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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광화문 연가

carmina 2014. 5. 11. 16:25

 

월드컵응원

 

연가(戀歌)라는 단어가 이처럼 어울릴 수 있을까? 그래..난 어제 광화문을 사랑했다. 그곳에서 노래했고 그곳에서 사랑의 기적을 보았노라. 나만의 사랑이 아닌 온 국민의 조국에 대한 아니 축구에 대한 사랑을 몸소 체험했노라.

 

우여곡절이라기보다 실력으로 2002년 월드컵에 16강에 진출한 한국팀의 선전으로 붉은 악마들의 광화문 응원은 경기가 있을 때마다 폭발적으로 숫자가 늘어나고 드디어 8강을 위한 이탈리아와의 일전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모든 것에서 열세인 한국이 이길 수 있을까? 도무지 승산이 없을 것 같지만 지금 온 나라가 완전히 축구팬들뿐만 아니라 축구에 대한 문외한들까지 온통 응원으로 나서서 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전국 곳곳에서 소리치고 그 열화 같은 관중의 숫자가 지난 1985 6월 군사정권을 물리치기 위한 전 국민이 서울에서 일어났을 때의 수보다 훨씬 많기에 이러한 대군중이 모여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는 광경이 금세기에 다시 올 것 같지 않기에 혼자서라도 나가보아야 했다.

 

아이들이랑 같이 가는 것도 편한 것을 찾아 다니고 단지 응원만을 즐기기 위한 목적일 것 같아 진즉 포기하고 나는 나름대로의 사람들의 풍경을 보러가기 위한 것이기에 혼자가 편했다.

 

지난 토요일 월드컵의 열풍을 보고싶어 이태원이랑 명동을 방문했을 때에 붉은 악마 유니폼도 사 놓았기에 아침에 거의 15년 만에 빨간 티를 입어 보았다.  15년 전 회사에서 볼링을 할 때 빨간 단체 유니폼을 입은 뒤로 내가 빨간 티를 입은 적이 있던가?

 

나이가 들면서 이 색깔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무언가 나에겐 젊음이란 것이 다시 찾아 오지 않을 것 같았기에..아니, 다른 이가 나의 빨간 색 모드에 웃을까봐 그간 용기를 내지 못했지.

그러나 이제 당당히 빨간 옷을 입는다. 거리엔 빨간 색 일색이나 내가 빨간 옷 입는다고 촌스럽게 볼 사람은 없으리라.

 

결전의 날,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 한국과 이태리의 한판. 게임은 대전에서 열리고 상가내에는 다른 날 보다 유난히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찾아가 음식을 시켰는데 조금 나이든 주인 아주머니가 대부분의 손님이 빨간 옷을 입고 있어 어느 손님이 무얼 시켰는지 어지럽다고 하며 웃는다.

 

합창단에서 연습 장소 근처에서 다같이 모여 응원하자고 게시판에 떴건만 난 아무래도 내 갈 길을 가야 할 것 같아 다른 날 보다 가게문을 조금 일찍 닫았다. 배고플 것 같으니 짜장면 하나 후딱 해 치우고 손님들도 이해해 주시리라.

 

나가면서 짐이 되는 것은 모조리 벗어 두었다. 카드지갑, 오늘 매출금 등등 핸폰도 포기할까 하다가 챙겨 넣고 전철역으로 가는 길에 횡단보도에서 옆에 있는 남자가 묻는다.

 

응원가세요?
. 광화문가요.
전 여의도로 응원 가고싶은데 버스를 몇 번 타야하나요?

 

버스번호를 가르쳐 주고 가는 길에 아무래도 소리를 지르면 갈증날 것 같아 포카리 스웨트하나를 손에 들었다. 전철역 구내는 이미 빨간 색 일색이다. 너도 나도 서울로 서울로

 

벌써 얼굴에는 태극기나 대한민국 구호로 무늬를 만들어 놓고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었다.

전철이 각 역에서 설 때마다 무더기로 빨간 옷들이 밀려 들어 온다. 어른들, 가족들, 학생들 온갖 층의 사람들이 너나 나도 Be The Reds라는 구호가 적힌 빨간 티를 착용하고 있다.

 

당초 시청앞과 종각에서는 전철이 정차하지 않는다는 사전 정보가 있었는데 전철이 시청 앞에 서기에 아무래도 스크린 모니터가 좋을 것 같은 조선일보 스크린을 보기 위해 동아 일보 앞을 찾아서 가는데 이미 군중들은 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고 같은 자리라도 사람이 없는 지역은 여지없이 가로수로 인해 스크린을 볼 수 없는 장소이다.

 

조선일보 앞의 야외 무대에는 가수들의 공연이 한창이고, 사람들은 핑계김에 유명가수의 라이브 공연을 즐긴다. 주로 젊은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일찍 나와서인지 스크린이 잘 보이는 곳엔 여지없이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광화문의 구석 구석이 각종 응원도구 파는 장삿군들이 많고 김밥과 생수를 파는 장삿군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구석 구석이 얼굴에 바디 페인팅을 해주는 사람들..돈받고 하는 것이겠지. 때론 어느 구석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모여 뻐끔담배를 즐기고 있고

 

조선호텔 앞에는 외국인들도 붉은 악마 유니폼을 단체로 입고 안내자의 인솔을 받고 있다.

아마 호텔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아 호텔에서 투숙객들을 위한 별도의 한국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한 것 같다. 그 외국인들도 얼굴에는 태극마크를 그리고 쑥스러운지 웃고 있다.

 

길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광화문 지하보도쪽으로 갔는데 이런사람들이 워낙 많아 지하 보도를 막아 버렸다. 그리고 이 곳도 이미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군중들로 가득하다. 시청에서 중앙청으로 가는 대로 몇 차선만 남기고 온통 모든 도로가 응원석이 되어 버렸다. 시청앞 광장은 물론, 새문안길 입구, 종로 1가 등등 차의 통행을 완전히 막은 자리에는 빨간 인간 카페트만이 잔뜩 깔려 있다.

 

영국문화원 앞의 지하 보도를 지나 길 건너편으로 가 앉을 자리를 찾아 보았으나 조금이라도 빈 공간은 여지없이 다른 이들이 맡아 놓은 자리이고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기가 미안할 정도로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의 갓 자라나는 콩나물같이 앉아 있다.

 

빌딩의 지하로 들어가니 고급스러워 보이는 카페들도 여지없이 빨간 옷의 행렬들이 티브이를 보며 여유있게 한잔들 하고 있다. 을지로로 나왔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람들이 스크린이 잘 보이는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가족들, 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른 아가씨들, 치마처럼 입은 남자들, 여자들, 엄마 손을 잡고, 아이는 아빠 어깨에 올라가고, 연인들은 꼭 끌어안고, 학생들은 악이 받쳐 소리를 지르고, 사진찍기에 여념없는 모습들, 119 구조대원들, 경찰들이 무덤덤하게 그러나 이 장소에서 늘 벌어지는 시국 데모 때와는 다른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같이 기뻐하고 사진찍을려 하고..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마침 도로의 턱에 겨우 엉덩이 하나 비빌 공간이 생겨 옆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저 앉아 조선일보 스크린을 보니 비록 멀지만 전면이 다 보여 그 때부터 군중의 구호에 맞추어 나도 대~한민국을 외치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는 구호.. 옆에서 부는 호각소리, 나팔소리, 북소리 꽹가리 소리. 누구 누구에게 이런 것들을 가지고 오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너도 나도 손에 무엇이든지 하나씩 들고 저마다 크게 소리 내고 싶어서 열광을 하고 있다. 

 

국경일만이라도 집에 태극기달라고 했건만 국경일에 자기 아파트 베란다에 태극기를 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집에 태극기가 어디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이젠 그 태극기가 온 나라를 덮고 있다. 덮고 있다는 표현도 부족한가? 태극기를 몸에 그리고 어디서 그런 대형 태극기를 구해왔는지 모르지만 건장한 남자들이 여러 명이 들어야 겨우 펼쳐지는 태극기를 구해와 손에 들고 있고 그 태극기가 김밥파는 아줌마의 종이 박스에도 그려져 있고 응원풍선을 파는 아줌마의 모자 창에도 붙어 있다.

 

..위대한 대한민국..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도 우렁찬 함성을 지르던 거리응원단은 선수들이 입장하고 애국가가 나올 때쯤 비록 들리지 않아도 소리 높여 애국가를 따라 부르고 미리 준비했는지 불꽃놀이의 대포 한 방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니 이제까지의 함성보다 더 큰 소리로 응원에 열을 올렸다.

 

우리 선수들이 어쩌다 볼을 가로채거나 어쩌다 슈팅찬스라도 생기면 응원을 피크를 이룬다. 상대방 파울이 나면 막 야유를 보내고 우리편이 파울을 하면 잘했다고 소리치는 군중들.. 군중심리란 그런 것인가.. 상대방 선수가 피를 흘리며 넘어지니 환호를 지르는 사람들. 우린 정말 모두 빨갛게 미쳐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우리가 먼저 1골을 먹었을 때 자막으로 한골정도 문제없다고 띄어 주자 사람들도 따라 외친다.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무리 옆에 어떤 넥타이 맨 사람이 손에 든 유니폼을 입지 않고 태극기로 머플러를 하고는 열심히 기념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 사람의 일행인 듯한 2아가씨도 열심히 각종 포즈로 무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 와중에 우리가 1골 먹으니 응원하던 여학생이 그 사람들에게 비아냥거린다.

 

응원은 안하고 사진만 찍고 있는 아저씨 때문에 한 골 먹었잖아요.
모두가 하나되는 때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이 미웠나 보다.

 

전반전에 우리 편의 득점이 없이 끝나니 사람들이 아쉬워하면서 자리를 뜨는 사람이 많다. 벌써 포기한 것일까? 모두들 일어선 자리에 수없이 깔려 있는 너저분한 신문 방석들. 빈 음료병들, 태극기가 짓밟히고 있고, 터진 풍선들이 여기 저기 뒹굴고 있다.

 

한곳에 있기 보다는 다른 곳을 보고 싶어서 빌딩을 돌아가니 음기가 있는 곳인지 갑자기 휑해진 골목. 텅빈 거리. 다 어디갔지?  몇 몇 사람들이 구석에서 소주병을 기울이고 있고, 고등학생정도의 또래들이 구석에서 뻐끔담배, 높은 곳에 걸터 앉아 빈 펫트병을 두들기며 여학생 2명이 하염없이 응원구호를 외친다. 그래도 사람이 너무 없기에 이상하다 싶어 한 블록 건너 종로로 발길을 옮기니 이 곳 또 대단한 군중들이 밀집해 있다. 너무 멀어 전반전 주요장면만 보여주는 스크린에 뛰어 다니는 선수들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식별이 안될 정도로 희미하게 보이지만 젊은이들이 계속 박수를 치며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이 함성이 어디까지 전달될것인가?

 

내겐 무척이나 익숙한 종로통, 10년을 이곳에서 근무했으니 길가의 상가들 순서까지 기억할 정도로 빠삭하다. 빨간 카펫트는 광화문네거리에서 무과수 제과 사거리까지 곱게 깔려있다.

비교적 여유있는 공간이 종각사거리까지 펼쳐져 있어 마치 비행기 활주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넓은 도로가 휑하니 뚫려있다.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개 고등학생정도의 여학생이 대부분인지 목소리들이 날카롭다. 북으로 나팔로 리드하는 남학생들이 이리 저리 뛰며 거의 악에 가까운 구호를 유도하고 있고 이곳에선 길가의 상가에 있는 조그만 티브앞에서 2~3백명의 사람들이 모여 응원하고 있다.

 

끝이 안보이는 장미밭,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 이렇게 전국민이 하나가 되는 날이 있었던가. 이 광경들을 보며 과연 우리 나라에 전시에 직면했을 때 이 사람들이 자원해 빨간 유니폼대신 군복을, 태극기 대신 총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들이 있을까? 하는 먼 미래의 상상도 해본다.

텅빈 도로를 가운데로 걸어 보았다. 혼자 조그만 휴대용 TV를 보는 사람도 이곳에 있다. 아마 축구 따로, 응원 따로, 기분 따로 느끼는 것 같다. 팔다 남은 김밥의 가격이 점점 떨어 지고 있고, 태극기 가격도 반으로 떨어졌다.

 

종각사거리까지 와서 용변을 위해 큰 빌딩으로 들어가니 경비보는 아저씨가 친절히 화장실을 가르쳐준다. 축구가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종로를 남북으로 달리는 도로에는 텅빈 시내버스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후반전이 시작될 때쯤 다시 처음 그 자리로 오니 많은 인파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전반전에 1:0으로 지고 있기에 미리 포기해 버렸는가..  내가 있던 자리에 어느 외국인이 팔장을 끼고 스크린을 쳐다 보고 있기에 말동무나 되어 줄려고 옆에 섰다.

 

독일에서 왔다는 말에 이 사람도 무척 월드컵이 재미있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가끔 스크린에 자막이 떠있는 것을 보고 무슨 뜻이냐며 웃는다. 차두리가 나왔을 때 왜 사람들이 환호하는지 의아해 하기에 차붐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이해를 한다. 자기도 차붐을 안다고..

 

경기는 막바지를 치닫고 10분정도 남았을 때 벌써 등을 돌리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러다가 함성소리가 나면 혹시 골인이 아닌가 하고 되돌아 오기도 한다. 막판 2분전 불현듯 스크린에 유니폼들이 옹기종기 모이더니 설기현이 한 골을 성공시킨다. 순간 터지는 대포소리. 골인순간에 맞추어 축포를 준비했나 보다. 대포소리보다 더 큰 함성이 서울 시내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서로 껴안고 좋아서 깡충깡충 뛰고 있다.  이렇게 기쁠 수가..

 

이제까지의 응원소리도 컸지만 지금부터 소리가 더 커진 것 같다. 

 

1:1 연장전 돌입.  빨간 장미들이 골든 골을 외친다. 아슬아슬한 순간이 생길 때마다 모두들 가슴졸이고 우리가 좋은 챤스를 맞이할 때마다 함성이 터진다.  연장 후반 다시 5분여 정도 남았을 때 페널티 킥을 기대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백성의 소리를 들으셨는지 순간 전반전에 페널티킥을 실축한 안정환이 멋진 헤딩슛 후 번개같이 치달으며 동시에 광화문 네거리에서 왕대포의 축포가 터진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얼싸안고 춤을 추고 있다. 나도 옆에 있는 독일인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하고 즉흥적으로 스크럼을 짠 일행들과 손을 잡고 거리를 돈다. 우리가 언제 만나 본 적이 있던가. 그저 빨간 옷을 같이 입었다는 것 밖에 우린 상관이 없는데 마주잡은 손이 따뜻하다. 119구조대로, 경찰도, 학생도, 쓰레기 청소부도, 간식거리 팔던 아줌마도, 직장인도, 아이도 모두 그 순간 하나가 되었다.

 

조선일보 옥상에서 빨간 불꽃들이 쉴새없이 올라가고 있다. 광화문의 빌딩들 유리창으로 불꽃이 반사되어 아름답게 퍼져간다. 오늘 승리하면 남산에서 축포를 2002발 준비한다고 했으니 지금쯤 남산에서, 대전에서 온 국토에서 축포가 터지고 있으리라.

 

수십만의 인파가 광화문이 바닥이 울리도록 모두 쿵쿵 뛰고 있다. 북이 울리고 호루라기가 트럼펫이 징이 목소리가 하늘로 올라간다. 우리의 기가 살아난다. 한국인의 기가 이곳에 충만하다.

 

그렇게 얼싸안고 춤을 추다가 옆에 대기하고 있던 미화원 아저씨가 군데 군데 놓은 대형 비닐봉투에 모두 엎드려서 휴지를 집어 넣는다. 이런 모습이 언제부터 만들어졌지? 지난 88올림픽때도 이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는데 이번에도 또 한국인의 저력이 보인다.

 

큰 종이와 빈병들만 챙겨 넣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 갔다. 종로로 종로로

비교적 여유있게 다니는 버스들이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올스톱 되어 버렸다.  순식간에 종로거리에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겨례의 빨간 피가 종로로 흐른다. 스크럼을 짜고 돌며 지나가는 이들과 자연스럽게 하이파이브로 손을 부딪히고 울리는 노래들. 외침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종로를 수놓는 폭죽들..

 

! 어느 영화에 이 장면을 보았던가. 니콜키드먼의 무랑루즈? 아냐..만화영화같아. 이렇게 멋진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못해낼거야. 사람들은 무등을 타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고, 길거리의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간 이들은 목이 터져라 조국을 외치고 있다.

 

빌딩 높은 곳에서 나풀 나풀 떨어지는 종이조각들, 순식간에 열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기차놀이를 즐긴다. 오가는 사람들 서로 손을 마주치며 아주 흥겨웁게 기차놀이를 한다.  광화문 시청에 모였던 인파들이 모두 이곳으로 오는 것 같다. 끝이 없는 행렬. 사람들은 계속 동대문쪽으로 밀려간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종로 3가까지 가다가 아무래도 너무 늦을 것 같아 전철 입구의 조금 높은 곳에서 사람들의 축제를 쳐다 보았다.

 

내 앞에 어느 고등학생 일부러 지나는 행인과 손을 마주치기 위해 자리를 잡는다. 지나는 사람들 또한 그 학생과 손뼉치기 위해 일부러 이쪽으로 온다.  그 학생 앞에 안정환 파마머리를 한 대학생하나가 자리잡으니 그때부터 행인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오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서로 같이 사진찍으로 애를 쓰고 그 학생 또한 신이 났다.  손을 부딪히던 고등학생은 너무 많은 사람과 마주 대하느라 손이 아프다면서도 그래도 손을 내 밀고 있다.

 

이런 축제가 세상 어디에 있으랴. 우리나라가 남북통일되면 이런 축제가 다시 벌어질까?  그땐 누구와 손을 부딪히나? 남과 북이?  절대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럼 언제 다시 이런 풍경이 벌어질까 생각하니 오늘 저녁 광화문에 나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12시 지하철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들리는 소리.. 이미 지하철 역 구내에서도 대한민국 구호가 한참이다. 오늘은 새벽 2시까지 지하철이 운행한다 했는데 나중에 우리가 이기고 나니 3시 반까지 연장했단다.  이런 획기적인 연장운행이 지하철 역사상 처음이겠지.

 

넓은 지하공간에 또 한 무리의 빨간 장미들이 춤을 춘다. 바람은 신바람. 모두 너울 너울 춤을 춘다.  태극기의 물결. 외침의 물결..  전철을 기다리며 플랫홈을 마주 보고 선 사람들끼리 또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쳐댄다.  사람들로 가득한 플랫홈에 대학생들로 보이는 청년들이 어디선가 주방기구들을 얻어 왔는지 식판과 냄비들이 다 찌그러지도록 두들기며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쳐댄다.

 

반대편 차선에 온통 빨간 옷을 입은 승객들로 가득 찬 전철이 들어 온다. 군중들은 또 외쳐대고 전철 안에서도 박수와 대한민국으로 환호한다. 너무 재미있어 한참 쳐다 보고 있는데 옆에 있는 동양인 같이 생긴 이가 영어로 물어 본다.

 

이게 마지막 열차냐고..
아니다. 오늘 2시까지 연장운행이다. 어디서 왔느냐.

 

중국에서 왔다.  그도 역시 빨간 옷을 입었다. 빨간  옷은 그에게 어울린다. 전철을 같이 타며 중국의 색깔을 우리가 입었다고 했더니 웃는다. 어디까지 가며 어디서 내리는지 물어 보았더니 용산에서 내려 갈아타고 한난간다고 하는데 도무지 못 알아 듣겠다. 전철 노선도를 보여주는데 한남이다. 을 발음할 때 입술을 붙이지 않으니 알 수가 있나

 

중국의 인텔리인지 영어를 제법 잘 한다.  완전히 콩나물 시루 같은 전철을 타고 불편해 한다. 조금 참으라고 내릴 문을 가르쳐 주었다. 사람들은 지하철 내에서도 여전히 소리치고 있다. 이 쪽에서 박수로 시작하면 저쪽에서 대한민국으로 화답하고 이쪽에서 ~로 장단을 매기면 저쪽에서 필승 코리아로 추임새를 한다. 이쪽에서 얼씨구 하면 저쪽에서 절씨구 어허라 좋을시고

 

용산에서 중국인을 보내고 서울의 여기 저기서 응원했던 악마들이 전철로 몰려든다. 내가 탄 전철은 구로까지 밖에 안가는 것이 사람이 조금 뜸한 편이다. 구로에서 내려 사무실 주차장에 있는 내 차로 가기 위해 도로로 나오니 길에는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들이 신나게 축제를 즐기고 있다. 트럭에 올라타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사람들 택시 자가용들도 클락션으로 박수를 대신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미쳐 가고 있다. 

 

차가 서로 지나칠 때 마다 운전하는 이들이 그렇게 클락션으로 승리를 환호하고 한국이 건국이후 처음 차지한 월드컵 8강의 축제에 모두들 하나가 된 날,  기쁜 날 오 기쁜 날.. 집에 조용히 들어와 또 밤새 TV를 틀어 놓고 여운을 즐겼다

 

오 위대한 대한민국
그 하나됨이 영원하여라
그 뜨거운 열정을 고이 고이 간직하거라..
그리고 그 열정으로 일을 하고

그 열정으로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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