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와인은 멋이다

나라별 와인 모임

carmina 2015. 5. 19. 23:16

 

 

오랜 직장생활동안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나는 다른 직원들처럼 외국가면 그 나라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봐

고추장 깻잎 등 한국 기본 반찬을 싸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어느 나라던 그 나라 음식에 맛을 들여야 한다는 고지식한 사고방식이 바로 나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한국음식을 되도록이면 먹지 않는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그리고 외국항공사도 제공하는

그 흔한 비빔밥도 나는 먹지 않는다.

 

비행거리  10시간 이상이면 비지니스 클래스를 탈 수 있는 회사의 규정때문에

호주, 아프리카, 미주 등 주로 먼나라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나는 늘 좋으 대접을 받았다.

비행기를 타면 늘 제일 먼저 와인리스트를 본다.

오늘은 어떤 와인일까?

비지니스 클래스는 와인의 종류가 이코노미 클래스와 좀 다르다.

그리고 식사 메뉴중에 양고기가 있다면 두번 생각하지 않고

나는 양고기를 주문한다.

양고기처럼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눈에 익은 와인은 없다.

일천한 와인 지식 때문에..

그러나 식견높은 항공사가 추천하는 와인이 여러 종류가 나온다.

주로 비행시간 10시간 이상되는 나라들을 다녔기에

몇 번의 식사를 하면서 와인을 종류별로 다 마실 수 있는 기회는

물론 각종 칵테일과 디저트 코냑과 아이스와인까지 마실 수 있다.

 

오늘 그레이프의 번개는 여러나라 와인을 마셔본다.

이처럼 좋은 기회가 있을까?

 

마침 오늘은 회사 휴무일이지만 비상근무 하느라 조금 일찍 퇴근했다.

덕분에 참석하니 조촐한 인원 7명.

미국, 프랑스, 스페인, 호주, 오스트리아, 이태리 ....

 

미리 준비해준 해피투게더님의 와인선택의 안목이 고급스럽다.

전문가의 혜안을 빌려 마셔본 화이트 레드 와인들..

 

혼자 마실 때 쉽게 접하지 못하는 프랑스 와인은 코로 스며 들어오는 향기와

입에 넣는 감촉 그리고 목구멍을 넘어갈 때 감촉이 다르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전통적인 와인보다

마치 탱자를 먹은 씁쓸함이 오히려 오히려 기분이 좋다.

통상을 벗어나라.

그게 와인이다.

 

와인 잔에 넘실거리며 흐르는 물결에 얼른 코를 대니 과일 향이 가득 풍겨온다.

역시... 이 맛에 와인을 즐긴다.

 

와인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

호불호를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

전문성이 있어 좋다.

 

그 들의 전문성을 슬쩍 내 것으로 만든다.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어도 남들이 그렇게 느꼈다니 나도 그렇게 느꼈다고 하자.

어차피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하니까..

 

피같이 붉은 와인이 목구멍을 넘어가면 내 몸에 가득한 진부한 피들이

모두 정화될 것 같다.

이 참에 일상적인 내 모습을 바꾸어 볼까?

목구멍을 넘어가는 진하고 씁쓰레한 와인의 맛이 내 몸에 싸~ 하게 퍼진다.

 

와인은 절대 와인 본연의 맛으로만 평가 받을 수 없다.

어떤 음식을 곁들이냐에 따라 와인은 다른 평가를 받는다.

 

신선한 샐러드와 투박하지만 진실성이 보이는 피자

그리고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 맛이 와인의 품격을 더해 준다.

 

나는 그래서..

부숑이...그레이프가...같이 모여 마시는 와인친구들이 좋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대취했는지 와인 잔을 쓰러뜨리는 실수를 범했다.

 

이런 날도 있구나..

 

그래서 좋다.. 이런 날도 있기에..

 

마시는 와인 라벨들을 읽으며 나름대로 배경을 유추해 가면서

와이너리 소유자가 만든 와인에 대한 자존심이 보인다.

나도 내 이름을, 나 만의 고유한 라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내 자존심을 가지고 싶다.

 

흐느적거리는 목요일.

다행하게도 내일은 늦잠을 자도 되는 날이다.

 

와인이...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행복했던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