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중동방문기

첫 해외 근무 (사우디 아라비아)

carmina 2015. 6. 3. 11:41

 

 

결혼전 사우디에 1년, 결혼 후 1년 근무했습니다.

 

1984. 3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기분은 외국을 나간다는 흥분과 전혀 생면부지의 나라에 가서 생활해야 한다는 설레임 때문에 말 할 수 없이 기쁘지만 몸도 불편하신 부모님을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건 무척이나 가슴 아픈 일이다. 갑자기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으면 내가 즉시 하루 만에 달려 올 수 있는 거리도 아닌 먼 곳으로 떠나는 나는 이제 가면 다시는 부모님을 못 뵐 것 같은 착잡한 기분으로 집을 나선다.

 

 

 

마치 노무자처럼 커다란 이민 가방에 옷가지를 챙기고 어릴 때 부터 같이 지냈던 여자 친구가 열사의 나라 중동이지만 밤에는 추울 것이라고 모자가 있는 긴 팔 옷을 하나 사 주길래 고마워 하며 챙겨 넣는다. 같은 비행기 편으로 친척 형님 한 분이 일반 노무자로 나가고 있어 기내 생활이 조금 불편할 것 같다. 수십 명의 노무자가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몇 명의 직원과 함께 공항 담당 직원이 처리해준 보딩 패스와 비행기표를 들고 태극마크도 선명한 대한항공에 오른다.

 

비좁은 기내에서 자리를 잡느라 어수선 하다가 기체가 활주로를 타면서 조용해 지더니 기내는 마치 입영 열차안의 장정들 같은 침울한 기분으로 변한다. 거의가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던 사람들이라 외모가 초라하기만 하다. 그 중에 말쑥한 차림의 우리들은 그저 조용히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다. 기내 식사가 나오고 영화가 상영되는가 싶더니 곧 잠이 들어 버린다.

 

오랜 시간을 날아 온 비행기는 사우디의 담맘공항에 새벽에 도착하고 비행기의 문을 나서니 뜨거운 기운이 금방 코에 와 닿는다. 트랩을 내려오다가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대한항공 직원이 아는 얼굴이다. 고등학교때 학생회장을 지내고 대학교때 학교 간부를 지낸 선배이다. 이국땅에 내리자 마자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좋은 징조일까?

 

미리 중동지역의 생활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해외 이민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에서 또 회사에서... 여자는 쳐다보지 말라, 술은 절대 금지다. 여자의 야한 모습이 나오는 잡지는 절대 가지고 가면 안된다. 등등.. 마치 공산주의 국가로 들어가는 것 같은 살벌한 교육들.

 

공항 세관 검사대에서 내 짐이 걸렸다 . 내 가방에서 비데오 테이프가 하나 나왔다. 누군가 내 가방에 쑤셔 넣었는데 나도 그게 뭔지 모르겠다. 나는 따로 어느 방으로 안내되고 거기서 비데오를 공안원이 틀어본다. 중국 무협영화. 별게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돌려주고 공항을 나오니 커다란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유태인처럼 근로자들이 차례로 줄지어 오르고 나는 관리직이라고 몸집이 큰 어느 트럭같은 차에 오른다. 나중에야 그게 서버반이라 불리우는 것을 알았지만....

 

새벽 3시 반경인데 이미 밖이 훤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온통 사막뿐이다. 드디어 중동에 왔구나.. 새벽이라 달리는 차도 없는데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차에 우리 회사 이름을 부착한 대형 버스들 몇 대가 스쳐 지나 가고 있다. 아니 이 시간에 벌써 일하러 나가는 건가? 아무리 낮에 뜨겁다 하더라도 이런 꼭두 새벽부터 일을 하면 언제 일이 끝나나?

 

거리에는 집도 별로 없다. 아니면 여기가 도시가 아니라서 그러는지 몰라도... 알 수 없는 꼬부랑글씨가 이 나라 글이고 보니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조차 모르는 글들을 건성으로 지나친다. 차는 어느 야외 가건물단지로 들어가고 그 곳에 내리니 반바지 차림의 근로자들이 우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차에서 내려 내 방을 배정 받고, 밖을 나오니 이곳에서 다시 먼 현장으로 갈 근로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앞으로도 8시간을 버스를 타고 다른 현장으로 가는 이들에게 점심대용으로 김밥을 싼다. 그곳은 무척 오지라는데.... 나는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밥냄새가 찌들은 식당에 들어가니 커다란 식탁마다 빵이 잔뜩 쌓여 있고 커피 우유 잼 등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나의 처음 외국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새벽 3시반부터 지내는 현장에는 새벽 공기가 서늘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바람에 열기가 스며있다. 가끔 바람이 몰아 칠때면 앞이 안보일 정도로 모래바람이 앞을 가려 차가 운행이 어려울 정도라 이 바람을 우리는 할라스 바람이라 한다. 할라스란 말은 끝났다는 말이다.

 

낮에 한 서너시간 낮잠을 자고 저녁에 다시 일한다. 대부분 일찍 잠에 들지만 몇 몇 아직 젊은 사람들은 늦게까지 비데오 시청에 몰두하기도 한다. 프로그램은 주로 한국에서 공수되어 온 연속극 물이나 단편물들 그리고 일반 영화 비데오 들이다. 그러나 이곳 한국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섹스비데오이다.

 

어디서 흘러 들어오는 지 모르지만 여러번 복사를 해서인지 화질도 좋지 않고 옆으로 비오는 듯한 화면이지만 늦게까지 눈이 충혈될 정도로 그러한 비데오 시청에 빠져 있는다. 하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욕구인 여자가 해결되지 않으니 충분히 그럴 만 하다. 좋은 비데오 있다는 정보만 들어오면 대부분 문닫아 걸고 저녁에 샤워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혹 늦게 들어오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다시 보자고 우겨서 앞부분은 몇 번씩 다시 보기도 한다.

 

대부분이 미국에서 촬영된듯한 섹스비데오는 거의 모든 내용이 아무런 내용 전개 없이 그저 인간의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는 내용들이고 음악도 천편일률적이라 밖에서 들어도 무슨 비데오를 보고 있는지 금방 알 정도이다. 수없이 많은 섹스비데오를 시청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현장숙소에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매점이 있어 저녁시간에는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고 귀국시에도 선물구입은 주로 이곳을 이용했다. 우선 말이 통하니 물건 구입이 쉬었고 혹 나중에라도 교환이 가능하니 이곳에서 매점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재미를 제법 보았다 또 한국인 현장에 부식을 제공하는 업체는 대개 현지에서 터를 잡은 한국인사업체들이었는데 이들도 서로 경쟁이 대단했다.

 

시내에 쇼핑을 나서면 주로 찾는 곳이 보석가게나 혹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가게를 주로 찾곤 한다. 그곳에 가면 한국인의 구미에 맞는 물건들이 그득하니 돈 벌어서 이곳에 많이 뿌리곤 했다. 이 당시 구입한 목걸이와 시계들은 나중에 내 결혼예물이 되었다.

 

또한 당시 금성사에서 수출한 좋은 텔레비젼을 이곳에서 구입한 후 다시 역수입한 좋은 칼라텔레비젼은 한 10년을 써도 될 정도로 제품이 좋았다.

 

주말이면 부지런한 이들은 낚시를 즐긴다. 유난히 맑은 바다와 풍부한 고기종류로 가득찬 걸프만이 있어 이곳에서 생활하는 한국근로자는 조금 나은 편이다. 비록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국의 향수를 잊을 만한 소일거리가 있다는 것은 해외생활에 무척 도움이 된다. 평일엔 일을 한다고 근심걱정을 잊고 주말에는 낚시로 그리고 바닷가로다니는 재미로 소일을 하니 일주일이 금방 가는 편이다. 워낙 고기가 잘 잡히기때문에 직원들이 바다에 다녀온 날 밤에는 횟거리와 매운탕끓이는 냄새가 숙소에 가득하다. 주방의 요리사들에게 양념을 부탁하고 몰래 담아 먹는 술에 밤 깊은 줄 모르고 이국 맛을 즐기지만 내일일의 걱정때문에 한국같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취하진 않는다.

 

현장소장이 직원들의 회식을 구상하면 대개 바닷가에서 펼치는 양고기 파티를 생각한다. 드럼통을 수평으로 자르고 그 안에 숯을 가득 담고 현장에서 만든 석쇠를 얹으면 훌륭한 바베규 굽는 도구가 되어 마치 한국의 바닷가에서 돼지고기 굽는 재미를 느낀다.

 

 

주말에 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오아시스라는 곳을 갔다. 꽈디프라는 곳인데 수풀이 우거져 있다. 길가에 커다란 도랑이 있고 그 곳에 신기하게도 물이 흐른다. 그러니 인근 숲에는 야자나무가 가득차 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곳 사막의 그 많은 물들이 솟아 나오는 샘의 원천이 있다. 그 곳을 가 보고는 너무 신기해서 한 참을 그 곳에서 그 샘을 보고 있어야 했다.

 

마치 지구에 구멍을 뚫어 놓은 것처럼 직경 7 - 8 미터의 아주 깊어 보이는 샘에서 물이 계속 솟아 나오고 있고 그 안에서 몇 몇 이방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다. 가지고 간 수영복을 차안에서 갈아 입고 물속으로 뛰어 드니 수영을 잘 못하는 나도 워낙 반경이 좁아 겁이 안난다.

 

이 샘이 얼마나 깊냐고 했더니 나보고 잠수해 보란다. 주위에 많은 이들이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에 설마 죽기야 하겠느냐 하는 마음에 눈 딱감고 뛰어드니 내 몸은 그대로 물속으로 한참을 들어가다가 물의 분출력으로 위로 솟구치고 말았다. 우리는 수영복을 입고 물에서 헤엄을 치지만 현지인들은 수영복이라는 개념이 없는지 그냥 긴 옷을 입고 수영을 즐기는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하긴 그 들 눈에 우리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곳 사우디는 운전을 하지 못하면 거의 활동을 할수 없다.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간신히 따온 나로서는 시내 주행은 생각도 못하는 초보지만 어찌하든지 운전을 하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어느날 휴일에 현장내에서 거주하는 직장 상사로 부터 연락이 왔다. 일하게 있으니 현장으로 나오란다. 늘 나를 태워주는 동료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쉬고 싶다면 현장까지 바래다 주기를 거절한다.

 

오기가 생겨 그럼 차 키만 달라고 했더니 그 직원을 설마 내가 차를 몰고 가지 못하겠지 하는 마음에 무심코 건네준 키를 들고 나는 서버밴이라는 무쏘같은 큰 차를 몰고 아무도 없는 휴일날 거리를 나섰다. 조심조심 숙소를 나서고 아주 천천히 거리로 나섰다. 다행히도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호도 거의 없는 길이라 조심 조심 달리던 마음은 안도감으로 변하고 내차는 액셀을 밟는 대로 내달렸다. 무사히 현장에 도착하고 상사에게 인사하니 나보고 무척 대담한 놈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죽으면 어떡할려고 운전도 할 줄 모르는 녀석이 그렇게 큰 차를 몰고 혼자 왔느냐고 하면서 대견해한다. 그 뒤로 그 차는 내 차지가 되었다.

 

사우디도 처음에는 한국 운전 면허만 소유하고 현지 거주 허가증만 나오면 사우디 운전 면허증을 바꾸어 주었다. 나중에 그 제도가 바뀌어 운전 실기시험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운전면허증을 받을때 반드시 조건이 있었다. 헌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피를 이국에서 뽑는 다는 것을 무척 싫어 했지만 현지 면허를 얻기 위해선 어쩔수 없었다. 내가 면허를 받으러 갈때도 역시 피를 뽑아야한다고 했다. 그러나 간염이라는 병력이 있다 하니 헌혈에서 제외당하고 쉽게 면허를 받았다.

 

사우디는 휴일이 금요일이다. 그래서 이곳 한국교회도 금요일날 예배를 본다. 예배를 보는 것은 철저히 금해져 있기에 아주 변두리에 어느 한국인이 경영하는 농장에 있는 큰 홀에서 예배를 몰래 본다. 처음 몇 주는 직원중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있어 동승해 갔는데 내가 성가대를 시작한 이후에는 남보다 일찍 가야하기에 어쩔수 없이 차로 한시간 반 정도 달리는 먼길을 혼자서 달려 가야만 했다.

 

한국인 교회에는 인근 건설현장사람들과 이곳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가족이 많았으며 그 덕에 보기 힘든 한국 여자들의 모습을 볼수 있는 행운을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애들의 웃음소리들.. 성가대에서 찬양으로 마음껏 부르고 싶었던 노래들을 부르고 그 곳 농장에는 골프 연습장이 있어 예배후에는 처음 쳐 보는 골프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으면서 옆사람 치는대로 골프채를 휘둘렀다. 땀을 흘리고 나면 시원한 그늘 밑에서 양고기도 구워 먹으면 즐기는 휴일의 기분은 이국 아니면 맛 볼수 없는 모습이다.

 

이곳에서는 테니스를 주로 밤에 친다. 낮에는 너무 더워 걸어다니기도 힘든 형편이니 가끔 인근 호텔의 테니스 코트에서 땀을 흘린다. 테니스 코트는 주로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무릎이 다 벗겨지곤 했다.

 

어느날인가 인근 현지인 축구 클럽에서 축구 게임한번 하자고 제의가 왔다. 소장은 이런일에 적극 나선다. 현지인들을 사귈 좋은 기회이니... 그리고 가능한 이겨야만 한다. 이런 제의가 있은 뒤 소장은 바빴다. 직원들과 근로자들사이에 축구를 한다 하는 사람들을 모집에 일을 거의 시키지 않고 연습을 시킨다. 그것도 부족하면 한국에 급히 연락해 전직 축구선수들을 마치 근로자인것럼 위장 출국케 하여 게임을 하기도 한다.

 

게임은 밤에 있었다. 인근 대학 축구장에 저녁에 가본 우리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축구장에 깔려 있는 새파란 인조 잔디에 기가 죽고 그들의 축구 실력에 기가 죽었다. 우리는 여지없이 그들의 위세에 누리고 게임도 지고 말았다. 그 해 있은 월드컵에서 한국은 사우디와의 축구경기에서 5대 4로 지고 말았다. 사우디의 승리가 확인되는 순간 온 거리의 차들은 경적을 울리고, 만나는 한국인들에게 ‘캄사 아르바’라고 인사를 하며 다녔다. ‘캄사’는 5이고 ‘아르바’는 4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의 가장 큰 애로는 술을 마지시 못하는 불편이다.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 한국인들은 몰래 몰래 술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혹은 필리핀인들이 만들어 파는 술을 사오기도 하여 밤에 숙소에서 몰래 술을 즐긴다. 술을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과일 쥬스를 사다가 빵만들때 넣은 이스트 몇 알을 넣고 2-3일 지나면 아주 독주가 된다. 이곳 말로 ‘싸디끼’라고 하는데 술이 너무 독해 이 술을 잘 못 먹고 눈이 먼사람도 있다한다.

 

가끔 현지 경찰들의 외국인들의 숙소를 불시 검문해 술을 발견하면 한 바탕 회오리가 분다. 술이 있던 집이나 현장의 사람을 심문하여 판 장소를 알아내거나 혹은 제조한 장소를 알아내면 일대 검문이나 압수 수색 체포의 일관된 행위가 일어나고 현장에서는 일을 하다가 숙소로 들어가 술을 들키지 않게 감추곤 한다. 어느 나라나 술에 대한 얘기는 끊이 없다.

 

내가 일하던 곳은 군사공항이었는데 그곳으로 민간비행기도 이착륙을 하였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다 그렇지만 군사지역안에서의 일은 무척 힘들다. 우선 일보다 보안이 우선이니까 모든 인력 장비 자재를 현장으로 들어가는게 보통 어려운일이 아니다. 특히 많은 인력들이 한꺼번에 비행기를 타고 와서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어야 하는데 GATE PASS라는 출입증이 있어야만 현장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출입증을 만들기위해서는 적어도 3일이 걸리고 어쩌다 주말이 끼면 일주일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당장 공사가 급하니 어떻게 해서라도 현장으로 데리고 들어가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한다. 가장 쉬운 방법이 미리 들어간 사람들의 출입증을 회수해 다시 부착하고 들어가는데 처음에는 사우디 군인들도 쉽게 속아 넘어갔다. 그러나 어느 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모든 출입자들의 출입증을 일일히 얼굴과 대조했다. 우리는 한국사람들의 사진을 얼굴과 비교해 보면 금방 동일인인지 아닌지 알수 있지만 그네들의 눈에는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보이기때문에 대개 그냥 통과 되곤 했지만 가끔 나이가 완전히 틀린 사람의 출입증을 가지고 들어오다가 곤욕을 당하기 일쑤였다.

 

당시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안되어 젊은이들이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이런 현장에서 근무하다가 휴가기간동안에 한국으로 들어가지 않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미혼의 직원들이 많았다. 직원들은 밤이나 낮이나 여행정보를 교환하기에 바빴고 또 미국으로 가는 사람들은 비자를 받기 위해서 무척 애를 썼다.

 

직원들은 유럽여행을 다녀온후 무용담을 이야기 하면서 동료들에게 해외여행의 바람을 한껏 불어 넣었고 보통 2년의 근무기간중 3번 정도있는 휴가 기회에 한번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또 가족을 불러 같이 떠나는 열성파도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