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려본 곡이다.
자식 7명을 다 똑같이 키우셨겠지만
나는 어머님이 원하시던 멋진 아들이 되지 못함이
늘 죄스러웠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도 머리가 따라 주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딴 짓에 열심이어서인지 성적은 항상 중간정도였고,
학창시절은 도서관에 있기를 좋아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왔다.
무척이나 부지런하셨던 아버님 때문에 어머니는
늘 새벽밥을 지으셨고, 가족이 많다 보니 형제들의 옷을
대물림 해 입느라 늘 반짓고리를 끼고 사셨다.
그래서 써 본곡이 '어머니'라는 곡이다.
어머니를 마구 소리쳐 불고 싶은 내 심정을 아셨을까?
낡은 악보를 다시 꺼내보니 감회가 더 깊다.
어릴 때 무슨 꿈이 있었으랴.
나름대로 착한 아들이라고 얘기는 듣고 살았지만
살면서 얼마나 많이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많았던지..
이 곡을 어머니앞에서 불러본 적은 없다.
내가 노래 부르고 다니는 것을 무척 싫어하셨으니까...
그러나 늘 이렇게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다.
대학 졸업 후 그만 내가 직장 들어가자마자 3달만에 큰 병을 앓아
어머니를 힘들게 만들었고 그 후로도 불편하신 몸으로 다니시는 모습이 싫다고
밖에 외출을 안하시기에 내가 집보다 차를 제일 먼저 사서 어머님을
모시고 다니고 싶었으나 그 마저 그다지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아직도 내 차를 타고 몇 년 만에 외출하시면서 시내 여기 저기를 다니는데
창문밖으로 펼쳐지는 도시의 변한 모습을 고개를 들어 보시며
"여기가 이렇게 변했네" 하고 놀라워하신 모습이 생각난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뒤 부천에 큰 아파트를 분양받아 넓은 집에 이사왔을 때
제일 먼저 어머니가 제일 그리워 거실에 누워 꺼이 꺼이 울었다.
난 아직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지금도 내 신상에 중대한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어머니 산소에 가서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오곤 한다.
몇 십년이 지나 이 악보를 다시 꺼내 보니 가사가 참 촌스럽지만
당시는 이게 내 진심어린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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