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제주도 올레길 1코스

carmina 2016. 9. 30. 13:10



2016. 9. 26


무언가 하지 못한 일들이 찜찜하면 언젠가는 그 일을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듯이, 제주도 올레길이 그랬다.

우도나 추자도 같은 섬이나 내륙을 돌아가는 번외노선을 제외하면 

전체 1코스부터 21코스까지가 제주도를 한바퀴 도는 올레길이 된다.

몇 번에 나누어서 그간 다녔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2012년 올레길을 걷던 여자가 동네 남자에게 살해 당한 후 

그간 코스를 막아 놓았던 1코스와 일정때문에 그냥 올라와야 했던 4코스가

마음에 걸려 마침 제주도에 사는 지인이 나를 보고 싶다는 핑계같지 않은 핑계를

아내에게 둘러대고 길을 떠났다.


다른 때 같았으면 미리 숙소를 예약하고 떠났을텐데

평일이고 휴가철도 아니라 제주 공항에 오후에 내려서 가능한 1코스 가까운

게스트 하우스에 예약을 하며 숙소 근처 저녁식사가 어렵다기에

편의점에서 산티아고 걸을 때 주로 먹던 즉석 스파게티와 샐러드를 들고

찾아간 시흥리 무명화가의 집 게스트 하우스.


701번 동순환일주노선버스를 타고 창가에 앉아 버스 밖으로 펼쳐지는

도시와 시골의 풍경들이 무척 낯익다. 거의 2시간 동안 보이는 길들을 보며 

그간 내가 참 많이도 걸었구나 하는 감회에 젖었다.

이미 다 마치 서쪽 해안길도 다시 보면 마찬가지 느낌일 것이다.


거의 모든 코스들이 각 코스가 끝나는 지점이 다음 코스인데

21코스종착지와 1코스출발지는 서로 위치가 다르다.

1코스는 조금 내륙에서부터 시작하여 21코스의 종착지를 거치게 딘다.


게스트 하우스 무명화가의 집.

실내로 들어서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마디로 업자가 지은 주택이 아니고 비전문가가 직접 지은 집이다.

통나무를 자르고 깎아 비교적 튼튼하게 지었다.

다락방에도 침실이 있는 듯 가파른 이층 계단으로

젊은이들 몇 명이 오르락 내리락했다.

그리고 실내에 빼곡하게 적힌 손님들의 투숙후기들..

모두 칭찬일색이다. 그리고 거실에 걸려 있는 조형물들과 그림들.

도미토리의 침대도 모두 투박해 보이는 직접만든 가구지만 튼튼해 보인다.


저녁거리를 데워먹을 전자레인지를 찾는데

주인이 조금 전 낚시로 커다란 숭어한마리 잡아 왔으니

회를 쳐서 같이 먹자하며 숭어를 보여 주는데 그야말로

역도선수 팔뚝만한 크기다.


내 저녁은 당연히 포기했다.

싱싱한 회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기대에 가득찼다.

챙이 넓은 큰 밀집모자를 쓰고 숭어를 가지고 온 주인의

모습이 얼마나 야외생활을 했던지 온 몸이 구리빛이다.

숭어를 냉동실에 넣어 조금 숙성시킨 뒤 회를 쳐서 먹으니

회가 입에서 녹는다. 이러다 너무 맛있어서 내 혀를 깨물라..

얼큰한 매운탕 속에 들어있는 숭어의 뼈에는

회를 쳐도 몇 접시가 나올 정도로 살이 많이 붙어 있다.


주인은 별로 회를 안 먹고 숙소에 묵은 다른 젊은이들은

이미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기에 거의 혼자 독식해 버렸다.

그래서 내가 사온 음식은 냉장이 필요하니 두었다가 다른 사람에게

주라며 인심써버렸다.


포만감에 밤 해변으로 나갔더니

태풍이 오는지 너울파도가 심해 해변 주차장에

미역들이 흩어져 있고 파도로 만들어진 물거품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아침은 아주 정갈하고 맛있었다.

이 곳에 묵었던 손님들의 평으로 이 곳에 아침 먹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냉동이나 냉장된 음식 재료는 쓰지 않는다면서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런 서비스까지 포함해서 2만원이라면 적극 권할만 하다.


주인에게 1코스 가는 길을 물었더니 연필로 대충 그린 약도를 보며

알려 주면서 어떤 이들이 반대편으로 나가 한참 갔다가 되돌아 온다고 했는데

내가 그만 그 꼴이 나 버렸다.


길을 걷다가 코스의 시작점을 오토바이를 타고 주민에게 물으니

저 앞에서 왼편으로 들어가라며 말해 주고는 한참 앞서가다

입구에서 뒤돌아서서는 나를 보며 손으로 다시 알려 준다.

고마운 사람들.


입구에 눈에 익숙한 나무 간세.

집에서 올레 스탬프를 찍는 수첩을 찾지 못해

그냥 안내 팜플렛에 도장을 찍었다.

이제 논밭길로 들어선다. 검은 화산흙이 덮인 밭에

새로운 농작물을 심을 준비가 다 되어 있다.


농로에 흰색 세단에서 내린 이가 길가에 올레길 기본을 달고 있기에

인사하니 올레길 안내센터에서 근무하는 자원봉사자다.

지속적으로 리본을 달고 있는 듯 하다.

숲속 입구에 하얀 유리로 만든 올레길 안내센터 건물이

자연친화적으로 만든 건축물로 보인다. 올레길을 다 걸으면

기념 뱃지를 준다고 하는데 번외코스까지 전 코스를 다 걸어야 한단다.

기념 뱃지 받는 것은 포기.


말미오름으로 올라가는 언덕은 걷기 편하게 모두 마대로 덮어 놓았다.

길가 작은 쉼터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산악회 리본을 달아 놓아

마치 무당집 같았다. 혹시 저 리본이 추모의 리본은 아닐까?

그간 폐쇄했던 1코스를 최근에 다시 개방하고 올해는

올레길 축제를 1코스에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 뒤에 긴 오솔길이 이어져 있다.

그다지 높지 않은 오름인 두산봉에 오르니 사방팔방에 안개가 가득해

온 세상이 뿌옇다. 성산일출봉이 뚜렷이 보일만한 거리인데

어디에 있는지 방향도 잡을 수 없다.


그 언덕에서 잠시 쉬며 어디로 내려가야 할지 두리번 거리며 리본을 찾다가

나무 한그루에 매달린 리본이 오른편에 걸려 있기에 당연히 그 길인줄

알고 방향을 잡았다가 반대편 언덕 아래에 흔들거리는 리본을 보고

잠깐 긴가민가해야 했다. 언젠가 오름에서 반대편 방향으로 내려가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하며 방향을 바꾸었다.


리본이 연속 이어진 것으로 보아 그 반대편 길이 맞았다.

오름에서 내려오는 길은 가을이면 커다란 억새밭의 장관을 볼 것 같다.

그렇게 오름을 내려오니 아까 길에서 본 자원봉사자를 다시 만나

오름꼭대기의 리본이 잘못 걸려 헤맬 수 있다 하니

그걸 이전에 수정해 놓았는데 또 잘못되었다며 얼른 손보겠다 한다.


길은 다시 낮은 오름인 말산메로 이어진다.

부슬비가 내린다. 문득 우비보다 우산이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슬비에 우비를 입으니 참 답답하다.

편한 언덕길.

시야는 여전히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육지인지 분간이 안된다.


밭에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모두 작은 롤러같은 생긴 도구를 밀고 가며 일을 하고 있기에

무엇을 하느냐 물어보니 씨를 뿌린단다.

그래도 사람의 손이 많이 들어가는 한국 농부의 모습을

이전에 산티아고 걸으며 보았던 스페인의 기계영농을 하는 밭의 모습과 비교하면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직은 귤이 익는 계절이 아닌 듯

집잡마다 몇 그루씩 심어져 있는 감귤나무의 열매는

마치 노란 감귤에 녹색 물감을 칠해 놓은 듯 나뭇잎 색깔과 너무 똑 같다.

어쩌다 노란 색의 열매가 보여 자세히 보면 아직 풋익은 감이다.

 

한참을 걸어 드디어 지난 해 왔던 21코스의 끝부분인 종달초등학교에 도착했다.

그 때는 21코스를 친구와 함께 역순으로 걸었기에 이 곳에서 출발하여

가파른 지미봉으로 올라갔었다.

평일인데도 학교 운동장에 인적이 하나도 없다.  

길가 곳곳에 피어있던 빨간 꽃무릇에 정신팔려서 길을 걷고 있다.

돌담옆에 이상한 간판이 하나 붙어 있다. '수상한 소금밭' 이게 뭘까?

카페인가? 책방인가? 게스트 하우스인가? 알고보니 그 모든 것이었다.

누군가 소금밭이 있던 자리에 건물을 지었다.


종달리 해변을 걸었다.

한 참을 걷다가 보니 눈 앞에 어제 밤에 산책나왔던 해변이 보였다.

1코스는 아마도 다른 코스처럼 중간에 오름을 몇 개 걷기 위해 돌아가게 만든 것 같다.

밝은 낮에 보니 물이 빠져서인지 어제 밤 출렁거리던 바다에 둥둥 떠있던

파래와 미역들이 모두 바닷가에 널려 있었다.

아마 그냥 손으로 주워먹어도 될 정도로 깨끗할 것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그 바닷가에 양동이를 들고 걸어가기에

미역을 줍는가 했더니 문득 돌을 들어 올리며 돌밑에 있던 무언가를 줍는다.

주운 것을 양동이에 넣을 때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소라나 고동같은 것으로 추측되었는데 마침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보말국을 시켜 먹어보니 그 안에 고동이 들어 있어 그 아주머니가 줍던 것이

보말인 것을 확인했다.


식사 중 밖에 빗줄기가 굵어졌다.

사이클을 타던 두 명의 남자가 비를 피해 식당에 들어오면서 사이클을 실내로

들여 놓으려다 주인과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비를 맞으며 타고 다녔던 자전거를 굳이 실내로 들여 놓으려고 애쓰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앞 바닷가에 한치를 널어 말리고 있어 길가는 이들의 탐심을 자극한다.

태풍때문인지 부두에는 모든 배들이 열과 오를 잘 맞추어 정박되어 있었다.


멀리 성산 일출봉이 보였다.

그러나 비안개가 가득해 꼭대기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제주도에 차를 타고 지나가면 꼭 둘러 보는 곳 성산 일출봉.

눈에 익은 멋진 풍경들이 오늘은 희미하게 보인다.

그래도 그곳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계속 비를 맞으며 걸었기에 잠시 쉬고 싶어 들어 간 편의점에서

외국 손님들이 많다. 따뜻한 캔커피 하나로 몸을 녹였다.

올레길이 왜 성산일출봉을 올라가지 않게 했는지 이상하다.

나는 오늘 올레꾼이다.

일출봉 앞에서 이정표대로 길을 따라 해변으로 걸었다.


날씨가 좋으면 바닷가로 내려가 모래밭을 걷도록 되어 있는데

오늘은 둑 위로 걸어야만 했다.

둑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성산일출봉의 주위로 파도가 밀려 오며

펼쳐지는 멋진 풍경이 한 폭의 수묵화같아 한 참을 바라 보았다.


오늘의 목적지 광치기 해변을 따라 걷는 저 앞에 말 한마리가

내가 옆으로 지나가도 눈 길도 주지 않고 허기를 채우고 있다.


길에 가득한 말똥을 피해가며 광치기 해변을 한 참 걸어

드디어 2코스가 시작되는 눈 익은 간세를 만났다.

그 곳에 말타기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천천히 말을 하고 있었다.


큰 길로 나와 4코스가 시작되는 표선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며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를 검색해 보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어

갈등이 많않다. 어제 묵은 곳으로 다시 갈까?

그러나 어플에 보이지 않는 게스트 하우스도 많다는 생각에

우선은 표선에서 내려 바닷가로 나와 주위를 둘러 보니 그 흔한

게스트하우스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차가 다니는 큰 길로 다시 걸어 나와

길 가에 있는 현대식 숙소를 잡았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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