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음악과 삶

45년전의 만남

carmina 2015. 4. 6. 21:26

 

<<2009년도에 싸이월드에 써 놓은 글을 이곳으로 옮겨봅니다>>

 

저녁 퇴근 길 신도림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 서울의 전철역중 제일 복잡한 곳일겁니다.

전철올 때 쯤에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걸어가기도 힘듭니다.

 

그 사람들 틈을 비집고 오는 사람이 있는데

어깨에는 아주 큰 악기모양의 집을 메고

사람들을 마구 부딪히며 오고 있습니다.

부딪히는 사람들이 귀찮아 합니다.

 

그 순간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마치 엔돌핀처럼 솟았습니다.

 

어릴 적 내가 무척이나 신기하게 생각했던 사람..

 

내가 15살 쯤 되었을 때 청년이었던 그 사람은

 

그 나이에도 이마가 훤했고 시력은 거의 시각장애자 수준이었죠.

 

어릴 적 마마를 앓았는지 커다란 구멍이 가득 있었고..

 

그러나 그렇게 시력이 나쁜데도 기타와 피아노 치는 것은

 

거의 신기에 가까왔습니다. 얼마나 연주를 많이 했는지

 

짧은 손톱에 손가락 끝은 늘 뭉툭했습니다.

 

어릴 적 인천싱어롱 와이를 다녔는데 가끔 이 분이 나와

노래를 불렀고 내가 대학생시절엔 같이 노래한 기억도 있었지요.

눈이 안 보이니 모든 악보는 듣고 외워야 했습니다.

찬송가 반주도 외워야 했고, 모든 노래의 가사도 외워야만 했지요.

기타나 피아노를 칠 때는 눈 얼굴은 허공의 11시 방향을 향하고

귀는 악기를 향해 있습니다.

 

내 앞을 마구 스쳐 지나가기에 망설일 것도 없이 내가 팔을 붙잡았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압니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좋아해서

선생님을 자주 보았었죠."

그 분은 내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합니다.

어차피 봐도 윤곽정도나 보일테니까..

"그래요? 난 전혀 기억이 안나는데요."

"어릴 적 싱어롱와이를 다니며 보았었죠.

아직도 노래 좋아하시죠?, 지금 어깨에 이건 뭐죠?"

"네. 전자올갠입니다. 지금도 노래 가르치고 오는겁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시작된 얘기는 우리를 40년전의 오늘로 한참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내 명함을 건네 주었지만 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집어 넣습니다.

명함을 눈에 가져다대어도 겨우 보일까 말까 하는 시력이니까

그렇게 했겠죠. 지금도 나랑 얘기하면서도 얼굴은 11시방향 전철 천정을 바라봅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어릴 적 노래 스승..

나는 많이 늙었는데 그 분은 아직 내가 어릴 적 보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조금 훤한 이마도 더 이상 훤해지지 않은 것 같고

마마자국도 그대로 있네요.

 

얘기를 하면서 손가락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뭉툭한 손가락.

 

언제 또 다시 만날 지 모르지만..

 

그 분이랑 같이 불렀던 포크송들은 아직 모두 내 입에 있습니다.

 

아직도 교회에서 합창단을 지휘한다는 그 분의 모습은

음악같이 평생 잊지 않겠죠.

 

창조주가 그에게 좋은 시력과 멋진 얼굴을 빼앗아 간 대신

음악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주셨습니다. 

 

공평하신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