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19코스 석모도 상주해안길

carmina 2014. 1. 29. 23:44

 

 

2014년 1월 29일

 

이제 하나 남았다.

나들길 19코스. 이 것만 걸으면 나들길 완주다.

그렇다고 누가 인정해주는것은 아니지만 이건 내 자신에 대한 만족이다.

목적했던 일. 음악공연같이, 미술작품같이, 밤새 한 공부같이..

그리고 완벽한 사랑을 추구함과 같이..

 

여유시간들이 금방 끝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속에

명절 전에 손님 초대해 놓고 나간다고 뭐라하는 아내의 구박을 먹으며

아침에 일찍 차를 가지고 떠났다.

 

외포리까지 가서 다시 2시간마다 19코스의 출발지인 상리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적어도 지정된 시간에 외포리행 배를 타야 한다.

강화 나들길의 단점은 오직 하나. 교통편이 불편한 것. 그러나 시간만 잘 맞추면

불편한 점 없이 다닐 수 있다.

 

평일이고 명절 전날이라 강화들어가는 차가 조금 밀린다.

혹시 배가 일찍 만선이 되는 것은 아닐까?

 

외포리 선착장 옆에 주차를 하고 표를 사러 들어갔더니 썰렁.

페리호에 들어가기 위해 들어가는 차도 거의 없다.  

명절이라고 석모도에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구나.

그 얘기는 석모도에 외지인이 많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이른 시간인데도 석모도에서 나오는 차가 더 많았다.

 

페리호의 객실에 배낭을 멘 사람은 나 하나.

나이든 아줌마와 아저씨 한 두명.

배 주위로 몰려드는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 주는 사람도 없다.

 

 

석모도 선착장인 석포항에서 상리로 가는 버스는 아직도
올 시간이 멀었다. 외포리에서 석모도가는 페리호은 30분마다
떠나는데 다음 배를 탔다면 버스 연결과 딱 맞을 시간이다.

떠날 시간이 되니 20인승 버스에 다른 남자가 배낭을 메고 타는데
청바지를 입은 것으로 보아 등산객은 아니다.
오늘 나들길 19코스는 완전히 나만의 것이다. 야호~~~


석포항 나들길 스탬프찍는 해안가에는 주민이
막 잡아온 듯한 작은 조기를 하나 하나 널어 말리고 있다.
이 길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길목인데 사람들이 욕심내지 않을까?

 
버스가 주유소를 들렀다 가야 한다며 돌아가다가 기름을 채운 후
다시 빙 돌아 석포항으로 달려 가더니 중간에 아줌마 한 분을 태우고
다시 버스를 되돌려 상리로 간다. 거기서 아줌마가 기다리고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지? 아까 버스가 나올 때 부터 기다리고 있었나?


청바지를 입은 사람은 인근 공사장에 내리고 종점에는 나 혼자 내렸다.
황량한 마을에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새로 생긴 나들길 이정표 밖에 없다.


그 안에 아직 바람먼지도 묻지 않은 나들길 스탬프 보관함.
열어보니 비어있다. 스탬프는 석포항에서 찍으란다.


상주산을 한 바퀴 휘둘러 걷고 석포항으로 가는 해안가를 걸어 중간 지점인
동천까지 걷는 19코스 디자인. 안내지도를 보면 마치 산짐승들 잡을 때 쓰는
커다란 올가미 덫 모습이다.


우로 돌아가던 좌로 돌아가던 다시 이 곳으로 오게 되어 있기에 오른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어디에도 전혀 사람들이 다녀 간 흔적이 없다.
잘 가꾸어 놓은 곳도 없고 있는 것이라곤 커다란 식당 하나 뿐이다.


겨울에 김장독을 보관하는 듯한 작은 창고도 썰렁해 보이고
길가의 닭장에서 놀고 있는 덩치 큰 닭들도 내게 관심이 없다.

그리고 세멘트를 길을 조금 걷다가 바다를 보니 내 입에선 탄성이 터진다.
멀리 강화본토의 산들이 안개속에 희미하게 보이고
그 앞에 펼쳐진 바다도 산의 색깔을 닮았다.
은빛으로 빛나는 갯벌과 정지되어 있는 듯한 바다.
동요 가사 중에 은빛바다라는 것을 이 바다를 말하는 것인가?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 옆에 미끄럼방지용 모래상자가 있는데
폐 냉장고를 이용했다. 바닷가 나무 사이로 보이는 산은
지도를 보니 별립산일 것이다.


세멘트 길이 흙길로 변하면서 군부대를 지나니
바로 산기슭에 커다란 창고같은 건물이 완전히 폐가 수준이다.
어떤 용도로 지었길래 이렇게 방치되었을까.


아침 햇살에 빛나는 보석같은 바닷물에 완전히 매료되어
비록 주위의 나무들의 푸른 색깔이 모두 죽은 빛이라도 걷는 즐거움이 있다.


갯벌에는 은빛 갈대가 출렁이고 작은 모래사장도 아침햇빛에
더 희게 빛나고 있으니 이런 멋진 광경들을 혼자 보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적 없는 개인 사유지의 옆을 지나 나들길은 해안가를 걷는다.
오래 걷지는 않았지만 조금 쉬고 싶은데 앉을 만한 자리가 없다.
이런 곳에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작은 통나무의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바다를 벗삼아 낮잠이라도 자고 싶다.
잔잔한 슈베르트 가곡이 흐르는 이어폰 하나끼고
멀리 산을 휘돌아가는 구름을 벗삼아,
반짝이며 흐르는 바닷물을 촛점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천천히 물결같이 넘실대는 갈대밭의 흔들림이
내 몸도 안단테로 흔들리게 한다.


그러다 문득 둑 밑에 커다란 바위가 모여 있는데
내려가는 작은 계단만 있다면 그 바위 위에서 쉬면
좋겠다는 사치스런 생각을 해 본다.


둑 위에 낯선 문귀.
'남조선을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큰소리만 외치면 안전지역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쇠종.


북한과 가까운 이 곳. 만약 이 곳의 종이 울리면
인근 부대는 초비상이 걸릴 것이다.
자유로의 목숨을 건 탈출.
그러나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헤엄을 넘어 오는 것은
민간인만이 아니다. 몰래 침투해 오는 무장간첩일 수도 있다.
그리고 민간인이나 무장간첩이 헤엄쳐 오더라도 그걸 미리 발견못한
초병은 그야말로 인생 최대의 수난을 당할 것이다.
이 안내간판 하나가 참 최전방 부대의 섬뜩함을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숲길을 따라 걷는 동안 끊임없이
이번 나들길을 만들면서 새로 나온 안전다리들과 로프들이 있어
걸으면서 내내 감사하게 생각하며 걸었다.


최전방이라 그런지 어쩌다 보이는 무덤도 제대로 간수못하는 것 같다.
땜통걸린 개구장이 머리처럼 부분 부분 패인 무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자로고 무덤관리은 후손들의 생활과 화목의 상징이다.


구비 구비 돌아가는 숲길이 참 좋다.
물론 이 길이 이 지역 초병근무를 하는 군인들의 동선일 것이다.
그래도 민간인들이 올 것을 대비해 많이 보수해 놓은 모습이 역력하고
군인들이라면 그냥 올라갔을 낮은 비탈길도 새 로프를 해 놓았고
나무가 무성해 머리를 숙이면 지나갈 수 있는 곳도 나무를 모두 베어 놓았다.
혹시라도 비가 오면 한참 돌아가야 할 곳도 나무다리를 놓아
전천후로 편하게 해 놓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걸었나?
커다란 철탑이 보이더니 이정표가 나오는데
여기 쯤이 상주산 둘레길의 정반대편인 것 같다.


이 정도 걸엇으면 편히 쉴만한 곳이 있어야 하는데
길 가에 큰 돌도 없어 앉을 곳이 없다.]
그리고 화장실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비슷한 건물도 없다.
앞으로 쉴 곳도 야외 화장실도 만들어 지겠지.
첫 술에 배부르랴.


 
그런데 그 다음 이정표가 이상해졌다.
내가 넘어 온 길이 새넘이 길인 것은 확실한데
상리로 가는 길이 이정표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가도 상리, 왼쪽으로 가도 상리.
오른쪽으로 가면 밭 사이로 가는 것 같고
왼쪽으로 가면 가파른 세멘트 언덕길을 올라간다.
어디로 가나 망설이다가 설마 밭 사이로 가랴 하고
세멘트길로 가니 다시 삼거리가 나오는데
나들길 리본 이정표가 세갈래 길 모두 걸려 있다.
어찌하라고.. 어찌하라고..
내가 온 길을 아닐 것 같고
가야할 길이 두 길인데 섬을 휘돌아 가는 길이라면
오른 쪽길이 맞고 가로 질러 가는 길이라면
왼쪽의 가파른 언덕이 맞을 것이다.


오른 쪽 내려가는 길은 아무리 봐도 한 참 돌아가는 것 같아
잠깐 힘들겠지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왼쪽 언덕길을 선택했다.

 

가파른 언덕에 오르니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여유있게 휘파람을 불며 걸어 내려간다.
생각같아서는 그다지 높지 않은 상주산을 올라가 보고 싶지만
어디에도 상주산으로 올라가는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지도상에는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새넘이 길로 표시되어 있다.
어느 것이 맞는거지?


세멘트 길 끝나는 지점에 작고 예쁜 같은 모양의 펜션이 보인다.
그런데 펜션에서 키우는 듯 목줄도 없는 개 한마리가 나를 위협한다.
마침 주인인 듯 사람이 나오기에 개 좀 묶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예쁜 펜션을 보다가 그만 처참하게 지붕이 무너진 집이
길가에 있어 안타깝게 보여 이리 저리 내부를 살펴보니
흙담이 무너지고 그 안에 방도 흙과 쓰레기로 채워져 있다.
그러다 내 눈을 잡는 작은 제비집.
이 집에 살던 사람은 처마밑에 만든 제비집에 해마다 찾아오는
제비를 얼마나 좋아했을까?
내 어릴 적 살던 집에도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지어 해마다
봄이면 새끼를 낳고 길러 가을엔 먼 곳으로 떠나곤 했다.
비록 박씨물고 오진 않았어도 그 집에서 자란 형제들이 모두
제비처럼 결혼해서 떠나고 인생의 큰 과오 없이
모두 자기 삶들을 살고 있다.


모두 빈 집같지만 그래도 상주산을 지붕으로 한 어느 집엔
빨래가 널려 있어 평화가 느껴진다.


그러나 여기엔 마을 집보다 펜션이 더 많아 보인다.
평생 살던 주민들의 집은 허물어져 가고 있고
그 자리를 예쁜 오색의 펜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초가집이 예쁜 것은 계속 가꿀 때나 이쁘지
가꾸지 않으면 앞에 보던 집처럼 추해 보일 뿐이다.
이제는 예쁜 집은 초가집이 아니고
색깔이 잘 변하지 않은 튼튼한 건축자재로 만든
펜션들과 독립가옥들이다.
세대가 바뀌듯이 주거형태와 삶의 방식도 바뀌고 있다.


먼저 다녀간 길벗이 소개한 시골밥상집에 전화했더니
예약을 하지 않아 식사제공이 힘들어 하기에
그냥 집에서 드시던 밥을 주면 된다 했더니
서글 서글한 모습의 나이든 도시형 아주머니가
명절을 앞두고 출가한 아이들이 오면 줄 곰탕을 끓이고 있다며
먹고 가라기에 고맙다고 상을 받았는데
비록 반찬은 없어도 조미료를 안넣은 푹 고운 곰탕 국물만으로도
최고의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마주 앉아 얘기하다보니 부부가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에서 사셨고
비록 아저씨는 안계셨지만 나이를 생각해 보니까 돌아가신 우리
큰 형님과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셨을 것 같다.
인연이랑 이렇게 이루어지는가?  
식사비를 낼려 했더니 준비되지 않은 밥상이라고 한사코 안 받으실려하기에
반찬으로 나온 숭어 말린 것이라도 사가지고 가겠다고 하고
싸달래서 받아들고 돈을 놓고 나왔다.


마당에 있는 김이 펄펄 나는 큰 솥을 여니 진한 곰탕국물이 익어가고 있다.
이 곰탕국물에 국수조금 넣고 편육 몇 개 썰어 놓고 굵은 파 넣고
흰 쌀밥을 말아 고춧가루 넣고 휘휘 저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거기에 강화도 순무만 있다면 진짜 고향집에 온 기분 날 것 같다.


상주산을 한 바퀴 빙 돈 셈이다.
바닷가에 작은 휴식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여기서부터는 동촌까지 긴 둑길을 걸어가야 한다.


넓은 둑길 옆에는 새로운 하수천을 만드는지
끊없이 포크레인이 흙을 파내고 둑을 따라 깊은 하천을 만드는 공사중이다.
상주산을 멀리서 보니 참 봉긋한 여자가슴같이 이쁘고
그 앞에 이어진 깨끗한 둑길은 모델들의 긴 다리같다.


그렇게 끝없는 둑길을 걷는다.
지금은 비록 풀 한포기 없지만 해가 바뀌면 이 길도 각종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덮힐 것이다. 올 여름에 걷는 길벗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멀리 하늘에는 기러기들이 천천히 열을 지어 북으로 날라가고
먼 바다 끝에는 낚싯군이 움직이지 않고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건너편 낮은 산들이 바닷물에 투영되어 데깔꼬마니 영상을 만들어 낸다.
이 곳은 이 광경 보는 것만으로도 길을 떠난 보람이 있다.


둑 끝에 바다쓰레기 보관하는 곳에서 직원이 모자를 깊게 쓰고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두 갈래로 갈라진 길에 나들길 이정표가 건너편 횟집 입구에서
달랑거리고 있다. 리본을 따라가니 그 곳은 막힌 길이다.
횟집 주인이 리본을 식당 입구에 장식용으로 걸어 놓아 잠깐 착각했다.


그 반대편 길로 나오니 바로 오늘의 종착점인 동촌시점이다.
완주했다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맞은편에서 버스가 오고 있다.
원래 상리에서 출발한 버스를 기다릴려 했는데 보문사에서 오는 버스가
이 곳을 지나는가 보다.

급히 올라타고 석포선착장에 오니 페리호가 막 떠날려 준비를 하고 있어
뛰어가 승선했다.


그러고 보니 완주하고 20분만에 외포리로 돌아 온 셈이다.


내 차를 가지고 돌아오는 기분이 멀리 김포 평야위를 날라가는
기러기들이 평화롭다.


내 인생에 행복한 것들이 많아 좋다.
젊은 시절에 포크송에 빠져 살았고
사회에 나온 뒤에 클래식음악과 합창음악, 책, 미술에 대한 관심 그리고
여행에 빠져 살았고 이제 나이 들어 영화와 걷는 재미에 폭 빠져 산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까지 모두 내 옆에 공존해서 행복하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