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나들길 8코스, 철새보러 가는 길

carmina 2014. 4. 12. 21:50


2014. 4. 12

 

강화도 나들길 8코스, 철새보러 가는 길.

 

늘 이런 날 걸을 수만 있다면...
덥지도, 춥지도, 바람도 조금 있고,
비도 아주 가끔 볼에 살짝 스칠 정도?
땅에 먼지도 안나고, 질퍽하지도 않고,
잔디에 살짝 물기도 있고, 걷는 길벗도 적당히 있고,
점심은 내가 좋아하는 숭어회와, 조개회, 우럭탕, 조기구이...
5시간 정도 걸어도 다리 아픈 줄 모르고 땀도 적당히 흐르고..

 

길가에 벚꽃이 한창인 길을 버스가 달린다.
초지대교 앞에서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면서 갈등을 겪는다.
아직 시간남았는데 초지대교를 걸어가 볼까?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웬 승용차가 내 앞에 서더니 창문을 연다.

타세요. 야타족이네..평소 잘 아는 길벗이 BMW를 타고 가다가
정류장 앞의 나를 봤는지 내게 기분좋은 동행을 허락한다.

 

출발점인 초지진 앞에는 이마 많은 사람들이 걸을려 준비하고 있다.
이젠 트레킹문화가 보편화 되어 참 많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여기 저기 좋은 코스를 찾아 다니고 있다.

 

하긴 트레킹처럼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없다.
지구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연속에서 다같이 웃으며 레크레이션 겸
운동도 될 수 있으니, 가족들과, 친구들, 직장동료들, 낯모르는 이들이
모여 단지 걷는 것 하나로 호흡을 맞추어 길을 떠난다.
여느 스포츠처럼 누구 하나 잘 못한다고 틀어지는 것도 없고,
여느 게임처럼 익숙치 않은 사람들때문에 진행이 망가지는 것도 없다.

 

아침 안개일까? 황사일까? 옅은 비구름일까?
멀리 등대가 희미하게 그리고 시야의 저 멀리 초지대교가 안개속에 묻혀있다.
산 아래 짙은 안개 구름이 몰려 있고, 몽환 속의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어느 팀은 반대로 가고 어느 팀은 초지진으로 올라가 관광하고
우리는 나들길 8코스 철새보러 간다.

 

끝없이 펼쳐진 갯벌을 따라 길을 걷는다.
호화로운 모텔 건물이 있는 뒷길은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들과
겉으로 봐도 좋은 혈통의 아주 비싼 개 같은데 씻기지 않아서
털이 덕지 덕지 뭉쳐 있는 덩치 큰 개가 나무로 만든 허름한
개집에서 무언가를 내게 외치고 있는 듯 애처롭게 쳐다 본다.

 

초지대교를 뒤로하고 걷는 길 옆 갯벌에는 아직 갯벌 식물들이 자라지 않아
연한 검은 색이지만 아마 두세달만 지나면 여기도 함초로 새빨갛게 물들 것이다.

갯벌의 골이 깊다.
어릴 때 바닷가에서 놀다 저런 골에 빠져서 얼마나 허우적거렸던가..
바다는 무섭다.

물이 들어 오는 듯 멀리 바다 한가운데 배들이 한 곳에 몰려 그물을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더 멀리 보이는 바다에도 배들이 아침 작업을 하고 있다.

 

황산도로 가기 위해 일부러 갯벌위를 걷게 하기 위해 길게 설치한 나무다리도
오랜만에 이 코스를 걸어서인지 더 길게 설치해 놓았다. 데이트 코스로도
아이들의 견학에도 좋을 것 같다.

 

가끔 갯벌 속에 작업하는 사람이 보인다.
저렇게 멀리까지 나가서 무엇을 잡는 것일까?
물이 들어오면 벗어나기도 힘들텐데 위험해 보인다.

 

황산도 어판장에는 어부의 아낙들이 가게 앞에 둥그렇게 둘러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다듬고 있다. 아침에 배들이 잡아 온 그물에서 큰 물고기를
건져내고 남아 있는 잔 바다생물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새우, 망둥어, 참조기 등등 온갖 것들이 꾸물대며 무더기속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다. 아낙들이 손에서 골라낸 것들이 그물위에 나란히 열을 지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이런 생선 비린내들이 내 후각을 즐겁게 한다. 어릴 적 화수부두에 나가서
맡던 냄새들, 그 부두에서 일하던 동네 아주머니가 가지고 온 커다란 양동이에는
늘 이런 무더기 생선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황산도 옆으로 가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임시로 만든 돌계단옆에 튼튼한 나무다리도 세워 놓았고
사람들이 산책을 할 수 있도록 멀리 섬끝까지 나무다리를 해 놓아
드라이브 왔던 사람들이 여유있게 산책하고 있다.

 

스테인레스로 만들어 놓은 농게조형물이 언제나 반짝 반짝 빛나고 있어
사람들의 포토존으로 아주 적격이다. 섬 저편까지 이어진 나무다리를 따라
걷는 언덕 위에 분명히 눈에 보기엔 커다란 바위인데 그 위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경탄을 한다. 어떻게 저런 곳에 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 그것도 아주 큰 나무가..
자연은 아주 작은 생존 조건만 있어도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는데
나무에는 없는 지능을 가진 인간은 아주 작은 어려움만 처해도 쉽게
목숨을 포기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자연에서 배워야만 할 것 같다.

 

황산도 끝에 나오니 갯벌 가에 이상한 구조물들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이는 밀물시나 혹은 태풍시에 떠밀려 들어오는 쓰레기들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한다. 그거 참 좋은 방법이네.. 지난 번에 여기왔을 때도
이 바닷가에 쓰레기들이 많이 밀려와 있어 눈쌀이 찌푸러진 적이 있었는데..

 

거대한 어시장이 한 집 빼 놓고 웬일인지 모두 장사를 포기했다.
한 때 이 곳에 커다란 어시장으로 만들려 했다가 아무래도 주변 경치가
안 좋았는지 혹은 사업주가 망했는지 이 큰 건물이 거의 유령의 집처럼
변해 버렸다. 어느 길벗이 하는 말.. 아무리 그래도 하나 있는 음식점이
맛있어 사람들이 찾아 오면 다른 사람도 그 옆에서 사업을 할 것 같은데
하나 남은 집이 별로 맛이 없단다.

강화는 이렇게 개발하다 포기한 곳이 자주 보인다.
특히 이 곳 강화의 동남쪽 해변은 좀 썰렁한 편이다.

그래도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은 커다란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다.
차들이 길 옆에 주차되어 있고 바로 그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웠는데
순간 어느 낚싯군의 낚싯대가 휘청하고 커다란 곡선을 그린다.

우리도 걷다가 우르르 그 쪽으로 달려 갔다.
손바닥 2개 정도의 큰 참돔이 낚싯대에 끌려 오다가 뜰채로 건져서
커다란 망에 들어 가는데 그 망에도 이미 잡은 물고기가 많다.
그 모습을 부러운듯이 바라보는 옆의 낚싯군의 표정이 재미있다.

그런데 고기는 주로 사람들 많이 몰려 있는 곳에 많이 잡히고 있다.
혹시 낚싯터 주인이 지금 이 시간에 고기를 풀어 놓은 것일까?
한 쪽에서는 조용한데 다른 한 쪽에서는 연이어 낚싯대가 팽팽하게 당겨진다.

열심히 사진찍고 있는데 다른 이들은 벌써 저기 멀리 걸어가 버렸다.

웃고 즐기다 보니 벌써 한 시간을 걸었다.

도로 옆에 각종 봄나물과 잡곡, 고구마 그리고 순무를 가지고 나온 할머니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 측은해 보인다. 언젠가 차로 지나갈 때는 순무라도
구입했는데 오늘은 미안하지만 그냥 지나친다.

 

도로 밑으로 난 낮은 바위둑으로 코스가 이어져 있어 내려갔는데
한참 걷다가 이 길은 억지로 도로를 걷지 않게 하기 위해 코스로
지정되어 있지만 커다란 돌들을 조심스레 밟느라 시야를 다른 곳에 둘 수 없어
걷기에는 그다지 좋은 길이 아닌 것 같다.

 

길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멀리 낮은 언덕에는 진달래가 가득한
자연의 모습에 오래 걸어도 힘든 것을 느끼지 못한다.

인근의 말 사육장에는 체험나온 아이들이 무리지어 걷고 혹은
트랙터를 개조한 트럭을 타고 다니며 휴일을 즐기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자 길 옆에 묶여 있는 키 작은 검은 말 한 마리는
뚱뚱해서 거의 움직이지 못 할 것만 같다. 혹시 애기를 가졌을까?

 

강화도의 모든 곳에서 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특히 드넓은 땅들에 고구마를 심기 위해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데
트랙터로 잘 다듬은 밭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드넓은 갯벌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눈으로 보는 시야보다 더 넓고 더 먼 갯벌에 비록 아무 움직임도 없게 보이지만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수 많은 생명체들과 그 속에서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는
어민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참으로 경이롭기만 하다.

 

둑에 인접한 갯벌들이 많이 파헤쳐져 있기에 가만히 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커다란 호미를 들고 갯벌을 파헤치며
낚싯군에게 절대 필요한 미끼인 갯지렁이를 잡고 있는 듯 하다.

 

동검도를 끼고 돌아가는 길에 매번 올 때마다 보기 흉하게 다 찢어진
가림막으로 막아 놓았던 공간이 모두 터져 있다. 당초는 대규모 위락시설을
만든다고 팻말이 붙어 있었기에 그 안에서 무언가 커다란 공사가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텅 비어 있다. 그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나?

감추어 두었던 공간이 눈에 보이니 전혀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 좋다.

멀리 재미있게 생긴 펜션들이 보인다. 기울여 놓은 집, 거꾸로 세워진 집,
개인 집인것 같은데 정원이 무척이나 깨끗하고 잘 지어 놓아 자꾸 눈길이 간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이렇게 보기 좋은 건물과 펜션들이 많다.

점심 시간이라 그런지 품바 타령이 들리는 선두리 어판장에
일반 차들이 가득 차 있다. 그 옆길로 우리가 찾아가는 식당이 있는
다른 선두리 어판장으로 가는 길은 이전에 걸었던 길과 사뭇 달랐다.

 

길을 걷기 편하도록 잘 다듬어 놓았고 굳이 세멘트 둑길을 걷지 않아도
여러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넓직한 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쉴 수 있는 정자와 의자를 만들어 놓아 특별히
이 코스만을 걸어도 충분히 나들길을 즐길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오늘의 점심은 아주 푸짐했다.
숭어회, 조개회, 멍게, 생선구이, 매운탕 그보다 더 좋은 메뉴는
같이 먹는 길벗들의 웃음.

 

식사를 하고 나와 옆의 식당 간판을 보니 낯이 익은 간판. 화수호.
어? 내가 어릴 때 자란 동네 이름이네..
앞에 나와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내 말이 맞다.
내 고향에서 장사하던 사람이 같은 상호를 가지고 여기 와서 장사를 하고 있다.
오메 반가운거...

 

맛있는 점심으로 포만한 배를 두드리며 걸어가는 발걸음은 더 날라간다.
분오리돈대로 가는 길은 원래 경계초소를 서는 군인들이
가는 길인데 이 길을 개방해 놓아 우리 길벗들이 편하게 바다를 즐기며
걸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모자를 벗으니 머리가 시원하고 상쾌해짐을 느낀다.

 

길벗들이 하나같이 감탄을 하며 걷는다. 이 길 참 좋다.
끝없이 이어지는 긴 둑길. 그 둑길 밑으로 바닷물이 들어 오고 있다.
평평한 갯벌위로 순식간에 바닷물이 스며들고 있다.
우리가 걷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물이 들어오는 것 같다.

 

순간 앞서가는 여자가 비명을 치며 뒤로 도망치고 있다.
남자들이 가서 보니 말라죽은 뱀 한마리가 둑길 한 가운데 있는데
자세히 보니 뱀의 머리가 잘라져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둑이 끝나는 곳에 갈매기들이 무리지어 있어 날라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훠어이 훠어이 하고 크고 날카롭게 소리지르니 모두 하늘로 날아 올라
멀리 가 버렸다. 내 모습을 본 길벗들이 내게 불평한다.

 

그렇게 오늘 길을 끝낸다.
땀도 흐르지 않았고, 코로 들어오는 바람들이 상쾌했다.
웃음소리도 더 커졌고, 내가 흥얼거리는 노래도 더 자주 울렸다.

 

늘 같은 길을 걷지만 느낌은 매번 다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같은 길을 걸으면서 즐거워 한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