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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차밭

carmina 2014. 5. 11. 16:24

 

보성차밭

 

SK 텔레콤선전에서 수녀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지나가는 비구승을 태워주는 장면이 사람들의 인상에 깊이 남았다.  단지 수녀가 비구승을 태웠다는 것도 중요한 만남이긴 하지만 외에 배경화면이비록 조그만 화면이나마 무척 정이 드는 것은 아마 푸르름이란 것이 눈에 들어와서 그런 것인가?녹차의 수확기가 봄철 이맘때라 특별한 행사들이 그 곳에서 열렸기에 5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매스콤은 연일 보성 차밭을 보여 주었다. 특히 아침 프로그램이나 저녁에 탤런트들이나 리포터들이 그 곳에 가서 차를 따는 모습을 보여 줄 때마다 저 곳에 꼭 가보리라고 눈에 욕심을 가득 품어 두었다.그리고 오랜만의 월요여행을 해 보고 싶었기에 며칠 전부터 아내에게 바람을 잡고 주일 예배를 마치자 마자 미리 챙겨둔 가방과 인터넷에서 프린트한 보성 안내문 그리고 여행 중 들을 씨디들을 챙겨서 고속버스터미날로 날랐다.  그러나 나중에 알았지만 왜 부천 시외 터미날에서 광주가는 고속버스를 생각하지 못했나 하는 어리석음도 있었다.버스에 올라 씨디를 챙긴다. 신경숙의 소설기차는 7시에 떠나네라는 소설 제목과 어울리는 메넥세데니아의 음악을 들으며 지난 밤 형제들 모임으로 제대로 자지 못한 잠을 우선 보충한다.  버스 안의 다른 승객들의 얼굴이 밝아 보이는 것은 내 마음 때문일까?  불과 10분도 안되어 버스는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이렇게 거꾸로 가는 여행이 좋다.  남들은 피곤한 휴일의 교통체증과 함께 서울로 돌아 올 때 그들을 바라보며 내려가는 재미는 언제나 좋다생각해 보면 전남 보성이라는 곳이 여행지 선택은 쉽지 않았다.  남들은 왜 그리 먼곳까지 가야 되느냐며 말을 하지만 나는 그래도 여행의 뜻을 먼 곳에 두어야 할 것 같아서 일부러 먼 곳을 찾는다.  그러나 내심 걱정되었다.  대충 시간을 따져 봐도 오늘 종일 버스를 타야만 보성 차밭에 도착할까 말까 하는 거리이고 또한 시골이라 버스가 일찍 끊어질 우려가 있어 더욱 조바심이 났다. 오늘 밤을 꼭 보성 차밭에서 민박하고 싶었기에 모든 것을 서둘렀다.  일반 버스탈 것을 우등으로 가고, 식사를 하는 것보다도 우선 차편이 먼저였다.  생각만해도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차 냄새가 물씬 나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설레게 하는지 버스 전용차선에서 속도감을 느끼는 고속버스의 창으로 보이는 숲이 내 머리칼의 한켠 같이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가만있자. 지금이 몇 월이지? 5월 초에 만발해야 할 아카시아가 지금 5월 중순인데 아직도 저렇게 만발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봐도 아카시아가 틀림없다. 버스가 기차 보다 더 조용한 것은 쇠바퀴가 아니고 고무바퀴이고 사람들도 불과 몇 명 안되서일까?  모두들 깊은 잠에 빠져 든다.  나도 그 무리에 섞여서 잠을 자고 눈을 뜨니 안성을 지나고 있다.  창 밖에 보이는 풍경을 통해 주일 낮에 부른 찬양처럼 평화가 온 몸에 밀려옴을 느낀다. 고속버스가 호남선의 벌교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또 초고속으로 달려 왔기에 2 10분에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가 불과 5 30분경 도착했으니 3시간 반 만에 전라도 광주에 도착한 셈이다. 열차보다 빠른가?  전라도 쪽 특히 광주로의 여행은 이제껏 여행 중 많지 않은 기회였는데 최근 들어 3번이나 이곳에 온 셈이다. 지난 해 10월 해남을 가느라 한 번 오고 또 올 3월인가 4월에 합창단원의 부친상 때문에 또 왔으니 요즘 들어 이쪽에 정을 느낀다. 우선 보성가는 차표를 사 놓고 터미날 식당가에서 간단한 요기를 한다.  아무래도 좋은 먹거리는 보성에 있을 것 같아 위를 조금만 채워 놓았다. 버스가 광주를 출발하면서 벌써 보성이라는 말들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보성 녹돈 돼지갈비집, 보성 건설 등등.. 그리고 이어지는 버스 안의 진한 남도 사투리들오늘 민박을 확인해야 할 것 같아 전화를 해 보니 민박 예정지인 대한 다원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고 붓대 다원에서 걸찍한 목소리의 남자가방 없을낀대…’ 하면서 좌우간 와 보란다. 시골버스가 늘 그렇듯이 차안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은 속칭 카페음악이다.  모두들 무표정한데 기사만 열심히 그 음악에 리듬을 맞춘다.  버스가 화순을 지나는데 옆에 한참 익어가는 밀밭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추수한 곳도 있고 이제 추수를 기다리는 곳도 많으니 농부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그리고 또 한 편으로 모내기를 하는 곳이 많이 보인다.  빈 논에 던져진 모판들이 마을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어떤 논에서는 한참 논을 갈아 엎고 있다.  신문에서는 연일 가뭄이라고 쩍쩍 갈라지는 논 밭을 보여 주는데 이 곳은 논마다 물이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버스가 끝없이 보성강을 끼고 달리고 있다. 비록 강에 물은 많지 않지만 아직은 논에 물 댈 정도의 여력은 있나 보다. 그러나 보성강이 흐르는 강 뚝의 절벽이 높은 것으로 보아 물이 많이 부족함을 나 같은 농사일의 문외한도 알 수 있다. 어스름 땅거미가 지고 차가 동쪽을 향해 가서인지 어둠이 일찍 오는 것 같다.  그 어둠 속의 논에서 커다란 챙이 있는 모자를 쓴 농부가 혼자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보성가는 직행버스가 중간에 잠시 기착한 복내라는 곳의 정류장 건물에정다방이라고 써 있는 필체에서 내가 마치 과거를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둠속을 달리는 버스의 길가에 각종 마을이름들이 하나같이 두글자의 연속이다. 기내마을, 계동마을 등등마치 우리의 성명들이 모두 두자 이름같이…   보성에 안내지에 나온대로 정확하게 1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허름한 보성 정류장, 혹 보성차밭가는 군내 버스가 끊기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부랴 사랴 시간부터 알아보니 10분 뒤에 떠나는 8시 반 버스가 오늘의 마지막 차란다.   버스 떠나기전에 대한 다원과 붓대 다원의 전화번호를 계속 눌러 대도 아무도 받는 이가 없어 걱정하는데 버스기사가 그 곳에 가면 민박있을거라며 나를 안심시킨다. 차밭을 지나가는 율포행 군내 버스의 승객이라고는 겨우 4.  2명은 곧 내리고 어린애와 나 혼자만을 싣고 잘 포장된 언덕 길을 가다가 그나마 나 혼자대한 다원이라는 커다란 불 밝힌 팻말이 보이는 곳에 내려 놓으니 어린애 하나만 싣고 버스는 떠나 버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갑자기 막힌 귀가 뚫린 것처럼 개구리 울음소리가 칠흙같은 어둠 속 온 천지 사방에서 들려 온다.  대한 다원가는 표시를 따라 씩씩하게 걸어 가다가 멈칫했다. 길은 어둠속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도무지 아무 표시가 없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불빛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산길에서 사람 만나는 것이 제일 무섭다는데 다행이 인기척은 없다. 그래도 나무 하나를 두고 차가 갈수 있는 길과 갈 수 없는 길을 표시해 놓았기에 차 가는 길의 어둠 속을 조심 조심 걸어 가다가 아무래도 더 이상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버스 정류장으로 되돌아 나왔다. 대한 다원 팻말과 같이 있는 차목원이라는 음식점의 팻말의 전화번호에 전화를 거니 다행이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민박 좀 할까 하는데요.. 가는 길이 어둠속이라 전혀 못가겠어요.”
이 곳에서 민박안해요
.”
인터넷에서는 대한다원에서 1 3만원에 민박한다고 써 있는데요
?”
아녜요. 민박 안해요
.”
지금 혼자 이 곳 버스 정류장에 막차 타고 왔는데 돌아 갈 버스도 없으니 민박 좀 시켜 주세요., 어차피 그 곳에서 사람은 잘꺼 아녜요
?”  
이 곳에 순 아줌마들만 있어요.  좌우간 민박안하니까 지나가는 차 타고 5분 거리에 있는 율포로 가세요.  그 곳에 가면 해수욕장이라 민박이 많아요.”  딸깍.  

대한 다원을 포기하고 100미터 앞에 붓대 다원의 팻말이 보이기에 걸어 올라가니 건물과 산 자락에 불빛을 화려하게 달아 놓았다.  전화를 거니 받지도 않고갑자기 난감함이 어둠처럼 밀려 왔다. 어쩌란 말이냐.  차도 뜸한데뜸하게 지나가는 차를 손짓하니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2대가 지나가고 3대째의 승용차가 다행이 차를 멈춘다.  젊게 보이는 남녀가 핸들을 잡고 있다.  율포까지만 태워 달라 하니 자기들도 그 곳으로 간다며 차가 지저분하지만 타란다.  아이고 고마운 것.. 지금 지저분한 것 가릴땐가?  뒷 좌석에 혼수감 같은 것이 있어신혼부부세요?’하고 물었더니 아니라며 웃는다.승용차가 언덕을 내려 가는데 5분거리라는 말만 믿고 걸어갔더라면 큰 봉변 당할 뻔 했다. 어찌나 먼 길을 가는지차로 5분이지만 전혀 막히지 않는 언덕길의 5분 거리라 함은 아마 한 이십리 정도 되는 것 같았다.고마움의 인사와 함께 조그만 어촌마을 같은 분위기의 밤거리에서 차를 내린다.  금방 갯벌 내음이 코에 밀려 들어 온다.  제일 먼저 썰물로 쓸려나간 어둠의 바다를 보고 심호흡을 하며 한 참을 바라보고 천천히 둑길을 따라 가니 커다란 벤치가 외로운 나그네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 준 것처럼 텅 비어 있다. 벤치와 같이 붙은 탁자 위에 가방을 올려 놓고 큰 대자로 누워 버렸다.  예정에 없던 바닷가에서의 하룻밤이다.  하늘의 별을 보고 싶었으나 날씨가 조금 흐린지 어두운 하늘에는 반짝이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민박을 찾으니 길가의 허름한 집을 소개해 준다.  나이 든 아저씨가 비교적 깨끗한 방을 안내해 주면서, 할망구가 서울로 올라가서 방에 먼지가 많다 하면서 직접 걸레를 빨아 방을 청소해 준다.가방을 방에 놓고 요기나 하고파서 해변횟집이라는 인근 식당을 찾아 들어가 혼자 회먹기가 아까와 해삼하나 썰어 달라 하니 곁들이는 조개국물 맛이 보통이 아니다.  맛 좋다고 하니 술이 조금 얼근한 쥔 아저씨가 테이블에 와서 앉으며, 자기 가게 자랑이 대단하다.  내가 여행기를 쓴다고 하니 자기 가게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며 조개 국물에 대한 내력을 얘기한다.서해안 바닷가의 조개는 갯벌 반, 모래 반에서 자란 조개라 맛이 별로인데 이 곳 율포 바닷가는 순수한 갯벌에서 자란 조개라 맛이 다르다 한다.  하긴 내가 이제껏 먹던 조개와는 맛이 다르다.  입에 어찌나 착착 달라 붙는지 몇 그릇을 더 시켜 먹었다.손님들 없는 밤 늦은 시간임에도 식당 주방에서는 연신 조개를 끓이고 있다.  이렇게 끓여서 살을 뺀 뒤 냉동시켜서 다른 곳으로 판매한단다.  내가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면 사가지고 올라가고 싶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조개 뿐만이 아니고 자기 집은 전어맛으로 음식 경연대회에서도 상을 받았음을 자랑하며 벽에 어느 국회의원과 같이 찍은 사진을 크게 내 걸었다. 그렇게 쥔 아저씨랑 밤 늦게 얘기하고 민박집에 들어 가 통나무같이 쓰러져 자는데 방이 얼마나 뜨겁던지 밤새 잠을 설쳤다.  아침에 민박집을 나와 지난 밤에 보이지 않던 율포 해수욕장의 백사장을 찾아가 조용한 바다를 본다.  바로 앞에서 찰싹거리는 파도가 자꾸 자기 손을 잡아 달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다.  이른 아침부터 바다 일을 하고 돌아오는 배 한 척에서 온 몸이 구리빛 사내의 얼굴을 본다. 배를 해안가에 정박하고는 뱃사람 특유의 트롯트 가요를 틀어 놓고 커다란 솔로 물을 뿌려 가며 뱃전을 청소하는 모습에서 삶의 진한 향기를 느낀다.  아이 하나가 학교를 가는지 가다가 주저 앉아서 놀고 그러다가 또 일어나 가고…  그렇게 아이가 걸어가는 세멘트 도로 위에 길을 잘못 찾아 든 조그만 게 한마리가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고 있다.  어딘가 구멍을 찾을텐데 방향감각을 잃었는지 자꾸 엉뚱한 포장도로쪽으로만 옆으로 걷는다.차밭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으로 가니 바닷일인지 밭일인지 장화를 신고 머리수건을 맨 아주머니들이 정류장의 화단에 걸터 앉아 아침 수다를 즐긴다.  지나가는 1톤 트럭들이 거의 모두가 가다 아줌마들의 무리가 있는 곳에 서서 한마디씩 아는 체를 한다.  어느 중년의 남자는 그 아줌마들과 진한 농담을 즐기기도 하고그렇게 버스를 기다리는데 내 앞을 쏜살같이 날아가는 것이 있다. 이게 뭐지?  갈매기가 이렇게 빠를수 없는데…  하늘을 보니 제비다.  제비가 아직 한국에 있구나.  도심지에서 제비를 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비만 오면 낮게 날라 다니던 그 많은 제비들이 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 모두 이 곳으로 왔네.  반갑다. 제비야앉아서 버스를 기다리는 곳 건너 편에 조그만 장승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마을을 지키는 것은 그보다 더 큰 형식적인 구호문들저런 것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나같이 외지에서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무슨 인상을 줄까형식적으로 걸어 놓은 각종 구호들이 아직도 우리네 생활 곳곳에 관치의 뿌리가 깊음을 본다. . 차는 어제 밤에 내려 왔던 차밭의 고개를 천천히 올라가는데 왼편으로 차밭들이 산기슭에 가득하다. 산꼭대기까지 올라 가서 어제 밤에 내렸던 곳에서 다시 내렸다.  어제 밤 그 많던 개구리 울음소리들이 다 어디가고 오늘은 조그만 벌레 소리외에는 적막만이 남아 있다.

 

어제 밤 그렇게 캄캄하던 길에 큰 삼나무가 양 옆으로 도열해 나를 반긴다. 내가 왔노라깨끗한 흙길, 차량도 가는 길과 오는 길을 구분해 놓았다. 단체 손님들이 많이 오는지 버스 주차장이 별도로 있고, 주위는 깨끗했다.  길 옆에 곧게 서 있는 나무들에게서 차 밭의 질서정연함을 예감한다.  이렇게 입구에서부터 운치있게 준비를 해 놓았다면 아마 안에도 그런 식으로 해 놓았을거야.

     

그 많은 삼나무들 중에 눈길을 끄는 나무 하나.  나무 중간에 구멍이 두개 뚫려 있다. 새 한마리가 겨우 들어갈 만한 저 구멍은 크낙새의 보금자리일까 아니면 길에 무언가 걸어 놓기 위해 나무에 기계를 댄 것일까..  제발 새가 만들어 놓은 것이길 빌면서 조용한 산길을 간다.

노래를 한다.
산길을 간다 말없이

홀로 산길을 간다

길 한 켠에 이곳에서 중요한 장면들의 배경이었음을 알리는 커다란 프랭카드가 있다.

-          MBC 온달왕자들 촬영지
-          
차밭 (수녀편) 011 촬영지
-          
영화선물촬영지

나도 그 곳들을 배경으로 팻말위에 사진기를 올려 놓고 셀프카메라를 눌러 댔다. 대한 다업 ㈜보성다원 입구에 차마시는 곳과 식당이 있고 차를 파는 곳이 있지만 우선 차밭으로 들어갔다. 혹 입장료 같은 것은 받지 않는지 길에서 일하는 아저씨에게 들어가도 되느냐 했더니 그냥 들어가란다.  하긴 이런 곳에서도 돈을 받으려 하는 얄팍한 상흔은 없어졌으면 좋겠다.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TV, 신문, 잡지, 인터넷에서 무수히 보아 온 차 밭이 도열해 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 푸르를 수가…. 어디 하나 푸르름 이외의 갈색잎을 허용치 않고 어디 하나 시든 나무들이 없다.  호텔의 잘 다듬어진 정원수들처럼 모든 차나무들이 마치 영화 가위손의 주인공의 다듬어 놓은 것처럼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다.천천히 길을 따라 올라가니 푸른 띠의 행렬 속에 푸르름의 냄새가 코로 밀려 들어 온다.  그래 이 냄새를 맡기 위해 이 눈 속에 들어차는 푸르름을 보기 위해 이 먼 곳을 달려 왔지.  차밭의 옆으로 난 세멘트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니 땀이 솟는다.  마치 잘 정열된 도미노처럼 어느 하나를 툭 치면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무너질 것 같은 질서가 보여 감히 차 나무 하나 건드리지도 못하겠다.  직선의 행렬은 없지만 무수히 늘어서 있는 곡선의 행렬에서 음악을 선율을 느낀다.  그래 이게 자연스러운 것일거야.  인위적으로 군대식의 행렬보다는 마치 햇빛을 따라 유연히 돌아가는 해바라기처럼 차밭의 곡선이 움직일것만 같다.기록에 의하면 이 곳의 차밭이 조성된 것은 아주 오래전 부터이지만 일제시대 때부터 기업적으로 경영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약 100만평의 차 밭이 조성되고 우리 나라 대부분의 차잎의 원산지이다. 이 곳은 대륙성기후와 해양성기후가 교차하는 곳이라 산 너머 아래의 바다로부터 아침 저녁으로 안개가 밀려 들어 적당한 습기를 보충해 주고 차 잎은 안개의 수분을 머금고 무럭 무럭 자란다.  또한 이 곳 활성산 높이가 해발 200미터 정도라 차가 자라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라 한다.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자그마한 청설모들이 낯선 손님을 빤히 쳐다 보다가 숲으로 들어간다차밭의 꼭대기로 올라가 위에서 차밭을 내려다 보고 싶어 낮은 언덕을 올라가 보니 저 아래 하얀 저고리와 까만 치마를 입은 단체 손님들이 천천히 차밭을 거닐고 있다.  푸르름, 하얀 색, 까만 색.  모든 것들이 순수하고 담백한 차맛같이 보여진다.차 밭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내려 오니 차를 따는 아줌마들이 광주리는 차 나무 위에 그대로 놓은 채 나무 그늘에서 일을 기다리고 있다.  작업반장인 듯한 나이 든 아저씨가 호각을 부니 아줌마들이 일어서 걸어 오는데 하나같이 챙이 넓은 모자에 수건을 덮어 쓰고, 허리에는 차 나무에 옷이 상하지 않도록 모기장 같은 것을 둘렀다.  나무 계단에 서 있는 내 옆을 지나가는 아줌마들의 말이 걸찍한 전라도 사투리들이다.  그러나 모두들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할머니들이다.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그 들의 검은 얼굴의 이마에 차 밭처럼 주름살이 구불구불 나 있다.   차를 따는 모습을 보니 특별히 어떤 부분을 따는 것이 아니고 그냥 조금 삐죽하게 나온 것들만 계속 따는 것같이 보여 옆의 아줌마에게 물어 보았다.

"어떤 것을 따는 건가요?”
아줌마는 아무 말없이 차 이파리를 따서 보여준다
.
이게 이름이 무엇인가요
?”
그제서야 입을 열며대작이예요.”

그리고는 그 대작의 작은 부분을 가르쳐 주며 이 부분을 세작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러니까 큰 이파리는 대작이고 중간치는 주작이고 가장 작고 여린 것은 세작인가 보다.이 것을 어떻게 나누냐고 물었더니 모두 기계가 하며 하루에 대개 20 ~ 30 광주리를 딴다고 한다. 고맙다고 하니 내려가면서 차 만드는 것을 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수 십명의 아줌마들이 차 밭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무리 둘러 보아도 넓은 차 밭에는 언뜻 얼핏 모자들만 조금씩 보일 뿐이다.  차를 한 잔 하고 싶어 내려와 찻집에 들어 갔다.  넓은 실내에 나무로 만든 테이블마다 다기 셋트와 큰 보온병이 하나씩 놓여 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차를 시키니 전통 다기에 차 잎을 조금 넣고는 뜨거운 물을 부어 2 ~ 3 분 뒤에 마시라 한다. 차가 우러 나오는 동안 실내를 잠깐 둘러 보니 각종 차를 전시해 팔고 다기 셋트와 전통 내프킨을 팔고 있다. 그리고 벽에는 유명 사진 작가가 찍은 차밭 풍경 그리고 맞은 편에는 최근 상영한 영화선물의 두 주인공인 이영애와 이 정재의 사인이 담긴 큰 종이가 자랑스럽게 붙어 있다.차를 3번을 우려 내어 마시고 차 값 1000원을 지불하기가 미안해茶나 한잔 들고 가게라고 써 있는 내프킨을 하나 샀다.  밖으로 나오니 시장기를 느낀다.  바로 옆에 차목원이라는 식당이 있다.  메뉴를 물으니 녹차수제비와 녹차를 먹인 불고기가 있다고녹차수제비를 보니 하얀 밀가루가 녹색의 차 색갈로 옷을 바꿔 입었다.  차가루와 밀가루를 섞어서 만들었다 하는데 조개를 넣어서 그런지 맛이 담백하고 차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렇게 먹고 가격을 물으니 5000.  조금 비싼 것 아닌가?다시 왔던 길을 걸어 나오니 이제 사람들의 행렬이 밀려 들어 온다. 주로 단체 손님들이 많고 연인 그리고 가족들이 같이 삼나무 길을 몰려 걸어 온다.  다시 큰 길로 나와 눈 앞에 보이는 붓재 다원으로 향했다.  붓재 다원 앞에는 산 언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커다란 바위들이 있어 그 곳에 앉아 오랫동안 차 밭을 보았다. 빗 방울이 하나 둘 씩 떨어지는 것 같아 붓재다원에서도 차나 한 잔 마시고파 들어갔더니 안에는 몇 몇의 손님들이 각종 괴목으로 만들어진 탁자와 의자위에서 차를 마시고 있고 여남은 명의 중년층 아저씨들이 열심히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다. 내가 들어가 자리를 잡아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누가 주인인가?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기에 전화를 받는 아저씨에게 차 한 잔 마시고 싶다고 했더니 차를 갖다 주고는 또 여기 저기 주문 전화 받기에 바쁘다.  아마 이 곳에서 주문받아 전국으로 차를 배달하는 것 같다.  밖이 훤히 보이는 창가에서 오랫동안 앉아 차를 마시며 여행메모를 하다가 찻물이 식으니 맛이 없어 지기에 일어서며차 값이 얼마예요물었더니여기는 시음장이라 돈을 안 받아요’  ‘어허나그네에게 차 한 잔 공짜로 베푸는 기회도 있구나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푸근해 진다.비가 온다.  버스 시간을 물으니 대중 없으니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란다.  모자를 찾아 쓰고 지나가는 차들에게 손 짓을 하니 세워주지 않는다.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탔는데 보성 정류장까지 3000원 내란다.  비싸지 않은 편이네.  택시 안에 들어서자마자 차내 가득히 울려 퍼지는 은은한 법귀경 소리가 인사동의 조계사 앞에서 늘 듣던 소리다. 기사아저씨가 독실한 불교신자인가 보다.  차내를 둘러 보았더니 온통 불교 장식들이다. 묵주, 부처 등등보성에서 광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역시 트롯트음악,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이 사랑받는 음악이구나.  그러나 늘 클래식 음악에 익숙해 온 내 귀가 듣기를 거부하며 씨디피의 음반을 갈아 끼우고 헤드폰을 끼고는 구불 구불 돌아가는 길에 현기증을 느껴 억지로 잠을 청했다.

차밭에서 하룻밤 자고 싶었는데 실현되지 못했다.
할수만 있으면 차를 같이 따고 싶었는데 들어가지 말라는 팻말에 감히 엄두도 못냈다
.
그곳에서 보성녹돈 불고기를 먹고 싶었는데 혼자 먹기는 웬지 쓸쓸했다.

그러나 실현되지 못한 것은 불과 몇 개 되지 않지만 내가 이곳에 왔고, 차밭을 거닐고, 그 푸르름을 가슴 가득히 안았고,  넓은 차밭에서 차밭보다 더 넓은 마음을 품었다.  녹차의 은은한 향기가 내 몸에 배이길 빌었다.  내 몸도 저 차밭같이 단정하고 질서 정연하길 바랬다.머리는 하얗게 변해도 마음의 푸르름은 저 녹차같이 늘 푸르러야 하는데난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이 좋은데 돌아 다니고 싶어도 돌아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리고 난 언제까지 돌아다닐 수 있을지…. 내 여력은 어디까지일까….자꾸 이번 여행에서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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