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미주방문기

콜롬비아

carmina 2013. 12. 5. 16:56

1998.

 

마약과 게릴라 그리고 커피로 대변되는 콜롬비아인들의 국민성과 정열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마침 도착한 주일의 일요일, 이곳에서 대통령 재선거가 있었다. 지난 달 3후보가 각축을 벌인 대통령 선거에 아무도 과반수를 넘은 후보가 없어 다수득표한 두 후보가 다시 재선거를 가져 결정을 하는 독특한 방식의 선거가 우선 신기했고, 그 중 떨어진 후보가 여자후보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이 곳 대통령 후보의 공약은 다른 나라같이 국민의 복지나 경제 회생 그리고 지역 감정해소등이 아니고 마약대책, 그리고 게릴라문제 해결등이 주요 공약이다. 수 없이 많은 지역에서 수시로 폭탄이 터지고, 무고한 인명이 게릴라라는 누명으로 처형당하고, 혹은 마약단체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며, 그 들은 주요 상권이 있는 도시를 적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헌금을 거두어 들이는 등, 마치 전쟁치하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다를 바 없는 곳이 바로 콜롬비아이다.

 

특히 게릴라가 지역의 치안은 물론 경제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이 나라가 얼마나 심각하게 이 문제를 다루고 있고 모든 국민의 관심사임을 알수 있다. 우리가 공사를 하려는 지역은 유난히 게릴라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으로 공사를 하는 업자는 공사비에 별도로 통행세를 계산해야 한다. 특히 그 지역은 여느 정유공장이 있는 도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지역 주민이 거의 대 규모 정유공장을 주소득의 원천으로 하기 때문에 만약 공장에서 생산량을 줄이거나 혹은 신규공장 계획을 취소한다면 주민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게릴라나 혹은 강도로 변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만 하다.

 

이런 게릴라 문제는 이 나라의 근본적인 문제이며 신문에 연일 보도되는 게릴라들의 테러 및 납치등은 너무 자주 일어나는 문제이기에 주민들은 무관심으로 지나쳐 버린다. 선거 전날 신문의 1 면에는 게릴라가 어느 도시의 시장관저를 폭파한 사진이 칼라로 크게 장식되어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학생들과 경찰들이 차도를 막아 놓고 돌과 화염병, 그리고 최루탄을 터뜨리며 데모를 하고 진압작전을 펼쳐도 길가의 사람들은 무심히 쳐다 보며 자기 생활을 영위해 나가듯 이들도 자기들의 이웃 도시 혹은 도심지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져도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어디나 다 그렇듯이 한 사람은 여당 즉 보수당이고 그에 대항하는 자는 몇 십년 만에 정권을 바꾸어 보려는 야당후보였다.

 

길거리의 포스터에는 무척 간단한 포스터 한 장만이 주종을 이룬다. "변화는 지금이다" 라는 스페인어인 "엘 깜비오 에스 아호라" 깜비로라는 말은 스페인어권을 여행하는 모든 이들이 쉽게 접하는 환전소에 늘 붙어있는 단어이다.

 

94년 대선시에 게릴라부터 6백만불을 받아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현 대통령은 재선을 노리고 있으나 이를 빌미로 적극 공세를 벌이는 야당후보는 지식인층과 도시인들의 열렬한 지원을 받으며 아주 박빙의 도전을 벌이고 있다 한다.

토요일 그러니까 선거 전날, 아침은 휴일이라 그런지 조용했다. 그러나 오후부터 답답한 사무실의 창문을 여니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는 자동차들의 경적은 처음에는 단지 그냥 차량의 진행을 위한 경적이려니 했는데 그 소리들이 많아지고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에 밖을 내다 보니 거리를 달리는 거의 대부분의 차들이 차에 국기와 후보들의 포스터를 차체의 온갖 곳에 부착하고 경적을 울리고 심지어는 창문에 걸터 앉아 열심히 국기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작은 트럭의 짐칸에도 사람들이 서너명씩 타고 깃발과 요란하게 소리나는 피리를 불고 거리를 질주한다. 처음에는 콜롬비아 축구팀이 월드컵에서 이겼나 하는 의아심도 있었지만 경기 스케줄을 보니 경기는 다음 주 월요일에 있어 그 때문에 열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 부터는 저 사람들은 선거 운동원이구나 하는 식으로 내 생각을 맞추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간간이 들리는 축구 응원가와 함께 더욱 혼란해진 내 머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창가로 귀를 기울여 가고 더욱 궁금증은 더해가며 화장실에 앉아 조금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밖을 쳐다 보아도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왜 저렇게 운동원들이 질서가 없을까. 어린애들도 있고 주로 젊은이들이 열광을 한다. 하나같이 차의 창문을 열고 손에 작은 국기 혹은 큰 국기를 들고 경적을 시끄럽게 울리고 있다.

한참을 쳐다 보고 있으려니 의문이 풀린다. 저들은 후보로부터 돈을 받고 저렇게 특별한 목적지 없이 차를 몰고 길거리를 달리며 그 후보를 찍어 달라고 소리지르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 후보가 좋아서 길거리를 뛰쳐 나오는 것이다. 그것도 한 두사람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이 하나같이 국기와 포스터, 경적 그리고 나팔로 무장한 채 후보의 이름을 부르며 온 종일 거리를 쏘다니고 있다.

 

이러한 행렬은 밤 10시경까지 계속되더니 일을 끝내고 늦게 돌아오는 거리는 조용했다. 그래서 또 한 편 우둔한 내 생각은 ' 선거 운동 기간이 투표일 밤 10시까지인가 보다'하고 내 식으로 생각하였으나 이것도 잘 못되었음은 그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투표가 오후 4시경 끝나고 오후 6시경이면 결과를 알 수 있으며 그럼 혹 열광하는 시민들이 밤새 폭도로 변할 우려가 있으니 어제 이곳 직원들과 내일은 아무리 일이 급해도 오후 6시까지만 일을 하기로 약속하였다.

 

아침 9시경부터 거리가 조금 복잡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거리가 금방 차를 가지고 몰려 나온 시민들로 대로가 한순간에 막혀 버리고 군중들은 어제 보다 더욱 자기의 후보를 외치고 있어 창문을 열면 도저히 시끄러워서 일을 못할 정도로 혼란에 가까워지며 무슨일이라도 금방 일어 날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러다 무력으로 충돌할라...

 

무척이나 다혈질인 저들의 성격에 혹 자기 후보가 떨어지면 행동이 어떻게 돌변할 지 뻔한 일인데, 오늘은 무조건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같이 창문으로 구경을 하는 현지 직원에게 저러다 충돌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태연히 대답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빨리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의 무리에 끼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무력 충돌을 수없이 보아온 우리 눈에는 분명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신해 보며 사태의 추이를 보기로 했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지금 야당후보는 젊은이들, 도시인들, 지식인층들에게서 지지를 받고 여당후보는 장년층 그리고 시골에서 많이 지지를 받는 다는 설명에 어쩌면 우리 현실과 비스하게 닮았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시간이 갈수록 차가 막히고 정체해도 국기를 달지 않은 차량의 운전수들이 싫은 표정을 짓는 사람이 없고 또한 더욱 이해가 안되는 것은 차를 타고 그렇게 행진은 해도 길거리를 무리지어 걸으며 소리치는 사람이 없다는 기이한 현상이다.

그러한 열광적인 시민들의 행진은 선거 결과가 발표날 때 쯤인 오후 6시경에는 거의 폭발적이었다. 야당후보가 승리하고 주로 그 야당후보를 지지하던 군중들의 소란은 거의 광란에 가깝고 길은 차로 전혀 앞으로 나가지 못할 정도로 막혀 우리는 일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여당후보가 패배를 자인하는 방송이 나오는데 얼굴은 패배의 얼굴이 아니고 자기를 열렬히 지지해준 군중들 앞에서 마치 승리자같은 연설을 하고 옆에 서 있는 부인도 마치 이제 영부인이 된 것같이 무척이나 상기되고 들 뜬 얼굴로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웃음으로 답하고 있다. 방송에서는 그 어디에도 패배에 어깨가 축 쳐진 선거 운동원들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콜롬비아 관광

 

며칠동안 매일 밤 12시까지 일하고 어떤 날은 호텔이 아닌 사무실에서 잠을 자기도 하면서 무사히 일을 마친 날 오후 여태까지의 피곤을 감안한다면 그냥 오후 내내 호텔방에서 잠이라도 자야 편하지만 여행은 늘 피곤한 것. 내가 피곤에 지면 여행은 나를 자꾸 집으로만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모든 것이 지루하기만 할 뿐이다.

 

아침에 호텔을 나설 때 벨보이에게 오후의 씨티 투어를 알아 보았다. 두 사람일 경우 일인당 35000 페소, 약 27불. 적당한 가격이다. 오늘은 보고타 시내의 안쪽을 보고 내일은 특별히 일본회사에서 내준 차를 타고 멀리 외곽의 성당을 구경가기로 했다.

 

오전에 일을 보고 점심은 한국 식당에서 오랫만에 쌀밥을 먹은 후에 호텔로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나니 2시. 호텔 앞에 우리를 위한 차가 준비되어 있다. 벨보이에게 팁을 건네 주고 차에 오르니 인자하게 생긴 안내인이 자가 소개를 한다. 이름이 ‘로드리고’라고 하기에 유명한 기타리스트 이름과 같다 하니 이 곳에선 흔한 이름이란다.

 

처음 간 곳은 구시가지. 그러니까 여태 우리가 있던 곳이 신시가지인가 보다. 높은 건물이 이곳 구시가지에도 보이지만 대 부분의 주변 건물은 무척이나 오래된 듯이 보인다. 사람들의 모습도 전통의상을 많이 입고 있다. 많은 경찰들이 보이고 차를 내려 어느 곳을 가니 길거리에 싸구려 식당들이 있고 어느 장님 거지가 바닥에서 두개의 짧고 굵은 막대기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하는데 안내인이 설명을 한다. 자마이카 거지라고... 리듬도 그곳 리듬이라 한다. 하긴 거지가 두드리는 리듬이 무척 귀에 익다. 레게음악같은 분위기...

 

거지가 앉은 맞은 편에는 아주 오래된 듯한 그림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밝은 색이 주종을 이루고 무척 단순해 보이지만 사물의 역동감이 그대로 살아 있어 금방이라도 그림의 인물이 길거리로 튀져 나와 춤을 출 것만 같다.

 

조그마한 광장이 있고 그 한 쪽 구석에 박물관이 있다. 요금을 안내인이 지불하니 문득 우리가 계약한 35불에 저런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지 걱정된다. 미리 확인해 둘걸...

나중 알아보니 모두 포함되어 있단다.

 

이 박물관은 금박물관이라 한다. 사진찍는 것은 입구외에는 모두 금지되어 있다고 하여 입구에서 한장 찍고, 천천히 통로를 따라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며 돌아 가는데 비록 조금 투박하기는 하지만 모든 제품이 금으로 만들어져 있고 금맥에서부터 금을 캐내 제련하고 금세공품을 만드는 장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처음에는 못 느꼈는데 통로를 지나 갈수록 진열된 금 장신구의 대 부분이 코걸이임을 알고는 자꾸 입이 벌어짐을 어찌할 수 없었다. 사람이 코에 걸 수 있는 장신구무게의 한계가의심스러울 정도로 코걸이의 크기는 점점 커져 갔고 도무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큰 코걸이를 볼 때는 그만 어이가 없어 실소를 금치 못했다. 진짜 저런 것을 코에 걸고 다녔을 까 할 까 하는 의심은 나만 갖는 것일까...

 

안내인이 영어로 설명을 하니 몇 몇 외국인이 우리 곁을 바짝 쫓아 다니고 있다. 공짜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한참을 가다 보니 안내인의 설명을 자연스럽게 우리 둘만이 아닌 대 여섯명의 외국인을 위한 설명으로 바뀌었다.

 

어느 불꺼진 방에 몇 명을 집어 넣더니 문을 닫는다. 조명이 아주 조금씩 밝아 지는데 주위가 조금 무엇인가로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자세히 보니 주위가 전부 금 장신구들로 진열되어 있다. 코걸이는 물론이고 금개구리, 금메뚜기 등 온갖 금으로 만들 조그만 물건들이 방안에 가득하다. 손을 대지 못하도록 유리로 막아 놓긴 했지만 만약 유리가 없다면 누구든지 하나 정도 슬쩍해도 모를 정도의 많은 금이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테스트한다.

 

차는 다시 이곳 저곳 구 시가지를 돌아 다니고 대 부분의 집들이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허름한 가운데 몇 몇 집시들이 한가한 시간과 거리를 즐기고 있다. 그 사이에 누런 색갈의 대통령궁과 얼룩무늬의 성당이 유난히 대조적이다. 그 맞은편에는 현대적인 건물이 마주대하고 있어 마치 고대의 도시와 근대의 도시를 비교해 놓는 것 같이 보인다.

 

이곳에서도 도로의 신호등 앞에는 여지없이 조그만 기호품을 파는 잡상인과 보기에도 흉칙한 모습을 한 거지들이 차창문 바로 앞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차는 어느 언덕을 한참을 구비구비 달려 올라 가더니 높은 산이 바로 코 앞에 보이는 곳에 세우고는 저 곳까지 올라 가야 한단다. ‘애고 죽었구나 가뜩이나 피곤한데 등산을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는데 어느 건물로 들어간다. 건물 입구에 써 있는 안내그림이 케이블카를 표시하여 무척이나 반가왔다.

 

평일이라 한산한 케이블카의 입구에는 산에서 흘러 내리는 물을 이용하여 조그만 폭포와 그 사이를 흘러내리는 물이 아기자기한 모형들을 통과하도록 만들어 놓아 기다리는 사람이 눈요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같이 기다리고 있는 현지인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고 있는데 군복을 입은 사람이 옆에 와서 선다. 완장을 보니 관광경찰이다.

 

헬리콥터가 활약하는 미국TV영화의 조연인 맥 아저씨를 닮은 모습의 케이블카 안내인이 마치 가족을 대하는 듯한 친근함으로 운행을 한다. 케이블카는 삽시간에 하늘로 떠 오르고 멀리 보이는 보고타 시의 집들이 마치 조각 맞춤같이 다닥 다닥 붙은 집들이 무수하게 보이고 정상에 올라서니 서늘한 바람과 함께 한기가 느껴진다. 이곳의 높이는 무려 해발2600 미터라 한다. 그러니까 백두산보다 조금 낮은 셈이다. 하긴 도시 자체가 2100 미터이니 보고타 사람들은 모두 설악산보다 더 높은 곳에서 늘 생활하는 셈이다. 워낙 높은 도시이다 보니 한국인들이 이 곳에서 보통 밥솥으로 밥을 지으면 도무지 제대로 된 밥을 짓지 못한단다.

 

산 꼭대기에서 아래를 보니 보고타시가 분지에 쌓여 있음이 확연히 보인다. 그러나 멕시코나 서울같이 산꼭대기에서 도시를 볼 수 없을 정도의 공해가 있지는 않고 비교적 먼 지역까지 또렷이 보일 정도의 시계가 있고 너무 높아서인지 조금을 걸어도 숨이 차다.

이 산을 중심으로 보고타 시내 전체를 볼수 있지만 뒤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없으니 성당만 보고 내려 가야 한단다.

 

성당을 들어 서니 사람은 없는데 내가 좋아하는 모텟류의 음악이 오디오를 통해서 성당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다. 채광이 잘 되어 있는 건축물이라 성당 내부가 무척 밝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여 기도하고 성전 앞에 앉아 한참을 올려다 보았다. 성당의 내부는 유럽 풍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무척이나 심플한 성당 내부와 별로 치장없는 성물들에서 유럽에서 건너온 남미풍의 카톨릭의 변화를 알게 한다.

 

같이 간 직원과 함께 이 곳에 좀 더 머물고 싶다 했지만 다음 코스를 봐야 한다며 불과 15분만에 우리를 하산하는 케이블카 입구로 데려 간다. 멀리 건너편 산꼭대기에 하얀 마리아 상이 조그맣게 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높은 곳에는 늘 이렇게 마리아 상을 올려다 놓았다.

내려가는 케이블카 대기소의 긴 통로가 휴일날 이곳이 관광객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다음에 꼭 가야 한다는 곳은 다름아닌 선물가게이다. 어느 나라나 안내인은 똑 같음에 실소해 버린다. 허름한 문을 지나 가게문을 들어 서니 에머랄드를 가공한 보석과 금장신구를 파는 아가씨들이 들어서기가 무섭게 마실 것을 선택하라고 다그친다. 이곳에서 멋진 가죽 모자하나 사는 것으로 성의를 표시했다.

 

그리고는 안내 끝. 시간이 오후 5시 반 정도. 부지런히 산을 내려간다. 알고 보니 이 시간에 끝나는 이유가 있다. 6시가 넘으면 이 길이 모두 퇴근하는 차량들로 막혀 버린단다. 하긴 서서히 길에 차량들의 행진이 많아진다.

 

호텔 근처의 맥도날드 집에 내려 달라 하고 팁을 주어 사례를 표시했다.

 

 

 

콜롬비아의 시골 풍경 (98.5.16)

 

지난 7일간 거의 지옥이나 다름없는 생활 속에서 지내다가 콜롬비아의 관광보다 더 솔깃한 제의가 들어와 얼른 승락하고 말았다. 현지 직원의 시골 농장에 놀러가지 않겠느냐는 제의에 멀지도 않고 이곳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토요일 아침부터 가벼운 옷차림으로 준비하고 기다렸다.

 

정확하게 11시에 차가 오고 차는 별로 넓지도 않고 곳 곳에 도로 공사중인 도심지의 한 복판을 한 참을 가로 질러 가니 곳 곳에 먼지와 다 부서진 차들이 용케도 이리 저리 피해 다니며 교외로 빠져 나가고 있다. 유난히 현대자동차와 대우 자동차의 엑셀, 엑센트, 그리고 르망등의 현지 택시들이 앞 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쓰고 서민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왜 그리 차 들이 더러운지 도무지 이해 하기 힘들 정도로 거개의 차들이 모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그리고 길거리의 모든 도로들이 깨지고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새로 생긴 도로는 도무지 찾아 볼 수 도 없다. 낮은 아파트와 신호만 걸리면 차 앞을 가로 막는 거지들, 서너개의 과자 봉지를 들고 판매 혹은 구걸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차가 도심을 벗어 났는가 싶더니 어느새 길 옆으로 푸른 초원이 시원스럽게 나타난다. 멀리 산이 보이지만 시야에 닿는 곳은 모두 푸른 초원과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젖소들 그리고 느릿 느릿 일을 하는 사람들의 그림이 계속 펼쳐진다.

 

도심을 벗어나니 차도 별로 없고 먼지도 사라진지 오래다. 옆에서 계속 업무얘기를 속사포 쏘듯 말하는 우리 직원의 말이 없기를 바라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창 밖을 즐기고 있다. 주위의 경치에 너무 취해 모든 대답이 건성으로 나가고 있는 나 자신의 마음을 들킬까 봐 사뭇 진지하게 표정을 바꾼다.

 

멀리 보이는 낮은 산들은 모두 푸른 색으로 덮혀 있고 길게 늘어져 있는 전선줄이 산에 구비구비 구획을 그어 놓은 밭이랑의 선들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차는 한참을 달려 어느 커다란 마을에 들어 서는데 사람들이 여기 저기 옹기 종기 서있고 그 사람들의 옷차림이 도시사람들의 그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전통 의상을 자랑하고 있다.

 

챙이 좁은 모자에 구리 빛갈의 얼굴, 그리고 남 녀 망토를 걸치고 그 안에 양복은 혹은 보통 옷을 입고 있다. 망토라는 것이 주로 짙은 색이거나 어두운 색이어서 사람들 얼굴이 더욱 초라해 보인다. 마을 한가운데 교회가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운전기사가 지금 저 곳에서 결혼식이 있다고 하기에 얼핏 보니 교회 내에 사람들이 의자에 질서 정연하게 앉아 있고 옆에 비데오를 찍는 모습이 보인다. 차가 얼른 지나쳤기에 신랑 신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교회앞에는 마을의 조그만 광장인 듯 공터가 있고 그 가운데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펌프가 보인다. 불현듯 영화 ‘마농의 샘’ 중에서 한 장면이 떠 오른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우물처럼 똑 같은 영화 셋트같은 장면이 이 곳에 있다.

 

운전기사는 길을 잃었는 듯 마을을 한 바퀴 휘 돌다가 차를 세우고 동네의 나이 든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길을 묻는다. 그 촌노의 얼굴에는 이 먼 곳 깊숙이까지 찾아와 차 안에 신기한듯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우리들이 이상했으리라...

 

그러나 그 옆에 보란듯이 서 있는 우리의 ‘무쏘’가 나에겐 자랑스럽기만 하다.

“여보세요, 저기 멋있는 차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만든 차라는 것을 알아요?” 하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혹 그러다가 총 맞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과 함께...

 

차는 다시 마을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데 길 옆에는 과수원인 듯 혹은 밭인듯 전통적인 시골의 모습이 보이더니 불현듯 앞에 커다란 물체가 가로 막는다. 말이 약 열 댓마리 정도가 떼지어 앞을 가고 있다. 전통 복장을 입은 청년이 말위에 올라 타고 다른 말들을 이리 저리 몰아 가며 소리 지른다. 차가 말들과 부딪히지 않게 조심스럽게 피해 가는데 말의 앞 부분에는 작은 꼬마가 역시 말을 툭툭치며 말들을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인도하고 있다.

 

그리고 말을 지나 치고 얼마를 가니 또 다른 풍경. 앞에 열 댓명의 남자들이 오는데 그 가운데 몇 명이 까만 관을 어깨에 메고 있고 그 뒤에 한 사람이 꽃으로 장식된 고인의 사진을 들고 따른고 있다. 우리네 상여처럼 천천히 걸어가는것이 아니고 빠른 걸음으로 우리 차를 지나치는 그 얼굴들에서 슬픔이란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느 길에선가 우리 차는 다시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다가 길에 서 있는 노인에게 길을 안내받고는 비포장길을 한 참을 접어 드니 군데 군데 집이 하나씩 보이고, 어느 곳에 이르니 우리가 찾던 집의 문패가 나왔다고 하여 창가를 보니 허름하지만 큰 나무 대문이 닫힌채로 있다. 기사가 내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 진다. 넓은 목장과 풀밭 그리고 몇개의 가옥이 서있다.

 

우리를 초대한 주인은 아직 오지 않아 연락을 해보니 지금 한참 이곳으로 오고 있단다. 주인 없는새에 정원을 둘러 본다. 넓은 잔디 마당에 조그만 닭우리와 새집들, 일본의 어느 정원같은 연못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우리 나라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약 1 미터 높이의 돌 하르방 두개가 잔디마당에 나란히 놓여 있다. 이런 취미까지 있을 줄이야...

 

잠시 후 일본제짚차인 미쓰비시를 타고 아버지와 함께 도착한 주인은 정원부터 구경시킨다. 여러가지 과일수을 보여 주며 이상한 과일을 하나 따 주며 나보고 먹어 보라 한다. 같이 간 우리 직원은 못먹겠다고 하는 것을 내가 받아 퍼석 깨물어 보니 꼭 우리 나라 유자 맛이다. 그리고 또 사과 하나를 따 준다. 조그마한 것이 조금 신 맛이 있다.

 

주인은 우리보고 어디 가자하며 차에 태운다. 차는 보통 승용차로는 어림도 없는 가파른 언덕을 4륜 구동차의 힘을 빌려 가뿐하게 올라 어느 목장을 가다가 갑자기 차를 세운다. 앞에 철사 줄이 하나 쳐 있다. 목장 안에는 소들이 몇 마리 있는데 이 정도 가느다란 쇠줄로 어떻게 막는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그 쇠줄에 전기가 흐르고 있다. 조심스럽게 나무로 철사줄을 걷어 내고 목장 안을 이리 저리 둘러 본다. 그리고는 또 다른 산길을 비틀거리며 쓰러지듯 달려 어느 말목장에 차를 내리고는 목장에서 말들이 부수어 뜨린 우리를 수선하고 있는 동네 사람과 한참을 무엇인가 얘기하더니 우리에게 근처의 마구(馬具)들이 있는 곳을 보여 준다.

 

수십가지의 안장들, 그리고 사육에 필요한 도구들과 마차가 보인다. 그 마차는 마치 신데렐라가 타던 것처럼 아주 멋진 것이었고 말만 두마리 앞에 서면 금방이라도 멋진 왕자님같은 포즈를 취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식사를 하러 가는 도중에 어느 곳에는 소 젖을 짜는 집이 보인다. 젖을 짜서 자동으로 통에 담을 수 있도록 갖가지 장치가 되어 있다. 길가의 감자밭들이 농촌의 풍성함을 느끼게 한다.

 

야외에서 식사를 하려고 바베큐 그릴에 숯과 고기를 마련하였으나 비가 와 고기만 밖에서 굽고 안에서 넓은 초원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도록 식탁을 준비해 놓았다. 야채 샐러드, 기름이 바짝 빠진 고기와 소세지 그리고 소금에 구운 감자가 미각을 돋군다. 마치 영화에서 보암직한 상황을 직접 연출하고 있다. 세상이야기와 음식이야기 그리고 시중드는 별장지기들,....

 

식사 후 거실에 앉으니 또 한 번 눈이 휘둥그레 진다.

신발을 신고 들어가도 되는 두터운 양탄자가 깔린 거실에는 전면에 유리창이 있어 막힘없이 넓은 초원을 바라다 볼 수있고 오른쪽에는 벽난로, 오른쪽에는 서가가 있는데 전 세계여행지의 기념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인형 셋트 (인형안에 똑같은 모양의 작은 인형이 계속 들어가 있는 체코의 기념품, 아주 오래된 권총, 동물의 박제 등등. 그리고 또 다른 구석에는 일본의 사무리아칼이 진열되어 있고 한국의 오래된 종이 그 옆에 자리잡고 있다. 벽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모자들과, 그림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벽에도 그림상식이 별로 없는 문외한의 눈으로 보기에도 비싼 그림들이 가득하다.

 

집을 둘러 보니 여동생방의 입구에 보통 서가가 있는데 그것을 밀치니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다. 나보고 들어오라 하면서 이곳이 포도주 저장창고라고 가르쳐 준다. 아버님방옆에는 핀란드식 사우나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고 대형 텔레비젼이 침대의 발치에 있다.

언제나 이런 집을 가져 보나....

 

다음에 아내와 한 번 이곳에 와서 자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니 쾌히 승락한다. 이루어 지지 못할 꿈을 꾸고 있다.

 

여행은 꿈을 꿀 수 있어 좋다. ‘언젠가는....’ 이라는 꿈을.....

 

 

콜롬비아 소금성당

 

며칠 동안 소금성당에 대한 말을 들었다. 보고타시에서 가볼만한 곳이라고...

방문한 일본회사에서 교통편을 제공하고 지사원이 오늘의 스케줄을 시간별로 정리해서 보내 주었다. 관광은 몇 시까지 하고, 점심은 어디에서 먹고, 쇼핑은 어디에서 하고 저녁초대는 몇 시에 한다고 정리해준 성의가 고마왔다.

 

평일이라 한산한 외곽도로에 가끔 빗방울이 날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직선도로에 옆에 같이 앉은 동료는 그간 피곤하게 일을 했던지 이미 잠에 빠져 들었다. 차창가에 스쳐 지나가는 콜롬비아의 집들과 젊은이들의 바쁜 걸음걸이들, 그리고 노인들의 느긋함이 어우러지는 거리의 모습들이 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낡디 낡은 집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교통 신호도 무시하고 대충 거리를 횡단하는 여유도 보인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푸른 초원이 계속되고 지난 번에 보았던 소들의 평온함이 계속 이어진다.

 

가끔 도로 공사를 하는 곳이 있긴 하지만 별로 차가 밀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여 보니 참 이곳에서는 도로를 파헤치는 작업이 별로 없다. 차도의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이 깨어진지 무척 오래되 보이지만 그대로 두고 운행하고 그 거리를 걸어가며 생활하고 있다.

무관심인가? 혹은 그 들의 경제사정을 알기 때문에 그대로 묵인하는 것인가?

 

고속도로는 아닌데 통행세를 받는다. 하긴 길은 외줄기이니 다른 곳을 돌아서 갈 수도 없다.

 

지파키라. 우리가 가는 곳의 지명이다. 한시간 20분정도를 달렸는가 지파키라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바로 좌회전하여 들어가니 꽤나 유명한 관광명소라 하는데 주차장에 차가 별로 없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 보아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산 밑에 조그만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보일 뿐이다. 몇 명 사람이 어슬렁거리지만 그곳을 관광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곳은 단지 매표소일 뿐이었다.

 

영어 통역이 안내를 해 주면 5000페소라 한다. 투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작업복을 입은 이가 유창한 영어로 길을 안내한다.

 

안내자는 우리를 아무 것도 나타 나지 않을 것 같은 조그만 길로 안내하고 저 멀리에는 콘크리트 난간에 커다란 십자가가 하나 걸려 있다. 이것이 성당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 십자가 뒤 산밑자락 검은 사각의 동굴 입구가 보인다.

 

이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어제 우리를 안내한 로드리고씨가 오늘은 미국인인듯한 남자 한 명의 안내를 맡아 이제 막 안내를 마친 듯 우리와 반대편으로 걸어 오고 있다.

 

잠간의 인사로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을 한꺼번에 갖는다. 그리고 우리는 동굴 입구로 들어서니 철문을 옆으로 비껴 놓은 곳에는 아까 산 표를 받고 있다. 입구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축축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어둠이 시작되는 듯 안내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손전등을 꺼내든다. 왜 이렇게 조그만 전등을 준비했을까? 무척 어두워 자세히 볼려면 랜턴같은 큰 전등을 준비하지... 아쉬움은 곧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임을 깨닫고는 이들의 사고방식이 우리와 현격히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만약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커다란 랜턴을 가지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 성당의 내부가 무척 어수선해 질 것이 뻔하므로 일부러 조그만 전등을 준비하고 꼭 보여 주어야 할 것에만 전등을 비추어 주고 있다.

 

탄광의 갱도가 다 그렇겠지만 양쪽으로 버팀목이 늘어서 있고 바닥은 물이 흘러 조심조심 길을 걷는다. 한 참을 그렇게 갱도를 지나니 갑자기 주위가 소란해진다. 소풍을 나온 듯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앞에서 계속 재잘대며 다가 오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전등을 손에 가지고 있는 애들이 없다. 가끔 선생님으로만 보이는 어른이 중간 중간 조그만 전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갱도를 쭉 가다 보니 우측에는 로마자로 I 을 구리로 표시해 놓았고 왼쪽에 방하나만한 공간의 벽에 십자가를 음각해 놓았다. 그 공간의 입구에 비석같이 세워 놓은 것이 있고 안내자은 이 기둥이 소금이라 한다. 그러면서 전등을 그 기둥에 비추니 빛이 그 기둥을 마치 유리로 만들어 진 것처럼 통과하고 있다. 일종의 크리스탈이란다.

 

십자가도 역시 소금 벽을 깍아 새겨 놓았고, 그 소금벽에 금속 성분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 십자가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내가 십자가 안에 들어가다니..... 오 하나님 제가 정말 당신의 고통안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얀 피를... 그것은 땀이었나? 손으로 찍어 맛을 보니 찝찔하다. 주님의 땀인가?

 

하얀 십자가를 등 뒤로 하고 다시 앞을 보니 또 다른 장관이 눈 앞에 펼쳐진다. 발 앞에는 십자가를 허공에 세워 놓았는데 그 십자가 뒤로 검은 공간이 아주 멀리까지 뻗쳐 있다. 저 곳에서 소금을 캔단다. 그러니까 계속 성당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어둠속에서 사람의 형태가 움직이고 가끔 머리부분에서 불 빛이 나는 것을 보아 안전헬멧을 썼으리라.

 

이런 식의 십자가와 소금을 캐는 공간이 몇 개인가 보이고, 그럴수록 번호는 많아져 간다.

어느 곳에선가, 벽에 십자가가 있지 않고 사람이 한 명 겨우 앉을 정도의 조그만 의자처럼 소금을 깍아 놓은 것을 보고 안내자는 우리보고 저것이 무엇인지 알아 맞혀 보라고 묻는다.

우선 앉아도 되는가 하고 물어 보고 난 뒤 그곳에 앉으니 왼쪽 옆에 조그만 구멍이 하나 뚫어 져 있다. ‘아 이곳은 고해성사를 하는 곳이구나’ 그 공간 옆에 신부님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조그만 공간이 있어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조그만 구멍으로 죄와 용서가 오가도록 되어 있다.

 

또 다른 곳은 십자가 이 외에 천사를 조각해 놓았으며, 어느 지역에서는 예수가 태어 나는 장면을 모두 소금 조각으로 만들어 놓았다. 말 구유위의 예수, 요셉, 마리아, 동방박사들, 양들이 모두 하얀 소금이고, 단지 하늘에 매 달아 놓은 천사는 소금이 아닌 것 같다.

이제 성전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계단은 소금이 아니고 모두 대리석이다. 하긴 사람이 많이 닿는 곳은 소금으로 할 수 없겠지. 내려 간 곳에는 유럽의 여느 큰 성당에 못지 않은 아주 큰 내부가 있고 앞에는 천정에서 부터 바닥까지 높이가 족히 20 미터는 될 듯한 대형 십자가가 소금벽을 깍아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그 십자가 뒤에 조명을 해 놓아 십자가를 더욱 경건하게 만든다. 대형 소금 제단이 있고 안내자는 그런 곳에 꼭 전등을 비추어 준다. 빛이 제단을 통과하고 있다. 양 쪽으로 나무로 만든 의자가 길게 두줄로 늘어 서 있으며 매주 미사를 이 곳에서 드린다고 한다. 통로에는 로마에서 본 천지 창조의 모형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이 모형은 소금으로 만든 것 같지 않지만 신의 손이 사람의 손보다 유난히 큰 것이 인상적이고 신과 사람사이에 커다란 균열을 일부러 만들어 놓았다.

 

더욱 인상적인것은 성당의 기둥을 소금을 원형으로 깍아 만들어 놓았는데 그 둘레와 크기가 너무 커서 입이 벌어 질 정도로 장엄하였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데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 지지 않아, 잠시 시간을 달라 하고 의자에 앉아 기도하고 찬송을 혼자 조용히 불렀다.

성전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너무 감탄을 하고 하나님이 인간을 통한 역사를 보면서 그 분의 위대함을 다시 깨닫는다.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 한갖 소금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러한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다니...

 

아무리 콜롬비아의 국교가 카톨릭인 나라이긴 하지만 이런 곳에 성당을 만든다는 것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소금을 더욱 많이 캐내서 그럴 상품으로 만들어 수출하면 경제 발전에 좋은 일일 텐데

 

많은 어린이 소풍객들이 마치 무덤속을 행진하는 사자(死者)들의 모습처럼 조용히 성전을 돌아가고 있고 애들 특유의 재잘거림이 들리지 않는 것은 아마 미리 주의를 주었으리라.

더 둘러 보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고 밖으로 나가면서 팁을 두배로 주었더니 무척 고마와 한다. 받은 은혜만큼 내는 것이니 풍족하겠지.

 

안내자와 헤어져 차를 타러 내려가다가 아무래도 무엇인가를 두고 온 것 같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시야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거대한 작품을 간직하고 싶어 매표소로 다시 돌아 갔다. 혹 안내책자라도 살까하고...

 

그러나 이런 것이 이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지 안내 책자가 전혀 없단다. 영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까지... 아까 안내를 했던 안내자가 주소를 가르쳐 주면 자기가 구해서 보내 주겠단다. 믿지 못하는 일이겠지만 옆에 같이 있던 우리 직원이 명함 한 장을 주었다.

차를 타고 나오다가 입구에 선물가게가 있어 소금으로 된 성당 모형물을 사고 싶어 모두 초라하게 차려져 있는 가게에 들러 나이든 할머니 주인들과 흥정끝에 소금으로 된 십자가를 샀다. 사고 나서도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스로 위안을 해 버린다. 난 외국인이니까...

 

이제 배가 출출하고 점심은 콜롬비아 전통식당에서 하기로 되어 있어 차를 타고 얼마를 나와 엘 뽀르티코 라는 정원이 있는 식당을 찾았다. 아직 사람이 많지 않은 식당은 커다란 농가를 연상시킬 정도로 넓었고, 여기 저기 농기구와 농사일을 하기 위한 축사들 그리고 잘 가꾸어진 정원이 좋았다. 고색창연한 분수대와 오래된 듯한 야외의 식탁에는 깨끗한 식탁보가 덮어져 있어 식당안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야외를 선택했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식당의 점원과 메뉴를 놓고 한 참을 생각한 끝에 같이 간 직원은 엘뽀르티코의 정식을 시키고 난 무엇인지 모르지만 다른 메뉴를 주문했다. 나중에 가지고 온 것을 보니 내 것은 연어 스테이크고 짭짤하니 맛은 괜찮았지만 차라리 고기 스테이크보다는 못했다. 그래도 야외의 신선한 공기는 어떠한 소스보다 좋았고 식탁 옆에서 이름 모를 예쁜 새가 공중에 정지해 있는 채로 날개 짓을 하며 노는 것을 보니 어떠한 멋진 실내 장식보다 더욱 훌륭한 식당이었다.

 

식사후 둘러 본 식당 내부는 아주 전통적인 콜롬비아의 농가처럼 아주 오랜 농기구들과, 포도주를 만드는 여러 도구들 그리고 삐걱거리는 화장실의 문까지 정감이 그대로 손에 묻어 날 정도로 인상깊었으며, 식당의 정원뒤로 돌아가니 넓은 공간이 있어 가축들을 사육하고 소를 모는 농군의 모습을 조각으로 해 놓아, 관광식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어린이를 위한 그네조차도 기능으로서의 그네는 물론이고 그네의 윗 부분을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의 모형을 올려 놓아 친근감이 들게 한다.

 

오랫만에 한 잔의 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콜롬비아에서의 피곤과 업무의 고됨을 잊어버렸다.

 

콜롬비아로 가는 길 (2000. 6. 10)

뉴욕을 지나가며…

 

JFK 공항에서 Newark공항을 찾아가는 길은 초행길이라 인터넷을 뒤져야 했다. 에어포터라는 셔틀버스를 타고 요금은 21불을 지불해야 된다고 표시되어 있으나 공항에 내려 대한항공직원에 물어보니 셔틀버스는 무료란다.

 

희망을 가지고 에어포터 예약하는 곳을 갔으나, 요금은 22불. 인터넷보다 1불이 더 비싸다. 대한항공직원의 실수. 라과디아 공항 셔틀만 무료라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들이 콜롬비아 간다고 했더니 기사가 깜짝 놀란다. 하긴 낮은 코의 동양인이 그 곳으로 가는 것이 흔치는 않으리라.

 

셔틀버스가 이 곳 저 곳 몇 개 공항 터미날을 거치더니 작은 버스에 사람을 가득 실었다. 대충 계산해도 전체 200불이 훨씬 넘는다. 아무리 1시간이 넘어 걸리는 거리라 해도 이만하면 장사 충분히 되겠다.

 

JFK공항에서 Newark 으로 가는 길은 쭉 뻗은 왕복 6차선 도로. 볼거리는 역시 길거리의 차들이다. 수 많은 종류의 차들 그리고 각양 각색 모습의 드라이버들.  이렇게 차가 다양한 모습이니 미국영화 내용 중 자동차는 큰 역할을 차지한다.

 

웃통을 완전히 벗어 던지고 반바지 차림의 덩치 큰 털보가 오픈 짚차를 몰고 가고 있고, 어떤 삼겹살같은 몸매를 가진 녀석은 역시 웃통을 완전히 벗어 던진 채 독일군 병사 헬멧과 까만 선글라스 그리고 등까지 털로 가득 찬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오토바이를 즐기고 있다.

날씨가 더워도 그들은 에어컨을 즐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차들이 차 문을 신선한 공기를 즐기고 있으며, 간혹 BMW 등 좋은 차들은 차 문을 닫고 운전하고 있어 역시나 돈 많은 이들은 어디나 자기 만의 공간을 구축하고 있음을 안다.

 

유난히 여자 운전수가 많고 운전석이 가득 찰 정도로 유난히 큰 몸집의 여자들이 몸을 잔뜩 뒤로 기댄 채 운전하고 있다. 그런 여자 운전사들의 공통점이 운전하면서도 무언가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문득 차창으로 보이는 하얀 리무진, 보통 승용차에 비해 길이가 2배 정도나 되는 기린 목 같은 차가 바로 옆을 지나간다. 가운데 침대하나 들어 갈 정도로 긴 공간, 창이 모두 까맣게 코팅되어 있어 내부는 보지 못하지만, 실내의 모습이 영화에서 본 모습이리라.

 

이 곳 드라이버들의 공통점이 별로 끼어들기가 많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별히 속도를 내는 사람도 없고 모두가 자동차의 물결 속을 천천히 따라 가고 있다. 간혹 거리 한 중간에 고장 난 차량이나 가로수를 정비하는 차량들이 있어 속도가 떨어지는 곳도 있지만, 대체로 막히지 않고 그 많은 차량들이 흐르고 있다.

 

차가 대형 다리를 지나가며, 양 옆으로 강 가의 멋진 집들과 요트를 즐기는 모습들이 한가롭기만 하다. 강둑은 인공의 모습이 없고 강가에는 한국에서는 당연히 있어야 할 음식점이나 횟집들이 없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오른 편은 강이지만 왼 편은 대서양이 분명하다.
끝없어야 할 바다가 수평선에서 끝이 나있다. 아니, 내 시야가 그 곳까지 밖에 닿지 못했으리라.

 

몇 개의 다리를 지나서 도착한 네왁공항. 14년 전쯤 처음 미국에 입국할 때 이 곳을 통해서 밤에 들어왔다. 광활한 대지가 펼쳐져 있었으며 그림같은 집들이 숲 속에 파란 잔디를 앞 마당으로 하고 멋진 차들을 주차 해 놓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하다 못해 우리가 방문한 세계적으로 유명 회사도 당연히 대형 빌딩에 있어야 할 줄 알았지만 그마저 그렇게 푸르름이 가득한 숲 속에 낮게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온다고 태극기까지 앞 마당에 걸어 놓고…
남미쪽으로 가는 비행기의 승객들은 유난히 짐들이 많다. 어떻게 그렇게 큰 짐 꾸러미들을 만들수 있는지, 그 것조차도 신기하기만 하다. 어떤 짐은 포장랩으로 누에처럼 칭칭 동여 매 놓았다.

 

콘티넨탈 항공으로 타자 마자 이륙도 하기 전에 잠에 빠져 들었다.  간간히 눈을 뜨니 대한항공에서 본 똑 같은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식사하라고 깨웠지만 그도 싫다 하고 그냥 자버렸다. 난 지금 한국시간으로 한 밤중이란 말야..

 


보고타 공항에서 …   (2000. 6. 10)

 

비행기가 에쿠아돌의 키토까지 가기에 많은 승객들이 내리지 않고 있다. 조금은 한기가 느껴지는 보고타 공항.  날씨 탓인가. 치안이 위험하기로 세계에서 내노라 하다는 나라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런가?

 

별로 입국하는 비행기가 없는지 입국심사대가 그리 넘치지는 않는다.  입국절차도 대개 컴퓨터로 하는 것이 보통인데 나중에 적으려는 듯 가지고 있는 흰 백지에 적고 말아 버린다. 하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 곳에서 살자고 버티는 외국인은 없으리라.

 

입국수속을 위해 기다리는데 갑자기 노래소리가 들린다. 아니 이런 공항에서 무슨 노래가 들리지? 같이 줄을 서고 있는 현지인이 그 노래를 조그맣게 따라 하고 있다. 입국도장을 찍고 짐 찾는 곳으로 가니, 그 곳에 한 스무명정도되는 젊은이들이 한 편 구석에 진을 치고 앉거나 누워 혹은 서서 기타 반주와 박수를 치며 화음을 맞추어 노래를 하고 있다.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지만 절로 흥에 겨워 어깨가 움직여진다. 짐을 찾기 위해 기다리는 승객, 그리고 공항 내에 안내를 하는 아가씨까지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다. 그 춤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스스로 흥에 겨워 추는 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만약 유교적인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이런 모습을 봤으면 이렇게 말했겠지.
아니? 젊잖게 일을 처리해야 할 공항 직원들의 태도가 왜 이 모양이야?

그들이 왜 젊잖아야 하지?  
좋은 것을 표현할 자유도 없나?
공항에서는 기타치며 노래를 부르면 안되나?
왜 우리 대통령은 그렇게 웃음에 인색할까?

 

그 젊은이들의 노래 덕분에 공항분위기가 상당히 좋아졌다. 모든 사람들이 웃음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의 지나친 생각일까?

카리브해

용인에 있는 그런 인공적인 풀장에 이름만 그럴 듯하게 붙인 캐리비안베이 말고, 지금 중남미에 있는 카리브해에 와 있다.

 

바다는 푸르고 파도가 바로 발 앞에서 커다란 산을 그리며 부서진다. 부산 태종대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파도가 수없이 뻗어진 해변가에서 육지를 향하여 사정없이 돌진하며 포말을 만들어 낸다.

 

이 곳을 카리브해라 했던가?  중남미의 콜롬비아 북부, 파나마, 과테말라, 쿠바 등등의 나라로 둘러 쌓여 있는 바다.  그리고 지금 카리브라는 호텔에서 카리브해를 바라본다. 햐얗고 고운 끝없는 모래밭을 예상했으니 그렇지 못했다. 새까만 모래, 그 곳에 새까만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보고타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바닷가 도시, 카르타헤나. 이 곳에 우리 현장이 있었고, 또 다른 현장을 마련하기 위해 이 곳에 왔다. 비행기가 푸른 초원위를 나르는 모습을 보며 깊이 잠들어 버렸다. 지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인지 밖으로 좋은 경치를 보고 싶지만 눈이 허락치 않는다. 이렇게 내 몸하나도 내가 마음대로 못하니, 앞으로 나이들면 얼마나 더 그렇게 될까?

 

가을 날씨의 도시에서 갑자기 여름으로 오다 보니 자꾸 감기기운이 든다. 공항에서부터 물건 잊지 않으려 무척 조심한다. 워낙에 도난 사고가 많이 나는 곳이다 보니 같이 가는 일행에게도 특별히 주의를 시켜 놓았다.  보이는 젊은 현지인들이 꼭 내 노트북을 든 가방을 가져 갈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야만 하는 곳이 이 곳 콜롬비아다.

 

비행기 창으로 보니 비가 오는 듯하다. 비행기의 후미의 계단으로 내려오는 데 공항 바닥에 물기가 흥건하다. 비가 많이 온 듯하다. 코끝을 스치는 열대의 냄새. 비록 비가 와서 후덥지근하지만 온 몸에 열대의 끈기가 가득하다.  공항에 나와 있는 많은 사람들. 이 곳에서 조만간 남미 정상들의 회담이 있기에 많은 경비원 뿐만이 아니고 마중 나오는 사람들로 공항이 붑석거린다.

 

콜롬비아는 어디를 가나 택시는 약 70 %가 한국차인 것 같다. 대우 르망, 시에로가 많고 현대의 액센트가 주로 택시로 이용된다. 이런 외국에서 대우 시에로를 타고 호텔로 가는 길은 시원한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을 보며 바닷가로 달리는데 배수로 안되어 있어 도로가 물에 푹 잠겨 있다. 도로는 2차선이지만 중앙선이 없어 택시들이 알아서 운전하고 도로의 노면 상태도 안 좋기 때문에 택시는 지그 재그 운전은 어쩔 수 없으며 가끔 말이 끄는 관광마차 (쿠첵)이 앞서 갈 때는 경적도 울리지 않고 알아서 피해 준다.

 

바닷가는 여느 외국도시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호텔 빌딩들이 가득하고 아파트 비슷한 것은 아마 콘도인 것 같다. 우리 현장이 이 곳에 있을 때 직원들이 하루의 일을 끝내고 바로 바닷가에 가서 수영 겸 샤워하고 이 곳 바닷가의 아파트 숙소로 돌아 오는 환상적인 생활을 했단다.

 

흑인들이 장식품을 팔고 있는 건너편에는 커다란 성곽이 보인다. 녹슨 대포들이 바다를 향해 있다. 누구와의 전쟁을 위한 대포인가?  한 눈에 보기에도 성곽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인지 고색창연한 모습 그대로이다. 파랗게 이끼가 끼고 갈색으로 얼룩이 져 있다.

 

이 곳에서 정상회담이 예정되어서인지 길거리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자주 보인다. 바닷가에 있는 카리브 호텔. 아주 고급은 아니지만, 이런 열대 지방의 호텔답게 좋은 수영장 주위에 앵무새들을 키우고 있고 노루들을 방목한다.  아침 식사는 수영장에 있는 야외 식당에서 하는데 까마귀들이 바로 옆에 와서 같이 식사하자고 보챈다.  직원이 빵을 던져 주니 톡톡 쪼며 아침 식사를 즐긴다. 까마귀에도 종달새 혹은 로드런너같이 생긴 새들이 식탁 주위에 몰려든다. 이 곳에 여러 번 온 직원이 하는 얘기가, 식사를 하다가 잠간 자리를 비우면 까마귀들이 그새 식탁 위에 있는 빵을 나꿔 채 간단다.

 

일을 위하여 콜롬비아 정유회사로 가는 길은 바닷가의 빌딩 모습과 전혀 다른 세상이다. 아주 오랜 시골집들이 보편적이고 낮은 주택들이 거의 낡아서 이 곳의 생활을 짐작케 한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사내들은 웃통을 벗고 다니는 것이 꼴볼견인 것 같지는 않고, 여자들도 거의 시원한 옷차림들이다. 사람들의 생활이 거의 비슷하면 가난한 것도 부끄러움은 아니리라. 빵 한 조각으로 살고, 얇은 옷 하나만 있으면 사계절을 나기에 불편이 없으며, 모두다 얼굴이 햇빛에 그을려 까맣게 되어 있으니 굳이 이런 곳에 사는 여자들은 화장에 신경쓰지도 않는다. 그러나 유럽인들의 타고난 노출증은 이 곳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여자들이 유난히 큰 젖가슴을 거의 반쯤 내놓고 다니고 체격이 작은 여자들은 몸의 윗 부분이 거의 유방만 보일 정도이다. 오히려 목까지 닿는 옷을 입은 여자들이 이상해 보일 정도이니…

 

길이 별로 포장되어 있지 않아 고급차들이 눈에 별로 보이지 않고 차선도 없고 중앙선도 없는 길을 다 낡아 빠진 차를 타고 다녀도 그런 차들이 많으니 당연한 것이고 택시 운전사들이 사정없이 앞 지르기를 해도 누구 하나 클랙션을 울리는 사람이 없다. 하물며 모든 집들이 허름해도 내가 살고 있는 집들도 역시 허름하니 비교 시킬 필요가 없겠지.

 

특별히 부유해 보이는 곳이 없는 도시를 한 시간 가량 달리는데 길거리에 유난히 눈에 뜨이는 것은 코코넛 열매. 별로 희소가치성이 없는 열매가 한국에선 귀한 것들이 이곳에선 나무에 매달려서 말라 비틀어 지고 있다.  저 코코넛을 따서 열매 안의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다.

 

일은 일찍 끝났지만 추운 곳 더운 곳을 옮겨 다니는 바람에 업무 내내 콧물이 흐르고 머리가 안 좋기에  아직은 충분히 활동할 시간임에도 침대에서 낮잠에 빠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카리브해까지 와서 바닷가를 안 보고 그냥 가면 섭섭할 것 같아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 나 바닷가를 산책했다.

 

가지고 온 신발이 구두 밖에 없어 구두를 신고 혹시나 아침 바람이 차가울 것 같아 긴 팔을 입고 나가 바닷가를 거니는데 내 모습이 도무지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조화가 안되기에 구두를 벗어 손에 들고 긴 팔 옷은 벗어서 양 어깨에 걸쳤다.

 

파도가 친다. 까만 모래. 진흙처럼 까만 색이지만 모래는 모래다. 발에 닿는 감촉이 너무 좋다.  어제 아침에 잠간 바다에 나왔을 때 건장한 흑인들이 바다에 그물을 끌어다니는 듯 양 옆으로 긴 밧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으나 오늘은 마침 그들이 다 끌어 올린 그물을 볼 수 있었다.

 

배 위에 풀어 놓은 그물에는 바다 해초와 함께 온갖 고기가 뱃전에 가득하다. 그 중 눈에 뜨이는 것이 큰 갈치들. 그리고 병어같이 생긴 열대고기, 전어나 붕어같이 생긴 고기들, 게,그리고 별로 내키지 않는 듯 조그만 오징어 같은 것들은 갑판으로 내 던진다.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그 고기들을 보며 입 맛을 다셨던지..

 

사진을 찍고 싶어 옆에 있는 흑인에게 보디랭귀지로 사진 좀 찍어 달라 했더니 답변이 ‘No’. 갑자기 머쓱해졌다가 다시 다른 백인에게 부탁해서 사진 하나 찍었다.  백로가 그 흑인 어부 옆에서 같이 놀고 있는데 흑인들은 역시 그런 예의 범절같은 것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지 백로 옆에서 등을 보이고 길게 배설하고 있다.

 

바닷가를 산책한다. 양발 벗고 신발 벗어 들고, 바지 올린 뒤에 흙같은 모래 밭을 거닌다. 파도에 밀려 온 물결들이 발을 간지럽히고 그 끝을 잡을라 치면 바닷속으로 얼른 다시 도망가 버리다가 다시 내 발을 건드리고..

 

산책하는 중에 계속 흑인 잡상인들이 와서 치근덕거린다. 과일 사라, 목걸이 사라, 어느 여자 흑인이 와서는 마사지 하란다. 마사지? 혹시 불순한 의도는 아닐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모래밭에서 선탠하기 위한 마사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바닷속에 할머니들이 속옷을 입은 채로 기분을 내고 있다. 이른 아침인데도 물이 별로 차갑지 않으니 할머니 뿐만이 아니고 몇 몇 사람들이 물 속에서 아침 수영을 즐기고 있으며 사람 키 높이로 몰려 오는 파도를 등으로 떠 받히고 있다.

 

끝없이 긴 타원형의 바닷가에 많은 사람들이 산책과 아침 운동을 즐긴다. 지나 가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아침 인사를 한다. ‘부에노스 디아스’ ‘부에노스 디아스’ 나도 세계 시민중의 한 사람이다.

 

쓰레기가 많지 않고 바닷가의 모래밭은 너무 고와 조약돌 하나 조차도 보기 힘들다. 진흙같은 모래밭을 몸으로 뒹굴며 몸에 모래를 묻히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보인다.

 

내가 돌아 갈 곳은 어디인가?

카르타헤나 산토 도밍고.

카리브해를 끼고 호텔로 가면서 옆에 성곽이 있길래 단지 성곽만을 보존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 성곽안에 커다란 도시가 들어 가 있다. 실로 몇 백년 전의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고 그 안에는 대통령의 궁 같은 것이 있어서 오늘 같이 국가적인 행사가 있는 날에는 성벽에 창을 들고 서 있을 파숫군들이 긴 기관단총, 철모와 군화를 신고 성벽에 10 미터 간격으로 경비를 서고 있는 그 안에 있는 건물들에 식당과 선물가게들이 즐비하다.

 

택시를 타고 저녁식사를 위해 간 곳은 산토 도밍고. 옛 건물들 사이에 광장이 있고 그 광장에서 노천 식당이 널려져 있다. 식당의 종업원들이 부지런히 자기들 자리로 오라고 소리치지만 이미 정해진 곳이 있어 어느 골목을 찾아 들어가지만 도무지 식당들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몇 몇 옷가게도 실내에 옷 몇 개를 놓고 장사를 하고 있고 많은 집들의 문들이 굳게 닫혀 있는데 안내하는 현지인은 잘도 찾아 간다. 어느 레스토랑 같지 않은 집으로 들어가니 그 안에 조그만 테이블과 몇 손님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다.  

 

무척이나 지적으로 보이는 여 주인이 끈이 있는 큰 안경을 쓰고 주문을 받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면 생글 생글 웃는 모습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이렇게 주문 받는 것 조차 외국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런 것도 상품의 하나인데 우리 나라는 거의 모든 식당이 이런 면에 너무 소홀하다. 먹기 싫으면 관두라는 태도들, 왜 우리 식당에 와서 나를 괴롭히느냐는 표정들, 내가 주는 대로만 먹으라는 불친절, 굳이 특별하게 메뉴에 없는 것이나, 준비되지 않은 것을 시키면 무조건 안된다라고 하는 비장인정신 등…

 

아무래도 바닷가에 왔으니 해물이 제격일 것 같아 해물 종류를 알아 보니, 오징어, 바닷가재 등 별로 가지수가 많지는 않지만 요리 방법이 다양하다. 그 요리 방법을 하나 하나 설명해 주는데 현지어로 하다 보니 같이 간 현지인이 그것을 다 통역해 준다. 그래도 귀찮은 기색없이 설명하고, 통역해 주고..  너무 좋은 사람들.. 어떻게 이런 사람들 사이에 게릴라가 있고 반군이 있다는 말인가?

 

서양요리는 재료보다 어떻게 요리하였느냐가 더 중요하다.  메뉴도 주로 요리한 방법이 요리 이름이 되고 이런 것들을 잘 모르면 자칫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되어 나올 수가 있다. 스테이크도 Well done을 시키면 너무 딱딱한 스테이크가 되어 나오기에 나는 항상 Medium Rare를 시킨다. 스테이크는 조금 부드러워야 맛이 있으니까..

 

소스를 곁들인 조그만 오징어가 먹음직스럽고, 매콤하게 만든 바닷가재가 입 맛을 돋군다. 해물덮밥을 시켰더니 같이 있던 직원이 쌀이 톡톡 튀긴다고 시키지 말란다. 난 그게 좋은데..

 

한국식당에 있는 요리 이름. ‘GEDUPBOP’ ‘GEMULCHIKE’  자칫 스페니쉬를 모르면 개덮밥, 개물찌게같이 보이지만 스페니쉬로는 단어의 첫 G는 H로 발음하니 회덮밥, 해물찌게로 읽어야 한다.

 

다음 날 다시 저녁을 위하여 산토 도밍고를 찾았다. 이번에는 노천광장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와 있던 직원이 잘 가는 식당인듯 어느 자리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리를 잡고 말았다. 앉자 마자 옆으로 모이는 거리의 악사들. 기타하나 둘러 메고 홀로 혹은 여럿이서 노래를 주문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훌륭한 기타 솜씨들, 전통적인 라틴 음악, 남성들의 씩씩한 음성 그리고 쾌활함들이 이 들의 노래 속에 잘 나타내 보인다. 이 곳은 멕시코의 엘 마리아치 같이 전통적인 복장이나 당연히 있어야 할 바이올린 트럼펫 등의 악기 구성들은 상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악사들이 너무 많이 몰려 들어 사양하기에 바쁘고 악단 뿐만이 아니고 사진사, 구두닦이, 선물장사 등등 잠간 앉아 있는 동안에 수없이 옆에 와서 우리를 유혹한다.  왜 껌장사는 없을까?

 

5명이 앉아서 4인분을 시켰는데도 주인 아줌마는 상관없는 듯 그 뚱뚱한 몸매가 활짝 웃는 모습으로 주문을 받는다. 이런 낙천적인 매너는 어느 국민성에서 나오는 것일까?  한국에서라면 반드시 얼굴을 찡그리며 마지못해 주문을 받거나 혹은 1인분 더 시켜야 한다고 강매할텐데…

 

눈을 들어 주위를 바라 보니 내가 어느 유럽의 고성 가운데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긴 이 곳도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니 유럽문화나 다름없지.  하이델베르그의 어느 광장이 생각나고 이태리의 어느 식당이 생각난다.  

 

꼬치 요리, 오징어, 닭고기 그리고 게의 다리만 요리한 것으로 무척 맛있는 올리브기름으로 살짝 튀긴 마늘 빵과 함께 저녁을 즐긴다. 음식이 맛있는 것 뿐 만이 아니고 주위의 사람들, 이국의 풍경, 음악이 있고, 신기함이 있어 더욱 즐거운 저녁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이 있었으면 합창이라도 한 번 했을텐데 못내 아쉬웠다.

 

이런 곳에 특히 도둑들이 많다고 같이 간 현지인은 우리들 보고 조심하란다.  자기도 그런 경험이 있다면서 잃어 버린 후 현상금을 걸고 찾았더니 그 다음날 돈만 없어진 채 되돌아 왔단다.

 

많은 사람들이 이 환상적인 공간을 메우고 있다. 만약 이 곳에서 노래를 불러 본다면 어떨까?  아마 사방이 고성으로 둘러 쌓여 있어 좋은 반향이 나올 것 같은 생각만 한다.  노래를 주문한 어느 손님 앞에 4인조 남성 보칼이 열심히 노래를 불러 주고 있다,  베사메 무쵸, 콴타라메라 라 팔로마 등등..  아마 노래를 주문한 이는 외국인이리라. 그렇게 흔한 노래를 주문하는 것을 보니..

 

대략 한 번 주문하면 서너 곡은 들려 주는 것으로 보인다. 어디선가 그리 능숙하지 않은 기타 소리가 들려 보니 장발의 외국인이 가로등 아래서 혼자 흥겨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결코 남미 음악 같지 않은 노래를…  저 사람이 내가 가지고 싶은 기분을 내고 있다.

 

광장 옆에 특이한 선물가게가 있어 들어가보니, 각종 장식용 총과, 옛날의 기마병들 드리고 기사들이 사용했음직한 칼, 방패, 투구 등을 판매하고 있다.  투구를 들어 머리에 써보고 칼을 들어 보니 어찌나 무거운지 예전의 기사들은 힘이 아주 장사였던 것 같다. 장식용으로 사고 싶었지만 총이나 검 같은 것들의 운반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진즉에 포기해 버리고 만다.

 

비싸지 않은 식사비를 서로 나누어 내고 호텔까지 쿠체 즉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쿠체를 식당아줌마를 통해 호텔까지 가는 것으로 예약을 하고 우리가 선물가게에 들어가 한참의 시간을 지체했는데도 마음착하게 생긴 쿠체의 마부 아저씨는 한참을 기다려 주다가 결국은 안되겠는지 선물가게에 들어와 갈 것이냐고 묻는다. 고마운 아저씨같으니라고..

 

직원들보고 서둘러 쇼핑을 마치라 하고 마차에 올랐다. 따가닥 따가닥, 밥 공기로 말 발굽소리를 만들어 내는 특수 효과같은 고성의 바닥을 걸어 다니는 말발굽 소리가 너무 정겨워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수 백년 전 저런 말발굽소리와 함께 스페인이 이 땅을 점령한 후 이들의 피는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동양인보다 훨씬 더 못생긴 원주민들이 서양 사람들과 피를 섞고 난 뒤는 무척이나 훤칠한 키와 골격으로 남미의 모든 것이 유럽 사람들의 그것과 다름없이 되어 버렸다.  

 

쿠체가 시원하게 뻗은 해변가 도로를 천천히 달린다. 옆으로는 빠르게 지나가는 택시들, 자가용들…  천천히 가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길가에 한가롭게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자세히 보이고 성곽의 바위 하나까지 자세히 볼 수 있어 좋다.

 

이 곳의 젊은이들의 사랑표현은 직설적이라 사람이 옆에 지나가도 애인한테 사랑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대 부분 가벼운 입술 키스 혹은 볼키스에 불과하다.

 

이렇게 천천히 가는 인생을 즐기고 싶다. 길 옆에 있는 나무들, 바다에 부서지는 파도들의 물거품 그리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차근 차근 바라 볼 수 있는 인생의 여유를 가지고 싶다.

 


4번째 콜롬비아 여행

 

어느덧 벌써 콜롬비아도 네 번째 방문이다. 뉴욕에 도착하니 콜롬비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른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마침 업무 협의 차 나온 미국회사 직원의 차로 뉴욕의 맨하탄거리를 점심시간쯤에 한가운데를 관통하여 지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가로막힌 빌딩 숲사이로 쏟아지는 직장인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나르고 좁은 거리에 양 옆으로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차 들 때문에 차가 도저히 속력을 내지 못한다. 거기다가 맨하탄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지하 차도입구에 한 없이 늘어서 있는 차들.  이러다가 비행기 놓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앞서고..

 

뉴욕은 사람들이나 건물이 과거 현재가 동시에 공존하는 것 같이 보인다. 고색창연한 건물과 첨단 과학으로 지어진 빌딩이 나란히 어깨를 마주 대하고 있다.  이 곳에 전 세계의 돈의 흐름이 거세고, 문화와, 정치 그리고 세계의 인종 또한 사회문제까지의 거센 소용돌이가 빌딩 숲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네왁공항에서 보고타 행 비행기를 타니 잠이 물밀 듯 쏟아져 온다.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잠이 들고, 어렴풋이 내가 공중에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잠결에 보니 옆에 외국인이 열심히 잠에 빠진 나를 위해 무언가를 챙겨주고 있다. 간식거리, 식사까지…  썰렁한 보고타 공항에 도착하니, 벤츠가 기다리고 있다. 아마 현지 일본 상사의 지사장 차이리라.

 

도착하자 마자 첫 날은 그냥 호텔에서 푹 자버리고 말았다. 이번 여행시의 호텔은 이제껏 묵었던 호텔과는 조금 차이가 있고 방에서 마음대로 인터넷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가뜩이나 외출이 힘든 곳에서 인터넷이라는 친구를 찾은 셈이다.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TV 채널이 국한되어 있어 콜롬비아만 오면 즐겼던 클래식 음악방송이 전혀 나오지 않고, 영화도 메뉴가 적어 볼거리가 없는 것이 흠이다.

 

깨끗하게 다리어 왔지만, 오랜 여행 속에 쭈글 쭈글하게 변해버린 와이셔츠를 껴 입고 아침부터 현지 동업자의 방문을 맞는다. 큰 키에 허연 머리, 말쑥한 신사. 마치 영화의 어느 주인공처럼 생긴 이와 업무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변호사와 오후 내내 일을 했다. 첫 날부터 야근을 시작하고 지속되는 출장의 야근. 피곤의 연속이다.

 

주말에 더욱 일이 바빴다. 나야 휴일에도 일할 수 있지만, 현지인에게까지 일을 시켜야 하는 내가 조금 미안했다. 그것도 밤을 새워 일을 하니 운전기사는 할 일없이 나를 기다려야 했고, 사무보는 비서아가씨는 복사라는 단순 노동을 위해 자신의 휴일을 희생해야만 했다.

거리의 모습도 예전과 다름없고, 차만 서면 달려드는 장삿군들과 걸인들도 다름이 없다. 단지 한가지 틀린 점이 있다면, 그렇게 신호등앞에서 과일, 기호식품, 이동전화 충전기, 복권등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게도 일정한 룰을 주었는지 모두 노란 복장에 노란 모자를 쓰고 있다. 아마 노란 색상을 선거시 모토로 내세운 새 대통령의 측근이 착안한 아이디어일까? 콜롬비아 하면 노란색부터 떠올리게 한다.

 

낮에 현지인이 점심을 무엇을 먹겠느냐는 질문을 하며, 한국음식이 먹고싶지 않느냐고 묻기에 정통 콜롬비아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하여 이름도 ‘티피코스(전통적)’이라는 레스토랑을 찾아 자리도 일부러 거리에 나와 있는 쪽을 택해 점심시간의 오피스 빌딩사이의 풍경을 본다. 간간이 비가 내리더니 음식을 주문하고 난 뒤에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서둘러 둘이 테이블을 들고 처마 밑으로 피한다. 그래도 외국에선 이렇게 야외식사가 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이다.

 

뜨거운 철판위에 잘게 찢어지는 부드러운 쇠고기, 그리고 조그마한 감자가 나왔다. 같이 식사하는 현지인이 한국에도 이런 감자가 있느냐 물어보기에 우리도 물론 있다 하고 감자를 찍어보니 아차, 색깔이 틀리구나. 이 감자는 속까지 노랗다. 없다고 할걸…

 

옆의 식탁에서 회사원으로 보이는 아가씨들이 진을 치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늘씬한 다리들, 멋있게 꼬나 문 담배, 어느 것 하나 거리낌이 없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점심을 찾아 나서는 직장인들이 무척이나 밝은 모습이다. 유니폼을 입은 사원들은 거의 없고, 모두가 단정한 옷차림들이다. 그러나 그 들이 찾아 나서는 식당 옆의 거리에는 허름한 옷 그리고 푸석한 머리의 인디언들이 걸인의 행태로 역시 꾀죄죄한 애들을 데리고 동정을 구하고 있다.

 

이렇게 두가지 다른 모습이 동시에 한 장소에서 보이는 곳이 콜롬비아이다. 벤츠와 BMW등 고급 승용차를 자주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다 쭈그러지고 녹이 슨 시내버스가 마치 잠수함의 잠망경같은 대형 머플러를 뒤에 매단 채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곳이기도 하다.

규정상,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은 등에 오토바이 번호판을 크게 새겨 붙인 노란 조끼를 입는데, 경찰들은 그래도 깨끗한 조끼이지만, 다른 시민들은 대부분이 색이 바래고, 지저분한 조끼들을 입고 있어, 아무리 윗도리를 깨끗한 옷을 입고 있어도 오토바이만 타면 조끼 때문에 거리의 미관을 상당히 해치고 있다.

 

마치 진화가 덜 된 원숭이의 두골을 닮은 듯한 잉카인의 모습은 주로 청소부나 길거리의 장삿군이고,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유럽형의 얼굴들이 사무직들이고 속칭 엘리트들이다. 그들이 모두 콜롬비아인이고, 그 들이 한 사무실에서 현격한 차이를 두고 일을 하고 있다.

몇 백년 전 유럽에서 건너 온 이민족에 의해 나라를 지배당한 것도 서러운데, 고유의 얼굴모습까지 뺏겨버리고, 이제는 삶의 터전까지 뺏겨 버렸다.

 

일을 늦게 끝내고 호텔로 돌아가는 밤길은 여전히 어두웠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현지인들의 모습도 쉽게 보여지지 않는다. 내 선입견일까?  내가 이 사람들을 너무 나쁜 사람으로만 보는 것일까?  실제로 콜롬비아의 인상을 더럽히는 나쁜 치한들은 불과 몇 명 일텐데, 그 몇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을 경계하고 있다.

 

어느 날 호텔로 같이 동행한 현지인이, 이 곳의 어느 지역은 차를 타도 위험함을 강조한다. 차를 강탈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명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더욱 졸아드는 것은 아직도 내가 여행꾼이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혼자 피식 웃어 본다.

 

마침 호텔이 대형 쇼핑센타와 연결되어 있어, 혼자 저녁을 먹기 위해 찾은 곳은 쇼핑센타내의 먹자코너였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먹자코너의 한 중앙에 롤러 스케이트를 탈수 있도록 플로어가 마련되어 있고, 그 둥근 둘레에 각종 음식점이 온갖가지 메뉴를 사진으로 내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메뉴이름만 봐서는 무슨 음식인지 전혀 모르지만, 음식 사진만 보고 메뉴를 정할 수 있으니 이런 것을 보면 우리의 음식점 문화도 바뀌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외국인이 많이오는 인사동에도 갈비탕이 무엇이고, 된장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지 않은 채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니 잘 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각 레스토랑 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메뉴를 내어 걸고, 그 중 맛있게 보이는 스테이크의 사진을 내건 집으로 택해 음식을 주문하니 영어는 하나도 모르지만, 그래도 통할 것은 다 통한다. 고기는 미디움으로 해달라, 마실 것은 무엇을 달라. 등등…어차피 미국으로 갈 때 입국 신청서가 한글로 되어 있어도 입국심사하는 미국인이 대충 양식의 위치만 보고 무엇을 적었는지 아는 것처럼…

 

음식을 주문받는 종업원의 모습이 미소가 가득차서, 음식을 먹기도 전에 이미 음식을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미소도 하나의 맛을 내는 재료일텐데 우리네 얼굴 근육에는 그게 익숙하지 못해서, 마치 왜 우리 식당에 와서 나를 괴롭히느냐는 식의 종업원들의 매너에 늘 불만이다.

 

숯불위의 커다란 석쇠위에서 익어가는 고기냄새들이 온 식당가에 가득하다. 주로 가족단위로 나온 사람들이 눈에 많이 보이고, 연인들끼리 다정스레 음식을 주문하다가, 남자가 좋은 것을 주문했는지 여자가 남자에게 사례(?)의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며, 감사와 사랑의 표현이 늘 몸에 배어 있는 외국인들이 부럽기만 하다.

 

식당 중에 마침 아랍식당이 있어, 양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대감으로 찾아 갔지만, 양고기는 이 들의 식성에 맞지 않는 듯, 소고기를 케밥처럼 해서 팔고 있어 아쉬웠다. 몽고식당의 음식은 너무 짜게 먹은 기억이 있어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월요일 오전에 일을 모두 마치고 오후에 시간이 있었지만, 지난 밤에 밤을 새워 일한 피로가 누적되어 할 수 없이 호텔에서 문에 간섭하지 말라는 팻말을 내 걸고 낮잠을 즐겨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언제 방 청소하게 해 주겠느냐는 호텔종업원들의 전화, 그리고 잘 못 걸려온 전화들이 나를 편하게 놔 두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으로 떠들썩하기에, 통신으로 관련 뉴스를 읽어 보면서 혼자 눈물 짖는다. 이렇게 부모님, 그리고 형제들과의 정이 절절한데 이데올로기로 인해 헤어져 있어야만 하는 이산가족들의 아픈 가슴과 사연들이 평소에 안구건조증으로 충혈된 내 눈을 오랜만에 눈물로 충혈되게 만들었다.

 

이번 4번째 콜롬비아 출장은 오로지 일만하다 돌아왔다. 호텔 밖에 어슬렁거릴 시간도 없이, 당초 멕시코를 방문하려던 계획도 포기하고 호텔방에만 파묻혀 있다가 귀국길에 올랐다.

 

콜롬비아의 공항의 공항세를 매번 40불 넘게 물어왔는데 이번엔 요령이 생겨, 짧은 기간동안 체류한 외국인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곳에 가서 확인서를 하나 받아오니 24불로 해결할 수 있었다. 같이 동행하는 직원에게 몇 번이나 짐 주의할 것을 강조하고 짐을 늘 다리 사이에 두라고 강조했다. 워낙 분실사고를 많이 당하는 곳이라, 특히 노트북이 들어 있는 가방은 날치기꾼들의 주요 표적이다.

 

콜롬비아 자국 비행기인 아비앙카를 타니 좌석이 발을 마음대로 편하게 뻗을 수 있는 바로 비상구 옆이다. 거기다가 비행기 문의 구석에 보니, 전기를 이용할 수 있는 콘셋트가 있지 않은가?  이건 횡재다. 일등석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일반석에서 누릴 수 있다니... 노트북의 전기를 꼽고 한창 사용하니, 승무원이 와서 경고한다. 전압이 틀리고, 헤르쯔가 틀린데 괜찮겠느냐고… 걱정말라고 안심시키고 노트북과 함께 지루하지 않은 여행을 즐긴다.

 

옆좌석의 할머니가 노령에도 불구하고 두터운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는지 저절로 고개가 숙으려 진다. 나에게 영어로 인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젊었을 때는 상당한 인텔리였을 것 같다. 비행기가 멕시코의 유명한 휴양지 칸쿤을 경유해 갔지만, 아쉽게도 밖의 풍경은 보지 못했다.

 

귀국 일정을 변경하느라 현지 일본상사에서 티켓팅을 새로 했는데 제대로 예약이 되어 있다는 말만 믿고 확인을 못한 것이 큰 실수. 지난 번 출장에 이어 또 한 번 콜롬비아 여행사의 어처구니 없는 사무처리에 당황했다. 내가 가는 날자의 미국-한국구간이 웨이팅으로 되어 있다. 서둘러 전화로 확인해 보니 자기들이 잘 못했다고 시인하며, 웨이팅으로 해서 가는 수 밖에 없단다.

 

요즘 방학이 끝나가는 때라 좌석잡기가 힘들텐데, 걱정이 앞선다. 에라, 안되면 미국에서 올해 일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 미국에서 친구 집에 머물며 여름휴가나 써 보자.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스스로 위안하고, 미국도착하여 본사에 전화를 걸어보니 제대로 예약을 해 놓았는데 콜롬비아의 여행사에서 예약된 것을 취소하고 또 바꾸었단다.  점점 조급해지고 내 입은 투덜거림이 자연스럽게 발산되며, 만약 비행기를 못타면 어쩔 수 없이 늦은 밤에 친구보고 나오라 하지도 못하고 인근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하는 구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LA 공항 대한항공 카운터에서 지배인에게 취소된 예약번호를 주며 대한항공 보고타지사의 사무처리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니, 대기자 명단에 제일 선착으로 해 주어 다행이 비록 불편한 자리지만, 비행기에 탑승하고 지난 일주일 동안 먹어 본 적이 없는 한국음식을 먹기 위해 평소 기내에서 먹지 않던 비빔밥을 시켰지만 역시 아니올시다 였다.

 

'해외여행기 > 미주방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휴스턴  (0) 2013.12.05
캐나다 뱅쿠버 가족여행  (0) 2013.12.05
미국 가족여행  (0) 2013.12.05
미국 배낭여행  (0) 2013.12.05
멕시코  (0) 2013.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