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중동방문기

쿠웨이트

carmina 2013. 12. 5. 16:59

 

1997. 2

 

담당 업무가 바뀌어 올해는 별로 해외여행의 기회가 없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마침 지난해 마무리 못지은 일이 다시 생겨 별로 힘들이지 않고 다시 여행의 기회가 생겼다.

 

여행이란 말은 늘 맘을 설레게 한다. 그것이 국내여행이던 혹은 해외여행이던간에 떠난다는 기분은 소풍을 떠나는 국민학생같다..

 

여권에 새로운 비자를 받고 도장찍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여러나라를 다니고 있고 같은 나라도 몇번째 다니고 있어 그다지 신선한 감이 생기진 않지만 그래도 떠나는 맘하나 만으로도 설레이는건 늘 똑 같다.

 

이번에는 늘 가던 방콕을 거쳐서 가는 방법이 아닌 바레인으로 가는 길을 택하기로 하고 예약을 의뢰하니 마침 가능하다. 바레인을 거쳐서 쿠웨이트로 가는 길은. 일주일에 두번 정도있는 기회라 맞추기가 어려웠었다. 태국을 거쳐 가면 너무 피곤하고 쉬지도 못하고 계속되는 여행. 그리고 서비스가 훌륭하지 못한 쿠웨이트 항공을 타는게 늘 못마땅 했는데 . 바레인에서 체류시간이 길진 하지만 호텔까지 무상으로 제공되니 차라리 이편이 낫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양화대교가 공사중이라 그런지 무척 막혀 있어 골목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여 어렵지 않게 도착하고 한산한 Check-In Counter에서 다정한 말 한마디로 Economic좌석을 Business로 바꿀수 있었다. 장시간의 여행은 비지니스가 한결 편하다. 다리를 다 뻗어도 충분한 공간이 있어 편히 잘수 있고 서비스도 좀 나은 편이다.

 

바레인을 가는 이 비행기의 종착지는 카이로이고 단체 여행객이 대부분 나이가 있고 고생을 별로 안한 나이 지긋한 탑승객의 모습을 대충 보건대 아마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떠나는 목사님들인것 같다.

부부동반에 겸손이 몸에 배인 모습까지...

 

그러나 그들도 식사시간에 한잔의 와인은 주님의 피흘리심을 느끼고 싶으신건가 혹은 교회를 떠나왔다는 안도감때문에 생긴 종교인으로서의 외도인가?

하나님계시는 하늘이 땅에보다 더욱 가까운데 조심하세요.

 

기내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그 날의 영화 프로그램을 본다. 오늘은 미시시피의 유령과 어느 개인날 이라는 두편의 영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영화라 시큰둥하고 음악프로그램은 대충귀에 익은 레퍼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스칼리랏티, 슈만, 바하의 바이올린 콘서트 크라이슬러, 그리고 쇼팽의 폴로네이즈가 반갑다. 또한 멘델스존의 이탈리아도 있어 마치 유럽여행을 떠나는 착각을 갖게 한다.

 

언젠가 KLM을 탔을때의 그 화려한 레퍼터리들을 가지지 못하는 대한항공의 음악편성이 아쉽고 그러한 클래식 음악이 도외시되는 우리네 풍토가 아쉽다.

 

한잔의 스크류드라이버에 기분이 좋아지고 바로 이은 식사에 더블로 시킨 와인으로 즐긴 갈비찜정식과 디저트로 나온 종로복떡방의 우리나라 떡 몇조각이 무척이나 나를 기분좋게 하고 기내에서 노트북으로 두드리는 여행기록작성도 더욱 신이난다.

 

김포공항의 청사내 면세코너가 모습을 달리했다. 그러나 아직 공사중이라 그런지 아직 어둠침침하고 물건도 늘 똑 같은 것들이라 그냥 지나치고만다. 해외현장에 있는 친구들을 위해 국산 담배를 구입하였고 그 친구들을 위하여 회사근처에서 누룽지를 사서 가방에 넣었으니 안심이다.

 

비행기는 고도 10000 미터를 날으고 있다 외부온도 영하 37도씨.
지금 한창 중국영토위를 날으고 있다. 아직 중국을 못가보았다.
물론 홍콩이나 대만은 가끔 둘러보았지만 중국이라는 나라의 그 신비함.

 

공산주의에 수 많은 세월을 지내다 이제 자본주의로 바뀌어 가는 그들의 생활상을 보고 싶다. 혹자는 2000년대에 중국이 막강한 노동인력과 저렴한 노임을 자원으로 하여 경제적으로 천하를 지배할 것이라 하는데 난 그 반대 생각이다. 우리 나라가 70년대에 전세 비행기를 동원해 중동에 인력을 실어 나르며 외화를 벌어들일때 누구나 앞으로 몇년안에 한국의 경제력이 곧 일본을 추월할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경제의 또 다른 면을 생각하지 않은 추측이다.

 

바로 인간중심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은 발상. 즉 인간은 어느 정도 편해지면 일하기 싫어하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경제적으로 어느 수준에 오르면 누구나 잘 아는 3D현상이 생기고 그때부터 경제는 정체 혹은 퇴보를 하게 마련이다. 마치 현재의 우리 국민들같이. 중국또한 그럴 것임에 틀림없다.

 

기내 대한항공 잡지에 마침 한국의 50년대 생활상을 그린 기고가 있어 관심있게 읽어보았다.

검지로 소금을 찍어 양치질을 하고 겨울이면 토끼털 귀마개를 가지면 최고의 부자로 알고 애들을 제대로 멕이지 못하니 밥먹고 뛰어 다니지 말라하고, 배 꺼진다고, 검정고무신이 찢어지면 자전거 튜브를 잘라 고무풀로 붙여 신던 어린 시절. 만화방에 가면 1권부터 시작하여 30권까지 이어지는 만화에 혹하여 매일 만화방을 기웃거리면서 라이파이 몇 편 나왔어요 하는 어린시절의 추억들이 무척이나 그립다.

 

우리는 자주 그런 얘기를 한다.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얘기나 스타일을 쌍팔년도 식이니 혹은 쌍팔년도 이야기니... 그 쌍팔년이라는 말의 어원이 무엇인가.  1955년은 단기로 계산해 4288년이었다 그래서 쌍팔년이라 한다. 그 당시에는 단기를 사용했으니...

 

하긴 그 해는 내가 태어나기 바로 전 해이다. 부모님에게서 늘 듣던 말의 어원을 오늘 기내잡지에서 찾고는 새로운 것을 알았음에 그 또한 기분이 좋다.

 

출장다니면서 늘 노트북을가지고 다니는 편인데 한가지 불편한것은 노트북의 밧데리가 비행시간을 견뎌내지 못한다는데 있다. 전기 공급없이 잘 써야 두시간 정도. 기내에는 전기코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하는데 아직 그런 곳을 이용할 형편도 못되고 어제밤에 야근후 하이텔 고음동번개에 참석하고 늦게 출장준비하느라고 무척이나 피곤했는지 영화 한번 흘낏 볼 여유없이 식사후 그냥 잠들고 말았다. 영화를 두편이나 상영했을텐데 그것도 모르고 긴 시간을 편한 의자에 앉아 단잠을 잤다. 만약 이코노미클라스에 앉았으면 이렇게 하지도 못했을텐데..

 

주위가 밝아져 눈을 뜨니 비행기는 파키스탄위를 날으고 있고 시계는 한국을 떠난지 벌써 9시간이 넘었다. 앞으로도 1시간 40분정도를 더 가야 한다.

 

파키스탄을 가 본지도 무척 오래 되었다. 기억속에는 도심을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까마귀떼, 그 나라의 전통 결혼식, 슬리퍼를 신은 발가락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주던 엘리베이터걸이 아닌 할아버지. 공항에서 다짜고짜 짐을 뺏으며 밖에까지 들어주고 팁을 달라하던 아이들. 허름한 그네들 사무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주 고급스러운 차를 타고 다니는 일부 부유층들. 벤츠, BMW등이 길거리에 많이 보이지만 거리의 대부분이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 릭샤라 하던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맨발로 열심히 그 바퀴를 굴리는 운전사의 모습이 애처로왔다.

 

이런 긴 여행에서는 기내 스튜어디스들이 고생이 이만 저만 아니다. 오늘은 그래도 여행객이 별로 없어 조금 덜하지만 특히 태국을 오가는 비행기라던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는 비행기내의 아줌마 아저씨 여행객들의 갖가지 주문이 그들을 무척이나 괴롭힌다.

 

공짜라면 무조건 더 달라하고 고쟁이 차림으로 다녀서 스튜어디스들이 설득하느라 애쓰기도 하고 ... 제일 안스러운 것은 식사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지저분한 것들을 주으러 다닐때 왜 그리 불쌍하게 보이는지...

외국비행기의 스튜어디스들 처럼 좀 당당하게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타고난 국민성이 여자는 부엌일을 해야하고 여자는 겸손해야 한다는 관념에 그렇게 교육을 받고 일을 시키나 보다.

비행기는 지금 두바이를 지나 페르시아 만위를 날으고 있다.

 

이곳 중동에 몇번이나 오갔던가? 기름으로 얼룩진 나라 수천년간 변하지 않는 나라 메마른 사막에 보물이 가득 묻혀져 있는 나라, 외부로의 개방을 가급적 억제하고 자기들 나름대로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나라. 드 넓은땅에 어느날 기름이 고갈되면 그 곳이 모두 옥토로 변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나라. 그것도 자신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그들의 유일한 신인 마호멧의 의지로 그렇게 변한다고 믿는 그들. 그건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잠시후 기장의 도착안내 방송이 있고 11시간여의 비행이 일단 페르시아만의 섬나라 바레인에 기착한다. 조그만 나라 바레인은 중동국가에서 유일하게 음주가 허락되는 나라이다. 그래서 사우디와 바레인간의 긴 국경다리에는 목요일만 되면 술을 즐기려는 사우디인들의 차량행렬이 꼬리를 문다고한다. 겉으로는 안그런척 하면서 그네들 집에는 양주가 그득하다는 소문이 늘 있고 그걸 확인한 사람들도 많다. 공항에서 호텔 쿠폰을 얻느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다 보니 일단의 한국인 무리들과 섞이고 그들의 대부분이 사우디로 가기위해 잠시 기착한 사람들로 보인다. 법무부 심사대를 통과하려는데 공항세를 내란다. HALF DINAR (0.5 디나) 디나는 없다하니 그럼 미화 2불내란다. 아차 드디어 걸렸구나 늘 여행시마다 잔돈을 거슬러 다니는데 이번에는 방심했다. 집에도 출장다녀 온 후 잔돈을 보관하여 놓았다가 다음 출장때 다시 가지고 나가는게 보통인데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무언가를 잊어먹고 가는 구나 하는 미련이 바로 이거였구나.

 

은행에 가서 돈을 바꾸면서도 설마 잔돈이 필요하랴 하고 생각했는데..

50불짜리 밖에 없다하니 다시 들어가서 잔돈을 바꾸어 오란다. 난처해 하고 있는데 마침 뒤에 있는 한국인이 빌려드릴까요 하면서 0.5디나짜리 지폐를 내민다. 아이고 자랑스런 우리 한국인 어디가나 정이 있어서 같은 민족고생하는걸 못보니... 이걸 한국돈으로 얼마정도 되냐고 물어보니 약 1500원이라 하길래 지갑에서 2000원을 꺼내드렸다.

 

지난번 바레인 기착시 잠시 묵었던 라마다 호텔에서 잠시 쉬기로 하고 호텔을 들어가니 새벽 2시 10분, 쿠웨이트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3시간뒤에 공항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공항의 딱딱한 의자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보다 잠시라도 샤워를 할수 있고 침대에 누울수있는 것이 백번 낫지. 방에 들어가자마자 잠을 청한다. 그러나 쉽게 잠이 오지 않고 자꾸 눈이 떠지는 것은 기내에서 마신 커피때문일까?

 

비몽사몽간에 눈을 뜨니 새벽 3시 그러다 다시 잠들기를 애써 이리 저리 뒤척거리는데 모닝콜이 울린다. 새벽 4시. 아직도 한 시간의 여유가 있지만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파 욕조에 물 가득담고 물 비누를 잔뜩 풀어 거품을 잔뜩 내고는 푹 들어가 온 몸에 스며드는 온수로 피곤을 푼다. 그리고 프론트에 연락해서 4시 반에 아침을 로비에 준비하라고 일러 놓고 시간이 내려가니 나 혼자만을 위하여 로비에 식사를 준비해준다.

 

먹자. 여행은 먹어야 남는 법. 빵에 버터와 잼을 듬뿍 바르고 계란스크램블, 소세지 소고기 약간 삶은 콩, 오렌지쥬스, 홍차로 배를 실컷 채웠다. 호텔에서 공항으로 가는 바레인의 아침거리는 왜 그리 깨끗한지. 어쩜 이렇게 종이하나 비닐 하나 휘날리지 않을까. 길가와 중앙 분리대의 갖가지 꽃들이 무척이나 정겹게 보이지만 바로 눈을 멀리하면 사막밖에 보이는게 없다. 차는 배가 정착되어 있는 바닷가를 지나고 어느 로타리에는 커다란 매의 조각품이 마치 금방이라도 주인의 휘파람 소리만 들리면 하늘로 날라 갈것 같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중동사람들은 매를 무척 좋아한다. 그것도 사냥매를..

 

한국건설 야화에 사우디에 대형 공사수주를 노리는 어느 한국업체가 사우디의 국왕이 한국매를 갖고 싶어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본국에 매의 공수를 요청하여 갑자기 한국의 외무부 건설부등에 비상이 걸리고 겨우겨우 강원도의 어느 산골에서 훈련된 매를 수배하여 동물통관의 까다로운 절차를 무시한 공수작전끝에 사우디 국왕에게 무사히 전달한 댓가로 큰 공사를 수주한 기록이 있다..

 

휴일이라 그런지 어느 거리의 술집에는 아직도 사람이 들락거린다. 중동인들의 전통적인 하얀 원피스복장인 채로 술잔 앞에 놓고 재즈반주에 맞추어 춤을 추는 무희들의 모습을 보는 장면은 얼마나 격에 안 맞는지 한참 속으로 웃은적이 있다. 이게 고정관념이라 그런가?

 

아침공항이라 무척 한산하다. 면세코너에서 씨디피를 하나 사려고 가격을 물어보았더니 역시 여기도 비싸다. 차에서 듣기 위해 필요하긴 한데...

 

걸프에어를 타니 기내 스튜어디스들의 옷차림이 특이하다. 특히 머리에 컵같이 생긴것을 얹고 그 위에 보자기 같은 것으로 머리에 길게 내려뜨린 모습은 금시라도 왼손에 접시를 든 채 밸리 댄스 (배꼽춤)를 출 것같은 영화속의 의상이다.

 

아까 제대로 잠들지 못한 피곤이 한꺼번에 엄습해온다. 기내에서 간단히 제공되는 아침식사도 마다하고 다시 잠에 빠져 들고 말았다. 50분이라는 짧은 비행에 불과하지만 잠시 눈을 붙이고 눈을 뜨니 비행기는 하강하고 몸이 상쾌하다. 방콕을 거쳐서 오면 지금 이 시간 피곤이 극치에 다달을 시간인데...

 

비자를 찾으니 예약된 호텔의 명찰도 같이 준다. 음 직원이 나오지 않고 호텔에서 차가 나오는 구나. 그것도 괜찮지. 휴일날 아침에 공항마중나오는게 늘 미안했는데. 오늘은 금요일 이곳의 휴일이다. 모든 이슬람국가들은 금요일이 일요일이다. 구약성경에 금요일이 안식일인것으로 되어 있다고 얘기는 들었는데 맞는지 모르지만 ...

 

법무부심사대에 줄지어 있으니 옆에 있는 동양인이 인사를 한다. 니 하우?

중국인이네. 영어로 답변하니 내 모습에서 어떤 냄새를 느꼈는지 내가 이곳에서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의 공사를 하는 회사의 사람이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를 건다. 그래 맞다. 그럼 넌 뭐냐. 나도 널 알것 같다. 이곳에서 중국인회사가 큰 유전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 아니나 다를까 내 짐작도 맞았다. 반가이 이런 저런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 받으니 주거지는 캐나다라 한다. 중국인치고 인텔리네. 알아두면 나중에 쓸모가 있겠다.

공항청사를 나오니 후끈한 열기가 금방 코에 닥아오고 주차장의 콘크리트바닥이 가스렌지위의 후라이판처럼 뜨겁게 달구어 있다.

 

시원하게 뚫린 길을 지나는 도로옆에는 야자나무를 심는 노무자들이 이 뜨거운 날에 일을 하고 있다. 중동국가들의 푸른 빛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다. 사막에 나무를 심고 갖은 방법으로 그 나무를 살릴려고 애를 쓴다. 대개 저절로 두면 다 말라 죽어버리기 때문에 모든 도심지의 나무주위에는 스프링쿨러가 있고 잔디를 무척이나 정성스럽게 키운다. 물은 바닷물을 끌어들여 소금기를 뺀 후 그 물을 이런 경작용이나 목욕물로 사용하고, 식수는 대개 사서 먹기 때문에 기름값보다 물값이 더 비싸다. 우리나라도 지금 그 지경에 와 있다.

오붓한 호텔로 들어선다.
 
 

쿠웨이트에서의 추억 2

지난 몇 시간 동안 기내에서 푹 자두었는데도 졸음이 쏟아진다. 방안의 TV를 켜니 CNN이 제일 먼저 켜 지도록 SETTING 되어 있고 볼 프로그램이 마땅치 않은걸 뻔히 알면서도 이리 저리 채널을 돌려본다. 이 곳 중동중에서도 쿠웨이트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스타TV가 들어오고 영국의 BBS방송도 가능하니 외국의 소식을 많이 접하는 편이다. 특히 중동에서는 스타TV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여성에게 가장 폐쇄적인 나라에게 개방의 기운이 서서히 움트기 시작하는 커다란 도구가 되었다

 

이곳 쿠웨이트는 물론이고 전 중동국가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노동력이 인도인 필리핀 파키스탄인 그리고 네팔인들이 주종을 이룬다.

 

그중에서도 인도인과 필리핀은 조금 고급인력이고 파키스탄 네팔 그외에 방글라데쉬 스리랑카등은 거의 몸으로 때우는 노동력들이다. 현지 쿠웨이트인은 거의 관리하는 역할에 불과하고 늘 3국인이 일해서 번 돈을 수금해 가는 역할만 한다. 쿠웨이트 법이 외국에서 들어와 일하는 모든 영업행위들은 반드시 쿠웨이트의 에이전트를 사용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 들은 에이젼트 역할 만으로도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어들인다.

 

쿠웨이트는 경기도 만한 땅에 인구가 200만정도를 헤아리지만 외국인의 수는 거의 5배정도이다. 그중 70 프로가 인도인이라 테레비 방송도 인도인 시청자를 배려하고 있다. 홍콩에서 만든 스타TV를 인도에서 인수하여 스타TV에서 주로 방송되는 뮤직비데오 프로그램은 인도인들이 제작하고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인도음악은 정말로 섹시한 리듬에 뮤직비데오는 무척 선정적이라 정말 모든 인도인이 저렇게 생활하나 할 정도로 의아해 하지만 실제 인도인에게 물어보면 인도인은 저렇게 남들앞에서 선정적으로 춤추지 아니 한단다.

마치 북한에서 대중매체에 늘 춤추고 웃는 얼굴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듯이 인도도 그렇구나 하는 인상을 풍긴다.

 

지난 번 비데오테이프를 하나 구입할려다 송출 방식이 우리나라의 NTSC가 아니고 PAL방식이라 포기한 적이 있다. 물론 전환이 가능하긴 하지만 돈이 들어서...

 

음악을 들으면 잠시 잠에 빠져드니 현지 지사장이 전화를 날 깨운다. 오늘 주일이니 (이곳은 금요일이 주일이다) 교회가잔다. 1시예배니 12시 반에 데리러 가겠다고...

 

이곳 한인 교회는 쿠웨이트 국가에서 허가된 교회다. 모든 이슬람 국가들이 타종교의 집회를 엄격히 금지하는데 이 곳에서 특히 이 장소에만은 예외다.

 

이곳 한인 교회가 있는 곳은 한국인만 예배를 드리는 곳이 아니고 같은 건물에 시간대별로 다른 민족이 예배를 드린다. 한국예배전에는 인도의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12시 반에 끝낸다. 그럼 다시 자리를 정돈하고 1시부터 한국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우리가 끝나면 또 다른 민족이 예배를 드리고...

 

이곳에 교회가 허락된것은 사연이 있다. 약 40년전에 어느 미국인의사가 이곳에서 의료봉사를 오랫동안 하고 국왕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는데 어느 날 고국으로 돌아 갈때가 되어서 국왕이 그 의사에게 부탁할 것 있으면 말해 보라고 해서 의사는 내가 일하던 그 자리에 교회를 세우게 해 달라고...

 

국왕은 무척 난처하였다. 그건 코란의 율법에 어긋나고 코란이 곧 국법인 이슬람 국가에서는 왕이 국법을 어기는 상황이 되니... 할수 없이 승락은 했지만 단지 울타리 쳐진 그 장소에서만의 집회가 허락되고 다른 곳에서의 집회는 일절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많은 외국인들이 마음대로 소리내서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는 곳이 허락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교회를 가기위해 날 데리러 온 지사장의 차를 타니 이건 완전히 한증탕이다. 뜨거운 태양열에 잔뜩 달군 철판아래 있으니 오죽하랴. 그러나 에어콘 시설이 좋은 볼보는 금방 서늘한 냉기를 내뿜고 차는 하얀 도로를 달린다.

 

내가 중동을 하얗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이들이 입은 흰 옷때문만이 아니고 대지의 모래와 주로 대리석으로 집을 짓고 빌딩은 짓는 이들의 오랜 전통이로 보이는 것은 모두 하얀 것 일색이다. 그래서 가끔 한국에서도 이상한 날씨가 있는 날이면 중동을 생각하게 한다.

 

이곳에 4번째 방문이라 교인들의 얼굴도 눈에 익다. 미리 모여서 성가대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느 고등학생이 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준다. 오늘이 어버이 주일이라고...

 

집을 떠나오던 날이 5월 8일 아침이라 우리 작은딸애가 종이로 만들어준 카네이션이 아직 주머니에 있는데...

늘 목사님의 느린 말투로 시작되는 예배를 보면서 주보를 보니 북한 선교에 교회가 힘쓰고 있다. 이곳 쿠웨이트에는 약 2000명정도의 북한 노무자가 엄격한 감시하에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고 교회에서는 그 들을 간접적인 방법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는지 매번 이 선교를 강조한다. 그래서 그런지 몇달 전에는 쿠웨이트에서 노무자 한명이 우리 나라에 귀순한 적이 있다.

 

헌금시간에 갑자기 애들이 줄을 맞추어 들어와 앞에 정렬하고 잠시 후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그 뒤에 선다. 아마 오늘이 어버이 주일이라 특송을 하려는가 보다. 어린이 찬송을 율동에 맞추어 가면서 하는데 그 애들중에는 혼혈아가 몇 명 보인다.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 자녀들이리라.

그리고 찬송에 이어지는 어머님 은혜의 합창. 나도 따라 하였다.

예배후 빵과 커피를 같이 하며 나의 출장을 반기는 교우들이 내가 빨리 간다하니 무척 섭섭해 한다. 가끔 올때 특송을 한 적 있어서인지 노래좀 하고 갔으면 하는 섭섭함이다.

 

오랜 해외생활에서 한국인들의 유대관계는 독특하다. 교회를 통하지 않으면 한국인들과의 만남이 어렵다. 모든 행사도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 지고 교회를 통해서 애들 교육도 시킨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인이 두 가정만 있으면 교회가 하나 생긴다. 가끔 한 지역에 있는 한국교회들이 갈등을 보여 현지인에게 빈축을 사기도 하지만... 외국에서의 교회의 존재는 한국인에게 마치 쌀과 김치의 역할과 같다.

 

예배후 사무실에 들어와 일을 하려니 배가 고프다. 아침을 너무 이른 새벽에 먹어서인지 허기가 져서 인근 식당으로 나가니 한낮에는 이곳 사람들의 낮잠시간이고 기도 시간이라 음식점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슈퍼에서 사온 우유와 일본 라면으로 허기를 때운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무실에서 어둠이 올때까지 일하다가 저녁에 또 허기를 느껴 본격적인 저녁 사냥에 나선다. 멀리 갈 여유가 없어 바로 빌딩옆의 가게를 가니 양고기 집이다. 그 옆에는 중동지역 특유의 빵인 호부츠를 굽는 화덕이 있는 가게가 있고... 호부츠는 밀을 통째로 갈아 만든 빵으로 모든 이슬람국가에서 주식으로 통한다. 구약시대부터 먹던 음식이다. 아브라함이 먹고 야곱이 먹고 요셉이 먹고 모세가 먹고 그리고 예수가 먹고 바울이 먹던 빵이다.

 

그 양고기집은 내가 이전에 먹어보지 못한 특이한 고기를 팔고 있다. 양머리. 그것도 고기만 썰어 파는게 아니고 양머리를 통째로 삶아 손님앞에 내 놓는다. 손님들은 주로 허름한 서민들이고 마치 우리 나라의 돼지 머리고기가 서민들의 음식인 것처럼 이들도 그런한가 보다. 자리에 앉으니 늙으수레한 점원이 무얼 먹겠느냐고 음식이름은 모르니 옆에 사람이 먹는걸 손으로 가리킨다. 저걸 달라고.. 옆에서 양머리를 먹고 있던 사람이 나에게 엄지 손가락을 위로 들어 올리면 정말 맛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 사람이 먹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가관이다.

 

이곳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때 포크나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는다. 모두 손으로 먹는다. 그것도 오른 손으로만 왼손은 지저분한 손이니.. 화장실가서 일을 보고 종이 대신 해결하는 손.

음식을 왼손으로 먹는 것 더러움의 극치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먹는 모습을 볼작시면 오른 손가락으로 양의 머리 구석구석을 뒤져 고기를 파내서 그대로 입으로 들어간다. 마치 우리가 감자탕을 먹을때 돼지 뼈속에서 고기를 파내듯이 그렇게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더욱 재미있는 것은 양의 눈을 먹는 모습이다.

 

나에게도 양 머리가 배달되었다. 호부츠와 스프와 양머리 하나.

차마 손으로 먹기에는 음식에 너무 젖어 있어 포크로 고기만 골라 먹기로 한다. 양의 이빨이 그대로 있고 새까만 눈알이 뜨거운 국물에 푹 녹아 흐물흐물 한 눈동자를 본다. 이걸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 고민.

우선 고기만 골라 먹고 털이 그대로 있는 부분이나 골은 그대로 두자. 이상한 부분이 보인다. 이게 무언가? 머리 모양을 생각하니 이건 혓바닥이네.

 

이걸 먹어? 말어? 조금 끄트머리를 잘라 입에 넣으니 별로 맛이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 머리를 구석구석 뒤져본다. 에이 먹을건 하나도 없네. 저 친구들은 잘도 빼서 맛있게 먹었는데....

 

이 글을 읽는 이들이 나보고 야만인이라 하겠지. 그러나 생각해보소. 여러분들은 돼지 머리 안먹소? 소 내장 생선 내장은 그냥 버리나? 닭발은 어떻고? 소 간 소 등골은 얼마나 맛있는지...

두째날은 종일 일로 바뻤다. 낮엔 피자헛으로 간단히 때우고 저녁은 이란 레스토랑가서 역시 호부츠와 물감드린 쌀로 만든 밥과 시스케밥을 즐겼다.

 

시스케밥은 양고기 꼬치라 생각하면 맞다. 살로만 가득한 양고기는 전 세계인이 즐기는 음식이다.

너무 피곤해 두째날은 그냥 골아떨어져 버렸다.
세쨋날의 일은 아무래도 귀국해서 써야겠다.
다니면서 본것들을 할 말이 아직도 무척 많은데....
 
 

쿠웨이트에서의 추억 3

 

한낮에 차를 타고 다니면 무척이나 한산한 거리의 모습을 볼수 있다. 거리라는 것은 사람을 위한 도로가 아니고 차를 위한 도로이니.. 길에서 걸어다니는 사람은 모두 얼굴이 새까만 이민족들이다. 온도가 높다 보니 사람들은 땀을 흘릴 여유도 없다. 땀이 나오자 마자 모두 말라 버릴 정도이다. 처음에 현장을 방문했을때 화장실이 없는 것이 이상해 물어보니 이 곳 노무자들은 화장실을 안간단다. 내가 갸우뚱거리며 이상하게 생각하니 땀으로 모든 체내의 배설물이 증발해 버리니 소변이 안나온단다.

 

쿠웨이트에는 빌딩이나 담 벼락에 노란 나비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이는 몇년전 이라크로부터 침공당한 후 생겨진 것으로 이라크의 포로가 된 동포들을 잊지 말자고 하는 기념물이다. 하긴 이라크도 억울하긴 하겠지 옛날엔 이라크의 한 주에 불과했던 쿠웨이트가 서양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독립한 후 버젓이 잘 살고 있으니 약올를만 하고 그 나라에서 석유가 많이 나니 그걸 차지하면 경제에 많은 도움을 주겠거려니 하는 욕심에 침공했다가 지금 이 곤욕을 당하고 있지 않는가?

 

이 나라 민족 아니 전 이슬람 민족의 성격이 대부분 비슷하지만 거의 게으르고 자기 일을 제 시간에 다 못하거나 제대로 끝내지 못해도 전혀 미안해 하는 기색이 없다. 내가 그 일을 다 하고 못하고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고 알라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은 다반사이고 무슨 말을 하였던간에 서류로 남겨 놓지 않으면 나중에 오리발 내미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느 나라의 호텔에나 로비에는 관광안내를 위한 팜프렛이나 관광안내소가 있기 마련인데 중동에는 이런것이 없다. 관광할 것도 없고 그런 놀이 문화 혹은 시간때우기문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라곤 사막밖에 없고 특히 잘 꾸며 놓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외국인은 알아서 찾아 다니고 알아서 시간을 때워야 한다. 이 들에게 관광수입이라는 것은 국가 재정에 별로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살기 때문에 그런 곳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하면 다른 나라보다 기름을 더 많이 파내서 많이 파느냐 하는 걱정밖에는...

 

호텔방에 비데오 프로그램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그건 너무 야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니까 안된다. 자국의 TV 프로그램은 단지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혹은 기도장면을 내보내는 정도에 불과하다. 가끔 연속극이라고 틀어주는 것은 이집트에서 수입해 오는 것 같은데 집밖으로 등장인물이 나가지 않는 무척 단순한 연속극들이다. 음악회에 출연하는 오케스트라나 가수들은 악보를 보고 연주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 국악 판소리나 사물놀이가 악보없이 연주하듯이 이들도 어떤 정해진 틀에서만 연주를 한다.

 

판소리만큼이나 많은 바이브레이션이 주종을 이루는 이곳 중동의 음악은 따라하기 무척 힘든 음악중의 하나이다. 이들에게 음악또한 별로 가치있는 것이 아니므로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 길이나 동네에서 전혀 음악이 들리지 않는 나라. 애들이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우지 않는 나라. 이 들이 아는 음악은 단지 천주교 미사시 집전 신부가 낭송하는 듯한 읊조리는 듯한 리듬의 코란밖에 없다.

 

떠나오던 날 점심을 호텔 부페에서 했다.

부페를 정하는 방법에는 몇가지가 있는데 우선 전코스를 다 선택하거나, 혹은 찬음식만 먹을 수 있는 코스 혹은 뜨거운 것을 먹을 수 있는 코스 혹은 스프를 곁들일 수 있는 코스등 각각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있다. 찬음식은 주로 야채와 생선등이고 뜨거운 것은 주로 육류이다.

 

식사후 나를 태우기 위해 지사의 현지인을 호텔앞으로 몇시까지 오라고 얘기하고는 호텔앞에 서서 기다리는데 전 세계의 내노라 하는 차량들이 속속 식사를 위해 도착한다 벤츠는 물론 BMW 캐딜락, 쿠페, 카프리스, 재규어 각종 스포츠카 등등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차량들이 앞에 와서 섰다 주인들을 내려놓고 가는것을 보다보니 저쪽에서 마치 이곳으로 들어오면 안 될것 같은 허름한 승용차 하나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앞에 영어의 H자가 비스듬히 새겨져 있는 우리의 현대 소나타. 어쩜 그렇게 한국에서는 폼나는 차가 이 곳에서는 초라하게 보이는지... 왜 그리 우리차는 세련되지 못할까? 난 그차를 타야한다.

 

평소 느려터지기만 하는 이 민족의 발걸음은 차만 타면 그 느려터진 성격이 완전히 돌변해 버린다. 물론 교통질서를 안지키는 것은 아닌데 속도감을 즐기려는지 고속도로에서는 거의 환상의 질주를 한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모든 차는 시속 120 키로를 넘게 달리면 저절로 경고음이 계속 울린다.

 

그러나 그 경고음은 늘 무시하고 달린다. 단속하는 경찰도 많지 않고 좋은 차가 그렇게 늦게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치 영화속에서나 볼수 있는 드라이버솜씨도 좋은 차가 아니면 불가능하리라. 죽는 것은 어차피 알라신이 정하는 것이니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사고도 잦다. 그리고 고속으로 달리니 사고나면 거의 치명상이다.

 

이 곳은 그래도 덜한 편이지만 사우디는 길거리에 버려진 차량이 수없이 많다. 타다가 조금 이상하면 그대로 길가에 차를 버려두고 찾으러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차를 끌어가는 견인차도 없다. 차는 그냥 그 자리에서 썩어버리고 도시의 흉물이 되지만 그걸 마음대로 건드리면 범법자 취급을 받는다. 어느 일본의 종합상사가 사우디 정부에 제안을 했다. 사우디 전역에 방치되어 있는 모든 버려진 차량들을 수거해 가고 그 댓가로 수도인 리야드에 전철을 공짜로 지어주겠다고 했으니 사우디 정부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남자들의 얘기중에는 반드시 차에 관한 얘기가 들어가야만 한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게 많다. 쿠웨이트에는 유난히 카프리스라는 차량이 많다. 이는 어느때인가 국왕이 이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차가 굴렀는데도 안다쳤다고 해서 이 차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로는 땅이 넓어서인지 로타리가 많다. 그래서 바로 앞에 목적지를 두고도 한참을 돌아가야 할 때가 많다. 우리같이 신호등앞에서 빨리 출발할려고 조금씩 앞으로 가는 사람들은 없지만 차가 좋은 점을 이용해 신호가 바뀌자 마자 마치 100미터 달리는 운동선수처럼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전속력으로 스타트를 하는 운전자들은 많다. 거의 중앙 분리대가 차선 하나만큼 존재하고 직진신호에 좌회전 유턴이 모두 가능하다. 성격이 급한 운전자들은 좋은 차를 이용하여 그 중앙분리대를 억지로 넘어 반대편 차선으로 가는 사람도 간혹 있다.

 

이곳에서는 여자의 운전이 허락되지만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에서는 여성 운전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가 택시를 탈때 운전자 옆에 타면 거의 창녀 취급을 받는다. 남자와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 안도기 때문에... 이들은 남자와 여자 두명만이 갇힌 공간에 있으면 당연히 섹스를 하는 것으로 생각이 굳혀져 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탈때도 여자 혼자 타고 있을때 남자가 혼자 타면 실례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그 여성이 이슬람 국가의 여성이라면 당연히 피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여자가 둘이거나 혹은 남자가 둘이라면 그건 개의치 않는다. 여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간 완전히 형무소 감이다. 이슬람 여자들은 거의 다 까만 차도르를 걸치고 다니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여자들도 있다. 부족에 따라 얼굴 전체를 가리고 다니거나 혹은 눈만을 내놓고 다니거나 하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차도르를 걸치는 것은 남자들이 하얀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중동 여자들에 관해서는 별도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너무 할 얘기가 많아서...

사무실에서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기위해 바지를 내리고 무심코 앉았다가는 낭패를 당한다. 화장실 엉덩이 받침이 물에 젖어 있기 일쑤이니... 나는 오늘도 당했다. 이 곳 이슬람 민족은들은 대변후 휴지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대개 물로 처리한다. 화장실에는 거의 수도호스가 변기 바로 옆에 있어 대변후 그 수도 꼭지를 뒤로 해서 항문을 닦는다 그때 왼손을 사용한다. 그러니 변기덮개가 늘 젖어있다. 하긴 물로 세척하는 것이 더 위생적이긴 하다.

 

요즘도 우리나라에 비데가 많이 사용되니... 물로 세척한 후 남자들은 대개 화장지로 물기를 닦아 내는 것이 아니고 그냥 팬티를 입는다. 이들은 삼각팬티를 입지 않으니 팬티가 물에 젖을 염려도 없다.

우리랑 반대인 생활 습관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이들은 손가락으로 하나둘을 셀때 우리는 엄지부터 세지만 이들은 새끼 손가락부터 접으면 센다. 그러나 하나를 셀때 자연적으로 구부러지는 그 다음 손가락때문에 둘을 센건지 하나를 센건지 잘 구분이 안된다.

 

글을 쓰는 방향도 반대이다. 우리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쓰지만 이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그러나 숫자를 쓰는 순서는 우리와 같다. 공책을 사면 우리는 앞에서 부터 사용하지만 이들은 뒤에서 부터 사용한다. 돈을 셀때도 우리는 자기 앞으로 세지만 이들은 앞으로 내어주면 세거나 혹은 돈이 묶여 있을 때는 옆의 길이가 짧은 면으로 세는데 그 세는 방법이 특이하다. 글로 표현하기가 조금 힘든 모습이다.

업무를 하다보면 인도 사람들을 자주 만나 얘기를 하는데 인도인들은 우리의 승락표시가 고개를 아래위로 흔드는 반면 인도인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이 예스의 표현이라 내용을 잘 듣지 않으면 거부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의사전달이 완전히 잘 못 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여가를 보내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그냥 있는다.

중동사람들보고 여가를 어떻게 보내느냐고 물어보면 말 뜻을 이해 못한다. 그들은 여가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리니... 사람이 사는데 여가라는게 무슨 필요가 있나. 그냥 시간되어서 움직이면 되는 건데...

 

아침에 일어나기전 기도하고 해가떠서 기도하고 물담배 하나 피고 시간되어 직장에 나가 주위의 동료들에 가서 한담이나 하다가 점심시간되면 기도하고

조금 지나면 날이 더워지니 집에가서 낮잠자야 하고 오후 6시경 일어나 또 기도하고 또 해가 지면 기도하고 저녁에 어슬렁 거리면서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TV나 보다가 그냥 잠들면 되는 거지.

 

친구들과 오랫만에 만났다고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이 있나 술을 먹는 사람이 있나 주말이라고 어디 다른 지역이나 위락시설을 찾을 일이 있나. 우리같이 시시때때로 영화보러 다니고 혹은 길거리 쏘다니고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미국의 유명한 아놀드 슈발츠네거나, 브루스 윌리스 데미무어, 키아누 리브스를 이야기 하면 웃고 만다. 마치 그런 것은 어린애들이나 하는 대화거리처럼...

 

이들과는 이야기 하지 말아야 할 주제들이 몇개 있다. 종교얘기, 여자얘기 왕을 비난하는 말등.. 특히 종교얘기는 일단 대화는 시작하는데 만약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다보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급기야는 험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한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도 기독교인으로서 나의 주장을 굽히기 싫어 예수의 구세주 되심을 강조하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피력하고자 하였으니 그들은 오로지 마호멧만이 최후의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전에 온 선지자들, 물론 예수를 포함하여, 혹은 그 후에 온 선지자들은 아무가치도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상대방이 믿는 것을 전적으로 부인하니 대화가 안되는게 당연하다. 하물며 두 사람이 만나도 이러하거늘 국가가 혹은 민족이 서로 종교가 대립되면 전쟁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쿠웨이트에서 출국하는 비행기는 늘 한 밤중 그것도 자정이 넘은 시간에 있기 때문에 호텔에서 가능한 늦게 CHECK-OUT 하고 그 이후 시간에는 쿠웨이트에서 근무하는 현장의 숙소에 가기로 하였다. 그간 일했던 것을 정리하고 간식으로 사놓았던 것들은 현지 종업원에게 주고 비행기로 부칠 짐 그리고 내가 가지고 가야 할 짐을 챙긴다. 들고 가야할 가방엔 컴퓨터 하나만 넣기로 하였다. 틈틈이 글을 쓰고 싶어서 ..

 

현장숙소는 사무실겸 숙소겸 사용하는 아파트인데 방에 들어가보면 황량하게 책상하나 침대하나뿐이다. 그래도 이곳은 조금 나은 편으로 과거에는 현장의 모래밭에 가건물을 지어 놓고 몇 년간을 살곤 했다. 이곳 중동은 특히 시간을 보낼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직원들은 별일 없는 한 업무시간 후에는 정말 부지런 하지 않는 사람이외에는 TV시청이나 책을 읽는 일로 긴긴 저녁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건강을 생각하고 남보다 조금 부지런한 사람은 인근 호텔의 수영장 테니스클럽 헬스클럽 혹은 골프연습장의 회원권을 구입해 늦은 시간까지 땀을 흘리는 직원들도 있다.

 

과거에 한국 기능직들이 중동에 많이 근무할때는 인근 타 한국사의 직원들끼리 운동경기도 하고 고국에서 정기적으로 보내오는 TV연속극 비데오를 시청하고 캠프내에 귀국 선물코너들이 있어 종일 캠프내에 있거나 외출해도 한국인을 위한 장삿군 등 거리를 쏘다니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젠 그런 즐거움이 사라진지 오래다.

 

요즘 중동현장에는 거의 관리직 몇 명만 송출하는 정도이고 공사는 대개 제 3국인을 직접 고용하거나 혹은 전문 인력송출회사에서 제공받는다. 한국노동자들의 임금을 가지고는 이제 경쟁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현재 주로 사용하는 제 3국인은 인도, 필리핀, 네팔, 파키스탄 등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노동력을 사용한다. 이들에게 한달 지출하는 돈은 대개 숙련공이 월 500불정도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노동자들이 이런 곳에 일하면 월 5000불을 달라할 것이다.

 

현장숙소의 주방장은 한국인이 아니고 아프리카의 가나에서 온 사람이다. 우리 회사가 가나에 공사가 있을때 현지 직원들이 한국음식 만드는 것을 많이 훈련시켜서 이젠 한국음식이라면 부족한 재료를 가지고도 어느 한국의 음식점 주방장 못지않게 맛있게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이 가나인은 어디 새로운 현장이 생기면 서로 데려갈려고 현장소장들끼리 쟁탈전을 버린다.

 

현장직원들에게 먹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관심거리이다. 만약 먹는게 마음에 안들면 그 불평이 다른 일로 표출되고 급기야는 소장과 직원들의 대화와 신뢰에 아주 심한 장애가 생긴다. 소장은 일보다 직원들이 먹고 자는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야 하고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도착한 날의 저녁식사는 닭국수였다. 어디서 구입했는지 한국의 잔치국수에 닭살을 찢어 넣어 맛이 무척 담백하다. 김치는 양배추로 담근것이 있어 얼핏 보면 한국 김치와 생김새가 같지만 자세히 보면 양배추인것을 알게 된다. 김치 찌게는 참치를 넣어 맛을 냈다.

 

며칠만에 밥 한공기 먹어 보았다. 내가 식성이 좋아 음식을 안가리는 편이고 아무 현지 음식 혹은 빵 한조각이로도 충분히 끼니를 해결하는 편이라 외국 출장시에는 남들처럼 한국음식이 먹고싶어 고추장을 가지고 다니거난 혹은 라면을 사가지고 나가고 체류시에도 일부러 비싼 한국식당을 찾는 적이 없다. 그러나 귀국하는 날의 첫음식은 흰 쌀밥에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특히 중동지방을 여행하고 난 뒤 제일 먹고 싶은 것은 김치찌게 그리고 소주 한 잔이다.

 

언젠가 해외출장 후 돌아왔더니 아내가 불고기 구이를 해 놓았다. 내가 투덜대며 외국에 있을때 밤낮 먹는게 소고기인데 한국에 오자마자 또 이걸 먹어야 하느냐는 말을하고 난 후부터는 메뉴가 바뀌었다.

 

집에 전화를 했다. COLLECT CALL을 하고 싶었으나 이곳은 이런 단어조차 모른다. 전혀 SYSTEM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쿠웨이트는 자국인이 사용하는 국내 전화는 무료다. 도시가 하나밖에 없기때문에 도시 코드도 없고 그냥 국가 코드 뿐이다. 그러나 해외전화는 무척 비싸다. 처음 이곳에 왔을때 전화비를 잘 모르고 집에 전화한번 했다가 그 바가지 요금에 혼줄인 난적이 있다. 해외전화사용자는 주로 외국인이니 외국인들은 돈을 많이 쓰고 가라는 심보이다. 아내에게 무엇 가지고 싶은게 있냐고 물었더니 벌써 미리 계산해서 한국에서 그 비용만큼 옷 사는데 썼으니 아무것도 사오지 말란다. 애들도 마찬가지 차라리 한국에 와서 자기들이 가지고 싶은 것을 사달라 한다. 이제는 아빠가 선물 사오는 게 별로 탐탁히 않은 모양이다.

 

하긴 외국나와도 이젠 애들이나 아내에게 선물을 사 줄만한 마땅한 것이 없다. 대개의 제품들이 별로 일상생활에 도움이 안되고 자주 해외에 나오는 편이니 늘 메뉴를 바꾸기도 어렵다. 내가 사고 싶은 크래식 음반도 아무리 환율을 계산해도 한국이 싸다. 특히 씨디는 복제품이라 해도 음질에 차이가 없으니... 특히 내가 주로 후진국만 출장을 다니니 이런 클래식에 관련된 제품을 찾기도 어렵다.

 

숙소의 사무실에서 출장 온 김에 직원들에게 컴퓨터에 관한 것들을 이것 저것 가르치고 컴퓨터를 대충 손보다 보니 밤이 늦었다. 밤 10시에 현장숙소를 나와 공항으로 가는 밤길을 간다. 오늘 밤은 모든 중동국가의 상징인 초승달이 지평선 낮게 걸려 있다. 이곳에서는 적십자 기호가 다른 국가처럼 새빨간 십자가가 아니고 저 초승달이다. 중동에서는 달을 그릴때 꼭 초승달을 먼저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다.

 

한적한 고속도로 운전자가 자꾸 조는 것 같은 인상을 풍겨 혼자 노래하고 헛기침을 자주 했다. 혹 내가 비행기를 못 탈지도 모르니 인도인 운전수에게 숙소를 나설때 내가 보딩패스 받을때 까지 지키고 서 있다 돌아오라는 배려가 고마왔다. 워낙 동양인을 우습게 아는 중동인들이라 가끔 예약 확인을 하고도 왕왕 비행기를 못타는 경우도 많다 한다.

 

이 시간대에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는 종착지가 마닐라 인지라 필리핀 사람들이 거의 주종을 이룬다. 깨끗하지 못한 그들의 얼굴과 옷차림에 깨끗한 공항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금연석을 달라하니 벌써 다 찼단다. 하긴 필리핀 노무자들은 여자들이 무척 많다. 오늘 승객도 여자들이 거의 대 부분인 모양이다. 할 수 없이 흡연석을 배정받고 법무부 심사대를 통과해 면세품코너를 기웃거리지만 역시 살 만한 게 없다. 제일 살 만한게 많았던 공항은 홍콩 공항이었는데...

 

대충 시간을 때우고 쓰다남은 현지화를 달러로 바꾸고 하다 보니 금방 보딩타임이 되었다. 필리핀들이 거의 대부분이라 그런지 동질감에 더욱 말이 많아 유난히 시끄러운 대기실에서 가능한 한적한 곳을 골라 앉아 있다가 기내로 들어가니 흡연석은 거의 뒷좌석이다. 옆을 지나가는 남자승무원에게 얼른 앞에 혹 자리 생기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쿠웨이트 항공기는 기내 TV가 모든 승객이 각각 하나씩 소유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선택권이 있다. 영화도 원하는 시간에 마음대로 볼 수 있고... 그러나 무언가 잘 안풀리는 날은 계속 머피의 법칙을 따르려나? 내 좌석에 TV프로그램을 조절하는 리모콘이 고장나있다. 완전히 포기다. 금연좌석도 영화도.. 잠을 청하려 애쓰다 보니 금방 7시간이 가고 한 낮에 비행기는 방콕에 도착한다.

이젠 서서히 내 여정을 끝내야 할까 보다.

 
 
쿠웨이트 음식여행

 

비행기를 탈 때부터 벌써 입 맛이 돌았다. 양고기가 먹고 싶어서...

약 10년전에 사우디 생활시 양고기 맛을 알아서 그 어느고기보다 좋아하게 된 이래 유독 중동지역에 가야만 싼 가격으로 푸짐한 양고기를 즐길 수 있기에 중동 출장이라 하면 제일 기대가 되는 음식의 하나이다.

물론 서울에서도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양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지만 호텔 식사가 우리 같은 직장인에게 흔치 않고 그런 기회가 있다손 치더라도 격식을 차린 음식들이라 양도 무척 조금 적고 맛도 서양인에게 맞도록 요리를 하니 양고기 특유의 맛을 찾을 수가 없다.

 

중동은 양고기가 그 나라의 주식인지라 마치 우리나라 돼지갈비 먹듯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고 때와 장소를 안가지고 즐길 수 있다. 양고기의 요리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제일 보편적인 것이 마치 닭다리처럼 양 갈비에 살이 붙어 있고 그걸 우리나라 숯불 구이처럼 구운 요리이다. 영어로는 Lamb Chop이라고 하고 그들은 시스카밥 이라고 하며 우리는 양 꼬치구이라 한다.

 

그리고 양을 쪄서 양기름으로 볶은 쌀위에 내 놓은 것을 우지라고 하는데 보통 음식점에서는 조금 밖에 안 나오지만 아라비아인의 가정에 초대되어서 가면 대개 양 한마리를 통째로 쪄서 나온다.

 

커다란 쟁반에 각종 아몬드등 열매와 양고기 기름으로 찐 색색의 쌀이 가득 담겨있고 그 위에 양 한마리가 마치 우리나라 통닭구이처럼 양의 생김새대로 그대로 손님에게 내어 놓는다. 우리나라 암소한마리는 조그만 접시위에 암소의 갖가지 부위를 눈꼽 만큼씩 썰어 내 놓는 것에 감히 비교할 수 는 없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훈기가 코에 와 닿는 쿠웨이트에 도착하고 점심부터 양고기를 시작했다. 같이 간 분은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였는데 전혀 양고기 못먹겠다고 하길래 소고기와 닭고기도 같이 주문했다.

그러나 그 분도 금방 양고기에 빠져 버렸다. 커다란 접시에 양갈비구이와 시스카밥이 담겨져 왔고 그 고기위를 걸레빵 (?)으로 덮어 놓은 양고기는 불고기에 익숙한 우리에게 누척 낯 익은 모습이기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는지 금방 걸레빵을 들치고 맛있게 들기 시작했다.

 

걸레빵은 보통 한국사람들끼리 부르는 이름인데 크고 넓은 빵의 겉 부분이 검게 탄 부분이 있어 지저분한 듯이 보여 그렇게 부른다. 이 빵은 아라비아의 오랜 주식으로 성경에 나오는 무교병인데 밀가루를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갈아 만든 빵으로 우리나라의 부침게 혹은 서양의 피자와 모양이 같다. 그러나 전혀 양념이 안되어 있는게 특징이라 무척 담백하고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이 빵을 조금씩 찢어 호무쓰라는 쏘스를 찍어 먹는데 호무쓰는 우유와 콩가루와 올리브유가 주성분으로 되어 있다. 걸레빵은 중동에서 어디를 가던 빵을 만드는 곳을 쉽게 볼수 있는데 특별한 상표도 없고 현지 가격으로 무척 싸서 거지들도 굶은 일은 없다고 한다.

 

양고기에 레몬즙을 짜서 뿌리고 갈비부분을 손에 들고 이빨로 뜯어 먹는 맛은 어찌 말로다 할 수 있을까?

포크와 나이프도 있지만 손으로 그대로 들고 먹어야 제 격이다. 반드시 오른 손만 써야하는데 왼손은 화장실가서 종이대신 써야 하니까 이 손을 쓰면 비위생적이고 예의에 어긋난다.

 

레스토랑에는 한 쪽 구석테이블을 완전 점거한 아라비아인들이 왁자 지껄하며 떠들더니 갑자기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 나왔다. 노래와 함께 온 종업원이 그 테이블로 모여들고 모두 박수를 치면서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이런 장면은 미국에서 여러 번 보았는데 이곳도 점점 서구화되어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은 멕시코음식을 먹기로 했다.

 

배가 정박해 있는 바닷가에 아주 넓은 식당이 있고 창이 넓어 밖을 모두 볼 수 있게 만든 제법 그럴듯한 레스토랑이었다. 멕시코의 제일 유명한 음식은 타코라고 한다. 넓고 얇게 썬 고기를 긴 꼬챙이에 차곡차곡 끼운뒤 세워서 불 앞에서 천천히 돌리는데 서양의 바비큐 와 틀린점은 바베큐는 가로로 고기를 돌리지만 이건 세로로 돌려서 고기를 익힌다.

 

그러면 고기는 점점 거꾸로 세워 놓은 원추형으로 익어가고 주변의 익은 고기부터 조금씩

베어서 걸레빵으로 싸먹는다. 그리고 곁들이는 음식은 끝이 둥근 파인데 파를 통째로 구워서 먹는다. 또한 채소를 곁들여 먹는다. 구운 토마토와 함께...

 

무슨 음식인지 전혀 알수 없는 이름들. 남이 먹는 것 보고 시켜야 하는게 실수를 안하는 법이다. 이 곳은 특이하게 음식을 내 놓는다. 음식을 담은 그릇이 딱딱한 과자빵인데 마치 아이스크림같이 그릇도 부수어 가면 먹는다.

 

음식이름만 보아서는 뭔지 모르겠기에 종업원보고 추천하라 해서 가지고 왔는데 별로 먹음직스럽지는 않아 곧 후회했다. 걸찍한 팥죽과, 오믈렛 비슷한 음식으로 적당히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식당 분위기가 좋았다. 이곳에서도 생일파티가 있었는지 갑자기 저쪽 통로에서 한 명이 기타를 치고 종업원들이 그 뒤를 조그만 등을 들고 쫒아나오며 멕시코민요를 불렀다. 그리고 어느 테이블로 가더니 주위에 둘러서서 몇 곡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데 분위기가 얼마나 흥겨운지 보는 이도 즐겁다. 내가 멕시코를 여러번 다녀봐서 멕시코음식을 좋아하는데 멕시코아닌 이 곳에서 먹는 음식은 정말 별로였다.

 

둘째날 점심은 중국식으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별로 없어 간단히 짜장면과 우동을 시켰는데 모양만 짜장면이지 내용물은 완전히 달랐다. 첫째 면이 아주 짧았고 짜장같이 생긴 것도 전혀 짜장맛이 아니었다. 아마 돼지 기름을 안써서 그런건가? 이들은 절대 돼지고기를 안먹으니. 코란에 그렇게 되어 있다 한다. 우동은 얼큰하기까지 하며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탕수욕은 고기를 아주 바짝 구워서 했는지 딱딱해서 그것도 별로다.

 

그 날 저녁은 Sea Food Buffet로 하기로 했다. 무척이나 고급스럽게 생긴 호텔에 있는 이 곳은 주로 외국인이 찾는편이다. 왜냐하면 아랍사람들은 Sea Food를 좋아하지 않는다. 구약성경에 하나님이 비늘 없는 고기는 먹지말라 하였기에 어패류와 오징어등을 먹지 않는다. 이들의 코란은 철저히 구약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생활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생선회는 굴과 연어밖에 없었고 모두 익힌 고기요리가 가득했다. 음식보다 더욱 특이한 것은 내부 장식인데 완전히 배 안에 들어 온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기저기 굵은 밧줄 장식과 술통 (물론 술은 없지만) 그리고 닻과 그물등.... 종업원들의 의상도 완전한 뱃사람 복장이었다. 이쁜 조끼와 터키풍의 바지가 내부 분위기와 무척 어울렸다.

 

여러 가지 생선들이 익혀서 요리되어 있었고 대개 몸집 큰 생선들로서 연어 참치 등등 그리고 크기가 무척 큰 조개살같은 것으로 가이바시라같기도 한 도 있고 중 입맛을 돋구는 것은 바다가재였다.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바다가재를 부페로 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바다가재는 구워서도 먹고 삶아서도 먹고 날로도 먹는데 바다가재회는 국내에서 먹어본 적이 있는데 정말 일품이지만 무척 비싼 음식중의 하나이다. 이 날의 백미는 디저트였다. 디저트가 모두 바다와 관련된 이름을 가졌기에 뭔지 모르지만 서로 다른 것으로 나누어 시켰다. 어떤 이는 섬이란 이름을 가진 걸 시켰고 어떤이는 파도란 이름을 주문했다. 한 참 후에 가져온 디저트에 우린 모두 놀라고 말았다. 얼마나 정성을 드린 음식인지 모두 그 이름에 맞는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아이스크림과, 푸딩과 쵸코렛으로 만든 접시안의 조각품들에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을 정도로 예쁘게 만든 음식들. 크림을 살짝 흘려서 파도치는 것처럼 해 놓았고, 푸딩을 이쁘게 만들어서 섬처럼 해 놓기도 하고 접시 바닥에 하트모양이 양각되어 있어 참 이상한 접시도 있다하고 스푼으로 하트모양을 건드리니 그건 초코렛으로 만들어 놓은 하트였다.

 

그리고 또한 이곳에서 음악은 있었다. 전자 올갠과 바이올린과 그리고 팬프륫으로 조직된 밴드가 손님들의 테이블을 모두 돌아가면 연주를 해 주고 있다. 특히 팬프륫의 연주는 일품이기에 제일 듣기 쉬운 곡목중의 하나인 '외로운 양치기'를 주문했더니 즉시 연주해 주고 '엔콘돌 파사' (철새는 날아가고) 등과 Love me tender라는 팝송까지 두로 레퍼터리를 가지고 있다. 손님이 원하면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너무 이것 저것 많이 먹어 그 좋은 바다가재를 3마리로 끝내야 했다.

 

세째날 점심은 일식으로 했다. 어느나라나 일식은 대개 좋은 호텔에 있다. 한국식당이 주로 서민들 속에 있고 (외국에서) 일식은 주로 부유층이 있는 호텔 같은 곳에 있는게 가슴이 아프다. 음식에서도 일본에게 져야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마 우리의 음식문화가 서양인들의 기호에는 안 맞는 것 같습니다. 비벼 먹고, 말아 먹고, 숫가락 젓가락을 같은 그릇에 넣어 퍼 먹고, 집어 먹고. 그네들 보기엔 무척 비위생적으로 보인다.

거기에다가 공동체 의식을 좋아하지 않는 그들에겐 우리의 식생활이 마치 아랍인들이 화장실에서 왼 손을 휴지대신 사용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우리의 관념과 같은 것리라.

 

무척이나 일본인 같이 생긴 필리핀인들이 종업원이고 행동도 일본사람같이 한다. 조금은 징그럽기까지 했다. 역시 일본음식은 정갈했고, 양이 무척 조금인 것이 특색이다. 일본 음식은 적은 양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인가?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게 아니고 맛을 보기 위해서 먹는 음식, 마치 회같이....

 

업무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못하고 도시락을 주문했다. 한국에서 먹는 일식 도시락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저녁. 쿠웨이트에 올때부터 기대해 왔던 시골 양고기... 그곳은 운전기사 식당으로서 우리나라도 음식이 제일 맛있고 푸짐한 곳이 국도 변 기사식당인 것처럼 여기도 예외는 아니다. 드라이브 여행을 자주 가시는 사람은 이 사실을 안다. 푸줏간과 같이 경영하는 이 곳은 전혀 영어가 통하지 않지만 모든게 인정 많은 주인 아저씨의 손짓, 눈짓 그리고 몸짓으로 다 통한다. 양고기밖에 팔지 않기에 그다지 말이 필요 없다.

 

지난 번 쿠웨이트방문때와 같이 푸짐하게 이것 저것 시켰다. 양고기 찜, 구이, 꼬치, 걸레빵, 우지 등등,. 조금은 지저분해 보이는 식탁위에 깨끗하지 않는 그릇 그리고 물병 차마 물은 그대로 먹을 수 가 없어 개봉하지 않은 생수를 시켰다. 잘 먹고 설사하면 안되니까...

 

한 참 후에 큰 쟁반에 가득 담아온 양고기들. 그리고 우리가 INSULATION (보온재)라고 혹은 걸레빵이라고 부르는 아랍빵으로 양고기를 덮어 내왔다. 따끈한 기운이 빵에서 손바닥으로 그대로 전해지고, 빵을 슬쩍 들치니 잘 익은 양고기들이 날 잡아주쇼하고 대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소꼬리찜 같이 생긴 우지를 양기름으로 튀긴 쌀에 소스를 섞어 먹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전혀 포크나 나이프가 필요없는 이 곳에서는 자연 그대로 먹는게 맛있게 먹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정말 기가 막히게 맛이 있는 음식임을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배가 터지게 먹고, 걸레빵도 무척 많이 먹었다. 다 먹고 선반에 있는 아랍 수박을 짤라 달라고 부탁하니 그건 자기네들 먹을 건데 그냥 주는 거라며 기분좋게 후식을 내 놓았다. 아랍 수박은 커다란 럭비공 모양이지만 내용은 꼭 같다.

 

같이 간 분이 오늘 음식값은 자기가 내겠다고 하길래 '고맙습니다'하고 종업원이 가지고 있는 계산서의 아랍어 금액을 보니 약 한국돈으로 20,000원도 안되는 금액에 불과하다. 그 분은 그럴리가 없다고 다시 확인하라고 하였지만 재확인한 금액이 그 정도 밖에 안되니 어이가 없어 하였다. 4명이 실컷 양고기 뜯고 겨우 2만원이라니...

마지막 날 점심은 호텔에서 아랍식 부페를 했다. 여태까지 먹은 온 갖 아랍 음식을 총정리하는 의미에서 골고루 조금씩 아랍 음식들을 음미했다. 마지막 날이라 혹 배탈나지 않게 조심하느라 많이는 안 먹었다.

많은 세계여행을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온 갖 음식을 골고루 경험해 보기는 처음이다.

지금 이 얘기들을 누군가 앞에 놓고 한다면 몇번이고 침을 꼴깍 삼키며 열변을 토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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