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올레길 21코스

carmina 2014. 9. 10. 09:04

 

2014. 9. 5

 

올레길 21코스

 

3일 째부터 잡힌 물집이 심하게 부풀어 올랐다.

특히 새끼발가락의 물집은 물 빼려고 마구 찔러댄 바늘에 덧나고 있는지

통증이 더 심해진다.

 

그래도 이런 고통가지고 포기한다면 산티아고 800Km는 언감생심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걸으면 결국은 짓물러 터져 말라 붙을 것이다.

 

어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20코스의 완주지점에 있는 세화리에

오늘 장터가 선다기에 일부러 21코스를 역으로 걸어 점심때 쯤

그 곳에서 식사를 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친구 부부와 함께

21코스의 종착점을 찾아가는 길을 인터넷에서 찾아

종달초등학교앞에서 버스를 내렸는데 바로 코 앞에 이정표가 보였다.

 

당시는 저 이정표가 21코스의 오름인 지미오름을 내려와 걷는 코스일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친구부인은 힘드니 초등학교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나중에 합세하자 하고

친구와 나는 제주올레길 안내센타에 코스를 물어보니 지미봉을 거치지 않고도

종착점인 종달바당을 찾아갈 수 있단다.

 

지미오름을 우회하여 한참 도로길을 따라가는데 바닷가 삼거리에 도착하여 망설였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1.5Km를 가면 종달바당을 찾아 갈 수 있는데 

스탬프를 찍기 위해 그 곳으로 가게 되면 다시 역으로 걷기 위해

1.5Km 를 걸어나와야 한다.

 

21코스는 10.5Km의 비교적 짧은 거리지만 내가 발의 상태가 안좋아

절룩거리는 상태에서 무리가 될 것 같아 지미오름으로 바로 올라갈려고 했으나

역방향의 노란 화살표가 보이지 않아 무척 헤매었다.

안내센터에서도 확실히 저정해 주지 않아 왔던 길을 되돌아 가다 보니

역방향에서는 보기 힘든 곳에 화살표가 붙어 있었다.

 

아니, 우리가 이야기에 정신팔리다 보니 방향표시를 보지 못한 것 같다.

분명 아까 지나올 때 보았던 카페이정표를 본 기억이 있는데

바로 그 옆에 방향을 표시하는 간새가 있을 줄은 생각못했다.

 

출발하기도 전에 힘을 빼니 맥이 풀렸다.

대개 다른 오름은 능선을 따라 비스듬하게 올라가는데

지미오름을 역으로 올라가는 길은 거의 직선으로 곧은 길이다.

비록 길은 가파르지만 가끔 뒤를 돌아 보면 시야에 가득찬

제주의 명물인 성산일출봉과 우도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그리고 육지에 곱게 수놓은 밭들의 격자 무늬가

그 어떤 수채화보다 아름답다.

 

요즘 들어서 왜 이리 산행이 힘든지

앞서가는 친구에게 미안할 정도로 내 체력이 엉망이다.

길은 남들이 멀다고 생각하는 길도 걸을 수 있는데

산을 오를 때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내 똥배가 나를 힘들게 한다.

가끔 내 몸이 무슨 이상이 있나 걱정도 해본다.

 

내일 찾아가기로 한 우도가 옆으로 길게 누워 있다.

이 곳에 오르니 내가 그간 걸었던 곳들이 한 눈에 보인다.

성산 일출봉 앞에서 시작한 2코스부터 3코스에 올랐던 오름들...

 

지미오름에 오를 때 혼자 올라 오던 아가씨의 튼튼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차를 오름 입구에 세워두고 혼자 올라간다며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여행을 좋아하는 포스를 느낀다. 세상을 멋지게 살 줄 아는 여자다.

 

지미오름에 올라 올 때는 건너편 방향으로 올라오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려갈 때 평탄하게 보였던 길은 어느 순간부터 가파라진다.

그리고 길도 상당히 멀고...

절뚝 거리며 걷는 내 고생은 다 내려오니 이미 끝난 것 같았다.

남은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오산이었다.

 

산을 다 내려오니 지미오름을 우회하는 길도 있다는 이정표가 있고

밋밋한 농로길이 이어진다.

그런데 아까 종달초등학교에서 본 지미오름과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는데

왜 이리 멀리가도 학교가 안 보이지?

 

끝이 안보이는 차도를 지나면서 우리가 길을 잘못 생각한 것을 알았다.

아까 버스에서 내려서 보았던 이정표는 21코스의 이정표가 아니고

1코스의 이정표였음을...

 

길이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물도 한 병만 챙겨왔는데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길을 오래 걷다 보니 이미 물이 바닥났다.

하도해수욕장 있는 정자에서 탈진한 몸을 쉬면서

친구도 종달초등학교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람에게 전화 걸어

차라리 21코스 시작점 부근에서 혼자 지내고 있으라며 연락해 놓고

편하게 길을 걸었다.

 

인터넷을 통해 21코스의 밋밋함은 사전에 알았지만

이렇게 재미없을 줄이야.

주위엔 아무 건물도 없고 차도 별로 안다니고

가끔 사이클링을 즐기는 사람들만 지나간다.

걷는 길도 모두 자전거 전용도로이고 아주 가끔 바닷가의 작은

흙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제일 희망은 점심이나 빨리 먹고 싶은 것.

김대중 전대통령이 식사해서 유명하다는 칼국수집 석다원을 찾았다.

석다원에 가까이 가면서 식당앞에 만들어 놓은 돌탑을 보고

이전에 아내와 이 곳을 지나치다가 칼국수를  먹는 기억이 있다.

당시 주인 아저씨가 막 잡아 온 생선을 회를 얻어 먹기도 했다.

 

석다원에서 성게칼국수를 시켜 둘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다행하게도 석다원부터는 바닷길이 아닌 농로길로 들어간다.

이 곳에서는 마주 오는 올레꾼들을 자주 보았다.

아마 코스가 짧아 이 길을 택한 것 같으나 이 길을 걸어보고는

길이 별로 아름답지 않아 후회할 것 같다.

 

하긴 이제까지 내가 걸었던 모든 올레길이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긴긴 농로길을 끝없이 걸어갈 때도 있었고

특이함이 없는 긴 바닷길을 걸어야만 할 때도 있었다.

 

물집이 잡힌 왼발이 아프니 오른 발도 신경쓰느라

발목에 무리가 오고 있지만 내색안하고 걸었다.

 

마을 길을 걷다가 이상한 구조물을 보았다.

바닷가에 인접한 마을을 둘러 쌓고 있는 거대한 돌담벽.

왜 이렇게 쌓았을까?

이 곳은 별방진이라는 곳인데 바다에 밀물이 넘칠 때

마을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았단다.

이 곳에 2010년에 큰 재해를 당한 기록이 써 있다.

약 57ha 의 면적이 침수되어 큰 피해를 입었으며

마을의 앞에 큰 방벽을 설치해 물을 막고 입구는 터 놓았는데

그 터 놓은 곳 앞에 커다란 물 웅덩이를 만들어 놓아

물이 들어와도 그 웅덩이에 물이 고이도록 해 놓았다.

 

제주의 다른 돌담들은 화산암 그대로 올려 놓아 틈이 많은데

이 곳의 돌담은 그야말로 일반벽돌같이 촘촘하게 쌓아 놓았다.

 

농로를 지나는데 어느 밭에 아주머니들이 길게 앉아 밭일을 하면서

다같이 무슨 노래를 흥얼거린다.

멀리서 들리기에 가사는 들리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았다.

노래가 생활이 되고 힘이 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제 길을 끝낸다.

세화리의 카페 앞에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는 친구 부인이

반갑게 맞이하기에 걷지 않기를 잘했다며 마음에 없는 위안의 말을 건넨다.

 

친구 부인이 세화장터가 별 볼게 없다해도 친구가 다녀오더니 정말 별 볼게 없다고

아쉬워 한다. 발 아파서 안 가길 잘햇네.

 

숙소로 돌아 오면서 약방에 들러 발에 붙일 약도 사고

저녁은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ㄴ느 동복리 제주 맛집인 해녀촌을 찾았다.

이 집은 늦게 가면 자리가 없을 정도라 하기에 일찍 찾아 갔더니 마침 여유가 있었다.

입구에 은행처럼 순서를 기다리는 번호표 뽑는 기계가 있다.

커다란 건물이 3개가 모두 한 식당에서 운영하는 것 같다.

 

고등어 조림하나와 회국수 2인분을 시켰는데

회는 광어회와 고등어 회를 쓴단다.

회국수도 맛있었지만 고등어 조림은 더 맛있다.

 

이번 여행의 큰 성과라면 그간 제주도에 와서 음식에 대해

감탄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특히 맛집을 찾아 다녀서인지

걷는 즐거움외에 먹는 즐거움도 배가 되었다.

 

이제...

올레길의 X-1로 매겨진 내륙코스 몇 개와 섬코스 몇 개 외에

1코스와 4코스만 남았으니 한 번 더 내려와야겠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올레길 여행.

 

내게 힘들어도 인내심이 있으니 감사.

같이 걸은 친구에게 감사

친절하게 대해 준 숙소의 주인에게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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