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올레길 20코스

carmina 2014. 9. 10. 08:59

 

 

2014. 9. 4

 

올레길 20코스

 

지난 밤에 자다 보니 더위를 느껴, 문을 열고 자다 보니

새벽녘에 한기를 느껴 다시 문을 닫았다.

자면서도 지난 1월 처럼 감기때문에 힘들까봐 조심하고 있다.

 

아침 식사로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카레가 나왔기에

허기지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길을 나섰다.

늘 이렇게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는 순간에 설레임을 느낀다.

오늘은 어떤 모습들이 내 앞에 다가올까?

 

20코스가 시작되는 김녕해수욕장까지 골목길로 찾아간다.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에서 운영하는 커피점에서 공짜 커피를 준다 했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 있다.

묵는 손님에게 바닷가 산책하면서 커피 한 잔 즐길 수 있는 배려가 보기 좋다.

 

바닷가 정자에 우리보다 먼저 산책 나온 어떤 젊은이가

요즘 유행하는 셀카봉으로 열심히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날씨는 청명했다.

주말까지는 비가 없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으니

뜨거운 태양을 더 걱정해야 할 것 같다.

김녕에서부터 유독 자주 보이는 것은 거대한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모습이다.

멀리 까마득하게 보이는 곳까지 모두 바람개비가 천천히 돌고 있다.

 

바닷가 주택길의 골목 골목을 돌아 걸어 간다.

대표적인 올레길의 모습이다.

제주의 집들은 도시의 아파트처럼 획일적이지 않아서 좋다.

그러나 때론 이태리의 어느 마을 처럼 획일적으로 대문색깔이나

지붕색깔을 같이 만들어 통일성을 주는 것도 관광자원이 되기도 한다.

 

원래 제주도민보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농가 주택을 사들여

약간의 디자인을 추가한 곳들이 자주 보였다.

 

주택가에 누군가 설치미술의 작품으로 

로봇이 살고 있음직한 3차원의 구조물을 세워 놓았다.

내부에는 투명한 구슬 모양의 병에 청색액체를 남아 놓아

영롱하게 만들었다. 만약 이 곳에 빛을 비춘다면 어떤 모습일까?

작은 구슬 안에 또 다른 세계가 보인다.

 

길을 걸으며 동네 할아버지가 밭일을 하고 계시기에

큰소리로 인사를 건넸는데 알아듣지 못하신다.

 

끝없는 바닷가 주택길. 구비 구비 돌아간다.

아직 잠들어 있는지 인적이 없고, 가끔 강아지들만 물끄러미

길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바닷물은 거의 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닷가 돌을을 덮고 있다.

참으로 맑은 바다. 내게는 신기한 모습이지만 이 곳 사람들에겐

그냥 돌담같은 존재이리라.

 

김녕해수욕장은 그야말로 유럽의 어느 바닷가의 모습이었다.

하얀 모래, 파란 하늘과 맞닿은 바다.

그 어디에도 쓰레기 조각하나 보이지 않는 백사장의 모습에서

경건함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 하얀 모래밭 저 끝에 한적하게 산책을 즐기고

큰 텐트를 치고 야영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지나치며 보니 아주 비싸게 보이는 커다란 개 한마리도 같이 야영을 나왔다.

 

외지인들이 제주도를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페리호로 가지고 온 자가용이나 혹은 렌터카를 이용해 편히 다니는 방법

1인용이나 2인용 스쿠터를 타고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까지 갈 수 있고

잘 닦여진 자전거 도로를 타고 일주하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같이 두 발로 타박 타박 걷는 방법.

 

앞에 가는 어느 두 여자의 발걸음이 거의 신의 경지에 가까울 정도로

느리게 걷는다. 옷차림은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다.

모래길을 따라 로프로 만든 그물을 덮어 놓았기에 걷는 것도 편하다.

바닷가의 화산암 바위를 걷가 그만 발을 삐끗해서 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다. 

순간 걱정이 앞선다. 혹시 붓지는 않을까?  다행히 통증만 약간 있지

삔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한참 걷다가 다시 큰 김녕해안도로로 나왔다.

도로 변 정자에서 다시 길게 누워 휴식을 취한다.

앞에 보이는 커다란 한국에너지 기술연구원.

에너지 관리공단을 다녔던 대학친구가 이 곳에서 근무하며

1년동안 정말 열심히 제주도를 탑방했었다.

직장생활하면서 그런 기회가 있으면 주저말고 떠나라

돈주고도 그런 기회가 있으면 갈텐데 돈을 받으며 갈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풍력발전을 주로 하는 곳이라 전방에 시야가 탁 트여 있다.

바람을 막아 주는 오름이나 언덕조차도 없어 대형 바람개비만이

수없이 보일 뿐이다.

 

길은 해변과 마을길과 그리고 해변 등 지루하지 않도록 연이어 이어진다.

그러다가 친구가 이 곳 가까운 곳에 카페가 많은 월정해변이 있다며

발길을 재촉한다. 우리 셋은 다니면서 먹는 즐거움이 생겼다.

매일 팥빙수를 먹었고, 매일 맛있는 것을 먹을려고 애를 썼다.

여럿이 다니니 이런 즐거움이 있다.

 

월정 해변은 바닷가에 파라솔이 많이 준비되어 있고

젊은이들의 옷차림이 여느 해변과 다르다.

속칭 물좋은 곳이라 할까?

마치 제주의 압구정동 같은 곳이라 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모래비라는 곳에 들어가 눈꽃빙수를 하나 시켰다.

우유를 얼려 만든 빙수를 얇게 썰어 떡과 밭위에 고깔처럼 올려 놓은

빙수의 맛이 환상이다. 종업원도 무척 친절하고 상냥하다.

 

종업원에게 근처 식당을 물어 찾아간 바당지기 식당

우럭찜과 물회가 너무 맛있다.

우럭을 튀겨서 양념에 묻혀서 내어 놓는데

뼈를 빼고는 머리도 지느러미도 모두 바삭하게 부서져 맛을 돋군다.

2인분을 시켜야 하기에 혼자 다니면 결코 먹지 못할 가격이지만

이것도 먹고 물회도 먹으니 이것 참 좋으네.

 

월정해변에 연인들이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을만한 장소들을

여러 군데 마련해 놓았다.

 

바다는 하얀 모래와 천천히 밀려 오는 파도와

투명할 정도로 맑은 물과, 멋지게 차려입은 선남선녀들이 잘 어울려

마치 남태평양의 어느 섬같은 모습이다.

 

이전에 괌에서 이런 풍경을 보았고

남미의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도 보았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수없이 많이 보았다.

혼자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 여자를 보니 이 곳은 완전히 영화 셋트장이다.

 

바닷가에 모래가 쓸려가지 않도록 특별 조치를 해 놓기도 했다.

쓸려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모래들을 지키기에 전국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해변을 빠져 나와 밋밋한 농로를 걷는다.

그런데 왜 밭을 둘러 쌓은 돌담옆에 물을 가득 채운 큰 펫트병을을 많이 가져다 놓았을까?

여기서만 본 것이 아니고 걸어오면서  많이 보였다.

 

덥고 힘이 드니 걷다가 정자만 있으면 무조건 쉬고 싶었다.

그리고 정자는 바람이 늘 부는 곳이기에 신발을 벗어 열도 내리고

간식도 먹기 딱 좋은 곳이었다.

 

정자에 눈이 팔려 길을 걷다가 다리 끝에 있는 중간스탬프찍는 간새를 지나쳤더니

친구 부인이 자기가 발견했다고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혹시나 걷는데 짐이 안될까 걱정하고 있는데 한 건 했다고 기뻐한다.

 

올레길을 지나면서 유난히 집들을 자주 본다.

돌담안에서 자라는 과실나무들에서 이름모를 과일들이 익는다.

꽃사과 같기도 하고 다래같기도 하고 때론 자두같이 보이는 것도 있다.

집마다 저장고 같은 조금 특이한 물건도 보이고...

 

제주의 돌담은 집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 돌담을 쌓는다.

밭을 돌로 쌓고, 무덤을 돌로 쌓고, 도로 옆 도보도 돌로 쌓는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제주의 돌은 다른 지역의 돌담과 절대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면 막기 위한 돌담이 아니고 통과시키기 위한

돌담이라는 것이다. 바람, 돌,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 제주도에서

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람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한 바람에 모두 쓰러져 버릴테니까..

인생도 그런 것 같다.

가끔은 내게 빈 공간을 두어야 큰 위험을 지나칠 수 있고

내 마음에 빈 공간을 두어야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그냥 지나 칠 수 있다.

 

다시 숲길을 지나는데 우거진 숲 한 가운데 좌가연대가 우뚝 서 있다.

주위의 숲들이 많아 이런 연대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은데

숲은 그 후에 조성이 되었나 보다.

연대에 올라가니 멀리 바다만 보일 뿐이다.

 

길을 걷는 이에게 힘이 되는 것은

자연도, 맛있는 음식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쉼터도 있겠지만

그래도 제일 좋은 것은 이제 목적지가 얼마 남았다는 이정표일 것이다.

0.5 Km씩, 1 Km씩 줄어드는 기쁨.

 

길은 때론 전혀 길 같지 않은 곳을 지나기도 한다.

남의 집 뒷담길을 걷기도 하고, 건물 사이를 지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잘 지어진 집들은 그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커다란 밭에 이상한 허수아비가 매달려 있는 곳 담장에서

나이드신 할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기에 말을 붙여 본다.

길을 걸으면 꼭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니기에

그런데 할아버지 모습이 농삿군같지 않다.

아마 소일꺼리 삼아서 농사일을 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지도상으로 마지막 지형지물인 평대마을의 뱅듸길.

어쩌면 이런 말이 있을까? 도무지 한국말 같지 않은 단어

돌과 잡풀이 우거진 곳이라는 뜻이란다.

혹시 걷는데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 길은

잘 다듬어진 길로만 다녔다.

 

이제 20코스도 끝이 보인다. 큰 도로로 나와 세화리로 향한다.

큰 도로를 따라 가다가 문득 이정표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길을 잃었을까.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

걷기 본능으로 유추해 보아 눈을 돌리니 리본이 보였다.

 

세화리.

긴 둑을 따라 걷다 보니 눈에 익은 길이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이 곳에 드라이브를 했던 기억이 있다.

바닷가에 커다란 장터가 있던 곳.

당시는 초라했었는데 이젠 바닷가에 여기 저기 카페가 서고

멋진 제주해녀박물관이 들어섰다.

 

20코스에서 도착도장과 21코스 출발 도장을 같이 찍었다.

시간이 남아 해녀박물관에 들어가 볼까 하다가

모두 힘들다며 바로 버스타고 처음 묵었던 북촌하늘금으로 돌아와 버렸다.

 

제주에서는 버스 특히 동일주선이나 서일주 선을 타면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교통카드를 내야 하는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말도없이 습관적으로 교통카드를 판독기에 대는데

이를 본 버스기사들은 여지없이 목적지를 말하지 않고 카드 댔다고 짜증을 낸다.

물론 기사가 일정 금액을 셋팅하지 않으면 카드가 찍히지 않는 것 같다.

제주에서 일반교통 이용에 대해서 무지한 외지사람들을 위해 조금 친절하게 대해주면 안될까?

나도 처음에 몇 번 싫은 소리 들었고, 차에 앉아 다른 사람들 타는 것을 보면

여지없이 기사가 짜증내는 소리를 듣는다.

 

외국어를 몰라서 의사 소통은 잘 안되더라도

버스를 타기 위해 하는 말은 늘 똑 같을테니

기본적인 회화 몇 마디만 알아두면 어떨까?

숫자를 말하기가 힘들면 차라리 금액이 적힌 카드를 미리 준비하면 어떨까?

 

숙소에 돌아와 저녁을 먹기 위해 인근 식당을 찾아가 빈테이블에 앉았는데

다른 사람이 먹고 간 식탁을 치우는 종업원의 모습에서

남은 반찬을 재사용할려는 듯 음식을 종류별로 모으고 있는 것을 보고

갑자기 밥맛이 뚝 떨어졌다.

푸짐하게 주는 반찬의 인정이 좋긴 하지만

남은 반찬을 손님이 먹지 않았다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내놓는 건 좀

관광도시 제주의 모습이 아닐 것 같았다.

 

추석이 얼마남지 않아서인지 하늘의 달이 선명하다.

이런 청정지역에 오면 밤하늘 별을 찾아 보는 즐거움이 있는데

주위의 불빛이 밝아서인지 희미해 일부러 가로등이 없고 주택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니 별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왜 그리 선명한 별만 보면 늘 기분이 좋은지..    

나이도 들어도 내겐 동심(童心)이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소년임을

늘 스스로에게 대견해 하고 있다.

 

밤 늦게까지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제주도 푸른 밤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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