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이태리 고음악 연주회 (Fioli Musicali)

carmina 2014. 9. 25. 21:06

 

 

2014. 9. 24

 

결혼 전 부터 고음악에 빠지기 시작했다.

해방이후에 시작되었다는 시온성합창단이란 곳에서

모텟합창을 배운 뒤로 고음악의 매력을 알았다.

 

교회서 늘 소리지르는 찬양만 하다가

처음 가입한 일반합창단에서 배운 고음악의 세계.

무반주로 8성부 합창을 하고, 화음을 위주로 하는 일반 합창곡에 비해

각 성부가 각자의 흐름으로 가면서도 기막힌 화음이 만들어지는

모텟트 합창은 그야말로 내게 신세계였다.

 

그 뒤부터 꾸준히 모으기 시작한 고음악 합창 씨디들.

용돈이 허락하는 한도내에서 눈에 보이는대로 긁어 모았다.

 

그러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리 교회 지휘자로 왔던 고음악 전문가 박승희씨.

스스로 바로크테너라 불리우는 그 분의 개인 연주회에 가서

또 한번 일반 발성과 고음악 발성의 차이점을 알았다.

 

박승희씨와의 만남으로 고음악 연주회에 가끔 갈 일이 생겼고 

2009년에는 외국의 유명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이며

고음악 전문지휘자가 지휘하는 메시아 원전연주회에

객원테너로 참여하기도 했다.

 

논현2동 성당에서 열려진 공연

연주 전에 허기를 때우려 찾아간 인근 중국집에서 시킨

짜장면이 특이하다. 일반 장이 아닌 전통 된장을 소스로 하는

짜장면을 보며 문득 오늘의 공연과 무척 성격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웃었다. 맛도 고음악처럼 담백했고..

 

성당의 본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조각이 되어 있는 아주 두터운 철문이다.

로마를 여행할 때 어느 성당의 입구에서 본 모습니다.

이 사람들로 가득차서 한 층 더 올라가니

미사볼 때 성가대가 연주하는 곳인 듯 피아노와

지휘자 보면대 그리고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성당은 대개 성가대가 본당의 뒷부분 2층에서 찬양을 한다.

그래서 찬양대의 소리가 머리 뒤에서 들려 오는 천상의 소리같은

효과를 낸다. 이런 효과를 지난 번 내가 가르치는 초등부 찬양대가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을 부를 때 교회에서도 시도해 보았었다.

 

첫곡이 17세기 중반 작곡가인 Arcangelo Corelli의 콘체르토로 시작하는데

평소 시립교향악단의 연주에서 듣던 웅장함은 찾아 볼 수 없고

마치 파스텔톤의 따뜻한 음악이 성당을 가득채운다.

 

바로크 바이올린은 턱받침이 없어 연주자들이 악기와 더 가깝고

바로크 첼로도 악기 밑의 뾰족한 지지대가 없어 두 다리로

첼로의 아랫부분을 감싸야 한다.

첼로를 조금 배울 때 느낀 점이 악기를 몸으로 안고 소리를 냈을 때

그 떨림이 참 기분좋다.

그리고 현악기의 현이나 활도 일반 현대의 현악기가 표현할 수 없는

부드러움이 있다.

특히 비올라 다 감바는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는데, 기타와 첼로의 중간 음으로

마치 귀에 속삭이는 듯한 음을 표현하고 있다.

 

지금 저 연주자들이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으리라.

쳄발로의 튀지 않는 소리와 비올의 여유로움.

언뜻 보기에도 오래 된 바로크 비올라의 묵직함.

악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음악은 악장 악장마다 

마치 부서지면 바스라지는 오래 된 고서를 펼치듯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 내게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기대했던 카운터 테너의 솔로.

우리 나라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카운터 테너의 소리를

이 곳에서 들을 수 있다.

국내에서 알아준다는 귀에 익은 카운터테너의 소리는

들을 때 마다 목소리가 너무 여려서 에프엠을 듣다가도

채널을 바꾸는데 지금 무대에서 노래하는 카운터 테너는 힘이 있다.

 

영화 파리넬리에서 주인공이 연주한 카스트라토의 소리는

실제로는 앨토가 노래한 것이라 한다.

요즘은 카스트라토가 없고 카운터 테너가 대신한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 중에도 유명 카운터 테너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이 소리에 귀에 참 익다.

쉽게 들을 수 없는 소리이기에 박수가 더 크게 나왔다.

 

그리고 좀처럼 듣기 힘든 바로크 리코더의 연주

많은 악기와 연주하는데도 목관악기인 리코더의 소리가

뚜렷이 다른 악기들의 소리 사이를 비집고 나와 아름답게 홀을 울린다.

  

지인 중에 클래식 음악 매니아가 있었는데

수 없이 많은 씨디를 보유하고 음악에 대한 이론도 박식하여

아마츄어로서 음악잡지에 기고를 할 정도로 해박한

음악지식을 가진 분이 어느 날 내게 음반 하나를 주시며 하시는 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음반을 주지 않는데 자네에게 이 음반은 주고 싶네"

하며 건넨 씨디가 바로크 리코더의 음반이었다.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좋던지..

 

그리고 눈에 익을 작곡가 몬테베르디의 노래 중 소프라노 솔로.

탄식조의 노래를 하는데 고음악 발성으로 들어서인지

더 애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어쩌면 저렇게 노래할 수 있을까?

 

테너, 바리톤, 베이스와 소프라노가 연주한 몬테베르디의 요정의 탄식.

내가 지금 중세의 어느 궁전에 와 있는 기분을 느낀다.

길고 높은 창이 이어져 있는 방에서 화려한 커텐이 쳐 있는 커다란 홀에서

대리석 바닥을 가죽신발을 신고 긴 로브를 걸치고 천천히 걷는 기분이다.

 

다시 리코더로 춤곡이 연주된다.

한없이 들어도 질리지 않을 리코더의 소리.

저 소리를 만약 금속으로 된 플륫으로 들었으면 지겨울 수도 있었겠다.

 

메조 소프라노와 카운터 테너가 이중창으로 사랑의 고백을 한다.   

노래를 끝내고 꽃을 전해 주는데 옆에서 연주하던 류트 연주자가

긴 악기의 끝을 살짝 내밀어 꽃을 가로챈다.

내가 알기로는 류트라 했는데 팜프렛에는 다른 이름이 써있다.

확인해 봐야겠다.

 

마지막으로  전 인원이 모두 나와 오라토리오 "예프네"를 연주한다.

1630년경에 작곡가 카리시마가 작곡한 최초의 오라토리오로

성경 사사기중에서 비극 이야기를 다룬 스토리다.

전장에서 승리한 장군이 승리하면 돌아오는 길에 최초로 만나는 여자를

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만 그 여자가 자기 딸이라는 내용이다.

내용이 그래서인지 음악은 시종 비통스러웠고, 안타까운 노래로 전해 진다.

 

이런 곡을 이런 울림이 좋은 성당에서 연주하니 더 빛이 났고

제대로 고음악을 배운 사람들이 고음악 전용 악기로 연주하니

음악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 부터 고음악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는데

아직 한국에선 고음악보다는 현대적인 클래식음악을 선호한다.

그러나 오늘 연주장에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찼고

연주를 듣는 이들의 자세도 상당히 진지했다.

 

오랜 동안 고음악 씨디들을 듣지 못했기에

집에 와서 그간 모아 두었던 씨디들을 하나 하나 들쳐 본다.

한 장 한 장 살 때마다 들어 보는 음악들이 그다지 좋지 않은

오디오를 통해서도 감동이었는데, 이 음악들을 실연으로 들으니

연주를 듣고 집에 와서는 침대에 누워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요즘은 시립합창단에서도 원전연주를 자주 게획하고 있다.

전문 지휘자롤 객원 지휘자로 하여 발성도 새로 가르친다 한다.

내 작은 소망은 교회에서도 이런 고음악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래본다.

 

마치 유럽의 오래 된 고성을 여행하고 온 듯한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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