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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carmina 2014. 5. 11. 16:20

보길도

 

사는 것을 꼭 늘 애들이 아직 곤히 잠든 시간에 일찍 출근하여 낮에 종일 종이냄새만 물씬 풍기는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저녁에 피곤한 몸으로 전철에 몸을 부딪히며 퇴근하여 애들의 형식적인 인사와 아내의 저녁 드셨어요, 피곤한데 TV 보지 말고 일찍 자요 라는 몇 마디, 그리고 침대로 들어가 다시 내일을 위해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만 살아야 하는가?

오랜 직장생활을 잠시 마무리 짓고, 나만의 시간이 있던 날. 어디론가 가야만 할 것 같고 내 삶의 끝을 어떻게 진행시켜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아 땅끝마을을 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 곳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러 생각들을 할 수 있을 것 같기에 여름에 바빠서 사용하지 못했던 휴가를 내고 땅끝마을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수집하여 갈 곳을 정해 놓았다. (참고로 글 아래부분에 참고 사이트 표시해 놓음)

내 착잡한 심정을 아는 아내도 며칠이 될지 모르는 여행을 순순히 허락해 주고 10 4일 아침에 애들 학교 보낸 후 늘 그러하듯이 조그만 가방하나 싸 들고 전철을 탔지만 그때까지 기차를 타고 갈지 버스를 타고 갈지 정하지 못했다. 기차는 영등포 역으로 가야 하고 버스는 7호선을 타고 고속터미널로 가야 하니 부천에서 역곡까지 가는 사이에 고민. 결국은 7호선을 타고 싶어 고속버스로 택하고 새로 지은 고속터미널 빌딩에 도착하여 아직 점포들이 입주하지 않아 썰렁한 호남선행을 찾아 표를 사니 출발 5분 전.

이 시간에 떠나는 버스는 우등이라 가격이 조금 비싸다. 그래 아직은 이번 달 내 수중에 들어 올 월급이 있으니 우등을 타도 되겠지. 예상은 했지만 평일이라 우등 고속버스 출발이 아까울 정도로 사람이 뜸하고 내 주위에 시골에서 오래 살았음직한 아주머니들이 포진하고 있다. 발 밑에는 보따리 하나씩 챙기고 앉자마자 투박한 남도 사투리가 들린다. 어머니를 시골로 보내 드리는 듯한 젊은이가 버스 떠나기 바로 전까지 타고 있다가 출발 시간이 되자 아쉬운듯이 내리며 버스를 쳐다 본다. 나에게도 저런 어머니가 있었으면….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어쩔 수 없이 엿듣게 된다.
낸 딸을 다섯을 두었는데 셋을 여의고 이제 둘 남았당께
..
아주머닌 나이가 몇이당가?

얼굴전체에 밭고랑만큼이나 가득한 주름살, 손은 왜 그리 투박한지. 성한 손톱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그 손가락엔 굵은 금반지가 끼어 있고 옷은 시골 장터에서나 자주 볼 수 있는 주름치마. 신발은 며느리가 사 준듯한 편한 신발. 모든 젊음의 육신들을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물려 주고 남은 것은 죽을 때 버려도 아깝지 않은 것들. 인생인생

버스가 청원을 지날 때쯤 내가 이제까지 근무하던 직장의 커다란 팻말이 고속철 현장에 크게 붙어 있다. 저 직장에서 10년을 일했던가? 내 인생의 황금기를 무엇을 위해 보냈던가? 쓸데 없는 생각에 빠져든다.

지난 폭풍우에 쓰러진 안타까운 논의 농심들을 바라보면서 버스는 남으로 남으로 향한다. 거의 막힘 없는 고속도로, 어느 순간에 대전을 지나고 호남고속도로로 접어 들어 점심을 먹을 때쯤 여산 휴게소에 들러 간단한 점심을 때우고 커피 한 잔 빼 들고 시간이 될 때까지 버스 옆에서 맑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다가 버스에 올라 오니 내 뒤에 앉은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버스 기사 좌석으로 가 보라 한다. 아직 기사아저씨 오지 않았다고 대답하니 나보고 점심을 어떻게 먹었느냐며 내 지갑이 기사 좌석에 있으니 찾아 가라 한다.

오랜동안 앉아 있느라 뒷 주머니에서 지갑이 빠져 나갔나 보다.  고맙다고 여러 사람에게 거듭 감사하니 금방 정이 붙었는지 옆의 아주머니 오징어를 찢어 나를 준다. 더욱 미안하게 만드시네. 내 나이 또래의 남자 한 분이 하얀 모자를 눌러 쓰고 무심코 창가를 바라보고 있다.

차가 광주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와 나주를 지날 때쯤 배가 한철이라 길가에 배를 파는 가게들이 많이 보인다.  
허벌나게 싸게 팔아부요

와 보랑께요

군데 군데 일렬로 늘어 앉아 감자인지 고구마인지를 캐는 아줌마들을 보고, 이정표를 보니 13번 국도. 이 국도가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통일 전망대까지 도보로 국토 종단한 오지여행가 한비야가 그렇게 좋아하던 길인가? 문득 같은 길을 걸어 보고픈 생각이 간절해 진다. 나도 해 낼 수 있을까?

해남에 도착. 작은 도시의 버스터미널은 어찌 그렇게 볼품이 없는지.. 하긴 그렇게 투박함이 시골모습이 아닐까? 칡머리마을이라는 이름의 갈두리가는 버스표를 자판기로 구입, 물하나 사들고 버스에 오르니 이 곳도 한산. 버스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골길로 접어 든다.  길가의 코스모스가 만개하고 신발 주머니를 빙빙 돌리며 하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날씨만큼이나 싱싱하다. 어느 순간 바다가 언뜻 보이는가 싶더니 구불 구불 돌아가는 길에 파란 바닷물이 하늘 빛 같이 빛나고 있다.  MBC 드라마 허 준의 유배지라는 간판이 크게 써있는 것을 보니, 이곳도 허준드라마 선풍에 한 몫 보고 있나 보다.

전라도는 이조시대부터 어의에 거슬린 불순한 선비들의 유배지가 많아 유난히 발전이 늦었다. 그러한 전통이 현대까지 남아 아직도 전라도 쪽은 모든 발전의 속도가 늦다. 경상도처럼 새재를 넘어가는 험한 길도 아닌데 투자는 늦었고 길은 좁았다. 지금도 부산가는 고속도로는 호남선으로 들어서는 순간 좁은 길로 바뀌어 교통체증에 짜증이 난다.

버스는 바로 땅끝 앞에 도착한다. 코에 들어오는 신선한 향기 그리고 고기잡이 배 냄새, 생선냄새, 바닷물 냄새, 숨부터 크게 쉰다.  막 도착한 고깃배에서 고기를 꺼내고 있는데 제법 큰 삼치를 꺼내어 바닷가로 옮겨 놓는다. 그런데 고기가 모두 냉동이 되어 있어 자세히 보니 배의 커다란 아이스박스에서 꺼내고 있다. 옆에 사람에게 왜 고기를 냉동시켜서 가지고 오느냐고 물어 보니 아마 멀리서 잡아 온 것 같다고 하기에 흥미를 잃는다.

커다란 페리호가 손님들과 차량의 승선을 기다리고 있고 몇 몇 작은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는 한가로운 풍경.  막 방파제로 들어가는데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갑자기 큰 소리 친다. 물렸어 물렸어. 나도 얼른 뛰어가서 보니 수면에 바짝 고기 한 마리가 낚싯줄에 딸려 오고 있다. 금새 육지로 끌려 온 팔뚝만한 숭어 한 마리가 퍼뜩대며 낚싯군의 손아귀에 쥐어 잡힌다. 대어를 잡아서 기분이 좋은지 목소리가 바닷가에 가득하다.  천천히 방파제를 따라 걸어가니 낚싯군이 몇 명 더 보이는데 그 중 한명은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매고 낚시를 하고 있다. 이 곳까지 드라이브를 왔다가 낚시를 빌려서 시간을 보내고 있나 보다.

방파제 끝에 등대 공사가 한참이다. 고요해야 할 바다가 제너레이터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럽다. 방파제의 커다란 돌 위에 앉아 주위를 돌아 본다. 땅 끝이라 하는데 수평선은 보이지 않고 많은 섬들이 눈에 들어 온다. 다도해. 섬이 많은 바다. 어찌 이리도 이곳은 이렇게 부서졌을까?  찢기고 부딪혀서 산산이 부서진 육지의 파편들이 바다 위에 모체를 떠나지 못하고 머물고 있다.

멀리서 높은 봉우리에 땅끝탑이 보인다. 족히 한 시간은 올라가는 거리라 해서 머뭇거리고 올라가지 못한다. 오늘 이 곳에서 하룻밤 자려고 생각했기에 해 지기 전에 충분히 다녀올 시간은 있건만 배 나온 것이 게으름의 원인이다. 보길도 가는 마지막 배가 떠나는 것을 보며 몇 번인가 망설였다. 보길도에 오늘 가느냐, 내일 가느냐..
결국 오늘 가는 것을 포기하고 뱃고동을 울리며 멀리 사라지는 페리호를 망원경으로 잡아본다. 아득히 먼 곳에 안개에 쌓인 섬을 향해 천천히 물길을 가르며 가고 있는 배의 뒷 모습이 어찌나 쓸쓸한지..

앞 일을 생각하며 수첩에 메모를 해 보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아 쉽게 적어지지 않는다. 에라. 일어나자.  부둣가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방파제 바로 밑의 커다란 바위위에서 아까 그 낚싯군과 친구들이 이제까지 잡은 고기들을 회를 치고 있다. 회칼이 아닌데도 회를 써는 솜씨가 일품이다. 큰 고기는 뼈를 바르고 살을 큼직 큼직하게 썰어 회를 치고 작은 고기는 뼈까지 회를 치니 군침이 아니 동할 수 없다.  그냥 돌아서려는데 나를 불러세운다.
이리 내려 오소. 같이 먹읍시다. 우리 먹기도 많은 양이니이리 오랑께

주저할 내가 아니지. 가방을 방파제에 그대로 놓고 살아 있는 생선같이 몸만 펄떡 뛰어 둑 아래로 내려갔다.

나무 도마위에 큼직한 회들이 아직 살아 있는 듯하다. 상추와 깻잎을 이미 준비해 놓았고 초고추장과 마늘까지 종이컵안에 담아 놓았다. 그러나 이런, 젓가락이 없네. 젓가락이 없으니 상치로 초장을 찍어 먹으란다.  그럴 필요 없지요. 회를 그대로 집어 고추장을 찍어 먹으니 입에서 회가 녹는다.  나에게 진로가 아닌 보해 소주를 한 잔 주려다 보니, 벌써 병이 밑이 동 나있다. 내가 다녀 오리다 하고 얼른 뚝을 제비처럼 날아 올라 근처 가게에 가서 보해 2병을 사다 주니 무척 좋아한다.  뼈까지 썰어 놓은 고기는 머치라 하기에 처음 듣는 이름이라 했더니 작은 숭어 를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같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덩치가 무척 좋다. 말을 들어 보니 서로 행님, 행님하며 부르는 폼이 아무래도 이쪽의 어깨들 같다. 자칭 배에서 몇 년을 살았다 한다. 이렇게 다니길 좋아해서 차에는 낚싯대, 텐트 등 야영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준비되어 있단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핑계김에 회 한 번 제대로 먹었다. 그렇게 먹다 보니 날이 저물어 가고 피차 고맙다고 하며 헤어져서 나는 민박을 잡았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자고 싶어 일부러 이층에서 잘 수 있는 곳을 잡았다. 비수기인지라 방값도 싸고, 민박인데도 방에 욕실이 딸려 있고, 번듯한 TV까지 놓여 있다.

배가 출출해 인근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하나 먹으니 반찬들이 전라도 음식이라 그런지 무척 맛이 있다. 어두운 밤 바다.  빈 주차장이 더 크게 보이고 바다를 지키는 군인들 초소 옆의 방파제에 걸터 앉아 하늘을 본다. 반달. 별이 많고 달무리인지 구름인지 모르지만 달 주위에 큰 하얀 원이 그려져 있다. 그대로 누워 잠들고 싶었다.

이튿날, 이불 속에서 일출을 볼까 말까 무척 망설이다가 결국 못 일어나고 말았다. 평소 습관대로 눈은 일찍 떠졌지만 따뜻한 방바닥이 좋아 누운 채로 훤히 밝아 오는 창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은 선착장 앞의 구멍가게에 들어가 컵라면으로 때웠다. 어떤 이들이 나같이 컵라면에 소주로 아침 해장을 즐기고 있다. 라면을 거의 다 먹었는가 싶은데 주인아주머니가 아무 말 없이 김치를 놓고 간다. 아이고 이런 일찍 주실 일이지. 그러나 신 김치 맛이 너무 좋아 라면 국물만으로 김치를 다 먹어 버렸다.

승선을 위해 개인 신상을 기록하고 가격을 물으니 6700. 너무 비싼 것 같기에왕복이죠?’ 하고 물어보니 편도란다. 커다란 페리호에 사람보다 차들이 더 많이 들어 왔다. 승용차 몇 대, 봉고차 1, 그리고 모두 커다란 화물용 트럭들이다. 천천히 선실들을 돌아 다녀 본다. 승객용 선실엔 사람들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하긴 들어갈 사람도 없다.

배가 출발하기 전에 페리호를 배경으로 한 장 찰칵했더니 배 옆의 멋진 조그만 섬을 왜 안찍느냐며 선원인듯한 사람이 힐난한다. ‘그래요 찍읍시다.’ 작은 돌 섬 위에 소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다.  

뱃고동을 울리며 배가 천천히 방향을 바꾸어 출발. 배가 돌아서니 보이는 것은 망망대해 뿐, 우리가 가야할 보길도가 아주 까마득히 보인다. 배는 하얀 포말을 가르며 앞으로 헤쳐 나가고 포말들은 부채꼴로 퍼지면서 사라져 버린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발 아래 보이는 구름의 모습이 지금 배에서 보이는 포말의 형태와 너무 비슷하다.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눈 앞에 보이는 바다를 점점의 하얀 물체들이 가득하게 덮고 있다. 이 곳이 완도 진도의 김양식장들이구나. 그 갯수는 갈수록 점점 많아지고 중간경유지인 넙도쯤에서는 뱃길 외에는 거의 바다를 덮었다.  아침에 김발을 헤치며 조그만 나룻배가 바다에서 미역을 건져 올리는 것이 보인다.  

 

넙도에서는 공사자재를 가득실은 차들이 내리자 섬과 섬을 오가며 장사하는 듯한 1톤 트럭들이 차 뒤에 계란, 과일, 생활용품들을 가득 싣고 오르고 또한 낙도를 돌며 전기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전력공사의 트럭도 익숙한 운전실력으로 들어와 자리 잡는다.

포말이 부서지는 것을 보다가 문득 봉고차 안에 있는 젊은부부인듯한 커플이 입맞춤을 하다가 그만 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겸연쩍게 웃음을 짓고 둘이 서로를 쳐다보며 까르르 웃는 듯 하다.

배는 조그만 조선소가 줄을 이어 있는 섬을 지나다가 보길도선착장이 눈 앞에 있을 때쯤 시동을 끄고 천천히 보길도 청별항 부둣가에 닿는다. 건너 편 섬에는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산 중턱에 빨간 벽돌과 종탑이 있는 조그만 교회 두개가 나란히 보인다.

배 안에 있던 차들이 쏜살같이 배를 빠져 나가고 나도 천천히 걸어서 어떻게 여기를 돌아보나 하며 선착장에 있는 지프형 택시들을 보고 있는데 배 안에 있던 봉고 차가 나오면서  내 옆에 오더니 자기들도 보길도 관광왔는데 혼자오셨으면 같이 여행하자고 권유한다. 머뭇거렸다간 그냥 갈 것 같아 얼른 승락하고 차에 올라타니 실내는 완전히 살림살이하는 사람들처럼 뒤의 의자는 펼쳐져 침대처럼 놓여있고, 각종 화장품과 옷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놓여 있다. 아무렴 어떠냐. 이 사람들이 나를 처음부터 자기 차로 불러 들일 계획은 없었으니 나도 이렇게 편한 상태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들같이 보이는 이들은 최근 며칠간 계속 여행만 다녔단다. 강원도 통일전망대, 문경새재, 그리고 보길도를 거친 후 부산으로 갈 예정이란다.

여자는 남편에게 항상 즐거운 말로 쉴새없이 재잘거리고 있고, 남자는 그 재잘거림을 잘 받아주고 있다. 남자가 하루 보통 13시간을 운전하는데 자기도 절대 옆에서 졸지 않고 쉴새없이 남편에게 말을 시켜 운전이 싫증안나게 한단다. 여자도 장기여행의 기본을 지키고 있다.

차가 굽이 굽이 바닷가길을 돌아가다가 어느 곳에 오니 갑자기 앞이 탁 트인다. 망끝전망대라고 푯말이 있고 차를 내려 앞을 보니 절벽 아래부터 시작하여 탁 트인 바다 건너 저 건너 섬까지 한 눈에 들어 온다.  바다 어장들이 조용히 가을 벼같이 익어가고 있는 것 같고, 절벽아래에는 젊은이가 한가롭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봉고 안에 있던 젊은 여자가 쏜살같이 방책선을 넘어 절벽아래로 내려가더니 풀 속에서 무언가 뜯어 손에 가득 움켜 잡는다. 아마 쑥을 뜯는 것이리라. 어느 여자가 이런 곳에서 쑥을 뜯을 생각을 할까? 참 바지런한 사람이구나 하고 혼자 슬며시 웃음짓는다. 남편도 ?아 내려가고 나도 덩달아 따라 내려갔다. 가파른 경사길에서 멋진 사진 찰칵.

 

젊은 여자가 동해안에서 본 5가지 바다 색깔을 이야기하며 이 곳은 그렇게 멋있지 않다고 아쉬워한다. 같은 바다 빛깔에서도 어느 사람의 눈에는 5가지 색이 보이고 누구의 눈에는 그저 한가지 색밖에 보이지 않으니 참 신비하게도 하나님은 인간의 품성에 감성이라는 모습을 하나 더 주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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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다시 올라 섬을 일주하고자 계속 주행했으나 가다가 보니 남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차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되돌아 온다. 이 쪽의 집들은 돌이 많아서인지 담이 모두 돌을 쌓아 만들었다. 차로 조금 스치면 돌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 조심 조심.  보길도는 섬의 여러 곳에 배가 닿을 수 있도록 선착장이 마련되어 있다.

보길도는 섬이 전체적으로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로 이름나 있다. 윤선도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다가 태풍에 잠시 이 곳에 들렀다가 이 곳이 너무 좋아 그대로 눌러 앉았다고 하며, 오우가, 어부사시가 등 섬 곳 곳에 윤선도의 시비가 가득하다.

특히 부용동 일대는 윤선도가 학문을 닦고 유흥을 즐겼던 세연정, 글을 읽으며 살던 곳인 낙서제, 젊은 부인과 휴식을 취하던 동천석실이 있다. 제일 먼저 세연정을 찾았다. 정자 주위의 연못에선 연꽃이 자라고 있고 커다란 돌에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새겨져 있다.
윤선도가 읊었던 오우가에 수석과 송죽 그리고 달의 다섯 친구가 이 곳에 모두 있었다
.
깨끗한 물, 커다란 바위, 소나무와 대나무 숲, 그리고 어젯 밤 내가 본 달이 이 연못에 비쳤으리라. 정자에는 불을 땔 수 있도록 아궁이가 마련되어 있었다.

연못가에서 자연학습을 하고 있는 초등학생 무리들과 나이 지긋한 남자선생님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같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 저 선생님의 역할이 지금의 내 모습이었으면

동천석실을 찾기로 했다. 가는 길의 아스팔트위에는 벼를 말리기 위해 도로의 반은 농부들이 차지하고 있어도 전혀 교통 장애는 없다. 계곡 입구에 차를 세우고 물하나 없는 계곡의 바위들을 조금 지나가니 조그만 숲길로 길이 이어졌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길을 따라 젊은 부부보다 일부러 조금 앞서 갔다. 이런 길에서 둘만의 감정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하얀 도포를 걸치고 이 길을 천천히 올라갔던 윤선도의 모습이 베토벤의 산책 모습과 연결지어 연상되는 것은 나까지 그런 여유로움을 즐기고 싶어서인가?

20분 정도 올라가니 아주 조그맣고 까만 정자 하나가 창문을 모두 열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윤선도가 젊은 각시를 데리고 이 곳에 와서 즐겼다는 설이 있는데 이렇게 좁은 곳에서 둘이 마주 않아 있는 것만으로도 답답할 것 같다. 그러나 정자에서 바라본 시야는 너무 탁 트이고 저 아래 마을이 바로 한 눈에 들어 온다. 이 곳에서 도르래로 저 아래 마을과 연결하여 음식을 실어 날랐다고 하니 거리상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조용한 마을, 그 당시에야 더 집이 적었겠지만 이런 인적 뜸한 곳에서 사는 선비의 심정은 어땠을까? 정자 바로 아래에는 작은 연못 비슷한 곳이 있어 책을 읽다가 멱을 감을 수도 있도록 해 놓고 정자 옆에는 마치 1인용 소파같은 바위가 있어 아늑함을 주었다.  

 

진한 포즈의 두 사람을 사진찍어 주고 여자의 슬리퍼 끈이 떨어졌지만 주워 온 끈으로 칭칭 동여매고는 남편에게 걱정말라고 안심시키는 젊은 아내가 무척 이쁘게만 보인다.

동천석실을 내려 오니 경찰 차가 우리 차의 번호를 적고 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그냥 습관적으로 적는 것이라고하긴 이런 조그만 마을에서 이방인의 모습은 무척이나 경계해야겠지. 도난 사고는 섬내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

 

낙서제로 가기 위해 길을 나오니 체험학습장이라고 만들어진 곳에 조그만 돌 밭 자갈길을 만들어 놓고 길에 윤선도의 시들을 적어 놓아 학생들이 돌아가며 읽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 곳은 유난히 돌 탑이 많아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간 모습이 보이고, 안내문에도 보길도 주민들이 애써 만든 것이니 훼손하지 말라고 경고가 붙어 있다.  이들은 이 고장에 윤선도라는 선비가 있었음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가 남긴 글들을 여기 저기 이런 식으로 장식해 놓아사 여행오는 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관리사무소인 듯한 콘테이너도 벽은 돌로 지붕은 볏짚으로 외부를 모두 감싸 놓아 그럴 듯하게 만들어 놓았고 산책길의 안내선도 줄에 빈 펫트병을 촘촘히 걸어 놓아 제법 신경을 썼음을 짐작케 한다.
 

낙서제로 가기 위해 좁은 시골길을 올라가는데 콘크리트 포장을 하면서 누군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도로에 반영시켰다. 흔한 자그마한 돌로 길의 중간 중간에 하트표시, 집표시 태극표시 등등을 형상화 해 놓아 그저 밋밋한 길에 생명을 주었다. 낙서제(樂書齊), 글 쓰기를 즐겨하는 곳인가? 윤선도에서 이 집에서 일생을 마쳤다 하는데 집은 온데 간데 없고 집터만 있다. 연못터가 있고 집의 돌담 울타리가 남아 있어 제법 큰 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금 신경을 쓰면 집터를 복원해 놓고 각종 기념될 만한 것을 준비해 놓으면 좋겠다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외국은 유명인이 잠시 하숙한 집도 좋은 관광장소가 되는데 윤선도같은 유명인이 살다가 죽은 곳인데도 집터밖에 없다니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출출하다. 아침도 간단히 컵라면하나로 때웠으니 그럴만도 하지. 이미 이 곳에 한번 와 본적이 있다는 젊은이가 차를 몰아 어디론지 가고 있다. 중리 해수욕장과 통리 해수욕장 가는길. 비탈길를 내려가니 하얀 백사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이렇게 좋은 곳이니 여름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몇 몇 사람이 그물로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차를 달려 여기 저기를 돌아 다녀 보아도 음식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던 중 어느 문을 연 식당이 반가워 주차를 했으나 장사를 하지 않는단다. 하긴 문을 열어도 올 손님도 없을 테니 차라리 쉬는게 상책일것이다. 이런 곳들은 여름한 철 장사뿐임을 실감케 한다.

어쩔 수 없이 선착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나마 문을 연 식당이 별로 없다. 아무 식당이나 택해 들어가니 어제 해남으로 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홀로 앉아있던 하얀 모자의 남자가 식사를 하며 아는 체를 한다. 저 사람도 나와 같은 기분으로 여행을 떠났을까?

꽃게찌게를 먹자하는 것을 혹 수입품일지도 모르니 이 곳에서 잡는 것으로 먹자하고 낙지전골을 택했다. 찌게가 끓기 전에 밑반찬들이 맛있어 그만 밥을 거의 다 먹어 버리고 말았다. 빨간 김치, 개흙에서 자라는 톳나물, 벤뎅이젓갈, 꼴뚜기젓갈들이 얼마나 맛있는지..

음식을 거의 다 먹을 때쯤 같이 식사하던 남자가 슬며시 나가 점심값을 내려 하기에 극구 붙잡고 내가 내고는 동천다려(洞天茶廬)에 가서 차나 한 잔 사라고 권했더니 자기들도 그 곳에 가고 싶었다고 얼른 핸들을 그곳으로 돌린다. 동천다려. 인터넷 안내지에도 해남 보길도 소개에는 어느 사이트건 이 찻집이 꼭 포함된다.

주인인 시인이 찻집과 민박을 겸업하면서 처음에는 학자들만 민박으로 받았기에 많은 지식인들과 박노해를 비롯한 민중운동가들이 주로 찾았다는 이 곳의 찻집에 들어 서니 두 마리의 호피무늬개가 제법 큰 소리로 짖어대기에 조금 걱정했지만 마당을 정리하다가 맞아 주는 곱상한 얼굴의 주인이 안심시켜준다. 한눈에 보기에도 집의 우선 분위기부터 틀리다. 인사동의 조그만 카페같이 높이가 낮은 테이블과 실내에 불규칙하게 쌓아 놓은 각종 철학책들 그리고 언론잡지들,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본 오랜 LP, 존 바예즈판이 세워져 있고 바로 아래 나나무스끄리의 검은 안경테가 내 눈을 반긴다.  손님들의 방명록이 마치 족보를 적는 공책같이 생겼는데 그중 오래 된 것을 보니 제일 먼저 박노해의 시가 적혀 있다. 그리고 처음 몇 권째의 방명록에는 그래도 문체만으로도 학문이 있을 것 같이 사람들이 주로 적다가 최근 것에는 인사동의 카페들의 벽면 낙서처럼 그저 평범한 글들이 기록되어 있다.
외국 손님의 글로부터 어린 아이의 평범한 그림까지

모두가 이 곳의 모습을 경탄하고 있다. 이 곳에서 하룻밤 자고 싶었지만 내일 일출을 보기에는 좋은 장소가 아닐 것 같아 진즉에 포기하고 만다.

젊은 부부는 모과차를 시키고 나는 인동초를 시켰다. 책에서 배운 차를 마시는 방법대로 차를 마셔 보려고 하니 순서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내의 한 켠에 있는 주방의 문도 대나무로 되어 있고 민박으로 쓰는 저쪽 켠의 방들도 지붕의 추녀를 대나무 묶음으로 받쳐 놓았다.  화장실을 표시한 해우소(解遇所)라는 말이 이런 곳과 어울리겠다. 손님들과 가끔 민중운동가를 부른다는 얘기가 있어 기대를 해 보았으나 우리의 모습이 그것과는 틀린지 주인이 방에 얼굴도 비치지 않는다. 방 안에 대충 놓여 있는 장구와 북소리를 듣고 싶었고 민중운동가 하나 정도는 뽑을 수 있는데

나에게 차편을 제공하고 있는 젊은 부부는 오늘 부산으로 간다하기에 그냥 헤어지나 싶었는데 다음 목적지는 글씐바위라며 안내지를 보여준다. 우암 송시열이 이 곳에 남겼다는 글이 바닷가의 커다란 바위에 새겨 놓았다 한다.

 

아무도 없는 비포장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좁은 오솔길에 갈대밭, 소나무밭들이 길을 걷는 이의 기분을 산뜻하게 한다.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혹 차를 가지고 올라 오는게 좋지 않느냐는 제의에 이 정도 거리는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시야에 펼쳐지는 푸른 바다. 아 이곳에 이런 비경이커다란 돌 절벽이 가득한 곳에 우암 송시열이 제주도로 유배를 가면서 잠시 들른 이 곳의 경치에 반해 시 하나를 써 놓았다. 어느 누군가 탁본을 뜨느라 글이 지저분해져서 글을 잘 못 알아 보겠으나 이 곳을 경치를 보건대 충분히 선비라면 누구나가 글 하나정도는 남길 만한 풍경이다.  

바로 아래 빠삐용에서 나옴직한 바다밑의 파도와 깍아서 세워 놓은것처럼 웅장한 돌 절벽. 저 곳으로 무작정 뛰어 들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스티브 맥퀸이 목숨을 걸고 뛰어 내렸을 때 죄인으로 밖에 평생 살 수 없었던 인생을 새로 개척하지 않았던가? 뛰어 내려?

그 멋진 곳에서 젊은 부부가 같이 사진을 찍는다 하기에 내가 초점만 맞추어 놓고 눈감고 찍을 테니 알아서 포즈를 취하라 했다.  

평소에는 5시 이후까지 뭍으로 돌아가는 배가 있다 하는데 손님이 없으면 안 갈 수도 있어
오후 3 30분의 마지막 배가 될 지도 모른다는 안내에 시간이 얼마 안 남아 젊은 부부는 오늘 내가 묵고 싶다하는 예송리 해수욕장으로 데려다 주고는 아쉬운지 얼른 전화번호를 적어 준다.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동네 아주머니들 몇 분이 모여서 해초를 다듬고 있다. 아마 팔기도 하는 모양이다. 천연기념물 40호라고 자랑하는 해변가의 방풍림이 제법 울창하다.  그리고 눈 앞의 자갈 밭.  어찌 이리도 많은 자갈을 해수욕장에 깔아 놓았을까?  인공인가? 자연인가?  아무래도 인공같지는 않다. 부산의 태종대 바닷가는 자갈을 사다가 깔았다 하는데 이 곳은 약 1.5 키로에 달하는 해수욕장에 자갈을 사다가 깔 정도로 여유가 있는 동네는 아닐 테니

10월에 접어 들어 물이 차가울텐데도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하긴 이렇게 좋고 깨끗한 바다를 보면 누구나 들어가고 싶을테지.  자갈밭에 앉아 있다가 더 편하고 싶어 가방을 베고 그냥 누어 버렸다. 그리고는 더 편하고 싶어 눈을 감으니 스르르 잠이 온다.  이것도 좋다. 바닷가에서 낮잠이라…  여행객의 한가함을 즐겨 본다.

내가 어느 정도 잤는지 조금은 따사한 햇빛에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한 30분 정도 잔 것같다.  우선 민박을 정하려고 마을로 돌아와 휘 돌아 보니 시원한 대청마루가 돋보이는 예송정이라는 민박집이 제일 먼저 보인다.  이런 곳에서 신식의 양옥집보다는 어촌다운 집이 더 좋으리라.  노부부가 뜻하지 않은 손님을 맞아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한다. 땅끝마을의 민박집같이 욕실딸린 방은 없어도 운치는 있을 것 같아 그 집에서 묵기로 하고 저녁을 먹을 곳을 물어보니 자기 집에서 보통 먹는 저녁으로 대접하겠단다. 그것도 4000원에

가방을 놓고 다시 해안으로 달려갔다.  바닷가에 어느 아낙네가 커다란 검은 망을 깔고 무엇인가를 널어 말리고 있다. 파래도 아니고 다시마도 아니기에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향각이라 한다. 김치에 향기를 좋게 하기 위해 넣는 재료라고…  전혀 못 보던 해초다.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향각을 보는데 아주 조그만 실 같은 것들이 향각에 붙어서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
아줌마 이게 모죠? 무언가 꿈틀거려요
.”
새우 새끼에요
.”
거참, 이렇게 조그마한 것도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네.  가만히 손으로 잡아 손에 올려 놓으니 죽은 듯이 꼼짝도 않고 있다. 자기 방어를 위한 수단인가?  가만히 집어 향각위로 올려 놓으니 다시 꿈틀거린다. . 그랬구나. 미안하다. 잠시 괴롭혀서..

아낙네가 묻는다. “혼자 오셨어요?”  “.” “……..”
조금 더 앞에는 햇빛에 말린 양각을 거두고 있는 아낙네를 만난다. 쑥색으로 말라버린 향각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어느 젊어 보이는 부부가 바다에서 보았던 김발을 걷어 올리고있다. 아무 말없이 자기 일을 하고 있지만 둘이 작업하는 손이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덩치큰 김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부인은 부인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부부가 평생 저렇게 같은 일을 하는 것도 행복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내가 이제껏 그렇게 살지 못해서인가?

꼬마 하나가 무슨 일에 화가 나있는지 자꾸 자갈을 한 무더기로 집어 바다로 던지고 있다. 무슨 불만일까? 아니면 그 나름대로의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인지하긴 내가 어렸을 때도 바다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는 납작한 돌을 바다 위로 집어 던져 몇 번이나 수면에 튀겨 가는 것을 보는 일이었으니..

조금 이따가 어디서 누군가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  아이는 대답도 하지 않는다. 분명히 자기를 부르는 것을 알텐데도..  

한없이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해변가를 벗어나 마을로 들어섰다. 조용한 마을, 누구하나 길에 다니는 사람이 없다. 이 시간에는 모두 바다일, 논일 밭일을 나갔을 테니..

건물이 겨우 한 동짜리 초등학교, 이미 모든 수업이 끝났는지 학교는 썰렁하고, 놀이터에 애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학교 선생님인 듯 한 분이 교정을 가로 지르는 도시 사람같이 보이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길이 막혀 다시 해변가로 나오니 배낭을 맨 젊은이 하나가 혼자 해변가를 걷고 있다. 나중에 그를 보니 몇 시간전의 나처럼 자갈밭에 배낭을 벼개삼아 누워 쉬고 獵? 이 곳에 오면 모두 그렇게 눕고 싶은 기분이 드는가?

자갈 밭에 앉아 아까 그 소년처럼 양손에 자갈을 한 웅큼 쥐어 모두 바다로 집어 던지며 내 소원을 빌어 본다.  내가 좋아하는 직장을 구하게 해 주소서.

한 참을 바닷가에서 쉬다가 민박집으로 돌아 오니 저녁 준비 되었다고 곧 가져다 주겠단다. 준비하는 동안 비록 오랜만에 보일러를 돌려서인지 녹물이 조금씩 나오는 물로 샤워를 말끔히 하고 밥상을 받았다.  우와 4000원짜리 반찬이 푸짐하기도 하지. 삼치인 것 같은 큰 생선, 생선찌게, 각종 나물들.  특이한 것은 나물무침에 모두 홍합이 들어 있다. 어촌의 반찬은 이렇구나. 외국을 여행할 때 어느 나라에선가 망고없이 반찬을 만들수 없다며 우리 나라에서 망고는 단지 과일로만 먹는다는 말을 신기해 하는 현지인들과 같은 생각이겠지.

삼치가 너무 싱거운 것 같아 맛소금이 필요할 것 같아 소금 좀 달라했더니 커다란 왕소금을 준다. 아이쿠. 이런 왕소금을 숟갈로 짓이기려 해도 잘 부서지지 않는다. 에라 왕소금이라도 먹자. 찌게 국물이 워낙 맛있게 먹었더니 주인아저씨가 국물을 더 가져다 준다. 고맙습니다.

내일 아침에 일출을 보고 싶은데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하니 6시 반경에 깨워주겠단다.

저녁을 먹고 대청마루에 앉아 하루의 생활을 메모하고 있는데 땅강아지가 폴짝 날라 와 내 옆에 앉는다. 저걸 잡을까, 말까어릴 때 잘도 잡았는데 …  그냥 놔 두자. 저것도 한 철일텐데 내가 잠시 괴롭히면 땅강아지의 삶이 짧아지리라.   

갑자기 조용한 동네에 스피커 소리, 아마 이 동네 이장님이시겠지. 모두 다 듣고 있을 방송인데 전혀 대본없이 그냥 이야기하는 것 같다. 가끔 더듬거리면서 주민 중에서 생활보호자 추천을 했는데 몇 명이 탈락되었다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며 다시 신청해 보겠다고 한다.  이런 동네에 인터넷이 모두 접속된다면 편할텐데 하는 사치스러운 생각을 한다.

이런 시골은 밤이 일찍 찾아 오나 보다. 밤 바다와 별을 보고 싶어 바다로 나갔다. 민박집에서는 환한 전등 때문에 보이지 않던 별들이 바다로 나오니 반달과 함께 총총이 심어진 것이 보인다. 조용한 바다에 편히 쉬고 있는 나룻배들, 멀리서 깜빡이는 것은 저 건너 섬의 등대겠지. 건너편 섬의 환한 불 빛 5개가 천천히 흔들리는 바다에 긴 촛불을 만들고 있다.

이대로 누워 자 버릴까? 설마 바닷물이 여기까지는 차지 않겠지.  모기도 없을 때고, 조그만 동네이니 강도를 맞을 우려도 없고 또한 주머니에 가진 것도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그래 눕자. 누워 하늘만 보자니 바다를 보러 왔는데 그것도 안 좋은 것 같아 앉아서 하염없이 생각에 잠긴다.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결론도 내지 못하고 일어서고 말았다. 그리고는 이 넓은 집에 나 혼자만을 위하여 보일러를 돌린 주인에게 감사하며 따뜻한 방에 들어와 포근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출을 본다는 생각에 중요한 약속을 둔 사람처럼 밤에 몇 번이고 잠에서 깨어야 했다. 6시 반이라 했는데 설마 그렇게 늦은 시간에 해가 뜰까?  하긴 언제 해가 뜨고 지는지 모르는 생활을 몇 십 년간 했으니 그럴 법도 하지. 눈이 뜨여질 때 마다 왜 그리 먼 곳에 있는 화장실을 가고 싶은지그래도 용기를 내어 귀신이 나올지도 모를 화장실까지 잘도 찾아갔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밤 12시가 넘어서부터 눈이 떠졌다. 자다보면 3시 또 눈뜨면 5시 그렇게 눈을 뜨다가 6시가 조금 넘어서는 아무래도 해가 먼저 떠 있을 것 같아 서둘러 모자 하나 눌러 쓰고 밖으로 나왔다. 잠자리에서 1 분거리도 안되는 바다에 나오니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그러나 우선 첫 눈에 실망스러운 것이  해가 떠야 할 동쪽 바다에 구름이 끼어 있다. 그러나 구름은 사라질 수 도 있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김발을 말아 놓은 자리에 앉아 카메라를 챙겼다. 제대로 나올려나, 전문 사진사도 아니고 좋은 장면을 기대는 하지 않지만 사진이 목적이 아니니 기대는 말자고 스스로를 위안.

6 17, 섬 사이의 바다가 그리 넓지 않은데 저 사이로 해가 떴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불과 몇 분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섬 위의 부분이 다른 지역보다 더 빨개지기 시작하더니 잠간 동안에 섬 위의 구름의 색깔이 진홍빛으로 변한다. 동명일기를 쓴 의유당 김씨의 마음이 아마 지금 내 마음 같았으리라. 구름들이 산모의 고통을 연출하는 듯 커다랗게 산을 에워싸며 멋진 행위 예술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 저 장면을 모두 간직하기 위해 차라리 내 눈을 감으리.

그렇게 빨간 구름색들이 다시 바다에 비치는 광경은 얼마나 더 환상적인지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바다와 하늘의 구름이 수십가지 색깔의 조화를 만들고 있다. 어느 이름있는 화가의 작품이 이러할까?  어느 사진작가가 이런 것까지 다 사진 한 장에 담아낼 수 있을까?

어느 순간 마치 피부에 종기가 곪기 전에 전체적으로 빨갛게 부어 있다가 나중에 곪는 부분만 더 빨갛게 되듯이 지금 그런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이렇게 멋있는 광경을 종기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의 문학적 솜씨에 감히 부끄러울 따름이다.

일출을 보고 있노라니 이른 아침에 조용히 일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바닷가의 가로등불을 끄고, 어떤 아저씨가 바다어장에 필요한 하얀 노끈을 구매한 채로 한 타래 들고 나와서는 묶은 끈을 녹이 시뻘겋게 슨 부엌칼로 잘라 버린다. ! 그러고 보니 이 곳에 어부들이 쓰는 칼은 모두 녹이 슨 칼이다. 바다물의 염분 때문에 녹이 슬었다고는 하지만 주로 칼이 끈을 자르는데 사용하니 차라리 녹슨 칼이 더 편하리라. 일하다 바닷가에 그냥 놔 두어도 훔쳐 갈 염려 없고, 부엌칼과는 별도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테니

그 끈 한 쪽 끝을 잡고 하염없이 해변가 저쪽으로 사라진다. 기계로 잘 말아진 끈은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차근 차근 풀어 지고 어느 순간에 다른 끝까지 딸려 갔지만 금방 멈추어 섰다. 아마 느낌으로 이제 끈이 다 풀렸으리라 하는 생각에 어느만큼 간 아저씨가 걸음을 멈추었으리라. 그리고는 다시 내 앞까지 걸어 와서 한 줄로 풀어 놓은 끈을 손으로 둥그렇게 말기 시작했다. 아니? 저렇게 다시 말려고 기계로 잘 말아 진 끈을 풀었나?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선의 행위인가? 아니면 특별한 용도로 그렇게 얼기 설기 다시 말고 있는 것인지..

이른 아침 잠을 깬 어촌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한 번씩 바다에 나와 해변가에 잠시 쪼그리고 앉았다가 들어간다. 바다에게 안부인사를 여쭙는 것일까? 겸사 겸사 오늘의 바다의 상태를 보는 것이기도 하고…  농부가 아무 일 없어도 이른 아침 밭을 한 번 휘 돌아 보듯이..

해가 뜬다. 6 47. 조금씩 빨간 혀를 내밀더니 바다 밑에 긴 촛불의 영상을 만든다. 잔잔한 파도와 함께 연출되는 일출의 광경, 온갖 색과 무늬가 한꺼번에 보여지는데 불과 3분 만에 빨간 태양이 솟아 오르고 말았다. 3분을 위해서 그토록 오랜 시간 하늘의 구름을 예열시켜 놓았던가?

무사(?)히 태양이 떠오른 것을 보고 민박집으로 돌아 왔으나 주인부부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간다고 못 볼 것이라고 얘기는 들었기에 나그네는 하룻 밤 정든 곳을 떠난다. 아이들이 등교하느라 재잘거리는 버스에 올라 선착장으로 향하여 배를 기다리는 동안 어제 아침과 같은 메뉴로 아침 식사를 즐겼다.

땅끝마을로 가는 페리호에 손님이라고는 단 3명이 탔다. 그래도 가야지.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다시 나가니 아침 거리에 바쁜 갈매기떼, 바다 어장에서 간 밤의 수확을 거두는 어부들, 맑은 바다.  마주오는 페리호에 나같은 여행객들이 난간에 서 있어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그들의 행복한 여행을 빌며..

땅끝마을에 도착하여 선착장에 있는 광주행 고속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바닷가에 서 있는데 이제 막 도착한 나룻배의 배 밑에서 어부가 막 잡아 온 듯한 팔 길이 만한 상어를 잡아 내더니 칼로 상어의 윗 지느러미를 자른다. 상어는 그 특유의 이빨을 날카롭게 번득이며 반항해 보지만 노련한 어부의 칼 놀림을 당할 수가 없다. 어부는 다시 상어의 머리를 발로 누르고 옆 지느러미 두개를 잘라 버리니 상어가 갑자기 날개 빠진 새가 되어 버렸다. 발버둥 치고 싶어도 발이 없으니 입만 뻥긋 버릴 뿐이다.

다른 어부가 배 밑바닥에서 광주리 하나를 들고 나와 선착장 바닥에 버리는데 모두 불가사리들이다. 불가사리들이 어패류를 모두 먹어 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처치하나보다. 특히 왕성한 번식력과 잘라 버려도 잘려진 부분이 다시 새 불가사리로 변하기에 좀처럼 그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

어부는 상어의 등을 일자로 가르고 내장 중 일부는 조심스레 떼어 내어 배 난간에 놓고 나머지는 모두 바다에 던져 버린다. 상어 회를 먹고 싶은 생각이 동했으나 아무래도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아무 말 못하고 있는데 상어를 모두 깨끗이 씻어 다른 사람에게 주고는 뱃전에 있던 부분을 들고 얼른 바닷가 인접한 횟집에 들어간다. 아마 고기를 잡아 그 횟집에서 장사를 하나 보다. 나도 쫓아 가서 그게 무엇인지 알아 보려고 기웃거리고 있는데 어부가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이게 상어고기 중에서 가장 귀한 부분이라고 하며 횟집의 부엌에 들어가 싹둑 자른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
아저씨 들어와서 이거 잡숴 보소. 와 보랑께
우리 전라도 사람들 인심 좋소. 드셔 잉

나도 얼씨구나 하고 횟집의 부엌으로 들어가 그 상어의 간으로 보이는 고기를 손으로 덥석 집어 굵은 소금을 찍어 한 입에 먹어 버린다. 감사하다는 인사는 잠간이고 맛은 아주 오래간다. 한 점을 먹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한 점 더 먹으라고 부추기기에 한 점 더 먹고는 차마 미안해서 잘 먹었다는 인사를 거듭하고 버스에 올랐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인지 광주로 향하는 곧은 길에 운전사가 연신 하품을 하고 있다. 혹 졸음운전이라도 할 까봐 가방에서 먹다 남은 오징어를 가져다 주니 고맙다며 머리를 긁적댄다.

이번 여행은 낯선 사람들의 많은 도움을 받으며 다녔다. 내 새로운 인생이 이렇게 남들이 도와 주는 축복 속에서 펼쳐 질려는지

감사. 모든 것이 감사.
이렇게 다닐 수 있는 건강 주시니 감사

여행 기간 동안 날 도와 준 낯선 이들에게 감사
비록 어려운 상황이나마 스스로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음이 감사
여행 좋아하는 철없는 남편 때문에 며칠 동안 혼자 지낸 아내에게 감사

내 생전 감사의 생활을 하며 살고 싶은 마음으로 남도 여행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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