶어 한국인 식당에서 교회의 위치를 미리 알아 놓았다. 일요일 남들 다 호텔방에서 어젯 밤의 술에 다 힘들어 하고 있을때 조용히 거리를 빠져나와 주소하나 들고 교회를 찾았다. 이곳은 주소가 무척 찾기편하게 되어 있다. 어느 거리의 몇 번지 하면 대개의 기사들이 아무소리 없이 알았다고 하면서 제대로 찾아간다. 주소가 한쪽 거리에 있는 집은 홀수이고 그 반대쪽의 집은 짝수로 나간다. 그러니 주소만 보면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금방 알고 또 집마다 주소를 크게 써 놓아 어느 집이던 찾기가 쉽게 되어 있다. 한참을 주택가를 거치다가 어느 조용한 주택가에 날 내려 놓으며 보니 정다운 한국 꼬마들의 얼굴이 보인다.

 

주일학교다니는 꼬마들이리라... 내가 낯설은 사람인지 그들은 금방 알아 버린다. 이렇게 혼자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도 흔하지 않으니 조용히 예배를 드린 후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반갑게 인사를 해온다. 예배후에 나눔의 시간에 서로 빵과 커피를 먹어가며 얘기들을 하는데 내가 멕시코 교회에 처음왔다 하니 어느 내 나이또래의 사람이 자기 집에 오늘 가지 않겠느냐고 한다. 주일이라 특별히 일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선선히 승락하고 그 집 부부의 차를 타고 교회를 빠져 나왔다. 차는 어느 아파트에 들어서는데 이상하게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열쇠를 꽂는다. 아니 엘리베이터를 열쇠로 여나? 이유를 물으니 안전을 위해서란다. 외국에 나와 있으면 안전이 최고란다.

 

시카고에서 대학을 나오고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다는 이 분은 멕시코 대학에서 경제를 가르친단다. 더 깊게 물어보니 아버님이 우리나라 외국어 대학에서 스페인어로 유명한 대학 교수님이라 하신다. 그리고 마침 시카고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 어릴때 나의 목사님안부를 물으니 잘 알고 있다며 그 분의 근황을 전해 주는데 이런 먼 곳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의 안부를 들을 줄이야....

 

여러가지 멕시코 생활들, 그리고 이들의 기질들에 대해서 아주 재미있는 얘기들을 듣고 맛있는 두부김치찌게를 끓여주는데 전혀 안면도 없는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교민이 무척 고마왔다. 전혀 준비해 온것도 없이 대접만 후하게 받고 돌아가 너무 아쉬워 귀국한 뒤에 다른 인편으로 애기의 책가방을 하나 사서 보내주었다.

 

주중에 특별한 저녁을 위해서 현지의 좀 특이한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들어서자 마자 우리에게 형광모자를 씌워주는 이 곳은 웨이터들이 모두 늘씬한 미녀들이다. 아슬아슬하게 입고 탁자사이를 누벼가면서 음식을 나르고 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잠시 후 밴드를 하고 있던 연주자가 희한한 제의를 손님들에게 한다. 연주에 맞추어 이나라의 전통 춤인 살사를 잘 추는 사람 중 한 사람을 뽑아 제일 맘에 드는 웨이터랑 키스할 기회를 준다 한다.

 

음악은 울려 퍼지고 여기저기 기백좋은 사람들이 나와 주로 윗몸을 옆으로 흔드는 살사를 신나게 추어 댄다. 여러 사람들이 나와 춤을 추고 그 중 한 사람을 밴드마스타가 지목을 하니 웨이터중 무척이나 아름다운 아가씨가 손님에게 닥아가고 다른 사람들의 ‘베소 베소’하는 구령에 맞추어 둘이 꼭 끌어 안고 스스럼 없이 키스를 한다. ‘베사메 무쵸’라는 말은 ‘KISS ME VERY MUCH’라는 말이니 베소는 곧 키스의 스페니쉬이다.

 

그곳에서 우리가 세사람용으로 주문한 해산물메뉴는 큰 접시에 각종 해산물이 그득한 산해진미인데 맛은 있었지만 너무 양이 많아 먹다가 남기고 말았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은 기분이 흥청망청인것 같다. 시끄러운 분위기 그러나 자유스러운 분위기속에서 저녁과 술을 즐기고 있다.

 

어느 날은 저녁에 한국인 식당을 갔다가 우리나라 유명 연예인을 보았다. 이곳에서 애니깽이라는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영화찍는 사람들이 와 있단다. 한쪽 구석에서 하얀 색의 바지와 상의를 입고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가까이 보니 더욱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도 이곳에서 거리를 걸어다니는 아가씨들에 비하면 부족함을 느낀다. 동양의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는가?

 

일을 마치고 하루쯤 여유가 있어 직원과 함께 멕시코시티 외곽에 있는 테오티와칸의 대 피라미드를 가기로 했다. 호텔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개인 차량을 하나 흥정해 50불에 왕복을 주기로 하고 아침에 거리를 나섰다. 토요일이라 거리는 한산하였고 매연때문에 매콤한 거리를 지나 조금 시내를 벗어나니 금방 상쾌한 공기가 코에 와 닿는다. 시원하게 뻗은 도로와 멀리 보이는 주택들이 무척 인상깊다. 낮은 언덕에 하얀 집들이 다닥 다닥 붙어 있는데 마치 우리네 달동네 같다.

 

길가에 선인장이 자주 보이는 길을 한 참을 가다보니 어느 덧 앞에 커다란 피라미드가 보인다. 늙으수레한 할아버지 운전기사는 우리를 이곳에 내려놓고 만날 시간을 정해 놓는다. 혹시 도망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하면서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하고 천천히 발길을 안으로 들여 놓는다. 마치 무너진듯한 성곽들의 흔적들이 여기 저기 놓여있는 길을 지나 태양의 피라미드로 가는데 이상한 소리를 내는 악기를 입으로 불어대는 장사군들이 자꾸 선물사라고 치근덕 거린다.

 

흙으로 빗어 구운듯한 거북이 모양 그리고 새의 모양들의 악기가 신기해 자세히 보니 구멍이 뚫려 있고 오랜 역사의 소리 같은 음색이 좋아 사서 챙겨 넣는다. 그리고 대나무로 조그맣게 만든 피리도 구입했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면 가난하게 옷을 차려입은 어린애가 피라미드주위를 이런 피리를 물고 돌아다닐것만 같은 상상이 들었다. 그리고 역사를 불러내는 장면이 하나하나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태양의 피라미드를 한발 한발 올라간다. 좁은 계단이 한없이 높이 솟아 있다. 계단옆에 쌓아 있는 피라미드는 자그마한 돌들로 가득 쌓여 이루어진 산의 일종이다. 이집트의 것은 커다란 돌들일텐데 하는 추측으로 비교만 해보았다.

 

설명서에 의하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피라미드라 한다. 그러니까 이집트의 피라미드 다음인가 보다. 이집트와 이곳의 피라미드는 성격을 달리한다. 이집트것은 무덤이지만 이 곳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 안에는 거대한 신전이 묻혀 있다는 말도 있다. 선선한 날씨 임에도 올라가는데 땀이 흐른다. 어느 나이 많은 외국 부인이 아주 힘들게 오르고 있다. 산을 오르는 것 만큼이나 힘든 계단을 다 올라가 정상에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넓은 초원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초원이라야 드문 드문 나무이고 선인장들이 가끔씩 보이는 황량한 곳이지만....

 

그곳에 앉아 땀을 말리며 조용히 노래를 한다. 이곳의 바위들 틈에 한국의 노래들을 심고파 한참을 노래를 불렀다. 다시 내려 오는 길은 다리가 후들후들 거린다. 내려와 달의 피라미드로 가는 길은 고운 흙길로 덮여 있다. 앞의 태양의 피라미드보다 조금 낮아 보이지만 높이는 거의 같다고 한다. 이곳에서 인간이 제물로 바쳐졌다는 얘기에 등골이 서늘해 지고 역사의 한기를 느낀다.

 

두개의 피라미드를 보고 평지로 내려오니 옛날의 집터같은 곳이 있어 둘러보니 아마 감옥이었던것 같다. 잘못 들어가면 길을 잃을수도 있다는 안내문이 흥미롭고 그 주위에는 선물가게들로 가득하다. 선물가게에는 이상한 색갈들의 까만 돌을 판매한다. 피라미드모습을 한 이 돌들은 빛의 각도에 따라 그 색갈이 다르게 보인다. 그리고 어느 선물가게에 들어가니 크고 작은 돌 조각품들이 가득하다. 거의가 까만 색의 돌들로 빚어진 이 조각품들은 하나하나가 무척 빛을 내고 있다.

 

선물가게밖을 나오니 선인장옆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곳에 서서 한 참을 보니 선인장의 여러가지 용도를 말하고 있는데 그 쓰임의 다양성에 놀라고 말았다. 이곳에서 선인장이라 함은 우리가 볼때는 알로에 베라인데 이 선인장으로 데낄라라는 술을 만들고, 선인장사이에 고여 있는 물이 쥬스가 되고, 선인장 그 자체로 좋은 요리의 재료가 되고, 바늘을 하나따서 가만히 잡아당기면 긴 실이 나와 옷감을 짤수 있으며, 선인장을 넓고 얇게 벗기면 그대로 종이가 되어 생활에 필요한 모든것이 선인장에서 얻어진다는 말이 무척 신기했다. 인간이 하는 일은 늘 신비롭기만 하다. 궁하면 통하리라..

 

멕시코 모자를 쓰고 설명을 하는 이는 선인장으로 만들었다는 데낄라를 한잔을 권하면서 마시는 법을 설명한다. 우선 혓바닥으로 자신의 손등에 침을 바르고 그 위에 소금을 살살 뿌리고 데낄라 한잔을 먹은 뒤 손등에 묻어 있는 소금을 혀로 맛을 본다. 나도 따라 해 보았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 사람이 데리고 있는 나귀인데 얼마나 콜라를 좋아하는지 콜라 한병을 통째로 입으로 물고 다 마셔 버린다. 콜라 먹는 나귀라... 나귀가 콜라 맛을 아나보다.

수천년전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던 이들은 이제 또 다른 문명에서 온 이들을 위하여 선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며 한푼의 돈을 구하고 있음이 부귀와 영화는 늘 영원하지 않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음악이 있는 거리.

 

금요일 밤 모두들 회식 약속이 있다기에 슬그머니 빠져 버렸다. 독한 데낄라를 소주 마시듯이 마시는 우리 직원들이라 같이 어울리기에는 내 몸이 견디어 내지 못한다.

호텔 방에 들어와 티브이나 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무언가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혼자 어슬렁 거리며 멕시코시티에서 대표적으로 번화한 거리인 조나 로사로 목적도 없이 발길을 내 딛었다.

 

금요일 밤은 어디나라나 다 그러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들 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일주일의 빡빡한 생활 속에서 지내다 내일부터 2일간 쉴 수 있다는 해방감과, 오늘 신나게 퍼 마셔도 내일은 늦잠을 자도 된다는 안도감때문이리라.

 

유별나게 많이 보이는 거리의 삐끼들이 ‘무차차 보니따’하며 예쁜여자 있다고 술집 명함을 건네 준다. 어쩌다 손으로 받으면 얼마나 쫓아 오는지 모두 거절하지만 끈질긴 삐끼들은 계속 몇 백미터를 쫓아 오기도 한다.

 

노변 음식점들은 모두 길거리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자연스럽게 손님들을 맞고 있다. 유럽풍의 이러한 모습은 손님들을 유혹하는데 좋은 상술로 보인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나와 돌아 다니다가 문득 어느 술집에서 바로 입구안쪽에 재즈밴드를 구성해 놓고 쿵짝거리고 있다. 바가지 씌우는 곳은 아닌 것 같기에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홀에 손님이 가득하다. 대개 바가지 씌우는 곳은 문 앞에 밧줄이 쳐 있고 건장한 사내들이 문을 지키고 있어 웬만한 호기를 부리지 않으면 들어가기가 힘들다.

 

담배연기와 맥주냄새로 가득한 홀의 테이블은 이미 다른 이들이 모두 점령되어 있고 스탠드에 겨우 한 자리 정도 남아 있을 뿐이다. 스툴에 걸터 앉아 바텐더를 보니 손님이 앉아도 신경을 못 쓸 정도로 바쁘다. 벽에 가득한 수 십가지의 온갖 양주들이 조금씩 비어 있다. 또한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맥주들이 즐비하고, 생맥주를 따르는 펌프주위에는 거품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꼬로나를 주문하니 없다며 다른 맥주 이름을 말하기에 무조건 좋다하니 비슷한 맛의 맥주를 한 병 내준다. 물론 컵도 없고 안주도 없다. 옆에 조금 인상이 좋지 않은 머리벗겨진 녀석이 아는체를 한다. 코리안이냐, 서울에서 왔느냐 하고 묻지만 아무래도 전문 사기꾼 같이 보여 술병으로 ‘사루드’를 한 번 합창하고는 밴드로 눈길을 돌렸다. 기타를 치는 녀석이 모습이 무척이나 신나 보인다. 드럼과 전자 올갠의 사운드가 홀 안에 가득하고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상기되어 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특이하게 생긴 맥주병이 눈에 보인다. 커다란 비이커처럼 생긴 유리 컵의 아래 위를 길다란 유리관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래 시계 모양이고 손잡이 또한 커다란 나무 막대로 되어 있다. 높이가 약 50센티 정도 되는 이 컵은 아마 맥주 2000CC정도 들어가는 것 같아 보인다. 두 젊은이가 연신 건배를 하며 음악에 맞추어 어깨를 흔들고 있다. 내 옆에 스툴에 앉아 귀걸이를 몇 개나 달고 연신 담배를 피며 맥주를 마시고 있는 동양 여자가 아무래도 한국인 같아 보이지만 옆에 남자 친구가 있어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연신 춤을 추어가며 기타를 퉁겨 대던 흑인이 기타를 내려 놓더니 바로 앞 자리에 술을 마시고 있던 여자와 깊은 포옹을 즐긴다. 그리고 잠시 휴식. 악단의 노래가 잠시 멈추자 사람들은 주크 박스로 몰려 또 한 번 신나는 음악을 홀 안에 넘치게 한다.

 

맥주 한 병 값을 계산하고, 다음 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또 어느 음식점에서 요란한 소리가 흘러 나와 동정을 살핀다. 바로 문 간에서 낮은 단을 설치해 놓고 기타와 로랜드 전자올갠 그리고 드럼의 반주에 맞추어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수의 목소리에 홀려 술집앞에서 서성거리며 안을 보니 몇 명의 젊은이들이 허슬을 추고 있다. 호기심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니 혼자 왔느냐며, 밴드가 잘 보이는 구석 자리에 안내한다. 불과 얼마 안 되는 공간에서 노래에 맞추어 젊은이들 몇 명이 아주 궁합이 잘 맞는 춤을 추고 있다. 서로 팔을 돌리고 발을 엇갈리며 춤을 추는데 몇 명이 같은 춤을 추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는 누구나 출 수 있는 익숙한 춤임을 알수 있다.

 

가슴이 무척이나 큰 여자가 그 큰 가슴이 다 들어 내 보이는 옷을 입고 바로 코 앞에서 무엇을 마시겠느냐며 주문을 받는다. 그것도 허리를 굽혀 가며…. 잠시 아찔한 기분을 가다듬고 맥주 한 병을 청한다. 잠시 후 가져 온 맥주를 따르는 모습도 무척이나 요염하기만 하다. 내가 그렇게 보아서인가?

 

바로 옆 테이블에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 네 명이 맥주 한 병씩 놓고 무슨 소리인지 한 참을 키득거리다가 주사위 놀이를 한다. 그러고 보니 옆 테이블의 다른 사람들도 마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돈이 오가지를 않고 점수 또한 계산하는 모습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냥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술을 많이 시켜 마시지도 않는데 이렇게 금요일 저녁 황금시간에 죽치고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매상이 안 올라 주인이 싫어 할 텐데 웨이터들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

 

테이블에 조그만 부스러기만 있어도 얼른 와서 치우고 재떨이에 담배 꽁초만 하나 있어도 얼른 새 것으로 바꾸어 준다. 더구나 테이블 위의 물 묻은 컵 자국도 눈에 거슬리는 듯 행주로 깨끗이 씻어 주고 있고 서비스로 주는 땅콩이나 과자안주도 행여 비울세라 가득 채워 놓는다.

 

이 곳은 그야말로 주말을 즐기기 위한 곳이다. 식사와 술과 춤과 친구들과의 게임까지 한 곳에서 모두 해결하는 이들의 놀이문화가 1차 식사, 2차 술, 3차 춤, 4차 고스톱을 즐기기 위해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는 우리네 모습과 비교된다.

 

이 웨이터들은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손님을 위해 서비스하기 위해 있음을 금새 알 수 있다. 진정한 서비스 정신인가? 혹은 주인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철부지 종업원들인가?

 

그나 저나 조그만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여자 가수의 모습은 정말 그렇게 신이 나는지 표정이 마치 하늘을 날아 갈 것 만 같다. 드럼들 사이에서 움직이기도 힘들텐데 팔을 흔들고 작은 발 짓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 그룹 아바의 댄싱 퀸을 연상케 한다.

 

오늘 밤 완전히 춤을 추기 위해 온 듯한 젊은이 두 커플이 음악이 나올 때 마다 뛰어 나가 어찌나 음악과 잘 맞는 춤을 추는지 그 들을 보는 것 만으로 나는 흥에 겨워 손가락을 장단을 연신 맞추어 대었다. 또한 전통 멕시코 음악이 나오면 어느 중년 부부가 마치 영화에서나 봄 직한 탱고를 좁은 공간에서 휘 돌아가며 즐기고 있다.

 

춤을 보는 것 만으로도 너무 흥에 겨워 맥주를 두병이나 시켜 마시고 또 다른 거리의 음악을 찾기 위해 어슬렁 거리니 이제는 클래식한 음악이 어느 길가에서 들린다. 거리에서 식사를 하게 되어 있는 레스토랑에 세 명의 남자가 각각 클라리넷, 플륫, 그리고 8현의 기타를 들고 남미 풍의 곡을 연주하고 있어 무조건 그 앞에 테이블을 차지 하고 앉았다.

 

클라리넷을 부는 이는 여러가지의 목관 악기를 옆에 두고 있고 플륫은 끝에 조그만 마이크가 부착되어 있음이 보인다. 털보 기타 아저씨는 정통 클래식을 연주하는데 이러한 트리오를 위하여 작곡된 곡이 그리 많지 않을텐데 레퍼터리는 끝이 없다. 각각 두꺼운 바인다에 있는 악보를 3권씩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곡을 직접 편곡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쳐 주고 나는 배는 고프지 않지만 맛있는 거위 간이 곁들인 스파게티를 먹으며 이국의 흥을 즐기고 있다.

 

밤이 늦었는지 내가 식사가 다 마칠 무렵 연주를 끝내고 악기를 거두고 있기에 기타를 든 털보를 보고 그 기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6줄기타를 자기가 변형시켜서 8줄로 쓰고 있다 한다.

 

맥주 3병과 3 군데의 멕시코 음악에 취한 나는 얼근한 기분으로 이번 멕시코 출장의 마지막 밤을 모처럼 즐겁게 보냈다는 만족감에 일부러 갈 짓자 걸음으로 호텔로 발 길을 돌렸다.

 엘 마리아치

 

엘 마리아치라는 영화가 있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칼 배우이기도 한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기타를 하나 들고 노래하며, 기타케이스 속에 기타대신 기관단총을 넣고 활약하는 영화로 우리에게는 엘 마리아치라는 말이 조금은 낯설지 않은 편이다.

 

엘 마리아치라는 말은 멕시코의 떠돌이 악단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기타리스트 하나로 엘 마리아치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적어도 4 - 5명이 그룹을 이루어야 하고 그 안에는 반드시 나팔 수가 있어야 한다.

 

1991년 처음에 멕시코를 방문했던 날 저녁에 호텔 로비에서 청중이라고는 나 혼자 두고 기타를 치면서 열창하고 있는 한 명의 기타리스트를 보고 아주 인상 깊게 여기고 있던 차에 이번에는 꼭 이들을 찾아 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관광안내 책자에 엘 마리아치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 가리발디라는 광장 방문과 극장식 쇼도 구경할 수 있는 코스가 있어 관광회사로 유명한 그레이 라인투어사에 금요일 저녁 표를 예약하고자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호텔에 부탁해서 택시기사를 별도로 고용하였다. 안내 책자에 보석이나 중요한 물건을 빼 놓고 가라는 경고문이 있어 지갑과 크레딧 카드 등은 모두 호텔에 빼 놓고 사진기 하나만 달랑 들고 나왔다.

 

시간당 70 페소, 둘이 가면 큰 부담이 안 되는 가격이므로 업무가 끝나고 식사를 느긋이 한 후 밤 9시에 호텔에서 택시를 승차, 이미 일주일의 업무가 끝난 조용한 도시를 택시로 달리다 어느 곳에 이르니 갑자기 주위가 시끄러워지며 도로변에 차가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고, 마리아치 특유의 검은 복장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자꾸 지나가는 차들을 멈추라고 호객한다. 왜 그럴까, 저 복장이 혹시 술집 유니폼인가 하는 의아심 속에서 택시가 속도를 멈춘 곳은 사람이 아주 많이 몰려 있고 도로 변에 이태리에서 볼 수 있는 대형 고대 건축물의 한 쪽이 세워 져 있는 지하 주차장이다.

 

주차를 하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순간부터 내 걸음은 곡마단의 소리를 듣고 달려가는 어린 아이처럼 마리아치들의 음악에 이끌려 새털처럼 가벼워 지고 있다. 비록 어두운 밤이지만 광장에 펼쳐진 마리아치들의 무리에 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이렇게 많은 악사들이 저마다의 악기를 들고 소리를 내고 있으니….

 

모두 언플러그드 음악을 들려주는 악사들은 여기 저기 서성거리며 마치 인력시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처럼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악기들도 참으로 다양하다. 일반 기타를 비롯하여 울림통 뒤가 산처럼 툭 튀져 나온 기타, 사이즈가 조그만 기타, 바이올린, 드럼, 트럼펫, 콘트라베이스, 소형 하프, 만돌린 등 시야에 즐비하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주요 악기들인 첼로, 클라리넷, 플륫 등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이런 것은 마리아치들의 성격에 맞지 않아서 인가?

 

그들은 우선 복장으로 구별된다. 챙이 넓은 서부의 모자들, 혹은 챙이 더욱 큰 산초 모자, 검은 재킷을 입었고, 모양이 큰 나비넥타이를 하였으며 혹은 머플러를 넥타이같이 맨다. 마치 보이스카웃처럼, 바지의 양쪽이 위에서 아래로 사다리 모양의 흰색 실 혹은 금실이 죽 장식되어있으며, 대개 뾰죽한 흰색계통의 구두를 신는다.

 

대개 구릿빛 계통의 피부에 콧수염을 길렀으며, 체격은 통통한 편이며 서 있는 폼이 늘 선 채로 악기를 다루어서 인지 반듯하다.

 

마리아치를 보러 나온 사람들보다 마리아치의 숫자가 더 많아 보일 정도로 가리발디 광장을 어슬렁거리는 마리아치들은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겐 자꾸 노래를 해 주겠다며 추근거린다. 노래는 대개 2 - 3곡에 50페소를 받는다. 어느 가족을 위해서는 노래의 가사를 바꾸어 주면서 노래를 해 주는지 듣는 사람들이 배꼽을 잡으며 노래를 듣고 있으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자못 진지하다. 돈을 직접 내고 듣기도 하지만 조그만 일 회용 컵을 하나 사면 음료수를 주면서 노래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 빈 음료수 컵을 들고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은 대개 4분의 3박자의 왈츠로 구성되고, 멤버들끼리 화음으로 노래하고 때로는 독창자가 중간 중간에 노래하기도 한다. 악기를 든 모든 사람들이 노래하고 연주한다. 특히 나는 조그만 기타에 관심이 가 있었고, 그 기타를 파는 곳을 동행한 택시기사에게 물어 보았으나 낮에는 이 근방에서 파는데 밤에는 안 판다고 한다. 보통의 기타와 같은 형태이지만 크기가 약 절반이고 소리는 조금 둔탁한 편이나 휴대하기가 무척 편할 것 같아 귀국 길에 꼭 사고 싶었다.

 

굳이 손님이 노래를 청하지 않아도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마리아치들의 모습은 젊었을 때의 나의 모습을 연상케 해 한 참을 쳐다보며 사진을 찍어 댔다. 광장에서 한 무리의 가족이 이미 술에 얼근하여 주말의 여흥을 즐기고 있다가 나를 보고 자기가 마시고 있던 잔을 내게 주며 마시기를 권하기에 웃으며 받아 마시고는 다시 건네 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들과 같이 춤을 추고 놀고 싶었지만, 조금은 안전이 걱정이 되어 자제하였다.

 

광장에는 여러 개의 동상이 악기를 든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데 모두 전설적인 마리아치들의 동상이라 한다. 주위에는 극장식 레스토랑도 있어서 실내에서 마리아치들의 음악을 즐기기도 한다. 밖에서 보니 마리아치들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도 하고 춤도 추는 여가수가 있으며 식사가 제공되기도 한다. 식사 없이 음료수만 시키는 것으로도 입장이 가능하다.

모자를 많이 들고 팔러 다니는 사람이 있어 검은 마리아치 모자를 하나 샀다. 마치 서부의 사나이들이 쓰는 모자, 내 검은 양복과 무척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사람들이 노래 듣는 것에 인색해서인지 노래가 흘러 나오는 곳이 별로 적고 엘 마리아치라는 극장식 레스토랑의 쇼가 10시 30분에 시작되어 우리는 그곳을 떠나와야 했다.

 

인적이 한적한 밤길을 달려 엘 마리아치 홀로 가는 길에는 매번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한가로이 구걸을 하는 거지들을 만날 수 있다.

 

10시 20분에 도착하여 앞 자리를 배정받고 주위를 보니 이미 일 층은 손님들로 가득하나 이층은 모두 비어 있는 상태이다. 오늘은 단체 관람객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가족들 혹은 친구들끼리의 모임들이 보였으며, 바로 내 앞에는 젊은 연인이 너무 꼭 붙어 앉아 식사를 즐기고 있다.

 

대머리 웨이터가 와서 주문을 받길래 식사는 안 한다 하고 음료수로 데낄라를 주문하니 무언가 다른 것을 같이 주문하겠느냐고 묻는다. 그게 잘 모르겠다 하니 좌우지간 맛 보라고 하기에 승낙을 하고 가지고 온 것을 보니 다른 것보다 독한 데낄라에 약간 매콤한 소스가 데낄라와 같은 컵에 담겨 있다. 독한 데낄라를 조금 마시고 그 소스를 조금 들이키니 금방 중화되는 느낌이다.

 

정확하게 10시 30분에 악단들이 무대 위의 계단 양 옆으로 늘어서고, 한 쪽 계단에는 기타류 그리고 다른 쪽에는 바이올린, 그리고 위에는 트럼펫이 자리 잡고 있다. 바이올린도 마이크가 부착되어 노래하는 소리와 현의 소리까지 크게 들리게 되어 있다.

 

곧 이어 마치 1992년 스페인 월드컵 개막식을 알리던 아나운서의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고 검은 옷에 커다란 모자 그리고 콧수염의 잘 생긴 남자가 경쾌한 걸음으로 올라와 스페니쉬로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노래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무척이나 흥겨운 멜로디가 계속되고 고전 의상을 입은 남녀 두 쌍이 올라와 신나게 탭 댄스와 넓은 치마를 자랑하는 고전무용을 펼친다. 아마 사랑의 노래인 듯 중간 중간 서로 키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아주 빠른 템포의 노래는 장내의 손님들을 열광케 한다.

 

곧 이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목동들의 밧줄 묘기가 펼쳐진다. 밧줄로 원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그 원을 스스로 온 몸을 통과하기도 하며, 밧줄의 원을 온 몸으로 휘 감기도 한다. 원을 만들어 팔뚝에 올려 놓고, 커다란 줄이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그 안에 또 다른 원을 만들어 돌리는 묘기를 보이며 관중들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 잡는다.

 

밧줄묘기 후에는 젊은 여가수가 나와 팝 스타일의 노래를 열창을 하고, 다음에는 성악을 전공한 듯한 여자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나와 노래를 하는데 앨토의 음역이지만 성량의 폭이 상당히 넓어 완전히 장내를 압도하는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때로는 관중들에게 박자를 맞추게 하기도 하며 넓은 치마가 흔들거릴 정도로 열창을 한다.

 

여자성악가의 노래가 끝난 후 권총을 허리에 차고 산초 모자를 쓴 콧 수염의 남자가 검은 복장으로 무대에 올라와 노래를 하는데, 노래의 색갈이 너무 귀에 익어 자세히 들으니 한국의 김동규 소리와 얼마나 비슷한지, 거기다가 콧 수염까지 길렀으니 나에게는 완전히 김동규의 리사이틀을 보는 듯 했다.

 

이어 많은 시간을 이 남자 성악가가 무대를 장식하고 때로는 마이크 없이 노래하면서 자신의 성량을 과시한다. 객석 주위를 돌며 파티를 즐기는 젊은 여인과 같이 포옹하기도 하며, 같이 사진 찍는 여유를 즐기며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분위기는 무르익어 가고 앞에앉아 있는 연인은 계속 키스에 바쁘다.

 

무대 위의가수를 사진 찍으며 동시에 키스하는 연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회자가 내 앞에 와서 남자 가수의 노래가 끝나는 휘날레 부분을 나에게 같이 하자고 유도하기에 서슴지 않고 큰 목소리로 노래해 주기도 하고 멕시코 고전 의상을 입은 장내 기념품 파는 아가씨와 같이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이 지속되었으나 이미 업무에 지친 내 몸이 피곤함을 알린다.

 

사전 정보에 의하면 쇼는 밤 12시에 끝난다 하기에 11시 40분에 택시를 앞으로 오라고 약속해 두었다. 밖에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데 어느 걸인이 영어로 아는 체를 한다. 봉변 당 할 것 같아 피하고 마침 오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 오며 오늘 음악을 즐기는 멕시코인들의 멋진 모습들을 상상해 본다.

 

1999년 봄 (벼룩시장)

 

점심시간에 잠시 나가 본 토요일 멕시코중심가의 벼룩시장. 조나 로사라는 멕시코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골동품전문 백화점이 있고, 쉬는 토요일을 이용해 많은 사람들이 노점상을 벌이고 있다. 마치 우리네 인사동처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벼룩시장에서 온갖 물건들을 늘어 놓고 한가로운 낮을 즐기는 사람들을 출장 올 때마다 자주 보아 왔기에 오늘도 얼른 도시락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잠시의 여유를 찾는다.

 

입구에서부터 물씬 묻어 나오는 고풍스러운 물건들.

열거하자면, 옛날 그림, 생활용품, 잡동사니, 장난감, 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매번 탐나는 물건 하나가 오래된 축음기, 조금은 녹이 슨 커다란 스피커가 있고, 귀퉁이가 깨진 LP판을 올려 놓은 그 물건이 꼭 쇠못같이 생긴 바늘로 소리가 날지는 의문이지만 그것을 보고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 곳에 장사판을 벌리는 사람은 순종 멕시코인인 메스티족이라 그 사람들 얼굴조차도 이러한 물건과 잘 어울린다.

 

이 벼룩시장에 나오는 물건은 대개 몇 백년의 역사를 가진 물건들로 보여진다. 아주 오래된 연장들, 은세공품들, 애들 장난감, 아주 빛이 바랜 책자들, 가끔 성경책도 보이고, 시골 집의 지붕 혹은 무덤에서 뜯어 온 것 같은 나무로 된 십자가도 있다. 누군가 대충 그린 것 같은 유화 그림들, 그러나 그 그림들이 그 시대의 생활상이나 사람들의 옷 모습을 보여 주니 역사적 유물의 가치가 있는 셈이다. 멀리 다른 나라에서 온 물건들까지….

 

중학시절 자주 쓰던 여러가지 모양의 펜대가 죽 늘어 있어 반가운 마음에 하나를 집어 들고 펜촉을 빼 본다. 둥그런 나무에 펜촉이 하나 달랑 끼어 있으나 손 잡이 부분의 디자인이 특이하기에 얼마냐고 물어보니 약 2만원가량 한다. 너무 비싸다 했더니 이스라엘에서 온 것이라면서 펜대 뒷 부분의 장식을 보여준다. 10분의 1 정도면 사겠다 했더니 어림없다며 고개를 흔든다. 아마 4분의 1 정도 가격이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구경하기 어려운 무기류이다. 조그만 금빛 육혈포 권총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어 쪼그리고 앉아 동그랗게 뚫려 있는 실탄 장전실을 보고 노리쇠를 뒤로 당기며 만지작거리니 주인이 날보고 무어라 한다. 만지지 말라는 뜻이리라. 미안한 눈치를 보이며 슬며시 내려 놓는다. 다른 곳에는 긴 장총이 거의 녹슨 채로 있다. 그리고 스페인이 이곳을 정복했을 때 사용했음직한 단발형 권총이 손잡이 부분이 동그랗게 생기고 시커먼 모습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저 권총으로 몇 명의 원주민이 희생되었을까?

 

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그 많은 물건들 중에서 만돌린을 하나 집어 들고 소리를 퉁겨보니 소리가 제법 좋다. 누가 만든 것인지 이곳 저곳을 뒤져봐도 이름이 없다. 가격은 약 12만원정도. 사고 싶은 마음이 앞서지만, 집에 이미 만돌린이 있어 쉽게 포기해 버렸다. 또 어느 곳에는 아주 정말 오래 된 듯한 바이올린이 낡은 케이스안에 선도 풀어 진 채 침묵의 연주를 하고 있다.

 

열심히 둘러보며 찾고 싶었던 것은 조그만 보석상자같이 생기고 뚜껑을 열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난감을 찾고자 했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개인의 빛 바랜 결혼사진과 가족사진까지 들고 나와 늘어 놓은 것을 보니 이런 것을 찾는 이도 많은가 보다. 몇 년 전에는 이곳에서 아주 낡은 성경책을 사다가 목회하시던 장인어른께 선물을 드린 적도 있다. 여러 물건 중에서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은 것이 빅터사의 초기 오디오 광고로 유명한 커다란 스피커앞에 강아지가 있는 그 축음기. 저것을 사면 세관에 통과될까 하는 쓰잘데 없는 걱정을 하면서, 사지도 않을 것을 자꾸 돌아보며 만지작 거리기가 미안해 눈으로만 즐긴다.

 

두 번 째 이 곳을 방문했을 때는 내 여행가방의 약간의 여유가 있어, 무언가 사리라 작심을 하고 하나 하나 차근 차근히 챙겨 보았다.

 

긴 칼이 욕심 났지만 아무래도 통관에 무리가 있을 것 같아 포기하고, 아주 낡은 바이올린이 탐이 나긴 했지만, 너무 낡아 소리가 제대로 안 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감추어야 했다.

 

어느 골목을 돌아가다가 문득 낡은 트럼펫이 눈에 확 들어 온다. 군데 군데 찌그러지기 했지만, 손 때가 충분히 묻은 것이 더욱 탐이 나게 한다. 어느 마리아치의 한 파트를 담당했던 낡은 트럼펫. 제법 오래 불었는지 악기의 구석 구석이 반들 반들하다.

 

3만원 달라는 것을 깍고 깍아 만 오천원에 구입하고 어슬렁 거리다가 또 하나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있었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사용하던 까만 다이알 전화기. 늘 어머니가 광을 내던 그 전화기가 갖고 싶었다. 연결하면 통화가 될 지 의심스러웠지만, 다이얼이 차르르 돌아가는 소리가 정겨울 뿐만 아니라, 묵직한 수화기의 느낌이 좋고, 장식용으로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어 반 정도의 금액으로 네고해 이만원에 구입했다.

 

그래도 무언가 더 사고 싶어 이리 저리 기웃거리다가 누군가 나를 쳐다 보고 있다는 느낌에 물건들을 다시 한번 돌아 보니, 예수님이 나를 슬픈 눈으로 쳐다 보고 계신다.손바닥 두 배 만한 나무 판에 물감으로 그리고 지워지지 않게 유약을 바른 듯한 노란 바탕의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 그림이 자꾸 나를 손짓한다.


 

“나를 네 집으로 데려다 주지 않겠니?”
“네, 예수님, 제가 날마다 주님의 고통을 생각하며 나의 고통에 대해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아주 오래 전의 냄새가 풀풀 나는 이 벼룩시장에서의 한가로운 오후가 이국의 정취를 맘껏 맡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늘 나를 아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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