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중동방문기

두번째 사우디 근무 (1986)

carmina 2015. 6. 3. 11:42

 

 
 
 

두번째의 사우디 생활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 또 이곳에 오고야 말았다. 그것도 어린나이에 현장소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사람을 관리하는 일, 앞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미루어 왔던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해야 하는 중책을 맡기로 하고 결혼 2달만에 회사일이라 당연히 남편을 보내야 하는 줄 아는 아내의 서운한 눈길을 뒤로 하고 떠나 왔다.

 

다행스럽게도 이 현장은 정확하게 일년간만 우리 회사가 지은 대형 건물의 유지 보수를 해주는 계약이라 아무리 늦어도 일년정도면 임무는 끝난다.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가듯이 세월지나면 저절로 무사히 마치는 일이라고 아내에게 안심을 시키고 나오기는 했으나 나온지 일주일도 안되어 아내는 나를 보낸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지구 저편에 있는 것을....

 

한국인 기능공 10명정도 스리랑카인 10명정도가 내가 있는 현장의 전부이다. 그들은 모래위에 임시로 지은 막사에 살며 아침 8시에 일을 시작하고 오후 6시면 하루를 끝낸다. 특별히 건물에 이상이 없으면 그냥 한가한 하루지만 워낙 조급하게 끝낸 현장이라 일정 기간이 지나니 여기저기 잘못된 것들이 보이고 그 일들을 우리 잘못이 아니라 우겨야하는 일에 거짓말쟁이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 체류는 소장이라는 책임이 무거웠긴 하지만 조금 자유스러운 생활로 지낼 수 있었다. 우선 저녁시간이 자유로왔고 휴일은 어김없이 쉬는 여유가 있었다. 지루한 나날들... 무엇인가 저녁시간을 보낼 일을 생각해야만 했다. 생각한 것이 테니스. 테니스라곤 쳐보지 않은 내가 라켓을 하나 사고 저녁이면 교민회관에 있는 콘크리트 테니스 코트에 빠지지 않는 단골이 되어 버렸다. 매일 티셔츠를 바꾸어 입어야 할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리고 혹 넘어지면 무릎이 모두 까져 버리기 때문에 조심도 하면서 시합후엔 인근에 특이한 음식점에 가서 바나나로 만드는 부침개, 쇠꼬챙이에 익는 통닭들을 사가지고 포식을 하곤 했다.

 

그 음식점을 가면 넓은 후라이팬에 기름을 잔뜩 두르고 우선 반죽된 밀가루를 넓게 만들어 익힌다. 밀가루반죽을 넓게 피는 작업이 우리나라와 무척 다르다. 우리나라는 반죽을 해서 홍두깨나 맥주병으로 밀어서 둥글고 넓게 만들지만 이 들은 밀가루를 조금 묽게 반죽해서 우선 피자크기만큼 크게 손으로 툭툭 쳐서 만든 후 그것을 공중으로 휙 휙 던지면 아주 동그랗게 펴진다.

 

그 손놀림이 무척 신기해 내가 주문한 요리가 나올 동안 그 것만 쳐다 보기 일쑤다. 그렇게 넓게 펴진 밀가루 반죽에 바나나를 껍질을 벗겨 아주 조그맣게 만든후 설탕, 야채 등 온갖 것과 함께 마구 손으로 주물럭 주물럭하여 으깨서 넓은 밀가루 반죽위에 넣고 반을 접어 덮는다. 그리고 넓은 후라이팬에 익히면 아주 맛있는 부침개가 되고 레몬즙을 뿌려 먹으면 아주 일품이다.

 

교민회관에는 넓은 강당이 있는데 평소에는 한국인을 위한 초등학교로 사용하고 금요일은 교회로 사용했다. 은밀히 드리는 예배지만 늘 조심을 해야 했다. 교민회관은 치외법권지역이라 예배보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날 아주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성찬식이 있던 날, 한 교민이 성찬식을 위해 몰래 준비한 포도주로 성찬식을 하고 난 후 남은 포도주를 한꺼번에 마셔버린 어느 건설회사의 직원이 예배 후 운전을 하고 귀가하다 그만 사우디 경찰에 걸리고 말았다. 그 사람은 즉각 구속되고 술의 출처를 캐기 위한 현지 경찰의 감시때문에 모든 한국인은 무척 긴장해야만 했다.

 

어느날은 직원들이 야외로 나가고 싶어해 인근 산악지대로 야유회를 가기로 했다. 그곳은 높은 산이라 그런지 무척 시원하였고 나무도 제법 있는 곳이다. 그곳을 가기 위해선 메카를 지나쳐 가야 하는데 그 길 이름이 무척 재미있다. 이름하여 ANIMAL ROAD (동물이 다니는 길). 그러니까 회교도의 성지로 가는 길은 성스러운 길이고 그 옆을 지나쳐 가는 길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 가는 길이라 하는 것이다.

 

회교도들은 평생에 한 번은 반드시 메카로 가서 참배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한다. 그래서 회교도의 종교기간 중 이 길은 늘 붐빈다. 그리고 메카는 반드시 회교도만이 들어 갈 수 있다. 언젠가 그 안에 건설공사가 있는 한국건설업체는 그 현장의 모든 직원들을 회교도로 만들어야만 했다.

 

애니멀 로드는 평화스러운 길이다. 한적하고 군데군데 낙타가 뛰어 다니고 양떼를 모는 어린 목동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군데 군데 베드윈 족들이 거주하는 텐트를 볼 수 있고 푸른 잎사귀가 있는 나무가 있는 길이기도 하다. 구비 구비 산을 올라 어느 곳에 도착하니 평평한 곳에 나무가 많고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는 하얀 옷을 입을 사람들을 본다. 우리도 그곳에서 한국인 특유의 야외 파티가 벌렸다. 양고기를 굽고 알콜기 없는 맥주를 마시고 놀고 있는데 꼬마 하나가 혹이 하나 있는 낙타를 끌고와 낙타위에 타란다.

 

그리고 즉석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다. 내가 올라 탈려고 하니 낙타를 꿇어 않히는데 참 어이 없는 모습에 안스러웠다. 낙타의 무릎을 작은 돌로 던져서 고통을 주니 낙타가 무릎을 땅에 대고 꼬마는 나를 낙타의 혹위에 얹은 안장에 손으로 발을 받혀 앉게 한다. 그리곤 다시 낙타의 코에 매달린 고삐를 잡아끄니 낙타가 고통스러운 듯이 일어난다. 낙타가 무척 키가 커서 불안하기만 하다. 우리 직원들이 날 위하여 사진을 찍고 그 꼬마도 사진찍은 후 내려오니 우리 보고 50불 내란다.

 

우리는 꼬마에게 항의했다.

 

“무슨 얘기냐? 한 번 타는데 5불이라고 했잖아”

“우리 사람들이 각각의 카메라로 사진찍은게 모두 10번이니 50불이다”

“이건 우리 카메라다. 왜 그 돈을 네게 내야 하느냐?”

“낙타위에서 찍은 횟수 만큼 내야한다”

아무리 막무가내로 따져도 꼬마는 화만 버럭 버럭 내고 우리보고 신고하겠단다.

어쩔 수 없이 5불을 더 보태서 10불로 타협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