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부천시립합창단 팝스 콘서트

carmina 2014. 9. 21. 17:23

 

 

2014. 9. 20 토요일,  부천 시온고등학교

 

하늘에 별이 총총한 가을 초입의 휴일 저녁

아파트로 둘러쌓인 주택가 한가운데 학교 운동장에서

시민을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의 일환으로

조익현 선생님이 지휘하는 부천시립합창단의 팝스 콘서트가 열렸다.

 

부천은 좋은 음악단체는 있어도

좋은 음악공연장이 없어 음악애호가로서는 여간 불만이 아니다.

어쩌다 찾아간 시민회관은 좁고 시민들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

가치 있는 공연이 관객수가 적어 아쉬울 때가 많다.

내가 그러하니 공연자들은 얼마나 더할까?

 

그러나 음악은 어찌되었건 간에 사람들 옆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산이 내게로 오지 않는 한 산을 찾아 갈 수 밖에 없는 것처럼

합창단에서 시민을 직접 찾아가는 행사를 종종 갖는다.

음악의 사각지대에 있는 양로원, 군부대, 경로당 등..

잘 알지 않는가. 성경을 비롯한 모든 역사에서 증명하는 것처럼

음악은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가족들 손을 잡고 편한옷차림으로 삼삼 오오 몰려와

운동장에 가득찬 의자들을 한 줄 한 줄 채우고 있다.

 

지휘자가 연주 시작전에 미리 연주 안내를 한다.

오늘 같은 날은 가족과 치킨을 사들고 와서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갑자기 그걸 왜 미리 몰랐을까 하며 무릎을 쳤다.

 

올해의 가장 가슴아팠던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위한

임형주가 불렀던 추모곡 '천개의 바람이 되어' 로 오프닝하고

신나는 팝송의 합창이 시작된다.

 

스티브 원더가 불렀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가사의 내용에 대해서도 지휘자의 친절한 안내가 곁들인다.

'그냥 전화했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노래만큼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이 있을까?

노래를 하는 단원들의 표정이 참 밝다.

늘 묵묵히 서서 엄숙하게 노래하던 그 모습들이 오늘은 음악에 흔들리고 있다.

9월의 주제가 고전 팝송 'Try to remember'

이 즈음 길을 걸으면 늘 혼자 흥얼거리는 노래다.

내겐 내가 즐기는 모든 노래들이 사연이 있다.

 

2014년 최대의 히트곡, 오죽하면 이 곡을 누가 가장 잘 부르는지

가수들 간에 경연이 열릴 정도로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만화 영화 <겨울왕국>의 'Let it go'

이 곡을 일반 가수의 독창이 아닌 합창으로 들으면서

내가 저 무리 속에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미국식 재즈 오페라인 거쉬윈의 '포기와 베스'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 'Summertime'이

소프라노 솔로의 맑은 노래로 주위 아파트의 열려진 창가를 통해 스며들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번스타인의 오페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귀에 익은 멜로디들이 멋지게 파티복으로 차려 입는 단원들이

노래와 춤으로 기량을 뽐내고 있다.

 

언젠가 아내와 뉴욕을 여행할 때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캣츠'를 보면서

가장 놀라운 것이 그들의 성악적인 발성이었다.

반면에 국내의 대학로에서 다시 또 국내 뮤지컬 배우들이 공연한 '캣츠'를 보았을 때

가장 놀라운 것이 출연자들의 노래가 너무 음악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제 합창단원들이 부르는 춤과 함께 부르는 것을 보면서

할 수 만 있다면 제대로 음악을 배운 성악가들이 국내의 뮤지컬에도 많이

진출하면 좋겠다하는 바램도 해 본다. 

 

모름지기 노래는 모든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입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요즘은 시립합창단원 오디션에도 노래하는 실력외에

음악을 얼마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까지 테스트 한단다.

참 바람직한 시대의 흐름이다.

 

합창단원의 능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녀단원 몇 명이 카바레나 가서야 볼 수 있는 화려한 복장을 입고

귀에 익은 국내 K-Pop 들을 불러 제낀다.

(여기서는 제낀다 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늘 도외시하던 K-Pop들이 요리 프로그램의 마스터 세프들의

손을 거치니 고급스러운 요리로 변해 버렸다.

 

이어지는 무대는 부천의 청소년들이 만든 뮤지컬 하이라이트

춤을 추고 노래한다.

그들의 발성법으로...

그 들의 노래로 ...

그 들의 몸에 맞는 춤으로..

 

사람들이 열광한다.

그 열광의 환호를 들으며 무대가 뜨거워진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으면 저렇게 잘 맞추어 할 수 있을까?

요즘은 동네 구석 구석이 젊은이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다.

 

무대가 뜨거워지고 노래소리 뿐만이 아니라

관객들의 박수가 커지니 주위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온다 

잠들던 아가들이 일어나 칭얼댄다며...

음악보다는 아기가 소중한 엄마들이 부천시에 민원을 제기한다며

마지막 무대를 다 같이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들로 막바지를 치닫는다.

 

주위를 둘러 보니 좌석 주위에 사람들이 서서 구경을 하고 있다.

대 성황이다.

시민들이 바라는 음악을 선물한 것이다.

 

전문 연주자들이 베토벤이나 베르디나 풋치니, 브라암스같은

누구나 감동받을 수 잇는 노래가 아니라도 사람들을 충분히 감동시킬 수 있다.

 

음악처럼 평등한 것이 있을까?

누구든지 듣는 자들이 자기 식대로 소유할 수 있는 음악.

 

마지막 무대는 더 파격적인 노래를 불러준다.

만화영화 주제가를 단원들이 합창으로 어린아이들같이 춤을 추며

부르는 재미있고 맑은 노래들이 초가을의 밤에 별처럼 흩어진다.

 

할 수 만 있다면, 음악은 제대로 배운 사람들이

사회의 소외된 구석 구석을 찾아가며 들려 주길 바란다.

젊은 시절 기타 하나를 들고 여기 저기 불우한 곳을 찾아 다니며

그 들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

산업전선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여공들

창녀촌에서 도망쳐 나온 아가씨들의 재활교육촌

원치 않는 임신으로 애기를 낳아 입양보내는 산모들의 집, 군인들, 학생들,

그 들이 보기에 부러운 대학생인 나는 그 들과 노래 하나로 소통할 수 있었다.

 

음악은 나누어야 진정 가치가 있는 것이다.

듣기에 가장 완벽한 것만이 음악이 아니라 환경이 조금 부족해도

음악은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으로 풍족한 삶.

남에게는 그다지 가치가 없는 이 음악이 내겐

그 어느 것보다 내 일생의 가장 소중한 보물로 간직하고 있다.

 

요즘은 음악을 만날 기회가 많아 기대가 된다.

다음 주에는 나를 이런 클래식의 세계로 몰입하게 한

고음악 합창을 정통 고전 발성으로 들어 볼 기회를 기다려 본다.

 

비바.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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