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무리 야외번개를 약속했다 해도
이럴 수는 없는거야.
송내 전철역에 내리니 여전히 비가 오고
만나는 장소에 가도 우중충한 쉼터,
신문지가 널브러져 있고, 의자는 젖어 있고...
여기서 모인다고?
그런데..세상에..
몇 사람의 노력이 얼마나 멋있는 야외번개를 치루었는지
이럴 수는 없는거야..
헤롱이님이 주섬 주섬 주위를 정리하고
가지고 온 먹을 것 늘어 놓고
막 배달되어 온 피자 한 판에
마틸다님이 가져온 건국이래 제일 맛있다는 떡볶이
랜턴으로 만든 조명을 빛으로 삼아
아크룩스님 만들어온 와인슬리퍼를 옆에 놓으니
이 보다 더 좋은 만찬장소가 없는거야.
세상에..
누가 비오는 날 이렇게 열 몇 명이 어두운 공원의
겨우 비만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에 모여서
달콤한 와인을 먹는다고 생각할까?
이럴 수는 없는거야...
어쩌다 처음 만나 같이 앉은 여자 둘이
서로 잘 아는 한 친구를 두고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게 와인 때문에 아는 사람이면 이해가 되겠어.
거 왜 있잖아...
한국사람들은 2.5단계만 넘어가면 다 아는 사이라고..
그런데 둘이 나이도 같고 공통점이 비슷하다 보니 꼭 한 단계만에 서로 이웃이 되네
서로 외국어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고
이차로 노래방가서 마이크를 잡는데
세상에..
이럴 수는 없는거야..
내가 좋아하는 신효범노래를 그렇게 맛깔스럽게 부르는 여자를 난 처음봤어..
세상에..
새로 온 키크고 멋진 남자가 노총각이래..
그것도 좋은 직장에..
이럴 수는 없는거야..
그레이프의 적령기의 아가씨들은 어쩌자는 말이냐..
세상에..
무슨 와인을 이름도 모르고 마셔?
오늘은 그냥 주는대로 마시래
라벨도 잘 안 보여주고..
이럴 수는 없는거야..
적어도 폭풍님이 안 왔다면
아크룩스님이라도 나서서.
이 와인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산입니다.
맛이 어떻고, 돗수는 어떻고.. 부라 부라..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거 몰라도 와인 맛있는 건 여전하더군요.
이럴 수는 없는거야..
세상에..
나 그레이프 온 뒤로 노래방에 같이 간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내가 그레이프랑 노래방가서 잔뜩 기 죽고 왔어
이럴 수는 없는거야.
도대체 어제는 무슨 날이었기에
내가 그런 전력을 깨트린거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온다..
비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지저분한 것들을 씻어내고
생명을 자라게 하고
늘 새로움을 만든다..
그레이프도 어제 새로움의 역사를 썼다..
No Reverse, No Recre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