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21) 무인도

carmina 2013. 12. 23. 14:52

 

무인도

(이봉조 작곡)

 

파도여 슬퍼말아라
파도여 춤을 추어라
끝없는 몸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마라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길을 걸으며 바다를 본다.

바다를 보며 파도를 본다

파도를 보며 포말을 본다

포말을 보며 인생을 본다

 

쉬임없이 달려와 커다란 바위에 부딪히며 산산히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나는 가끔 내 인생을 읽는다.

이제 사회생활 33년이 끝나가고 직장생활도 이번 달로 마지막이다.

 

참으로 긴 직장생활을 한 셈이다.

졸업 후 다섯개의 국내 굴지의 큰 해외 건설회사에 다니며

거의 자의로 회사를 옮겨 다녔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업종의 특성상 늘 새로운 직장이 내 앞에 기다렸다.

때로는 회사의 경영이 힘들어서...

때로는 국제 석유가격에 민감한 우리 업종의 특성상 전세계적으로 프로젝트가 없어서...

때로는 역겨울 정도로 기회주의자인 상사가 싫어서..

때로는 해외 건설경기가 침체기에 빠져서..

이번에도 그렇다.

 

2000년 대기업 퇴직 후 해보지도 않던 장사를 7년간이나 하다가

다시 해외건설경기가 호황으로 또 다른 국내 최고 건설회사에 입사했었다.

회사의 인원이 내가 입사할 때 2500명이었다가

현재 8500명까지 승승장구하며 전 세계를 휘집고 다니다가 정년퇴직도 하고

계약연장까지 몇 년 하며 7년을 다녔으나 최근에는 무리한 수주와 수행의 어려움으로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로 경영이 어려워 자연적인 인원감축 계획으로

그간 몇 년 더 연장근무한 것에 감사하며 떠나야 한다.

이 나이에 재취업을 할 수 있을까?

이젠 같은 업종의 취업을 하는 것은 나이때문에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나는 남들이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하는 사오정시대를 거쳤고 오륙도소리도 들었다.

45세 정년이라는데 그 나이에 회사의 명예퇴직을 거쳤고

56세에 직장을 다니면 도둑이라는데 그 나이에 직장을 다녔다.

 

파도가 친다.

산산히 부서진다.

부르다 부르다 목메어 부를 내 인생이여.

 

김소월의 시 초혼의 첫소절이 생각난다.

 

산산히 부서진이름이여!
虛空中에 헤어진이름이여!....

 

이제 내 인생의 경력이 산산히 부서진다.

더 이 상 필요없을지도 모르는 경력.

내 이름으로 내 경력으로 어디 이력서를 내도 다 허공중에 버려질 것 같다.

나는 아마 무인도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일 것이다.

 

태양이 다시 뜰 수 있을까?

새로 이사간 초고층 아파트에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

어수선한 이삿짐더미 저편 창가로 아침해가 뜨는 것을 보았다.

생전처음 내가 사는 집에서 아침해가 뜨는 것을 본것 같다.

그 태양을 보는 마음이 착잡했다.

 

나들길을 걷다 보면 작은 무인도들을 자주 만난다.

그 섬들을 보며 길 벗들 앞에서 이 노래도 불렀다.

김추자가 처음 불렀고 정훈희가 어느 국제음악제에서 불러 상을 탄 노래.

높은 톤의 노래를 즐겨부르는 내겐 이 노래가 잘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더욱이 가사가 좋다.

무인도를 배경으로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며

무언가 불같은 희망을 불러대는 이 노래가 좋다.

 
현재의 내 생활이 언제까지 어둠속에 묻힐지 모르지만

때가 되면 무인도에서 떠오르는 태양같이 묵묵히 세상의 빛을 비추며

하루를 지내고 싶다.

내 인생이 노래가사처럼 파도는 치지 못하더라도 그냥 미풍에 잔잔히 흔들리는

호수의 수면이 되고 싶다.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다.

 

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될 내년에 내 모습이 무척 궁금해진다.

 

길을 걸으면 노래가 흐른다

 

주문도에서 바라본 서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