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제주도 올레길 13코스

carmina 2014. 1. 20. 18:00



제주도 올레길 13코스


떠나고 싶었다.

2013년 12월 31일 7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이제 자유시간.

얼마나 휴식기간이 주어질지 모르지만 마음껏 시간을 쓰자.

마음껏 걸어 보자

마음껏 내 하고 싶은 것들 해 보자.


멀어서 가기 힘든 곳. 제주도 올레길.

이제까지 혼자서는 가보지 않은 곳에 이번엔 혼자 떠나 본다.

제주도 한 바퀴 올레길 지선코스를 포함하여 전체 26개 코스 중

우선 21개코스만을 걷는 것을 목표로 한 지 몇 년.


2코스부터 12코스까지는 몇 번에 나누어 걸었고

이제 13코스부터 시작하여 끝나는 코스는 정하지 않고 작심하고 걷기로 하고 떠난 4박 5일.

당초 10일간을 목표로 일정을 짜 보았지만 아무래도 교회의 맡은 일이 걸려 반으로 축소했다.


비행기편을 검색하다 보니 대형 항공사인 아시아나도 시간대별로 할인 티켓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비슷한 가격이면 차라리 염가항공보다 나을 것 같아 오가는 편을 모두 아시아나로 

정했고 숙소도 혼자 떠나는 여행이니 우선 처음 이틀만 게스트하우스로 예약해 놓았다.


김포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내려 용수포구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로 가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로 찾아 갔다가 중대한 실수를 범한다.

제주도의 시외버스가 이렇게 빨리 운행을 끝낼 줄이야. 겨우 9시 조금 넘었는데..

서둘러 예약한 곳에 전화하니 어쩔 수 없다며  

송금한 숙박비를 돌려 주고 아울러 터미널 근처의 다른 곳을 알려주는 친절을

아끼지 않는다. 


한 밤 중에 찾아간 터미널 근처 예하게스트 하우스

숙박비에 해피아워라며 맥주한 병 값이 포함되어 있다.


홀에는 젊은이 몇 명이 맥주 한 병 놓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마침 나이 든 분이

혼자 테이블 하나를 지키고 있기에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어 보니

경북 영주시 문화해설사라는 직책을 가진 분이라 서로 이야기의 코드가 맞아 

밤늦게까지 서로 문화와 트레킹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젊은이들이 주로 잠들어 있는 내 방으로 들어와 설레는 마음으로 첫 잠을 이룬다.


아침에 정갈하게 준비된 간단한 서양식 아침 식사, 빵과 치즈, 계란, 라면 및 음료로 요기하고

13코스의 출발지인 용수포구로 찾아 나섰다가 지난 번 12코스 걷기 후 버스를 탄 곳이 13코스 중에

포함된 것을 확인하고 도로의 그 지점부터 외투를 여미고 등산화를 질끈 동여 매었다.


그다지 춥지는 않은데 넓은 벌판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나 홀로 모두 다 내게 쏟아지는 듯

코로 들어 오는 바람과 스며든 옷 사이로 들어 오는 바람이 차다. 반가운 올레길 이정표

푸른 빛의 간세가 푸른 하늘처럼 더 빛나고 있다.

멀리 하늘에는 아주 작은 비행기 모양의 흰 구름하나가 달랑 떠 있었다.


출발한 지 몇 십 미터 앞에 작은 교회가 인상깊다. 

대구동교회에서 기증한 모형이라기에는 너무 크고

예배보는 교회라기에는 너무 작은 교회는 길을 걷다가 혼자 들어가 잠깐 기도하

나오면 딱 좋을 것 같은 버섯모양의 교회는 13코스의 상징물로 보기에 딱 좋다.

그래서인지 교회 앞면에 '길위에서 묻다'라는 글이 굵직하게 써 있다.


길 위에서 무엇을 물을까? 

어디로 갈까요? 

어느 길을 택할까요?

어느 인생길을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 앞으로 내겐 어떤 길을 주어질까요?

우선은 길위에서 나의 여정에 평안과 안전을 기도해 본다.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이전에 올레길 걸을 때 익히 보아오던 여름의 풍경은 사라지고 이젠 썰렁한 공간만이 남아 있다.

오늘 내 동반자는 내 그림자 뿐이다.


메마른 벌판위의 맑은 하늘 아래 멀리 눈 덮힌 한라산이 뚜렷이 보인다.

아직 가보지 못한 한라산. 언젠가는 꼭 가 보아야 할 목표다.


길을 가다보니 특이한 목조 건물이 보인다.

나무로 만든 드럼통 같이 생긴 원형 통 몇 개를 이어 붙여 무료 숙소라 소개한다.

한 여름에는 이런 곳에 묵어도 좋을 듯 하다.

큰 도로와 가까우니 언제든 위급상황에 대처할 수 도 있고 인근에는 개인가옥도 보인다.

무료지만 예약은 해야 하는지 안내 설명도 붙어 있다.

'다음카페의 제주모모에서 예약하라며 전화번호까지 써 있다. 010-9838-7841


썰렁한 벌판. 전방에 시야를 사로 잡는 흔들리는 감색과 푸른색의 올레길 이정표밖에 안 보인다.

그리고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노란 리본 하나.

지난 해 제주도 1코스에서 올레길을 걷는 여자가 숲 속에서 피해를 입는 사고가 난 뒤

모든 올레길에 경찰이 별로도 이정표를 만들어 놓고 위치 파악이 되도록

각 리본에 일련 번호를 붙여 놓았다.


이 길로 몇 사람이나 걸었을까?

사람 발자취의 흔적도 없고 제주에서 흔한 동물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길을 걷다가 조류독감에 대한 경고문이 붙어 있는데 날짜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직 이런 홍보안내의 열악성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게 언제적 경고인가? 

언제까지 우회하라는 말인가?

경고판이 설치되어 있는 동안은 유효하다는 것인지..


용수저수지에 파란 물빛이 아침햇살로 빛나고 그 위에 몇 십마리의 청둥오리들이

유유히 겨울수면을 미끄러져 가고 있다.


이미 제주도에서는 감귤수확이 끝낸 줄 아는데 아직 온실에서는 감귤을 수확하지 않은 듯

잘 만들어진 보호막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모든 잡초들은 색을 잃었지만 제주민의 돈벌이가 되는 각종 채소들은 

사시사철 푸르름으로 제주 벌판을 물들이고 있다.


제주섬을 걸으면서 늘 느끼는 것이 제주 땅 어디에도 빈칸이 없을 정도로

곳 곳에 농작물을 키우고 있다. 광활한 브로콜리 밭, 파, 배추 감자 등등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척박한 땅에서 자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재배하는 

제주민의 근면성을 높이 사고 싶다. 그런데 늘 궁금한 것이 이 많은 경작물을 어떻게

수확하는지 궁금하다. 벼를 벤다면야 기계로 모심고 기계로 벼베고 탈곡하면 된다지만

이 일은 일일이 손이 가야 하지 않는가?  


큰 농장을 지나 어느 집 축대 밑에 쌓아 둔 화산암이 마치 큰 나무 썩어 들어가듯이

파여지고 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누가 일부러 판 것도 아니고..

혹시 나무위를 용암이 덮쳐서 나무가 썩어가는 것은 아닌지...


제주도의 장묘문화도 바뀌고 있다. 이 넓은 땅에도 점점 경작지를 넓혀 가려는 듯

분묘보다는 합동으로 납골묘를 만들어 안장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길은 도로와 숲길로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가능한 숲길로 올레길이 어이지지만 어쩔 수 없는 곳은 도로를 지나게 하지만

가능한 짧게 만들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길을 만들 때 없던 숲길을 특전사 장병들을

이용해 억지로 길을 만들어 그 들의 노고를 기리고자 특전사숲길, 해병대 길 등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 곳도 특전사 길이라 하여 들어가니 나무와 바위와 숲을 잘 조화시켜 

사람 한 명 다닐만한 길을 만들어 놓았다. 이런 길이 좋다.


숲으로 이어진 길. 여자 혼자 다니면 무서움을 느낄만한 음습한 곳에 

덩쿨들이 엉키어 있고 높은 나무들이 길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


넓은 밭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 가만히 보니 얼굴형이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이제 알 것 같다. 이 곳에서 단순 노동자들은 거의 동서남아계의 외국인을 이용하고 있다.


제주도는 거의 영하기온이 없는 지역인데 길을 걷다 보니 물웅덩이에 얇은 얼음이 덮여 있다.

아마 도심은 영상이지만 이 곳 벌판은 거센 바람 때문에 영하의 기온까지 내려가는 듯 하다.

 

어느 정도나 걸었나. 시간을 보니 한시간 반 정도?

출출하다.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 숲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앉아 식은 캔커피로 허기를 때운다.


커다란 고목이 몇 그루 있고 나무들이 시베리아 자작나무처럼 뻗치어 있는 숲을 지나

다시 밝은 공간으로 나와 도로를 걷다가 다시 고사리가 많다는 숲길로 이어지는 길의 연속.


길을 가다가 문득 이상한 모양의 이정표를 발견한다. 물고기 형상.

이 것은 무슨 표시일까? 혹시 기독교의 표시일까? 

이 표시는 올레길 간새 이정표근처에서 자주 보였다.


그렇게 마을길을 따라 가다가 숲길을 나왔는데 도로 옆에 반가운 장소인 쉼팡이 보인다.

한경면 조수리 마을 청년회에서 길을 가는 올레꾼들을 위해 무료카페를 열었다.

커피를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준 작은 정성들이 참으로 고맙다.

정수된 물과 물 끓일 수 있는 주전자와 버너, 커피와 티까지...

그렇다고 그 곳에 마을에 기부를 원하는 통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순수한 선행의 행동일 뿐이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이 곳 마을 사람들의 물건을 팔아주는 것도 아닌데

이런 친절을 베풀기로 결정한 청년회의 모임 취지가 아름답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길을 일부러 돌아가게 만든 다자인들이 많이 보인다.

그냥 바로 오면 바로 올 거리를 일부러 숲길을 걷기 위해 지그재그로 걸어가게 한다.

하긴 그냥 빨리 갈려면 '허'자가 붙어 있는 자동차 빌려타고 달리면 그 뿐이다.


제주도에는 농사를 하는 것 외에도 무성한 숲을 이용하여 벌꿀을 재배하는 곳도 보인다.

여기에서 나오는 꿀은 어떤 꽃에서 나오는 꿀일까? 유채꽃? 감귤나무도 꽃이 있던가?


구불 구불 돌아가는 길 저 편에 큰 나무 조형물이 보이기에 내가 가는 길과 다를 줄 알았는데

이정표는 그 의자조형물쪽으로 가도록 만들어 놓았다.


큰 길가에 위치한 낙천의자 공원.

초대형 의자와 수없이 많은 각양각색의 의자들이 조금 투박해 보이지만 멋드러지게 만들어 진 것보다

훨씬 친근감이 돋보였고 의자마다 새겨져 있는 글들이 더 의자 하나 하나에 눈을 가게 만든다.

의자는 침대보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것 가구일 것이다.

침대야 사람들은 작정하고 몸을 쉬는 곳이지만 의자는 내가 힘들 때 잠시 앉을 수 있는 곳이기에

우리의 생활에 더 절실히 필요하고,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꼭 필요한 가구일 것이다. 


그 곳에 가니 사람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마주 오던 나이든 올레꾼들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다가 내가 걸어 온 길로 사라지고

홀로 여행하는 듯한 아가씨 사진찍기에 여념없고 렌터카로 여행중인 무리들이 우르르 차에 내려

사진 촬영하다가 내게 관심을 보인다.


경기 지역의 목사님들이 부부동반에서 잠시 여행을 다닌단다. 덕분에 내 사진 몇 장찍고

의자들의 모습을 휘휘 둘러 보고 다시 숲길로 걸어가는데 의자들이 많아 보인다.

그래도 올레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인지 의자를 많이 만들어 놓은 편이다.


길가에 작은 절은 지나 넓은 벌판을 건너 저지오름으로 향해 걷는다.

벌판을 걷는데 마주 오는 올레꾼들 서너명이 내가 관심 갖는 몇 백년 생 팽나무를 서로 

양쪽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었다. 

올레길도 부분 부분의 길에 이름을 붙여 놓기는 했는데 홍보물로 나누어준 지도에는

그런 설명이 없어 조금 아쉽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길이면 더 걷기가 즐겁지 않을까?


마주 오는 일반 복장의 두 젊은이에게 혹시 13코스 끝나는 지점에 식당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둘이 마주보며 일본인이라 한다.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어 가물가물하지만 

얼른 기억나는대로 일본어로 물어보고는 인사하고 가는 뒷 모습이 날씨를 생각하지 않은 옷차림에 

무척 춥겠다고 생각했다.


낮은 언덕으로 올라가는데 마주 오는 사람들을 일부러 카메라의 촛점을 맞추지 않고

눌러 보았더니 그 모습도 좋았다.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조금 높은 곳에 올라왔다는 이야기다.

이제 저지오름으로 본격적으로 올라가는 길에 이정표에는 여기 정상을 한 바퀴 돌게 되어 있어

조금 갈등이 생긴다. 어차피 다시 내려와야 할 길인데...

그래도 아직은 시작하는 여행이니 이 정도 오름이야 뭐..


오름을 휘 둘러 가다가 보니 다른 길로 올라 왔는지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길이 어찌 되는지 몰라 지나가는 이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고 자세하게 얘기해 준다.

이런 사람들과 여행하면 즐거울 것 같다. 그러나 그 들은 내려가고 나는 올라간다.


저지오름의 정상에 오르니 조금 후 아까 의자공원에서 만났던 목사님일행들을 내 뒤를 이어

다른 길로 올라온다. 전망대에 올라 멀리 눈 덮힌 한라산을 보고 감탄하기에 

혹시 찬송하실 생각없느냐 물어보니 모두 좋아라 한다.

그 즉시 4부합창의 화음이 들렸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퍼지는 뇌성....


목사님들은 헤어질 때 나를 위해 특별히 기도도 해 주셨다.


이 곳에 오르니 내가 그간 지나온 길들이 모두 보인다. 

삼방산이 보이고 송악산이 보이고 항구가 보인다.


전망대를 내려와 평탄하게 다듬어진 능선길을 가다가 갑자기 다시 오름이 시작된다.

이게 웬일? 혹시 내가 잘 못가는 것일까?

올레길 안내센터에 전화걸어보니 길이 맞는단다.

길에서 젊은 남녀가 서로 이 길이 맞다 아니다 하고 티걱 태걱 실갱이하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한 쪽이 잘 못 알았다고 미안해 한다. 

이정표를 따라 다시 올라가니 그 길은 잠시 언덕일 뿐 다시 아름다운 평지 숲길로 이어지고

곧 내리막길로 내려와 마을을 만났다.


반대편에서 저지오름으로 올라오는 곳, 이 곳이 13코스의 종점이다.

완주 스탬프를 쾅 찍고 인근이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하나 시켜 먹었다.

그 식당에서는 귤을 판매하는 듯 직원 2명이 열심히 귤을 포장하고 있기에

식사 후 귤 하나만 먹을 수 있느냐 했더니 이 것 저것 박스를 고르다가 그 중 

하나를 건네 주기에 식당을 나와 껍질을 벗겨보니... 이런...냉장귤이네..


모두다 후한 인심인줄 알았는데...이런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귤을 재배하는 사람의 인심과 귤을 파는 사람의 인심이 다를까?
























ㄴ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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