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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사고 경험 (서진 룸살롱 사건)

carmina 2015. 6. 3. 11:43

 

 
 

서진 룸살롱 사건

 

그 당시에 한국에서 일어난 유명한 살인사건이다. 룸살롱에서 회칼로 서로 죽이고 죽고.... 그러한 일이 내가 있던 현장에서 일어날 줄이야....

 

현장이 업무 의무기간이 종료되는 날이 목전에 있을 때 쯤, 소장인 나는 모든 직원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마무리 하는 그 순간까지 금주령을 내렸다. 그리고 고맙게도 모두 그 지시를 준수했고 정해진 날의 자정에 우리의 임무는 끝이 났다.

 

나도 이제 임무를 마치고 귀국을 위한 준비를 해야 겠구나 생각하고 편히 잠을 청했는데 한 밤중에 내 방문을 조심스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직원끼리 싸웠단다. 문도 안 열어보고 지금은 밤이니 내일 해결하자고 돌려 보내고 난 후 다시 잠에 빠져 들었는데 잠시 후 다시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나며, 사람이 죽어간단다.

 

정신이 바짝들어 서둘러 옷을 입고 기능공들 숙소로 가니 아뿔싸 금주령이 끝나는 바로 그 시간부터 술을 먹다가 그만 싸움이 붙고 평소 사이가 안 좋았던 전기공과 정원사가 말다툼을 벌이고 급기야는 칼부림으로 끝을 내고 말았다. 내가 기능공 숙소에 들어가니 정원사가 바닥에 엎드려 있고 등에서 흘러 내리는 피를 다른 사람이 손으로 막고 있으며 정원사는 고통을 잊기 위해 연신 술을 마셔대면서 ‘소장님 살려주세요’ 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칼로 찌른 전기공은 본인도 그제야 사태를 깨달았는지 구석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바닥의 지저분한 카펫트에는 피가 묻은 칼이 뒹굴고 있었다. 흉기로 사용된 도구는 산호를 캘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는 칼로 앞 뒷면이 모두 톱날 같이 날카로왔고 무척 강하게 생긴 칼이었다. 그 칼이 어찌나 무섭게 생겼던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선 환자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겠다는 생각밖에 없어 차에 태우고 교회에 출석하는 한국 간호원들이 있는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한 밤중이라 병원 주위에는 경찰차들이 많았고 차마 그 사이를 뚫고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막사로 돌아와 어느덧 새벽에 되어 인근 한국 건설업체의 큰 현장에 있는 데려가 남자 간호사에게 응급처치를 부탁했다. 그러나 그 간호사도 환자의 상태가 너무 심하니 큰 병원에 가야 한다길래 붕대만 매고 다시 나와 술을 별로 마시지 않은 직원 둘을 데리고 시내에 있는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아직 업무시작도 하지 않은 병원에 당직의사만 근무하고 있다가 피를 흘리는 환자가 오니 응급실로 옮기고는 응급처치를 해 주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와서 묻는 말이

 

“환자가 왜 저렇게 되었읍니까? 상처를 보니 누가 칼로 찌른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혼자 일어난 사고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신고하지 않을테니 나에게만 얘기하세요. 분명히 누가 등뒤에서 찌른 상처입니다”

“아닙니다. 혼자 술 먹다가 일어나 사고입니다”

“자꾸 그러시면 안됩니다.”

“정말입니다. 사고입니다”

 

나는 사실대로 얘기하면 모든 우리 직원이 경찰에 잡혀 가버릴게 분명한 현실앞에서 당장이라도 그 현실을 피하고 싶어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선 언어때문에 대화가 잘 안 통하니 우리 회사에서 근무하는 요르단 직원을 전화로 병원으로 불러냈다.

 

우리 현지인과 의사가 몰래 신고하여 달려온 경찰이 한꺼번에 응급실에 들이 닥쳤다.

X-RAY를 찍고 응급처치를 한 환자와 우리 일행은 모두 경찰서로 붙들려 갔다. 경찰차에 실려 가면서 나는 이 심각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생각에 머리를 의자에 깊숙히 묻고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가 보니 경찰서에 도착했다. 우선 환자는 술을 많이 먹었기에 음주한 죄목으로 유치장에 갇히고 우리는 모두 취조실로 불려 들어갔다.

 

우리 직원에게 절대 의사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절대 영어나 짧은 사우디 말이라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는 취조실에 앉았는데 경찰은 영어를 못하고 나는 사우디 말을 못하니 중간에 통역이 있어야 했다. 경찰이 우리 현지인에게 사우디 말로 물어보면 우리 현지인은 그걸 영어로 나에게 얘기하고 나는 그 얘기를 한국말로 번역해 같이 붙들려 간 우리 직원들에게 물어 보고 답변을 들은 후 다시 영어로 우리 현지인에게 얘기하고 그걸 사우디말로 경찰에게 전하는 순서가 되다 보니 우리 직원들이 무엇이라고 얘기하던 간에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대로 경찰에 전달되는 식이었다.

 

우선 각본을 내 머리속에 만들었다.

 

우리 한국인들은 술을 마실때 반드시 안주를 같이 먹어야 하는데 저 환자가 밤에 혼자 술을 먹다가 안주가 필요해 어두운 주방에 더듬거리며 들어가다가 바닥에 흘려 있던 식용유에 발이 미끄러졌는데 그만 넘어지면서 손이 주방 식탁위에 요리용 칼을 건드려 그 칼이 환자의 등을 찔렀다.

 

이러한 스토리는 같이 붙들려 간 우리 직원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으로 나 혼자만의 연극이었다. 우선 한 명이 취조실로 들어와 경찰앞에 앉았다. 경찰은 왜 술을 먹었느냐고 물어보고 현지인은 질문을 나에게 물어보고 난 우리 직원에게 지금 경찰이 왜 술을 먹었느냐고 물어보고 있으니 손짓 발짓을 해가며 한국말로 설명해라 그럼 내가 적당히 영어로 얘기할테니 일정시간동안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던 유행가 가사를 얘기하던 시간을 끌면서 그럴듯하게 얘기해라 하고 지시하니 우리 직원도 눈치를 채고 되지도 않는 얘기를 손짓 발짓해가며 얘기하고 난 그걸 듣고 내 머리속의 각본대로 전했다.

 

예. 아니오만 대답하는 항목이 있으면 우리 직원에게 고개로 대답하라 하면서 철저히 내 머리 속의 각본대로 같이 간 사람들의 증언을 마쳤다.

 

이러한 상황이 되다보니 경찰도 의심하지 않은 듯 하다가 일어서면서 우리보고 현장검증을 해야 겠으니 지금 숙소로 가잔다. 순간 또 다른 위기가 닥쳤구나 하니 머리가 아득했다. 우리 숙소에는 전화도 없어 연락도 안되는데 어떡하나 하고 고민하며 따라 나서는데 경찰은 우선 죄인의 혈중알콜농도를 측정해야하니 가는 길에 병원에 들르자 한다.

 

그런데 여기서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혈중 알콜 농도를 검사하기 위해 경찰과 같이 간 병원이 지난 밤에 내가 갈려고 했던 우리 한국 간호원들이 근무하는 병원일 줄이야. 간호원들은 반갑게 나에게 인사하지만 내 표정을 보고 금새 사태의 위급함을 알았다. 자기들이 도와 줄 일이 없느냐고 하길래 빨리 내가 친한 교민 중 한 명에게 전화해서 우리 숙소에 달려가 주방 바닥을 깨끗하게 물청소 해 놓고 요리대에 주방용 칼 들을 올려 놓으라고 전했다.

 

그리고는 환자의 피를 뽑고 나와 경찰차로 우리 숙소로 가니 숙소가 썰렁하기만 하고 다른 직원들은 무척이나 걱정스럽게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경찰은 현장을 보고 싶다 하길래 주방으로 데리고 갔다. 주방은 내가 병원에서 간호원들에게 부탁했던대로 바닥은 물청소와 요리대는 큰 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경찰은 바닥을 보더니 왜 식용유가 없냐고 하길래 오늘 아침에 청소했다하니 요리대에 칼들을 하나하나 들어본다. 어느 칼이냐고 묻길래 그중 뾰족하게 생긴칼을 하나 가리키며 이것이라 하니 왜 핏자국이 없냐고 묻는다. 너무 피가 더러워 깨끗이 닦았다고 답변하니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은 주방을 서성거리며 환자가 어디에서 술을 먹었느냐고 물어 저기 막사뒤에 있는 모래사장에서 먹었다고 답변하니 가 보지도 않고 알았다고 한다. 막사주위를 경찰과 같이 걸으며 얼른 올해 한국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을 아느냐고 딴청을 부렸다.

 

유난히 축구에 관심이 많은 나라인지라 아시안게임이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알고 있어 내가 아시안 게임 개막식 비데오 테이프를 가지고 있는데 주고 싶다고 하면서 개막식때 한국의 아가씨들이 미니 스커트입고 현란하게 춤을 추는 모습이 비데오 내용에 있다하니 귀가 솔깃한 모양이다. 직원에게 연락해 얼른 하나 가지고 오게 해서 주니 경찰은 금새 싱글 벙글해진다.

 

그리고는 현장검증은 끝났다. 환자는 술을 먹은 죄로 다시 유치장으로 가고 우리는 모두 숙소로 돌아왔다. 피해자에게 안된 일이긴 하지만 단순 사고로 처리하여 가해자가 일단은 사우디 경찰에 구속되는 일이 없고, 같이 술을 마신 직원들도 피해가 없으니 우선 급한 불은 끈 셈이다.

 

피해자는 유치장에 하루 종일 같여 있다가 환자인지라 시립 병원으로 이송되고 경찰의 감시하에 사지를 모두 침대에 묶인 채 감시 당해야만 했다.

 

상해 사건이기에 이 문제는 제다 주재 한국 영사관의 노무관에게 이럴 경우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상의하러 갔더니 가해자와 피해자의 합의를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기에 숙소에 대기중인 가해자에게 보상을 얘기했더니 자기는 가진 돈이 전혀 없고 한국에도 가지고 있는 재산은 전세방하나 밖에 없어 그것이 얼마 안되니 더 필요하면 자기가 사우디에서 계속 일할 경우 모든 급여를 다 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피해자에게 이런 사정을 얘기했더니 자기는 신장이 다쳐 평생 불구자가 될지도 모르니 그렇게는 합의하지 못하겠단다. 할 수 없이 이 사건은 상해사건으로 처리 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가해 흉기를 찾아서 노무관에게 맡기고 조서를 꾸미기 시작했다. 가능한 빨리 두 사람을 모두 본국으로 송환하란다. 그러나 내 맘대로 출국 시킬 수 없는 일.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거래처의 사우디 사람을 동원하였다. 음주로 구속된 사람이 있으니 빨리 추방을 시킬 수 있도록 조치 좀 해달라고....

 

그때부터 나의 고생은 시작되었다. 우리와 생활 패턴이 틀린 사람들과 일을 하고 종일 그 사람들을 만날려고 기다리는 입장이 되다 보니 아침을 먹고 관청을 돌아다니다 보면 점심은 거의 매일 걸르기 일쑤고 이 사건을 처리해 줄 담당자들의 하루 근무시간도 서너시간밖에 되지 않으니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기를 기다리는 일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어 애타는 심정까지 합쳐서 저녁에 숙소에 들어오면 마음과 몸이 완전히 파줄기가 되고 ‘하나님 왜 이런 시련을 나에게 주십니까’ 하고 야속한 기도도 저절로 입에서 나왔다.

 

현장일이 끝나고 철수 준비를 하는 직원들이 병원에 같혀 있는 동료를 면회를 다녀 오더니 피해자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가해자를 포함한 숙소에서 맛난 음식, 재미있는 비데오 그리고 별로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는데 피해자인 본인은 사지를 침대에 쇠사슬로 묶인 채 맛없는 현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장을 다쳤기 때문에 피오줌을 쏟고 있으니 도무지 분통터져 못살겠으니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사실을 모두 알려 버리겠다며 나를 협박한다. 약간의 사우디 말과 영어를 할 줄을 아니 본인이 맘만 먹으면 우리 직원들 모두 사우디 감옥에 갇히는 일은 피해자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다. 가해자를 한국에서 구속시키고 당신도 빨리 한국으로 보내주겠으니 조금만 참으라고 매일 매일 타일렀지만 사우디의 일이 늘 제대로 되는게 없어 자꾸 지연되기만 한다.

 

가해자는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더니 제발 공항에서 가족들 보는 앞에 수갑을 차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간청하여 그렇게 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자신이 없다. 대충 언제쯤 출국할 것인지 예상해 대한한공에 좌석을 예약하러 갔더니 환자는 비행기의 일등석좌석 4개를 예약해야 한단다. 보호자 한명까지 포함해서... 돈이 문제가 아니니 우선을 예약해 두었다.

 

한 20일정도 이리 저리 쫓아 다니다 보니 피해자의 상태가 호전되고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다시 일반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피해자는 더욱 괴로왔다. 일반 감옥은 더욱 지저분하고 온갖 험상궂고 나쁜 얼굴로 이민족들과 한 방에 종일 같이 있어야 하니 정말 더 이상 못있겠다며 매일 나에게 불만이다.

 

그러다가 겨우 추방날짜가 잡혀 가해자와 혹시나 도주의 우려가 있어 감시할 직원을 같이 귀국시키기로 하고 공항에 나가 기다렸으나 시간이 되도 피해자는 오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가해자는 영사관에서 나온 공안원에게 인계하여 비행기를 태워 귀국시켰다.

 

경찰서를 찾아가 왜 피해자가 공항에 나오지 않았는가를 알아보았더니 사우디 항공을 이용해야 하므로 비행기표를 다시 끊어 오라한다. 정말 열받을 일만 계속 일어났으니 어쩔수 없어 부랴 사랴 사우디항공을 예약하여 며칠 뒤에 다시 공항에 나가서 기다렸더니 트럭이 하나 도착하여 경찰이 피해자를 데리고 내리는데 손에 수갑은 물론이고 두 발에 쇠사슬을 묶어 철렁거리며 공항청사안으로 들어온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불쌍한 민족들. 남의 나라에 와서 술 좀 먹었기로서니 저렇게 죄인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가 하고...

 

금속탐지기를 지나니 수갑과 발에 묶은 쇠사슬을 풀어 준다. 먼 발치로 고생했다고 얘기하고 손을 흔들어 보내고 나니 정말 지난 1개월이 10년이나 된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