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제주도올레길

제주도 올레길 4코스 (일부)

carmina 2016. 9. 30. 20:30



2016. 9. 27


이제 올레길 한 코스만 돌면 제주도를 환상으로 한 바퀴 완주하는 기록을 세운다.

그렇게 설레는 아침에 하늘도 설레었는지 비가 아침부터 세차게 쏟아지고 있다.

밤새 창문밖에서 들리는 빗소리에 잠을 설쳤고

선풍기 바람으로 젖은 빨래들을 말리기 위해 애 좀 썼다.

내겐 비와 인연이 많은 올레길.

이번에도 태풍이 오는 것을 알면서도 이 곳에 왔기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산티아고도 9일동안 비를 맞고 걸어도 즐겁게 걸었으니

이 정도 비야 걱정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아침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며

우비를 덮어 썼다.


빗방울이 튀겨 금세 바지단과 신발을 적신다.

표선바닷가로 나갔다.

이전에 아내와 사진을 찍었던 알록달록한 표선의 상징물은

비를 맞아 더 깨끗하고 선명해 보인다.  


우선 간세를 찾아 스탬프를 찍어야 하는데 이 곳에 어디 쯤

간세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해변가를 두리번 거렸다.

인적없는 해변을 거닐다가 끝에쯤에서야 그 곳에 올레길

안내센터가 있던 기억을 떠 올렸다.

아직 출근하지 않았는 문이 닫힌 센터에서 스탬프를 찍고

표선에서 남원올레까지 무려 23키로라는 유난히 긴 거리를 확인하고

상가 골목을 지나 바닷가로 들어섰다.


만들어 놓은 지 얼마 안되는 전시용 뗏목이 바닷가 바위 위에

올려져 있어 문득 표선이라는 지명의 뜻이 '표류하는 배'인가 생각했다.

혹시 이 쪽으로 누군가 유명한 사람이 난파선을 타고 떠 밀려 온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문득 바다를 보니 거대한 파도가 밀려온다.

마치 쓰나미라고 생각될 정도로 흰 파도가 몰려 오다가

바위 앞에서 부서진다.

그런데 올레길 리본은 그 바위 앞길을 가라 한다.

나보고 어쩌라고..

그 앞으로 걸어가라고?

그래도 혹시나 해서 바닷가로 나가보았다.

그 화산바위 끝에 낚싯군 2명이 선 채로 낚시를 하고 있다.

정말 용감한 사람들이네.

저렇게도 하는데 걷지 못하랴? 하고 길을 가다가

갯가 세멘트길이 수면과 거의 같은 높이에 있는 것을 보고는

용기가 부족해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이 길만 길이랴. 자전거 다니는 길로 가자.

도로위로 올라왔다. 도로에는 차량을 위한 차선하나의

3분의 2쯤되는 자전거도로가 있어 걷기는 편했다.

그 위를 걸으며 파도를 보니 이제 안심이 된다.

파도가 거대하게 밀려와 바닷가의 큰 바위에 철썩하고 부딪히니

거품이 바위를 집어 삼켜 버린다.

저렇게 수억번을 부딪히면 바위가 조금씩 깎여나가겠지?

그걸 불교에서는 업이라 할거야.


바닷가에 우뚝 선 등대도 파도는 거침이 없다.

힘있게 달려와서 사정없이 무대뽀로 부딪히고 포말을 뿜어낸다.

그러다보니 등대의 하얀색이나 파도의 흰 거품이 뒤섞여

세상은 온통 흰색으로 변해 버렸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지니 차도에서 인도로 쓸려 내려오는 물이

신발을 가득 적시고 물 웅덩이가 커서 뛰어 넘지도 못할 정도가 되니

어쩔 수 없이 물에 신발이 잠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바지로 흘러내린

빗물이 신발안으로 흘러내려가는 것도 막을 수 없으니 이미

신발안은 물이 가득차 버렸다. 일단 비를 피할 수 있는 정자에서

신발을 벗어 양말에 물을 짜 내고 신발속의 물을 털고 다시 신고 떠났다.


커다란 파도가 몰려와 검은 바위에 부딪히는 장관에 폭 빠져

길 걷는 것을 잊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제법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는데도 이정표를 보니 불과 3키로를 걸었을 뿐이다.


앞 뒤를 돌아보아도 걷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그러나 내 앞을

쏜살같이 지나치는 바이크족들은 자주 보였다.


어제 하루 걸었을 뿐인데 새끼 발가락에 물집기미가 보이기에

밴드를 붙였었는데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눈앞에 보이는 제주해양수산지원 연구원 앞에 오니

건물내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기에  청소부밖에 없는

건물에 들어가 미안하지만 화장실 손세척용 휴지를 뭉텅 집어서

신발속에 가득 집어 넣고 습기를 제거하고 양말도 물을 짜내고는

휴지를 이용해 가능한 물기를 제거했다.

불과 첫번 물 짜낸지 30분도 안되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니 조금 불안감이 들었다.


비가 너무 오니 길가에 차를 세우고 멈추어 선 채

차안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도 자주 보였다.

그 뒤로도 한 3키로 정도 걸으니 도무지 신발 속의 물 때문에

더 걸을 형편이 안되어 오늘 완주하겠다는 나의 욕심을 버렸다.

간단히 점심이라도 먹고 싶어 바닷가의 식당을 두리번거렸지만

그 흔한 전복 뚝배기를 먹기 싫어 서귀포에 가서 먹기 위해

버스를 탈 수 있는 큰 길로 나왔다. 


버스는 다시 또 눈에 익은 올레길 5코스 6코스를 지나

서귀포로 거리의 빗물을 튀기며 달려간다.

왜 제주도 공공버스는 막 탄 손님이 앉기도 전에

차가 출발해 늘 손님이 차 안에서 휘청거리게 만들까?

그리고 이런 빗길에 운전하는데 연신 앞에 앉아 있는 승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 구시외버스터미널이 있고 신시외버스터미널이 있기에

제주로 오후에 올라갈려면 신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것이 맞을 것 같아

구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한참을 달려 도착한 신시외버스터미널은

편의 시설이라고는 작은 마트 하나밖에 없었다.

비만 안 온다면 가까이 있는 맥도날드로 걸어가겠지만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우산도 없이 가는 것이 불편해

제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리무진버스 기사에게 제주까지 가는 시간을 물으니

돌아오는 답은 '몰라요'였다. 하긴 각 호텔마다 들러

손님을 태워야 하니 지체 시간을 가늠하지 못할 것이다.

거칠게 운전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도착한 제주.

한라산 건너편이라 그런지 서귀포보다 비가 조금 덜오는 편이다.


터미널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하고 제일 먼저 신발부터 말려야했다.

저녁에 제주에서 여행업을 하는 친구와 만나기로 되어 있으니

다른 것은 몰라도 푹 젖은 신발을 신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겨우 신문지로 습기만 제거하고 저녁 식사를 위해 나선 곳은

신제주 로타리에 있는 작은 횟집인데 저렴한 가격에

여러가지 회가 참 푸짐하게 나왔다. 하다못해 고등어회까지

서비스로 제공하는 알찬 횟집에서 실컷 회를 즐기고 나와

2차로 찾아 간 집은 우리 젊은 시절 연인들이 잘 가던

경양식집 같은 분위기의 맥주집에서 노가리 안주를 시키니

서울같이 말라 비틀어진 노가리가 아니고 살이 통통한 노가리를

구워 내오니 노가리 맛이 얼마나 좋은지 폭 빠져 버렸다.


늦은 시간에 돌아온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투숙객들의

파티가 열리고 있어 많은 젊은이들의 여행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이 장기여행자들이다. 제주도를 한 달을 넘게 다니며

여기 저기 좋은 곳들을 찾아 다니고 있다.

하긴 이런 숙소에서 자고 돌아다니면 그다지 큰 비용은

들지 않을 것 같다.


내일도 비가 온단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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