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중동방문기

사우디 아라비아 (2014. 10)

carmina 2014. 10. 28. 23:13

 

 

2014. 10. 19

 

바레인 다녀온지 1주일 되었는데 또 사우디로 출장을 가야 한다.

자정이 넘은 시각.

나는 홀로 대한항공 스카이라운지에서 와인을 홀짝 거리고 있다.

기내에 들어가자 마자 자고 싶어서..

 

이 늦은 시간에 카타르항공 체크인 카운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가만히 보니 하나같이 막 결혼한 신혼부부들이다.

어떤 이들은 아직 머리도 결혼식장에서 그대로 나오고

거의 대부분 커플룩을 입었다.

얼마나 행복할까?

결혼도 행복한데 둘이 첫 여행을 유럽으로 떠난다는 행복.

내 결혼은 신혼여행의 교과서인 제주도 갈 경비가 없어

철도청에서 갓 출시한 상품인 신혼열차를 타고 경주과 부곡하와이를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비행기가 출발을 위해 준비중인데 갑자기 기내방송으로

의사를 찾는다. 급한 상황이 내 바로 뒤의 손님에게 발생되었다.

외국 의사 두명이 와 혈압을 재고 진찰하더니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키고

영어를 무척이나 잘하는 한국환자도 얼굴혈색은 하얗게 변해버렸지만

안정된 상태로 보였다.

만약 이 환자가 비행을 못할 상황이라면 비행기 이륙이 상당히 늦어질 뻔 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로 이동할 때

이미 나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잠에 빠져 들었다.

내 옆에 신혼부부는 얼마나 둘이 애정표현을 하는지 밤이 긴 줄 모른다.

신경쓰느라 내 잠도 설치고..

 

카타르의 도하공항.

카타르 항공은 주로 아프리카를 가는 장거리 출장이라

늘 비지니스를 탔고, 트랜짓하기 위해 늘 도하 공항의 별로

비지니스 라운지를 이용했었는데 회사가 바뀌니 그런 혜택이 없어

이코노미 일반석 손님들이 가는 공항청사를 들어가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거대한 모습이다.

화려한 면세점과 넓은 청사.

이제껏 해외출장을 다니며 본 국제공항 중 제일 큰 것 같다.

물론 이 것 보다 더 큰 곳도 있겠지만 내가 가보지 못했거나

혹은 항공사별로 청사가 다른 빌딩으로 구분되어 있어 작아 보인 것인지도 모르지만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대비해서인지 공항의 규모가 아주 크다.

카타르항공청사만 해도 이렇게 큰데 외국항공사의 청사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이 공항에서는 세계 어디 공항에서든 비지니스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Priority Pass를 받아주는 곳이 아무 항공사도 없다.

그래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많아 약 2시간 동안 쉬며 내 옆을 지나가는

세계 인종들을 보니 참으로 여러가지 모습들이다.

나도 그 중에 하나 한국인의 모습으로 섞여서 걸어간다.

 

담맘행 21번 게이트 를 찾아 가니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중국 노동자, 인도 노동자 들이다.

21번게이트에는 지금 카르툼가는 비행기가 보딩중이다.

카르툼이란 말이 반갑다. 내가 오래전 2번 가보았던 수단의 수도.

석유가 나지만 종교갈등 때문에 문제가 생겨 가난을 면치 못하고

결국 2년전에 나라가 남수단과 북수단으로 갈라져 버렸다.

그러나 끝없는 종교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무척이나 많이 변했을 담맘의 풍경이 보고 싶어

도하에서 담맘가는 비행기는 창가 좌석을 예약해 놓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좌석이 바로 날개 옆이라 고개를 돌려야

간신히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황량한 끝없는 사막.

어디가 사막인지 어디가 하늘인지 뿌연 먼지 때문에 구분이 안된다.

그러나 눈이 닿는 모든 곳이 노란 사막일 뿐이다.

가끔 스프링쿨러를 이용해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곳에

동그랗게 큰 원을 그린 녹색공간이 보이지만 그것도 아주 작다.

 

뒷좌석에 앉은 악동같은 세 청년이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다.

마치 서울에서 제주도 갈 정도의 거리에 있는 담맘공항.

기체가 랜딩하고 공항이 한눈에 들어 오는데 갑자기 헛웃음이 나온다.

아니..내가 이 공항이 거대하게 지어지는 모습을 30년전에 보았는데

이렇게 초라하다니..

마치 어릴 때 다니던 동네의 넓은 신작로길이 나이들어 차로 달리니

무척이나 좁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썰렁한 공항 주변 선착장.

눈에 보이는 다른 비행기가 한 대 밖에 없다.

세상에 이럴수가...

30년전 수많은 사람들이 도착했던 이 곳이 이렇게 변하다니..

내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도 대한항공 전세기를 동원해

실어나른 일반노동자들과 함께 왔었다.

 

1984년 3월 이 곳 담맘공항에 새벽에 도착하여

뜨거운 열기를 얼굴로 느끼며 트랩을 내려 오니 트랩 바로 아래

대한항공 근무하는 고교선배가 있어 얼마나 반가왔던지..

그 때만해도 수없이 많은 한국 노동자들이 담맘시내를 돌아다녔고

수없이 많은 한국인들이 버스를 타고 새벽부터 이리 저리 움직였다.

 

기체가 공항에 기착할 때 다른 비행기에서 하물을 내리는 것을 보니

완전히 쌍팔년도 방식으로 하물을 내리고 있다.

꼭 오래 전에 가본 방글라데시의 도시에 와 있는 것 같다.

 

입국심사를 하기위해 공항청사로 들어가면서 건물 바닥이나

벽을 보니 그야말로 어느 시골 농부의 집같다.

구석구석이 틈새가 벌어지고 타일사이에 때가 잔뜩 끼어 있다.

카펫트는 누렇게 변해 있으며, 의자들도 푹 꺼진 채로 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입국심사를 위해 두 곳으로 갈라진다.

한 곳은 재입국하는 사람들, 또 한 곳은 사우디에 처음 오는 사람들.

노동자들은 거의 재입국심사를 받고, 우리같이 말끔해 보이는 사람들과

극소수의 노동자 몇 명이 최초입국심사 줄에 섰는데

재입국심사는 무척 빠른 편이지만 우리 쪽은 대기인원이 별로 없는데도

한없이 시간이 걸린다.

심사원은 업무보며 끝임없이 전화를 받고 스마트폰 보고 커피를 마시고

승객들의 지문과 얼굴을 찍는데 장비가 노후한지 한가지 절차를 마칠 때마다

기다리고 있다.

 

내 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밀고 지문을 찍을려고 대기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지문도 얼굴 사진도 안찍고 여권에 도장을 찍어 준다.

아니? 내가 이곳이 처음이 아닌 것을 알았나?

처음이 아니라도 내 지문이나 얼굴사진이 없을텐데 왜 안찍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와서 내 뒤에 따라오는 직원에 물어보니

자기는 모든 절차를 다 거쳤단다. 이상하다.

30년전에 쓰던 여권번호도 지금 여권과 달라 알수 없을텐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혹시 내가 미국 자주 다니며 등록된 지문과

얼굴사진이 미국 정부와 정보가 공유되어

이 곳 사우디 공항시스템에 등록된게 아닌가 추측해 보았다.

 

공항청사 내부도 썰렁. 넓은 공간에 앉아서 쉴 의자도 없다.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마중나온 사람을 찾으려 두리번 거리는데

멀리서 어떤 까무잡잡한 얼굴의 나이든 이가 하얀 이를 보이며 내게 다가온다.

그간 메일을 서로 나누면서 메일에 뜨는 내 얼굴이 눈에 익어 금방 알아보았단다.

 

공항에서 나와 바로 주베일로 가기 위해 도로에 올랐는데

거짓말 같지만 도로의 풍경이 눈에 익어 보인다.

담맘에 1년 근무하면서 수없이 공항을 오갔기에

어릴 적 골목풍경같이 잊지 않았나 보다.

한국에서 태양이 밝은 한 여름에 운전할 때 빛에 반사된

하얀 아스팔트 도로를 볼 때도 가끔 이 곳 사우디 도로의

모습과 비숫하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

주행하는 차도 별로 없다. 신호등도 없고..

주변에 건물도 없고 멀리 보이는 곳에 낮은 잡목만이 보일 뿐이다.

산은 물론이고 낮은 언덕조차 보이지 않는다.

도로는 휴지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도로 주변은 다듬지 않은

거친 모래들만 보일 뿐이다.

 

속도는 마음껏 낼 수 있을 정도로 도로에 차가 없지만

120키로를 넘으니 차에서 경고가 나온다.

지부티 출신이라는 현지 직원은 쉴새없이 내게 대화를 걸고

쉴새없이 전화를 걸고 있다.

 

고속으로 달리면서 한 손은 핸드폰 한손은 운전대를 잡았는데

무척이나 불안해 보인다. 출장 내내 이 모습때문에 불안했다.

어찌 그렇게 전화로 할 말이 많은지..

 

담맘에서 주베일 가는 길에 들어서니 이 곳 또한 눈에 익다.

당시 주베일 가는 이 곳에 농장을 경영하는 사람이 있는 농가에

한인 교회를 하고 있어 매 주 금요일이면 혼자 달려 가던 곳이다.

그 곳에서 매주 예배보고, 골프 연습도 해 보고, 양고기 파티도 해 보았었다.

 

외국직원에게 혹시 이 곳에 한인농장이 있는거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단다.

하긴 알리가 없다. 아니 알아서는 안된다.

이 곳에서는 무슬림 외에 타 종교를 인정하기 않기에

모임 자체가 불법인 기독교 예배를 보는 곳이기에..

길가 이정표에 보이는 SAFWAN이라는 지명이 눈에 익다.

감회가 새롭다.

 

그러나 당시에도 더 이상 먼곳까지 가지는 못했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 더 이상 가도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한 업무지역을 벗어난 곳이고 허가없이 가는 예배이기에

늘 얼른 캠프로 돌아와야만 했다.

새벽 4시경부터 일하기 시작하여 노동자들은 낮에 3시간 정도 쉬고

오후 5시 정도까지 일하지만...

우리 관리직은 새벽4시경부터 밤 9시까지 근무해야 했다.

힘들어서 매일 코피를 흘리고..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씩 교회 가서 예배보고  

그곳에서 찬양대 서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이렇게 도로가 넓은데도 많은 차들이 1차선 옆의 노견으로 해서

쏜살같이 위험하게 앞질러 간다.

이 곳 사람들은 평소에는 행동이 느린데 차만 타면 얼마나 급한지..

사거리에서도 신호에 기다리면서도 연신 부릉거리며 엑셀을 밟다가

신호가 바뀌는 즉시 세차게 달려나가는 이들의 운전습관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길가 저편에 바닷가인듯한 곳에 플랜트라 불리우는 거대한 정유공장들이 보인다.

사우디에서 이 흔한 플랜트모습은 여느 국가와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대개 이런 플랜트가 있더라도 부분적으로 보이는 법인데

이 곳은 마치 가로수처럼 플랜트가 이어진다.   

직장생활 거의 전부를 이 플랜트건설을 위해 바쳤다.

그것도 오로지 외국에서 지어지는 플랜트수출을 위해

얼마나 많은 날과 밤을 지샜던고..

 

주욱 뻗은 주베일 가는 길.

길은 한없이 넓고 신호들이 있을 필요도 없고 자칫 길을 잘못 들면

한참을 가서 돌아와야 한다.

반대편 차선과의 분리도 거의 도로폭 만큼이나 넓다.

 

가끔 신호가 있는 곳은 조금 특이한 교통시스템이 있다.

차가 별로 안 다니니 신호등의 색깔을 자주 바뀔 필요가 없으니

우리 나라의 어느 도로처럼 신호등 위의 CCTV가 차량의

정체를 감안하여 신호등 색깔을 바꾸는 것처럼

여기서는 빨간등이 켜져 있는 사거리에서

정지선의 도로 밑에 장착되어 있는 센서에 차량의 무게가 감지되면

저절로 조금 후 녹색불로 바뀌어 진행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 운전자는 정지선을 지킬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문득 1시간 길을 가면서 무언가 이상한 것이 빠진 것 같다.

무엇일까?

아...사우디 도로를 지나가면 길 양옆에 그토록 많이 보던 고장난 차량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차가 고장나면 그냥 버려 버리는 돈많은 사우디인들.

그렇게 버려진 차들이 얼마 지나면 바퀴가 사라지고 문짝이 없어지고

나중엔 골격만 남게 된다. 물론 그걸 가지고 가는 것은 불법이다.

 

한 때는 그런 소문이 돌았었다.

어느 일본 업체가 사우디의 길가에 널려 있는 모든 폐차들을

치워주는 대신 무료로 수도 리야드에 전철을 지어주겠다고 했더니

정부에서 거절했다 한다.

절대 지하철이 필요없을 것 같던 이 나라에 지금 전철이 건설되고 있다한다. 

 

왜 부서진 차가 없는지 궁금하다 했더니 현지 직원 왈.

이제는 차가 버려져 있으면 바로 가서 폭파시켜 버린단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오른 편에 끝없이 플랜트 모습이 이어지고 가끔 우거진 수풀이 보인다.

길에서만 우거지게 보일 뿐이지 아마 나무 뒤에는 다시 사막의 모습일 것이다.

이 들이 그린색에 대한 염원은 국기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많은 중동국가들이 국기의 바탕을 녹색으로 쓰고 있다.

아랍에미레이트, 쿠웨이트, 이란, 오만 등등..

 

오아시스라는 말은 실제로도 물이 있고 숲이 우거진 곳을 말하지만

단어만으로도 무언가 희망을 주는 것 같다.

그 곳에 가 본 적이 있다.

담맘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갔었는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어느 날 직원들끼리 찾아간 콰디프라는 곳.

중동지방에는 같은 이슬람이라도 순니파와 시아파라는 두개의 파가 나뉘어 끊임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특히 이 곳 콰디프는 두 개의 파가 공존하여 자주

총성이 들린다는 곳이다.

 

그 곳에 이상한 오아시스가 있다해서 길을 떠났다.

말 그대로 숲이 우거진 곳. 그런데 자연적으로 생긴 곳이 아니고

열대 나무를 재배하는 농장이다.

물이 많이 흐르고 그곳에 제법 큰 우물이 하나 있는데

그 곳에서 우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면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가

물의 분출력에 의해 다시 몸이 솟아 올라 수면으로 떠오른다.

수영을 잘 못하는 나도 그곳에 몸은 던졌고

수면으로 다시 솟구쳐 우물가로 헤엄쳐 나왔다.

 

중간 중간에 집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대개 몇 가옥씩 모여 있는데 집의 색깔이

사막의 흰 모래색깔로 위장한 듯하다.

 

높은 건물이 거의 안 보이다가 몇 군데 보이는가 싶더니

내가 묵을 코랄 비치호텔이 넓은 공터에 뎅그마니 홀로 서 있다.

흰 옷을 입은 현지인들이 호텔앞에서 옹기 종기 모여 있다.

여장을 풀자마자 현지인에게 오늘 점심을 현지음식으로 추천해 달라해서 찾아 간 곳.

만디레스토랑. 꽤나 유명한 곳이라 해서 찾아갔더니

아랍어로만 쓰여 있는 간판도 허름하고, 실내도 우중충하다.

안에는 현지인들이 많이 모여 있고, 한쪽 공간에서는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다.

먹는 공간도 1층 2층으로 허름하고 때가 잔뜩 끼인 양탄자가 눈에 거슬렸고

모두 신발을 벗고 들어가 베드윈족처럼 앉는 작은 방이 있다.

그러나 무척 누추함이 조금 안타깝다.

그런데 이 곳을 다른 우리 친구도 추천했었다.

 

음식을 가지고 올라왔는데  끈기없는 쌀 위에 양고기를 푹 익힌 것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둘러 앉아 손으로 먹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런데 아무래도 바닥이 더럽다고 생각하니 손으로 먹기가 더 불편해서

밥은 숟가락으로 떠먹고 고기는 손으로 뜯어 먹었다.

앞에 있는 현지직원은 손으로 밥을 집어 먹고 손에 남아 있는 밥풀들을

다시 그릇에 털어 놓는다. 그러니까 입에는 들어가지 않았던 밥풀이다.

단지 손으로만 만졌던 것.

하긴 우리도 남에게 음식줄 때 손으로 집어 주지 않는가.

절대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다지 비싸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

다른 집보다는 맛있으리라.

식사하느라고 잠시 차를 밖에 세워 두었는데도

이미 차는 뜨거운 열기에 달구어져 차 옆으로 가는게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저녁은 긴 여행에 피곤하여 간단히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현지 부페를 즐겼다.

 

다음 날 아침에 멀리 있는 사우디의 최대 정유회사에 있는 플랜트를 찾아가야 했다.

그런데 카메라 촬영이 절대 금지된 곳이기에 가방에 깊숙히 찔러 놓는것도 불안해

빈 박스에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넣어 두었다.

출입도 상당히 까다롭게 검사하고, 들어가는 곳데 제한된 듯 하다. 

여기 저기 플랜트 구석구석을 오전 내내 둘러 보고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간 직원들 구내 식당.

역시 세계 최고의 회사 식당도 깨끗하고 모여 든 사람들도

세계 각국에서 온 인종들로 채워져 있다.

음식을 가지고 오면 계산해 주는 카운터에는

눈만 보이고 온 몸을 검은 옷 아바야로 가린 여자가 계산한다.

여자가 이런 일에 종사하는 것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텐데..

 

식사후 식당 바로 옆에 있는 해수욕장을 찾았다.

그런데 여긴... 사우디가 아니었다.

바다의 모래빛깔도 일반 바다와 달리 흰 모래로 가득차 있고

파라솔은 물론이고 샤워할 수 있는 곳도 준비되어 있다.

절대 사우디 일반 바다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

걸프만과 홍해가 있는 사우디의 바닷가에 일반 수영장은 없다.

그 들에게 남 앞에서 옷을 벗는 일은 미풍양속을 해치것보다 큰 범죄이기에..

 

잠시 다른 세상에 머물다 와 오후 일을 끝내고 찾아 간 저녁식당.

어두워진 시내를 찾아 가는 커다란 불빛이 하늘로 치솟고 있다.

혹시 방공시스템? 근데 가까이 가서야 안 것이 그건 사우디의 곳곳에

있는 팬더라는 이름의 대형 마트가 있는 곳을 알려 준다.

워낙에 큰 땅이다 보니 이 대형마트가 있는 곳을 찾아가기 위해

이렇게 해 놓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찾아간 시간은 저녁 쌀라 시간

쌀라 시간에는 모든 상업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그 전에 상점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밖에 나오면 안되고

문을 닫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아직 쌀라 시간이 더 남아 다른 곳으로 찾아 갔다.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사우디 정부 기관이 있는 타운으로 가니

마침 쌀라가 끝나 막 들어간 서양식 플랜차이즈 식당에서

양갈비 스테이크와, 큰 새우와, 소 등갈비와 닭고기 그리고

알콜기 없는 맥주.

 

중동지역에서 근무하는 한국사람들은 무알콜맥주를 좋아한다.

나도 모르게 입안으로 들어오는 사막의 먼지를 배출시키기 위해

맥주는 아주 좋은 음료이다.

 

한가지 일화 소개.

오래 전 사우디 현장과 본사의 문서교환을 늘 종이로만 하던 시절

중요한 서류가 있으면 현장에서 귀국하는 사람들 편에 서류를 보내고

회사에서는 그걸 받으로 김포공항으로 나갔다.

 

어느 날 공항에 나갔던 직원이 투덜거리며 들어왔다.

서류외에 무알콜 맥주를 누군가에 전해 달라고 가지고 왔다고..

그런데 사정을 알고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사우디 현장에서 오래 근무하다 귀국한 어느 임원이

그만 간암에 걸려 시한부생명인데 그 분이 술을 못마시니

사우디 현장 시절 마셨던 무알콜맥주가 그리워 한국에서 사기 힘든

맥주를 현장에 특별 부탁해 공수한 것이었다.

 

식사후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황홀하였다.

주베일 바닷가로 거의 20Km정도 길이의 플랜트 시설들이

모두 불을 밝히고 있고 굴뚝에서 뿜어나오는 불길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대개 공장 건설을 마치면 반드시 기록을 위해 야경사진을 찍어 둔다.

공장의 기계시설 곳곳에 등을 밝힌 것들을 멀리 보면

홍콩의 야경보다 더 멋있다.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찍지 못함이 아쉽다.

 

하루 종일 회의만 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10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협상.

셋째날 저녁은 중국음식점을 찾았다.

역시 쌀라시간이라 한참을 기다리니 문을 열어 준다.

메뉴 중 짜장면 비슷한 것이 있어 먹어보니

면이 다르고 장이 다르다. 그냥 비스무리하게 먹은셈 쳤다.

 

셋쨋날 저녁은 KFC를 택했다.

미팅하느라 너무 피곤해 빨리 쉬고 싶어 패스트푸드를 선택하여

찾아간 도심지 한가운데. 차 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곳에

겨울 파킹하고 KFC로 들어가니 싱글을 위한 문과 패밀리 문이 따로 있다.

패밀리는 아이들이나 여자들이 있어야 들어간다.

 

싱글은 온통 남자들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노동자들로 보이는 옷차림.

옆에 패밀리는 무척 쾌적한 분위기와 여유있는 자리가 부럽다.

 

치킨과 빵이 나왔는데 빵은 아마 고기를 싸 먹으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먹는 것은 우리 습관아니라 빵은 대부분 남겼다.

 

다음 날 일을 마무리하고  사업주가 특별히 현지 음식을 점심으로 따로 별실에

마련하였는데 치킨구이를 또 한 번 밥과 함께 손으로 먹었다.

 

공항으로 가기 전에 이전 직장에 입사동기였던 직원이 회사를 그만 두고

알코바에서 개인기업체에 근무한다기에 마침 연락이 닿아

나만 따로 공항가는 길에 떨어지기로 했다.

 

사막에 뉘엿 뉘엿 해가 진다.

이 멋진 광경을 오래 오래 보고 싶은데 차를 세울 수가 없다.

수없이 카메라의 셔터를 차에서 눌러 댔다.

이러다 보면 좋은 사진 하나 나오겠지.

사우디에 있다보면 정말 멋있는 풍경하나가

해가지고 달이 뜨는 풍경이다.

끝없는 사막 지평선에 초생들이 살짝 떠오르기 시작할 때면

신에 대한 존엄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 참을 달리니 도심이 보인다.

눈에 익은 지명, 알코바, 담맘, 다란. 이 곳은 세 도시가 모두 인접해 있다.

거대한 국영석유회사의 건물이 새로 들어서고 그 곳이 완전히

그 회사의 타운을 만들려는 듯 땅을 파헤지고, 다른 빌딩을 또 짓고 있다.

여기 저기 즐비하게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졌고 대형 쇼핑센터도 들어셨다.

당시에 비해 도시가 밝아 졌으며, 건물들도 모두 새것이다.

 

커다란 빌딩옆을 지나는데 이 곳이 어디쯤인가.

두리번 거리다가 문득 멀리 눈에 익은 호텔.

오래 전 기억이 떠오른다. 맞아. 메르디앙 호텔이 저렇게 생겼었어.

그 곳에 사진을 찍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고급 상가가 있는데 걸려 있는 보석들이나

양복들이 거의 세계 최고급수준이다.

당시 이 곳에서 먹었던 스위스 아이스크림은 하겐다스는

얼마나 맛있었던지.. 

 

반갑다. 참 반갑다.

친구를 만나 고급스런 양갈비 구이 레스토랑을 찾아 가니

주문을 마쳤을 때 쯤 쌀라가 시작되어 레스토랑 문을 닫고

커텐을 모두 내린다. 우린 맛있는 고기를 즐기고..

 

식사 후 공항으로 가기 위해

시내를 지나는데 상가 모습이 눈에 익었다.

맞아. 내가 저 곳에서 저녁시간을 보냈고

저 곳에서 지금 차고 있는 빨간 세이코 손목시계를 샀다.

그리고 그 시계는 지금 내 손묵에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결혼식을 워낙 검소하게 할려다 보니

부부 예물시계나 신부의 목걸이와 귀걸이를

결혼 전 이 곳에서 특별히 누구 줄려고 산 것도 아닌데

보기 좋아 사 두었던 것으로 대신했었다.

 

시내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먼것 같았다.

그 길은 밤에 더 익숙해 보였다.

이전에 이 도로를 늘 새벽에 드라이브했었다.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는 주로 새벽에 도착하니

직원들을 마중나가기 위해 새벽에 차 한대 없는 이 도로를 달리면

내 차가 낼 수 있는 최고속도로 다니고픈 질주본능이 생겼었다.

 

공항입국시에는 공항이 무척이나 초라해 보였는데

출국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입국공항과 출국공항이 다른가?

비록 면세점은 별로 없지만 조금 화려해 보이고 오늘이 이 곳의 주말이라

여행객들이 길게 늘어서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다.

출국심사전에 만든 지그재그 길은 사람들이 없으면

막은 줄을 이동해 심사대로 빠르고 편하게 바로 가게 해놓았으면 좋겠는데

공항관리들 어느 누구도 승객들의 불편은 생각하지 않는다.

인샬라..  

 

당시 사우디 생활들을 지금처럼 기록해 놓았다면

책으로 몇 권 만들었을 정도였을 것 같다.

 

정통보수 이슬람국가 사우디 아라비아.

그 들의 생활방식은 수 백년 수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내가 이 곳을 또 올 수 있는지 모르지만

이 곳에 다시 왔다는 것이 내겐 참 의미있는 일이다.

나이가 들다보니 점점 내 삶의 흔적을 찾아 다니고는 것은

인간도 동물처럼 회귀본능이 있는 걸까..

 

언젠가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곳

이젠 어쩌면 자주 와야 할 것 같고

만에 하나 예전처럼 몇 년을 지내야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그 모든 일이...인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