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중동방문기

내 생애 아찔한 기억 하나

carmina 2014. 5. 17. 14:05

 

 

내 생애 아찔한 기억 하나...

 

1986년 사우디 아라비아 생활 중 아찔한 기억 하나

처음으로 글로 옮겨 본다.

 

국내 대형 건설회사에 다니던 1985년 11월 결혼 후 그 다음해 2월에

사우디에 있는 현장에 1년짜리 프로젝트의 현장소장이 필요하다며

부서장이 겨우 대리직급인 내게 현장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부서장 왈 '대리직급으로  현장 소장으로 파견나가는 사람은 당시에 네가 최초다' 라며...

 

이제 막 뱃속에 아기를 가진 아내에게 현장에 나가야 한다고 말하니

회사에서 나가라 하면 무조건 나가야 하는 줄 알았던 아내는

딱 1년뒤에 돌아온다며 떠나는 나를 김포공항에서 울면서 보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현장.

회사에서 완공한 빌딩의 1년간 하자보수를 위해 한 두 명의 엔지니어,

한국인 10명정도의 기능직과 스리랑카와 인도사람들이 팀을 이루어 24시간 근무한다.

 

전임소장이 약 2달간 이미 근무했기에 남은 10개월동안 근무하여

중간 중간 심성이 안좋은 한국인 엔지니어로 인해 힘든 일도 있지만 

그럭 저럭 큰 과오없이 계약기간은 1년을 채워가고  마지막 근무일이 얼마 안 남았기에

귀국을 눈 앞에 둔 근무자들의 기강이 해이해 질 것을 우려하여

한달 전부터 금주령을 내리고 마지막까지 잘 마치고 집에 가지고 독려했는데..

 

사우디는 법으로 음주가 금지되어 있지만 한국인이 있는 곳은

어디든 술이 있어야 하기에 몰래 술을 구입해서 밤에 마시곤 한다.

 

계약기간의 마지막 근무일.

우리의 업무를 인계받는 외국회사에게 현장을 인계후 숙소에 들어와 기분좋게

직원들과 저녁 식사 후 잠이 들었는데 한 밤 중에 누가 소장님 하며 노크를 한다.

문도 안 열어보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직원들끼리 싸웠어요." 라기에

"지금 한밤중이니 아침에 이야기합시다" 하고 다시 잠에 들었는데 한참 후

다시 문을 두들기며

"피 흘려요" 하기에 얼른 일어나 직원들 숙소로 가보니

평소 순해 보였던 A 직원과 늘 그 사람들 놀리며 장난을 치던 키작은 B 직원이 두 직원이 술을 먹고

시비가 붙어 평소 놀림을 받으며 감정을 상했던  G 직원이 P 직원을

홍해 바닷가에서 산호를 캘 때 쓰는 짧고 강하며 양면날이 있는 칼로 그만 뒷허리 부분을 찔러 버렸다.

 

내가 처음 본 광경은 P 직원이 엎드려 피를 흘리고 고통 때문에 술을 병째 들이마시고 있었다.

얼른 술을 뺏고, 직원들 중 술을 안 마신 직원들 몇 명을 불러 P 씨를 차에 태워

큰 현장을 가지고 있는 인근 건설회사의 의무실에 도움을 청하니 담당 의무사도

너무 상처가 깊어 치료가 불가능하기에 병원으로 가라는 말에

다시 숙소로 돌아와 어찌할까 고민했다.

 

술먹는 것도 사우디 법에 걸리는데 칼로 사람을 찌르는 것이 현지 경찰에 알려지면

두 사람 모두에게 외국에서 재판받고 감옥생활을 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연상되었다.

특히 사우디는 한 밤중에 차를 몰고 급히 달리면 여지없이 경찰의 검문을 받기에

이 밤에 나갈 수도 없다.

또 그 밤에 경찰이 숙소에 오게된다면 술먹은 직원들이 모두 잡혀들어갈텐데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

 

우선 무조건 현지 병원에 가야 하기에 6시경이 되어 먼동이 틀 때쯤

직원 중 술을 먹지 않은 직원 2명을 데리고 시내의 현지 병원의 응급실을 찾았다.

그리고 동시에 전화로 우리 현장에 근무하는 요르단인 통역사를 병원으로 불렀다.

 

의사는 급히 환자를 응급처치한 후 나를 부르더니 왜 저런 상처를 입었는지

설명해 달라기에 그 사람이 혼자 술을 먹다 그랬다 했더니 그런 상처가 아니라며

내게 사실을 이야기하라고 다그친다.

절대 진실을 얘기할 수 없어 사실이라고 우기고 있는데

조금 후 의사가 경찰에 연락했는지 경찰 몇 명이 병원으로 들어와 내게 묻고

마침 그 때 통역사도 도착했다.

 

내가 의사에게 했던 이야기를 통역사를 통해 경찰에게 말했더니

의사와 경찰이 무언가 얘기한 후 우리 일행 모두를 경찰차에 태워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생전 처음 경찰차를 타 보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다친 P 씨 입에서는 술냄새가 나니 그 사람만 따로 태워 경찰이 유치장에 감금했다.

 

경찰서.

경찰서로 가면서 내 머리 속에 나만의 사건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B씨가 밤에 혼자 술을 먹다가 안주를 찾기 위해 주방에 들어가 어둠속에 더듬거리던 중

그만 바닥에 쏟아진 식용유에 넘어지면서

주방 요리대 위에 정열되어 있던 식칼을 잘 못 짚어 그만 찔려 버린 것 같다.'

 

당직 경찰에 나와 우리 직원들 그리고 통역사를 앞에 놓고 사건의 경위를 묻는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기적이 일어난다.

 

첫번째 기적 : 경찰은 영어를 할 줄 모른다.

 

경찰은 질문을 아랍어로 우리 통역사에게 하고 통역사는 내게 영어로 하고

나는 우리 직원들에 한국말로 물어보고 답변을 받아 다시 영어로 통역사에 말해주면

통역사는 아랍어로 경찰에 말해주는 3단계 심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미리 약간의 영어와 약간의 아랍어를 아는 우리 직원들에게 절대 영어나 아랍어를

아는체 하지도 말고 표정으로 반응하지도 말라고 당부해 놓았다.

 

경찰이 어느 것을 묻던지 간에 우리 직원들한테는 내 머리에 있는 시나리오대로 같은

답변이 나가고, 나는 직원들에게 손짓 발짓을 써서라도 아무 얘기나 하라고 지시했다.

내용이 긴 답변은 일부러 길게 얘기하라고 하고 짧은 것은 고개만으로 답을 하라고 했다.

이렇게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었은데 통역사는 내 거짓 진술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지난 1년간의 현장 근무동안 서로 신뢰를 쌓았기에 모두 이해해 주었다.

 

우리 직원 2명과 나의 진술을 모두 들은 경찰은 나에게 현장검증을 나가자 했다.

그 순간 내 안색이 파래졌다.

 

내가 머리 속으로만 만들었던 알리바이를 구성해 놓은 현장을 

숙소에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 연락해서 준비하라 해야 하는데 당시는 핸드폰이 없고 

숙소에는 전화도 없어 연락할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내 거짓말이 모두 들통나는구나 그리고 우리 모두 거짓 증언으로

외국에서 재판받고 감옥에 있어야 하는구나 하는 체념이 나를 하나님께 기도하게 만들었다.

"하나님 도와 주세요." 간절한 내 기도를 들으셨는지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두번째 기적 : 기막힌 도움

 

숙소에 현장 검증하러 가자 하던 경찰이 가는 길에 술 먹은 환자의 알콜 농도를

측정하기 위해 혈액 검사를 할 병원에 들러서 가자 하며 들른 곳이....

세상에...내가 아는 병원이었다.

 

사우디에서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을 대개 같은 국적으로 고용한다.

간호사들끼리 의사 소통이 잘 되어야 원활하게 돌아가니

어느 병원은 한국인 간호사들이 많고

어느 병원은 필리핀 간호사들이 많이 근무한다.

 

환자를 데리고 간 병원이 한국 간호사들 많은 병원이고 그 간호사들은 대부분이

주일이면 우리 지역의 한인교회에 와서 나와 같이 예배를 보는 사람들이었다.

 

P씨가 채혈을 하는 동안 급히 아는 간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빨리 내가 잘 아는 교민에게 전화해서 숙소에 직접 찾아가 직원들에게 주방을 깨끗이

치워 놓고 요리대에 식칼 몇 개를 정열 후 바닥에 식용유를 조금 흘려 놓으라 했다.

아울러 숙소 수색이 있을까봐 직원 찌를 때 사용했던 칼을 멀리 사막 한가운데 묻어놓으라 했다.

 

경찰과 찾아 간 사막 한가운데 숙소.

경찰과 같은 차를 타고 가면서 일부러 경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얘기를 걸었다.

올해 한국에서 아시안 게임을 했는데 개막식 장면을 보니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들이 매스게임을 하는데 너무 멋있었다며 얘기하니 경찰이 관심을 갖기에

"마침 본사에서 보내 준 녹화테이프가 있으니 내가 한 개 주겠다. 집에 가서 봐라."

 

경찰은 깨끗이 치워 놓은 주방에서 내게 물었다.

"흘린 피는 왜 안 보입니까?"

"직원들이 모두 청소했습니다."

"넘어질 때 짚었던 칼은 어느 것입니까?"

"어느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모두 씻어 놓은 것 같습니다"

내가 이 얘기할 때 마다 주방장은 연신 내 얘기에 끄덕거렸다.

 

경찰이 숙소를 보기 위해 나오기에 얼른 준비된 테이프를 경찰에게 건네 주었다.

만약 숙소에 들어갔더라면 피흘린 현장을 보자 할 것이고 혹시라도

의심을 품으면 다른 사람들의 흔적도 발견하여 숙소를 모두 수색할 것이 심히 걱정되었다.

만약 숙소를 수색하면 이슬람 법에 저촉되는 술과 비데오 그리고 책들이 모두

걸리고 일은 더 커질 것이 분명했다.

경찰은 다행하게도 테이프를 받아 들고 숙소를 수색하지 않고 우리를 놓아두고 현장을 떠났다.

 

위험한 상황이 닥쳤지만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에 온 몸의 맥이 다 풀렸다.

연루된 사람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으니 일단 큰 고비는 넘겼다.

 

그러나 더 큰 고민이 생겼다.

 

뒤의 허리를 찔린 P 씨는 칼 끝이 신장에 닿아 신장이 위험하다며

경찰이 병원으로 옮겼다고 통역사가 경찰에 알아보고 연락해 준다.

 

병원을 찾아 갔더니 P씨는 침대에 누워서 양 손 양 발을 모두 각각 수갑으로

묶인 채 신장을 다쳐서 그런지 피 오줌을 싸고 있었다. 그 옆에는 경찰이 감시하고 있고...

 

이러다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면 어떡하나.

이제는 내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그 도시에 나와 있는 한국영사관을 찾아가 사고를 보고 했다.

영사관에 나와 있는 노무관은 우선 그 칼을 회수해 영사관에 제출하고

두 사람을 서로 타협하게 해서 형사 소송이 되지 않도록 유도하라 한다.

 

다친 P 씨는 1년 치 급여에 해당하는 거액의 치료비와 손해 배상액을 요구했으나

피해를 준 A씨는 돈이 없으니 타협하지 못하겠다 한다.

 

도무지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노무관에 알렸더니

상해자를 얼른 귀국시키되 본인이 김포공항에서 범죄자로 체포되는 것을 모르도록 하고 

피해자는  가능한 빨리 음주에 대한 재판을 받게 해 추방하는 것으로 하라고 알려준다.

 

다급한 상황이 벌어졌다.

경찰을 움직일 사람은 관리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1년간 우리회사를 고용한 사업주가 석유를 관장하는 정부 조직이라 영향력이 있을 것 같아

그간 나와 업무로 친하게 지내던 임원을 만나

우리 직원 한 명이 계약 끝나는 날 집에 가는 기쁨을 즐기다가 술마시고 다쳐서

병원에 있는데 빨리 추방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사정했다.

그 임원을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다.

 

그러나 큰 걸림돌이 있었으니..

 

중동지방의 종교 이슬람에서는 매년 한 달 정도 라마단이라는 종교행사가 있어

그 기간 동안에 낮에는 아무 것도 먹고 마시지 않으며 근무도 하지 않고

저녁에만 잠깐 나와서 일하는 것으로 한 달을 지낸다.

 

피해자를 추방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경찰서를 드나 드는데

그 기간이 라마단이라 도무지 경찰을 만나기 힘들었고 추방에 관한 서류는

계속 여기 저기 관련부서에 사인받으러 돌아다니고 있었다.

매일 서류 좀 빨리 다른 부서로 옮겨 달라고 부탁하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은 벌어졌다.

병원 침상에 묶여 있는 환자에게 위문 차 찾아 간 직원들이

요즘 일 끝나고 귀국을 기다리며 TV를 보며 편하게 쉬고 있다는 애기를 전해 들은 피해자가  

피해를 입은 것은 자기인데 자기를 찌른 상해자는 편하게 쉬고 있다는 말을 듣고

급격히 화를 내며 찾아 간 내게 경찰에게 모든 것을 실토하겠다고 나를 협박한다.

 

내게는 매일 매일이 고통이었다.

낮에 먹지도 못하고 저녁에는 경찰서 가서 담당자들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내다

허탕치고 허기진 배로 안고 돌아오는 날이 계속되었다.

 

우선 상해자인 G씨를 아무 말없이 한국으로 보냈다.

영사관에서는 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기내 공안원에게 연락해 놓았고

중각기착지인 태국의 방콕에서 그 사람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특별 감시를 붙여 놓았다.

결국 B씨는 김포공항 도착 즉시 국내 경찰에게 체포되었다는 애기를 들었다.

 

이젠 P씨를 보내야 한다.

다행히 상처가 호전되어 이제는 경찰서로 이송되어 유치장에 갇혔다.

나는 매일 매일 김밥을 싸 들고 그를 찾아가 위로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내 인생이 사라질만한 커다란 사고가 있었는데..이건 다음에 이야기 하자.

 

드디어 추방명령이 내렸다.

국내 항공사에 환자를 보내야 하니 특별석을 부탁했더니 4개의비지니스클라스석을

구매해야 하며 한 명이 보호자 격으로 따라가야 한다기에 비싼 비행기표를 사고

경찰서에 제출하고 P씨가 공항에 오기로 예정되어 있던 날짜와 시간에

공항에 나가 기다리는데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예정 시간이 한참 지나 경찰서에 확인해 보니 한국 국적의 비행기편이 아니고

사우디 국적의 비행기로 보내야 하니 표를 다시 준비해 오란다.

맥이 탁 풀렸다. 그러나 이거야 돈이면 해결 되는 것이니 즉시 준비해서

가지고 갔다.

 

다음 날 다시 공항에 나갔다.

예정된 시간에 경찰 트럭이 오고 P씨는 손에 수갑을 차고 발에는 쇠고랑을 찬 채

절겅거리며 불편하게 트럭에서 내렸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결국 P씨는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기 전에야 손과 발이 자유롭게 되었다.

 

잘 가라며 P씨를 보내고 나니 세상이 날아 갈 것 같았다.

당시 한국에서는 조직폭력배들이 서진룸살롱에서 칼로 사람을 찌른 사건이 있어

나도 이 사건을 내 인생의 '서진 룸살롱 사건'이라 한다.

 

이런 이야기는 남편없이 혼자 아들을 낳은 아내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현장업무가 끝나도 귀국이 늦어지는 것은 단지 현장에 일이 있어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러한 큰 일을 겪으면서 내가 정말 감사했던 일은

1년간 나와 관계를 가졌던 현지인 통역사, 사업주 관련자들,

교회 사람들, 간호사들 등등 주위에 있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니

내가 꼭 필요할 때 그 들이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는구나 하는 것을 알고

이 후로도 사람을 가능한 선한 사람들만 만나기를 애쓰고 있다.

 

나도 사건을 다 처리하고 그간 나를 도와 주었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고

귀국한 뒤 몇 달 뒤 해외 건설 환경이 안 좋아 인원 감축 플랜이 있어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다.

 

그 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G씨와 P씨가 경찰의 주관하에 합의하여 사건을

종결 지었다는 얘기를 아는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다

 

그러나 내 아찔한 기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또 다른 일로 겪은 아찔한 기억은 다음에 얘기해 볼려 한다.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어 내가 위증한 것이 발각나고 경찰이 가해자를 체포해

현지법으로 처벌 받는 끔찍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당사자들의

가족을 어찌 되었을까?

 

이 사건은 그간 내가 업무로 사우디를 드나 들 환경이 있었기에 글로 남긴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세월이 지났으니 말할 수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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