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미주방문기

미국 배낭여행

carmina 2013. 12. 5. 16:59

새삼 미국여행에 대해서 기행문을 쓴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이 내용은 출장이 아니고 순수한 관광을 목적으로 한 최조의 해외여행이였기에 기록을 남기는게 좋을 것 같아 자판을 두드린다.

 

1994년 9월..

 

해외는 많이 다녀보았지만 순수한 개인 목적으로 다녀 보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아내를 위해서라도 한 번 다녀 오리라 생각은 했었다.

 

결혼때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가지 못할 정도로 구차하게 하는 바람에 비행기도 여태 같이 한 번 못 타 보아 무척 미안하던 차에 마침 대한 항공 마일리지도 거의 20 키로 모자르는 100,000마일을 육박하여 조금만 기다리면 유럽여행 공짜 티켓이 두장가능하지만 아내가 이번 밖에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서둘러 계획을 짜보았다.

우선 사용가능한 휴일은 비록 휴가철은 아니지만 추석연휴를 생각해서 나는 3일정도 휴가를 사용하면 되겠고 아내도 그정도는 가능했다.

 

대개 이 맘때 쯤이면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떠나므로 혹 비행기 좌석 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으니 마침 미국 동부쪽은 가능하다는 대한항공측의 얘기에 부랴사랴 티켓을 구입하러 서소문 대한항공을 가서 구입을 하니 이 공짜 티켓은 별도의 비용이 티켓당 2만원을 내야 한단다. 공짜는 아니구만...

유럽을 가고 싶었으나 우선 시간상으로 안되어 포기하고 남편이 자주 가 보았던 미국을 선택. 여정은 우선 뉴욕, 나이아가라 그리고 워싱톤으로 결정했다.

 

개략적으로 금요일 저녁비행기로 뉴욕을 향해 출발.

현지에 저녁에 도착하여 일박.

다음날 나이아가라 출발 1박 2일

뉴욕으로 다시 와서 뉴욕 관광 1박 2일

워싱톤을 기차타고 가서 1박 2일

다시 뉴욕으로 와 한국가는 밤비행기타면 서울에 금요일새벽에 떨어지는 여정으로 잡았다.

 

그룹여행이 아니라 모든 일정은 내가 직접 짜야 했고, 호텔도 직접 연락을 해서 예약을 해 놓았다. 우선 미국에 있는 지사 직원에게 현지의 관광회사를 통해 나이아가라 관광을 예약하고 호텔은 “세계를 간다” 미국편을 구입해 뉴욕과 워싱톤의 호텔을 경제적인 수준에서 예약을 해 놓았다.

 

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위해 장모님께 며칠간 부탁 드리고 추석제사는 형님에게만 양해를 구해 명목을 출장가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무척이나 흐뭇해하는 아내의 표정이 신혼초에 설악산 종주를 위해 배낭을 쌀때의 기분을 느낀다. 그 당시와 똑같은 배낭을 서로 나누어 지며 애들의 그리움을 뒤로 하고 출발..

 

비록 이코노미석이라 좁기는 하지만 생전 처음 기내식을 먹어보고 기내에서 영화를 즐기는 아내가 즐거워하는 행동을 막 결혼한 신랑신부처럼 동조해 주다보니 10시간의 비행이 짧았다.

 

케네디 공항에 도착., 그때부터 아내는 행여 이국땅에서 극제미아가 되는 불상사를 생각했는지 줄 곧 내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음을 보고는 속으로 한참 웃었다. 화장실에서도 나는 밖에서 기다려야 했고, 항상 내 눈은 아내와 마주치고 있어야 했다.

 

뉴욕공항에 도착 입국심사대에서 여권에 무수히 미국 입출국도장이 찍힌 내 비자를 보고는 간단한게 통과. 밖으로 나와 이젠 간접경험을 통해 들은 대로 행동해야만한다.

 

우선 뉴욕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밤거리를 달려 뉴욕의 어느 한 구석에서 내렸다.

뉴욕이야 와 본적은 있지만 업무상 다니는 곳만 다녔기에 나도 길을 잘 모른다.

그러나 도로번호가 무척 잘 되어 있어 장소를 찾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지...

 

첫날밤을 보낼 호텔은 책자에서 본대로 워싱톤-제퍼슨 호텔

이름이 그럴듯 하고 그중 경제적인 호텔이고 42번가 브로드 웨이에서 가까운 45번가에 있어 선듯 예약을 해 놓았다.

 

뉴욕의 밤거리는 휘황 찬란하다. 둘이 배낭을 메고 다녀도 전세계의 인종들이 제 멋대로 다니니 전혀 이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둘 동양인의 모습은 그 중 작아 누구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뉴욕의 한 블록이 그토록 멀다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버스에서 꽤 먼거리를 걸어가니 브로드웨이를 지나고 45번가쯤 오니 어두컴컴하기만 하다.

 

주위에는 아주 고급호텔만 있고 도무지 호텔이 있을 법하지 않는 어두운 거리에 호텔이 위치해 있는 거리번호를 찾아가니 어둠속에 간판이 보였다.

 

쓰레기를 한참 청소할때라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골목길을 접어들어 간판걸린 호텔을 찾아들어가니 잘 못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이 시간에 어쩌랴..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워싱톤 제퍼슨호텔의 프론트를 찾아 예약번호를 주고 방을 구하니   진짜 여기서 잘 거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잠시 로비에서 기다리라 하는데 로비에는 지저분한 의자하나와 나무 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첫날 밤 부터 난감했지만 어쩔수 없다. 기다리면서 탁자의 설합을 여니 아이쿠 이런 바퀴벌레를 기르는지 설합안에 벌레가 가득하다. 아내가 보기전에 얼른 닫고 방 열쇠를 찾아 들어가니 방에 화장실도 없다. 침대는 겨우 한명 누울 수 있는 형편없는 고물침대가 두개 있고 그 것마저 마치 등이 굽은 새우처럼 자야 할 정도로 푹 꺼져 있다.

 

방문 문고리 상태도 엉망이고 참운이 열려져 있는데 그것마저 잠그는게 시원치 않다.

대충 정리해 놓고 식사를 해야겠기에 밖에 나가 요기거리를 찾아 보았다.

 

그래도 만만한게 한국에서 늘 보아오던 피자헛. 이 곳의 피자는 더욱 맛있는 것은 왜일까?

흑인들 백인들, 옷차림이 어름한 사람, 넥타이 맨 신사가 가득한 공간에서 둘이 맛있는 피자 헛으로 저녁을 때우고 밖을 나왔지만 도시가 잠들어가는 시간이라 상점들이 서서히 문을 닫고 있다.

 

큰 호텔앞에 있는 단체 관광객들을 부러운 눈치로 쳐다보고 서둘러 호텔로 돌아와 방으로 들어서니 어디에선가 한국 말씨도 들린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한국인은 제일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무관심하기로 하고 공동 세면장에서 대충 씻고 둘이 올라가면 삐꺽거리는 침대에 도저히 불안해서 떨어져 자야만 했다.

 

새벽에 몇번이고 눈을 뜨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언제쯤 이 지저분한 곳을 빠져 나갈 것인지만 속삭이다 보니 새벽 5시 반. 우리가 잠을 잤던가?

더 이상은 안 되겠어. 우리 이제 나가자..

새벽의 뉴욕거리로 나왔다.
 
 

미국에서 2일째...

 

나이아가라 관광을 위해 모일 장소와 시간은 뉴욕 32번가 한인호텔인 스텐포드호텔 앞 아침 8시 에 예약이 되어있다.

 

정말 불결한 호텔을 빠져나와 상쾌한 뉴욕의 새벽거리를 둘이 배낭메고 걷다보니 아차 이것도 잘 못 됐구나 하는걸 알았다. 새벽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미처 생각을 못했으니..

 

곳곳에 거리에서 밤을 새는 흑인들이 어슬렁거리면서 아침 사냥거리를 찾아 하얀 눈동자를 굴리며 거동을 시작했고.. 거리는 택시는 물론 경찰하나 없으며 오가는 행인도 별로 없다. 아침이나 하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려 해도 문을 연 식당도 별고 없을 뿐만 아니라, 도무지 문을 연 공공시설은 하나도 안보이고 몇 몇 청소부만이 지난 밤의 찌꺼기를 커다란 덤프트럭에 주워 담고 있었다.

 

이미 엎지러진 물..

 

가능한 오가는 사람 특히 옷차림이 누추한 흑인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자꾸 횡단보도을 건넜으며, 혹 아침 산책하는 노인네가 지나가면 옆에 바짝 붙어 가곤 했다.

 

45번가에서 32번까지의 먼길을 아침에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도착하니 시간이 6시 반 정도 되었는가.. 무려 한시간을 걸은 것 같다..

 

너무 무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내와 같이 여행을 한다는 즐거움은 그러한 고생까지도 모두 잊게 만들었다.

 

호텔의 로비에 가서 관광예약한 상태를 확인하니 호텔에서 경영하는 관광사라 즉시 친절 하게 확인하고 요금을 지불했다 둘이 약 160불 정도...

 

호텔 1층에 한국식당이 있어 둘이 배도 고프고 쉴 겸해서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이젠 살 것 같아 웨이터가 가지고 온 얼믐물을 벌컥 벌컥 들이키며 메뉴를 보니 한국 음식이너무 비싸다.. 이미 예견하긴 했지만 설렁탕 한 그릇에 10000원정도 하던가..

 

그래도 배도 너무 고프고 지금 이 시간에 나가서 빵을 사먹기엔 우리가 너무 긴장되어 있었다. 한국음식을 안 먹어본지가 겨우 2일인데 왜 이리 설렁탕이 맛있는지...

 

맛있게 아침을 비우고 나이아가라 관광 다녀와서 다시 뉴욕에서 2일 머무를 적에 우리는 비록 싸지만 더 이상 그 거지같은 워싱톤 제퍼슨 호텔로 돌아가기는 싫어 조금 비싸더라도여기 한인호텔에 있기로 하고 예약을 해 놓았다.

 

호텔 밖으로 나가니 대형버스가 기다리고 있고 몇 몇 한국인들이 버스밖에서 서성이며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고 어떤 이는 커피를 마시고 있어 우리도 모닝커피가 그리웠다. 바로 도로 건너편에 커피코너에 몇몇 외국인이 커피를 사고 있고 나도 그중 한 무리가 되어 콜라컵보다더 더 큰 일회용잔에 가득 채워주는 커피를 두개 사들고 오니 아내는 완전히 소풍나온 중학생같이 좋아한다 모든게 즐겁고 신기하기만 한가보다.

신혼여행시절의 그 어색한 행동이 생각나 혼자 속으로 웃기도 하고....

 

차는 약 3분의 1 정도의 좌석을 순전히 동양인으로 채우고 출발. 대개 손님들은 현지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 같았다. 그중 한 노 커플이 중국사람 같았고...

 

차는 한산한 토요일아침의 뉴욕시내를 빠져나가 터널로 맨하탄을 지나고 한참을 달리다가어느 곳에선가 또 한 무리의 한인 관광객들을 태우느라 한 참을 정차했다.

그러저럭 한 차를 가득채우고 무려 8시간의 긴 버스여행길에 올랐다.

 

나이아가라는 비행기로 가면 버팔로공항에 내려 갈수 있는데 시간도 약 1시간 반정도 걸리나 버스여행이 날 것 같아 버스로 택했다. 그리고 버팔고는 작은 도시라 비행기 시간도 여의치 않았고...

 

관광 안내원은 나이가 좀 있는 한국인이었는데 이 방면에는 도가 튼 사람인지 가는 곳마다 해박한 관광지식으로 손님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고 있으며 곁들여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생활상까지 얘기하느라 8시간이 긴줄을 몰랐다.

 

흑인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는 몇시간을 계속 달리고 어느 한 적한 주유소에서 잠시 정차 그리고 계속 서쪽으로 달려 간다. 지도를 미리 준비한 덕에 주변에 도시이름을 쉽게 알수 있었고, 나는 차창 밖에 광활한 대지의 미국이 그려 놓는 아름다움에 취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아내는 가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지난밤에 뒤척이면서 뜬 눈으로 지냈던 기억을 잠속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버스가 가는길은 무척 넓었고, 상대편 차선과의 가운데는 도로폭만큼이나 큰 잔디밭이 골이 져 있어 자연 분리대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하니 우리 나라처럼 반대편의 차가 중앙분리대를 넘어 사고가 나는 상황은 여기서는 상상이 안된다. 길가에는 아주 멀리서도 운전자가 볼수 있도록 각종 FAST FOOD, GAS STATION, K-MART등의 로고들이 계속 이어져 있었다. 예를 들면, PIZZA HUT, McDONALD, BURGER KING, KFC, CALTEX, 등등..

 

점심때쯤 차는 어느 마을에 들러 손님들을 식당앞에 풀어 놓았다. 중국식 부페란다. 우리 일행만으로도 식당안은 가득찼고, 거기에 일반손님까지 몇몇 있어 갑자기 소란해진 느낌이다. 중국식이라지만 우리나라에서 먹던 그런 탕수욕이니 짜장면이니 하는게 아니고 미국화된 중국식이라 조금 녹말가루를 많이 썼을 뿐 고기 종류나 야채등은 여느 미국식당에서 나오는 요리나 다름없다.

 

부페라 많이 먹고는 싶었지만 앞으로의 긴 여행도 생각해야 하므로 적당히 먹고 밖으로 나와 버스 앞에서 둘이 사진 하나 찰칵..

부페 식당이 있는 일층 상가의 앞은 툭 트인 잔디밭이라 보는것만으로 시원하다.


몇 시간을 한 버스안에서 같이 타고 와서인지 또 식당안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해서인지 한국인 특유의 이웃의식을 느껴 이젠 스스럼 없이 옆 손님과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누군가 나와 앞에서 마이크를 붙들고 장내를 소란케하는 사람은 물론 없다. 그저 단지 둘이 혹은 셋이 소근소근대며 이야기에 열중이다.

 

계속되는 안내원의 설명을 뜬눈 반, 졸음 반으로 듣고 차는 또 몇 시간을 푸르름사이를 달려 어느 곳에 이르니 길가에 긴 호수가 보인다. FIVE FINGER LAKE라고 부른다고 하는 지역의 지도을 보니 과연 다섯 손톱으로 길게 내리 그은 것 같은 호수가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다. 호수는 주위에 위락시설은 전혀 없고 단지 조금난 보트만이 한가롭게 강가에서 쉬고 있음을 본다.

 

물이 있으면 식당이 있고 위락시설이 있고, 호텔이 있어야 하는 우리네 사고 방식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길게 뻗어 있는 전선줄이 길 옆으로 나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근처에 발전소가 있을 법하다.

 

발전소라면 물이 있어야 하니 이제 거의 폭포에 다 온것 같은 느낌이 들고 아니나 다를까 넓은 강뚝이 보이고 물살이 조금씩 빨라 지는게 보인다. 강가에 몇개의 공장이 보이지만 물은 맑기만 하다. 저 공장에선 오염물질도 배출 안하나?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 인지 차는 우리를 어느 한국 식당앞에 내려 주고 일행들은 오랫만에 한국음식과 글씨에 조금 흥분되어 있는 듯 하다. 식당안으로 들어서니 영락없이 한국 전형적인 식당배치와 고기 냄새가 코에 가득해 진다.

 

이미 몇시에 도착하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는지 우리 인원수에 맞게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앉자마자 불고기를 불에 올려 놓는다.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오늘 아침도 한국음식 저녁도 한국음식... 억지로 안 먹을 필요는 없지...

 

푸짐하게 일행들이 고기를 즐기면서 안내원이 하는 말이 이런 곳에 한국식당을 차리면 돈을 많이 벌수 있을 것이라고... 한국 관광객도 많고 일본인들이 많아 한국음식이 인기가 좋단다.

 

저녁을 먹었으니 우선 숙소로 데려다 주는데 NIAGARA INN이라는 제법 크고 시설 좋은 호텔이다. 뉴욕의 호텔보다 상당히 넓고 깨끗한 방에 둘은 들어서자마자 행복감을 느꼈죠. 우선 간단히 짐을 풀고 나이아 가라 폭포의 야경을 보기위해서 집합하라길래 사진기 둘, 망원경 그리고 추울까봐 잠바하나 걸치고 밖으로 나와 안내원의 설명을 들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에서 바라다보는 방법이 있고 캐나다쪽에서 바라다 보는 방법이 있는데 캐나다 쪽이 훨씬 전망이 좋으나 그쪽으로 가려 하면 돈을 조금 더 내야하고 캐나다 입국비자를 받아야 한다길래 여기까지 와서 반쪽만 보고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일. 그러나 미국 시민권자는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다한다.

 

단체로 버스를 타고 어느 큰 댐앞까지 가니 이 곳이 국경이라 한다. 비자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내려 간단히 임시 입국절차를 밟는다. 여기에 도장하나 더 찍힘으로서 캐나다까지 와본 셈이 되네.

 

그리고 캐나다로 입국. 버스는 곧 손님들을 풀어 놓고 11시까지 이 곳으로 다시 오라 한다.

상쾌한 밤거리에 폭포의 시원한 물 냄새까지 더하여 소름이 끼칠 정도로 청량감을 느낀다.

잠시 후 터지는 탄성소리...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멀리서 소리내면 쏟아지는 폭포의 웅장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 할 수 있으랴. 하얀 물줄기 속에 여러가지 조명을 비추어 더욱 아름다움을 증폭시킨다.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그 끝에서 하얀 포말로 부서져 밑에서는 마치 불이 나 연기가 나는 것처럼 안개가 자욱하다.

 

바라다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장대한 물줄기를 배경으로 온갖 사랑스런 포즈로 사진을 찍고 우리 주위에도 수 많은 외국 커플과 가족들이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폭포 앞에는 일본의 사진 메이커에서 제공했다는 높은 전망대가 야경에 밝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멋있는 카페와 음식점들이 요란하지 않게 있고 한가롭게 카페의 베란다에 앉아 맥주를 즐기는 아벡크도 많았다. 한 참을 그곳에서 거닐고 있는 동전을 털어 천문망원경으로 폭포를 쳐다 보며 즐거운 밤을 보냈다. 이렇게 좋을 수가...

 

바람이 싸늘해 지고 한기를 느낄때쯤 버스에 올라 다시 미국쪽으로 와 호텔앞에서 안내원의 내일에 대한 일정을 듣고 뿔뿔히 흩어져 자기 방으로 간다.

우리는 그 밤이 아쉽기만 해 인근에 문을 연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니 피자와 음료를 파는 곳이 아직 성업중이다.

한 곳에 자리 잡고 야식으로 피자와 콜라를 즐기고 낯선곳의 분위기 있는 곳에서 하루를 보냄을 즐거워 했다. 그리고 왔었다는 기념 사진으로 호텔앞에서 사진 찰칵.

호텔방에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우리 잘 있다고 안부전화를 드리고...

그 날은 밤에도 즐거웠다.

 

 
 
 

미국여행 3일째...

오늘은 일요일

기필코 교회를 가서 예배를 봐야 한다는 아내의 지론에 못이겨 새벽부터 후론트에 가서 이 곳에 교회가 있느냐고 물으니 전혀 없단다. 내가 없다고 통역을 해 주어도 다시 한 번 물어 보라는 아내의 채근에 못이겨 다시 물어 보았지만 역시 없음을 확인한 아내가 그럼 그냥 둘이 호텔방에서 예배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둘이서 성경읽고 찬송하고 주기도문하고 간략히 일요일 예배 끝. 헌금은 안내고...

아침은 호텔 부페에서 무상 제공이다. 식당으로 가니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다 한다. 식당앞 베란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있는 일행중 중년 부부와 얘기를 시작했다. 자기들은 미국에 이민 온지 오래되었는데 지금 둘이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자식을 미국에서 키우다 보니 애들이 완전히 미국식 사고 방식으로 교육을 받고 또 그렇게 커 온 탓에 부모에 대한 사랑이니 효도니 하는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다 한다. 그래서 나이 들어 가급적 이렇게 여행을 다닌다고... 이민 세대의 커다란 문제인 것 같다. 우리가 어제 뉴욕의 아침거리를 걸었다고 했더니 대단히 위험한 일을 했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다행한 일이라고 하며 놀란다.

담소중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해 식당으로 모여 드니 일행이 많다. 아침이라 별로 안 먹지만 그래도 공짜인데 그냥 갈수 있나... 먹을 수 있는 만큼 접시에 담고 담소하던 일행들과 같이 앉아 맛있는 정통 미국식 아침식사를 즐겼다. 토스트, 빵, 커피, 베이컨, 과일 등등..

식사후 오늘의 일정은 나이아가라 폭포 밑으로 내려 간단다.

안내자를 따라 폭포쪽으로 가니 무척이나 빠른 물줄기가 무서운 기세로 아래로 아래로 흘러 가고 있다. 바위위에서 조금만 발을 헛 디디면 그대로 급류에 빨려 내려 갈 듯한 물줄기를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데 어느 할아버지 한분이 카메라도 없이 일행을 따른다. 홀로 여행을 오신 듯하다. 할아버지에게 사진을 찍어드렸더니 무척이나 고마와 하시면서 사진을 보내달라고 명함을 주시는데 대전의 무슨 노인회회장직을 맡고 계시고 감투도 여러개 가지고 계신다.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를 끼고 넓은 공터로 오니 깨끗한 공터가 나오고 폭포를 위에서 바라다 볼수 있는 가드레일이 있으며 그 공터 가운데는 조그만 가게가 있어 필름등을 팔고 있으나 음식파는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음식이 없으니 주위가 깨끗할수 밖에 없지...

안내자를 찾아 조금 밑으로 내려가니 어디서 웬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 들었는지 많은 관광객들이 폭포밑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 일행 모두에게 파란 비옷을 하나씩 전달해 준다. 폭포 밑으로 가면 물보라가 심해 반드시 우비를 써야 한다고. 서양인이건 동양인이건 모두 파란 비옷을 덮어씌우니 모두가 똑 같다. 전 세계 통일되었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 안개처녀(MIST OF VIRGIN)이라는 배를 타고 얼른 좋은 자리를 찾아 보았지만 먼저 탄 손님들이 벌써 좋은 자리는 다 차지하고 있다. 이제 폭포 밑으로 내려왔다. 어제 저녁 본 폭포 밑의 포말들이 바로 내 앞에서 부서지고 있다. 그리고 그 부서지는 근방에는 새들이 이리 저리 돌고 있어 이유를 물으니 물줄기를 따라 내려온 고기들이 높은 폭포에서 떨어하면서 기절하여 그 고기들을 노리는 새떼들이라 한다.

배는 천천히 폭포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 가고 있다. 소리도 점점커가고...

폭포에 다가갈 수록 사람들의 탄성이 커진다. 수 천 만 톤의 물줄기가 쏟아지는 그 밑에 있다는 것은 정말 상상이 안 간다. 떨어지는 물줄기 조각들이 마치 비가 오듯이 배위로 퍼 붓고 있고 사람들은 그 틈으로 비데오 촬영과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배는 어느 경계선까지만 가고 그 곳에서 잠시 맴돌다 서서히 선두를 돌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머문 순간들이 아쉽고 그 장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두 시선은 폭포를 향한채 서서히 정박하니 또 다른 일행들이 배 앞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도 나이아가라 폭포 주위는 깨끗하기만 한 것이 무척 부러웠다.

폭포 밑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바람에 날려운 비닐쪼가리들이 가득해야 하고, 과자 봉지, 다 먹고 버린 음료 깡통들이 계속 파도에 이리 저리 쓸려 다녀야만 하거늘 왜 그런 것들이 하나도 안 보일까.. 누가 매일 청소하는 것일까? 혹은 안 버리는 걸까?

아쉬운 나이아가라 관광을 마치고 버스는 뉴욕으로 돌아 가는 긴 여정에 올랐다.

안내자가 뉴욕가는 길에 한 곳을 더 들른다고 한다. WATSON 계곡이라고 한다.

어디든지 좋지. 어차피 오늘은 뉴욕을 가야하니... 잠자리도 미리 예약해 놓았겠다.

걱정은 전혀 없고 오직 즐거움뿐이다. 여행이 이렇게 좋은 것을 미처 몰랐던 아내가 불쌍하기만 하다.

차는 한 참을 오던 길로 달려 가고 어디 쯤에선가 언덕을 올라 가는 듯하더니 높은 곳에서 일행을 내려주고 이 곳이 계곡의 꼭대기이니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계곡을 따라 내려 가란다. 그러면 차는 저 계곡 아래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간편히 모자하나 쓰고 카메라걸치고 잠바 걸치고 서서히 언덕밑으로 내려가니 조그만 농부의 오두막집이 있고 그 옆에 계곡으로 향하는 조그만 길이 나있다.

길로 접어드는 순간 일행은 계곡의 아기자기함에 놀라 버렸다.

계곡은 마치 누군가가 큰 산을 두손으로 잡고 양쪽으로 찢어 벌려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고 계곡의 서로 마주보는 거리도 무척 가까왔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좁은 소로로 바닥은 바위를 얇게 자른 것같은 것으로 덮혀 있기도 하고 어느 곳은 세멘트로 포장되어 있거나 혹은 돌로 잘 받혀져 있었다.

간혹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상기되고 몹시도 지쳐있음이 이 계곡이 무척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그 걱정은 금새 사라지고 말았다. 너무 아기자기한 계곡의 모습이 매 구비를 지나갈때 마다 새로운 모습과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 한 두 방울 혹은 분수같이 떨어지는 광경들이 지루함을 모르게 한다.

까마득히 깊은 곳이 있는가 하면 바로 눈앞에 계곡이 끝이 보이기도 하고 계곡사이는 그 나름대로 산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계곡길을 따라 지나가는 옆의 산 허리는 오랜 세월동안 풍화되고 퇴적되어 겹겹히 쌓인 층이 만지면 막 부스러질 것 같이 여리여리하다.

 

너무도 맑은 물이 계곡사이사이를 흐르고 있고, 그 물은 때로는 계곡의 벽에서 천정에서 혹은 바닥으로 계속 흘러 내리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들이 구비를 지날때 마다 탄성을 지르게 하고 필름이 부족할 정도로 우리는 계속 사진을 찍어댔다. 누가 설악산을 아름답다 하는가? 누가 한국을 금수강산이라 하는가...

어느때는 습한 동굴을 지나기도 하고 때로는 멋진 돌 난간에 기대기도 하면서 힘든줄 모르게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연인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제법 보인다.. 저 높은 곳을 올라가려면 땀께나 흘리겠다.

계곡이 끝이 보이는 것이 못내 아쉬었지만 어차피 끝은 있는 법..

사진을 무척 많이 찍었어도 자동카메라의 능력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조그만 관광책자를 하나 구입했다. 이런 것 별로 안사지만 그 아름다운 광경들을 차마 기억하지 못할까봐 돈을 투자했다.

계곡의 끝이 보이고 공터에 차가 대기하고 서있어 일행들의 아쉬운 표정들을 싣고 차는 다시 뉴욕을 향해 왔던 길을 한없이 달리고 사람들은 피곤한지 금방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대부분이 잠으로 빠져 들어갓다.

어느 순간 갑자기 차가 휘청거리고 사람들이 놀라 잠을 깨니 길을 벗어나 멈추어 서있다. 운전기사는 차를 세우고 내리더니 바퀴의 이상유무를 살핀다. 사람들도 너무 놀란탓에 너도 나도 차 밖으로 나와 차가 펑크가 났는지 확인하였으나 바퀴는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모두 운전기사가 졸았음을 질책했다. 그중 열에 받힌 아주머니들이 흑인 운전기사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었으나 영어를 할 줄 몰라 식식대다가 나에게로 와서 ‘졸지말고 운전 똑 바로 하라’고 하는 영어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영어로 적당한 표현을 가르쳐 주었더니 입으로 몇번 되 새기고는 흑인기사에게 가서 한 없이 똑 같은 말을 퍼부어 대었다.

모두 다시 차에 오르고 안내자는 버스기사와 몇마디 주고 받더니 인근의 마을로 들어가 점심을 해결하자고 한다. 원래는 다른 곳으로 점심을 계획했던지 무전으로 여기저기 알아보고 인근 버거킹을 들어가 모두 FAST FOOD로 해결했다.

운전사가 충분히 피곤을 푼 뒤 다시 조심조심 운전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이면서 차는 뉴욕시내로 들어가니 이미 시내는 한참 어둠에 쌓여 있다. 운전사 및 기사에게 적당한 팁을 주고 모두 원위치로 돌아 왔음을 기뻐하고는 또 다른 이별을 위해 서로의 손을 흔들고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우리 부부도 무척 피곤하여 그날은 이국인것을 못느끼고 그대로 취침..

 
 
 

미국 여행 4일째..

오늘은 종일 뉴욕시내관광이다.

아침에 역시 호텔앞에서 열 서너명이 모여든다.

젊은 부부들도 있고 나이든 아주머니 아저씨들 모두 한국사람이다.

안내하는 이가 무척 젊고 생기가 있어 좋다. 이곳에서 오래 살았다는 그는 쉴새없이 인원을 확인하고 주차시킬 장소 모이는 시간등을 알려주느라 바쁘다.

또다시 어제와는 전혀 다른사람들로 구성된 단체가 한 버스에 올라 뉴욕시내관광을 시작.

우선 차는 월스트리트가에 일행을 쏟아 놓는다. 이곳이 맨하탄의 증권가인가? 관광객들은 한가하게 빌딩들을 둘러보고 있고, (특히 아주머니들은 왜 이곳에 우리를 내려놓았나 하고 의아해 하며...) 정장을 입고 손에 가방을 든 여피족들의 움직임은 무척 바쁜 걸음이다

아무리 둘어보아도 이곳은 살 곳이 못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차는 별로 안다니고 관광차외에 승용차는 별로 보이지 않는 편이다. 모두 전철을 타고 출근을 하나? 어제 외곽에서 뉴욕의 맨하탄으로 들어오는 해저 터널은 무척 승용차롤 꽉 막혀 옴짝 달짝 못하더구만...

뉴욕의 지하철에 대해서는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고...

빽빽히 들어선 빌딩들. 시야가 트인 곳이 없다. 여의도는 그래도 여의도 광장이 있고 그다지 놓은 빌딩도 없건만 이 곳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 빌딩내 수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러면 그 많은 점심을 어떻게 해결하나... 한 참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차는 다시 차이나 타운 그리고 소호거리, 카네기홀, 수산시장을 보여준다. 비릿한 내음이 무척 반갑다. 그러다 앞도 보이지 않는 골목골목을 돌아 어느 길에 오니 낯이 익다. 아 이곳이 몇 년전 와 보았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우선 중간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중간 전망대를 돌아본다. 중간에서 대충둘러 보느니 한시 빨리 맨 꼭대기로 올라가는게 낫겠지. 그러나 꼭대기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앞에서 기다리는 관광객들의 무척 길기도 하다. 무조건 줄을 서니 우리 앞에 남미에서 온 것 같은 부부일행들이 무척 야한 장난을 서슴치 않는다. 여자가 남자의 중요한 부분을 툭툭 치기도 하고 서로 꼭 껴안고 기다리는 모습이 좋기는 한대 우리에게는 아직 어색하다. 한 참을 기다려 겨우 100층이상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로 바꾸어 탄다. 관광객들이 무척 많고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진다. 그래도 안내원들이 있어 질서있게 타고 질서있게 내리니 다행이지..

엘리베이터는 무서운 속도로 치달아 금방 정상에 도착해 손님들을 토해 놓는다. 102층이면 어느 정도 높이인가? 간단히 계산해도 400 미터가 넘는다. 이곳에서 매일 일하는 사람들은 기압차를 느끼지 못할까? 꼭대기는 늘 바람에 흔들거려야 빌딩이 안전하다던데...

그 사람들은 늘 그렇게 흔들거리는 빌딩안에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넓은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위를 걸어갈때 흔들거림조차도 무서운데..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고 바로 아래는 완전히 빌딩 숲이다. 지난번 왔을때는 팬암항공사 빌딩이 커다란 간판이 인상적이었는데 이젠 그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그토록 큰 회사도 하루 아침에 사라져 가는데... 내노라하는 업체들의 대행 입간판과 일본 상품들, 담배선전들의 아수라장이다. 높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쳐 놓았고 그 좁은 틈으로 뉴욕배경으로 사진들을 찍느라고 서로 비켜가며 머뭇거리고 있다. 서울보다 공해가 심한것 같지는 않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빌딩, 그리고 멀리 공원인듯한 녹지대와 자유의 여신상이 기준하고 외친 죽 뻗은 대서양뿐이었다.

오랫동안 그 곳에서 여유를 즐기다가 시간이되서 내려와 일층의 보석상을 보고 싶어하는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들어가긴 했으니 터무니 없이 비싼 금액에 만지작 거리다가 어느 모조픔하나 들고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이 측은하기만 했다.

밖으로 나가 우리가 타고온 버스를 찾고 아직 오지 않은 일행들을 기다리느라 한참을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을 먹으러 간곳이 한국식당. 그 흔한 한국음식을 모두가 좋아라 먹고 다음은 자유의 여신상으로 간단다. 버스는 한참을 빙빙돌아 바닷가 앞에 차를 세우고 나가니 유엔군 한국참전 기념탑이 있어 반가와 사진한장 찰칵. 안내자는 우리보고 알아서 배타고 오라고 티켓을 나누어 준다. 쌍쌍이 팔장을 끼고 배에 승선하여 얼른 이층으로 올라가 좋은 자리를 찾았으나 이미 난간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였고 가운데에 의자도 조금만 있으면 모자를 것 같아 자리를 차지하고 보니 선상에는 유럽에서 온 듯한 학생 브라스 밴드가 빨간 유니폼을 입고 배안을 온통 새빨갛게 만들었다.

남미에서 온 연인들은 그 멋있는 몸매에 선그라스 그리고 울퉁불퉁한 팔을 가진 남자들의 어깨에 기대어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고 우리도 주위에 우리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어 조금 가깝게 앉았다. 배는 서서히 출발하고 조금 바다로 나가니 뉴욕이 눈앞에 파노라마 처럼 펼쳐진다. 킹콩영화의 배경이 된 세게 최대의 빌딩이라는 쌍동이 무역회관이 우뚝서 있으나 다른 빌딩도 그에 버금가게 높아 그다지 높은 것 같지 않다.

이제 서서히 자유의 여신상 쪽으로 배가 닥아서고 곧 이어 웅장한 여신상이 하얗게 눈 앞에 들어온다. 망원경으로 여신상을 보니 머리 주위에 점점이 사람이 보이고 확대해서 보니 그곳에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 주위에 남미 계통의 사람들이 유난히 호들갑을 떨며 구경하고 있고 모두들 사랑에 빠져 있는게 분명하다. 하긴 나도 이때 만큼은 아내를 꼭 안아 줄 수 있으니...

여행은 사랑을 확인하는데 아주 중요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배 저편에 보이는 곳이 조용하지만 아주 호화스러워 보이는 작은 섬이 있고 아마 그 섬에 대단한 부가 꿈틀거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배는 서서히 되돌아 가고 일행은 모두들 카메라를 달랑거리며 우르르 선착장위로 나가니 또 다른 일행들이 우리와 같은 동작을 되풀이 하고자 배에 오르고 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뉴욕시내를 한참을 들어가 공원옆을 끼고 어느 아파트단지를 지나고 있다. 안내원 얘기가 저 아파트 한채가 모두 유명 연예인들의 집이라 한다. 자기가 사는 집 그리고 온갖 수행원이 사는 집이 모두 한 동에 있다 한다. 마돈나, 등이 살고 있다고...

그리고 다음 목적지는 유엔 본부. TV에서만 늘 보아오던 유엔본부가 바로 눈 앞에 있다. 까마득히 서있는 빌딩입구에 권총의 끝을 매듭지어놓은 인상적인 조각이 있고 전 세계의 가입국들의 깃발이 입구에 펄럭이고 있다.. 우리 나라 기를 확인하고 반가움에 배경사진...빌딩안으로 들어가니 관광객을 위한 장소가 예비되어 있다 기념품 판매 코너 서적 판매 그리고 눈길을 끄는 것은 샤갈의 그림이라고 설명을 붙인 평화의 상징.. 화풍에서 금방 샤갈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밖에는 여전히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고... 모두 평화의 깃발들을 바라본다.

버스는 다시 출발하고 조용한 길들로 접어든다.

한참을 가니 점점 길은 더욱 조용해지고 주위의 건물도 자꾸 우중충해지며 길가의 상품들도 모두 검은 색 계통이며 건물의 낙서도 조금 난잡해진다. 이곳이 할렘가라 한다.

어느 시장옆을 차가 지나는데 시장안에 사람들이 모두 흑인 일색이다. 그중 동양인도 보이길래 안내원에게 물으니 몇 몇 한국인이 이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단다. 어느 손님이 이곳에 내리면 안되냐고 했더니 그럼 내려드릴께요. 뒷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손님은 겁이 나는지 아니 됐다고... 모두들 웃었다.

그리고 보니 내가 입은 옷도 완전히 흑인들이 입는 옷임을 알았다. 동생이 잠바수출하는 곳에 근무중 샘플이라고 조금 눈에 띄는 옷을 하나 주었는데 이 옷이 완전히 이곳에 어울리는 상품이다. 나도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집에 온전히 갈려면 쓸데없는 모험을 삼가야했다.

할렘을 보는 것으로 하룻동안의 뉴욕관광은 끝을 맺고 버스가 브로드웨이를 지날때 차창밖으로 얼핏 보이는 풍경하나. 어느 행인이 길을 가다가 먹던 감자튀김을 쓰레기 통에 던져 넣는가 싶었는데 곧 거지한명이 얼른 달려들어 아직따끈한 감자튀김을 봉투째 들고 손바닥에 털더니 그대로 입으로 직행... 어어구 맛있겠다... 참으로 미국거지는 감자 튀김 먹고 사네.. 안내인에게 부탁해 차를 정지시켜 감사드리고 우리 둘만 내렸다. 환상의 브로드웨이.. 높은 건물의 벽마다 그리고 낮은 빌딩의 옥상마다 커다랗게 붙어있는 뮤지칼 공연 대형 간판들.

미스 사이공, 캣츠, 레미제라블, 그리스 등등 수없이 많은 공연들이 이 거리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 중에 하나를 보기로 작정하고 마침 인근에 고양이 눈을 무척이나 크게 그려 놓은 뮤지컬 캣츠 공연장이 있어 매표소로 들어가니 조금 한가하고 표는 약 40불이나 했다. 그러나 이곳 까지 와서 이걸 안보면 차라리 비행기타고 미국을 오지 말지 하는 생각에 두 장을 서슴없이 사고 저녁시간표를 구입. 남는 시간에 저녁식사를 대충 때우고자 인근이 햄버거 집에가서 가장 싼 메뉴로 해결.

시간이 되어 극장안에 들어가니 입구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이미 좌석은 거의 차 있었다.

우리는 시간에 맞추어 공연장을 찾지만 이들은 미리 와서 기다리는 습관때문이리라. 빨간 유니폼을 입은 안내원의 불빛을 따라 자리를 잡으니 무대 바로 옆이다. 이거 좋은 자리네.

연주자들이 바로 앞에서 공연을 하겠지. 무대에 커튼은 안쳐져 있고 무대 곳곳이 뉴욕의 뒷골목을 그려 놓은 듯한 실내 인테리어가 벌써 관객들을 캣츠의 무대로 인도하고 있다.

더덕더덕 붙은 광고물들 온갖 세계적 브랜드로 누더기된 포스터들 그리고 잠시후에 시작된 공연은 우리 부부를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어 버렸다. 현란한 고양이 분장을 하고 복장을 한 배우들이 고양이 몸짓으로 기어 다니며 바로 우리 앞에서 웃음짓고 있고 그렇게 한 마리 두마리 나오더니 급기야는 온 무대가 고양이 천지가 되어 버린다. 걷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고양이의 본능을 따라 하는지 네발로 기는 모습이 등뼈까지 고양이를 그래도 빼 닮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국내에서 이 캣츠 뮤지칼을 국내의 이름모르는 배우들이 공연하는 걸 보았지만 음악적인 면이나 율동 그리고 무대 장치면에서 너무 부실해 실망을 무척하고 이 공연을 보니 완전히 다른 음악적 분위기 배우들의 율동 춤. 그리고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무대 장면들 의상 그리고 분장에 이르기까지 뮤지칼의 본고장에서 펼쳐지는 공연다웠다.

특히 음악은 성악가들을 뺨치는 발성법과 기본기가 마치 한 편의 오페라를 보는 것 같은 착각속에서 한참 시간이 지나고 있을 무렵 인터미션시간이 되고 모든 배우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나가버리니 제복을 입은 사람들 몇 명이 올라와 공연중인 무대에 줄로 방패를 해 놓는다. 처음엔 무척 의아했으나 곧 그 기막힌 아이디어에 혀를 내두드리고 말았다.

중간 휴식시간에 관객들이 무대로 올라와 무대의 셋트들을 이것 저것 구경하고 잠시후 무대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이젠 고양이처럼 기어서가 아닌 서서 손에는 팜프렛과 기념품을 들고 무대위 그리고 객석에서 손님들에게 판매를 하고 있는 자연스런 광경. 비록 사진은 찍지 못하지만 관객들이 무대를 자유스럽게 오가는 한가한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던지...

거의 감동의 연속으로 공연은 끝내고 무척이나 아쉬운 발걸음으로 극장을 나서니 손님들 나오는 시간에 맞추었는지 길 건너편 보도에서 흑인 밴드가 신나게 가두 연주를 하고 있다.

기타 드럼 섹소폰 트럼본등으로 온 뉴욕의 밤거리가 흔들리도록 연주하고 사람들은 모여들고 앞에 놓인 모금함에 너도 나도 가면서 동전하나 1불짜리를 하나씩 놓고 간다.

곧 이어 음악은 귀에 익은 Oh When the Saiint Go marching in... 으로 시작되는 성자의 행진.

주위의 모든 구경꾼들이 몸을 흔들기 시작했고 어느 다혈질의 부부는 둘이 서로 부둥켜 안고 춤을 아주 멋지게 추고 있다. 돈을 넣는 사람들도 춤을 추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돈을 넣고...

나도 그중 하나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처량하게 녹음된 찬송가를 틀어가며 박자도 맞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동정을 구하는 한국의 장애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 미국과 한국의 차이인가?

개척자의 정신과 한 많은 민족의 차이?

한동안을 구경하다가 밤이 늦은 것 같아 걷지는 못하고 뉴욕의 전형적인 노란택시를 타고 스텐포드호텔로 들뜬 가슴을 안고 돌아와 우리는 마치 뮤지컬 켓츠의 고양이 처럼 그 밤을 보냈다.
 
 

미국 여행 5일째..

오늘은 자유시간..

그러나 이미 나름대로 계획이 있어 이른 아침부터 눈이 떠졌다.

링컨센타를 봐야지 메트로 폴리탄 그리고 쥴리아드를 봐야지.

그리고 오후에는 워싱톤으로 기차여행.

기차여행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아침은 대충 빵과 커피로 때우고 우선 Check-Out 했다. 가방은 배낭위에 올려 놓고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아니 링컨센타로..

출근시간인지 사람들이 무척 붐볐고 우리는 전철노선을 찾아 인근의 전철역으로 내려 갔다.

어제 그제 보았던 지저분한 모습들은 조금 사라지고 넥타이를 매고 정장의 선남선녀들이 각종 피부색갈을 가지고 총총히 걸음을 재촉하며 지나갔다. 대충 안내책자와 지도를 보고

전철로 링컨센타앞에 내려 위로 올라가니 이쪽은 업무용 빌딩이 없는지 한산하다.

가끔 길가에 앉아 쉬는 할머니도 눈에 뜨이고 학생인 듯한 청년들이 둘 셋 어디론가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링컨 센타앞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다. 사각형의 분수대 안에 원형의 분수가 아침햇살에 무지개빛이 영롱하고 우린 아무데다 가방을 내려 놓고 사진찍기에 바빴다. 아침 일찍 여행을 시작하다보니 단체 여행객보다 우리가 항상 먼저다. 사진을 몇 컷 찍고 있으니 단체 여행객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몰려들고 우린 빌딩을 구경했다. 극장앞에는 다음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간판에 세워져 있는데 그것을 본 순간 얼마나 한국인의 긍지가 생겼던지.. 거기에 우리의 홍혜경이름이 영어로 플라시도 도밍고 등과 나란히 새겨져 있지 않는가.. 그걸 놓칠수 있나 . 내가 여행 일정을 조정하는등의 무리를 해서라도 볼 공연을 비록 아직 공연 시즌이 아니라 보지는 못하지만 사진이나 찍고 가야지. 이건 공연 본거나 다름없다.

링컨센타가 바로 눈앞에 있다.

링컨센타는 6개의 커다란 빌딩한가운데 커다란분수가 자리잡고 있고 바로 전면에 에버리 피셔 홀이 있어 그 해의 유명한 공연포스터를 미리 붙여 놓고 다음의 공연 시즌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 눈에 뜨이는 것이 우리 한국의 자랑스런 솔리스트들의 유명 오페라 공연의 프라마돈나였다 홍혜경의 영문표기가 무척 반가왔고 홀 안에 들어가서 하나하나 들쳐 보고 주섬주섬 모은 그해의 공연일정에는 반가운 사라 장의 사진까지 있어 이 홀안에 와서 돌아 볼 자격이 있음에 가슴이 뿌듯했다.

마치 내가 이 홀에 연주를 위해 서는 것처럼...그리고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안의 기념품 가게에 들러 무엇을 살까 무척 망설이다가 커다란 기념 타올을 하나 샀다. 노란 대형 수건은 메트로 오페라 하우스의 애칭인 메트가 최초 개관된 기념으로 제작된 것인듯 하면 관람석 자리의 번호가 매겨져 있음이 특이했고 년도는 1966년 9월 16일이라 새겨져 있음이 아마 최초 공연인듯 했다. 지금도 나의 조그만 음악실에는 이 대형 수건이 걸려 있어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오페라 하우스 전체를 둘러 보지 못함이 무척 아쉬었고 그해의 공연예정을 알리는 팜프렛에는 대체적으로 저렴한 관람요금이었다 가장 비싼게 40불. 공연마다 틀리겠지만 충분히 경제적인 가격이라 생각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줄리아드 음대를 안둘러 보고 갈수 없지. 에버리 휘셔 홀에서 다리를 건너가니 평범한 건물에 조그만 글씨로 줄리아드라는 말이 반갑게 들어온다.

이런 곳에서 세계의 기라성 같은 유명 연주자들이 공부를 하는게 이상할 정도로 건물은 그다지 웅장하지도 않았고 어찌 보면 마치 뒷골목의 조그만 오피스 빌딩 같았다. 안을 들어 가려다 제지 당한다. 아마 공부시간중에는 내부 관람이 허용되지 않는것 같다. 입구에는 입학 안내서같은 것이 있어 주제에 하나 들고 나왔다. 무언가 꼭 가져 가고 싶어서...

둘이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 지나가는 동양인 여학생에게 부탁을 하고자 영어로 얘기하고 난 후 느낌이 이상해 혹 한국인이 아니냐고 물으니 내 추측이 맞았다. 한국인. 나는 어찌 반가운지... 그러나 내색은 안했고 학생 또한 많이 겪는 일인지 덤덤하게 사진찍어 주고 간다.

나는 그러지 못해도 내 후손중의 한 명은 반드시 이곳에 입학시키리라.. 그게 내 아들 딸이 될지 혹은 그 다음이 될지 모르지만.....

다음은 워싱톤으로 가기로 되어 있어 오랫동안 둘어보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고 가방을 둘러메고 지하철로 내려왔다 기차를 타기 위해선 암트랙을 타야한다. 미국여행에 기차를 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리라. 다른 이들은 자동차 여행을 권했지만 마침 국제 운전면허증도 없어 포기하고 인근 펜실바니아 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역에 내리니 그 거대함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내가 이곳에서 워싱톤가는 기차를 제대로 탈수 있을까? 까막눈은 아니니 우선 대형 전광판을 쳐다본다. 수없이 많은 노선이 국제 공항같이 줄줄이 엮어져 있고 그 중에 워싱톤 디시를 찾았다. 매표 창구 번호를 확인하고 매표소에 가서 대충 줄 서 있는 흑인들 뒤에 서고 내 차례가 되어 가격을 물으니 몇 불이라 하는데 조건이 많다. 도대체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유리창 저 안에서 중얼거리니 묻고 또 묻고...

미리 알아본 요금보다 조금 싸다. 이상해서 혹 한장값이나 혹은 편도 요금이 아닌가 하고 무척 걱정했으니 가격 차이로 볼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기차에 들어가기 전에 적어도 대여섯 시간을 여행을 하기 위한 준비로 먹을 것을 대충 싸들고 기차 안은 무척 한가하다. 지정된 좌석에 앉아 출발 시간 까지 기다렸으나 그래도 열차안은 한산하기만 하다. 자꾸 외국 폭력영화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기차 안에서 종종 일어나는 갱들의 총격전 그리고 피로 얼룩지는 살인들...

나의 걱정에도 아랑곳 않고 기차는 소리없이 정시간에 출발한다. 차내에 비치되어 있는 암트랙의 기내 잡지를 보니 미국에는 기차 노선이 많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긴 도로가 많이 발달되어 있는 나라니..

잠시후 나이 든 검표원이 나타나 표를 검사하더니 표의 반을 찢어 반을 좌석 위의 선반에 끼워 놓는다. 아하 그리고 보니 좌석에 손님이 있는 자리는 위에 그런 쪽지가 모두 꽂혀 있다.

기차여행에 손님이 없는 이유를 안건 기차가 출발하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한국에서 기차여행을 즐기는 나는 그 큰 이유중의 하나가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마을과 낮은 산과 가끔 스쳐지나가는 농촌의 모습을 보는게 큰 낙인데, 이 곳은 완전히 숲의 터널을 지난다.

그러니 차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오로지 녹색의 울창하고 키가 큰 나무밖에 없다.

그것도 거의 몇 시간을 그렇게만 달린다. 금방 나의 실수를 인정했지만 돌이킬수 없는일. 에라 잠이나 자자.

오후 4시경에 워싱톤유니언역에 도착하였다. 아주 오래된 건물같은 역사는 천정이 끝이 없이 높다.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고... 평일이라 그런가 혹은 지금이 한산한 시간인가? 역사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해 놓은 워싱톤 인근의 호텔이름을 말하니 금방 위치를 알고는 한 20분을 주택가 비슷한 곳을 달려 우릴 내려 준 곳은 뉴욕의 지저분한 호텔이 아닌 아주 깨끗한 호텔. 퀄리티 인.. 뉴욕 호텔의 삼분이 이 정도 되는 가격에 호텔은 최상급이다. 물론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여행객들을 위한 호텔이라 건물이 높지 않고 길게 뻗어 있다. 대개 첵크인하고 자기 차로 호텔방앞에 세워놓는데 우린 차가 없으니 복도를 한참 걸어 이층에 방을 찾았다. 호텔 방앞이 마당이라 아내가 무척 불안해 한다. 누가 지나가다 볼것 같다며...

대충 가방을 풀고 다시 프론트 데스크로 가 내일의 오전 관광(HALF DAY TORU)을 예약해 놓았다. 아침 8시 까지 이곳으로 다시 나오라 한다. 이젠 요기를 해결해야 했기에 인근의 식당을 찾으니 눈에 보이는건KFC밖에 없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을 건너 KFC를 찾아 우린 또 무언가 이상한걸 알았다. 손님들과 종업원이 모두 흑인이다. 이 곳은 흑인마을이구나. 공연히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무엇일까? 색에서 오는 두려움일까? 혹은 선입견에서 오는 두려움인가? 모두 같은 사람일뿐인데...

한국보다 조금 비싼 닭고기를 먹고 그냥 호텔로 들어왔다. 이 동네는 도무지 돌아 다닐 곳이 마땅치 않다. 그리고 프론트에 물어봐도 밤에 갈 곳은 없단다. 그리고 어디 나가더라도 반드시 차가 있어야 하고... 우린 오도 가도 못하게 생겼다.

방으로 들어 왔다. 마실 물도 사놓지 않았기에 늘 출장다닐 때 사용하던 수법으로 공짜로 마음대로 꺼내 쓸수 있는 호텔 모퉁이의 아이스통에서 얼음을 하나 가득 담아 방안에 두면 저절로 식수가 생긴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TV시청 밖에 없다. 이때 처럼 하룻밤이 긴적이 어디 있으랴.

 
 
 

미국 여행 6일째..

할일이 없어 일찍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새벽 3시. 엎치럭 뒷치럭 나만 잠을 일찍 깬게 아니고 아내도 옆에서 부시럭 거리며 일어난다. 잠을 못 자겠다며... 그렇게 이리 저리 굴러도 새벽 4시. 이제는 도무지 배가 고파 못 참겠다.

무언가 먹을 것을 사러 나가야 겠지만 위험한 밤거리를 나간다는 건 도무지 상상도 못하겠다. 그러나 오랜 미국출장으로 이런 때에 물건 사는 법을 터득하였다. 주유소에 가면 있으리라. 호텔 바로 옆에 주유소가 있었으니 그곳에 필경 조그만 슈퍼가 있으리라.

만류하는 아내의 손길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가 어둠속의 긴 복도를 걸어 호텔 옆의 주유소 가게를 가니 불은 환하게 켜 있으나 문이 모두 잠겨있다. 그리고 가게 안의 점원도 꼬박꼬박 졸고 있고.. 물건은 팔긴 파는 모양이다. 점원이 카운터 앞에 있으니... 점원이 졸고 있는 옥외 계산대의 두꺼운 유리를 두들겨 점원을 깨웠다. 물건좀 살려 하니 저 문좀 열라고 소리치니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본다. 내가 갱같이 보이지는 않았는지 손으로 필요한 물건을 가리키면 자기가 꺼내 주겠단다. 세상에 이런 쇼핑은 처음해보네.

우유와 빵 그리고 스낵을 몇개 가리키고 계산을 하는데 돈을 계산대의 유리밖에 놓으면 계산대가 빙글 돌아 안으로 들어가 계산하고 물건을 그 밑으로 내 놓는다. 이건 완전히 안으로 손 하나 들어갈 틈도 없다. 얼마나 갱들이 날뛰면 이렇게 해야 하나. 한국에선 이런 새벽까지 꼬박 꼬박 졸고 있는 구멍가게 아줌마들도 부지기수인데... 아 대한민국이다. 평화스런 나라. 안전한 나라. 나쁜 사람없는 나라. 우리 조국 대한민국.

빵을 사들고 방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무척 걱정했단다. 걱정할만도 하지.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남편이 비록 길진 않았지만 마치 3년 같은 30분을 지냈으니... 그렇다고 나가 볼 수도 없고..

그러느라 새벽 먼동이 트는걸 몰랐다. 겨우겨우 긴 아침을 보내고 8시에 프론트로 나가니 우리 외에 몇 명의 관광객이 더 있다. 모두 나이든 할아버지 할머니들.

워싱톤관광은 국회의사당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얀 대리석 건물의 큰 계단을 오르고 거대한 청동문을 통과하고 들어 간곳에는 아주 높은 곳에 천정 돔이 있다. TV를 통해서 수없이 많이 보아온 이곳에서 안내원의 설명은 시작되고 어떤 그림을 설명하는데 안내원 주위에 사람이 많아 잘 듣지 못하고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아주 조용한 곳인지 안내원의 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고 미국역사의 중요한 인물들의 벽화와 콜럼버스의 미국대륙발견을 그려논 유화가 보인다. 한참을 이리 저리 돌고 미리 공부해 오지 못했음을 아쉬워 했다.

차는 이후 일행을 태우고 워싱톤 시내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주요 관공서 및 박물관등의 설명을 해주는데 한결같이 건물들의 외관이 유사하고 마치 로마의 고적지를 돌아다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마치 금방이라도 벤허가 사두마차를 끌고 이 거리를 지나갈 것같은 역사깊은 건물들이 인상깊었다. 오전관광밖에 되지 않았기에

갈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제일 가야 할 곳이 백악관. 미국대통령의 관저 아니 지구 대통령이 있는 곳. 빌 클린턴이 있는곳. 이나라가 화이트하우스라 이름 붙이니 우리나라도 청와대롸 이름붙인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곳.

사람들이 줄지어 있고 깨끗하게 차려입는 경찰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고 손님들의 모든 동작을 눈여겨 보는 것 같다. 백악관을 보는 길은 외길이다. 누구든지 마음대로 여유있게 산책하면 보는 것이 아니고 줄지어 가는 행열을 따라 가야 한다. 각 방에는 색갈들을 뜻하는 방들의 이름이 명명되어 있고 인테리어가 소박하게 꾸며진곳도 있고 조금 화려하게 꾸며진 곳도 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다니므로 여유있거나 또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없고 그냥 박물관 보듯이 스쳐 지나 나왔다.

안내원이 일행들보고 HORSE SHOE가 있는 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처음 듣기에는 무슨 말발굽 조각이 있는 곳에서 기다리라는 줄 알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런 곳이 없다. 내가 잘 못 들었나? 그리면서 거리모양을 자세히 보니 도로가 마치 말발굽같이 생겼다. 아 여기구나, 기다리면서 바로 앞의 건물을 보니 MUSEUM OF NATURAL HISTORY (자연사 박물관) 저곳에 들어가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다른 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길거리 먹거리 파는 곳에서 빵과 콜라로 점심을 사들고 거리에서 한가로이 아내와 함께 체면이고 뭐고 잊어먹고 허기를 채운다. 잠시 후 우리가 타고 온차가 아닌 다른 밴이 오더니 우리호텔 이름을 대라며 타란다. 혹 납치당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 그러나 여행사들끼리 도와가면 영업하리라 믿고 타 버린다. 워싱턴에는 볼거리도 아직도 많은데.... 링컨 기념과, 국립묘지, 워싱톤 기념관, 링컨 센타등. ..

시간이 없음이 아쉽다. 그러나 거리의 모든 건물들이 고색창연함에 차를 타고 고풍으리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호텔에 도착해 택시를 부르고 우리는 금방 유니온 역에 도착했다. 이제 돌아가는 길이구나. 우리의 관광은 이곳에서 끝난다.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간다.

유니언 역에서 커다란 팬피자로 먹는 즐거움을 누린다. 가는 길은 피곤하기만 하다.

열차 안에서 길게 누워 잠을 자고 뉴욕의 낯익은 거리의 모습에 반갑기만 하다. 이제는 길이 익숙해서 인지 지하철을 타고 공항까지 가기로 했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좁은 전철안은 사람들이 많아 무척 복잡하더니 어느 구간을 지나서 부터는 한가한다.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로 가는 비행기는 한 밤중에 있다. 무척 일찍 공항에 도착하였기에 둘이서 빈둥대기도 하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잠을 청하기도 하고.. 대한항공에 오르니 얼마나 반가운지... 앵커리지에 잠시 내려 공항에서 서성대다 먹은 우동한그릇과 오렌지 하나가 얼마나 맛있던지 아내가 침을 흘린다.

이른 아침에 배낭하나 달랑 둘러메서 입국하는 모습이 불쌍해서인지 김포공항 세관 검사도 없다 하긴 사가지고 온것도 없으니 ..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오늘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그 동안 보살펴준 외할머니에게서 듣고 이른 아침부터 깨어서 기다리고 있다.


얘들아 고맙다. 장모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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